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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80강-욥기 23장 1~9절(나를 때려라)210425 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욥기

80강-욥기 23장 1~9절(나를 때려라)210425 이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욥기 23장 1~9절입니다. 구약성경 783페이지입니다.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오늘도 혹독히 원망하니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중함이니라,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 그리하면 그 보좌 앞에 나아가서, 그 앞에서 호소하며 변백할 말을 입에 채우고,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고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리라,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로 더불어 다투실까 아니라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거기서는 정직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영히 벗어나리라,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욥이 하는 이 이야기가 제대로 하나님을 모르고 제대로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그 내부 모습을 내부 상황을 감사하게도 욥이 대신 우리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고 있죠. 억울하다 이 말이죠. 내가 잘났다는 것을 주변에서 안 알아줄 때 나는 육체 고통 못지않게 그 고통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러한 난관에서 내가 해결할 것은 딱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뭐냐 하면 하나님을 만나서 이런저런 사정을, 이 된 일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렇게 억울하고 저렇게 억울한데, 하나님, 나를 억울하게 하는 저들이 나쁩니까 아니면 내가 나쁩니까’라고 최종 판정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제 나름 조건은 내가 이렇게 억울하게 됐다는 내 변론을 들어주시고 내가 나를 변호할 수 있는 그 권리를 하나님께서 앞에서 다 사용해서 공정하신 하나님께서 누가 더 나쁜 자인지 정직한 자인지 심판하게 해달라고 7절에 나옵니다.

그래서 뭐 이건 욥이 생각하기에는 게임 끝났습니다. 정말 이거는 나는 참으로 정직합니다. 따라서 주께서 심판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선 내 친구들에게 분명히 욥은 죄가 없고 욥을 비난한 네가 죄가 있다고 해줄 때 욥은 상상합니다. “내가 심판자에서 영영히 벗어나리라” 내가 이 저주에서 벗어나 ‘야호’라고 할 때 얼마나 그게 신나겠습니까.

그러고 싶은데 8~9절에 보면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라고 나옵니다. 그래서 답답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말을 압축을 해보면 하나님 나타나 주세요. 내가 이야기 할 수 있게.

그러면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하나님을 좋아하는지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순순하게 살려고 애를 쓰고 있는지 하나님이 내 변호사가 되어서 남들에게 좀 떠벌려 달라는 거예요. 내가 하니까 안 먹히니 하나님께서 “얘는 건드리지 마. 욥은 훌륭하다”라고 이렇게 나 대신 하게 되면 나는 비로소 ‘우쉬! 야호!’라고 비로소 나의 정직함을 견고히 지속할 수 있을 건데 그게 안 돼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욥이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 만나고자 하는 이유는 자신의 의로움과 정직함을 나 대신 이야기해 주실 분이 없다는 점에서 답답해서 그런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욥이 어떤 점에서 모르고 있는지를 신약성도 입장에서 또는 그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스라엘 속에 하나님이 직접 나타났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꼈던 것과 선지자들의 그런 생각이 욥의 생각과 얼마나 차이 나는지를 우리가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욥이 뭘 모르느냐 하면 욥이 이미 인간들이 놀던 판에서 같이 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판 자체가 이미 욥 친구니까 같이 인생을 살던 그 프레임이고 그 상황이에요. 그 영역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주고받고 주고받고 하는 것이 인간들이 이해하는 하나님 가지고 내가 잘났나 네가 잘났나 따지고 있는데 그 판 자체가 뒤집어진다는 생각을 욥은 못 한 겁니다.

내가 놀던 판에서 놀았기 때문에 나는 참 여전히 잘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수요일에 했던 한 예를 들게 되면 특전사 출신이 되어서 총기류를 잘 조립하고 분해하는데 달인인 그 사람이 특전사 상사예요. 그런데 제대를 했어요. 이름이 박군(박준우)인데 그 사람이 제대해서 트로트 가수를 하겠다고 나서니까 자기가 잘하는 주특기가 작곡가한테는 먹히질 않는 거예요.

놀던 판이 달라졌어요. 저쪽은 죽은 동료를 건지든지 헤엄을 잘 친다든지 배낭 메고 수십 킬로를 달리고 총 쏘고 적군을 향해 용맹을 떨치던 그 판이 아니고 작곡가가 요구하는 곡의 감성을 잘 실어줘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딴 판에 와서 자기가 바보 된 거예요. 세상이라는 것은 이렇게 판이 바뀌면 그쪽 세계에서 전부 다 새로 해야 합니다. 자기 분야에서 도사지만 이쪽 분야에서는 전혀 먹히질 않아요.

그런데 지금 놀던 판에서 욥과 욥의 친구들이 너의 하나님과 내 하나님이 동일한 하나님이라고 서로 일단 인정하고 들어간 것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샤시를 파는 아저씨와 해외 결혼 정보회사 차렸던 아줌마와 결혼하게 되면 누가 훌륭한 거예요. 샤시 파는 것과 결혼 정보회사와 무슨 관계 있습니까? 아무 관계 없죠. 각자가 놀던 판을 고집하면 안 돼요. 새판을 짜야죠.

그러면 이 욥과 욥의 친구의 과거 판이 뭐가 잘못되었느냐 하면 인간은 자기 앞에 자기가 나서지 못한다는 그걸 몰랐던 판이에요. 내 앞에 나를 나보다 먼저 나를 인간은 앞에 세울 수가 없어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는지 아이들이 그런 질문 하죠. “목사님, 하나님을 누가 만들었어요?”라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세우겠다는 겁니다.

정답은 뭐냐 하면 “너는 너 앞에 세우지도 못하면서 어디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세우느냐?” 인간은 자기 앞에 자기를 세울 수가 없어요. 일단 자기가 있고 난 뒤에 있는 내가 모든 것을 판정하는 겁니다. 건방지게 나 있기 전까지 따지고 있다는 말이죠. 한 예를 들게 되면 완도 주민이 있었는데 완도 주민이 마을 사람들과 국을 끓여 먹으면서 복어 내장을 같이 섞어서 먹었어요.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완도 주민이 복어에 맹독성을 살아있을 때는 몰랐고 죽고 난 뒤에 안 거죠. ‘아, 독이 이렇게 무섭구나’ 인간은 복어의 내장을 국에 섞어 넣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본인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이상은 그걸 죽기 전까지는 몰랐던 거예요. 그러면 죽고 난 뒤에 안 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나는 항상 내 앞에서 내 전에 입장에 볼 때 나는 항상 내 뒤에 있습니다.

그러면 진실은 어디 있느냐. 진실은 항상 내 앞에 있어요. 우리는 내 앞에 진실에 의해서 놀아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어요?’라는 질문이 왜 성립이 안 되느냐 하면 하나님이 누가 만들었냐는 그 이야기를 해도 그 질문은 진실 뒤에 있는 내가 질문했기 때문에 진실이 되지를 못합니다. 아침에도 그런 이야기 했지만 성도는 자기를 희생하면 안 됩니다.

희생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희생해서 천당 가겠다고 구원받겠다고 시도하잖아요. 목사들이 그렇게 사기를 친 거예요.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 너부터 시범 한 번 보여보지? 너부터. 그렇게 말하는 너부터 한 번 시범 보여봐.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내주어라” 너부터 한 번 시범 보여봐. 말씀을 전하는 자가 시범을 보여보라고요. 어떻게 하는지를.

“오른손이 범죄 하거든 찍어버리라” 그러면 목사 너부터 도끼 들고 와서 네 팔 찍으란 말이죠. 그 모든 말씀은 이미 그 말씀 전에 진리 되신 분이 따로 있다는 거예요. 그 진리 되신 분의 뒤에 태어난 우리가 진리 되신 분의 진리 말씀을 지킬 수가 없는 겁니다. 이건 지키실 분이 따로 있어요. 우리가 못 지키는 겁니다. 그 말씀은. 못 지키는 것을 못 지킨다고 알면 되는데 본인을 자꾸 진실의 시작으로 보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한국 영화들을 보게 되면 참 못 돼먹은 악당들 등장하면 관객들은 누가 나오기를 기다리느냐 하면 마동석 나오기만 기다리는 겁니다. 마동석만 나오면 악당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한 방으로 다 때려버려요. 한 방으로. 심지어 그 악당이 문 뒤에서 마동석 오기를 기다리면서 온갖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마동석이 와서 “헤이, 그 문 뒤에 있지?”라고 하면서 문을 쳐버렸어요. 문을 쳐버리니까 악당이 거기 깔려서 죽었어요.

아직 욥과 욥의 친구에게 마동석이 안 나타나서 그래요. 오른편에도 왼편에도 왜 안 계시냐고 하는데 욥은 나중에 알게 됩니다. 내가 나쁜 짓 하지 않았는데 극한 악한에게 주어질 징벌을 나에게 왔다는 것은 바로 내 안에 진실이 먼저 나에게 파고 들어왔다는 이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감사히 여겨야 합니다. 내가 설득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그 요소가 나에게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욥은 아직 그것도 모르고 ‘주님, 보고 싶습니다. 만나서 따지고 싶습니다’라고 나를 좀 변호해 달라고 이렇게 나오는데 그건 주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하는 거예요. 내가 뭔가 보겠다는 것은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훼방질하는 거예요. 방해하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을 볼 자격도 없고 볼 필요도 없는 거예요. 아까 준비 찬송에서 했지요. ‘들리지 않으나 보이지 않으나 약속 믿고 나간다’라고 나오잖아요. 준비 찬송 두 번이나 불렀는데요.

보이는 거 없으나 들리는 거 없으나 약속이, 나보다 먼저 계신 약속이 그리고 후에 우릴 만날 약속이 지금 내가 시작점인 내 판을 주께서는 내 허락도 없이 뒤집어 버립니다. 마동석이 나타난 거죠. 뒤집어 버린 거예요. 참 감사하죠.

내가 이렇게 괴롭다, 슬프다, 아프다고 하지만 여러분들이 비누 한번 보세요. 비누에는 때가 없습니다. 비누에 왜 때가 없느냐 하면 어차피 비누는 닳아 없어지는 물건이거든요. 비누는 때를 씻는 것이지 비누 자체에 때가 없어요. 그냥 문질러 버리면 문지르는 동시에 때가 날라가 버리니까 비누 때도 날라가고 내 때도 날라가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욥에게 고난을 준 것은 비누로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자꾸 너의 자아를 유지하려고 버티려고 하지 말라는 거죠. 닳아질 때 주님 분량은 많아지고 너의 분량은 적어지는 거예요. 이러한 욥의 문제점이 성경책에 있는 이유가 있어요. 그 이유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에서는 이 욥의 사고방식을 해결책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주어지는 겁니다.

인간이 자기가 먼저 있다 보니까 하나님을 아무리 숭상하고 존경하고 찬양해도 어느새 하나님이 을이 되고 자기가 갑이 되는 거예요. 제가 하나의 예를 들테니 이게 갑질인지 을질인지 보세요. 신입사원이 사장님에게 부탁하기를 “내가 회사 나온다고 우리 집에 있는 강아지 사료를 못 줬는데 사장님이 가서 우리 집 개에게 사료 좀 주시겠습니까?”라고 부탁할 때 이게 갑질이에요? 을질이에요?

이건 을질이 아니죠. 왜냐 하면 갑, 을이라는 것은 정해진 것이 아니고 누가 시키면 그건 갑이 되어 버려요. 집에 개 있는 사람은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인간이 하나님 앞에 갑질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하고자 하는 백성들이거든요. 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그 안에서 너희들은 을이라고 우기지만 실은 나에게 갑질하면서 자꾸 겸손 떨며 을이라고 우기는데 그것을 하나님 내가 어떤 방식으로 뒤바꾸는지 보여주십니다.

열왕기상 20장 35~36절에 보면 나오는데 상당히 독특해요. 특이한 방식이에요. ‘Singularity’라고 하거든요. 아주 특이하고 독창적인 것이 나옵니다.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그 동무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 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저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라고 되어있어요.

이건 진짜 하나님의 횡포입니다.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예를 들면 제가 하나님께 어떤 지시가 떨어져서 어느 집사님에게 얻어맞으라고 하셨어요. 김종철 집사님에게 얻어맞으라고 해서 가서 “집사님 저를 때려 주세요. 그냥 패버리세요”라고 하는데 집사님이 “감히 주의 종인데 복음을 전하는데 이런 쓸데없는 일을 제가 해야하는지...군시렁 군시렁”하며 안 때렸단 말이죠. 그러니까 길 가던 개가 물어서 즉사시켰어요.

그러니까 이건 도대체가 뭐냐 하면 ‘돈 낼래? 아니면 목숨 빼앗길래?’라고 하면 사람은 안 죽기 위해서 후딱 돈을 낼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말을 바꿔보세요. ‘너 나를 쥐어팰래? 안 그러면 네가 죽을래?’라는 이게 양당 결정에 대한 선택항목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이게 인간이 납득가는 항목이에요? 칼 들고 와서 ‘가진 돈을 낼래? 안 그러면 죽을래?’라는 것은 우리가 이해가 가는데 칼 들고 와서 ‘날 패 죽일래? 아니면 네가 죽을래?’라는 게 말이 됩니까. 정말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정말 독특하죠.

이건 사람이 자기가 진리라고 간주했을 때 갖고 있던 어떤 착한 성품 있잖아요. 나는 사람에게 함부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그 의로움, 그 의로움을 하나님께서 개무시 하는 겁니다. 주님이 찾아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볼 때 내가 옳은 인간인 것을 증명할 것들만 가득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 내 기억창고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너무나 뻔히 아니까 ‘네가 그 잘남의 기억들이 있는 한 너는 지옥이야. 넌 천당 다 갔어’라는 이런 뜻이거든요.

지금 욥이 그런 사람이거든요. 왜 그러냐 하면 놀던 판이 각자 잘남으로부터 시작되는 그 놀던 판이 그대로 유지되게 되면 거기에 인간의 자아보다 먼저 계신 하나님의 진실성을 진리성을 우리가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뭐가 방해되는가. 잘난 내가 방해되겠죠. 그래서 납득되지 않는 고생과 고난과 아픔과 병같은 이런 것들이 욥에게 찾아온 거예요.

욥은 도대체 그것이 찾아오면서 찾아온 이유를 내력을 모르기 때문에 따지고 싶다는 겁니다. 하나님에게 따지고 싶다는 거예요. 내 이 억울함을, 억울하니까 좀 해소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거예요. 진짜 아직도 마동석에게 안 맞아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마동석을 안 만나봐서 그런 거예요. 계속 열왕기상 20장 37절에서부터 또 보게 되면 앞에 사람 죽고 또 재수 없이 어떤 사람이 마주쳤어요. “저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가로되 너는 나를 치라 하매 그 사람이 저를 치되 상하도록 친지라”

그 사람을 쳐버린 겁니다. 뭐 부부싸움 했든 성질 난 일이 있어서 어디 샌드백 없나 찾다가 마침 만난 거죠. 패달라고 하니까 뭐 뒤에 법적인 부분 문제 삼지 않는 것으로 합의보고 패는 거죠. ‘아, 마침 근질근질했는데 잘 됐다’라고 하면 팬 겁니다. 패니까 얻어맞은 선지자가 얼마나 고맙다고 했겠습니까. “고마워요. 고마워요. 때려줘서 고마워요” 이거 미친 거 아니에요? 광기 아니에요? 성경에 이게 나와 있다니까요. 무슨 하나님 뜻이 이런 뜻이 있어요.

그리고 열왕기상 20장 38절에 보면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그 눈을 가려 변형하고 길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라고 나오는데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하나님의 일방적 승리로 해서 아합왕에게 벤하닷이라는 아람나라 강대국의 왕을 사로잡았거든요. 사로잡았는데 아합왕은 자기가 자기 힘으로 체표 한 것처럼 으스대며 내가 승리 거니까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내가 풀어 줄 수 있는 아량을 베푼다고 하면서 벤하닷을 풀어준 거예요. 32절에 보면 “아합이 가로되 저가 오히려 살았느냐 저는 나의 형제니라”라고 한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체포해서 죽이라는 그 인간을 아합왕이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자기가 자비를 베푼 거예요. 자비를. 자비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거짓말입니다. 누구를 위한 자비예요? 그게? 그건 자기 가오 세우는 자비예요. 흔히 교회 재직회나 교단 회의할 때 이러한 터무니없는 자비 행위가 자주 등장해요.

우리 교회는 거의 회의를 안 하지만 보통 하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아이고, 시끄럽습니다. 그냥 은혜로 합시다”라고 하지요. 뭘 은혜로 해. 뭘. 은혜가 거기서 왜 나와. 은혜 네가 거기서 왜 나와. 부모가 자식에게 뭐라고 하면 자식이 교회에서 들은 건 있다고 “아버지, 은혜로 합시다”라고 하지요. 뭘 은혜로 해. 누구 망치려고 은혜로 해. 좋은 게 좋다는 거죠.

지금 우리가 인간들 놀던 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동석이 설치는 판이에요. 열왕기상 20장 39절부터 계속 읽어보겠습니다. “왕이 지나갈 때 소리 질러 왕을 불러 가로되 종이 전장 가운데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저를 잃어버리면 네 생명으로 저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이라고 해요.

왕이 한 짓거리를 전쟁에 나가지 않는 선지자가 왕의 입장이 되어서 설명하니까 왕이 하는 말이 “그게 내 일인가? 네 일이지”라고 하니까 “그게 내 일이 아니고 당신 일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여기서 하나님 방식은 뭐냐 하면 예수님 이야기 십자가 지는 것을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로 여기는 거예요. 예수님이 십자가 졌다. ‘아이고, 고상해라. 아이고, 훌륭해라. 저는 예수님 존경합니다’ 끝. 그건 주님의 일이고 나는 나의 일이죠.

하지만 주님의 일을 성령을 통해서 보여준 자들이 성도예요. 성도를 보내서 성도에게 일어나는 일이 지금 이 세상에 마동석이가 행패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너보다 머리보다 앞선 존재로서 성도를 보낸 거예요. 네가 생각할 수 없는 네가 미처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진실 된 쪽에서 그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 복음 전하기 위해서 성도에게 알 수 없는 고통을 납득되지 않는 그러한 십자가에 고난과 아픔을 실어서 세상에 내보내는 겁니다. 참,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에요.

그렇다면 우리 성도가, 내가 여기 있는데 여기 있는 나를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2장 25절에서 그 해답을 주셨습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네가 여기 있다는 것을 네가 여기 살고 있다는 것을 네가 미워해야 한다는 겁니다.

네가 이 땅에 태어나서 한평생 사는 것을 네가 미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 하면 예수님께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보는지를 이제 성령을 알았기 때문에 참,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 참 미운 오리 새끼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동안 이스라엘은 어떻게 했는가. 이게 참 어려운 이야기인데 이거 하고 마치겠습니다.

참 어려운 이야기 나와요.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오른손입니다. 하나님의 오른손. 사람들이 보통 거짓말할 때는 얼굴을 왼쪽으로 돌린답니다. 이건 뭐 진리는 아니고 통계상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오른손으로 한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없는 능력이 주어지는 거예요. 인간에게 없는 능력이라는 것은 인간 배제하고 주어지는 능력이 주님의 오른손으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왜냐 하면 여기 출애굽기 15장 12절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먼저 하나님의 오른손이 등장하는 그 시점은요, 인간들이 모든 진실을 나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꾸 예상하고 예측해요. 인간이 예상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일을 겪게 해서 그걸 낭패로 겪게 해서 그다음에 준비된 일이 하나님의 오른쪽에서 온 능력이라고 그렇게 표현을 해요.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구원한다는 말은 거기에 인간의 예측이나 예상이나 인간의 능력이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보면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라고 말씀하시거든요. 출애굽기 15장 12절에 오른손의 능력을 계속 언급하시면서요.

거기 출애굽기 15장 27절에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라고 해서 엘림이라고 나오는데 제가 엘림아파트를 봤어요. 벌교 꼬막집 앞에 있는 엘림아파트를 봤어요. 뭐 중요한 문제는 아니고요. 엘림이 열두 개의 물샘과 종려나무 칠십 주가 있는 곳이 엘림이에요.

이건 출애굽기 15장 12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오른손의 능력으로 하여금 우리가 예상 못 한 그런 한 세계로 인도할 때는 일단 우리가 놀던 판을 우리로 하여금 이제는 잊어버리게 해요. 그게 뭐냐 하면 애굽에서 내린 질병을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않았잖아. 이 말은 너도 애굽에 있기 때문에 질병 걸려야 마땅했다는 것을 네가 오른손 능력 안에서 새삼스럽게 느끼란 말이죠.

십자가 앞에서 나는 저주받아야 한다는 것을 내가 나를 미워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일관된 일이에요. 여러분은 그걸 모르고 있어요. 자꾸 출발점을 자기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이 시키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고 시키는 일을 했잖아요. 이건 인간이 이미 선악과를 따먹은 상태에서는 그런 소리 하면 안 돼요. “시킨 대로 했고 하지 말라 하면 안 했습니다”라고 하면 안 돼요.

그래서 나온 게 뭐냐 하면 물금이에요. 물금의 뜻은 금지한 것을 금한다는 거예요. 물금이 지명인데 부산 가는 쪽에 있어요. 내가 금지한 그것을 네가 이미 죽었으니까, 선악과를 따먹고 이미 죽었다는 말은 죽은 존재에게 두 번 다시 묻지 않는 거예요. 그냥 죽은 채로 보내버리고 죽은 자가 예상 못 한 생명을 주님의 오른손에서 일하시는 주님으로부터 새로 너희에게 공급해 주겠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이죠.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에 열두 개의 샘과 칠십 그루의 종려나무가 있는 곳, 요한계시록 생각나죠. 요한계시록에서 표현할 때 이렇게 표현합니다. 종려나무 들고나오잖아요. 이것은 바로 욥과 친구들은 바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여주기 위한 이래서는 안 된다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들 앞에서 얻어맞는 선지자처럼 얻어맞는 욥을 그들 앞에 내세웠던 겁니다.

이 마지막 때 얻어맞은 것은 우리 주님인 것을 여러분 이제 아시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는 것이 너무 마땅하고 그 말씀 못 지켜서 벌 받고 지옥 가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받아들입니다. 더는 욕심내지 말게 해주시고 새롭게 주어진 십자가 용서가 얼마나 귀한지를 이제는 우리 모든 것을 배제하신 주님의 전략이 얼마나 치밀한지를 이제 우리가 간파하면서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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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0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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