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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유튜브강의 (348강, 349강) 망각 , 움직임의 방향 210420강의-

348강-YouTube강의(망각 이사야 44:21)20210420-이 근호 목사

제348강, 제목은 ‘망각’. 잊는다는 이야기죠, 잊어버리는 것.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을 획득했다. 이것은 주의 뜻이 아니고 마귀의 뜻이었다. 창세기 3장에 그렇게 나와 있죠. 여기서 선과 악을 안다는 것이 너무 길잖아요. 이것을 줄여봅시다. 그냥 아는 것. 지식.

그 지식 자체가 인간으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을 가로막게 됩니다. 안다는 게, 아는 게 화근이죠. 문제가 된 겁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안다는 그것이 하나님께로 연결되는 아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계시는 곳과 다른 방향으로 아는 거예요. 마귀가 세상을 아는 것, 그쪽에 편향되어 있습니다. 마귀가 그것을 따먹으라 했으니까.

아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아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지식으로 무장시키는 쪽으로 아는 것이 계속 쌓이게 되어있어요. 아는 것이 자기를 더욱더 공고히 한다. 라는 식으로 점점 더 주님이 창조하신 그 인간과 비교해서 변질되어가죠.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린아이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 하는데 그 어린아이와 어른의 아주 노골적인 대조되는 차이는 바로 어른은 안다고 여기고 어린아이는 몰라도 된다는 생각이죠.

어린아이가 자기가 지식 없다고 뭐 고민하고 울고불고 이러지 않죠. 아는 것과 전혀 상관없이 마음껏 웃을 때 웃고 울 때 또 울고. 자유롭죠. 그러니까 인간은 그 어린아이시절이 지나버리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거예요. 아는 것이 쌓이기 때문에 이미 알게 된 것을 버릴 수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은 뭐냐 하면 너희들은 그렇게 많이 알고 그렇게 지혜가 있으면서 어떻게 하나님 자체를 아는 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먹통이냐. 네가 안다는 것이 도리어 하나님을 아는 것에 방해물이 되었다, 장애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찾아온 겁니다.

이사야 1장 3절에 보면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참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감히 그 존엄한 사람을 소에 비유하고 아주 천한 나귀에다가 비교시키고 있습니다. 아주 좋은 대학 나오고 박사학위를 딴 그 사람보고 당신은 소보다 못하고 나귀보다 못하다고 하면 대단한 모욕이죠. 이 학위 따려고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습니까.

그런데 그 공부하니 무슨 소용이 있어요? 하나님을 아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자기를 몰고 가거든요. 아는 것이 하나의 베를린 장벽처럼 가로놓여 있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묻죠. “네가 네 임자를 아냐? 네가 너를 만드신 하나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 그렇게 묻고 있습니다. 신학을 해도 마찬가지죠.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아주 단정내리고 있습니다. 내 백성은 모른다. “내 백성은 모른다” 했으니까 그 문장을 반대로 하게 되면 “나를 모르는 자가 내 백성이다” 이렇게 돼요. ‘내 백성은 모른다’와 같은 뜻으로 ‘전혀 나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그 다음에 ‘내 백성 이스라엘’.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구원하시면서 ‘너희들은 이쯤 알아야 되지 않느냐’ 라고 시작하시는 것이 아니고 아예 너희들은 ‘모른다’ 부터 내가 다 해줄게. 아예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게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내가 너희들에게 알게 해줄게. 이렇게 되는 거예요. 또다시 지식을 동원할 생각하지 말라는 거죠.

다시 말씀드려서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모르게 되어있죠. 제가 말씀드린 대로 모르는 겁니다.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시면서 거기에다가 또 1장 18절에 보면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이 색깔 비교를 보게 되면 눈같이 양털같이 희잖아요. 그럼 우리 인간 세계에 흼의 반대말은 검어야 되는 겁니다. 검죠. 그런데 양털의 반대말이 검은색이 아니고 진한 붉은색이 돼요. 흰 눈의 색깔과 반대색깔이 주홍이다 이 말이죠.

그것은 아무것도 없어야 될, 깔끔해야 될, 산뜻해야 될 거기에 쓰잘데기 없는 아는 것으로 채우듯이 도드라지게 죄가 빨갛게 드러난다는 거예요. 시선을 확 끄는 거죠. 인간은 모르지만 주님은 아십니다.

이 순진한 너희들아. 이렇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고 이 붉디붉은 너희들아. 아주 눈에 확 띄는 거예요, 붉다는 게. 멀리서도 띄는 거예요. 검은색 되어서 흐리멍텅한 게 아니고 눈에 확 띄는 겁니다, 죄가. 죄 색깔이 뭐냐. 검은색이 아니고 죄의 색깔이 주홍 같아요, 찐한 주홍 같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성질날 때는 립스틱 짙게 바르죠, 빨갛게. 멀리서도 입술만 보이게. 나 지금 화나고 있어. 나 성질나고 있어. 립스틱 짙게 바르죠. 쫙 그어버리죠. 한바탕 하겠다는 식으로.

자, 그래서 결국 이것은 인간이 안다고 우기는 그것이 자기 죄가 얼마나 유별난 죄를 짓고 있는지 더욱더 모르게 만드는 그러한 배경이 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런 처지에 이르게 되고 말았다는 거죠.

그럼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느냐. 이사야 44장 21절에 보면,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했죠. 기억하라는 말은 오늘 제목처럼 너희들이 자기 자신을 위한 지식쌓기에 매진하다 보니까 기억할 분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 아니고 출애굽 사건, 여리고 사건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의 사건. 성경에 나오는 사건, 사건들. 일어났던 그런 갖가지 사건들, 아말렉 전쟁 그리고 사사기의 숱한 전쟁들. 왜 전쟁을 일으키느냐 하면 하나님은 존재로 기억하라는 것이 아니고 사건으로 기억하라는 겁니다. 특히 출애굽 사건 같은 거죠.

왜냐하면 그 사건을 통해서 인간이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 아무짝도 소용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돼요. 사건은 내가 아는 힘과 지식이 소용없다는 사실을 들추어내는, 그것을 밝혀주는 사건들이었어요. 이스라엘 역사의 특징이 뭐냐 하면 가진 것이 아무짝도 소용없는 거예요.

그래서 기드온 전쟁 같은 경우에 역으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더 강조하기 위해서 달랑 300명을 데리고 갑니다. 이 말은 300명 있잖아. 라는 말하지 말고 에게, 300명밖에 없는데 어떻게 135000명을 이기냐. 이것은 없는 거다. 300명 있음으로써 ‘없다’를 강조하기 위해서 300명을 준 거예요.

이사야 44장 21절,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주님을 망각했어요. 또 망각 안할 위인은 없어요. 모든 인간은 다 망각했는데 우리가 믿어야 될 것은 나는 비록 주님을 잊었지만 주님은 나를 잊지 않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나의 망각이라는 토대 위에 주님의 기억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망각이 필수적이죠.

이하림gblayer('gblayer4', 'summerwood', '이하림', 'summerwood96@naver.com', '', '1', './program');(IP:124.♡.211.180)

21-04-21 06:06

349강-YouTube강의(움직임의 방향 마태복음 2:2)20210420-이 근호 목사

제349강, 제목은 ‘움직임의 방향’. 달리 이야기하면 ‘운동의 방향’,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방향을 갖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 아닙니다. 인생에는 방향이 없어요. 그냥 몸부림치는 것이지 방향이라는 게 없습니다.

왜 인간은 방향이 없느냐 하면 본인이 중심점을 이미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세상의 중심점을 본인이 접수하고 있거든요. 그럼 원에서의 원점은 방향이라는 게 없어요. 산이 있다면 산의 최정상에서는 사실 방향이라는 게 없어요. 도달점에 다 도달되었기 때문에 더 갈 곳이 없잖아요.

그처럼 인간은 자기가 미완성이라는 그런 쪽의 이야기를 누구한테 들으면 굉장히 섭섭하고 그 사람에게 분노를 일으킵니다. 내가 어때서? 내가 뭐가 부족한데? 이렇게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것은 자기가 중심이니까 그냥 폴짝폴짝 스카이콩콩 하듯이 뛰는 겁니다. 그냥 뛰어보는 거예요, 그냥.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폴짝. 인생자체가 그냥 팔짝팔짝 뛰기의 연발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방향 없습니다.

정말 방향을 안다면 자신이 이런 식으로 내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 있어줘야 방향이 생기는 거예요. 아, 나 이렇게 살면 안 돼. 이건 안 돼. 이건 엉터리야. 내 인생 이거 헛살았어. 이런 삶은 잘못된 거야. 뭔가 자기 인생이 잘못되고 있다는 자각이 있어줘야 그 다음부터는 방향이 발생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특히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보실 때 간편하게 보시는 방법 중 하나가 방향을 잡으면 돼요. 인간들은 구경꾼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아무 보탤 것이 없어요. 제자들도 그냥 구경꾼이에요. 제자들과 다른 관람객의 차이점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구경한다는 것.

사람들은 자기가 인생의 중심이고 자기가 최고봉이기 때문에 방향이 없다 했죠. 그러면 인간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야 되는지 방향은 누가 시범조로 보여줘야 되냐면 예수님뿐입니다.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쉽게 보는 방법은 예수님은 출생해서 어디로 가느냐를 보세요. 이거 뭐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해석 그냥 반 이상 다 한 거예요. 방향을 잡아줘야 돼요, 방향을.

그런데 보통 성경해석 마태, 마가하면서 방향을 주님 가신 방향으로 잡아야 되는데, 목사님, 저 어떻게 살면 돼요? 갑자기 방향이, 그 화살표 끝이 자기 심장 쪽으로, 자기 쪽으로 막 돌려요. 화살표를 억지로 막 꺾었어. 이거 꺾으면 안 되는데. 내 쪽으로 오면 안 된다 이 말이죠, 방향이.

성경은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에요. 방향이 중간에 엿가락처럼 휘어져서 내 쪽으로 향하면 안돼요. 저 어떻게 돼요? 저 천당 가겠어요, 지옥 가겠어요? 방향을 휘어서 이렇게 나한테 물으면 안 됩니다.

요한복음 12장에서 분명히 예수님이 이야기했습니다. 너희는 내가 가는 방향 쪽으로 오지를 못한다. 베드로보고도 이야기했고 제자들뿐 아니고 이야기했죠. 바리새인에게도 이야기했어요. 너희들은 내가 가는 곳에 합류하지 못한다. 난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에.

결국 인간은 전혀 방향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그 말씀으로 확연히 다 드러났어요. 아, 인간은 갈 곳도 모르면서 그냥 폴짝폴짝 지가 지 기분에 답답해서 뛰는구나. 인생이라 하는 것은 딱 깨놓고 말해서 기분에 죽고 기분에 사는 겁니다. 그 외에 뭐 없어요. 그게 전부에요.

순간순간 기분 따라 웃었다가 기분 따라 울었다가. 거기다 만약에 제가 “어디로 가십니까?” 물으면 “가기는 뭐. 내가 늘 여기 있었는데 가긴 어딜 갑니까?” 갈 데도 없고 가는 방법도 모르고 그냥 기분 따라서 쭈그렸다가 기분 좋으면 폴짝 그 자리에서 뛰고. 그게 전부죠.

일기 써보세요. 일기 쓴 내용이 뭡니까? 오늘은 날씨가 맑았다. 아침에 아버지한테 꾸중 들었다. 아, 기분 나쁘다. 그런데 저녁에 아버지가 맛있는 찐빵 사줬다. 기분 좋다. 결국에 하루하루가 자기 기분 관찰하기. 자기 기분 관찰하고 끝. 잤다. 내일 아침에 또 시작이 돼요.

마태복음 2장에서 별을 바라보는 동방박사들은 세상에 이런 복이 어디 있습니까. 그냥 줄곧 별만 바라보다가 아니, 별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조금 움직이다 그만 둘 줄 알았죠. 아니, 별이 따라오라네, 이 별이. 별이 무엇을 대표하느냐. 이 대자연을 대표해서 처음부터 이 자연은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수학에서 벡터(vector)라고 하는데. 수학에서 양(量)을 스칼라(scalar)라 하고 방향 쪽으로 갈 때는 그것을 벡터라고 이야기해요. 거기에 어떤 질(質)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양이냐 질이냐.

“네가 크고 부자 되고 잘 먹고 잘 살고 양적으로 살 거냐, 아니면 어떤 방향을 향한 질적인 인생이 되겠느냐?” 그럼 “난 질적인 인생이 되고 싶다.” 이렇게 이야기하겠죠. “그럼 너가 너 됨의 질은 어느 지점에서 오는지 네가 아느냐?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를 네가 아느냐?” 상당히 중요한 문제죠.

동방박사의 이 별 따라 온 이것이 동방박사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베드로후서에 그런 말씀이 있죠. 베드로가 하는 말이 내 안에, 내 마음에 샛별이 떴다 (베드로후서 1장 19절,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샛별은 방향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샛별이 뜬 그 곳, 네가 영원히 안식해야 될 그 곳을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주를 통해서 너에게 알려줬다’ 라는 것입니다. 변화산 이야기를 하면서 그 뒤에 이야기했죠.

자, 동방박사가 방향성을 갖습니다. 이 방향성이라는 것이 왜 중요하느냐 하면 하루하루 일과에서는 사적인, 자기 기분에 웃고 기분에 우는 그 사적인 것을 이게 깨끗하게 표백해버려요. 사람이 어떤 방향을 바라볼 때는 지금 한 달 수입이 얼마냐, 도대체 내가 잘날 수 있는 거리를 얼마나 챙기고 있느냐를 표백해버려요. 그것을 하얗게 탈색시켜버립니다. 그딴 게 의미가 없어요. 왜? 가야될 곳이 있기 때문에. 존재의 가벼움이죠. 굉장히 존재가 가벼운 거예요.

적절한 예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안중근 의사. 그 사람은 자기 아내한테 사과를 했거든요. 보통 남자들은 가정을 돌보는데 나는 나라 살리는 그 거사 때문에 미안하오. 우리가 낳은 자식은 당신이 알아서 키우고 나는 내 갈 길을 갑니다. 대한국인 손바닥 탁 주홍색 피를 묻혀가지고... 갑니다.

자기 인생에 어떤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다시 말해서 이 국가와 민족을 아우르는 그러한 큰 사명감이 있을 때는 가정 일도 아주 소소하게 되겠죠. 이거 또 쓸데없이 되지도 않으면서 지 마음대로 하는데 가정에다가 적용시키지 말고요. 그러니까 이 예가 적절한지 적절하지 않은지 모르겠다 이 말입니다.

성도한테는 주님의 사명이 주어집니다. 나의 사명이 아니에요. 자꾸 내 사명, 내 사명이라는 말,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내 사명은 필요 없습니다. 주님이 하고자 하는 일이 방향이 있어요. 아버지께로 합류하는 거예요. 그 때는 아버지와 내가, 너희들이 하나가 되는 그 방향으로.

그래서 동방박사는 어디로 가느냐. 아기 예수로 가죠. 그런데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이 동방박사만의 경우가 아니고 오늘날 모든 성도한테는 성령이 주어졌습니다. 성령이 주어졌기 때문에 자기 체면과 관련된 사소한 자기 자랑 같은 것은 탈색해야 돼요.

늘 표백될 때 아, 주께서 특정한 방향으로 나를 이끄는구나. 세상 것, 이딴 것 필요 없는 그 나라. 천국이죠. 천국 갈 때는 이런 무거운 짐 같은 것은 하찮게 여겨야 된다는 것을 주께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매일 삶 속에 저 위를 보라고 오늘날 방향을 주신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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