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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10305a 울산강의-레위기 27장 : 세겔과 십자가자유게시판레위기

20210305a 울산강의-레위기 27장 : 세겔과 십자가
(강의:이근호 목사)

레위기 27장 봅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 사람이 여호와께 드리는 방법이 있다. 방법이 있다는 것에 주안점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받으시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거절하지 않는다. 인정한다는 뜻이에요. 이것은 이스라엘이 당연히 하나님께 드려야 될 백성들인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만약에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그 인간은 어떤 형편에 놓여있을까요?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 형편에 놓여있겠지요.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께 안 드렸다는 게 돼버립니다. 이스라엘 내에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에 인간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한다, 라고 이야기하시는 것은, 네가 너를 그냥 놔두면 안 된다 이 말이죠.

하나님께 드리지 아니하면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지 아니해도 되는 그러한 민족에 속해버리지요. 인간은 자기 운명을 자기가 개척하려고 하는데 자기 운명을 자기가 선택하고 결정을 해버리면 거기에는 어떤 경우라고 하나님께 드림이라는 것이 성립이 안 됩니다. 설사 하나님께 드렸다 할지라도 내가 그런 결심을 했다는 게 들어가 버리면 이것은 온전히 하나님께 드림이 아니고 자기 지분이 있어요. 자기 게 계속 남아있다 이 말이죠.

자기 것이 남아있다면 내 것이 내 것으로 남아있다면 어디에 써먹으려고 자기가 자기 것을 쥐고 있습니까? 어디 써먹으려고 하는 거죠? 쉽게 말해서 안 드리려고 하는 이유가 뭐냐? 이것은 인간에게 무슨 요소가 있느냐 하면, 인간에게는 저항, 쉬운 말로 대든다. 인간에게는 대드는 요소가 있어요. 저항 요소가 있어요. 반발 요소가 있다고요.

오롯이 내가 내 것으로 지키는 데 있어서 지장된다면 그 누구라도 신이라도 나는 반발하고 싶어. 나는 성깔이 그런 성질이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뭐냐 하면 그것 원래 나한테 바치게 돼있는 거야. 네 것 아니야. 나한테 바쳐, 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한테 안 바치면 어떤 인간이 되느냐 하면 하나님께 안 바친 존재가 돼버려요.

하나님께서 안 받는 존재가 돼버리면 이걸 다른 말로 하나님의 요소가 전혀 들어있지 않은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추가적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는 존재. 그게 바로 하나님께 바치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들을 받은 것을 도로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라고 머물지 않고 반납하라고 내놓는 거예요.

인간의 죽음이란 회수거든요. 만드신 분이 자기 것 자기가 가져가는 게 회수란 말이죠. 회수할 때 하나님의 뜻이 있느냐, 없느냐? 뜻이 없으면 그건 지옥이고 뜻이 있으면 천국이고 그런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천국은 하나님 것으로 자족하고 만족하는 나라가 천국이니까. 그러니까 인생이란 회수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자기 걸 자기가 가져가는 거예요. 내 것은 없습니다.

인생을 살려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 것이구나, 하는 요소가 추가적으로 제공돼야 되는 겁니다. 그게 율법이에요. 다른 이방민족은 율법이 없지요. 신약으로 하면 복음이고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까 인간에게는 범죄 하고 난 뒤에 범죄 했다는 말은, 한 번 범죄 했다는 게 아니라 이미 인간이 변질된 거예요.

원래 만든 인간이 아니고 다른 걸로 변질됐는데 그 변질된 인간의 성질, 본성이 제가 뭐라고 썼습니까? 인간 속에 뭐가 있다? 저항 요소가 있어요. 반발 요소가 있어요. 꺼져라, 이렇게 되지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율법과 복음에 대해서 꺼져라, 이렇게 되는 거예요. 저리 가! 저리 가라고 반발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시작도 내 것, 끝까지 내 것이고 싶다고 해서 나온 반발이요 저항입니다.

인간으로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가장 근본적인 성격이 뭐냐고 물어보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반발과 저항, 도발, 반격, 대듦,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두 종류로 보죠.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과 대드는 사람. 중간, 중립지역은 없습니다. 흔히 서원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건 없어요.

그래서 오늘 레위기 27장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백성, 백성과 백성들 사이에 결합시키는, 백성들이니까 인간이지요. 하나님과 인간을 결합시키는 그 고리, 연결매개는 뭐냐 하면 바쳐짐, 드림. 드릴 때 조건이 있어요. 자기 것 없애기. 내 것을 일부 남기고 드리는 게 아니에요. 다 드림, 다 바침, 이것으로 하나님과 백성은 연결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연결되지 않아요. 이게 율법이에요.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이 뭡니까? 다 드림이죠. 그게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레위기 우리가 하고 있잖아요. 레위기 1장에 나오는 번제가 있습니다. 번제라는 제사가 가장 기본인데 다 바침, 다 드림이에요. 이 번제의 시작은 바로 창세기 8장에 노아의 방주에서 그들만 살아남은 자들, 그들이 어떻게 결속되어 있는가?

도대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결속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가 같이 동승했던 정결한 짐승이 있어요. 그 짐승을 의도적으로 일곱 쌍씩 동승을 시킨 겁니다. 그 정결한 짐승을 번제로 드려요. 다 바쳐요. 네가 바쳐야 될 것을 대신 다 바침으로써 너는 이미 바쳐진 것, 너는 이미 다 바친 존재다.

다 바친 존재,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에 다 바친 존재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이 묶여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다 바친 존재에 온전하게 그 뜻이 다 복사가 되고 덮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노아는 언약을 받았다, 이렇게 되는 거죠. 하나님의 뜻의 정보가 지상에 노아에게 다 덮치는 거예요.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온다. 그러면 내 몸의 일부는 햇빛이 있고 일부는 어둡고, 그런 것 없지요. 먹구름이 완전히 깔려버리면 먹구름의 그림자 때문에 우리는 온 몸이 다 덮치게 되지요. 인간은 자기 지분이 전혀 없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중간도 전부 다 언약에 준해서 뜻이 우리에게 옴팍 뒤집어쓰는 겁니다.

그래서 성도가 하는 일은 어떤 일이든지 그것은 무엇과 관련돼 있느냐? 하나님께 다 바쳐진 일로서만 해석이 돼요. 이런 이야기가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14장 4절 보게 되면,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여기서 여자란 세상을 말합니다.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다 바쳐졌으니까 결속된 관계지요.

그 다음에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그러니까 사람들 가운데서 일부 구원받는 거예요. 저 사람들과 되지 말란 뜻이지요. 구속받지 않은 그들과는 같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서 분리가 되는 거예요. 분리를 거룩인데 같은 사람인데 다른 사람으로서 건짐을 받은 겁니다.

그게 창세기 8장의 노아 같은 경우에 그 많은 사람들 있지만 그 중에 노아는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더라. 그래서 노아 가족만 방주에 들어간 거고. 방주에 들어간 것이 노아의 착함이 아니라 거기에 동승했던 흠 없는 제물이죠. 흠 없는 제물로 인하여 그 제물의 의미를 노아의 인생에다 그대로 되비쳐주는 겁니다. 노아가 착한 것이 아니고, 흠 없는 것은 노아가 아니에요. 흠 없는 쪽은 따로 있어요.

그게 뭐냐? 제물이 흠 없어요. 흠 없음이 노아 인생에 그대로 복사가 되는 겁니다. Ctrl+v지요. 컴퓨터로 복사를 해서 그냥 흠 없는 인생을 보여주게 되면 노아는 인간을 대표하기 때문에 졸지에 노아는 죄 있는 자가 되지요. 그래서 번제를 드리고 하시는 뒤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이 어릴 때부터 악함이라. 왜 악함이라는 말을 하느냐 하면 복사한 뜻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요. 인간은 자생적으로 선하질 못해요. 구원되질 못합니다. 악하다는 것을 강조해야 악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구원되었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고스란히 받아주는 거예요.

레위기 1장에 보게 되면 레위기 27장 마지막 끝 장이죠. 1장을 다시 보게 되면 제사장이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을 끌고 오지요. 여러 가지 단계가 있지만 쉬운 단계를 보면 제사 단계가 이렇습니다. 첫 번째는 제물을 가져온다. 제물을 성막에 가져오지요. 코로나 19 검사소가 우리나라 여러 군데 있지만 이스라엘에 여러 군데 있는 게 아닙니다. 딱 한 군데, 성막에 있어요.

성막으로 제물을 가져옵니다. 멀리서도 가져와야 되고. 제물은 소나 양이나 염소인데 이것을 시장에서 사오면 안 돼요. 자기 집에서 키우는 짐승을 가져와야 돼요. 두 번째는 그 성막에 제사장이 기다리고 있지요. 그 제사장 앞에서 제물에 안수를 합니다. 제사장이 하는 게 아니고 제물을 가져온 당사자가 안수를 합니다. 안수를 하게 되면 이걸 뭐라고 해석하느냐 하면 너의 죄를 이동시켰다, 전가시켰다고 규정을 해줍니다.

이 대목에서 안수를 하는데 네 죄를 흠 없는 제물에 전가한 것으로 인정을 해주는 그 증거가 뭐냐? 안수를 했는데 죄가 팔을 넘어갑니까? 전가한 증거가 뭐냐? 이것이 아까 제가 이야기한 노아의 예를 듭시다. 이스라엘 자체가 몽땅 다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에요. 바쳐진 사람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죄가 율법에 의한 죄조차도 어떤 용도로 활용되느냐 하면 죄는 어떻게 해서 사라지는가?

그걸 구속 또는 속죄라 하는데 어떻게 속죄되는가, 라는 하나님의 언약적 내용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여기에 결속돼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양을 가져왔다고 해서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일이라고 보면 안 되고 그게 누구 일에 포함될까요? 하나님의 일관된 생각을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펼쳐내는 거예요.

그 다음에 죄를 전가하는 거예요. 전가했다고 규정해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안수에 대한 해석, 안수하게 되면 죄가 넘어가는 해석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일방적인 해석이에요. 이게 백성들이 납득할 논리는 존재하지 않아요. 일방적인 해석이란 말이죠. 일방적인 해석이란 다른 말로 하면 인간 내부에 있는 살아오면서 가진 어떤 논리나 이성적인 뜻이 아니고 하나님이 부여한 거죠. 생소한 해석을 외부에서 부여한 거예요.

따질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에요. 어떻게 전가합니까, 물을 수 없다 이 말이죠. 일방적으로 부여받은 거예요. 따라서 어떻게 내가 안수하게 되면 죄가 전가됩니까? 나는 못 믿겠습니까?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바치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상대로 따지는 사람이죠. 하나님 쪽에서 나를 설득시켜 보세요. 이런 사람이란 말이죠. 그 사람은 여전히 나에게 나의 지분이 많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미쳤다고 당신한테 바쳐?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걸 아까 처음에 뭐라고 썼습니까? 그걸 뭐 한다? 저항한다, 대든다, 반발한다는 거예요. 하나님 네가 뭔데, 이거에요. 오늘날 교회의 모든 교인들 태도가 이거에요. 하나님 네가 뭔데? 정말 하나님이 하나님답다면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 맞혀 봐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건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조롱할 때 하는 수법이거든요. 알아맞히면 당신을 선지자로 인정해줄게. 이게 뭐하는 게임이에요, 도대체. 교회 와서 하는 게임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게임을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인생 살아오면서 가진 것은 백 프로 나의 지분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나는 하나님이든 예수님이든 누구라도 내가 공들인 이걸 빼앗기기 싫다는 거예요. 결국 교회 온다는 따지기 위해 오는 거예요. 따지려고. 내가 내 결정으로 예수 믿어줬는데 예수, 하나님 당신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는데? 당신이 뭐라고 내가 당신한테 다 바쳐야 돼? 나는 배알도 없고 내 주장도 없는 줄 아냐? 이것 따지려고 오는 거예요.

요한계시록 11장 19절에 보면 그렇게 돼있습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자, 하나님의 성전이 열렸습니다. 열렸는데 언약궤가 보였지요. 언약궤는 하늘에 있어요. 그러면 지상에는 언약궤가 없습니다.

언약궤가 없는 지상에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죠. 이건 사람 살기 좋으라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예요? 이 세상을 아주 조지려고 심판하려고 주어지는 겁니까? 심판하려고 주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언약을 주신 것은 심판을 해야 될 자를 가려내기 위해서 골라내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상품 중에서 못 먹는 나쁜 상품을 골라내는 거예요. 골라내는 작업에 주의 언약이 주어지는 겁니다.

어떤 무당한테 여자가 무당을 시험하는 식으로 가서, “내가 뭐 때문에 왔게. 알아맞혀봐. 너 용한 무당이잖아.”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런 경우가 있어요. 네가 용한 무당으로 소문났으면 내가 뭐 때문에 왔는지 알아맞혀봐, 이러는 거예요. 제가 무당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무당한테 그런 소리하는 거나 이 지상에 하나님의 아들로 온 분에게도 광야에서 악마가 시험할 때고 꼭 그렇게 시험한 거예요.

한 번 해보겠다는 겁니다. 당신과 해보겠다는 우리의 권한을 당신은 모독하지 말라는 거예요. 당신은 하나님이고 우리는 인간이지만 우리가 인간이란 점으로 시비 걸고 모독하지 말라는 거예요. 기가 찰 일이지요, 이게. 그래서 오늘날 교회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하나님께 시비 걸러 와요.

하나님 당신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는데. 나한테 더 이상 요구하지 마라. 뭘 해줘야 요구하지 해주지도 않으면서 무슨 요구하느냐. 내 것이 온전하게 내 것 되는데 당신이 보태준 게 뭐가 있느냐는 식이에요. 결국은 하나님께 바치기 싫다는 겁니다. 바치기 싫다는 것은 나는 내 것으로 인생 즐기고 싶다는 거예요. 내 것으로 자족하고 싶다는 겁니다.

여기 요한계시록 11장 19절에 하나님의 성전 바깥에는 하나님의 천벌이 주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쓰겠습니다. 천벌하니까 토속종교 같은데 오늘 첫 번째 나오는 공식입니다. “하나님의 천벌은 자기를 믿고 세상을 믿는 자에게 떨어진다.” 이게 성경의 공식이에요. 왜 네가 네 것을 쥐고 있느냐는 말이죠. 내게 바치라 했잖아, 왜 쥐고 있어. 쥐고 있으면 계속 천벌이 주어지는 거예요.

소득이 높아도 천벌, 몸 건강해도 천벌, 애들 공부 잘해도 천벌, 세상이 행복하다고 성공했다고 자랑질하는 그것도 천벌이에요. 왜? 다 바쳐진 자에 합류하지 못하면 천벌이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결속하고 있는 언약으로 결속하지 못하고 그 외부에 배제된 제거된 자들, 그 자체가 천벌입니다. 네 것으로 하나님으로 너로 묶으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외부에서 주신 것으로 묶어야 돼요.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언약이고 율법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스라엘 바깥에는 저주받은 죽음의 세계가 있지요. 볶음밥을 볶는데 여기에 빨간 색깔의 볶음밥이 있어요. 밑에 버너에 불 피워 따뜻하게 볶아먹으려고 했단 말이죠. 그런데 여기에다 이왕 볶아먹는 것 계란을 풀었다. 그러면 이것은 유에프오 모습이 돼요. 유에프오 볶음밥이에요.

그런데 유에프오 볶음밥의 특징은 뭐냐? 볶음밥이 빨갛잖아요. 계란프라이는 노랗지요. 노란 부분과 빨간 부분이 유난히 구분됩니다. 구별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묶어진 이스라엘과 그 바깥에 있는 이방민족과 유난히도 확연하게 구분 짓는 거예요. 노아방주도 그렇고. 언약은 구분 짓기 위함이거든요.

그럼 언약 안에 들어가면 이스라엘 바깥과 차이점이 뭐냐? 바깥은 내 것을 내 것으로 그냥 쥐고 있고 세상에 대해서 미련 갖고 있고 집착을 갖고 있는 이쪽과 여기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언약의 나라만 사모하는 쪽과 이게 확연하게 차이 나는 거예요. 그럼 이스라엘은 뭐냐 하면 바깥은 노란 계란프라이, 여기는 사람의 것으로 자기가 자기 되고자 하는 거예요. 인간의 자기 요소가 그대로 남아있어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뜻의 복사판이기 때문에 온전히 사람의 뜻은 제거되고 하나님의 뜻만 남기도록 독촉 받는 그러한 영역이 됩니다. 추궁을 받는 곳이에요. 바쳐라. 네 것 남겨두지 말고. 사람이 자기 것을 남겨두게 되면 자꾸 토를 달아요. 자꾸 내 것이 있으니까 내 인생은 어떻다, 네 인생은 어떻다고 자꾸 내 것을 기본으로 해서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는 겁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자기 지분을 포기 못하겠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하나님께 다 바쳤을 때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그게 바로 성전이 되는 겁니다. 신약에 와서 성전. 하나님의 성전 되거든요. 그러면 하나님의 성전이 되려면 구약 때니까 실제로 하나님의 성막, 거기서 활동하는 제사장들이 있겠지요. 그러면 하나님께 다 바쳤다는 것은 곧 뭐냐 하면 성전이 잘 운영되어가고 있다는 뜻이에요.

성전이 운영되려면 뭐가 필요하겠어요? 바로 돈이 필요하겠지요. 성전, 돈. 짓는데 돈 필요하고 보존하고 수리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돈이 필요하겠지요. 그럼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가? 사람이 하나님께 바쳤을 때 내는 그 돈이 바로 성전세라고 하는 겁니다.

성전세는 분명히 목적이 있어요. 이 돈으로 성전이 그냥 계속해서 유지되게 하옵소서, 라는 목적으로 성전세가 주어지는 겁니다. 성전에 대한 세금의 내용을 풀이하게 되면, “성전이 온전히 되게 하옵소서.” 하고 같은 말이 뭐냐 하면, “우리는 성전을 위해서 다 바쳤습니다.” 같은 뜻으로 쓰이는 겁니다.

지금 레위기 27장 3절하고 있습니다. “너의 정한 값은 이십 세로 육십 세 까지는 남자이면 성소의 세겔대로 은 오십 세겔로 하고” 여기 세겔이란 단위가 딱 나오지요. 벌써 옛날 무게단위기 때문에 우리는 약간 신경 쓰입니다. 몇 킬로그램 이러면 좋겠는데. 성경은 은 11.9g이라고 그렇게 보통 알고 있는데요. 이것은 그 당시 돈이었거든요. 1세겔이 성인 남자가 4일치 품삯입니다. 요즘으로 환산하면 하루품삯으로 7만원 잡고 4*7=28, 28만원이거든요.

그래서 몸을 다 바치는 성전세로, “남자이면 성소의 세겔대로 은 오십 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그 값을 삼십 세겔로 하고 오세로 이십 세까지는 남자이면 그 값을 이십 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십 세겔로 하며 일개월로 오세까지는 남자이면 그 값을 은 오 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그 값을 은 삼 세겔로 하며 육십 세 이상은 남자이면 그 값을 십 오 세겔로 하고 여자는 십 세겔로 하라“ 이렇게 돼있어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치고 영세부터 육십오 세까지 하여튼 죽을 때까지 그 세겔에서 벗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세겔로 묶어버리는 거예요. 성전의 의미로 결속, 단 하나로 묶어버리는 겁니다. 여기 묶음에 묶이지 않는 사람은 바치지 않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언약을 담을 수 없는 대상이 돼버리는 겁니다.

강의를 다시 말씀드리겠어요. 이스라엘의 특징은 뭐냐 하면 하나님과 노닥거리는 게 특징이 아니에요. 그건 오늘날 교회나 하는 짓이고요. 하나님께 왔으니 하나님께 다 바치는 그것이 하나님 뜻이에요. 쓸데없는 아무 가치 없는 걸 바치라 하느냐? 가치가 없어야 오롯이 백 프로 하나님의 언약만 거기에 담아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온 거예요.

만약에 어떤 사람이 병들어서 자기 집에서 혼자서 치료하다하다 안 되면 어디 갑니까? 병원에 가겠지요. 병원에 오기 전에 뭐가 전제돼있습니까? 나는 내 능력으로 내 병을 못 고친다는 게 전제돼있겠지요. 그런데 병원 갔다 와서 멀쩡하게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면 친구나 다른 사람에게 뭐라고 자랑하겠습니까? 역시 병원 갔더니만, 이걸 자랑하겠습니까, 의사를 자랑하겠습니까? 의사를 자랑하지요. 신약에서 의사 되신 예수님이 언약의 완성이에요.

예수님께서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네가 영생이 없다고 요한복음 6장에서 그렇게 이야기했거든요. 그 말씀을 이해할 때 우리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다고 생각하는데 그중에 전제가 하나 먼저 빠져있어요. 이걸 빠트리면 이해가 안 돼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기 전에 먼저 예수님이 우리 자리에 와서 우리의 죄와 우리의 살을 먹어요.

그런데 우리의 죄와 살은 전혀 언약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추접하고 더러운 거예요. 우리는 추접하고 더러운 것을 감추기에 급급하잖아요. 아니에요. 우리는 감추기에 급급하지만 주님께선 파헤쳐서 우리의 살과 피를 자기 것으로 먹어요. 예수님 먼저 속죄양이 되어서 죄인의 자리에 들어오시는 거예요. 우리가 감추는 것까지도 주께서 먼저 자기 것으로 끌어당겨버리는 겁니다. 이전해버리는 겁니다. 전가시켜버립니다.

전가시키는 방법은 죄 때문에 언약 밖에 주어지는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천벌을 예수님이 바로 자기 백성의 자리에서 아버지의 천벌을 홀로 다 받는 거예요. 이 말은 내 죄와 내 허물을 내 식대로 내가 힘들여 공들여서 나의 윤리도덕으로 착함으로 이게 해결이 안 됨을 분명히 하시는 거예요. 왜냐하면 좀 착하다 싶으면 새로운 율법을 계속 줘서 심지어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도 그게 살인죄가 되게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우리의 어떤 것도 내가 챙길 의가 전혀 없게 만드는 식으로 율법을 계속 주는 겁니다. 따라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 없음을 주님께서 “없다, 없지, 분명히 없지. 네가 천국 갈 권한도 자격도 없지.” 그걸 자기 백성이란 이유 때문에 가져오는 거예요. 주님께서 먼저 하늘에서 우릴 구원하는 게 아니고 주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죄인이 되시는 겁니다.

세례요한이 그걸 몰랐지요. 착하신 분인데 씻을 죄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요단강에 세례 받습니까, 하니까 그래야 의가 된다고, 그래야 하나님 의를 너와 내가 같이 이룰 수 있다고 했다고요. 성령께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 험한 죄인의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몸에는 뭐가 있습니까? 제자들의 죄와 허물이 있지요. 그리고 난 뒤에 마지막 만찬에서 너희들 떡 있고 잔 있더라도 놔두고 내 살과 내 피를 마시라.

예수님의 말씀은 자기의 살과 자기의 피 안에 뭐가 들어있습니까? 죄가 들어있지요. 제자들의 죄가 들어있는 거예요. 너 혼자 천벌 받는 것이 아니고 너는 천벌을 받되 나와 함께 받아야 함께 살 수 있는 거예요. 이걸 아까 제사 드릴 때 뭐라 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양을 끌고 와서 안수를 할 때 제사장이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함으로써 본인의 죄가 내 쪽에서 제물, 제물인데 제물? 흠 있는 제물? 아니요. 흠 없는 제물에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흠 없음과 흠 있음이 하나로 결속되는 것, 이게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언약의 본질이에요. 죄와 의가 한꺼번에 같이 있게 하는 것, 그 안이 새로운 우주에요. 새로운 세계, 새로운 날, 새로운 천국이에요. 죄와 의가 함께 하는 것,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죄와 의가 함께 하시는 거예요. 그 나라는 우리의 나라가 아니고 예수님의 나라에요. 예수님만이 가능하지 인간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가능한 인간이 불가능한 자기 인생을 그냥 쥐고 있으면 안 된다 이 말이에요. 내 지분이 있으면 안 돼요. 내 인생 이렇게 살았다는 지분 있으면 안 돼요.

하나님께 그걸 드리셔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까 처음 공식 다시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천벌은 누구한데 주어집니까? 나를 믿고 이 세상을 믿는 이 세상에 믿을 게 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천벌이 주어집니다. 왜? 이 세상은 어떠한 언약도 없기 때문에.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지 이 세상에는 없거든요. 예수님은 이 세상에 튕겨져 나갔어요. 안 맞는다고.

이 세상이 예수님을 안 맞아요. 오히려 이 세상은 예수님을 강력하게 거부했어요. 그게 십자가 사건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사건을 자랑하는 이유는, 너희들이 거절했잖아. 너희들이 거부했잖아. 너희들이 천벌 받아도 할 말 없지? 왜? 거절했으니까. 거부한 겁니다. 왜 거부했을까요? 아까 나왔지요.

왜 거부합니까? 나는 내 것이 있고 나는 이 세상을 포기 못하고,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은 거예요. 이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소릴 듣고 싶은 겁니다. 성공하려고 교회 오는 거예요. 간 보는 거예요. 복음 알아서 내가 성공 될까, 안 될까 간 보는 겁니다. 자기를 버릴 생각, 바칠 생각 안 하고 챙길 생각만 하고 세상 교회 나오는 거예요.

세겔이라 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하나로 인간의 몸값으로 죄인의 몸값으로 묶는 게 세겔입니다. 그러면 세겔 안에는 십자가가 이미 들어있지요. 모든 해석은 구약의 모든 해석은 십자가로 빠져나와야 온전한 해석이 돼요. 그럼 세겔은 뭐냐? 거기에 의미가 압축되었다고 보면 돼요.

어릴 때 생각납니다만 명절에 쌀 볶아서 위에서 프레스로 누르면 납작하게 되는 것 있지요. 뻥튀기 말고 동그란데 누르고 당기면 쌀 과자 되는 것 있지요. 그게 의미에요. 하늘나라 의미라 하는 것은 지상에다 주님께서 천벌을 내리면 그게 의미가 되는 겁니다. 납작하게 압력이 되는 거예요. 세겔 안에 십자가가 압축이 돼있어요. 세겔 안에 주님의 십자가 의미가 응축이 됐다고요. 그 세겔로 하나가 된다는 말은 십자가에서만 하나가 되는 그것이 영원한 이스라엘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의 목숨 값, 인간의 값을 돈으로 환산하되 그 돈은 어디 쓴다 했지요? 바로 성전을 운용하는데 성전을 세우고 성전을 경영하는데 필요한 겁니다. 성전 자체가 하나님의 이름, 주의 모든 언약이 완성되는 게 성전이거든요. 그것 되고 나면 밑에는 전부 다 아까 언약궤 성전 보이죠. 요한계시록 11장에 보면 밑에는 뭡니까? 전부 다 하나님의 천벌을 받고 있는 거예요. 지진과 우박과.

그래서 이걸 여기에 쭉 나오는 값을 그 당시 세겔이기 때문에 잘 안 되기 때문에 제가 적어봤어요. 생후 1개월부터 5세까지, 혹시 손자 있거든 잘 봐놓으세요. 생후 1개월부터 5세까지 남자는 28만*5=140만원 나오시겠습니다. 영수증 받아놓으세요. 생후 1개월부터 5세까지는 성전세가 140만원. 그 다음에 여자는 84만원. 요즘 돈입니다. 목숨 값 비싸지 않지요. 만약에 남매가 있다면 224만원만 있으면 둘 다 천국 갈 수 있습니다.

물론 신약에선 예수님의 피 값이죠. 피 값이란 말은 우리가 피 안에 이미 들어가 있다는 뜻이에요. 챙길 자아가 있다는 말이 아니고 자아가 피 안에서 논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피의 용서를 복사해서 살아간다 이 말이에요. 나는 다 바쳤는데 주께서 영생 안에서 놀라는 영생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거예요. 죽어도 영생이고 살아도 영생이고. 뭘 해도 영생이고. 죄 지어도 영생이고 죄 안 지어도 영생이고. 뭘 해도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죄 없이 돼버렸으니까. 영생입니다. 단 조건은 다 바치는 것.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약에 세겔이 뭡니까, 물으신다면 성령님이에요. 그리스도영, 성령. 요한일서 2장 27절에 보면 성령의 기름부음이 네 안에 있다 했거든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중생하고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성령이 세겔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전부 다 성령의 값으로 얻은 거예요. 또는 십자가의 피 값이고. 같은 뜻입니다. 우리가 이 정도하면 바칠만하지 않습니까? 뭐 얼마나 더 해야 다 바치겠습니까?

5세까지 했으니까 남자는 140만원, 여자는 84만원. 그 다음에 6세부터 20세까지 남자는 20세겔 바치라 했으니까 28만*20=560만원. 큰 돈 아니지요. 여자는 10세겔 해서 280만원. 열 살 먹은 남매가 있다면 840만원 되겠습니다. 애 둘에 840만원. 그 다음에 21세에서 60세까지 남자는 50세겔 내라 했거든요. 28만*50 하면 1400만원. 아 이건 좀 세다.

세겔 매기는 것은 인간의 노동력을 두고 하는 거예요. 여자는 아무래도 약속의 땅에서 품삯이 적으니까 21세에서 60세까지 남자는 노동력이 세니까 세겔을 목숨 값을 많이 내는 거예요. 여자는 30세겔이니까 840만원. 그러니까 여자 세 살보다 열 배나 많은 거죠.

그 다음에 60세, 이제는 노동력이 기력이 쇠해졌어요. 60세 이상은. 65세 아닙니다. 60세를 노인으로 쳐요. 이 때는. 남자는 15세겔 내라 합니다. 420만원. 저 420만원. 여자는, 여자 60세 잘 들으세요. 280만원. 물 건너갔다. 이제 죽을 때 다 됐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세겔로 묶어버립니다. 신약에 오면 이게 성령으로 하나가 된 거죠.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세겔로 묶여버리면 이들의 존재의 의미는 내 목숨 값이 뭉쳐진 곳, 모든 것이 집합된 곳이 뭐냐? 성전이에요. 그래서 항상 그 사람을 같은 백성이냐 할 때 무슨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면 성전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왜냐하면 내 육체 내에 육신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나는 성전에 갖다 바쳤으니까 진짜 나를 찾으려면 어디서 찾아야 돼요? 성전에서 찾아야 되겠지요.

오늘날 같으면 십자가에서 찾아야 되는 거예요. 십자가 안에서 나는 죽고 주님으로부터 죄 용서함을 받았어, 라는 그러한 것이 전제가 깔린 채 이야기가 돼줘야 그게 바로 성도의 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형제에요. 그래서 형제에서 나올 것은 뭐냐 하면 형제를 형성하기 위해서 묶었던 것 있잖아요. 바로 성령 또는 십자가의 값, 값 치름, 아까 이야기한 예수님의 살과 피 그 안에 죄 지은 내 살과 내 피가 포함됐다는 그것,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게 그 사실을 자랑하는 거예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이 말을 다른 말로 이야기해서 나는 더 이상 나를 안 믿게 되어서 너무 좋아요. 그걸 믿는 거예요. 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안 믿는 것에 대해서 너무 감사해요. 그런 사람이 된 것을 너무 감사해요. 이런 겁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성전의 세겔처럼 주님의 십자가가 압축된 자가 그 사람의 존재가 되어서 그 사람이 길을 간다, 일을 한다, 살림을 산다, 직장에 다닌다 하는 것은 십자가가 압축된 채로 그 현장에서 주님이 죄 이미 용서했음을 주님의 언약이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그 현장에서 드러내는 겁니다.

그럼 드러낼 때는 어떤 식으로 드러내는가? 그것은 뭐 요한일서 2장에 보면 거기에 나와 있어요. 제가 읽어볼게요. 15절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라는 이야기를 직장에서 할 수가 있는 거예요. 옆 사람한테, 안 믿는 사람한테, 세상을 향하여 할 수 있는 거예요. 그것도 기뻐서. 내가 주님한테 고마워서 감사한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게 너무 기뻐서 고마워서 감사해서 나올 수 있는 거예요.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버리기로 했다는 거예요. 이 세상은 하나님 사랑이 없으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을 어떻게 조치하기로 결정했다? 버리기로 한 거예요. 쓰레기로 본 거예요. 쓰레기에다 우리가 미련 갖고 관심 갖고 하면 안 되지요. 쓰레기인데. 미스트롯 누가 일등하든 윤석열이 사퇴하든 서울시장이 누가 되든 어차피 그건 버릴 패에요. 쭉정이라 버릴 피, 똥 피라. 세상으로 난 것은 도로 세상에 줘버리라 이 말이죠. 그것이 나한테 들어오게 되면 세상 것의 특징이 뭐냐? 반발이에요. 저항한다고요. 주님이 하신 언약과 다 이루심에 아주 극렬하게 발작을 일으켜요. 반발한다고요.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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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0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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