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강의(352강, 353강) 자연, 무저갱 210518
352강-YouTube강의(자연 출애굽기 12:12)20210518-이 근호 목사
제352강, 제목은 ‘자연’. 자연이라 하면, 국민학교 때 지금은 초등학교 때 교실 앞에 보면 시간표가 나와 있어요. 국어, 산수, 사회, 그 다음에 자연 그리고 오후 시간에 보면 체육, 7교시에 미술, 이런 식으로 한 주의 시간표가 나와 있죠. 거기에 ‘자연’이라는 말이 나와요.
그게 나중에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과학’이라고 되어있죠. 그러니까 벌써 자연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교육과정이 더 높아지면서 과학과 관련되어 있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사람들이 자연에 대해서 뭘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우리 인간에게 유용하기 위해서 주어진 인간의 삶의 환경, 이걸 자연이라고 보는 겁니다.
인간 빼고, 인간들이 만든 인위적인 것 빼고 인간이 만들지도 않았는데 인간 눈앞에 펼쳐져있는 모든 것, 해와 달, 별, 산, 들, 사슴, 바이러스, 박테리아까지 전부다 그걸 자연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연이라는 말을, 만드신 분의 입장에서 자연을 보는 게 아니고 눈에 보이는, 그 자연을 보고 있는 인간 위주로 그 자연을 이해하는 겁니다. 이러한 취지는 자연을 누가 만들었든 자연이 저절로 생겼든 우리 인간은 모르겠고 다만 그것을 어떻게 인간사회의 생존에 유익이 되도록 쓸모 있도록 어떻게 법칙을 찾아내서 활용하느냐. 그 활용의 대상 또는 관리의 대상이 자연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인간들이 그걸 생각하면서 처음에 고대사회에서는 과학이 지금처럼 발달되지 않았을 때는 신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를 예의상 했죠. 이렇게 살 수 있도록 해주셔서 신에게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서 고기 얻기 위해서 사냥은 사냥대로 다 하죠, 아메리칸 인디언 같은 경우에.
신에게 찬미하고 심지어 들판의 들소까지 그 안에 정령이 있고 신이 있다고 하면서도 그 신을 잡아먹죠. 들소를 잡아먹고 들소라는 신에게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잡아먹혀서, 사냥감 되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라고 또 배려하고요. 그리고 인디언들은 죽어서 저 들소와 다를 바 없이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인디언뿐만 아니고 힌두교도 마찬가지고 여러 종교에서 그렇게 이야기해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인간이 보는 자연은 항상 인간 이익 중심이에요. 이런 인간들의 생각이 원래 자연을 만드신 분께 도발적이고, 그 뜻에 위배된다는 생각을 인간들은 못하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 신이 보이는 자연을 주신 것은 인간들이 그것을 이용해서 자기 목숨을 부지하라고 줬다, 라고 생각해버리면 주인공이 인간 자신이 되겠죠.
그런 마음가지고 성경을 보면서 성경에는 어떻게 나오지? 성경을 보면서 하는 말이, 우리가 안 봐도 아는 생각과 성경의 생각이 같네, 이렇게 정리가 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드셨다. 창세기 1장에 보니까. 딱 보니까 우리도 성경보기 전에 그렇게 생각했어. 왜 만들었을까? 제가 아까 얘기한 것처럼 사랑하는 인간들을 위해 잘 먹고 잘 살라고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성경을 보게 되면 자연을 누가 만들었다, 보다도 하나님께서 자연을 원래 목적대로 시행하면서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그 취지가 나타납니다. 그 취지에 대해서 일반 민족들, 이방민족들은 신이 만들었다 해도 그 신을 몰라요.
그러면 제대로 신을 아는 민족은 이스라엘이겠죠. 이스라엘에게 자연은 어떤 식으로 활용되느냐를 정리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자연을 만드신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겁니다. 출애굽기 7장에 보게 되면 아론과 모세가 애굽 나라에 나타났습니다.
애굽에 나타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애굽 바로 왕에게 이야기하죠. 나를 섬기는 민족을 내가 만들기 위해서 내 백성 찾으러 왔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먼저 줬고 그 약속대로 어떤 집단이 형성되는데 그 집단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특별히 선택받은 민족이 따로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현재 요셉의 자손인 그들이 애굽에 살고 있으니까 그들을 내 놓아라, 라고 모세를 통해서 바로 왕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자, 여기에서 자연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것을 통해서 애굽이라는 이방나라가 자연을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자연을 생각하는 것과 얼마나 반대가 되고 서로 대척관계에 있는지를 잘 보여줘요.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의도적으로 강퍅케 하십니다. 바로의 마음을 조작해서 갈수록 점점 완악케 해서 히브리인들을 내보낼 마음을 가질 수 없게 만들어요.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니까 일부러 그렇게 하신 겁니다.
재앙이 떨어졌는데 첫째 재앙이 뭐냐. 물이 피가 되는 재앙이에요. 물, 자연이죠. 두 번째 재앙이 개구리가 올라온다. 뭐 식탁에도 막 올라와요, 식탁에도. 개구리, 자연이죠. 세 번째가 티끌이 이가 된다. 먼지가 이가 돼요. 티끌, 이, 다 자연이죠. 네 번째가 파리가 가득해요. 파리, 날파리, 이것도 자연이죠. 다섯 번째 생축이 죽어요. 가축이 죽는다고요. 이것도 자연이죠.
그 생축에 독종, 사람과 짐승에게 아주 독한 그런 독종이 생깁니다. 종기가 난다든지, 진물이 난다든지. 역시 생축도 자연이죠. 그 다음에 일곱 번째 재앙이 우박을 내립니다. 하늘에서 갑자기 얼음이 막 떨어져요. 자연이죠. 여덟 번째가 메뚜기가 올라옵니다. 파리 올라오다가 메뚜기 올라오다가 바쁘게 되었죠. 아홉 번째가 뭐냐 하면 온 땅에 해가 빛을 잃어 깜깜하게 됩니다. 해까지 동원된 거예요.
그럼 이것은 뭘 뜻하느냐 하면 그동안 애굽 사람들이 자기가 자연을 통해서 얻을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 해를 신으로 섬겼고 메뚜기를 신으로 섬겼고 우박을 신으로 섬겼고 독종, 가축, 사람 다 신으로 섬겼고 파리를 신으로 섬겼고 티끌, 이 전부다 신으로 섬겼고 개구리, 신으로 섬겼고 물조차도 그들은 신으로 섬기면서 그들을 달래는 걸 목적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린 열 번째 재앙이 바로 사람을 직접 죽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리합시다. 자연은 왜 있는가. 하나님께서 자연을 왜 만들어놨느냐. 사람을 죽이려고 만드는 거예요, 사람을 죽이려고. 산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고 이미 죽었다고 규정된 자를 죽이는 거예요. 살았다고 할 것도 없는 인간들을 확실히 죽임으로써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있는, 너는 선악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할 때의 그 죽음이 농담이 아니고 실수한 게 아니고 명백하게 현실 그 자체인 것을 모든 자연을 총동원해서 알려주기 위해 자연이 있는 거예요.
뭐 자연과학, 사회, 산수, 그거 하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자연은. 이방민족들은 자연 속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전혀 자연에 대해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주신 이유는 그들의 신을 죽인 거예요. 자연 자체가 신이었어요. 그들의 신과 장자를 다 죽여버린 겁니다.
그것이 출애굽기 12장 12절에 나옵니다.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니리라” 그러니까 인간들이 신이라 하는 것은 신이 아니고 본인이 신이에요. 신인데 자연이 화내면 안 되잖아요. 우박내리고 하면 안 되잖아요. 신이라 이름 해서 달래주려고 하는 거예요.
진짜 신은 본인이 신이고 자기 잘 되기 위해서 주변을 활용하겠다는 것, 그게 고대 과학이었습니다. 지금은 노골적으로 신도 필요 없고 과학 믿지 않으면 미신이라 해서 인간의 지혜만 붙들고 살죠. 자연은 그런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봐주지 않고 심판해버립니다.
이하림gblayer('gblayer4', 'summerwood', '이하림', 'summerwood96@naver.com', '', '1', './program');(IP:124.♡.211.180)
21-05-19 05:56
353강-YouTube강의(무저갱 요한계시록 9:2)20210518-이 근호 목사
제353강, 제목은 ‘무저갱’. ‘갱(坑)’이라 하면 갱도, 우물 정도로 생각하면 되고 ‘무(無)’는 없을 무(無), ‘저(底)’는 바닥, 그래서 ‘바닥이 없는 우물’. 바닥이 없는 우물이라고 생각해보면 이 지구상에서는 그런 우물이 없어요. 바닥이 없으면 구멍이 뚫린 것이지, 우물이라고 할 게 없잖아요. 바닥없는 냄비, 이게 말이 됩니까? 아니죠. 뭐 담을 수가 없죠.
이 무저갱이라 하는 것이 바닥은 없어도 뚜껑은 있는 거예요. 바닥이 없는 무저갱의 특징은 이 세상과 구별되는, 이 세상 말고 다른 세계의 구조의 일부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그 무저갱에 뚜껑이 있다는 것은, 그 뚜껑이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영적 세계가 접촉되어 있는 출구, 입구 그렇게 보시면 되는데 이 출구, 입구가 아주 수상한 괴물들이 출몰하는 출입구가 되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9장 1절-2절에 보면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화재 났을 때 연기가 피어오르면 화재 현장에 연기가 자욱해서 못 보죠. 그러면 그 화재현장을 멀찍이 보는 사람들은 뭐라고 합니까? “저기 들어가면 안 돼. 저기 연기가 가득해서 뭐가 뭔지 모르겠어.”라고 하죠.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다섯째 천사는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천사이고요, 일을 하시는 천사. 천사가 나팔을 부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가 있어요. 별이 떨어졌다고 하니까 처음에 있던 자리가 저 하늘이었죠. 하늘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시는 곳, 거기 있던 별 하나가 뚝 떨어져서 저 바닥까지 내려왔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은 뭔가 귀신들의 오야봉, 두목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 열쇠를 받았는데 그 열쇠란 자기 졸개들, 부하들이 갇혀 있는 지하 감옥의 열쇠를 허락받았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무저갱은 바닥은 없는데 뚜껑은 있는 거예요. 이 뚜껑은 어디와 연결되었느냐 하면 바로 인간들 사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어요.
뚜껑을 딱 여니까 거기서 얼마나 많은 숫자의 악마 졸개들, 귀신들이 나오는지 자욱해요, 숫자가 너무 많아서. 숫자가 많다는 것은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에게 다 관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많은 숫자의 귀신들이 아주 제때를 만난 거예요.
마치 멕시코 교도소에 폭동이 일어나서 교도소가 무너져가지고 거기 안에 있던 문신 가득한 흉악범들이 신나서 온 멕시코시티 거리에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처럼, 댐이 터져서 물이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나와서 그들이 뭘 하느냐.
9장 4절에 보니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여기에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이니까 이 무저갱에 갇혀 있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 저주받은 거고 그 저주받은 괴물들, 많은 괴물들이 사람을 덮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을 하신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바로 이 세상이죠, 이 세상. 인간의 마음을 덮치는 거예요. 인간의 마음이 인간이 원하는 뜻대로 되는 게 아니고 덮치는 겁니다. 누가 덮치는 거예요. 그런데 누가 덮치느냐? 하나님 앞에 저주 받아야 합당한, 그래서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괴물들이 집단적으로 사람들을 덮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 사는 것을 고역스럽게, 세상 사는 것이 지옥처럼 느껴지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겁니다.
어느 정도로 괴로우냐. 6절에 보니까 “그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 죽어요. 자살하려고 하는데 밧줄이 끊어져서 죽는 것도 못 죽어. 차라리 혼자 눈 감고 죽으면 되는데 만약에 자기가 다치는 게 아니고 자식이 다쳐버리면 자식을 간호하기 위해서라도 자기는 죽고 싶어도 못 죽어요. 그 괴로운 상황. 차라리 ‘이건 현실이 아니야’라고 외치고 싶지만 눈 떠보면 자기에게 괴로운 현실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럼 이렇게 한번 정리해봅시다. 이 귀신들이 덮치기 전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이 아름다운 대자연 앞에서 그들은 행복을 추구했고 행복을 목표로 해서 삶을 살아왔었습니다. 질서 있는 자연, 항상 정한대로 모든 자연의 자리가 제대로 루틴(routine)하게 정상적으로 돌아갈 때 인간은 이 대자연을 고마워하면서 평화를 누리면서 행복에 대한 기대와 꿈과 희망에 부풀었겠죠.
살기 좋은 이 세상이 세상의 본질이고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거죠. 인간들은 잘 먹고 잘 살다 보니까 영적 세계에 대해서 몰라도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영적 세계란 하나님과 마귀가 현재 어떤 형편에 있는지, 그것이 영적 세계죠.
뭐 마귀가 어떻게 하나님께 사로잡혔든 하나님이 어떻게 했든 그건 모르겠고 지금 내가 소박하게 우리 가족과 더불어서 맛있는 저녁반찬을 준비해서 TV보면서 깔깔 웃으면서 서로 격려하면서 서로 위로하면서 ‘내가 너 지켜줄게. 사랑해줄게. 도와줄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이런 식으로 자식들에게 희망을 부여하는 이 가정. 자기의 기대에 부응하는 자식들을 보면 이게 얼마나 행복합니까. 메뚜기처럼 뒤에서 귀신이 달라붙을 줄은 상상도 못했죠.
그만큼 인간들은 영적 세계를 떼놓으면 살아가는 게 바보 같아. 무지몽매할 수밖에 없어요. 요한계시록 9장에 분명히 나오잖아요. 세상의 모든 전쟁, 그리고 모든 죽음. 이 세상은 사람만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사람들끼리, 집에 있는 강아지만 있는 세상이 아니에요. 왜 강아지 있는 것만 보고 고양이 있는 것만 보고 악마가 자기 등짝에 달라붙어 있는 건 안 봐요?
인간의 마음이라 하는 것은 욕망에 허덕입니다. 어느 정도 행복하다고 만족하고 그것으로 됐다 할 수 있는 인간의 마음이 아니에요. 인간의 마음은, 내 마음 나도 몰라. 귀신이 메뚜기처럼 낙지처럼 달라붙었는데 지 마음 지가 마음대로 못하죠. 자기 마음이 자기 마음대로 안 됩니다. 어떤 격분과 분노가 일어날 사태가 벌어질지 그것은 인간 소관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적 세계를 개입해서 이 세상을 봐야 돼요. 식사 앞두고 가족들끼리 웃었습니까? 화목합니까? 이것은 정말 하나님께서 많이 봐준 걸로 알아서 하나님께 감사하면 돼요.
뭐 당연히 누릴 행복이라는 그런 시건방진 생각하지 말고 ‘이게 웬 횡재야. 참 귀신이 설쳐대고 악마가 설쳐대는 이러한 악한 세상에서 이렇게 작은 다복한 시간을 주셨사오니 주여 이 시간도 참 귀합니다.’ 라고 모든 범사의 일에 주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무저갱 뚜껑 열린 상태에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 인 맞지 않은 자들은 영적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평생토록 귀신한테 시달리다가 결국은 귀신이 있는 유황불, 지옥불에 들어가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