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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강-오바댜 1장 1절(칸막이)210505-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오바댜

1강-오바댜 1장 1절(칸막이)210505-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오바댜 1장 1절입니다.

오바댜 1:1

“오바댜의 묵시라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소식을 들었나니 곧 사자가 열국 중에 보내심을 받고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날찌어다 우리가 일어나서 그로 더불어 싸우자 하는 것이니라.”

성경에 에돔에 대해서 예언한 것인데 에돔이라는 나라가 딱 등장하게 되면 오늘날 우리 입장에서는 이렇습니다. 이 에돔이라는 것과 더불어서 나는 어디에 속하는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잠시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에돔은 옛날에 있었던 나라고요, 지금은 우리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잖아요. 그러면 에돔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선뜻 와닿지 않는 거예요.

에돔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면 지금의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라는 것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느낌일 겁니다. 에돔과 우리가 상관없다면 상관없는 나라 이야기가 왜 이렇게 성경에 나와 있을까? 왜 하나님께서는 오바댜라는 선지자를 통해서 에돔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왜 언급을 하셨을까? 좀 궁리가 필요하겠지요.

이 선지자는 원래 이스라엘에 대해서 예언하는 것으로 상식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에돔에 관한 이야기가 될 때에 그러면 우리는 이스라엘만 알면 되는데 에돔까지 알아야 된다면 숙제가 너무 많은 듯한 느낌, 구원받는데 알아야 될 요소가 또 하나 추가되어서 살짝 부담이 되지요.

그런데 에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미 이스라엘이 망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BC 586년에 남쪽의 유다가 망해요. 물론 북이스라엘도 기원전 722년에 망하고요. 이렇게 이스라엘이 망했기 때문에 에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마감되는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이미 나라가 망했으면 망한 나라기 때문에 나라가 없는 거지요. 나라가 없으면 그 나라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 없고요. 도리어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가야 돼요.

우리나라가 왜 망했을까, 이스라엘이 왜 망했을까, 라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처음에 이스라엘은 왜 생겨났지? 어디서부터 생겨났지? 처음에 이스라엘이 되게 된 그 원칙이 뭐였길래 지금에 와서 이스라엘이 망해버렸는가?’라고 오히려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서 이스라엘이 처음에 생겼던 그 원천을 돌아봐야 됩니다.

망했다는 것 이것은 종말이지요. 끝 지점, 종말이 되게 되면 매일같이 종말이기 때문에 끝, 끝, 끝, 오늘도 끝, 내일도 끝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동일한 상황, 심판의 기간이 초래되게 만든 처음 자리가 어떠했기에 이제 와서 파멸이냐?’ 도리어 처음 자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망했다, 할 때 우리가 이스라엘과 우리를 동일시하잖아요. 이스라엘이 망했다는 것은 곧 우리가 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가 망했구나, 그것을 서글퍼 할 것이 아니라 망하는 그것을 통해서 다시 한번 이스라엘이 뭐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뭐고, 왜 하나님은 자기의 택한 민족을 만들어놓고 하나님에 의해서 그걸 뭉개버리느냐, 도대체 하나님이 일하시는 그 일관성 원칙이 무엇인가를 아는 그러한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오바댜 선지자를 통해서 에돔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은, 이 이스라엘과 에돔나라가 원래 한 부모에서 나왔거든요. 숫자로 하면 1에서 나온 거예요. 1인데 이게 쌍둥이가 나온 겁니다. 창세기 25장에 보면 이삭의 부인 리브가가 아기를 못 낳았는데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계시가 있어서 불임여성 리브가에게 자식을 줍니다.

자식을 줄 때 쌍둥이로 줘버려요. 약속의 자식이 하나이어야 하거든요. 그걸 장자라 해요. 상뚱이를 줬다는 말은, 하나이어야 하는데 둘이 나왔다는 말은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둘 다 장자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야곱도 아니고 에서도 아니고 둘 다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절차가 필요하냐 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자손은 하나이어야 하는데, 여자의 후손은 하나이어야 하는데 그 하나가 나오지 않고 둘이 나왔다는 것은 그 둘의 사이에서 하나가, 제 삼의 영역에서, 그들의 관계 속에서 없었던 하나가 나온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쌍둥이를 낳게 한 거예요.

둘이 우당탕탕하는 가운데서, 싸우는 가운데서 제3의 요소가 진정 하나님의 자식 하나님의 메시아로 오시는 겁니다. 만화영화 보면 그런 것 있지요. 약삭빠른 고양이하고 어리석은 개 두 마리가 집에 있는데 맛있는 고기를 가지고 개 두 마리가 서로 먹겠다고 싸우다가 서로 상처 입고 뻗어 있을 때 제3의 인물 고양이가 가서 ‘많이 싸웠냐? 너희 지쳐서 헉헉거릴 때 이것은 내가 가져간다.’ 하고 그걸 가져가는 것처럼, 고양이가 그 맛있는 음식을 가져가는 것처럼 둘은 헛수고 한 겁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메시아 됨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두 자식의 헛된 싸움이 벌어져야 돼요. 다퉈줘야 됩니다. 다툼 속에서 ‘둘 다 아니다’가 정립이 되는 겁니다. 둘 다 아니라는 말은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메시아가 될 수 없다, 그것이 확인되어야 됩니다. 둘 다. 야곱도 마찬가지고 에서도 마찬가지고, 둘 다 하나님의 약속을 담아내는, 그걸 어려운 말로 ‘담지’라 하는데, 그걸 담을 수 있는 위인은 이 땅에 태어난 인간 가운데에서는 애초부터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오바댜는 어떤 경우냐 하면, 이스라엘이 망해요. 이미 이스라엘이 망했습니다. 망하고 이스라엘이 망하는 것과 연동해서 누가 망하느냐? 야곱의 형의 나라가 세운 나라가 에돔이거든요. 에서가 조상이고 그 후손의 나라가 에돔이고, 둘 다 붉다는, 벌겋다는 뜻이에요. 이 나라도 연동해서 같이 망합니다. 이스라엘 망하고 난 뒤에 같이 망하거든요.

같이 망하면서 이스라엘 망하는데 굳이 에돔나라의 멸망에 대해서 이렇게 하나의 계시에 합류될 정도로 왜 언급을 해야 되느냐 하면, 제3의 요소, 메시아가 오는데 있어서 옛날에 에서가 야곱이 장자 되는데 기여 한 바가 있어요.

옛날 처음에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권을 받았을 때 그걸 자식에게 줘야 되는데 하나같으면 그냥 아무 일 없이 넘겨주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쌍둥이가 태어났다는 말이지요. 그 쌍둥이가 날 때부터 서로 싸웠잖아요. 싸우기 위해서 둘이 등장한 거예요. 2가 된 거예요. 하나 같으면 싸울 일이 없는데 싸움을 유발시키기 위해서 2가 된 거예요. 서로서로 장자가 되고, 서로서로 섬김을 받는 자가 되고, 서로서로 안 섬기는 자가 되려고 싸웠던 겁니다.

싸웠을 때 야곱에게 결국 아버지 이삭의 축복권이 넘어가는 데 있어서 이 형 에서가 했던 그 행동이 있어요. 야곱으로 하여금 축복권이 넘어가는데 기여했던 에서의 성격, 성질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에서가 자기의 장자권의 값어치를 업수이여기고 배고프다고 팥죽 받아먹고 팔아버린 아주 도발적인, 도발적으로 언약을 업수이여겼던, 가볍게 여겼던 그러한 일을 에서가 했습니다.

거기에 반해서 야곱은 그 하나님의 축복권을 소중하게 여겼던 거예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이렇게 하면 쉽습니다. 약속의 자식은 하나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자식을 둘 줬거든요. 그러면 둘 사이에 하나의 칸막이가 있다고 봅시다. 칸막이가 있는데, 칸막이라는 말이 어려우면 그냥 박스, 상자 두 개가 있다고 칩시다.

한쪽에는 축복을 받는 상자, 나머지 한쪽은 저주받는 상자, 이렇게 두 개를 마련해 준 거예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거기에 그 성격에 대해서 언급했어요. 둘이 싸울 것이다, 라고 했어요. 그리고 큰 자가 어린자를 섬긴다고 되어 있어요.

그 대목을 제가 읽어드리면 창세기 25장 23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상자가 있어요. 두 박스가 있다는 말이지요.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그러니까 두 박스가 있는데 그 박스 가운데 한쪽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된답니다. 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깁니다. 서로 칸막이가 되어 있으니까 단일박스는 아니에요. 분명히 두 개입니다. 나누어졌어요. 이 나뉜 것이 통합될 수는 없는 거예요. 분명히 나뉘어지는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고 되어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이 조건만 딱 들어서 큰 자 될래요, 작은 자 될래요, 라는 질문이 성립되는 겁니다. “큰 자 되어서 어린 자를 섬길 것입니까, 아니면 어린 자 되어서 큰 자를 섬길 것입니까?”라는 그러한 난해한 선택이 이 쌍둥이에게 주어진 겁니다.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에요.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되어 있으니까 “두 민족 가운데 강한 민족이 되겠습니까, 약한 민족이 되겠습니까?”라고 또 첫 번째 질문이 있겠지요.

두 번째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 그러면 첫 번째 질문부터 다시 해보겠습니다. “강한 민족이 되고 싶습니까, 약한 민족이 되고 싶습니까?” 에서와 야곱한테는 이렇게 되지요. “강한 민족의 조상이 되고 싶습니까, 약한 민족의 조상이 되고 싶습니까?” 물으면 그 누구도 약한 민족 되고 싶은 사람 없지요.

그런데 창세기 25장 23절의 이야기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물을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에서와 야곱이 나이가 한 스무 살쯤 되어서 둘을 불러서 “너희는 두 민족의 조상으로 각각 나뉘어질 것인데, 절대로 하나로 일치되지는 않고 반드시 나뉘어진다. 에서 너 몇 살이야?” “스무 살입니다.” “그러면 야곱 너는 몇 살이야?” “쌍둥이니 당연히 스무살이지요. 아버지, 딱 보면 모르겠습니까?” “아이고, 내가 착각했구나. 그래 스무 살. 너희에게 묻는다. 너희는 큰 민족의 조상이 되고 싶어, 작은 민족의 조상이 되고 싶어?”

이렇게 물으면 저요, 저요, 손 들거예요. 그러면 “너 에서가 답해 봐라.” “큰 자요” “그러면 야곱 너는?” “저도 큰 자요.” “그래?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한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고 되어 있는데 그러면 그래도 큰 자가 되고 싶어, 작은 자가 되고 싶어?” 그러면 “아버지, 어찌 그런 반전을 준비해두셨습니까?” 이렇게 되겠지요.

이 질문은 제가 꾸민 거고요. 문제는 둘 다 그렇게 물을 대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왜? 갓난 아이기 때문에.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주어진 결정적 운명이기 때문에. 이미 19세, 20세 되어서 묻는 게 아니에요. 어느 것 할래,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제가 어제 강남강의에서 그런 이야기 했거든요. 하나님이 선택했다는 것은 일체 우리 쪽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거예요. 그렇다면 에서와 야곱은 이런 결론에 도달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제3의 인물 다시 말해서 큰 자로 오셔서 어린 자를 섬김으로 말미암아 두 가지 조건을 다 실현해내시고, 그걸 구현해내시고 결국에는 큰 자가 되시는 그 분의 이 땅의 오심의 모습을 앞당겨서 이 두 쌍둥이의 일대기를 통해서 보여주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은 뭘 뜻하느냐 하면, 에서와 야곱사이에 이런 지상적인, 수평적인 칸막이는 나중에 제3의 인물, 수직적인 칸막이가 오게 되면 수평적인 칸막이 이것은 유효기간이 끝나버려요. 임시 칸막이에요. 둘 다 똑같은 신세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바댜 선지자는 이스라엘도 망하고 에돔도 망한다 합니다. 쌍둥이에 의해서 생겨버린 그 두 민족은 둘 다 동일하게 망해야 마땅한 민족으로 들통납니다.

둘 동일하게 망한다면 그들의 차이성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냐, 하지만 없었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야곱과 에서 두 사람 사이에서 제3의 인물로 그 싸움 가운데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끄집어내거든요. 그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에 있어서 이 맏이 에서가 했던 그러한 태도 그 태도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 세상에 출현하는 계기가 되는 겁니다.

여기까지 따라오신다고 애쓰셨습니다. 조금 더 따라 오셔야 돼요. 그렇다면 여기 지금 오바댜 선지자의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은 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망했으면 이스라엘에게 영원히 축복한다는 그 하나님의 예언은 무효가 되는가? 아닙니다. 무너진 이스라엘 속에서 진짜 완성된 하나님의 원했던 완벽한 이스라엘 되는데 있어서 이 에돔의 속성이 기여해야 돼요. 에돔의 속성.

처음에 야곱에게 했던 그 에서의 행동이 지금 이스라엘이 망해버린 이 시점에서, 망한 이스라엘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완벽한 이스라엘을 끄집어내느냐에 대해서 처음에 있었던 그 에서가 했던 부정적인 태도가 꼭 필요한 거예요. 오바댜 제일 마지막에 보게 되면, 19절에 “남방 사람은 에서의 산을 얻을 것이며 평지 사람은 블레셋을 얻을 것이요.”

에서의 산, 에돔이지요. 에돔지역을 도로 다시 찾게 된다는 겁니다. 이럴 때 오바댜의 예언은 이것을 끝이 나요. 이스라엘은 완벽하게 드디어 완전히 만들어진다. 끝. 만들어지는데 어떻게 만들어지느냐 하면, 저주받았던 에돔의 자리를 이스라엘 사람으로 채움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완전하게 이 세상에 완성된 국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민족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저주받았던 그 자리가 바로 축복받아야 될 사람의 차지가 되는 겁니다. 그들의 통치를 받는, 즉 그들이 지배하는 그런 결과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바댜 1장 1절부터 끝 절까지의 내용은, 창세기 25장 23절에 나오는 두 운명이 서로 싸운다 나뉜다, 이 민족이 저 민족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 이 예언이 하나님에 의해서, 제3의 인물에 의해서 그대로 실현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예요. 오바댜가.

자 그렇다면 여기서 이야기를 더 이어가면 그러면 에서는 야곱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 어떤 짓을 했는가? 우선 제가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에서와 야곱이라는 칸막이는 나중에 무효가 된다고 했어요. 자기들끼리 장자가 되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우는 그 구분 있잖아요. 구분 지어짐.

큰 자 어린 자, 강한 자 약한 자, 섬김을 받는 자 섬기는 자, 이러한 구분이 이게 인간이 손을 타게 되면, 인간이 거기에 대해서 기대를 하고 목적을 두게 되면 그 사실로 인하여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 안에서 거짓말이 되어버려요. 그 칸막이가 소실되어 버려요.

하나의 좀 억지스러운 예입니다만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받은 윤여정 그 배우가 5월이 되면 한국에 온다는 겁니다. 인천공항으로 귀국해서 트로피를 딱 들어 올리는 순간 이 트로피가 없어졌어요. 분명히 손에 쥐었는데 이게 없어져 버린 거예요. 좀 억지 같은 예지만 분명히 있었는데 없어졌어요. 허망하고 거짓된 것이었어요.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의 손을 타게 되면, 인간이 손을 대면 이게 다 사라지는 겁니다. 그 경과 그 절차에 대해서 야곱이 개입한 사람이에요. 야곱은 거짓말을 해서 아버지로부터 축복권을 받아냈습니다. 여기서 거짓말이 중요한 거예요. 그러면 거짓말로 받아낸 게 축복권이었다는 말이지요. 축복권을 받아낸 순간 야곱 자기는 복 받은 줄 알았고 반대로 에서는 저주받은 줄 알았어요. 그게 창세기 27장에 나옵니다.

이 말씀을 천천히 읽을 테니 여러분이 잘 들으셔야 돼요. 지금 아버지 이삭이 야곱에게, 복을 따냈다고 자부하는 야곱에게 일방적으로 복을 다 퍼부어주면서 그 복의 내용에 대해서 하나님의 계시 받는 대로, 그냥 하나님이 이야기하는 대로 아버지가 야곱에게 전달하는 그 장면입니다.

창세기 27장 29절에 보면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만민이 너를 섬기고 할 때 여기서 ‘너’라고 할 때 아버지가 야곱보고 너라고 하니까 야곱이 얼마나 기분 좋았겠습니까? 거기서 말하는 너라는 것은 ‘야곱 바로 나를 두고 이야기한다.’고 했겠지요.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야, 세상의 만국이 이 야곱의 나라, 내가 조상이 되는 그 내 후손의 나라에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여기서 살짝 뭔가 핀트가 안 맞지요. 왜냐하면 야곱의 형제는 여러 명이 아니고 달랑 쌍둥이 가 되는 에서 하나밖에 없어요.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한다.” 이것은 야곱한테 해당이 안 됩니다.

왜? 야곱은 형제가 하나밖에 없어요. 어미의 아들들이니까 형제들이지요. 그런데 야곱은 형제들이 아니고 형 하나밖에 없어요. 자기한테 해당이 안 되는 겁니다. 자기한테 해당이 안 되면 이것은 누구에게 해당되느냐? 이것은 요셉에게 해당되는 거예요. 요셉의 형제가 무려 열 한 명입니다.

야곱은 자기에게 내려진 복이라고 여겼는데 그 복이 패스가 된 거예요. 나를 지나가서, 그때는 야곱이 요셉을 안 낳았으니 요셉을 모르지요. 그냥 하여튼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이 복의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야곱은, 왜 나는 아니냐, ‘지금 형을 이긴다. 형을 다스린다.’ 이러면 될 것인데 왜 나는 아니어야 하느냐, 는 말입니다.

그것은 창세기 27장 지나가 창세기 32장에 보게 되면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나요. 하나님을 만나고 형을 만났게 됩니다. 그 전에 야곱이 아버지도 속이고 형도 속였어요. 형은 팥죽 가지고 속이고 아버지는 거짓말로 속였잖아요. 형에게는 맞춤 거짓말을 했어요. 형이 팥죽만 보면 정신이 나가서 지금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고 팥죽! 팥죽! 팥죽! 팥죽에 미친다는 것을 그 사전정보를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맞춤공략을 한 거예요. 딱 맞춰서 공략을 한 겁니다. ‘너는 걸려들었어.’

그렇게 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내가 바로 장자가 되는 거예요. 아버지가 준 그 복의 예언이 있으니까 그 예언의 주인공이 나이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같은 인간인 아버지, 같은 인간인 형을 속이는 그 속임수가 얍복강에서 밤에 어떤 분을 만났는데 그분한테는 전혀 통하지를 않는 거예요.

자, 거짓말도 통하지 않고 맞춤공략도 통하지 않는다면 그러면 그분은 뭐냐? 그분은 진실이었습니다. 그분이 진실이라면 진실과 맞상대해서 싸우려고 했던 나는 자동적으로 거짓이 되는 거예요. 야곱은 거짓말을 한 정도가 아니고 야곱자체가 거짓이었다는 겁니다.

같은 인간들끼리 누가누가 잘하나, 하는 그런 게임을 하나님께서 벌인 것이 아니고 칸막이가 어디 있느냐 하면, 인간 대 인간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과 땅 사이에 칸막이가 쳐져 있었던 거예요.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바로 죽어야 마땅하고 저주받아야 마땅한 거짓된 존재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진실된 분이 이 거짓된 세상에 찾아오는 절차가 바로 리브가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였던 겁니다.

오늘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에 대해서 그 실제에 대해서 제가 미리 말씀드릴게요. 흔히 저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돌아서면 또 질문하고 돌아서면 또 질문하는 게 뭐냐 하면, “목사님,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그거거든요. 오늘 정리해서 이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백 원 안 받겠습니다. 안 받고 그냥 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 3장 12절에서 세례요한이 하는 말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다시 한번 읽을게요. 11절 후반부부터 보면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깨끗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박스가 두 개예요. 상자가 두 개예요.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도록 지옥 불이라는 상자를 또 만든 거예요. 그러면 신앙인은 세상에 나가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합니까, 라고 한다면 어떤 경우라도 타작마당을 생각하면 돼요. 햄버거 세트 주문할 때 타작마당을 생각하세요. 그리고 사돈하고 상견례 할 때 타작마당을 생각하면 돼요. 야구장에 가서 관람하면서 타작마당을 생각하세요.

야구 보면서 ‘어떤 이는 알곡이고 어떤 이는 지옥 불에 간다.’ 이걸 도서관에 가든지, 영화관에 가든지, 야구장에 가든지, 외국에 나가 여행을 하든지, 햄버거를 먹든지, 탕수육을 먹든지, 맘에 드는 아가씨한테 전화해서 데이트 신청할 때도 “아가씨 오늘 잠깐 만날까요 오늘부터 사귀기로 합시다.” 어디에서? 타작마당에서.

모든 행동과 생각에 항상 타작마당을 깔아놓고 하는 것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타작마당을 깔아놓고 하는 거예요. 누가 그 상자에 들어가는가? 누가 그 상자에 들어갑니까? 야곱처럼 진즉에 자기가 거짓이라는 것을 체험하고 뭉개져 버리는 것. 자기가 멸망 당해야 하기에 멸망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수용하는 자가 바로 천국이라는 박스에 들어가는 사람이에요. 왜? 그게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야곱과 에서의 차이점이 뭐냐?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무참하게 깨져버렸어요. 자기가 죽어버렸어요. 그래서 자기가 죽었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 죽을 자가 형을 속였고 죽을 자가 아버지를 속여서 뭐가 된 양 뭐가 대단한 양 착각을 한 겁니다.

이 착각이 밤에 하나님 만나서 다 무너졌습니다. 칸막이, 내가 여기 있고 내가 주인공이고, 저쪽에 내 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쪽저쪽의 지상적인 칸막이가 아니라 수직적인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적이 된다는 것, 원수가 된다는 이 사실을 야곱은 하나님 만나고 난 뒤에 비로소 알게 된 겁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5장 6절에 예수님을 표현하면서 이렇게 했어요.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찍 죽임을 당한 자에요. 일찍 죽임을 당한 자라는 말은 뭐냐? 미리 죽음을 당한 자. 누구한테? 아버지한테, 자기 아버지한테 미리 죽음을 당한 자.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이 세상에 들어왔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아들이지만 아버지께 버림받는 그 영토에 들어왔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버림받으신 거예요.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그 예수님의 체험을 공통체험으로, 공동기억으로서 안에 들어온 사람이에요. 나는 뭘 해도 이게 거짓이라는 사실을 아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진즉에 야곱처럼 체험을 당한 사람 이런 사람은 칸막이가 옆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아래위로 있다는 거예요. 옆이 아니라 아래위로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야곱은 알았습니다.

그러면 에서는 뭐냐? 에서는 민수기 20장 14절에서 20절까지 길게 나오는데 짧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야곱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나라가 되었잖아요. 애굽에 갔다가 나오면서 이스라엘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가는 와중에, 그 통과하는 길에 무슨 땅이 있느냐 하면, 에돔땅이 있어요. 에서의 후손들의 땅이 있다는 말이지요.

원래 에서의 땅이 지금 이스라엘의 남쪽에 있어요. 시내산 그쪽에 있다는 말입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그 중간에 에돔땅이 있어요. 바위가 많은 그 땅입니다. 14절에 “모세가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며” 부탁했어요. “우리는 당신의 형제잖아. 우리 조상이 쌍둥이였잖아요.”

DNA가 비슷하다는 그런 뜻이지요. “우리가 쌍둥이 형제의 후손이 맞는데 지금 이스라엘 우리가 애굽에서 고난 당해서 죽을 고생하면서 하나님이 약속한 그 땅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 지름길로 통과하게 해달라”고 당신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지요.

17절에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 지나가지 아니하고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고 당신의 지경에서 나가기까지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이다” 하면서 좀 통과를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했을 때 그 에돔이 아주 차갑게 이스라엘이 자기 길 통과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이건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의도한 거예요. 수모를 당해보라는 거예요. 옛날 야곱과 에서의 그 칸막이, 인간들이 이해하는 야곱과 에서 사이에는 칸막이가 있다고 생각했던 그 인간들의 수준에서는 야곱이나 에서나 위에서 보면 전부 다 단일화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계시가 딱 떨어지니까 사람들은 자기 개성, 자기 영토, 자기를 지킬 정당성, 자기 영역을 확보하는 거예요. 그렇게 확보해서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당신 땅 지금 탐내는 것이 아니고 그냥 지나가게만 해달라.” 하고 부탁한 거예요. 그런데 “어딜 감히 내 땅에 쳐들어와?” 이렇게 된 거예요. 이스라엘 입장은 이렇습니다. “네 땅은 원래 없어. 우리는 이미 경험했어.” 우리의 땅은 하늘에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에요. 그것은 이스라엘만 알고 있어요. 다른 민족은 몰라요. 다른 민족은 자기만의 개성과 자기 나와바리, 자기 영역, 그것이 자기의 가치, 자기 의미의 전부에요.

이 민족이 저 민족과 싸우겠다, 하니까 이건 뭐 누가 봐도 이 세상에 어떤 특정 민족이 있는데 그 민족이 다른 민족과 싸운다, 그렇게 될 거잖아요. 어떻게 이민족 저 민족이 전부 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망할 민족이라는 것을 누가 거기서 해석을 해내겠습니까?

두 국민이 싸운다, 할 때 괜찮은 국민이 있고 나쁜 국민이 있고, 그렇게 생각하지요. 누구나 이 국민이나 저 국민이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똑같다고, 칸막이가 옆으로 쳐 있다고 생각하지 누가 위에서 아래로 칸막이가 쳐지면서 모든 나라가 단일화된다는 것을 누가 생각했겠어요? 생각 못했지요. 할 수가 없지요. 그러나 이스라엘은 안 겁니다.

아, 애굽나라를 하나님께서 치신다는 것, 애굽나라만 치시는 것이 아니고 이제 또 치기 위해서, 약속의 땅에 있는 모든 민족을 또 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땅이 없는 민족을 가지고 땅을 가졌다고 여기는 모든 민족을 하나님이 심판해버리는 거예요. 이게 바로 타작마당이에요. 쭉정이들입니다. 인간 세상 전체가!

그러면 오늘 오바댜 1장 1절에 나오는 내용은 뭐냐? “오바댜의 묵시라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소식을 들었나니 곧 사자가 나라들 가운데에 보내심을 받고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날지어다 우리가 일어나서 그와 싸우자 하는 것이니라.”

이게 뭐냐 하면, 주변에 있는 많은 열국들이 에돔을 향하여 “야, 저 에돔나라 치자.”라고 하나님의 천사에 의해서 부추김을 받는다는 그 예언의 내용입니다. 에돔은 에돔땅 여기까지는 우리 땅이고 다른 곳은 너희 땅이다, 라고 구분 지었잖아요. 그 구분 지음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고 망해버린다는 거예요. 노리고 친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이스라엘을 학대했던 에돔의 이 더러운 부정적 성깔은 이스라엘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스라엘이 망하기를 바랐던 그 에돔의 심성은 어디로 흡수 통합되는가? 그것이 바로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에돔나라가 흡수 통합됩니다.

그러면 이 모든 세계는, 220여 국가의 모든 세계는 어디로 통합되는가? 바벨론이라는 한 제국으로 하나님 앞에서 이미 통합된 민족으로 보는 거예요. 요한계시록에 의해서 전 세계는 단 하나라밖에 없어요. 이름은 바벨론. 그들의 성격은 더러운 음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공격하고 하나님과 언약 맺어진 이스라엘,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를 끊고자 하는, 시편 2편에 나오는 말씀이지요, 그 기름 부은 자를 끊고자 하는 에돔의 속성을 그대로 빼다 박은 그 하나로 전 세계가 통일되어 있다는 사실이 오바댜 1장 1절에 담겨 있는 예언의 내용입니다.

이 세상의 개성이라든지 특징이라든지 이것 없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는 전부 다 무너질 칸막이만 어설프고 걸쳐놓고 여기서 여기까지는 내 땅, 거기는 네 땅, 이러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자기 것밖에 모르는 그 세계에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일부러 보냅니다. 부딪히게 해요.

마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이 땅 인간들을 피해 가는 것이 아니고 의도적으로 부딪혀야 되듯이 그리고 애굽에서 나왔던 이스라엘이 그냥 알아서 돌아가면 될 텐데 의도적으로 에돔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도록 하나님께서 몰아붙인 그 깊은 뜻을 우리가 헤아려야 돼요.

신앙생활은 뭐냐? 산에 가서 도 닦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야구장에 가는 거예요. 나이트 클럽은 좀 그렇다만, 세상 살아가는 그대로 그냥 시장 한복판에, 그리고 목욕탕에도 가고 그렇게 가는 겁니다. 부딪히는 거예요. 그리고 그곳이 왜 타작마당인가를, 왜 저들이 알곡이고 저들은……, 물론 알곡은 거의 없습니다만 왜 저게 알곡인지, 왜 저게 쓰레기인지, 찌꺼기에 불과한 것인지, 지옥 불에 들어갈 사람인지 그 구분을 하게 합니다.

잘나서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진즉에 내가 거짓되며 내세울 것 아무것도 없는 그러한 하나님의 원수인 것을 십자가를 통해서 미리 안 사람, 그 사람만이 하나님의 오늘날 완전한 이스라엘입니다. 야곱처럼 자기가 잘났다고 했더니만 야곱 자체가, 이것은 에서나 야곱이나 똑같고 중요한 것은, 야곱과 에서가 둘이 싸우는 것 이것은 의미 없고요, 누가 잘났나 못났나 이것은 의미 없고, 오직 하나님의 진짜 이스라엘 예수님, 예수님만 드러내는 자가 오늘날 알곡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그 힘든 세상살이, 그래서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인 우리를 의도적으로 그곳을 통과하게 하시는 겁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건방진 에돔 그리고 잘난체 하는 야곱이 먼저 하나님 앞에 깨졌습니다. 그러나 건방진 것도 모르고 거짓된 것도 모르고 자기 영역 따로 챙기면서 잘 되리라 여겼던 그 에서가 도리어 저주받을 민족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십자가를 날마다 일깨워서 진짜 진실한 분은 주님밖에 없고 우리는 아님을 날마다 감사히 즐거이 고백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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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0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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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