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마 21:23-27 (세례 요한의 권세)
Re..마 21:23-27 (세례 요한의 권세)
이름 : 이근호(IP:)
세례 요한의 권세
2005년 1월 9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21:23-27
21: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21: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1: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 왔느냐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것이요
21:26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1:27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신에게 대드는 본성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대신 자신의 몸뚱아리만 절대적인 보호의 대상이 됩니다. 따라서 평소에 자신의 몸을 천국으로 곱게 모셔가기 위해 신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결국 신앙의 노선에서 탈락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자신을 신앙적인 모습으로 붙들어매고자 해도 항시 마음 속으로 끊어오르는 하나님에 대한 불만과 불편한 마음까지 지워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일단 자기 몸을 위해서 신을 믿고자 했기에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신에 대한 반발심은 제거되지 않고 여전히 활약을 허용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사회라는 큰 바다에 나가게 되면 거기에 보면, 하나님을 구태여 믿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성공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모임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신에 대한 사랑은 하나의 위선이요 이런 가면을 뒤집어 쓰고서 평소에 교회에 나와 헌금하고 봉사하고 있음다 다 들통나 버리는 겁니다.
열심히 착해보겠다는 것도 24시간 돌아가는 비디오 앞에 몽땅 자신의 마음까지 다 찍힐 때, 아마 본인조차도 역겨워서 그 비디오 볼 마음이 없을 걸요. 아무리 수시로 자신을 설득하고 신과 결합을 시키려고 노력해도 타고난 본성이 신에 대한 반발심으로 무장된 지라 결국에는 신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예수님도 이점을 잘 아십니다. 예수님 승천하실 때 그 누구도 예수님의 떠오르는 구름에 동승한 자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홀로 이 세상에서 구원 얻으실 자격자가 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 승천 이 후. 성령님께서 찾아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만이 예수님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은 철저하게 예수님에 대해서 무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성도처럼 예수님 오시기 전에서 이런 혜택을 입은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예수님의 활동에 대해서 그 당시 종교계가 노골적으로 대들고 나옵니다. "너는 누구로부터 허락을 맞고 이런 종교활동을 벌리느냐?"라고 말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갑자기 세례 요한을 그들과 자신 사이에 집어 넣어버립니다. 즉 "세례 요한의 활동이 인간의 활동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시키신 활동이냐?"고 말입니다. 왜 예수님은 세레 요한이라는 사람을 그들 앞에 등장시킬까요?
그것은 세례 요한이란 사실 육적으로 봐서 이 땅에 태어날 이유가 전혀 없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완전히 아기를 더 이상 낳을 수 없게 된 엘리사벳 이라는 여인을 통해서 세례 요한을 태어나게 하는데 이것은 한 가정의 행복이 아니라 예수님과 연관을 짓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인간은 태어나면서 그 누구도 구원될 자격도 없고, 또한 자기 자생력으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능력도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거부당하는 대상인데 오직 예수님과 연관된 자만이 영생을 얻게 되는 겁니다.
그런 인간의 생산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로부터 난 자라만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권세로서 자기 몸을 감싸는 형식으로 살아남을려고 합니다. 즉 신으로부터 권세를 받았기에 이 지상의 대단한 권세를 지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맞다는 식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싶어합니다.
이게 바로 성화론이라는 것을 내세우는 이유입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착하다고 인정받은 자라면 그 착한 만큼은 보상이 반드시 주어지게 되는데 그 보상책이 바로 세상 권세와 돈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권세가 많이 가진 자들, 즉 하나님으로부터 착하고 신앙좋다고 인정받은 자들에게 세상 사람들은 복종하는 것이 신이 정한 질서에 합당하다는 주장을 늘어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성직자들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 예수님은 난데없이 세례 요한으로 대드십니다.
이 세례 요한의 존재와 실체에 대해 이미 유대 권력층이 조사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19-27에 보면,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저희는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낸 자라 또 물어 가로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찐대 어찌하여 세례를 주느냐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즉 세례 요한의 존재의 의미는, 아무나 예수님에게 올 수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는데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세례 요한 뒤에 누가 막 들어서게 되느냐와 결부시켜서 생각하라는 겁니다.
이 말은 곧, 세례 요한처럼 하나님에 의해서 보냄을 받는 자에 한해서만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결부된 자에 한해서는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권세가 바로 하늘로부터 오는 권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세례 요한을 앞장 세우시면서 세상의 권세가 엉터리임을 고발하고 계시는 겁니다. 예수님을 못 알아보는 권세는 하늘이 주신 권세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례 요한은 평소에 어떻게 살았습니까?
요한복음 3:29-30에 보니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라고 되어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소실되고 닳아없어져도 오직 예수님과의 연관성 만으로 즐거워합니다. 자신은 그 분의 신부요, 예수님은 자신의 신랑이라는 겁니다. 바로 이런 사람만이 참된 신자요 다른 사람은 아닙니다.
이런 자리에 서 있을 때 비로소, 사도 바울하고도 이야기가 통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그리스도 외에는 알지 않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랑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악마는 예수님에게 마지막 유혹으로 세상 권세와 부귀 영화를 약속했습니다. 마지막 협상카드가 바로 그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세상에서 현재 통용되고 있는 권세를 제공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는 그런 권세가 아무런 쓸모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도리어 세상 권세를 내어버려야 될 판이기 때문입니다.
유혹 같지도 않는 유혹을 한 셈입니다. 마치 대머리에게 머리 빗을 선물하는 식입니다. 예수님 자체가 이미 아버지의 권세로서 총 무장된 입장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만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이런 마음이 있는 자가 이 세상에서의 자유인이요 신앙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능력으로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창세 전에 예수님 안에서 구원되기로 작정된 자이기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긴 것으로 알고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