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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5강-오바댜 1장 12-14절(특수한 죽음)210602-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오바댜

5강-오바댜 1장 12-14절(특수한 죽음)210602-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오바댜 1장 12-14절입니다.

오바댜 1:12-14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의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라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사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대적에게 붙이지 않을 것이니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망하던 그 날에 바벨론 나라와 앗수르 그런 대제국들이 유다나라를 힘들게 했습니다.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망할 때 이스라엘 남쪽에 있던 형제국가라 할 수 있는 에돔나라 사람들이 형제국가가 되는 이스라엘이 망하는 것을 보고 쾌재를 불렀고 은근히 거기서 자신들의 이익을 얻으려고 시도했던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13절부터 이렇게 읽으면 되겠습니다.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않아야 했었었다.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그 고난을 방관하지 말아야 했었다.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그 재물에 너는 손을 대지 말아야 했었었다.

14절에 “사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사거리에 서서 그 도망가는 형제 나라 이스라엘 사람을 막지 말아야 했었다.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대적에게 붙이지 않을 것이니라” 고난의 날에 남은 자를 공격하는 대적에서 붙이지 말아야 했었다, 라고 하나님께서 지금 에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언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에돔나라가 무엇이 잘못되었느냐, 왜 잘못되었느냐, 라고 지적을 하게 되는데 에돔나라에 지적을 하면서 형제 되는 야곱나라의 망하는 것을 통해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겁니다. 이런 점은 하나님께서 야곱만 편애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그런데 성경 자체가 전부 다 이스라엘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으로부터 그 근거가 있어요.

요엘 3장 3절에 보게 되면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들이 건드리는 겁니다. “또 제비 뽑아 내 백성을 취하고 동남(어린 애들)으로 기생을 바꾸며 동녀(어린 여자)로 술을 바꾸어 마셨음이니라” 이 세상 나라들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여자와 이스라엘을 건드리면 내가 가만두지 않고 그 이방 민족을 보복할 것이다. 그게 4절에 나옵니다.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만일 내게 보복하면 너희의 보복하는 것을 내가 속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

하나님께서 친히 세상 나라에 대해서 보복하겠다. 그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아까 제가 말씀드렸습니다만 이것은 이 세상 많은 인간들 가운데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하나님이 특별히 편애를 하신다는 느낌을 받지요. 다른 나라가 약탈당하는 것은 그것은 마땅한 것이고 왜 야곱의 나라 이스라엘이 약탈을 당하면 안 되는 겁니까? 그 이유에 대해서 너희들이 모르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약탈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친히 지키시니까 다른 이방 민족이 이스라엘을 약탈해서는 안되는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겠지요.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나라만 챙기는구나.’ 하는데 더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뭐냐? 약탈해서는 안 되는 그 야곱 그 이스라엘을 왜 하나님께서는 약탈당하도록 하시는가? 그게 더 큰 문제에요.

그렇게 약탈당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못마땅하다면 사전에 좀 말리시지요. 말리지도 않고 약탈은 약탈대로 당하게 해놓고 뒤늦게 약탈했다고, 하나님의 백성을 너희가 공격하고 방관했다고 해서 에돔에 대해서 저주를 내리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무능력하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밖에 되지 않느냐, 라는 생각이 누구나 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들을 만드셨을 때는, 그리고 이야기를 하실 때 항상 시작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게 하십니다. 그게 뭐냐 하면, 운명의 시작점, 인간 안에는 인간이 다룰 수 없는 운명들이 거기에 다 장착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관심사는 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하냐가 아니라 그들 속에 장착되어 있는 운명이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통해서 어떻게 그것이 노출되느냐, 그게 나타나느냐, 거기에 하나님께서는 관심이 있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치고 비밀이 없는 인간은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그 비밀은 인간 본인이 만들지를 못해요.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자꾸 비밀이 생겨버려요. 이 비밀이라 하는 것은 어떤 운명같은 것인데요. 인간은 자기 속에서 올라오는 자기가 시작하지도 않은 운명 그 비밀 그것과 자기를 일치시키기 위해서 대단히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항상 노력해 봤자 늘 맞춰나가는 데 실패해요.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갖고 있던 하나님의 언약적인 그 운명 그 비밀과 이스라엘이 하는 행세가 일치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망하는 겁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뿐만이 아니고 우리 자신들도 마찬가지지요.

그 실패한 원인이 뭐냐 하면, 아까도 방금 이야기했지만 그 운명에 대해서 우리가 관여하지 못하는데 우리는 자꾸 내일에 내가 손을 대려고 하는 겁니다. 이야기가 좀 이상하지요. 자기 속에 있는 운명은 인간이 감당을 못해요. 감당을 못하는데 자기 뜻대로 자기운명이 전개되도록 우리는 감히 감당도 못하는 주제에 손대면서 내가 생각하는 것과 내 운명은 이렇게 하나가 되었다, 라는 식으로 합치시키려고 자기 인생에 자기가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야곱으로 하여금 야곱의 타인이 되는 그 에돔나라, 바벨론, 앗수르, 남의 민족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을 손대는 그 더러운 행세,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에 위배 되는 그 더러운 행세를 다른 민족을 통해서 다 뜯어내게 하시는 겁니다. “봐라. 네 인생 네 맘대로 안 되잖아. 너는 그동안 하나님이 심어준 운명을 네 손으로 그걸 증명하고 싶어했지?” 그러나 네가 필히 실패해야 된다는 거예요.

주님이 시작한 일이라면 주님이 관여해야지 왜 우리가 내 일에 관여합니까? 그래서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해서 늘 실망하면서 짜증을 부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짜증부리거나 실망을 할 수 있는 그런 권한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인간들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하나님이 심어놓은 운명 그 자체가 세상을 전개시켜 나갑니다.

그래서 나의 운명에서 내가 손을 떼야 돼요. 운명이라는 말을 제가 여러 번 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언약이라 하는 겁니다. 야곱에게 준 것이 뭐냐? 아브라함한테 준 것은 아브라함언약, 이삭한테는 이삭언약, 야곱에게는 야곱언약,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다른 말로 해서 나는 언약을 너희에게 준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야곱은 언약을 받고 난 뒤에 언약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가? 언약 앞에서 야곱이 제거되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야곱 안에 있는 야곱의 운명, 달리하면 하나님의 야곱 언약이 드러납니다. 야곱에게 언약을 줘놓고 그 언약이 스스로 성취되기 위해서 언약을 준 그 야곱을 뜯어내는 거예요. 제거하는 거예요.

야곱을 제거한다는 말은 뭐냐 하면, 야곱은 자기의 죽음을 언약 기능으로 인하여 필수적인 절차로서 뜯겨 나가야 되는 겁니다. 이 뜯겨져 나가는 작업은 어느 인간도 본인의 생명을 본인이 뜯어낼 수는 없어요. 인간의 육신이라 하는 것은 자기 기분에 맞는, 내가 원하는 운명으로 자기가 개발하려고 하고 그걸 만들어나가려고 하지 스스로 자기에게서 자기가 손을 떼는 사람이 없잖아요.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거예요. 그 멸망하는 과정 속에서 야곱이 야곱을 떼 내지를 못하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웃나라 강대국 바벨로 앗수르 그리고 그와 합작된 에돔 그것들을 통해서 약탈케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언약을 주시면서 야곱 자체는 이것은 야곱 본인의 것이 아니에요.

본인의 것이 아니면 누구 것이냐? 남의 것이에요. 그래서 약탈을 허용하는 겁니다. 네 것 네가 가져가라 그 말이지요. 그러면 내 안에는 누가 들어 있느냐 하면, 남의 것만 들어 있어요. 남의 것만 내 안에 있을 때 다시 말해서 내 안에 나는 없고 타인만 들어 있는 것, 타인의 것, 타인이 원하고 있는 것, 남들이 원하고 있는 것만 들어 있는 것 그것을 하나님의 언약이 있는 사람은 타인에 의해서 그들로 하여금 뜯겨 나가도록 하는 겁니다. 내 안에 남 있다. 그겁니다. 내 안에 남이 있어요. 나라고 여겼던 것은 내 것이 아니고 전부 다 남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인생은 내 안에 있는 이 모든 것이 내 것인 줄 알고 나이 90이 넘고 99세 100세 될 때까지 이걸 안 빼앗기려고 꽉 쥐고 있는 거예요. 빼앗기라고 준 것인데, 이게 네 것은 없다고 준 것인데 마치 이게 내 것인 양 쥐고 있는 겁니다.

그러한 예가 마태복음 19장 22절에 나오는 예가 나옵니다. 거기에 부자 청년 한 사람 나와요. 그 부자 청년은 예수님에게 자진해서 찾아와서 자신이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먼저 이야기합니다. 나는 십계명 다 지켰습니다. 쉽게 말해서 십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이잖아요.

말씀을 지켰다는 말은 나는 하나님 없이는 못산다, 그 말이고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으니까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한 도리인 줄 알고 지금껏 그 마음이 변치 않은 채 순수한 신앙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지금 예수님 앞에서 하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네가 부족한 것이 있다.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그 다음에 너는 나를 따르라” 이렇게 하니까 이 부자 청년은 자기가 이 정도 하면 얼추 영생 얻을 만하다고 여겼는데 아직도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 부족한 것 진짜 “내가 이렇게 해도 영생 얻는데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 보충해야 되는 부족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그걸 이야기해 주신다면 곧이듣고 순응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온 거예요.

그런데 주님께서 네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라오너라 했을 때에 22절에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이 말씀에서 결정적인 것은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떠났다는 겁니다. 떠난 거예요. 떠났다. 와서 예수님을 봤는데 예수님 말씀 듣고 떠나버린 거예요.

이것은 뭐냐? 부자 청년은 예수님한테 와가지고 비로소 자신의 본모습을 확인한 거예요. 내 안에 내 것만 있었다는 것, 내 안에 내 것만 있었고 예수님은 그걸 간파해서 네 것이라는 그것을 버려라, 라고 요구하신 거예요. 이 말은 뭐냐? 영생이라 하는 것은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지금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에돔을 닦달 내는 이유가 뭐냐?에서, 에돔 나라를 닦달 내는 이유는, 야곱은 야곱언약이 위주기 때문에 야곱언약 앞에서 야곱은 없는 자가 돼요. 뜯겨 나가야 돼요. 개털되어야 되는 겁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야 돼요.

그런데 에서는 뭐냐? 본인은 망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야곱이 망하는 것을 보고 얼씨구나 잘됐다, 그 말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안도감을 갖고 있는 거예요. 자신은 안 망해서 다행스럽다고 여기는 거예요. 그러나 야곱의 언약의 시작점은 뭐냐 하면,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에 의해서 구성된 나라가 이스라엘이거든요.

이것은 야곱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대신 죽어주신 분이 있어요. 야곱 안에는 대신 죽어주심이 있기 때문에 야곱 언약에 해당되는, 곧 어린양과 함께 있으려면 야곱은 내 것이 없어야 돼요. 내 것이 없는 상태가 뭐냐 하면, 바로 야곱의 죽음이 필요한 거예요.

나 이렇게 잘 살았다, 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 주님한테, 우리 하나님한테는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나는 이렇게 죽은 채로 동행합니다, 하는 나의 죽음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사람은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그래서 죽음, 야곱으로 하여금 죽음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주변 나라 에돔을 통해서 그 죽음의 아픔을 다 경험한다고 그동안 살기 위해서 가졌던 모든 것을 약탈당하도록 조치를 해버린 겁니다. 죽음만 남도록.

그러나 에서 그리고 일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엄연히 살아 있는데 이 모든 것은 다 날라가 버리고 나의 죽음만 내 안에 있으면 된다, 라고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야곱은 망해도 상관 없는데 에서는 망하면 안 돼요. 망하면 이것은 큰일 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했지요. 사람이 사는 보람과 즐거움은 그냥 개나 끌어안고 살지 말고 사람은 고마운 분이 있어야 된다. 그래야 사는 보람이 있다 했어요. 물론 에서나 안 믿는 사람도 고마운 분은 있지요. 그러나 그 고맙다는 것은 일시적인 고마움이에요. 영원히 고마운 분은 아니에요. 잘해주면 고맙고 배신하면 안 고맙고 그런 겁니다.

그러나 야곱에게는 대신 죽은 분이 영원한 고마움이 되려면 나는 영원히 죽은 자가 되어야 영원히 고마워요. 왜? 그래야 대신 죽어주신 그분만이 고마운 분으로 계속 유지되고 살아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에 내가 살아 있어 버리면, 날 구원해줘서 고맙다, 라고 되어버리면 돌아서서 결국은 나 잘되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은 게 돼요.

그러면 예수 믿어주는 내가 고마워요. 주님도 고맙지만 영원히 옳은 결정을 한 내가 나에게 고마워지는 거예요. 이것은 또다시 내가 도로 지옥 간다면, 내가 죽어버린다면 내가 나에게 안 고마운 것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뭐냐 하면, 내 안에 내가 없어야 되는데, 내가 내 안에 없다는 말은 뭐냐? 아예 없다는 말이 아니고 내가 죽은 채로 있다는 말이지요. 죽은 자는 모든 것을 빼앗겼으니까 자기 것이 없잖아요. 내 안에 내 것이 없어야 돼요. 내 안에 내 것이 없을 때 그럴 때 대신 죽으신 분의 고마움은 계속해서 우리 안에서 살아나고 지속되는 겁니다.

보통 죽음이라 할 때 오늘 본문에도 나오지만, 모든 것을 늑탈당하고 빼앗기고 환난당할 때 모든 사람은 이것을 불행한 일로 간주해요. 슬픈 일로 간주한다고요. 망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의 운명은, 모든 인간은 죽습니다. 그것을 일반적인 죽음이라 할 수 있는데 모든 인간은 다 동일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스라엘 속에서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 그 유월절 양을 하나님의 언약과 함께 있다는 증표로서 그들 속에 집어넣었거든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애굽인도 죽어야 되고 히브리인들도 애굽나라에서 죽어야 되는데 일반적인 죽음 말고 또 다른 특수한 죽음이 생긴 거예요. 어린양으로 말미암아.

그러면 죽음이 종류가 몇 개냐? 두 종류가 되는 겁니다. 두 종류의 죽음 가운데서 일반적인 죽음은 그냥 계속해서 저주스런 죽음이에요. 그러나 특수한 죽음은 영광스런 부활로 이어지는 죽음입니다. 이것을 그 내용으로 품고 있는 나라는 오직 야곱, 이 세상에 이스라엘 나라뿐이어야 하는 거예요. 이게 이스라엘이 품고 있는 운명입니다. 다른 민족은 그게 없어요.

영원한 날 영원한 천국의 그 길목은 그냥 죽는다고 가는 게 아니고 특수한 죽음을 통해서 가야 돼요. 그 특수한 죽음은 이스라엘에게만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으로 주어진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을 살리기 위해서 이스라엘나라한테는, 아까도 이야기했습니다만, 이 껍질이 벗겨져야 돼요. 이스라엘이 벗겨져야 진짜 그 안에 하나님의 참된 이스라엘, 부활과 연관된 영광으로 이어지는 진짜 이스라엘이 들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른 에돔나라나 다른 이방나라로 하여금 이스라엘이 약탈당하도록 하는 겁니다. 아까 그 부자 청년 이야기를 다시 해 보겠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 오기 전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실컷 먹고 실컷 살고 즐기고 나름대로 생활하면서 살아왔지요.

그런데 영생을 얻고자 하는 거예요. 그 부자 청년은 현재 여기 있는 혹은 여기 살아 있는 나와 그리고 부활의 세계 영생을 접합시키려고 시도한 겁니다. 연결시키려고 시도한 거예요. 내가 여기 있고 여기 있는 내가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서 지혜 있는 예수님에게 한 수 배우려고 온 겁니다.

그러나 그게 뭐냐 하면, 제가 설교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내 인생에 내가 관여해서 내가 다루려고 하는 수법이에요. “선생이여, 뭘 하면 영생을 얻겠습니까?” 이 자체가 지금껏 내가 내 인생 관여했는데 이번에 천국 가는 것에 대해서 내가 내 인생에 어떻게 관여하게 되면 나는 천국 가는 사람이 됩니까, 라고 그거 궁금해서 온 거예요.

그런데 제가 아까 했잖아요. 결정적인 것은 떠났다는 겁니다. 이 부자 청년이 떠났어요. 주님께서 집어넣은 운명, 예수님이 하시는 그 영생 주기로 운명 지워진 사람 말고 나머지기는 저쪽에서 그 인간들이 알아서 떠나는 식으로 이 땅에 일을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십자가 복음을 듣고 알아서 떠나야 될 이유는 본인들은 몰라요. 그러나 예수님 쪽은 알지요.

비로소 본인은 내 속에 내가 없다는 것을 본인들은 믿지 못하는 사람으로 들통나게 하는 거예요. 모든 인간들은 누굴 이용하려고 하지 자기를 버릴 생각을 못하는 거예요. 그중에 누가 있느냐 하면 바로 이스라엘도 그중 하나에요.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지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있다. 우리나라가 있어 줘야 하나님의 영이 선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선교사로 가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할 수 있으니까 하나님이 내 일 팍팍 도와주소서. 전부 다 생각이 그런 생각이에요. 그래서 이걸 다른 말로 해서 처음에 이야기했잖아요. 내 인생에 내가 손대고 관여하고 있는 겁니다. 부자 청년처럼. “내가 또 어떻게 해야 내가 영생을 확보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의한 정답은 이렇습니다. “손대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 남들이 와서 너의 것이라고 여겼던, 곧 나의 것이라고 여겼던 것을 다 뜯어갈 거야. 뜯어갈 때 어어, 내 것 왜 가져가나, 하지 말고 원래 남의 것이었어. 내 안에는 남의 것밖에 없지.” 아예 나 자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내 것이라는 것이 없어요.

왜냐하면 나는 언약을 위해서, 야곱 언약을 위해서 야곱은 죽은 자가 되어야 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죽은 자는 다 빼앗겨버린 상태가 죽은 자 죽은 상태에요. 빼앗겨 버린 상태. 오늘 오후에 어떤 분이 전화를 했어요. 아들이 군인인데 군대에서 백신 맞으라 했대요. 그런데 아들이 겁이 나서 백신을 못 맞았다는 겁니다. 겁이 나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없애주려고 지금 백신을 맞게 한 거예요. 없애주려고! 백신 맞아서 부작용 나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내 힘으로 죽을 수 없는 것을 죽여 주시잖아요. 그 절호의 찬스를 아들은 놓쳐버리고 백신을 떠나니라, 그렇게 된 거예요. 백신을 떠난 거예요. 백신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온 것은 너는 죽어야 돼, 아무것도 네 것은 없어, 네 목숨도 없는 거야, 그걸 알려주러 왔는데 그 이야기 듣고 에돔에 속한 사람, 하나님의 택함 받지 못한 사람, 천국 갈 운명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전부 다 엄마야 해서 겁이 나서 다 도망치고 마는 겁니다. 도망쳤어요. 떠나버린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을 요지부동 떠나지도 못하게 만들어놓고 다 빼앗아가요. 약탈당하는 거예요. 아들딸 다 포로 잡혀가고요. 여기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사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이 말은 뭐냐? 사거리가 길목이지요. 도망치는 탈출구인데 거기에 형제나라라 하는 에돔이 와서 고자질 다 해주는 거예요. “여기 이스라엘 몇 명 도망치고 있습니다. 빨리 와서 체포하세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운명은 본인이 살고자 하고 싶어도 하나님의 언약을 위해서 그들은 죽임을 당하고 다 빼앗기고 포로 잡히는 그 지경에 빠진 거예요. 이것이 바로 유일하게 하나님의 언약이 언약답게 되는 방식입니다. 다른 방식은 없어요.

오늘 설교의 결론을 딱 압축한다면 이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담겨 있는 영생, 부활의 운명은 예수님이 오실 때 오직 자기의 죽음만 남기기 위해서 온 것과 동일한 주체를 만드는 것, 그 사람만이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받을 사람입니다.

이 땅에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하나밖에 없는 통으로 짠 옷마저 로마 군병이 그게 뭐 돈 되는 거라고, 그게 뭐 명품인지 모르겠지만 “이왕에 저 사람이 죽는 거 죽으면 저 옷 버릴 건데 너 할래 나 할까,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로 정하지.” 해서 심지어 마지막 남은 옷까지 빼앗겨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알려준 이 세상은 바로 내 것이라는 사상으로 가득 차고 거기에 흘러넘치고 충만한 그 세상이 저주받을 세상이라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줬습니다. 그 예수님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예수님이 그럴 수밖에 없듯이 예수님에게 주신 언약과 동일한 언약이 온 사람은 예수님과 똑같은 처지에 이 땅에서 놓이게 되는 겁니다.

이 땅에 내 것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85인치짜리 TV도 이것은 내 것이 아니에요.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내가 내 것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것이라고 여겼던 것을 빼앗아가기 위한 85인치 TV. 세상에서 주어진 강아지나 고양이부터 해서 집도 그렇고 이 세상에서는 나는 오직 이렇게 뜯기고 저렇게 뜯기고 내 것이라는 것은 전혀 없고 다만 특수한 죽음, 언약을 증거하기 위해서 특수한 죽음만이 그동안 나를 나 되게 했다는 것.

이 특수한 죽음에 대해서 우리는 관여할 것도 없고 손댈 것도 없습니다. 손을 대도 남들이 나에게 손을 대고 내 것을 가져가도 내가 주는 법이 없고 남들이 와서 빼앗아가는 식으로 나로 하여금 특수한 죽음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날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난 결과였습니다. 야곱은 애초부터 죽어야 했던 거예요. 그러나 야곱의 죽음이 없으면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도 없듯이 그 야곱이라는 죽음 그것이 자기의 본래 모습이었습니다.

이 말은, 야곱 안에 예수님의 죽음이 야곱의 본래 모습이었던 거예요. 야곱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그 안에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이 언약의 주인공으로서 이미 복의 이름으로 야곱 안에 장착되었던 겁니다. 자기 안의 그리스도를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만남으로서 비로소 내 안에 다른 분이 계시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 다른 분의 이름이 이스라엘이었어요.

나중에 이스라엘이 나라가 되고 난 뒤에 이스라엘 본인이 이스라엘을 지키려고 그게 아까워서 버티려고 시도한 것, 하나님께서는 정확하게 언약대로 일하시면서 너는 있어도 없는 사람인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말갛게, 이스라엘의 모든 것 성전부터 해서 모든 백성들까지 전부 다 다른 나라 타인이 와서 다 빼앗기는 방식으로 진짜 말갛게 만들어서 이스라엘은 오직 죽은 야곱의 모습이 진짜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나서서 그걸 성공적으로 알려줄 때 그게 참된 이스라엘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모든 것을 빼앗긴 예수님부터 새로 시작해야 돼요. 이 말씀 드리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이야기는 항상 시작점부터 새로 시작하는 거예요. 시작점부터. 창세 전에 시작점부터. 창세 전에 예수 안에 누구는 천국가야 되고 누구는 지옥가야 되고 그 이야기, 그 이야기가 저와 여러분 안에서 지금 작렬하고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인생에 내가 관여하지 말게 하옵소서. 관여해봤자 실패인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내 안에는 다 남에게 뜯겨야 될 타인의 것뿐인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오직 나의 죽음과 주님의 죽음과 합세해 있는 그 죽음, 그것만이 영광의 부활과 이어진다는 것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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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0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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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7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6장 20절 (종말의 위엄) 210518b-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1-06-03
18,566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6장 20절 (종말의 위엄) 210518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1-06-03
열람 ➜ 자유게시판 5강-오바댜 1장 12-14절(특수한 죽음)210602-이 근호 목사 오바댜 최고관리자 21-06-03
18,564 자유게시판 대전-131강 마태복음28장1절(차이)20210531b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21-06-02
18,563 자유게시판 대전-69강 사무엘상 23장12절(역할)20210531a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21-06-02
18,562 자유게시판 85강-욥기 24장 22~25절(값치른 생명)210530 이근호 목사 욥기 최고관리자 21-05-30
18,561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선지자 / 210530 - 최고관리자 21-05-30
18,560 묻고답하기 인종과 문화 골로새서 최고관리자 21-05-30
18,559 자유게시판 광주강의20210528b 여호수아 22장 31절(함께 하심)-이 근호 목사 여호수아 최고관리자 21-05-30
18,558 자유게시판 광주강의20210528a 여호수아 22장 31절(함께 하심)-이 근호 목사 여호수아 최고관리자 21-05-30
18,557 자유게시판 4강-오바댜 1장 9-11절(깎이는 주체)210526-이 근호 목사 오바댜 최고관리자 21-05-27
18,556 강의 [21 대구강의] '창세기'속의 그리스도 28 - 연결된 몸통 창세기 최고관리자 21-05-26
18,555 자유게시판 안양20210513B슥6장12절(뭐지?)-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21-05-25
18,554 자유게시판 안양20210513A슥6장12절(뭐지?)-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21-05-25
18,553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 및 교재 안내 - 최고관리자 21-05-24
18,552 자유게시판 29강-골 3장 5-6절(세상이해)210523 - 이 근호 목사 골로새서 최고관리자 21-05-23
18,551 자유게시판 84강-욥기 24장 18~21절(눈동자)210523 이근호 목사 욥기 최고관리자 21-05-23
18,550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멸망을 전하는 사명 / 210523 - 최고관리자 21-05-23
18,549 묻고답하기 새 사람 골로새서 최고관리자 21-05-23
18,548 자유게시판 353강-YouTube강의(무저갱 요한계시록 9:2)20210518-이 근호 목사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21-05-19
18,547 자유게시판 352강-YouTube강의(자연 출애굽기 12:12)20210518-이 근호 목사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21-05-19
18,546 강의 유튜브강의(352강, 353강) 자연, 무저갱 210518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21-05-18
18,545 자유게시판 28강-골 3장 3-4절(영광의 바탕)210516 - 이 근호 목사 골로새서 최고관리자 21-05-16
18,544 자유게시판 83강-욥기 24장 13~17절(어두움의 한계)210516 이근호 목사 욥기 최고관리자 21-05-16
18,543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죽으면 죽으리라 / 210516 - 최고관리자 21-05-16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