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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10402a 울산강의-레위기 27장 : 초과적인 것자유게시판레위기

20210402a 울산강의-레위기 27장 : 초과적인 것
(강의:이근호 목사)

레위기 27장 9절, “사람이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생축이면 서원물로 여호와께 드릴 때는 다 거룩하니 그것을 변개하여 우열 간 바꾸지 못할 것이요 혹 생축으로 생축을 바꾸면 둘 다 거룩할 것이며 부정하여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못할 생축이면 그 생축을 제사장 앞으로 끌어 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우열 간에 정가할지니 그 값이 제사장의 정한대로 될 것이며 그가 그것을 무르려면 정가에 그 오분 일을 더할지니라” 그렇게 돼있지요.

여기에 오분의 일이란 말이 나옵니다. 사람 대 사람의 관계는 1:1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 대 하나님의 관계는 1:1.2가 돼요. 오늘 레위기에 있어서 13절에, “그가 그것을 무르려면 정가에 그 오분 일을 더할지니라” 오분의 일이 0.2거든요. 0.2를 더한다. 사람 대 사람의 관계가 1:1 되는 것은 모두가 어디에 속하느냐 하면 모두가 다수에 속한다.

다수에 속한다는 것은 돛대가 없다, 최고가 없다. 이것을 일자, 그러니까 하나밖에 없는 분이 인간에게는 없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다수라는 곳에 모두 여기에 포함이 돼있어요. 그런데 1:1 같은 인간끼리 있는데 자기가 치고 나온다? 치고 나오게 되면 하나님께서 치고 나올만한 인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인간들 속에서.

방금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아주 쉽게 이야기하게 되면 너희는 하나님만 믿으라는 이런 뜻이에요. 그런데 하나님만 믿으라는 것은 뭔 뜻이냐 하면 같은 다수에 속한 그렇고 그런 인간들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게 레위기 성경을 대할 때 하나님의 계시를 대할 때의 기본자세가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믿겠다. 그런 자세는 필요 없어요. 나는 인간을 믿지 않겠다. 그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럼 인간을 믿지 않겠다는 그 자세 속에 본인도 포함이 될까요, 안 될까요? 포함이 돼야지요. 본인도 포함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믿겠다는 말은 뭔 뜻이냐 하면 나를 믿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나나 너나 모두 다수, 다수란 말 알지요? 여럿. 여럿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건 성경에서 요구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성경을 덮어버렸습니다. 난 성경 모른다고, 성경 안 보겠다고 자부를 합니다. 그러면 성경 없는 이 세상에 나가서 인간은 본인이 다수에 속할까요, 아니면 최고가 되고 싶어 할까요? 최고가 되고 싶어 하는 겁니다. 이 점을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가 잘 안 되니까 제가 설명을 해드릴게요.

하나님 없다고 치고 하나님 안 계시다 치고 성경도 없다고 치고 하늘에서 어떤 계시도 없다고 치고 인간들에게 그냥 맡겨놓게 되면 인간들은 이걸 계층화한다고 합니다. 계층화란 말보다 더 쉬운 말로 계급화 한다, 또는 서열화 한다는 거예요. 어떻게 서열화 하는가를 제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서열화 하느냐 하면 여러분들이 하는 게임 있지요. 의자 셋 놓고 네 명의 사람들이 노래 부르면서 휘파람 불면 의자 하나 꿰차 앉는 게임 있잖아요. 이처럼 인간들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서열화를 내가 여기 있다면 내가 괜찮은 곳에 들어가려고 애를 써요. 이 괜찮은 것이 뭐냐 하면 다수가 되는 겁니다.

만약에 여기 괜찮은 곳을 전경련이라 합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전경련. 여의도에 가면 육십 몇 층 건물 정말 예뻐요. 잘 지어놨어요. 전국경제인연합회, 우리나라 재벌만 회의하는 곳이에요.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자기 삶의 목표가 이 다수에 들어가는 것, 전국경제인연합회, 재벌 연합회 들어가는 게 목표가 된다면 전국경제인연합회, 이게 개인일까요, 다수가 될까요? 그 자체적으로 다수지요. 다수인데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집안 형편이 안 좋아서 허송세월하면서 이것하다 말아먹고 저것하다 실패했단 말이죠. 그런데 어떤 단체가 있느냐 하면 ‘장돌림’이란 단체가 있는 거예요. 장돌림이란 말 여러분 잘 모르겠지요. 이것과 친근한 말이 장돌뱅이라 하는 거예요. 장돌뱅이 다수 중에 어떤 게 있느냐 하면 장날마다 천막치고 기계 들고 오뎅 말아서 파는 장돌뱅이, 어떤 사람이 이것을 맛있게 구웠다 말이죠.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것도 저것도 안 되고 하니까 자기가 마음을 낮추었어요. 나도 저 장돌뱅이처럼 장날마다 돌아다니면서 오뎅이나 말아서 하면 장사가 되겠다고 해서 그 사람 기술을 배우는 거예요. 그럼 이 사람 목표는 뭐냐 하면 오뎅 장사하는 여기에 들어가는 겁니다. 다수가 되겠지요. 그러면 전국경제인연합회 재벌 다수와 이 다수 가운데 계층화, 서열화가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서열화가 됐지요.

이걸 다수의 다수라 하는 거예요. 이 세상을.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이제 아시겠지요. 이 세상은 끼리끼리 마음 맞는 사람, 수준 맞는 사람끼리 모이는 거예요. 전국연예인협회, 이것도 마찬가지잖아요. 전교조, 전국공무원노조, 전국미용사협회. 당연히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들어갔다 해도 그 자체적으로 서열이 있겠지요. 서열이 있겠지만 일단 하나로 똘똘 뭉쳐있는 거예요. 자기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초등학교 애들 있으면 학부모 모임이 있단 말이죠. 학부모 모임이라는 여기에 꼭 들어가야 됩니까? 학부모 모임에 들어가는 사람 있고 안 들어가는 사람이 있단 말이죠. 그 단체에. 그러면 왜 안 들어가느냐? 이 사람들은 다른 데 바빠. 전국편의점 그 일한다고 바빠서 두 가지에 걸치질 못해요. 이쪽에 편의점이니까 또 다수가 있겠지요.

그러니까 이 세상은 뭐냐? 다수의 다수에요. 다수의 다수기 때문에 여기에 일자, 절대적인 궁극적인 최고의 계층은 있을 순 있겠지요.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돈 많은 데가 전국경제인연합회지요. 경제에선 그렇지요. 그런데 한 사람이 절대적으로 다 갖는 것을 이 세상이 용납됩니까? 용납이 안 되지요. 그게 오래 갑니까? 오래 가지도 않지요. 네가 회장 자리에 언제까지 있는지 보자. 5년, 10년 하다 내려와야지요. 대통령도 마찬가지고.

지금 소련이나 북한이나 이슬람국가 보루네오인가 한 사람이 완전히 죽을 때까지 다 쥐려 하겠지요. 그러면 러시아 대통령이 2030년까지 오래 해먹겠다고 그렇게 나섰는데 그럼 이 세상 전부가 러시아 대통령 것입니까? 아니지요. 러시아 대통령도 하고 다른 대통령도 하고 다수를 이루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뭐냐? 다수의 다수 세상이기 때문에 자기의 취향에 맞게 자기 마음에 드는 쪽으로 다수라는 단체의 이동이 가능한 거예요. 아무리 이동해 봐도 절대적인 절대자, 최고 일자, 오직 하나밖에 있는 그분에게 속하겠어요, 안 속하겠어요? 자기 인생을 자기가 관리하고 책임지려하는 겁니다.

내가 다수에 걸쳐있으면서 예를 들어서 오뎅 말아먹는 단체에 속해서 이번엔 한양시장이다, 이번엔 창원의 장날이다, 라고 정보대로 해야 되는데 나는 내 마음대로 한다면 그 단체에서 쫓아내버리죠. 그럼 이 세상은 뭐를 용납하지 않습니까? 모든 것을 아우르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모든 것을 억누르는 단 하나의 존재를 이 세상은 인정 안 하지요. 그게 우리 생활의 습성이 되었고 습관이 된 겁니다. 그런 습관으로 성경을 보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내 처신은 내가 알아서 한다, 내 유리한 쪽으로 판단 잘 해야지 그 정신밖에 없어요. 이 말은 우리가 성경 볼 자격조차 안 된다는 뜻이에요. 성경을 해석하거나 성경을 이해할 그러한 자격조차 되지 않는 존재에요. 이미 우리는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내가 관리한다는 겁니다.

아까 코로나 쟀잖아요. 누가 시키던가요? 목사님이 시키던가요, 안 그러면 나라에서 시키던가요? 우리나라에서 시켰지요. 미국에서 시켰는가요? 아니지요. 지금 자기 소속이 어딥니까? 대한민국 소속이잖아요. 대한민국이란 다수에 속해 있지요. 그러면 그걸 왜 하느냐 하면 안 하게 될 경우에 누구한테 불이익이 옵니까?

제가 묻는 것은, 누가 최종자인가를 묻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누가 최종자입니까? ‘나’지요. 그러니까 인간은 이미 누굴 믿고 있느냐 하면 나를 믿고 있어요. 어떻게? 나를 최종자로 믿고 있잖아요. 내가 누굴 믿는다고요? 내가 나를 믿고 있잖아요. 믿음의 내용은 이미 정해졌지요. 나는 누굴 믿는다? 나를 믿는다. 이 외에 다른 믿음이 있을 수 있겠어요, 인간에게는. 없지요,

하나님 믿는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이 최종자가 아니에요. 나한테 좋다 싶어서 하나님 믿는 거예요. 하나님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고 최종자는 누굽니까? 나란 말이죠. 내가 최종자잖아요, 내가. 그러니 믿음이란 게 구라에요. 전부 다 믿음이 거짓말인 거예요.

내가 최종자가 되어 내가 나를 건사하고 내가 나를 지켜주기 위해서 어느 단체에 어느 다수에 내가 꼽사리 끼면, 꼽사리란 말이 좋은 말은 아니지만 하여튼 이렇게 끼어들면 내가 오래 목숨이 부지되고 내가 보다 불편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는가, 그것만 생각하는 거예요. 죽어서는 내가 손 못 대기 때문에 하나님 믿자. 이런 식이죠. 그거는 하나님 믿는 게 아니고 하나님 이용하는 거죠.

마치 내가 장날에 장돌뱅이처럼 돌아다니는 오뎅 굽는 기술 배운 것도 그 사람을 믿는 게 아니잖아요. 그 사람에게 기술을 배우는 거죠. 그 단체에 속해야 정보를 알 수 있으니까 어느 지역에 오일장 서고 빨리 이동해라. 다음 날에는 어디 장날이다. 빨리 기계 들고 옮겨야 되니까.

심지어 붕어빵 파는 단체도 마찬가지라니까요. 혼자는 못 팔지요. 정보로 해서 자기들끼리 연맹을 이뤄서 자기 파 아닌 다른 파가 오면 밀어내고. 자리 먼저 잡으라고 하거든요. 장날에 뒤늦게 가면 자리가 없는 거예요. 붕어빵 이쪽에 같은 노조끼리 몫 좋은 자릴 다 잡아놓은 거예요. 세상살이가 뭐 있어요. 그게 세상살이 아닙니까?

각자 자기 좋으라고 자기 믿는데 그게 뭐 거기서 하나님이 천국에서 요구하는 믿음이 거기서 나올 리도 없고 있지도 않지요. 여기서 우리가 레위기 공부하면서 하나님 믿는 믿음은 뭐냐? 우리는 이미 믿는 자에요. 나를 믿는 자에요. 그런 나에게 하나님께서 뭘 요구하는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서 찾아보자 이 말입니다. 나중에 믿고 안 믿고는 제가 알바 아니고요.

하나님이 요구하는 믿음은 뭐냐? 그걸 먼저 결론 삼아 제가 써보겠습니다. 출애굽은 사람의 생산이었다. 이스라엘 나라라는 게 원래 없어요. 이스라엘 나라 되려면 하나님이 말하는 언약의 나라 되려면 사람이 있어야 돼요. 사람 없는 나라는 없잖아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모집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준 조건이 있습니다. 애굽과 결별하라는 겁니다.

결별할 때 결심해서 결별해봤자 그건 결별이 잘 안 돼요. 결별할 때 나는 이제 애굽과 결별했습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세요. 내 진심을 알아주세요. 그것 하나님이 안 받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조건을 하나 하나님께서 집어넣습니다. 조건을 견지하고 그 조건을 유지하고 있는 자가 이스라엘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 조건이 뭐냐?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지방에 바르는 거예요.

출애굽할 때 문지방에 바른 피 있잖아요. 그 피와 이스라엘 되기 위해서 남자가 일종의 수술을 받는데 그게 뭐냐? 할례수술입니다. 여자는 안 받아요. 가장이 남자기 때문에. 할례수술을 받아서 여기서 피가 나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갈 때 모세 부인이 십보라지요. 십보라가 모세에게 하는 이야기가, 당신은 피 남편이라 했어요. 피와 결부된 남자다. 하나님의 언약과 결부된 남자.

나와 결부된 남자가 아니고 만약에 모세가 아내가 너무 모세를 사랑했으면 모세가 죽을 때 아내가 대신 몸을 바치든지 해야 돼요. 그러나 하나님이 직접 모세를 죽인다는 것은 모세한테 무엇을 조사하느냐 하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그 조건이 있는지 점검하는 차원이에요. 모세가 아니고 히브리인의 어떤 잘난 집안이라고 내가 준 조건이 빠져버리면 그건 하나님의 죽음의 대상이 돼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는 대상이 되는 겁니다.

십보라가 기도하고 한 게 아니에요. 십보라가 한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아브라함부터 내려온 약속이 있었지. 그것이 무슨 약속이냐 하면 할례약속이었습니다. 후딱 아들을 할례 하니까 피가 나왔지요. 할례 받은 그것을 모세한테 던지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놔줬습니다. 살려줬습니다.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조건의 유무에요. 그 조건이 아직도 너한테 있느냐고 묻는 겁니다. 그 조건이 없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출애굽의 대상은 애굽인이나 히브리인이나 둘 다 똑같아요. 아까 여러분 하나 배웠지요. 똑같다는 말을 두 자로 썼는데 혹시 아십니까? 애굽인이나 히브리인이나 똑같다, 제가 뭐라고 썼어요? ‘다수’지요. 그냥 다수일 뿐이에요. 그냥 여럿이에요. 어떤 특이성 없는 여럿이에요. 이걸 일반적 다수성이라 하는데 어려운 말 말고 그냥 그렇고 그런 존재들이에요. 인간은.

제가 다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지요. 그렇고 그런 인간들 속에서 인간은 누굴 믿었다? 이미 나만 믿는 거예요. 왜? 같이 밥 먹고 살자는. 너도 밥 먹고 살듯이 나도 밥 먹고 살자. 너희 단체에 좀 넣어줘. 다수의 다수 세상이니까. 모든 인간을 관장하는 그런 인간을 하나님께서 두신 적도 없고 주신 적도 없어요. 이 인간세계에서.

모든 걸 관장하는 것은 마지막 이 세상 끝날 때 오시지요. 그분이 누구신지 아시지요. 모든 걸 관장한다는 것, 다른 말로 할까요? 모든 것이 그분을 위해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 때문에 생긴 그분 있잖아요. 그분은 마지막 때 오시는 거고 그분이 안 오셨다는 말은 인간은 그렇고 그런 거예요. 그렇고 그런 세상에서는 서로서로 자기 좋으라고 눈치 보며 살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눈치 보며 사는 것도 사는 것으로 여겼는데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보니까 눈치 본다고 인간세계에서는 그럭저럭 매일매일 삶을 사는 것 같은데 장날 돌아다니며 사는 것 같은데 그게 하나님한테는 안 먹힌다 이 말이죠. 하나님한테는 조건이 필요한 거예요. 조건, 할례언약, 인간의 몸에서 나온 피와 바깥에 나온 피, 무슨 피? 유월절 어린양의 피.

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인정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몸에다 이 피와 동일한 언약의 피의 흔적이 있어야 된다. 그게 할례언약입니다. 바깥의 피와 몸에 있는 피 둘 다 공통점이 있어요. 통하는 게 있습니다. 둘 다 인간의 아이디어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에서 주어진 겁니다. 하나님의 법 지시에 의해서 주어진 그걸 언약이라 하는데 하나님의 약속, 언약에 의해서 주어진 거예요.

자, 이쯤해서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출애굽 했던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무엇을 믿습니까? ➀나를 믿는다. ➁언약을 믿는다. 어느 쪽이겠어요? 언약을 믿지요. 자기 몸에 할례를 행했으니까. 실제로 어린양의 피를 발랐으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언약을 믿는 것과 나를 믿는 것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 하면 투쟁하는 관계, 맹렬하게 싸워야 될 관계지요.

몸에 할례를 행하면서도 할례 없는 자와 동일한 사고방식을 한다면 그런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이거든요. 언약을 받아놓고 유월절 어린양 때문에 출애굽 해놓고 막상 약속의 땅에 들어왔을 때, 레위기는 약속의 땅의 법이잖아요. 약속의 땅에 들어왔을 때 그들의 행세보세요. 세상사람, 이방사람과 다를 게 있습니까? 똑같지요. 전혀 하나님의 조건이 무슨 뜻인지를 모른 거예요.

지금도 어렵지만 이제부터 더 어렵게 하는 것을 용납해주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시간을 다룹니다. 시간이란 순서 짓는 걸 말하지요. 영어로 sequence라 하는데 순서 짓는 것, 우리의 머릿속에는 이것하고 난 뒤에 이것하고 이렇게 순서 짓는 게 있지요. 순서가 이렇게 있고 미리 예상한다든지 또 과거라 할 때 어릴 때는 이렇고 지금은 이렇고 순서 짓는 것, 이게 인간이 시간을 장악하려고 한다는 뜻이에요.

흔히 부모님이 애들에게 뭘 시키면 애들이 고분고분 잘 듣기도 하지만 많은 애들이 이렇게 해요. 하겠는데 내가 이것하고 다음에 하지요. 당장은 안 하고. 빨리 아침 먹으라 하면 이것마저 끝내고 한다하지요. 그러면 음식 다 식어버리잖아, 맛없잖아. 맛없어도 괜찮아요. 난 이게 더 급해요, 라고 자기고집을 부리지요.

애의 이 말은 뭐냐 하면 엄마의 시퀀스, 시간 활용도인 반면에 엄마만 있는 게 아니고 누구도 있다? 나에게도 시간 속에서 내가 할 일을 정렬하고 순서 짓는 것도 나름대로 내 것이 있습니다, 라고 되는 거예요. 시간을 순서 짓게 되면 여기서 뭐가 생기느냐 하면 기억이 생기고요. 기억에 준해서 뭘 하느냐 하면 예측을 하는 거예요. 예측은 미래, 기억은 과거지요. 예측과 미래를 하는 이것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self 자아라 하는 거예요.

인간은 하나님 믿는 게 아니고 자아를 믿는 거예요. 내가. 나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신이다, 이걸 믿는 게 아니고 내 인생에 대해서 순서 지음, 시간의 활용도, 내가 내 마음대로 할 권한이 있다고 여기는 겁니다. 지금 제가 레위기를 설명을 할 텐데요. 20%, 오분의 일 개념을 들어갈 텐데 레위기 27장 13절에 나오는 오분의 일을 더하라는 말씀을 들을 때에 그냥 오분의 일 더하지 뭐, 이러면 안 돼요.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는가? 자기 자신부터 돌아볼 줄 알아야 돼요. 나는 지금 어떤 입장에 있으면서 성경을 보려고 하는가? 그걸 같이 대비해야 돼요. 성경의 주인공은 내 마음대로 이걸 지키고 안 지키고 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말씀을 주실 때는 말씀을 주시는 배후에 누가 있어요? 배후에 우리는 다수지만 주신 분은 하나님이죠. 다수의 반대말이 최고의 단독자, 일자, 유일자, 하나밖에 없는 분.

하나밖에 없는 분이 성경을 줬으면 우리는 다수를 선호하는 내가 빠져나와야지요. 다수에서 빠져나와야지요. 그게 지당한 것 아닙니까. 아까 다수는 어떻게 산다? 끼리끼리 살지요. 그 끼리끼리에 주인공이 있다 했습니까, 없다 했습니까? 다수에는 주인공이 없어요. 지 앞가림 지가 해야 돼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출애굽해서 애굽에서 나왔다는 말은 내 뜻, 다수에서 나 좋은 쪽으로 사는 이 뜻에서 뭐로 빠져나오느냐? 오직 유일하게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뜻으로 탈출되는 것, 이게 구원이란 말이죠.

하나님을 이용할 생각하지 마세요. 그건 구원이 아닙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탈출 불가능한지 알아야 돼요. 만약에 탈출이 내 힘으로 가능하다면 하나님이 주신 언약 있잖아요. 할례언약이라든지 출애굽, 그것이 나한테는 필요치 않지요. 왜? 내가 알아서 내가 하나님 쪽으로 방향 바꿔서 나가면 되니까. 내가 그런 결심 내면 되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선 우리의 결심을 받아요, 안 받아요? 제가 아까 했잖아요. 출애굽 할 때 저 하나님 믿습니다, 한다고 받아주질 않았지요. 죽음의 천사가 와서 온 집안의 장자를 죽일 때 이 집안은 마음이 얼마나 단단한지 그걸 보는 게 아니에요. 뭐만 보고 넘어가요? 피 보고 넘어가요.

그 피가 내 핍니까, 내 피에요? 내 정성, 내 땀 흘린 핍니까? 내가 하나님 믿는다고 순교당한 그 피입니까? 아니에요. 내 건 안 받는다고요. 내 것을 안 받아서 구원해주시는 거예요. 내 것 받아서 구원해주는 게 아니고 내 것 안 받아서 구원해주는 거예요. 나의 헌금, 나의 기도, 나의 전도, 나의 예배, 교회 참석 이걸 안 받고 구원해준다는 게 하나님의 법칙이에요.

아까 십보라, 모세 부인 이야기 다시 안 해도 되겠지요. 남편 붙들고 간절히 기도한다고 남편이 나은 게 아니지요. 정말 우리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세상 다수의 다수 세계에 살면서 그 남의 것 빼먹으려고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어요. 얼마나 아부하고 얼마나 아양을 떨면 돈 몇 푼 들어오겠나, 그걸 굉장히 복잡하게 생각한다고요.

그러나 그러한 방식으로 하나님 앞에 빼먹을 생각 마세요. 하나님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간단합니다. 너 자신을 믿지 말라. 너의 가족을 믿지 말라. 네 결심을 믿지 말라. 네 각오를 믿지 말라. 내가 믿으라 할 것을 친히 넣어줄게. 그게 바로 뭘 넣어주느냐? 제가 아까 어렵다 했으니까 어렵게 하겠습니다.

인간에게는 시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이게 굉장히 무지무지하게 어려운 말이에요. 인간에게 시간을 주신 적이 없고 하나님이 주신 것은 순간을 주신 거예요. 순간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오늘 레위기에는 뭐가 들어 있느냐? 출애굽 사건이 들어있어요. 내 모든 일상을 내 스케줄대로 차분하게 침착하게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저녁 때 일기 쓰고 아무리 해도 하나님이 안 받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사건을 받아요. 거기에 약속을 줬거든요. 출애굽 사건, 이 순간을 받기 때문에 이 순간에 인간이 들어오게 되면 여기서 인간이 자기가 내세울 수 있는 모든 장점과 잘남과 자기 의는 출애굽 사건 앞에서 어린양 피 앞에서 아무짝도 소용없는 거예요. 주님께서 그걸 매일같이 반복하게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의 율법으로 반복케 하는 겁니다.

저녁에 기도하면서 하나님 오늘도 무사히 이렇게 건강하게 돈 잘 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도 부탁합니다, 하고 기도하겠지요. 이게 우리 인간의 자기 시간 장악력, 또는 시간을 관리하는 방식이 기억이라 했지요. 오늘 하루도 내가 보기에 얼추 무사히 잘 지나갔다. 기억이지요. 내일도 오늘처럼 무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측이죠. 이게 뭡니까? 인간이 내 시간이란 걸 따로 가질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우기는 거예요.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나한테 요구하는 것은 출애굽 사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죽음의 천사가 왔을 때 결정적인 것, 죽음의 천사를 결정적으로 넘어가게 만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뭐했습니까? 자기가 문 앞에 나와서 자기를 찔러서 자기 피를 발랐습니까? 문 앞에 자기를 발랐어요, 어린양의 피를 발랐습니까? 내가 내 피 낸다고 안 설쳤잖아요. 설쳐봐야 모가지 날아가지. 네가 왜 그리 나대냐 말이죠. 결국 하루일과 마치고 기도할 때 주님의 응답은 뭐냐? 이 제목 괜찮네. 제목이 다섯 자인데 구미에 당기는데, 나대지 말라.

사람이 나댄다는 것은 시간을 내 유용한 시간으로 활용할 그러한 권한이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결정적인 것, 하나님께서 결정적으로 영광을 받으시고 감사를 받으시고 찬미를 받으시는 방법은 뭐냐 하면 안 나대면 돼요. 주님 오늘 하루 종일 나는 내가 내 시간 관리한다고 까불까불 까불고 또 까불었습니다. 그러나 이 저녁 기도하는 순간에 그렇게 까불어도 하나님께서 오늘도 기도할 수 있도록 숨 고르게 해주시고 기도할 수 있도록 양식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거저주신 은혜의 혜택을 입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나란 존재는 뭐냐? 내세울 게 있었어요, 없었어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잖아요. 그런데 내세울 게 없는데 지금 숨을 쉬고 있잖아요. 그럼 숨 쉬는 근거를 다른 데서 가져와야지요. 내가 숨 쉬고 밥 먹고 사는 근거가 나한테 있지 않다면 그럼 그게 어디한테 있느냐? 그게 바로 20%에 있는 거예요.

원래 여기 16절 봅시다. “사람이 자기 기업된 밭 얼마를 구별하여” 이런 것도 하나하나 설명돼야 되거든요. 보통 인간세계에서 땅은 소유권자가 자기라면 자기 밭이고 자기 논이고 자기 땅이에요. 그런데 여기는 뭐라고 돼있습니까? 그걸 자기 기업으로 된 밭이죠. 이거는 뭐냐? 소유권자가 내가 아니란 말이죠. 기업이란 주인이 따로 있는 거예요.

하나하나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보통 인간 대 인간에서는 아까 몇 대 몇이라 했습니까? 1:1이죠. 1:1.2가 아니죠. 1:1이에요. 너나 나나 똑같아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이 사람한테 땅을 그냥 주면 그 다음부터 소유권이 이 사람한테 없어요. 줬으니까 받은 사람이 소유권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기업은 뭐냐 하면 상속이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밭을 줄 때 밭을 준 게 아니고 밭 안에 언약이 들어있어요.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있다고요. 하나님의 구원의 조건이 들어있어요. 조건이 들어있을 경우에 하나님이 밭을 주게 되면 소유권이 나한테 있는 것이 아니고 이게 고무줄 끝을 잡아당기면 고무줄이 내 것 같지요. 탁 놓으면 어떻게 됩니까? 고무줄 처음으로 시작한 그분에게 되돌아가지요.

언약에서 출발한 모든 것은 어디로 가느냐 하면 언약을 거쳐서 언약으로 되돌아오게 돼있어요. 언약은 하나님만이 이루십니다. 주신 분만이 이뤄요. 우리는 그 혜택을 입을 뿐이고. 빼빼로 과자에 땅콩 부스러기 묻힌 것처럼 코팅한 것처럼 우린 그냥 코팅된 거예요. 하나님 하신 일에 코팅된 거라고요. 그냥 얹혀가는 거예요.

아까 시간은 인간이 다루면 안 된다 했지요. 그러면 시간은 누가 다루느냐? 주님이 다루는 겁니다. 이 시간 안에 언약이 들어있어요. 출애굽 사건이 들어있다고요. 출애굽 사건은 그게 시간이 아니고 순간이에요. 시간이라 하는 것은 언약을 실어 나르는 객차에요. 모든 시간은 시작과 끝이 있어요. 시작과 끝 사이에 뭐가 흐르느냐 하면 화물차라면 거기에 하나님의 언약이 실려가는 겁니다. 그게 이스라엘이에요. 이스라엘만 하나님을 알아요. 다른 민족은 하나님을 몰라요.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간 안에 가입하면 언약 안에 들어가는 거예요. 언약 안에 들어오게 되면 언약은 내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을 주께서 거부하십니다. 기업이란 것이 화물차 객차 부분이에요. 그러면 여기 기업이란 밭을 상속받았다. 제일 좋은 건 분양받은 거예요. 소유권은 하나님한테 있습니다. 그래서 밭을 자기 마음대로 사고팔고 못해요. 밭은 어떻게 돌아오느냐 하면 1년부터 시작해서 7x7+1 하면 이게 무슨 해냐 하면 50년 만에 돌아오는 희년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모든 시간을 주관하시고 인간에게 허용하는 것은 순간이라 했지요. 순간이란 항상 뺑뺑이치고 다시 돌아오는 거예요. 월화수목금토일, 월화수목금토일 자꾸 7 다음에 돌아오는 거예요. 7x7+1 이게 희년입니다. 그럼 돌아오면 동그랗게 되지요. 폐쇄회로 동그랗게 되지요. 그러면 시간이란 시작과 끝이 흘러야 되는데 동그랗게 되니까 동그란 걸 압축하면 그 자체적으로 순간이 되는 겁니다.

늘 순간이 되는 오늘 아침부터 해서 저녁까지 계속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 내일까지 미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죽을지 살지 그건 네 소관 아니다. 오늘밤에 네 영혼 데려가게 되면 창고에 있는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내가 하나님이 네 목숨의 소유권자란 뜻이에요. 너는 네 목숨을 네가 부지하려고 애를 쓰는데 네가 착각을 해도 보통 착각을 하는 게 아니다.

오늘 새벽 2시 40분에 네 목숨 데려가면 저 창고에 내 영혼아 염려하지 말라는 그러한 예측이 무용지물 되는 겁니다. 죽음은 어디서든지 와요. 마치 순간은 사건은 어디서든지 터지듯이 나 죽는 사건도 5분 뒤가 될지 3분 뒤가 될지 10분 뒤가 될지 그건 내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그걸 생각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런 것까지 내가 생각하도록 주께서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시간은 내 운명의 끝은 내가 몰라도 돼요. 알면 안 돼요. 그건 주제넘고 까불락 대는 거예요. 사람이 자꾸 자기를 믿는 이유가 자기가 과거에 인생을 이렇게 다뤘으니까 아마 이런 식으로 가면 20년은 끄떡없다고 이렇게 자신감을 갖고 있는 거예요. 계속 자신을 믿는 겁니다. 자기 경험과 기억과. 그게 자아라 했잖아요.

밭을 사는데 그 밭을 여기 16절에 보면, “사람이 자기 기업된 밭 얼마를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면 두락수대로(뿌리는 씨의 양대로) 정가하되 보리 한 호멜지기에는 은 오십 세겔로 계산할지며” 오십 세겔은 다시 그 땅이 원래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돌아오기까지 50년, 희년까지 걸리거든요. 1년에 한 세겔이에요.

세겔은 지난 번 강의에서 했습니다. 한 세겔이 56만원. 오십 세겔이니까 2800만원. 한 호멜은 부피단위거든요. 220리터 되는데, 세겔 계산을 잘못했나? 오십 세겔이 560만 원쯤 돼요. 560만원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은 순간이죠. 순간인데 하나님은 거기다가 희년의 의미를 담아버리는 겁니다.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서는 바칠게 하면 고맙다고 받으면 되는데 하나님은 사람과 거래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자기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이 밭 자체가 씨앗 자체가 결국 하나님의 공로로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어서 그걸로 너희들이 밥 먹고 산다는 것을 알려주는 그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증거로 그들에게 기업을 밭을 준 거예요.

어떤 사람은 그 밭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거예요. 제사장에게 바치겠다는 것이 하나님께 바치는 게 되는데 바치겠다는 말은 그 바친 밭에 담겨있는 고유한 그 밭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자기 백성으로 삼느냐에 대한 내력이 거기 들어있어요. 그게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시간을 관리할 권한이 있고 인간에게는 그 권한이 없습니다. 자기가 관리하지 않더라도 늘 하나님이 주시는 시간의 혜택을 매일같이 누리고 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상세한 것은 다음 시간에 하고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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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0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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