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51편 주께서 꺾은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 이상현 목사
시51편 주께서 꺾은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밧새바와 간음하고 우리야를 살인교사로 죽인 다윗은
율법에 기록된 죄에 대해, 자신이 알던 율법에 의해
사형을 선포한다. (삼하12:5)
그리고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으로
자신의 죄에 직면한다.
이 죄는 이제껏 다윗이 알던 죄가 아니다.
도덕 윤리와 법에 어긋나면 벌 받고
그것을 잘 지켜 행하면 칭찬 받는 그런 죄가 아니다.
이 죄는 다윗이, 인간이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죄이다.
오직 말씀으로 깨닫게 되는죄이다. (삼하12:7~12)
이 죄는 도저히 벗어 날 수가 없다.
항상 내 코 앞에 딱 달라붙어 있다.
그리고 이 죄는 스스로 벌 받을 수도 없다.
이 죄를 정하신 분만이 벌도 정하신다. (삼하12:13~14)
인간이 살고자 해서 살아지는 것이 아니듯
인간이 죽고자 한다고 죽어지는 것도 아니다.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듯
죄 또한 그러하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난다.
살다 죄를 지어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사는 것이 그저 죄인 것이다.
“죄 안”에 살기에…
이것이 다윗이 스스로 지은 세상 죄를 통해
말씀이 가르치신 죄의 본질이다. 진짜 죄이다. (롬5장, 7장)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은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그 죄를, 말씀이 주께서 꺾은 뼈로 하여금 알게 하신다.
인생 살다 뼈가 부러진 자가 알게 되는 죄가 아니다.
그것은 개고생이고 개똥철학이다.
오직 말씀으로 책망받을 수 있는 죄이다.
주님이 자신의 택한 백성의 뼈를 반드시 꺾으시고
꺾으신 뼈마다 자신이 지옥 가야 마땅한 죄인임을 알게 하신다.
주님에 의해 뼈가 꺾어진 자들이 주님이 택하신 죄인이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로 반드시 즐거워하게 하신다.
뼈가 꺾여 아프고 힘들어서 악다구를 써도 소용이 없다.
주님이 결국 기뻐 감사케 하신다.
어떻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복음을 듣게 하사!
무엇이 복음인가?
예수님이다! 십자가이다!
주님이 꺾으신 뼈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다!
나는 죽었고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
꺾인 뼈가 기뻐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즐겁고 기쁜 소리가 꺾인 뼈 속에 넘치니
꺾인 뼈가 기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복음을 듣게 하신 것은
주님의 뼈 꺾기 놀이에 말려든 것이다.
꺾일 때마다 너무도 아픈 실감나는 전쟁 놀이다.
때와 시도 주님이 정하시고
누구를 통해 얼마나 꺾을지도 주님이 정하신다.
알게도 꺾으시고 모른 채 꺾여 있기도 하다.
꺾이기 싫어 도망도 쳐보고 대항도 해보고
이미 꺾인 척 설레발도 쳐보지만 소용이 없다.
싸움에 능하신 주님은 날마다 나와 전쟁놀이를 벌리신다.
그리고 날마다 뼈를 꺾으신다. 죽이신다. (고전15:31)
놀이의 빌미는 “기쁨”이다.
기뻐하지 않을 떄마다 뼈 꺾기 놀이를 시작하신다.
‘죄인된 것이 기쁘지 않니?
‘내가 살아 있는데 기쁘지 않니?’ 물으시며…
‘항상 기뻐해야지’ 다짐해서 될 일이 아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기쁨은 나의 기쁨이 아니라 성령의 기쁨이니까…
주님이 말씀으로 꺾으셔야만 주어지는 기쁨이니까…
놀이의 대상은 내 안의 우상이다.
꺾여도 꺾여도 끊임없이 나오는 내 안의 금송아지다.
살아 있기에, 숨쉬기에 가질 수 밖에 없는 탐심이다.
그래서 살아 숨쉬는 한 주님의 놀이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심지어 십자가마저 우상화시키고야 마는 ‘나’이기에…
주님이 택하신 놀이 대상이기에...
이미 지옥에 떨어질 죄인임이 확실하고
주님이 절대 놓치지 않으시는 놀이 대상이니
주께서 꺾으시면 꺾이고
주께서 지옥 가라 하시면
주님이 의로우십니다, 순전하십니다 할 밖에!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으니
그냥 주님의 뼈꺾기 놀이에 휘말려 살 뿐인데
뼈가 꺾일 때마다 기적이 일어난다!
도저히 기쁘지 않고 기뻐할 수가 없는데 기뻐진다.
모든 엿 같은 상황은 그대로 이고
말씀 하나 주어졌는데…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망하여야 하리라 (요3:30)
말씀으로 인해 어찌해 볼 수 없게 된 죄인만이 편히 잔다.
많은 대적이 둘러싼 전쟁터에서도 누워 잔다. 모로 자지 아니하고.
천만인이 둘러치려 해도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이, 말씀이, 복음이 붙드시니까! (시3편)
꺾어진 뼈는
그저 아프다. 슬프다.
복음이 들려진 꺾어진 뼈는 아픈데 즐겁다.
슬픈데 기쁘다.
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자유케 하시는 성령이 붙드시기 떄문이다.
성령은 나를 책망하시며 복음을 상기시키신다.
복음은 구원이다.
구원은 죄인에게 십자가가 임하신 것이다.
성령이 붙드시는 자마다
주님의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되어진다.
나의 구원의 즐거움이 아니다
주님의 구원의 즐거움이다.
나의 즐거움이 아니다.
주님의 즐거움이다.
그 주님이 즐거우시니 함께 즐거워 할 밖에...
마른 뼈는
기뻐할 수 없다.
주님의 말씀으로 인해 생기가 부어진 마른 뼈들은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주님의 군대이다. 성도이다. 형제이다. (겔37장)
성도에게 주님의 말씀은 명령이 아니다.
약속이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구원의 하나님이 예수님이시다.
유대인은 하나님을 믿고
교인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다.
성도는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심이 믿어지게 된다.
십자가의 하나님을!
십자가를!
그래서 성도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주의 의”를 찬양할 수 밖에 없다.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주님은 유대인의 제사를, 교인들의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주님의 말씀으로 지옥 가야 마땅함을 깨닫게 된 “상한 심령”만을 받으신다.
진정한 제사는
그 “상한 심령”에 주님의 피가 덮히는 것이다.
주님이 꺾으신 마른 뼈에 생기가 임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몸을 제물로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이다 .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예배”이다.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성을 쌓으소서
그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이 제사, 예배가 드려지는 곳이 시온이다. 예루살렘성이다.
인간의 손이 아닌 주님이 쌓으신 성소이다.
주님이 꺾으신 “상한 심령”에 주님의 피가 덮히는 제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예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 “성소”가 “예수 안”이다.
주님에 의해 꺾어진 뼈들에게 주님의 피가 덮쳐서 “하나님의 의”가 완성된 곳,
곧 ‘십자가 안’이다.
그래서 성소에는 오직 하나님 찬양이 있다.
그가 행하신 십자가 권능만을 찬양한다. (시150:1~2)
면류관 집어 던지고 기쁨으로 감사 찬양!
성소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이 아니라
이미 성소에 들이신 자들이
기쁨으로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주님이 꺾으신 뼈들아!
주 안에서 형제된 자들아!
오늘 구원이 이르렸으니 (눅19:9)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으니 (마12:28)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으니 (눅17:21)
오직 너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니 (갈2:20)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지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