용서와 사랑
골로새서 3:13-14 용서와 사랑
범죄자가 있어야 용서가 있고, 범죄는 피해자가 발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피해자만이 용서와 사랑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집니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들은 ‘있음’과 ‘변함’에 대해서 관심가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죄’와 거기에 상응한‘처벌’입니다.
이 ‘처벌하심’이 ‘의(義)’입니다. 마치 소풍 가는 아동들 속에 서 그들로 인해 상처받을 아동을 섞어 넣어서 결국에는 그 아동이 피해 보는 식으로 소풍을 마감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인생의 즐거움을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와 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이렇게 되면 이 소풍 가는 집단에서 도시락 까먹고 재미나게 유흥을 즐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용서를 체험하는 즐거움’이 이 소풍의 목표가 됩니다.
즉 세상을 제 뜻대로 사는 기쁨보다 용서받은 기쁨이 월등하게 크다는 사실을 공유하는 집단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용서를 요청할 수 없는 자들이 일방적으로 피해자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게 되면 그동안 세월을 보내면서 안게 되는 모든 심적인 압박감에서 해방되는 겁니다.
용서로 조성된 환경의 특별함은, 그 속에는 인생 실패자가 생겨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죄와 의로 조성된 환경이 아니라 가진 능력과 능력으로 우월을 따지는 세상에서는 필히 성공자가 낙오자가 갈리기 마련입니다.
모든 자들이 모두 다 성공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가진 힘에서 오는 차이 때문입니다. 이런 차등을 한데 묶을 사랑의 묘책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
천국이 좋은 점은 백성들이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고 그 대상이 모든 같은 분의 호의로서 제공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사랑으로 인하여 결실을 맺은 그 단체는 이미 개시된 천국으로서 그 안에는 비교나 경쟁이나 우월을 논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사랑의 공평함을 훼손시킬 그 어떤 요소도 여기에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