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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9강-암 6장 1-2절(토지의조건)210106-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아모스

19강-암 6장 1-2절(토지의조건)210106-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아모스 6장 1-2절까지입니다.

아모스 6:1-2

“화 있을찐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 너희는 갈레에 건너가고 거기서 대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 보라 그곳들이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토지가 너희 토지보다 넓으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토지를 거저주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주님의 일터가 되는 겁니다. 그 증거가 시온이라는 명칭, 사마리아라는 명칭,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명칭,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의 열매로서, 그 흔적으로서, 결과로서 그 지명의 이름들이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이 토지, 이 땅과 이방민족이 사는 토지의 성격이 다르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이스라엘과 그리고 시온이라 하는 것은 남쪽의 유다나라지요, 유다라는, 이스라엘 나라에게 특히 지도자급에 해당되는 그런 사람에게 선지자가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너희들이 기거하고 있는 유다와 이스라엘 땅을 떠나서 ‘갈레’라는 곳으로 가보고, ‘하맛’으로 가보고, 블레셋 사람의 ‘가드’라는 땅으로 가보라. 그들이 사는 그 토지와 그리고 너희들이 사는 토지의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알아봐라. 이렇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갈레라는 곳은 니므롯이라는 사람이 시날평지, 예루살렘 북쪽의 평지에 나라를 세웠는데 그 나라를 뜻하고요, ‘하맛’이라는 곳은 수리아 지금의 시리아죠, 그 나라의 수도였던 겁니다. 그 나라 역시 이방나라지요. 블레셋은 지금의 팔레스타인 특히 ‘가드’ 지금도 그 명칭이, 가드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 곳의 특징은 뭐냐 하면, 그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앗수르라는 강대국에게 차례차례로 밀리고 정복당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갈레’나라 망하고, 그 다음에 ‘하맛’나라 망하고, 물론 블레셋 가드도 앗수르라 하는 나라에게 망하고, 그 다음에 누구 차례냐? 바로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할 차례입니다. 그래서 너희들 망한다는 이야기를 아모스를 통해서 미리 알려주고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보다 먼저 망한 나라들, 그 다음에는 네 차례라는 말이지요. 이렇게 보면 이 토지는 결국 하나님이 일하는 토지인데 어떤 일을 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는 그러한 토지가 되겠습니다. 주님의 일터지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로 하여금 약속의 땅이라고 해서 현재 이스라엘과 유다나라가 살고 있는 그 땅을 제공하면서도 그 땅이 그냥 사람들 살기 좋은 땅이 아니고 그 땅에 하나님의 어떤 의도가 처음부터 있는 겁니다. 그 의도는 두 종류의 토지를 그동안 하나님께서 줄곧 이스라엘을 통해서 병행해서 보여줬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애굽나라 있을 때 히브리인들의 토지라 하는 것은 그냥 애굽나라였어요. 그런데 애굽나라와 이스라엘 나라가 분리가 되면서 엑서더스, 구원이지요, 탈출, 탈출하면서 이스라엘 나라가 제일먼저 경험했던 것은 바로 그들에게 아무런 토지가 없다는 겁니다. 살 장소가 없는 겁니다.

애굽에 있을 때는 토지가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구원한다 해놓고 빠져나오니까 저 푸른 초원 같은 땅이 있어야 하는데 없어요. 살만한 곳이 없습니다. 이 말은, 애굽나라에서 네가 살던 그 토지와 거기서 빠져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야 될 토지가 엄연히 다르다는 겁니다. 땅을 먼저 주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백성을 먼저 만드는 작업부터 있었고, 백성이 있고 난 뒤에 그 다음에 그 백성이 백성다울 때 살만한 토지를 나중에 주시는 거예요.

토지보다 백성이 우선이다. 그리고 백성보다 그 이스라엘을 백성 되게 하는 하나님의 일하심, 진리지요, 진실, 하나님의 죽음에서 살려내심, 생명, 백성보다 뭐가 우선이냐 하면, 진실, 진리가 우선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에서 나와서 보니 땅이 없다 이 말이지요. 땅이 없으니까 사막에서 원망했잖아요. 그들이 뭘 놓쳤느냐 하면, 나라는 존재보다 진실이 우선이라는 그것, 진실이 나보다 우선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겁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지요. 교회 나와서 하나님한테 빌고 잘되기를 바랐을 때 하나님의 뜻은 지금도 한결같아요. 네가 건강하고, 잘되고, 잘 먹고, 잘사는 것보다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것은 바로 진실이다, 진리다, 이 말이에요. 생명이고, 진리고, 길, 그걸 알려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건지는 것이지 모든 의미가 자기 잘 먹고 잘산다고 의미가 마감되면 안돼요. 그게 전부가 되면 안 된다 그 말이지요.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에요. 신명기 8장의 말씀처럼 그 땅에 가서 잘 먹고, 잘살고, 좋은 집 짓고 살 때 이것은 하나님 뜻의 마감이다, 끝이다, 라고 즐긴다면 그 약속의 땅이 너희를 심판할 것이다. 마치 애굽사람들이 살던 그 애굽의 땅이 열 가지 재앙을 내려서 자기가 잘 살던 애굽사람들을 황폐화시킨 것처럼, 우박이 떨어져 황폐화시킨 것처럼 자기를 보호하리라고 여겼던 그 토지가 오히려 자기 자신을 파멸시키고 멸망시키는 환경으로 변한 거예요.

이것을 쉽게 해서 쌈 싸먹었다. 돼지고기를 상추로 쌈 싸 먹을 때 딱 덮어버리잖아요. 감싸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의 심판이 감싸는 거예요. 이것은 창세기 3장에 보면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선악과 따먹은 그 정신머리, 사고방식을 그대로 지닌 채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느냐 하면,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서 에덴동산 바깥에 있는 근본 토지로 쫓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대지죠, 땅이죠, 땅으로 쫓겨나왔다 그 말이지요.

그런데 그 땅은 어떤 땅이냐? 저주가 계속해서 발생되는 땅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이 아담에게 네가 아담이다, 흙이다,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태어나서 저주받아 버려지고, 태어나서 살면서 결국은 죽어서 흙이 되고, 또 자식을 아무리 낳아도 또 태어나서 살다가 결국은 흙으로 환원되고, 그런 겁니다.

인생이라 하는 것은 글자로 ‘인생’이라 쓰고 읽기는 ‘저주’라 읽어라. 죄로 읽어라. 이게 이 토지와 인간의 인물이 같이 돌아가는 운명이지요. 같은 운명공동체로 엮여서 환경과 인간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고 인간도 이 저주받은 환경의 일부로서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참 우리 인생이 서글프지요. 태어난 것도 죄고, 사는 것도 죄고, 죽는 것도 죄고. 왜? 이 토지 자체가 저주의 토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마서 8장 21절에 보면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라고 해서 이 피조물자체가 썩게 되어 있는 속성을 지니고 피조물로 태어나는 거예요. 점점 더 썩어가는 겁니다. 22절에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모를 리가 있습니까? 마스크 쓰고 있으니. 답답하지요. 젊은 사람들이야 마스크도 쓸 만하지만 연세 많은 사람들은 마스크 쓰고 있으면 답답하잖아요. 마스크 안 써도 일어서기도 힘들고 가만있어도 견디기가 힘든데 고문도 그런 고문 없습니다. 마스크 쓰는 고문을 줘버려요. 헉헉, 나이 90인데 마스크까지 써서 헉헉거리지요. 그래서 요양병원에서, 죽으면 죽었지 마스크 안 쓰겠다. 그래서 돌아가시잖아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죽을 때 죽더라도 내가 모든 의미, 가치가 내 쪽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지요. 내가 죽고 안 죽고 이것은 중간과정이에요. 의미는 나를 넘어선다고요. 내가 죽는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나를 죽인다는 그 사실이 진실 되게 중요한 거예요. 그게 진실이에요.

우리는 그 진실과 엮여 있고 그 진실에 휘둘리고 있는 겁니다. 주님은 진실을 위해서 일하지 나를 위해서 일하지 않습니다. 나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에요. 진실을 위해서 일하는 거지요.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 따먹은 인간을 저주할 때 우리는 그 사실을 알아야 돼요. 아담이 추방된 그 땅, 대지가 왜 저주를 받는지, 그 이유는 여기서 프레스, 누르는 또 다른 토지가 있어요. 그게 생명나무에요.

생명나무가 선악과 따먹은 자에 대해서 누르고 있는 겁니다. 심판하고 있는 거예요. 정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보면 돼요. 쟁반에 과일을 담잖아요. 그런데 쟁반을 위에 놓고는 과일을 담을 수 없잖아요. 쟁반을 위에 놓고 사과를 거기 붙이면 그냥 떨어지지요. 선악과 따먹은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당기는 힘은 선악적인 것이 우리에게 확 쏠리게 되어 있어요.

선악적인 것이 쏠리게 되면 선악 뒤에 있는 죽으리라, 가 넘치도록 우리를 향하여 폭격을 하고 있는 겁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했느냐 하면, 생명나무의 가치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선악과 따먹은 인간은 결코 생명나무에 도달할 수 없음을 press, 억압 하면서 알려주는 거예요. 인간 쪽에서, 선악에서 뿜어내는 죽음의 심판의 저주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생명나무쪽으로 가는 곳은 엄두도 나지 않는 겁니다. 눌러버리니까, 생명 쪽에서 공격해버리니까.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이 있던 이 저주받은 토지 말고 다른 토지가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요. 그게 바로 생명나무가 있는 토지, 그것은 우리는 갈 수 없고 위에서 눌러버리고 우리를 더욱 더 저주를 저주되게 하는 그러한 근거가 생명나무를 따먹지 못한다는 하나님 자신의 언명, 선언, 그 선언을 위해서 그게 진실이거든요, 그 생명나무의 생명나무 됨의 그 진리를 위해서 우리는 한없이 저주받아야 됩니다. 욥처럼 한없이 저주받아야 돼요. 눌리니까.

그런데 이 사실을 구약에서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 백성이 이미 알고 있었어요. 홍해바다 건너가는데 길이 없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서 바다위로 내밀지요 모세의 지팡이는 바로 하나님의 이름에 의해서 용도가 변경된 지팡이에요. 주께서 모세 너를 다룬다. 모세 네가 너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너를 다룬다는 그것을 알려주는 도구로서 지팡이를 특별히 사용하지요.

지팡이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 지팡이를 든 손을 홍해 앞에서 내미니까 거기에 분명히 길이 없었는데 길이 나오지요. 그 길은 이스라엘한테는 생명의 길이 되지만 그 뒤따라오는 애굽군대한테는 바로 저주의 심판의 길이 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이 대지, 토지 안에 뭐가 있는가? 지옥이 열린 거예요. 심판의 지옥이라는 겁니다.

애굽사람에게 있어서 터 위에 살면서 터 밑에 뭐가 깔려 있는지를 몰라요. 이 땅 밑에는 바로 하나님의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 구약 때 음부라 하는 것은 땅 밑에 있다고 보고, 심판의 장소를 땅 밑에 두고 있다고 봤거든요. 그러면 이 땅, 이 토지라 하는 것은 무엇과 연결되어 있느냐 하면, 지옥과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제가 분명히 단언하지만 지옥 가는 것은 참 쉽습니다. 왜? 그냥 사시면 돼요. 아무 생각 없이 tv 예능 프로 보면서 죽 사시면, 드라마 보고 사시면, 이런 것 보고 사시면 그냥 지옥 가는 거예요. 쉬워요. 태어날 때 적성이 지옥에 딱 맞는 적성입니다. 그래서 인생이라 하는 것, 이 땅에 사는 것은 지옥 연습하는 겁니다. 천국 가는 길은 없어요.

살려고 애쓰나, 일찍 인생 망했다고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리나, 번개탄 피우나, 그냥 백세까지 오래 사시나, 그냥 혓바닥, 이 세상은 지옥에서 나온 혓바닥이에요. 제가 옛날 봤던 만화 라는 것이 있었어요. 제 나이 대 분들은 아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라이파이 본부가 태백산 골짜기 돌 바위에 있는데, 라이파이라는 이 정의의 사도는 오늘날의 수퍼맨인데 어떻게 나오느냐 하면, 사람얼굴처럼 생긴 거기서 혓바닥처럼 비행기 활주로가 만들어져 있어요.

그래서 이 땅이라 하는 것은 지옥에서 삐어져 나온 활주로 같은 것, 혓바닥 같은 것이 이 세상입니다. 지옥이 연장되어 있어요. 이 땅에 살게 되면 자동적으로 아무 선택할 필요도 없이 그냥 사시면 지옥으로 가시는 겁니다. 이 토지의 생리가 그래요. 뭐 죄 적게 지었다고 안 죽고 많이 지었다고 일찍 죽고 그런 것 없어요.

그런데 이 사실을, 이 세상 정체를 애굽사람들은 몰랐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도 마찬가지지요. 요단강 건너가면서 분명히 요단강은 죽음이거든요. 요단강 물이 홍수가 났으니까. 그런데 언약궤를 딱 들고 가니까 거기서 없던 새로운 길이 나오고 그 길 너머에 뭐가 있느냐? 바로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건 열어줘야 돼요. 하나님이 열어줘야 되는 거예요. 열어주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단 죽어야 돼요. 광야에서, 사막에서 이 세상에서 저주의 맛을 보고 지옥의 맛을 봐야 되는 겁니다. 선조들은 40년 동안 지옥의 맛을 보고 죽고, 그걸 봤던 후손들이 요단강의 혜택을 입고, 언약궤의 혜택을 입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거든요.

그럴 때 그 길은, 요단강 속에 들어있던 길은 누구의 길인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통과하는 길, 하나님의 이름 되시는 분이 이 땅에 와서 내어주신, 아스팔트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게 좋은 길은 아니지만 주께서 오셔서 한번 거쳐 가야 비로소 생기나는 길, 그래서 주님은 진실 되고, 주님은 영생이고, 주님은 우리의 길이 되는 겁니다.

주께서 먼저 이 저주의 땅을 다녀갈 때 그 다녀가신 그 길, 노선, 영어로 path라 하지요, 길, 그 길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따라가기만 하면 돼요. 그 길이 뭐냐? 약속의 길, 언약의 길, 언약궤가 갔던 그 길. 언약궤 가지고 가니까 여리고성까지 왕창 무너진 거예요. 그 길이 창세기 3장에 보면 수직적 길이에요. 위에 있는 쟁반이에요. 토지가 이 아래에 있고 또 위에 있고.

이것이 요한계시록에 가면 다시 창세기처럼 그런 구조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에 보면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어요. 새로운 토지가 있습니다. 그 중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땅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다. 그 땅의 의미가 뭐냐?’ 그 걸 알리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살다가 오늘 본문에 보면 쫄딱 망하게 된 겁니다.

여기에 앗수르 나라한테 망한 나라가 북이스라엘이고, 그 전에 망한 나라, 본문에 나오는 갈레, 하맛 그리고 블레셋 사람의 가드, 옛날에는 다 도시국가 였으니까요, 이 국가들이 앗수르한테 망했잖아요. 그 다음에 이스라엘이 망한다고요. 그 망한 이스라엘을 가지고 사마리아 땅이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북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31장 5절에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원을 심되 심는 자가 심고 그 과실을 먹으리라.” 주께서 망하게 하시면서 뭐라고 예레미야를 통해서 예언을 하느냐 하면, 그 사마리아 땅에 포도원을 심되 심는 자가 심고 그 과실을 먹으리라, 해서 이스라엘이 범죄 하기 전 상태, 그 좋았던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이 넘치는 사마리아를 다시 내가 일궈낼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자, 이것이 신약성경에 오게 되면 사도행전 1장 8절에 유명한 말씀 나오지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여기 사마리아 나옵니다.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북 이스라엘의 그 고토, 옛날 땅이 다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 되는 조건은 뭐냐? 성령이 임하면 돼요.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는 열매가 맺히는 겁니다.

사도행전 8장 4-6절에 보면 빌립이라는 집사가 여기서 뭘 사마리아 땅에 전하느냐 하면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사마리아 땅에 성도가 발생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구약 예레미야 31장에서 예언한 그 열매에요. 사람 자체가 열매가 되는 겁니다. 토지가 좋지 아니하면 열매가 안 맺히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새로운 토지는 뭐냐? 성령자체가 처소가 돼요. 토지가 된다고요. 왜? 하나님이 완성된 상태에서 함께 살기 때문에.

아까 분명히 이야기했어요. 백성보다 먼저 되는 게 진실이에요. 진리, 진리와 생명의 길이 먼저 발생되면 거기에 부합되는 적합한 백성들이 신약에는 성령을 통해서 생산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인간들은 뭐냐? 기존의 인간들이 살던 이 토지, 등록되어 있는 이 모든 토지는 인간을 심판하고 죽이는데 최적화된 조건을 갖고 있어요. 태어나서 죽고 태어나서 죽고.

따라서 신약에 수직적으로 있던 이것을 제가 평면적으로 쉽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시험 치는데 뒷면은 없고 앞면만 문제가 있는 시험지로 시험을 본다고 칩시다. 앞에 이름 씁니다. 몇 학년 몇 반 이름 쓰고 죽 보는데 천국에 들어가는 그 시험은 주님께서 미리 앞면에 답을 다 써놨어요.

그 쓴 답이 요한복음 13장 10절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이렇게 되어 있는데 너희들은 이미 죄 씻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주께서 베드로의 발이라는 신체의 일부를 씻어줌으로서 발만 씻은 것이 아니고 이미 너는 전체가 다 하나님 앞에 죄 씻음을 받을 것이라고 시험지 앞면에다 그걸 써놔요. 답은 우리한테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다 써놔요.

그러면 베드로와 열두 제자와 그리고 오늘날 성도들이 해야 될 것은 뭐냐? 뒷면을 채우는 겁니다. 뒷면은 우리가 답을 쓰는 것이 아니고 문제를 쓰는 거예요. 답은 죄 씻음 받는 거예요. 끝났어요. 죄 씻음은 다 이루었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죄 씻음 받는 거예요.

세찬 물줄기로 차의 전신을 세차하듯이 주님께서는 앞면에 네가 어떤 죄를 지어도 씻어주겠다고, 예수님의 피로서 십자가의 흘리신 그 피로서 이미 깨끗하게 되었느니라, 하는 것을 분명히 해두고 그 다음에 뒷면에 우리 성도의 인생을 계속 살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뒷면에 우리가 적을 것은 뭐냐? 인생 살아가면서 이미 죄 씻음 받은 입장이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뭘 적어 가느냐 하면, 우리가 뒷면에는 죄일 수밖에 없는 것들을 적어가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이런 거지요. 기도 많이 하면 응답 받는다, 이런 것. 예수님 십자가 피 믿었으니까 구원받을 것이라는 생각, 이런 것들이 전부 다 죄가 되는 겁니다.

죄라는 것은 평소에 답이 없을 때 내가 답을 구하려고 종교적인 신앙적인 몸부림을 치는 그 모든 것이 바로 죄가 되는 거예요. 답이 없다고 여기고, 답은 아직 없다고 여기고 내가 답을 찾아가는 식으로, 저주받은 내가 저주에서 헤엄쳐서 밖으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그 모든 몸부림을 뒷면에 다 적어야 돼요. 그것 적으려고 평생 동안 아직까지 우리가 안 죽고 있으면서 계속 적는 거예요.

쉬운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논산 훈련소에 가면 훈련병들이 일요일마다 큰 교회 예배당에 모여서 부르는 노래가 있어요. 실로암이라는 노래입니다. 이건 유행가가 아니니 불러도 되겠지요?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종이 울리고 닭이 울어도 내 눈에는 오직 밤이었소
……………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나에게 영원한 사랑 속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이 노래 부를 때 훈련병들이 그냥 부르는 것이 아니에요.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할 때 박자를 맞추면서 사이사이 추임새를 넣어요. 왼발! 왼발! 이러거든요. 그 왼발을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내 구원! 내 구원! 내 구원! 이러고 있다는 말이지요.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내 구원! 내 구원! 존재! 존재! 내 천당! 내 천당!” 이러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걸 다 적는 거예요. 천박한 유행가나 부르고 난 그거 안 부르면 천당 갈 줄 알았다, 이런 것 있잖아요. 바로 그런 것들,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천박한 유행가도 안 부르고 세상 것들, tv도 안보고, 내가 온통 기도와 헌신과 순종과 그리고 보약 먹듯이 온갖 진리란 진리는 다 끄집어 당기는 거예요. 십자가, 피, 언약, 구속사, 들은 가락은 있어서 이런 것은 다 가져와서 오직 성경공부, 해서 내가 구원받을 모든 장비를 다 갖춰놓고 뒷면에다 반드시 이렇게 해야 돼요. “이것이 바로 지옥 가는 길이었습니다, 주여.” 쓰면 됩니다.

“내가 스스로 날 구원하기 위해서 그렇게 순종과 모든 헌신을 다 한 이 짓이 저주받을 짓이고, 이것이 바로 죄가 된다는 사실을 이제 고백합니다.” 이렇게 쓰는 거예요.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세리와 바리새인처럼 말이지요. 앞면에는 이미 답이 나왔어요. 죄 씻음이라고 벌써 세차한다고 물 팍팍 뿌리고 있는데요.

누가복음 18장 11절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이게 지옥 가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 죄인은, 그런 짓을 하나, 내가 기도하나, 내가 기도한다고 회개한다고 해서 이게 죄 아닌 게 아닌 거예요.

이미 죄 앞면을 아는 사람에게, 다시 말해서 앞면을 안다는 것은 이미 성령을 받아서 새로운 토지의 백성, 새로운 백성이 된 사람한테는 앞면이 있잖아요. 피로 죄 씻음 받았다는 앞면, 정답이 있잖아요. 정답이 있으니까 뒷면은 그동안 내 구원을 위해서 노력했던 것 어떤 것이라도 다 적고 “이게 죄 아닌 줄 알았는데 이게 바로 죄였습니다.” 하는 거예요.

그런데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정답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성령을 안 받아서 정답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뒷면에 쓸 것을 앞면에 쓰는 거예요. 저는 어릴 때부터 이레에 두 번씩 금식했고, 토색이나 살인이나 간음을 아니하고……, 이걸 죽 써서 “이러면 합격되시겠습니까?” 하고 내는 거예요.

진실이 먼저고 그 다음에 진실을 진실 되게 해서 우리가 존재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작업이 먼저고 그 다음에 우리가 되는 겁니다. 토지라 하는 것, 원래 하나님의 토지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앗수르한테 멸망당하지만 유다나라는 앗수르한테 멸망당하지 않거든요. 아모스 6장에 멸망시키는 나라가 나오는데 유다는 빠져요.

그 빠지는 이유가 역대하 21장 7절에 보면 이렇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음은 이전에 다윗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또 다윗과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허하셨음이더라.” 여기에 다윗의 등불, 다윗에게 등불을 주겠다.

다윗이 등불을 갖고 있는데 왜 다윗의 등불이 유다나라로 하여금 멸망을 북 이스라엘 보다 늦추시고, 심지어 유다나라가 멸망한다 할지라도 유다나라의 핵심신앙인들은 바벨론 나라에 끌려가면서도 거기서 하나님의 성소가 되는 이유가 뭔지? 그것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약속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약속은 사무엘하 7장 13절에 보게 되면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그러니까 이 토지가……, 이런 것이 어렵습니다. 토지가 인물을 감싼다고 해잖아요. 하나님이 다윗의 아들, 하나님의 집, 하나님과 함께 있는 그 집이 얼른 보면 어떤 부동산같이 생각되지만 ‘사무엘하’는 부동산이 아니고 어떤 인물, 특정 인물이, 다윗의 자손 자체가 하나님이 함께 계신 집이 되게 하셔요.

토지개념에서 인물, 인격자, 인물개념으로 바뀌는데 있어서 다윗의 자손이 서서히 핵심으로 등장하는 겁니다. 어느 곳에, 어느 땅에 성전지어라, 가 아니라 다윗에게 낳은 자손이 성전이 된다는 겁니다. 성전이 벽돌 쌓아서 예배당 짓는 것이 성전이 아니고 어떤 특정인물이 하나님과 만나는 성전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인물을 지켜주기 위해서, 인물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 새로운 토지가 생기는데 그게 아까 보았던 요한계시록 21장에서 봤던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그 인물 앞에서 하나님과 같이 만나는 겁니다. 이게 무척 어려운 게 요한복음 14장에서 처소 개념이 그 개념이에요. 처소가 뭐냐“ ‘예수 안’이 처소에요.

그리고 에스겔 47장에 보면 생수가 성전에서 쏟아져서 대홍수를 일으켜서 내려오거든요. 1-5절에 보면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다시 일천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이렇게 물이 흐르는데 요한복음 7장 37-39절에 보면 초막절이죠.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령이 계시는 곳이 에스겔 47장에 나오는 성전의 완성체다, 그 말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에도 죽 나오지요. 예수 믿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니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라고 되어 있어요.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토지개념이 인물개념으로 바뀌는 겁니다. 인물개념으로 바뀌면서 백성이 먼저 등장하고, 그 백성을 보호하고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해두신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예수 그리스도의 색시가 되면 그 신랑을 위해서 마련된 하늘나라, 그 아름다운 천국은 신부가 다 누릴 수가 있는 겁니다.

구약에서는 아가서에서 솔로몬이 사랑하는 술람미 여인을 위해서 아낌없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초청하는 대목이 나오잖아요. 이러한 하나님의 토지개념에서 뭘 이야기하느냐 하면, 아래 있는 토지는 이미 선악과 따먹고 죽음이 넘쳐나고 저주가 넘쳐나는 토지에요. 그러면 그렇게 심판이 가해져야 될 이유가,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났다는 그 이유 때문에 죽는 이유가 생명나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생명나무가 있는 곳만이 생명의 영원한 토지고 영원한 세계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필요 없는 이곳은 압박을 해야 돼요.

그게 지옥인 거예요. 천국의 힘에 밀려서 지옥이 지옥다워야 되는 겁니다.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야 돼요. 그걸 오늘날 성도한테는 어떻게 되느냐? 성도한테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욕망 많은 육신의 것을 갖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미 그것이 시험지의 뒷면에 우리가 육신에서 나오는 욕망, 저주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 같은 것들을 뒷면에다 적으라고 우리 인생을 계속 살게 하시는 겁니다.

“네가 네 인생을 한번 살아봐라. 주님중심이 아니고 너 자신을 위해서 천국이고 지옥이고 다 너 좋으라고, 너 자신만이 최고가 되기 위해서 하는 짓거리를 네 육신을 통해서 마음껏 나올 것이다.” 그런 것 빠트리지 말고 뒷면에다 쓰면 돼요.

왜? 앞면은 이미 죄 씻음이니까. 죄 씻음이에요. 피로서 씻음이에요, 씻음. 아까 그 베드로의 발 씻기는 것 아시지요? 주님께서 이미 정답을 가지고 베드로의 모든 것, 베드로의 운명은 이미 내가 너를 책임졌다. 그렇다고 해서 베드로의 몸이 깨끗한 것은 아니에요. 왜? 주께서 씻어줘야 되니까. 씻어줘야 된다는 것은 깨끗지 않다는 뜻이에요.

그러나 깨끗지 않은 것을 깨끗하게 하는 그 과정, 그게 길이고 진리고 생명인 거예요. 그러면 더러운 것이 있어야지요. 그 더러운 역할은 또 우리가 하는 겁니다. 우리 몸을 가지고. 그 더러운 것이 뭐냐?

“~존재! 존재! 존재! 내 구원! 내 구원! 내 구원! 내 행복! 내 행복! 내 행복!” 추임새 넣어가면서, 박자 맞춰가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오늘도 나 행복한 날이 되게 하소서, 올해도 행복한 내가 되게 하소서, 올해는 은혜 받게 하소서, 올해는 성령 받게 하옵소서. 네가 뭔데? 성령은 왜 주는데? 그렇잖아요. 눈만 뜨면 자기밖에 모르잖아요.

그런데 성도는 그러한 것이 몸에서 나올 때마다 얼른 뒷면에다 쓰는 거예요 “주여, 내 구원, 내 성령, 성령 받아서 영광 돌리겠습니다, 하는 이 짓이, 비로소 이게 바로 저주받을 죄라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하고 헤헤, 하면서 앞면 딱 보는 거예요. 앞면 딱 보니까 죄 씻음.

이미 답은 우리가 내린 것이 아니에요. 답은 이미 내려졌어요. 죄 씻음, 이게 진리거든요. 진리가 먼저고 그 다음 뒷면에는 우리는 나중이 되는 겁니다. 진리가 진리답게 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 멸망해야 됩니다. 그리고 유다나라도 결국 멸망당하지요. 그들의 지도자들, 하나님께서 네가 있는 그 땅이 차이를 모르고 그 땅을 탐을 내고 그 땅에 가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 다 같이 멸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멸망당하고 유다가 멸망당한다 하더라도 그 유다의 뿌리에서 누가 등장하는가? 로마서 1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복음을 정의하면서 이렇게 합니다. 2절에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아들이라 하는 것은 사무엘하 7장 14절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 내가 친히 그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고 하는 그 약속, 로마서 1장 2, 3절에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이 다윗의 혈통, 다윗의 등불, 하나님의 약속이 모세의 지팡이처럼 저주밖에 없는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토지가 있다는 것을, 바로 하나님의 이름에 의해서, 하나님의 메시아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줬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뭘 해주셨는가? 우리가 해내지 못한 것, 죄 씻음, 죄를 씻는 행위 자체가 하나님의 의고, 하나님의 생명이고, 길이고, 진리인 것을 우리는 기쁘게 받아들여서 오늘부터 뒷면 쓸 것을 하나하나 뽑아서 기쁘고 즐겁게,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뒷면에다 “이것조차 죄였습니다.” 하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무리 복음을 들어도 돌아서면 또 내 중심이고, 내 행복중심이고, 내 평안 중심이고, 내 잘난 체 하는 중심인 것을, 우리가 이제는 그래야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죄 씻음이라는 것이 우리의 행복보다 우선되고, 진리가 내 존재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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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1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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