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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강의20210423a 마가복음16장 19절(땅이 사라짐)-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마가복음

광주강의20210423a 마가복음16장 19절(땅이 사라짐)-이 근호 목사

마가복음 16장 19절-20절 말씀입니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마가복음 마지막 시간 같아요.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갔죠.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은 땅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땅 자체를 없애버리는 거예요. 그 이유가 하늘로 올라갔을 때 땅이 땅으로 행세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전부다 앗아가 버렸거든요, 땅이 땅일 수밖에 없는 조건.

천지를 창조할 때 땅이 땅일 수밖에 없는 조건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시간, 하나는 공간. 시간과 공간을 누가 뺏아 갔느냐 하면 주님이 와서 쏵 뺏아 간 거죠. 쉽게 말해서 기를 확 뽑아내고 가버린 거예요.

그러면 시간과 공간, 전부다 주님이 와서 빨아갔다면 나머지는 멸망이죠. 그러니까 결국 멸망 시점을 지나면 ‘없다’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땅이 사라진 거예요. 그런데 이 땅 위에 결속되어 있는 인간이 있죠. 그래서 주님이 하늘로 올라가게 되면 인간이 없는 겁니다. 인간이 사라진 거예요.

기분 좋지 않습니까? 우리가 인생 왜 고민합니까? 내가 여기 있기 때문에 고민하잖아요. 주님께서 우리를 없애버렸어요. 그럼 고민할 것도 없네. 고민할 건덕지가 없어요. 뭐가 있어야 고민하지, 없는데요.

마가복음 끝을 아주 장렬하게 끝내버립니다. 깔끔하게 끝내버려요. 여기 적합한 노래가 있다면 . 모든 연극은 끝났어요. 이걸 일본말로 ‘시마이(하던 일을 마물러서 끝냄)’라 해요. 인생사 다 시마이했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조건, 땅의 조건을 몽땅 끌어서 일방적으로 강탈해서 하늘로 올라가버렸어요. 땅에 남겨진 것들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가지고 이제는 하늘에서 소돔과 고모라에 떨어졌던 불심판만 주어질 판입니다.

참, 주님의 일처리가 정말 산뜻하지 않습니까? 아주 깔끔하죠. 깨끗하게 끝내버립니다. 뭐 백신을 구했니 안 구했니 쓸데없이 그건 고민거리도 아니에요. 그 시마이, 끝장, 파장이죠, 파장에 20절에 보면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이제는 장날에 모든 것이 끝났어요. 끝났으니까 제자들이 할 일은 뭐냐 하면 뒤치다꺼리하면 되는 거죠.

뒤치다꺼리할 때 규정적으로 나오는 의성어, 소리 말이 있어요. 워이 워이. 가, 가. 가버려. 워이 워이, 끝났어. 중국말 하는 거 아닙니다. 다 끝났어요. 이것이 요한계시록엔 이렇게 되어 있어요. 독수리가 폭격기처럼 날아다니면서 “화로다 화로다”. 그런데 천사가 또 연거푸 “끝났다 끝났다 끝났다” 또는 “무너졌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그러니까 마가복음 마지막을 믿는 사람 같으면 이게 있어요. 크게 쓸게요. “여유가 있다”. 여유가 있다는 것은 서랍장에 뭐가 꽉 있는데 그게 다 비워지고 나니까 텅텅 빈 상태. 전에는 내 것이 내 것으로 꽉 차있었는데 그게 다 텅텅 비어진 상태. 여유가 있어요. 자기가 자기를 다루지 않겠다는 겁니다. 요즘 파출소나 경찰서에 애 하나 잃어버리면 난리도 아니죠. 치매 걸린 노인네 하나 잃어버리면 전 동네가 산으로 작대기 들고 찾으러나가고 하는데 그럴 필요도 없는 겁니다. 여유가 있어요.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자기 어릴 때 자기 집이 너무 너무 잘 살았다는 표현을 하는데 아주 실감나게 들은 적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서랍을 여는데 서랍이 잘 안 열렸다는 거예요. 서랍마다 돈이라는 종이로 꽉 차 있어가지고. 이게 얼마나 돈이 많았으면 서랍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돈이 많았다. 아주 멋진 표현방법이에요. 그 정도로 잘 살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가세가 기울어지고 난 다음에 서랍이 가벼워졌어요. 뭐 있어야지. 돈으로 꽉꽉 찼었는데 쑥쑥 잘 빠져나와요. 그게 바로 아무것도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니까 성도의 삶이 여유가 있어요.

그래서 20절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이렇게 되어있죠. 주께서 함께 역사했다는 말이 마가복음에는 그렇게 되어있고 사도바울 편지에 보면 “성령이 함께 하사”. 사실은 사도행전도 마찬가지고 같은 뜻이에요. 성령이 예수님의 영이거든요. 성령이 함께 하사, 예수님이 힘을 주사, 예수님이 함께 하사, 성령이 힘을 주사. 이 말은 뭐냐 하면 파장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종말의 영, 마지막이 되어야 등장하는 마지막 연극 캐릭터에요. 무대의 마지막이 성령의 등장입니다. 명성황후 마지막 장면, 명성황후가 죽은 귀신이 되어서 한국의 독립을 부르짖기 위해서 일제를 공격하는 식으로 노래를 부르는 거 있잖아요. 그처럼 마지막에 부르는 노래, 그게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이미 주께서 다 이루었다 이 말이죠. 뭘 이루었어요? 땅이 사라졌어요. 땅이 사라졌는데 땅과 더불어 인간도 같이 사라졌어요. 멸망했다는 말보다 더 시원한 말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멸망했다고 하면 “그럼 난 멸망 안 하려면 어떻게 하면 돼요?”하고 여전히 자아가 꼬장을 부리잖아요. 꼬장이라는 말 아시죠? 자아가 꼬장을 부린다고요. 이 멸망을 앞두고 난 어떻게 처신을 하면, 멸망 스케줄을 어떻게 미리 입수하게 되면 나는 살 수 있을까요? 베리칩을 받지 말까요? 천년 왕국이 어떻게...? 계산이 복잡한데. 그건 꼬장 부리는 겁니다. 그런데 사라져버렸는데 뭐, 사라졌는데 꼬장 부릴 것도 없죠.

여러분 마음의 서랍을 열어보세요, 뭐 있는가. 모든 것은 이미 주님께 다 기 빨려서 강탈당한 입장에서 아무것도 남겨둘 수 있는 게 전혀 없습니다. 방금 이 이야기한 것, 어째서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간 것이 이런 결론으로 귀결되는지, 그 근거가 뭐냐.

그것은 이 그림(첨부파일 참고) 하나로 다 해결됩니다. 주님이 이렇게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잖아요. 이것은 수직적입니다. vertical 수직적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갔죠. 아무도 올라갈 수 없는 하늘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면 이 지상은 vertical의 반대말, horizontal 수평적이에요.

그러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인간들은 여기(수평적)에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도모하려고 아주 악바리 쓰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영어 과외 받아가면서 몸부림쳐가면서 애 공부하라고 닦달내고 배울 만큼 배워놓고 집에서 노냐고 잔소리해대면서 아주 닦달 내죠.

그런데 여기서 수직적, 수평적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면
실체
A
B
C
D
E
e d c b a 그림자

이 (수직적)사건 A, B, C, D, E,...과 (수평적)사건 a, b, c, d, e,...이 전부다 1:1 대응이 됩니다. 그러니까 땅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알 수 없는 vertical, 수직이 있었는데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 그 때 실상이 드러나는 겁니다.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a, b, c, d, e,...일들은 장차 오실 수직을 일대일 대응하는 하나의 그림자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수직은, 예수님의 올라가심은 실체가 되는 거예요, 실체가.

그러면 이 수직에 있는 사건들이 땅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될 때 이 a, b, c, d, e가 뭐냐 하면 존재가 아니고 사건이었던 겁니다. 존재가 아니고 사건. 존재를 쉬운 말로 하면 이것은 바로 ‘있음’이죠. 그리고 사건은 존재가 아니고 사건이니까 반대말이죠. 존재의 반대말은 무(無)존재, 비(非)존재, 없음이 아니고 존재의 반대말이 event, 사건이에요. 해프닝이에요.

이 땅은 하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순간순간이 사건이었던 겁니다. 자녀가 있고, 우리가 있고. 사건이죠. 이게 사건이라고요. 사건 한번 보세요. 사건 잘 생겼잖아요. 사건이라고요. “똑바로 해” 이렇게 묻는 것은 존재한테 묻는 거고 사건 같으면 “네가 보여줄 주인님은 누구시냐? 네가 너 되게 했던 배후의 주인님은 누구시지?” 이렇게 묻는 겁니다. 그럼 뭐 우리는 정답 안다고 “우리 주인님은 예수님이 주인님이죠.” 어디 들은 풍월이나 있어서 우린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죠.

그런데 그냥 사건이라 하지 않고 ‘존재가 아니고’ 사건이라고 제가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의 일대일 대응되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줄곧 우리는 존재로 이해했단 말이죠, 존재로. 존재로 이해된 거예요.

이 근처 유치원 몇 개 있습니까? 아파트 단지 근처에 서너 개있죠? 유치원 애한테 한번 물어보세요. “너희 아버지 뭐하시노?” 이렇게 물어보면 애가 뭐라고 합니까?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그냥 하나의 사건인데요.” 이렇게 답변하는 애 없어요. “우리 아버지 회사 다녀요.” 이렇게 되는 거죠. “엄마는?” “엄마는 어디 직장 다녀요.” 이렇게 이야기하지, 사건으로 이야기 안 해요, 유치원 애들이.

분명히 성경은 사건이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익히 알던, 그동안 살아왔던 모든 주변에 우리한테 통보해주는 우리의 의미조작은 사건이 아니고 존재입니다. 너 커서 뭐 될래? 이런 거 있잖아요. 지금 있는 네가 5년 뒤에 뭐 될래? 존재에서 존재로 엮어 들어가죠.

마지막에 오신 예수님이 사실은 처음부터 계신 분이었어요. 그러면 이 세상은, 이 땅은 처음부터 예수님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 증명하기 위해서 사건화된 땅임에도 불구하고 도중에 뭐가 꼬이고 일이 잘못되었는지 이 땅이 자기를 불멸의 존재로서 간주하는 것이 대세가 되고 만 겁니다.

구약에 선지자들이 살아가는 것과 그 당시 선지자 외에 일반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과 세계관이 어떤 점에서 차이나겠습니까? 많은 점에서 차이나겠죠. 엘리사가 선지자해서 이 땅에 뭘 기대했습니까? 내가 선지자 노릇하는데 총회장 안 시켜주나. 이런 거 했겠어요? 엘리사가 기적을 베풀면서, 너 기적 베풀어주면 얼마 줄래? 그런 거 했겠어요? 안했죠.

그런데 가짜 선지자, 거짓 선지자를 보세요. 권력에 밀착했잖아요, 권력에. 그 당시 선지학교 출신들. 총신 몇 기 출신이야? 이런 거. 몇 회에요? 난 몇 회인데. 야, 우리 그룹이네. 이런 거. 이거 전부다 사건과 관련된 게 아니고 존재와 관련 있거든요, 나라는 존재. 눈에 보이는 땅이 있고 그 땅 위에 내가 있다 이 말이죠.

눈에 보이는 땅이 있죠. 거기 땅이 있고 그 다음에 내가 있다. 이런 생각에 대해서 우리가 회의가 되고 내가 잘못된 생각이야. 뭔가 미친 생각이야. 그런 생각을 합니까? 안하잖아요. 주일에 예를 든 것을 다시 해볼게요. 정동길 언덕에 조그만 예배당 있다. 이문세 노래에. 그 가사를 보세요. 조그만 예배당이 있잖아요. 있음, 존재라고요. 오랜만에 가보니까 광화문 그 길을 연인들이 걷고 있는 그 모습이 옛날에 자기가 걷던 모습이 떠올라 그리웠단 거잖아요. 그러니까 뭐가 있다 이 말이죠. 이게 미친 짓입니까, 이상한 겁니까? 이걸 시비 건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지. 그렇잖아요.

그 정동길에 눈 덮인 조그만 예배당 찾아서 기도하려고 이거 했어요? 아니죠. 예배당 바깥 외향만 옛 추억이 생각나서 보러 갔잖아요. 그러니까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은 무엇을 중요시여기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 마가복음 16장 19절이 결정적 중요한 사태로 평소에 자기 인생 속에 박혀있지 않은 겁니다.

뭐 올라갔겠지. 도사니까 못하는 거 뭐 있겠어?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니까 재주부리겠지 뭐. 내 몸무게 가지고는 구름에서 빠지지 싶은데. 이런 생각하고, 주님은 가벼웠나? 어떻게 구름을 타나? 이런 생각하지 자기는 꿈쩍도 안하잖아요, 꿈쩍도. 이 단단한 존재는 꿈쩍도 안하죠. 주님한테 기 다 빨렸다는 건 생각 안하고 있는 거예요. 갈려면 가든지 말든지 나는 여기 살련다. 이거잖아요. 주님이 올라가든지 내려오든지 난 모르겠고 난 여기서 임영웅 노래나 들으면서 그냥 살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규정해야 될 것은, 누가? Why? 왜? 우리로 하여금 사건인 것을, 자꾸 존재라고 강변하고 그게 옳다고 우기는 짓을 누가 했는가. 그것을 살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은 멀쩡하고 아무 일 없고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사건 있었어? 멀쩡한 것은 해와 달, 별, 육지, 이거 멀쩡하잖아요.

미국 멀쩡하고 한국 멀쩡하고 소련 멀쩡하고 말썽인 북한도 멀쩡하고 미얀마는 약간 혼란스럽다만 베트남 멀쩡하고 다 멀쩡한데...... 눈에 보이는 것은 다들 멀쩡해요. 복음 들어도 친구 만날 사람은 친구 만나고. 복음은 복음이고 난 내 친구 만나고. 뭐 중요한, 요란스러운 일이 있었어? 없어. 그냥 고요하고 조용해. 이렇게 되죠. 언덕 밑 정동길에 조그만 예배당 가끔 찾아가면 되고. 아무 일 없는 거예요. 이렇게 존재 위주를 꼬장 부린다고 누가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뱀을 한번 보세요. 창세기 3장 15절에 지상과 가장 밀접하게...... 오체투지라 합니까? 그냥 절하는 것이 아니고 온 얼굴 다 대고 기어가서 한번 절하고 3미터 가서 한번 절하고 그렇게 하듯이, 오체투지보다 더 밀접하게 땅과 밀착되어 있는 존재가 있죠. 누구입니까? 창세기 3장 15절에, 뱀이죠.

그 뱀이 대지에서 올라오는 모든 저주스러움을 온 몸에 다 받아요. 받아가지고 그 뱀이 성경에 나오듯이 이 세상의 신이니까 온 저주스러움을 다 받아서 이 세상 오야붕, 대장이니까 그것을 이 세상 땅에다 전부 확 토해버린 거예요. 다 토한 거예요. 악마의 모습, 악마의 기를 다 토한 거죠.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산이 있는데 갑자기 마그마가 약한 층을 뚫고 터져 나왔어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이 마그마가 완전히 산 전체를 발라버리겠죠. 마그마가 지표면에서 식은 걸 화성암이라 해요. 완전히 다 발라버리죠. 악마의 저주스러운 모습으로 발린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땅’이라 하고 ‘대지’라 하는 겁니다. 바로 여기에, 아담과 하와가 이 위에 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미 악마의 세력권에서 못 벗어나는 인간들의 knowledge, 지식, 안다는 개념은 전부다 어디서 제공받고 공급받은 거예요? 악마로부터 공급받은 사고방식이죠, 안다는 게, 지식이라는 게. 인간은 지식으로 살고 지식을 축적해서 사는데 그 지식의 원천제공자가 누구냐 이 말입니다. 온몸으로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대지의 저주를 다 받아야 될 운명의 소지자가 인간에게 저주받을 수밖에 없는 지식을 계속해서 주입시키고 개입시킨 거예요, 여기다가. 집어넣은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나온 것은 존재의 불멸성이죠. 이것은 영혼의 불멸성과 똑같은 이야기에요, 내 존재의 불멸성. 영원하고 싶다. 죽어도 또 살고 싶다 그런 거예요. 영원히 불멸의 존재가 되고 싶은 겁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는 거예요. 뱀 따로 인간 따로가 아닙니다. 창세기 4장에 이미 가인이 자기 행동을 자기 마음대로 못해요. 죄가 가인을 덮친다는 말은 이처럼 악마가 토해놓은 그 토사물 위에 인간이 거기다가 칩을 꽂아서 뿌리를 박고 거기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이 아는 것이 뭐냐. 인간의 존재의식입니다. 인간의 존재의식.

그렇다면 인간의 존재의식이라 하는 것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가. 내가 생각해도 골치 아프게 어려운 이야기인데. exist. ex, 바깥에 + ist, 있다. 영어로 ‘존재’란 뜻이 이런 뜻이거든요. 바깥에 있는 거예요, 바깥에. ‘바깥에 있다’는 말은 ‘나를 나로 지켜주는 것’, 이게 바로 존재입니다. 바깥에서 나를 지켜주는 거예요.

그만큼 인간이, 자기 자신이 분열되어 있어요. 주체의 분열이라고 하는데 자아라는 나가 하나가 아니고 계속 내부적으로 갈라져 있어요. 왜냐하면 악마로부터 유입된 지식이 나로 하여금 네가 선하냐? 선한 나와 악한 나. 두 가지의 possibility, 두 가지의 가능성을 자꾸 우리에게 제공하는 겁니다. ‘너 착하게 살래, 나쁘게 살래’가 외부에서 자꾸 주어지니까 내가 바깥에서 관리해야 되는 거예요. 안에 들어있는 것이 착한 나냐, 악한 나냐 이 말입니다.

로마서 7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그런 이야기하죠. 자기가 하나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뜻을 원하는 나와 또 뜻을 원하지만 나 내부에는 나보다 더 센 어떤 괴물이 있는 거예요. 그게 죄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바깥 나는 뭐라고 합니까? 오호라 곤고하다. 곤고하다고 고상하게 표현할 수 있지만 나는 조졌다. 이 말입니다. 나는 이제는 난감하네.

그러니까 나의 나다움을 제시할 때 바깥 나가 마음에 들지를 않는 거예요. 아무리 그럴싸하게 괜찮은 나이고 싶어도 실제 내 모습은 내가 봐도 추잡스러운 겁니다. 지저분한 거죠. 이것은 사도바울 아니더라도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알고부터 뭔가 지식이 들어오고부터 자기 모습을 어떻게 봤습니까? 본인도 알았어요. 나는 내가 봐도 수치스럽다. 만족스럽지 못한 존재.

만족스럽지 못한 존재라면 인간이 그냥 가만히 있지 않죠. 만족스럽지 않다면 결사적으로 만족스러운 지경에 이르기 위해서 투쟁을 하겠죠. 노력을 하겠죠. 그러니까 평생을 다 가도록 마음의 쉼이라는 것은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서랍이 안 열릴 정도로 아무리 돈이 있어도 돈이 많으면 이게 없고 이게 많으면 이게 없고. 인간의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죠. 왜 그러느냐 하면 선과 악은 서로 대립된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갈라지는 속성이거든요, 선과 악이.

그래서 인간은 자기의 이 갈라진 주체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 어떤 수완을 발휘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듣고 있던 사람이 지금부터는 힘들어질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힘이 들든 말든 간에 난 모르겠고. 갈라진 주체, 나, 갈라진 틈이 있으니까 여기서 반드시 결핍이 발생되겠죠. 결핍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상하게 불만족스러움이에요. 만족스럽지를 못해요. 결핍이 소멸되어야 되는데 결핍이 있으니까 자기가 보기에도 자기가 수치스러운 존재이다.

이럴 때 인간을 사랑한다고 거짓말하는 악마가 또 가만히 있지를 않죠. 이 결핍의 불만족을 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인간에게 제공해줍니다. 그게 신(Oneness)이에요. 대일자(大 一 者), 신이에요. 모든 모순과 결합이 해소가 다 된 상태. 전부다 종합이 되어서 더 이상 모순이 없는 Oneness, 최후의 유일자, 하나밖에 없는 것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갈라진 불만족은 유일자에게 뭘 해야 돼요? 여기서 상납을 해야겠죠. 그게 바로 창세기 4장에 가인이 드렸던 제사가 되는 겁니다. 종교의 출현이에요. 알타미라 동굴 있죠? 그게 바로 신에게 제사 드리는 거예요.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오래된 동굴이다, 학자들은 뭐 6천년이다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인류 역사가 6천년까지 그렇게 긴 적이 없어요. 그건 아무도 몰라요.

과거 우리가 몇 년을 했는가 그런 것은 몰라야 됩니다. 그것은 제가 강의 처음에 이야기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누가 기 다 빨아 가져가 버렸습니까? 주님이 가져가버렸기 때문에 존재 같으면 시간과 공간이 허락되지만 사건 같으면 없어요.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에 대해 계산 자체를 하면 안돼요.

이스라엘 역사가 왕이 몇 년 되었다 하는 그것은 어떤 연대기를 표시하는 게 아니고 그 사건에 대해서 주목하라고 하는 거예요, 이스라엘 역사의 경우에는. 이방역사도 마찬가지에요. 요즘처럼 총괄적인 시간 연대를 정한 게 아니에요. 이방민족도 마찬가지에요. 00왕은 왕이 된지 몇 년인가, 이런 식이에요. 백성들의 시간은 의미 없어요. 왕의 자리가 된 지 몇 년인가가 중요한 겁니다. 왜냐하면 일반종족에서는 왕이 모든 시간과 공간을 기 빨아서 본인이 가져갔기 때문에.

제가 사극을 안 좋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극도 아니고 뭐 이상한, 철인왕후 그런 건 좋아하지만 진짜 사극은 안 좋아하는 이유가 그건 깡패들이에요. 왕이라 하지 말고 깡패, 더 나쁘게 말해서 놈팽이. 그 밑에 있는 부하들은 양아치. 양아치들이에요, 그냥. 할 짓 없어서. 등쳐먹는 양아치 있잖아요. 카세트 파는데 카세트 500원 주고 두 개 가져가는 그런 양아치를 뜯어먹는 나쁜 경찰들. 그런 영화 있었어요. 인가 있어요.

창세기 4장에 가인의 7대손 라멕이 뭐라고 합니까? 자기가 그냥 신이잖아요, 신. 가인의 후예가 이 세상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아벨의 후예는 비리비리해요. 없고 이 세상을 장악하는 것은 악마 편에 서야 존재의 세계를 지배하고 통치하는 겁니다. 그것이 이 세상 신의 능력에 부합되는 현상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 세상 신은 누구라 했습니까? 악마죠.

그래서 옛날의 왕들은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포도원, 되게 잘 키웠거든요, 그 포도원을 아합 왕이 바꾸자고 나와요. 그 포도원 주인인 나봇이 포도원 주인이 아니었었습니다. 그걸 선지자가 알려줬죠. 당신 건드리면 당신 마누라 죽는다고 했는데 진짜 마누라 피 터져 죽었죠. 나봇은 소유권이 자기가 아니기 때문에 못 파는 거예요. 자기 것 같으면 팔죠. 바꿔치기가 되는데 그게 안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합 왕은 땅의 세계에서 왕이지만 여호와는 하늘의 세계에서 왕이에요. 그러면 나봇이 포도원을 갖는 것은 자기 소유가 아니고 자기는 그 포도원을 관리할 하나의 사건, 이벤트에요. 삶 자체가 이벤트라니까요. 자기가 자기 존재를 위해서 포도원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고 내 존재를 대체하는 존재가 따로 있어요. 누구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죠. 여호와 하나님의 포도원입니다. 자기는 그냥 품꾼이고.

그게 바로 율법이라는 계약서에 나와 있어요. 율법이 계약서거든요. 언약이거든요. 그 계약서에 내 것은 전무하다. 그게 계약서에요, 그게. 이스라엘 계약서는 그래야 된다고요. 언제부턴가 갑자기 이것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고 내 것이라고 여길 때 그 계약은 깨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다른 민족을 동원해서라도 이스라엘을 쳐버리죠.

네가 계약서대로 안한다고 해도 그냥 넘어갈 줄 알았지? 그래서 언약이 그만큼 중요한 거예요. 내가 이 나라를 완전히 작살내버리겠다. 계약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네가 몸소 체험해야 된다. 그래서 그 다윗의 장막, 만남의 장소가 완전히 무너지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게 뭐라고 항변하겠어요? 꼭 이래야만 했었습니까?! 이런 식으로. 이렇게 해야 속 시원했었습니까? 이런 식으로 또 항변하죠, 마치 악마의 대변자처럼. 우리 악마를 이렇게 지옥불에 집어넣어야 속이 시원했었습니까, 하나님이여! 그럼 하나님이 에스겔에 나오는 말씀처럼 그래, 네가 지옥가야 내 속이 시원하다. 됐냐? 뭐 할 말 있어? 피조물 주제에 어디 창조주한테 따박따박 대들고. 그 못된 버릇 누구한테 배웠어? 이렇게 되죠.

그럼 악마가 당신이 그렇게 나오면 우린 당신이 믿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만 두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하나님께서 성도를 무슨 자로 봅니까? 아까 땅에서 주님이 철수해나갔죠? 그럼 땅에 있는 것들은 뭐가 돼요? 죽은 자니까 이미 죽은 자 되죠. 죽은 자가 되죠.

그러니까 성도는 땅에서 이미 죽은 자에요. 골로새서 3장 1절-3절에 나옵니다(“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막 지어낸 거 아니에요. 너는 땅에서 죽었다 했잖아요. 그러니까 성도는 땅에서 죽었잖아요.

땅에서 죽은 이 성도, 이게 바로 두 자로 ‘무기’에요. 영적 전쟁의 무기입니다. 쏴라, 쏴. 자기가 이미 죽었잖아요. 죽었으니까 쏴라, 쏴. 이렇게 되는 거예요. 두두두두두 쏘았다 이 말이죠. 이미 죽은 자에게 쏜들 마귀 쪽에서 힘을 못 쓰는 거예요. 뭔가 파닥파닥 망둥이나 미꾸라지처럼 살아줘야 이렇게 압박을 가하는 재미가 있을 건데 이미 죽은 자거든요.

누가 제 그림자 한번 밟아보세요, 아픈가. 밟아봐야 실체는 몸과 지체거든요. 예수님 몸 안에 들어가 버렸어요. 머리가 하는 전쟁을 지체가 하는 거예요, 같은 몸체기 때문에. 주님이 하신 전쟁을 지체가 하게 된 겁니다. 얼른 납득이 안 될 때는 이 그림 다시 하면 되죠. 여기 그림자(수평) 있잖아요. a, b, c, d, e, ... 일어난 모든 일들, 내가 여기 살았다, 뭘 했다하는 이 일들은 그냥 내가 하고 싶어 한 일들이 아니고 수직적인 A, B, C, D, E,...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가 올라가셨던 그 모든 사건들이 여기서 대응이 되는 겁니다. 지상에서 되풀이, 반복이 되는 거예요.

주님이 당했던 수모를 같이 당해야 성도라 합니다. 주님은 이 땅에 살려고 오신 분이 아니에요. 떠나기 위해서 오신 분이에요, 떠나려고. 뭘 남기고 떠나느냐 하면 죽을 자도 의롭게 되어서 천국에서 살 자 될 수 있는 그런 그라운드, 근거 하나 남기고. 그게 예수님의 피인데 그게 새 언약이거든요. 내 살과 내 피, 그 새 언약을 남기고 그냥 수직으로 올라가시려고 온 거예요. 오늘 본문에 나오잖아요. 하늘로 올라갔잖아요. 그럼 일은 게임오버, 끝났어요.

그럼 이것(수평)은 뭡니까? 장날의 마지막 파장되어서 저녁 노을에 바람만 부는 거죠. 황야의 무법자. 다 끝났어요. 덤불 같은 것이 사막에서 불어서 돌아다니고 망토 걸친, 더운데 망토는 왜 입나, 망토 걸친 무법자가 마지막 장면에 멕시코 악당들 죽이고 권총 세워서 훅 불면 따다다다~ The end해가지고 아름다운 음악 깔리고 석양 노을 지고 다음 시리즈 제4편 시작되면 또 다른 동네 가서 악당 죽이고 돌아다니잖아요. 그 권총은 가만둬도 식을텐데 뭐한다고 부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넣으면 되는데 폼 나게 훅 한번 불고 망토 한번 휙 뒤로 젖혀가지고 이 바닥 완전히 마무리지었다 이 말이죠.

그렇게 주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거예요. 이건 파장이에요. 왜 신을 믿고 제사함으로 상납하고 왜 이런 게 일어났느냐 하는 그 논리적 구조는 두 번째 시간으로 미루겠어요. 왜냐하면 그 논리, 마귀가 준 지혜가 너무 복잡해서. 왜 신을 믿고 왜 예수 믿어서 자기 존재를 계속 붙잡고 포기를 못하고 종교에 귀의하고 교회에 귀의하고 기독교에 귀의해서 자기 및 가족들이 천국가려고 시도하는 그 현상이 왜 일어나는가. 왜 여전히 자기 존재에 대해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가. 그 이유가 뭐냐.

그것은 두 번째 시간에 하겠는데 여기 첫 번째 시간을 마무리 지으면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까 이야기한 성도의 특징인 여유를 가지는 거예요. 성도되기 전에, 성령오기 전에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어요? 자기 존재에 집착하는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였겠죠. 집착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승천하시고 위에서 뭐가 내려왔습니까? 여기서 성령이 오죠.

성령이 성도 머리 위에 오게 되면 이 성도는 목이 꺾이고 숨을 못 쉬고 죽어버리죠. 모가지를 꺾어버려요. 어떤 방향이냐 방향은 정해진 것 아니니까. 이거 고개 안 숙이나? 이렇게 되는 거죠. 모가지를 따버리는 거예요. 성령께서 나의 모가지를 따버리는 거예요. 모가지를 따버리면 나의 어느 부분이 날라가 버립니까? 머리 부분이 날라가니까 이 지체는 껍데기에 불과한 겁니다. 껍데기에 불과한 거예요.

멸치 머리 딸 때 그 멸치가 살아있다고 누가 생각합니까? 멸치 머리부위를 떼버리죠. 다시물 낼 때 그렇게 하잖아요. 우리는 주님의 다시물 용도에요. 다시물거리밖에 안돼요. 다시물 내기 전에 우리의 머리를 떼버린다고요.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얼굴 부위를 없애버리는 겁니다. 목 없는 미녀... 목 없는 미녀라는 말이 이해가 안되는 게 목이 없으니 미녀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요. 목 위가 날라가버렸으니까.

그런 식으로 성령이 머리 부분을 차지한다는 말은 모든 우리의 사고, 안다는 것, 지식, 내가 앞으로 이렇게 행동해야겠다, 그 모든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평소의 생각은 시간과 공간을 나를 위한 시간과 공간이겠죠. 여기서 나온 것이, 요새 얼마 전부터 계속 강조하는, 바로 뭐가 문제냐 하면 예측한다는 거예요.

예측은 시간요소를 자꾸 가미한다는 거예요. 너 이렇게 지내다가 뭐할래? 뭐해서 밥 먹고 살 건데? 자꾸 예측을 요구하죠, 예측을. 앞으로 남아있는 시간동안 너 뭐 할 거야? 이렇게 되죠. 이 모가지가 꺾여버려야 돼요. 그러면 정답은 뭐냐 하면 주께서 앞으로 인도할 겁니다. 이것은 어설픈 정답이에요. 어설픈 정답이라는 말은 예측을 안 하면서 마치 주님이 오시면 나에게 예측할 거리를 준다는 식으로 꼼수를 부리는 것 같이 하면 안돼요.

전도서 11장 1절 한번 읽어보세요.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그 음식물을 던지라 하는 것은 전도서 전체의 내용으로 볼 때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다루는가. 하나님이 언약백성, 성도를 어떻게 다루는가. 전도서 1장 1절에 보면 허무하죠, 전부다. 허무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바람이고 강물이에요. 그뿐 아니고 모든 것이 크게 허무하지 않아 보이는 것들이 허무하게 느껴지잖아요. 거기에 누구를 띄워 보내라? 네 자신을 실어서 사방팔방으로 너를 날려 보내라 이 말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는 네가 이 세상에 그냥 뛰어드는 거예요. 뛰어들면 세상이 나를 살릴까요, 아주 뭉개버리고 박살낼까요? 내가 만든 나라는 어설픈 뗏목을 가지고 태평양 바다에 나가게 되면 그 뗏목이 무사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겠습니까, 도중에 난파되겠습니까? 난파되겠죠. 그 깨어지게 하는 것, 주의 뜻은 이 땅의 세계에서, 악마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나의 존재가 악마의 영향력 밑에서 완전히 산산조각 나는 것,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입니다. 그걸 원해요.

그러니까 나한테 위험하다, 나는 극복 못한다, 불가능하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는 내가 되는 절호의 찬스가 되는 거예요. 찬스 정도가 아니고 챈스가 온 겁니다. 아, 드디어 내가 불가능한 나의 망가짐이 드디어 성사되는 멋진 순간이구나. 그럼 내 존재는 깨지니까 존재는 날라가 버리고 나는 뭐로 전환되죠? 존재에서 예수님의 존재를 대변해주는 사건이 되죠. 그러면 하루하루 놀지 않고 사는 거예요. 5년 뒤에 주께서 사건 만들어준다고 하면 5년 동안 놀아야 돼요. 그게 아니고 어떤 경우라도 논다는 게 성립 안 돼요. 하루하루 단위입니다.

그래서 첫째시간 이 그림하고 10분 쉽시다. 마그마가 땅에 덮였죠? 안에 악마의 모든 땅의 저주의 기운, 찐~한, 깊은 저주, 찐하고 깊은 저주가 퇴적되어 있어요. 이게 한 덩어리, 존재에요. 인류의 역사에요. 지구는 45억년, 우주는 137억년, 이렇게 우기는 그 진화론적 사고방식에 우리는 운명을 같이 한 같은 배에 타서 힘을 합치자고 하는 그런 과학 세계에, 한 덩어리인 이걸 끊어버립니다. 매 하루하루 기준으로 이걸 끊어버려요. 주님의 시간으로 난도해버리면 이 한 조각이 존재가 되지 않고 사건이 됩니다. 감사할 수밖에 없죠.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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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0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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