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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3강-암 7장 1-3절(재앙속의 용서)210203-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아모스

23강-암 7장 1-3절(재앙속의 용서)210203-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아모스 7장 1-3절까지입니다.

아모스 7:1-3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황충을 지으시매 황충이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가라사대 이것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아모스 선지자가 하나님이 주신 어떤 계시를 받습니다. 계시라 하는 것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현실감각이 아니라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데 하나님의 계시내용 속에는 들어 있는 것, 일종의 환상이지요. 하나님의 환상 중에 어떤 일을, 어떤 내용을 담아주셨습니다.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환상을 주시는 이유는 이 환상을 통해서 환상을 뜯어내는 그 기능을 하기위해서입니다.

사람들 눈에 보이는 이 현실이 환상이 아니고 실재라고 여깁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기 전의 이야기고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시면 내가 현실이라고 믿은 이것이 현실이 아니고 하나의 환상이라는 것을, 우리가 뭔가 속고 있다는 것을, 실재적인, 실상이 아닌데 그게 실상인 것처럼 철석같이 믿고 거기에 모든 것을 올인하고 그것만을 목적으로 살아왔던 그 허무함을 주께서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스라엘에게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환상을 보여준 겁니다. 쉽게 말해서 다리털 뽑는데 파스 붙여서 파스 다시 떼면 다리털도 같이 뽑히는 것, 환상을 덧붙여서 환상을 가지고 환상을 뜯어내는 것, 그 방법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그 환상의 내용이 어떤 내용이냐 그걸 봐야 되겠지요?

1절에 보면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왕이 가져갈 몫, 백성들이 왕에게 세금조로 주는 것이 있어요. 왕가를 유지해야 되고 경영해야 되니까 왕이 통치하는데 필요한 재물들 그런 것들을 왕이 일단 챙길 대로 챙긴 겁니다. 챙기고 난 뒤에 나머지 가지고 백성들이 자기 농사지은 것으로 살면 되는데 왕이 자기 것 가지고 난 뒤에 그 다음부터 다시 풀이 움돋기 시작을 해야 돼요.

그런데 움돋기 시작할 때 주께서 황충을 지으셔서, 황충이란 메뚜기인데 메뚜기를 지으셔서 메뚜기가 땅에 있는 풀을 다 먹어버렸어요. 이렇게 되면 왕은 일단 자기 먹을 것, 자기 권세 유지책은 챙겼는데 문제는 백성이 다들 굶어죽게 생겼습니다. 그렇게 될 때 이것은 이스라엘에 왕이 있는데, 왕은 백성을 위하여 있어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개입하니까 왕 따로 백성 따로 분리가 되어버렸어요.

왕은 자기의 이득을 위해서 챙길 것은 챙겼으니까 왕은 별로 손해 아니다 싶지만 그 왕 밑에 있는 백성들은 죽을 지경입니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지요. 나라꼴이 잘못된 겁니다. 그래서 황충으로 해서 다 먹어버리게 했어요. 이것은 재앙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황충재앙이라 하는데 메뚜기를 보내서 다 먹게 했을 때 어느 누가 이걸 재앙이라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이러한 재앙을 주시는가? 또 달리 이야기하면 이런 재앙을 주시겠다는 환상을 주시는가? 도대체 이 환상이 현실로 나타날 때는 이스라엘이 먹을 것을 메뚜기가 대신 다 뜯어먹게 되는 그러한 역사적 상황이 들이닥칠 때 왕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못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을 위해서 왕이 있어야 되는데 왕이 실질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때 결국 하나님께서 이 재앙을 주신다는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러한 이상적인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은 아니다, 라는 것을 메뚜기 재앙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메뚜기 재앙, 여기서 재앙이라 하는 것은 한번 당해봐라, 하는 식으로 떨어지거든요. 원래 곡식과 풀은 누가 먹어야 되는가? 사람이 먹어야 될 건데 여기 난입해온 엉뚱한 황충 메뚜기가 다 먹어버렸다 그 말이지요. 그렇다면 땅의 주인은 인간이고 인간들은 땅을 통해서 자기가 주인행세하고 천년만년 잘 먹고 잘 살려고 했던 인간들의 계획은 하나의 망상이 되고 만 겁니다.

자기는 철석같이 이게 현실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에 하나님의 재앙이 개입하니까 우리가 과연 이 땅에서 살 희망은 완전히 없는 거예요. 살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 할 때 이스라엘은 걱정이 되지요.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 또 하나님이 친히 지켜준다는 그 이스라엘이 도리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배척당하고 멸망당하고 심판받는 그 취지가 무엇인가? 상당히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새로운 안목이 필요한 기회 계기가 된 겁니다.

그래서 선지자 아모스가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기도합니다. “주여, 야곱이 그렇게 되면 너무 미약하니까, 하나님이 친히 만든 나라가 너무 약해지니까 어떻게 좀 대책이 없겠습니까?”라고 하니까 3절에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가라사대 이것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겁주고는 이제 와서 “취소할게” 이게 무슨 조화에요? 환상을 통해서 “너희는 굶어죽었어. 메뚜기가 너희 먹을 것 다 가져갈 거야. 이게 하나님 뜻이야. 너희는 이제 멸망한 거야.” 그러니까 선지자가 중간에 개입해서 “하나님, 그러면 (야곱이니까 이스라엘이지요) 이스라엘나라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대책이 없겠습니까?” 하나님이 “철회할게” 뜻을 돌이켰어요.

이렇게 재앙을 주실 마음이 없다면 처음부터 메뚜기재앙도 언급을 안해야 된다는 것이 여호와의 하나님의 일관성에 합치되지 않는가, 이것이 우리들의 생각입니다. 변덕이 있는 하나님을 누가 믿겠어요? 처음에는 이랬다가 “그게 아니잖아요.” 하면 “그래, 그래, 그래. 내가 취소시킬게.” 이래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이 믿을 만 하겠어요?

여기에 하나님의 뜻은 이렇습니다. 현재 있는 이스라엘이 메뚜기재앙한테 당해도 싼 그러한 이스라엘답지 않은 이스라엘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생각한 이스라엘을 포기할거냐?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제대로 된 이스라엘로 새롭게 만들겠습니까?

그것은 재앙을 주면서 재앙과 더불어서 오게 된 그 철회하는 것, 다시 용서하는 거지요, 긍휼을 베푸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것, 그럴 때 이스라엘의 본래의 모습,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가 자기에게 특혜로 주어져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된 나라가 되었다. 이 정신을 재앙이 던져져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는 겁니다.

사고치고 가출한 그러한 남편이 있는데 한 달간 집나가 있다가 뒤늦게 백수 되어 돈 다 떨어져서 “여보, 잘못 생각했어. 이제는 당신 말 잘 들을게. 당신은 나 같은 인간한테는 이제부터 다른 반찬 필요도 없어. 그냥 있는 김장김치하고 밥만 줘도 내가 감지덕지 할게.” 그래가지고 “좋다. 그러면 용서해줄게.” 해서 들어왔어요.

그 다음부터는 아침에 김치, 점심도 김치, 저녁도 김치, 한 일주일 먹다가 질려버린 거예요. “여보, 혹시 김치찌개 그런 것은 없나? 같은 김치 종류인데 김치찌개라도 없나? 과메기는 넣지 말고.” 이렇게 하니까 “이게 어디서 옛날 행세 또 나와! 또 나갈 거야? 또 한 번 쫓겨 나가봐?” 하니까 남편이 “나는 회개하는 참된 이스라엘로 남을래.”

이스라엘이라 하는 것은 어떤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일으킨 어떤 사건의 혜택을 입은 거예요. 그 사건이 뭐냐 하면, 출애굽기 10장 4, 5절입니다. 애굽나라에 재앙을 내리는데 재앙 내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취지가 있어요. 내 백성을 내 보내라, 해도 말을 안 들어요.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 이건 10장 3절이고요.

4, 5절에 보면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로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 메뚜기가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을 먹으며 들에 너희를 위하여 자라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 이렇게 뒤에 죽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너희들이 만약에 내 백성 이스라엘을 하나님 섬기도록 보내지 아니하면 내가 메뚜기를 보내가지고 너희로 하여금 이 땅에서 더는 먹을 것이 없어서 못살게 만들겠다, 했던 그 재앙이 애굽나라에 내려진 재앙이에요. 애굽나라에 내렸던 그 재앙을, 아모스에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스라엘, 철석같이 하나님 백성이라고 믿는 그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취급해서 재앙을 내리겠다는 겁니다.

처음에 출애굽 할 때는 “애굽나라야 왜 내 백성 안 보내느냐?”라는 식으로 메뚜기 재앙을 내렸다면 아모스 7장에서는 “이 가짜 이스라엘아, 엉터리 이스라엘아, 진짜 이스라엘을 네가 왜 방해하고 훼방하느냐?” 이런 차원에서 메뚜기 재앙을 보내는 겁니다.

그렇다면 진짜 참된 이스라엘의 그 본질은 어디서 나오느냐? 애굽에게 내렸던 메뚜기재앙을 통한 부대효과를 이스라엘이 받고 있는 거예요. 남의 나라에 재앙이 떨어지고, 저주가 떨어지고, 심판이 떨어진 그 효과의 힘으로 이스라엘이 유지되는 거예요.

애굽에 내린 재앙은 이스라엘을 유지하는 동력이 되는 겁니다. 에너지가 되는 거예요. 이것은 어느 나라가 하나님 앞에 재앙을 받음으로서 비로소 이스라엘만큼은 그 재앙을 철회하는 혜택을 입는 사람들의 단체, 집단이라는 그 의식이 또 새롭게 확인되고 새로워지는 겁니다.

‘우리도 재앙 받아 마땅한데 특별히 우리한테는 재앙을 철회했어.’ 너희들에게는 재앙을 내리지 않으리라, 라고 특혜를 입은 거예요. 특수성이지요. 이스라엘의 특수성이에요. 하나님은 다른 민족과 달리 이스라엘의 그 특수성이 계속 살아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답지 않은 곳에 하나님께서 준비한 재앙들이 있습니다. 재앙을 때려줘야 그 재앙의 여파로서 하나님의 참된 이스라엘이 유지가 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용서라는 것은 내가 용서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고, 용서라는 것은 일종의 물결 같은 겁니다. 물결 같은 것이라서 하나님의 재앙이 떨어지는 그 현장에서 일어나는 그 물결을 마주치면서 주님의 철회하심, 재앙과 더불어서 제공된 물결, 즉 재앙이라는 그 물결과 재앙을 철회하는 특수적인 대상도 같이 중첩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이스라엘을 위해서 세상이 재앙 받아야 된다. 맞는 말입니다. 세상이 재앙 받음으로 비로소 이스라엘은 새롭게 부각된다. 다 맞는 말이에요. 둘 다 같은 말입니다. 전에 애굽에 있을 때 애굽나라 사람들이 애굽나라 자기자신을 현실로 봤지요. 실재는 이것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이것이 전부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나라에 보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바로왕이라 생각한다면, 80넘은 노인이 지팡이 하나 들고 왔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냥 그 많은 백성중의 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이 와서 하는 말이 “나 모세는 바로왕에게 어떻게 도움을 받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이것은 이해가 되는데 그 모세가 하는 말이 뭐냐? 여호와 하나님이 보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미친 노인이지요. “여호와 하나님이 보냈어? 그러면 그냥 곱게 우리나라에서 살아. 내가 이민 받아줄게.” 이건 되는데 그게 아니고 그 여호와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노인네가 하는 말이 “지금 애굽나라가 하나님의 백성을 붙잡고 있고, 핍박하고 있고, 힘들게 하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는 곱게 내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 그 히브리인들을 바로 네가 알아서 내 보내라.”라고 모세라는 어르신네가 바로 왕에게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 거예요.

바로왕이 그걸 듣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 미친것이!” 이렇게 되지요. “당신은 현실감각이 그렇게 떨어져요. 현실을 보세요. 내가 이 제국의 왕이에요. 나는 누구 지시받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이 나에게 지시받아야지. 네가 나한테 지시를 왜 해?”

기가차지요. “눈에 보이는 이게 현실이야 현실! 이 노인네야, 이게 다야.” 그렇게 하니까 모세 노인네가 하는 말이 “내 말 안 들으면 메뚜기 온다.” 바로가 하는 말이 “메뚜기야 올 수도 있지. 메뚜기는 원래 자주 왔으니까. 하지만 메뚜기 온다는 그러한 일상적인 일이 네가 보낸 여호와의 지시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 대봐라. 없어.” 그러니까 모세가 하는 말이 “건방지구나.” 이렇게 나온 거예요.

참 내, 아까 이게 출애굽기 10장 3절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치 아니하겠느냐.” 그러니까 “네가 교만하구나. 맘을 낮추지 못하고 겸손하지 못했어.” 이렇게 되는 거예요.

지금 바로 왕에게 제일 헷갈리는 것이 뭐냐 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에요. 눈에 보이는 이 애굽나라 제국이 전부인데 뭔가 놓친 것이 있는가? ‘내가, 내가 놓친 게 있는가, 뭔가 현실이라는 것이 내가 아는 것이 전부고 그 뒤에는 어떤 다른 현실이 있는데 그걸 놓친 게 있을까? 아니야. 그럴 수가 없어. 놓친 것은 없어. 이 노친네가 나한테 노망기를 보인거야.’

모세가 “알았어” 하고 지팡이 들고 나타나더니만 그 다음에 떼쓰리 같이 메뚜기 와서 다 갉아먹었습니다. 바로 왕이 잠시 멘탈이 흔들렸지요. ‘아, 내가 진짜 노친네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왜 고려 못했을까? 진짜 여호와 하나님이 있고 내가 보는 현실이 다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그 세계가 진짜 현실일 수 있어, 라고 내가 왜 생각을 못했을까?’라고 했지만 이것은 다른 신하들 보기에 “임금님, 멘탈 흔들리면 안 됩니다, 지금! 현혹되면 안 됩니다.” 이렇게 된다 그 말이지요.

그러니까 그 다음부터는 더 얻어맞지요. 여기서, 이 메뚜기재앙에서 우리가 얼마나 손실을 봤느냐, 국민소득이 얼마나 떨어졌느냐, 그게 문제가 아니고 과연 이 모세가 전해준 그 내용이 환상이냐 아니면 실재냐 그 문제입니다. 오늘날!

메뚜기가 와서 뜯어먹을 수도 있어요. 자연세계에서 그럴 수도 있다 그 말이지요. 그러나 여호와 입장에서, 모세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고 이 자연세계가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가리고 있다는 거예요. 하나의 천막처럼.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재앙을 통해서 여호와에 관한, 하나님에 관한 모든 정보가 재앙에 밀집되어 있다는 거예요. 재앙이 주어지는 그곳에 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위치하는 곳이에요.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여호와 하나님이 재앙이 떨어지는 그곳에 있다는 겁니다.

이 재앙문제가 단순히 한번 그냥 지나가면 될 문제가 아니지요. 코로나, 아무 대책 없을 때 ‘진짜~루 하나님이 계셔서 인간에게 벌주는 게 아닌가? 아~ 멘탈 흔들리면 안 돼, 안 돼, 안 돼. 우리 인간에게는 백신이 있어. 인류의 역사에 어떤 고난도 왔지만, 처음에는 약간 당황했지만 인간은 힘을 모아서, 지혜를 모아서 그걸 극복하고 또 극복해온 자랑스러운 인류역사야. 흔들리면 안 돼. 신을 믿는다든지 의지한다든지 그런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지. 이것은 그냥 자연현상이야. 왜? 자연현실의 전부기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께서 재앙을 줘도 인간은 회개할 마음은 하나님께 돌아올 마음은 요만큼도, 1도 없어요. 그런 생각이 조금도 없어요. 그게 바로 이방민족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메뚜기재앙이 이스라엘에게는 집중해서 찾아오거든요. 이게 이스라엘의 특수성인데 다른 민족은 그냥 방치해요.

어떻게 하든지 그냥 방치하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계시의 내용을 담을 역사기 때문에 이 메뚜기재앙이 실제로 현실 속에서는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와서는 그야말로 모든 이스라엘 영토를 황폐화시켰습니다. 환상은 메뚜기고 그 메뚜기가 나타났던 그 결과 그 황폐한 뒤 풍경은 역사 속에서 앗수르 군대가 메뚜기처럼 집단적으로 움직이거든요.

떼쓰리로 움직인 거예요. 움직여서 이스라엘을 다 갉아먹었습니다. 왕? 왕은 아무런 대책이 없었고 손쓸 수가 없어요. 왜? 앗수르 군대는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에. 무엇에 준해서? 아모스 7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환상의 계시에 준해서 앗수르 군대가 움직였던 거예요. 앗수르 군대는 그걸 모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앗수르 군대를 메뚜기같이 사용해서 이스라엘을 다 잡아먹도록 조치를 내린 겁니다.

이 아모스가 메뚜기 재앙을 선지자가 되어서 이야기를 해도 이것을 실제로 알아듣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왜? 그들은 멘탈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앗수르에게 당한다. 그런 생각을 그 당시 북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지를 않았습니다. 우리가 힘이 모자라서 당했지 힘만 키우면 앗수르한테 이겨낼 수 있다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해요.

여전히 현실은 현실뿐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재앙이, 하나님의 뜻이 집합, 집중, 결집되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안 받아버리면 무엇을 놓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철회했다는 이 용서의 취지도 이스라엘 내부에 남아 있을게 아무것도 없어요.

이스라엘이 이방민족같이 우리는 힘으로 버티겠다, 이런 마음 판에 이방민족이 눈에 보이는 자연세계, 눈에 보이는 이 현실이 그게 전부라고 여기고 여호와 하나님은 생각도 없는 그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우상 섬기면서, 바알섬기면서, 그런 이방민족의 신을 섬기면서 명목상 여호와 믿지 사실은 여호와에 대해서, 말씀에 대해서 관심도 없거든요.

관심도 없으니까 앗수르한테 만약에 정복당한다면 진짜 하나님께 관심 있는 사람은 ‘아모스의 예언대로 당했구만.’ 이렇게 되겠는데 그게 아니고 ‘우리는 힘이 모자라서 당했다. 다음에는 국력을 키우자.’ 이렇게 나온다 그 말이지요. 그런 식으로 나와 버리면 하나님께서 재앙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회했다는 것, 용서했다는 이것을 아는 사람, 그 사람만이 뭐가 되느냐? 하나님이 얻고자 하는, 진짜 하나님이 기대하는 참된 이스라엘입니다. 그 사람만!

그런데 왜 메뚜기 재앙이냐, 라고 할 때 여기서 이스라엘이 갖고 있는 비밀이 있어요. 이스라엘의 비밀은 뭐냐 하면, 개개인의 자질이나 성품이나 능력보고 하나님의 백성 만들어준 게 아니고, 집합적이고 집단적이에요. 메뚜기 재앙의 특징이 뭐냐 하면, 이 메뚜기가 집합적이에요. 떼쓰리로 왁 달려든다고요. 개개인의 의지가 없이 누구의 조종을 받는 것 같아요.

따라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에 이스라엘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질이나 성품이나 인품이 좋아서 나온 게 아니고,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애굽나라 재앙의 부대효과, 이 쪽은 때리고 이 쪽은 안 때리고,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안 받게 하시는 특수한 혜택을 입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애굽나라의 재앙이 살아 있는 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답게 되는 거예요.

우리는 애굽나라처럼 맞아야 되는데 안 맞았다는 그러한 용서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느끼는 사람, 은혜의 요소가 있는 사람만이 집단적 이스라엘이 돼요. 쉽게 말해서 ‘나는 역시 훌륭해. 나는 역시 똑똑해. 애굽사람보다 더 뛰어나.’ 이런 식으로는 이스라엘이 성립이 안 됩니다. 이스라엘은 저쪽 집단과 차이 나는 특수집단으로서의 이스라엘이에요. 저쪽도 집단이고 이스라엘도 집단이고.

그래서 오늘날 교회의 천국백성, 하늘나라 백성이라 할 때 사적으로 자기의 자질을 끄집어내면 이것은 메뚜기재앙에 의한 용서하고는 전혀 지금 매치되지 않습니다. 연결되지 않아요. 퍼즐이 안 맞아요. 퍼즐이 맞으려면 우리가 천국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집단적이어야 되는 겁니다. 개인적이 아니에요.

그러면 개인적으로 하나하나 집어서 이야기하지 않고 집단적으로, 전체로 이야기할 때 그러한 집단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이 그게 뭐냐 하면, 그 집단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하냐를 보는 거예요. 개인이 완전하냐, 가 아니라 그 집단이 완전하냐를 보시는 겁니다.

집단적으로, 전체적으로 평을 내리는 예를 들면 이런 예를 들 수 있어요. 어떤 50대 두 남자가 친구에요. 둘 다 혼자 삽니다. 한 남자는 밖에 나갔다 집에 오게 되면 옷이고 양말이고 아무데나 벗어놓고 치우지도 않아요. 방에 들어가 보면 셔츠 26벌이 그냥 흩어져 있고 양말 열 댓 개가 그냥 나뒹굴어서 엉망진창이에요. 그걸 돼지우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요.

또 한 친구는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정돈하고 단아하게 정리하는지 반찬통 그릇마다 라벨을 다 붙여서 관리해요. 라벨이 정면에 오도록 그것도 색깔별로 해서 월요일에 먹을 반찬, 화요일에 먹을 반찬, 수요일에 먹을 반찬……, 양말도 군대내무반생활 할 때처럼 각 잡고 모양 잡아서 개놓은 사람, 나이가 50 넘어도 그런 사람 더러 있어요. 우리나라 어떤 영화배우도 그런 사람 있는데.

예를 들어서 두 집 다 도둑이 들었다 합시다. 철두철미하게 정돈하고 있는 그 사람 집에 도둑이 들었어요. 그 남자는 책을 꽂아서 가, 나, 다, 라, 이 순서로 책을 가지런히 꽂아놓았어요. 도둑이 뭘 훔치려고 하다가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니 급하게 나가는 바람에 책을 떨어뜨렸는데 다시 꽂는다고 ‘다’ 자리에 ‘라’ 자리의 책을 넣고 ‘라’ 자리에 ‘다’ 자리의 책을 넣고 갔을 때 남자가 딱 들어와서 “어? 우리 집에 도둑이 들어왔어. 왜 ‘다’ 자리에 ‘라’가 들어왔지?”

이 소리하니 까 돼지우리같이 사는 그 친구가 “우리 집에도 도둑이 들었어. 왜? 흩어놨던 양말 스물네 개 중에서 한 개가 약간 한쪽으로 옮겨져 있었어.” 그 때 듣고 있던 친구가 “네 집은 돼지우리야. 어떻게 상황이 많이 바뀌어도 전체 이 공간이 물리적상황은 안변해. 어떻게 경우를 바꿔놔도 그대로 있어.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다’ ‘라’ 그것만 바꿔도 전체적인 풍경이 다 바뀌어져.” 그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하나만 바뀌어도 전체적인 풍경이 달라지는 것을 가지고 혼잡도가 거의 작다고 이야기하고 어떻게 바뀌어도 전체 풍경은 돼지우리 그대로 달라질 것이 없을 때를 그걸 가지고 혼잡도가 많다고 이야기해요. 그걸 엔트로피라고 하는 겁니다. 엔트로피라 하는 것은 변화의 가능성이 많은 것을 가지고 엔트로피가 높다고 이야기하고 변화의 가능성이 적은 것을 가지고 엔트로피가 작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면 재앙은 뭐냐? 재앙은 모든 경우의 수를 제로로 만들어요. 재앙 자체에 여호와 하나님의 정보가 거기에 결집되어 있기 때문에 재앙은 마치 날카로운 침 같아요. 용납이 없어요. 봐주는 것도 없어요. 그걸 고지식하다 하지요. 혼란도가 제로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재앙은 처음 이스라엘 만들 때 애굽에 재앙을 내려서 그 재앙을 받는 쪽은 애굽이고 그 재앙에서 배제된 쪽은 이스라엘이라는 그 원칙에 대해서는 조금도 양보가 없어요. 철두철미해요.

아, 그 배우 이름이 김 일우죠. 바로 그 영화배우처럼, 그 사람이 누구를 많이 닮아서 기억이 납니다만 그 김 일우라는 영화배우가 철두철미하게 집안을 정리정돈하고 간수하는 것처럼 주님은 이미 최종적으로 완전한 그 이스라엘집단은 사적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일체 묻지 않고 집단적으로 하나님의 무질서, 또는 혼란도, 혼잡도, 무질서의 도, 또는 엔트로피, 이것을 전부다 제로로 만드는 거예요. 제로로.

영으로 만들었다, 그 말은 자기 백성이 할 수 있는 것을 몽땅 다 빼앗아갔다 보면 돼요. 사적으로 능력 있는 것, 기도하는 것, 헌금하는 것, 전도하는 것, 예배드리는 것, 이스라엘 내에서 그 모든 사적인 것은, 사제 밥은, 사제물건은 다 빼앗아 가버리는 겁니다. 다 탈취해버려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그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재앙 앞에서는 사적인 재주나 솜씨, 흔히 그걸 달란트라 하지요, 그런 달란트 같은 것은 일체 다 압수가 되어버립니다. 그런 게 있어버리면 사적으로 톡 튀어나올 수가 있기 때문에. 집단화, 이스라엘집단화가 되지 않아요. 몸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 소망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가 되려면 사적으로 튀는 일이 없어야 돼요.

만약에 개인적으로 어떤 능력을 갖고 있으면, 이 사람은 다른 경우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면 자기 솜씨를 들이대면서 자랑질 할 수가 있다 그 말이지요.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도 하고, 그래서 저 세리와 같지 아니하다.

누가복음 18장에 바리새인이 세리를 보고 비웃으며 하는 그 짓거리처럼 사적으로 개인적으로 나는 구원받고자 하는 시도는 하나님의 일괄적인 재앙 앞에서는 아무짝도 통하지 않고 소용없는 일이에요.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분명히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올 재앙을 철회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 너희들만큼은 내가 용서하마. 재앙을 내리지 않으마.”라는 것이 최초의 이스라엘 만들 때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이 말이지요. 그러면 그 정신을 계속, 엔트로피 제로(0), 계속 완벽함, 완결됨, 완성됨, 완벽, 그것이 유지가 되어야지요.

그런데 이 하나님의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서 완전하게 된 그 정신은 이스라엘에서 날라 가버리고 어린양의 희생이라는 그 정신이 없는 이방민족을 닮아가지고 각자각자 어떤 힘, 나만을 위한 어떤 힘 모으기에 경쟁적으로 나서다 보니까 이스라엘 내부에 계층이 생기고, 계급이 생기고, 귀족이 생기고, 왕이 생기고, 백성들은 죽거나 말거나 관계가 없고, 백성들의 등골을 더 빼먹는 그러한 일들이 율법의 이름으로 더 자행된 겁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우상적인 사고방식, 마인드를 가지고 신을 믿고 여호와를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이스라엘이 아닌 이스라엘이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전부다 이것은 어디서 오느냐? 사적으로 자기 개인적인 나만 잘되면 된다는 역량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거예요.

그러면 이스라엘과 다른 민족이 왜 다르냐? 이스라엘 민족은 특수한 민족이에요. 하나님의 뜻은 뭐냐 하면, 심판가운데 용서에요. 심판가운데 구원이거든요. 그래서 이스라엘이라는 그 현장은, 재앙이 떨어졌다는 말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찾아왔다는 거예요.

찾아와서 이스라엘에 재앙을 내림으로 말미암아 아모스같이 “하나님, 이 재앙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을 때 그래, 그렇다면 이 재앙의 의미, 재앙이 있는 곳,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곳에, 저주가 있는 그곳, 바로 진짜 자연을 초월한, 자연밖에 계신 하나님의 정보, 하나님의 뜻은 이 땅에는 재앙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심판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왜? 심판받을 만 하니까. 왜? 인간은 이미 죄인이니까요. 그런 안목을 자기가 받아들여야 돼요. 받아들여야 이 용서라는 것은 얼마나 큰 특혜, 얼마나 큰 배려인지를 감사하게 된다는 말이지요. 만약에 하나님의 집단적인 재앙을 모르게 되면 사적으로 이 재앙을 뚫으려고 하고 사적으로 저는 괜찮지요, 하고 자기 능력껏 구원받고자 시도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용서도 없고, 하나님에 대한 감사도 없고, 그냥 하나님 믿고 있는 내 실력, 무슨 다섯 달란트니 열 달란트니, 뭐 “달란트는 탤런트입니다. 재능입니다.” 그런 이상한 소리 하는 것, 그래가지고 경쟁 붙여서 나 우수하다, 잘났다, 하는 이런 것은 경우의 수가 많아져요. 그러면 이것은 혼잡도가 많아집니다. 이것은 미완료, 불순한 것, 하나님의 완벽에 이르지 못한 상태를 말하는 겁니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져요. 어디로 튈지를 몰라요.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모르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재앙을 주실 때 재앙을 적절할 때 사이클 맞춰서 주는 거예요. 증기기관이 있지요. 폐쇄된 그 장치에다 물을 집어넣고 불을 때면 증기가 열에 의해서 기체로 변하고 압력이 커지면 피스톤을, 기술자 앞에서 이런 소리 하는 것이 미안합니다만, 피스톤을 밀고 열이 식어서 피스톤이 다시 원상태로 되면 하나의 사이클이 되거든요.

하나님이 재앙을 주실 때마다, 심판하실 때 마다 이스라엘을, 새로운 이스라엘을 양산하고 생산하는 사이클을 계속 만들어나가는 겁니다. 그 최종 사이클이 뭐냐? 그 재앙을 누가 받느냐? 하나님 자신이 그 재앙을 받아버려요.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 재앙의 현장이 예수님 몸이 되는 겁니다. 죽어가면서 다 이루었다, 하는 그 예수님의 신체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유일하게 거기에 다 집약되어 있어요. 그 십자가를 보면서 아, 주님의 그 피가 아니면 우리는 용서받을 수 없고, 저 피가 아니면 죄 씻음 받을 수 없다는 것, 저 피가 아니면 의인이 될 수가 없고 거룩하게 될 수 없어서 천국 못 간다는 것.

십자가를 보면서 그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나는 두 가지 중첩된 의미, 하나는 모든 인간을 다 죽인다, 지옥 보낸다는 하나님의 심판, 재앙의 의미와 아모스 7장에 있는 말씀처럼 재앙이 있는 곳에 재앙의 철회도 있다는 것, 함께 묶여져 있다는 것. 하나의 조로서.

재앙이 주어지면서 이 재앙의 철회도 가능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십자가가 둘 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진짜 모든 현실너머 모든 현실은 어디에 집약되어 있는가? 바로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버림받는 그 재앙, 그것이 바로 새로운 이스라엘의 집합적인 이스라엘의 본질이 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천국 백성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재앙 속에 비로소 용서가 들어 있음을 저희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갖고 있는 재주와 실력발휘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이것이 얼마나 비이스라엘적이고, 우상적이고, 악마적인 사고방식 이었는지를 이제는 자아를 죽임으로서, 자기의 모든 것이 빼앗김으로서 도리어 빼앗아가는 주님께 감사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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