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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01109a 부산강의 : [시편]33(21편)-깔때기 은혜자유게시판시편

20201109a 부산강의 : [시편]33(21편)-깔때기 은혜
(강의:이근호 목사)

시편 21편입니다.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딱 나오지요. 왕. 이스라엘 왕이란 화살표가 앞에 주의 힘에 의해서 왕이 된다면 그 왕에 속한 이스라엘도 무엇으로 유지됩니까? 주의 힘으로 유지되지요.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이것이 신약에 가면 뭐냐 하면 크게 쓰겠어요. 천국은 또는 영생은 거저주심입니다. 천국과 영생은 거저주시는 거예요.

거저주심을 이해하려면 우리의 출생은 우연이어야 하는 거예요. 지금 ‘우연’이란 단어 나왔지요. 처음에 무슨 단어 나왔습니까? ‘주의 힘’ 나왔지요. 그 다음에 ‘거저주심’ 나왔지요. 서로 세 가기의 단어가 연결이 되지요. 연결시키면 우리가 태어난 것은 우연이다. 그 다음에 우연히 태어난 것처럼 천국도 거저주심이란 것은 우리가 예상 못하고 우연한 거예요. 우리가 우연히 태어난 것처럼. 그런데 그 우연은 다 어디서 나온다는 말입니까? 주의 힘에서 나오지요.

어떤 분의 사돈이 저녁 먹다가 ( )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여기다 뭘 집어넣어요? 나이가 68인데 저녁 먹다가 죽었는데 사람들은 이 괄호에 뭘 집어넣습니까? (갑자기) 이 갑자기를 집어넣으면 안 돼요. 왜? 갑자기를 집어넣으려면 우리가 오늘 모임도 갑자기 된 거예요. 오늘 아침 먹은 것도 갑자기 먹은 거고. 이건 너무 번거로워요. 그럼 갑자기를 빼버립시다.

갑자기를 빼버리면 주의 힘으로 저녁을 먹었고 주의 힘으로 돌아가신 거예요. 그 사람이 태어날 때 주의 힘으로 우연히 태어난 거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만약에 그 사람이 우연히 주어진 거저주신 성령이 없다면 성령을 받지 못하면 그 사람은 어디 가느냐 하면 당연히 지옥에 가지요. 왜? 거저주심이 없으니까. 지옥에 간 사람은 거저주심이 없어요. 자기가 노력한 만큼 인생을 힘들게 살아왔다는 것만 있어요.

그걸 어떻게 하느냐? 평소에 말하는 걸 보세요. 제가 오후 설교 기도시간에 이렇게 했어요. 인간은 중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은 늘 전도해요. 늘 전도하고 늘 발산하고 늘 자기의 본심을 드러내는데 그게 뭐냐 하면 불신앙을 늘 전도하는 거예요. 사람은 툭 건드리면 전도해요. 안 건드려도 전도하거든요. 방송에서 예능이고 뭐고 노래고 그건 늘 전도하고요.

사람은 거저주심이 아니고 애쓴 만큼 주신다는 것, 그걸 이 세상에서 지옥의 도, 악마가 지옥 가기 위해서 퍼뜨린 가짜뉴스들이 계속해서 티비만 틀면 24시간 나옵니다. 홈쇼핑부터 해서 쉬지도 않고 나와요. 사람을 지옥 보내는 도, 사람들은 그걸 진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방송만 그럴까요? 교회도 그렇잖아요. 하나님, 예수님 다 이야기하는데 그게 지옥 보내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예수 믿는 노력을 하고 봉사해야 됩니다. 그래야 천국 갑니다.

천국의 거저주심을 사람들은 안 받아들이는 이유가 자기가 태어난 것이 안 태어나도 되는데 우연히 태어났다는 걸 모르고 태어난 것뿐만 아니고 40, 50, 60, 70, 80 살아온 그 하루하루가 없어도 되는 날을 주께서 거저주심의 배려차원에서 계속해서 지연시킨 겁니다. 이어온 겁니다. 그게 어디서 나온다 했습니까? 주의 힘이죠.

이 주가 신약에 오게 되면 시편 21편에선 여호와지만 주의 힘이 어떻게 됩니까? 왕에게 주의 힘이 플러스 결합이 되면 이게 누구지요? 주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천국은 내가 원하는 사람 거저 간다는 것을 그냥 구름 위에서나 선지자에게만 준 게 아니고 사람의 육신으로 나타나셔서 말만 하신 게 아니고 그냥 십자가에 죽으신 거죠.

그러면 주의 힘의 목표가 있을 건데 주의 힘의 목표는 뭐냐 하면 이겁니다. 의란 무엇인가? 반대말, 죄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주의 힘이에요. 삶은 무엇인가란 노래 있지요. 의란 무엇인가, 죄란 무엇인가. 죄란 무엇인가는 어디에서 구체화되느냐 하면 지옥 불에서 구체화되고 의란 무엇인가는 천국에서 구체화되는 겁니다.

이 목표를 향하여 주께서는 우리에게 힘주시는 거예요. 태어나지 말아야 할 인간을 태어나게 하셔서 한쪽은 의를 담아버리고 한쪽은 죄를 담아버리는 겁니다. 일방적인 겁니다. 우리가 손쓸 틈이 없어요. 주께서 거저주시지 않는 한 교회에서 교육시켜도 바꿀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연은 땅에서는 계속 우연이어야 되는 겁니다. 이 땅에서는.

방금 제가 이 땅에서라고 했지요. 이 땅에서는 우연이어야 돼요. 이 땅에서 우연이니까 이걸 뭐로 보느냐 하면 이걸 표면이라 합니다. 껍데기지요. 어떤 사람은 게 껍데기, 돼지 껍데기 좋아한다는 데 나는 별로에요. 세상은 여기에 바퀴벌레처럼 살아갑니다. 수평적 존재거든요. 눈에 보이는 것이 표면 밖에 못 봐요. 뭘 못 보느냐 하면 심층을 못 본다고.

그런데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이 표면에 오셨거든요. 표면에 오셔서 무덤 속에 들어갔는데 그 표면에 있는 유대인들이 무덤을 조사해보니까 나중에 무덤에 시체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시체가 없었어요. 주님은 심층을 거쳐서 심층세계에 가버렸어요. 표면을 표면 되게 하는 심층세계.

심층세계는 아까 처음 이야기에서 무슨 힘입니까? 주의 힘으로 구성된 심층세계. 심층세계가 이 위에 표면을 남기니까 인간들은 바퀴벌레처럼 이 위만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드론이 없어요. 지표면만 왔다 갔다 하는 게 인생이란 것. 제가 지표면만 봤는데 이걸 위에서 봅시다. 위에서 보면 지표면의 실정이 잘 나타납니다.

위에서 보면 이렇게 돼있어요. 전부 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쟁마당이에요. 어떤 사람은 앞서가고 어떤 사람은 뒤처지고, 전부 다 순위매기는 세계, 이게 뭐라고요? 표면. 예를 들어서 키, 그 다음에 건강상태, 아이큐, 조기에 영어 했는가, 컴퓨터 어느 정도 가능한가, 진도 어디까지 나갔는가. 회사도 마찬가지에요. 이쪽 회사, 저쪽 회사 어느 쪽이 더 매출액이 많으냐.

위에서 보면 전부 다 작대기에요. 어디까지 목표량을 채웠느냐. 이겁니다. 교회 교인 수는 몇 명이냐. 이런 거예요. 위에서 보면 이런데 옆에서 보면 전부 다 바퀴벌레 생활을 못 벗어나는 거예요. 이 표면에서 저녁 먹다가 갑자기 어디로 갔는지 표면의 세계는 알 수가 없어요. 심층의 세계를 모르니까. 심층의 세계는 주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심층의 세계를 알려면 주의 힘을 내용을 거저주시는 성령을 받아야 주의 힘의 내막을 알 수 있어요. 표면적 존재가 아닙니다. 심층적 존재에요.

제가 지금 오늘 시편 21편에서 왕 이야기 나오고 그 뒤에 보면 왕이 하는 일이 있어요. 그냥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받아먹은 그런 일이 아닙니다. 복면가왕의 가왕은 그냥 자리에 앉아있지요. 남 노래할 때 마스크 쓰고 앉아 있잖아요. 그러나 우리의 왕은 누구보다도 부지런하시고 아버지고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해서 쉬지를 않아요. 쉴 틈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는가? 대적과 싸움을 하시는 일을 합니다.

강의 다시 하겠습니다. 주의 힘에 의해서 뭐가 됐다? 왕. 이 왕은 이스라엘의 왕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주의 힘에 의해서 유지된다. 그런데 주의 힘이 신약에 오니까 천국을 어떻게 준다? 거저주시는 거예요. 주의 힘에 의해서 거저주시는 거예요. 주의 힘에 무엇이 섞이면 안 돼요? 나의 힘이 섞이면 돼요, 안 돼요? 나의 힘이 섞이면 거저주심이 파토나 버립니다.

내가 집어넣은 그 힘은 주님께서 샅샅이 살펴서 다 빼냅니다. 빼낼 때 아파요. 너무 아파요. 거저주신다고 했건만 우리의 땀과 노력을 자꾸 섞어 넣는 겁니다. 안 섞을 수가 없는 거예요. 섞으니까 족집게로 하나하나 뽑아내는데 그게 엄청 아픕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 21편의 강의의 주는 뭐냐 하면 이 대적을 알아야 돼요.

누구의 대적? 주의 힘으로 왕이 되시는 거기에 대한 대적의 속성은 본질은 바로 뭐가 없겠어요? 주의 힘이 없는 그런 자생적인 표면을 이미 장악한 악마의 힘에 의해서 등장하는 대적이 되겠지요. 이 대적은 지상의 신이고 지상의 왕이에요. 지상, 표면세계, 바퀴벌레의 왕이에요. 바퀴벌레 왕이니까 대적 밑에 자기 졸개들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엄청나게 많지요.

예수님도 적은 자여 두려워 말라. 천국이 너희 것이라. 거저주시는 자가 상대적으로 너무나 숫자가 적기 때문에 적은 자라 이야기했고, 마태복음 7장에서 생명의 길로 가는 사람은 많다, 적다? 적다지요. 우리 진자교회 교인 몇 명입니까? 많다고 볼 수 있어요. (적습니다) 기뻐하라, 복인 줄 알아라. 이렇게 된 거예요.

대적들은 굉장히 많습니다. 많은 사람이 멸망의 길로 갑니다. 우리 보기에 숫자가 아깝다 하지만 아깝지 않아요. 그 모든 숫자는 주님의 유일성, 예수님의 유일성 때문에 돋보이게 하기 때문에 많은 다수가 만들어내는 그럴싸한 왕,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는 대다수의 부러움을 사는 그 왕과 절대적으로 대조를 이뤄야 되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는 숫자가 소수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게 되면 소수지만 없다고 생각하니까 의외로 많은 거예요. 없다고 생각하니까 주님, 천국 가는 사람을 왜 이렇게 많게 했어요, 라고 되려 놀래버려요. 본인들이 놀래요. 왜? 없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에. 세상은 전부 악마 손에 넘어갔잖아요. 예수님과 악마의 광야시험에서 보면 이미 세상 모든 권세와 모든 것은 전부 다 누구 손에 넘어갔다? 악마의 손에 넘어갔고 고린도후서 4장에도 이 세상의 신이라 했어요. 에베소서 2장에도 이 세상은 이미 누가 접수했느냐? 불순종한 영에 의해서 접수가 된 상태입니다.

아까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인간은 중성적인 존재가 아니라고요. 뭔가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뭘 만나도 전부 다 지옥 가는 그 도, 지옥 가게 하는 그 의견만 늘 하수구에 구정물 나오듯이 어디 가도 구정물 나와요. 티비에도 구정물 막 나오는 거예요. 이게 행복이다, 이게 인간사는 것이다. 드라마도 쭉 나오는 거예요. 가정이 화목한 것이 행복의 원천이다. 원수가 집안 식구인데 어떻게 할 거예요.

아브라함이 자기의 이삭을 죽여야 되는데요? 이스마엘은 쫓아내야 되고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은 죽여야 되는데 거기에 무슨 혈육이라는 게. 혈육과 약속은 대체관계에요.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다. 모세가 숙소에서 하나님이 죽이려고 한 이유가 육으로 이스라엘 만들겠다고 나왔으니까 주께서 육을 죽여 버린 거예요. 모세를 죽인다는 것은 육을 죽인 거예요.

모든 하나님의 개입은 인간의 육으로서는 육일뿐이고 하늘나라로 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육을 대적해서 육 자체의 문제성을 지적하면서 주의 힘이 왕에게 힘을 실어주는 겁니다.

이것을 이제부터 표면 이야기합니다. 표면 이야기할 때 복잡하지만 간단한 단어 몇 개로 축약할 수 있어요. 이렇게 됩니다. 반대의 증식. 시험관에 세균 증식하듯이 이 세상은 폭발하듯이 주님을 반대하는 그 힘이, 악마의 힘이죠. 그게 계속 증식합니다. 계속 만들어져요. 그래서 교인수가 적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의외로 많다고 생각하세요. 다음 주에 몇 명이 빠질지는 아무도 장담 못합니다. 빠지더라도 걱정하지 말아야 될 것은 어차피 우연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오게 한 것도 우연이기 때문에.

저녁 먹다가 돌아가셨다는 말은, 여러분은 저녁 먹다 안 돌아가신 분들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얼마나 신기한 일입니까. 태어날 때도 내 뜻에 신경 안 쓰고 일방적으로 했다면 죽게 하는 것도 얼마든지 주께서 발휘할 수 있는 주의 조치란 말이죠. 이게 주의 힘이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말씀과 사나죽으나 주의 것(롬14:8)이란 말과 같은 말이에요.

욥 같은 경우에는 아예 가져가세요, 되는데 이미 어른 되어 한평생 죽을 둥 살 둥 그렇게 고생해서 돈 얼마나 모았으면 사나죽으나 주의 것이란 게 인력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인간 힘으로. 대적은 주장하는 것, 악마가 주장하는 것은 뭐냐 하면 인간 힘은 결국 인간으로 돌아가게 돼있다. 장담한다. 이게 악마의 큰소리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용쓰고 애쓰고 예수 믿고 천국 가려고 백날 교회 나와 봤자 결국 어디로 귀환됩니까, 소급돼요? 아이고, 안 되겠다. 결국 안 되겠다는 것으로 돌아서버려요. 원래부터 안 돼요. 사나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아무리 해보세요. 이렇게 될 수가 없어요. 이론상으론 되는데 딱 건드려보라고요. 주여, 내 것 왜 뺐어갑니까, 이렇게 나온다고. 주의 것이 아니란 말이죠.

사나죽으나 주의 것이란 이 상태에서는 나의 것은 있다, 없다? 나의 것은 없는 거예요. 그냥 우연한 존재는 우연으로 늘 살아야 되는데 인간은 나를 위해서 우연이 아니고 필연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주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누가 오느냐 하면 주의 힘이 작용하게 되면 주의 것이 돼요.

그러면 반대증식이란 것은, 여러분이 눈치 챘겠지만 주의 힘이 갖고 있던 거저주심으로 인하여 거저 죄 사함, 거저 은혜주심, 거저주심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반대를 증식토록 하신 거예요. 악마의 세력이 커지도록 주께서 그렇게 허용을 하신 겁니다. 그래야 뭐가 돋보이느냐 하면 천국을 공짜로 온 게 돋보이잖아요.

어제도 그 비슷한 이야기했습니다만 마트에 영생을 팝니까? 마트에 가도 구할 수 있는 영생을 거저 주었잖아요. 우리는 뭘 구한다는 것은 마트 가서 사요. 얼맙니까? 그런데 마트에 없는 영생을 거저 줬다면 내 인생이 얼마나 많은 값을 치러도 우리는 땡 잡은 거예요.

그런데 방금 제가 한 이 이야기를 아직 영생을 거저 안 받은 사람이라면 어떻습니까? 영생을 안 받은 사람이 이 이야기 들으면 격분하지요. 내 노력한 게 뭐가 되느냐, 당신은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와락 달려들지요.

그 달려드는 힘이 뭐냐 하면 이게 반대의 힘이에요. 반대의 힘이 가만있으면 사람이 점잖아요. 그런데 건드려줘야 돼요. 주의 거저주심이 오게 되면 숨겨진 반대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고 자기끼리 힘을 통합하고 단합해요. 이게 반대가 증식되는 겁니다. 표면에. 그러니까 심층세계 말고 표면의 세계는 되게 요란스러워요.

전에도 예를 들었지만 미꾸라지를 잠재울 때는 소금 뿌리면 되지요. 배추 숨죽일 때도 소금을 뿌리면 되지요. 주님께서 고요한 평화로운 이 땅에다 소금을 뿌려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악마가 준 삶의 원리가 진리인 줄 알고 거기에 온통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사람한테는 본인의 본색, 악마의 종이란 사실이 발각되는 것에 격분하게 돼있어요.

이 작업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이스라엘을 하나로 봐서 이스라엘과 그 외에 모든 민족에게 이스라엘에 거저주심으로 다른 민족을 붙여주는 전쟁을 벌였거든요. 처음에는 그랬어요. 여호수아까지. 이방민족을 약속의 땅을 접수할 때까지는 이스라엘 자체가 하나의 단체가 되어 쳤다 이 말이죠.

그럴 때 이스라엘을 통해서 다른 민족의 표면을 구성하는 심층을 발췌하는 그들이 주에 반항한다는 그 사고방식을 발췌하는 효과가 아주 탁월합니다. 이스라엘이 쳐들어오는 것을 겁냈던 여리고 성의 사람이 있었지요. 여리고 성 침범하기 전에 이스라엘이 쳐들어오는 것에 겁을 먹고 미리 나서서 항복을 한 사람, 살려주세요, 한 사람이 있었어요. 기생 라합이죠.

마지막 심판 오기 전에 십자가 동창생으로 같이 십자가 달렸다가 알아서 긴 사람이 있었습니다. 구원받은 강도. 그 구원받은 강도가 얼마나 놀라운 거저주심을 받았는지는 그 상대역에 있는 아주 독하고 끝까지 예수님을 조롱했던 자가 있었습니다. 그게 지옥 간 강도. 이거는 직업이 문제가 아니에요. 인품의 문제가 아니고 양심이 문제가 아니라 주께서 의도한 것이 서로 대비되는 대조가 되는 두 상대자를 통해서 감춰진 주의 뜻이 확실하게 드러났어요.

너는 뭘 해서 주의 나라를 네 나라라고 동질성으로 여기느냐?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는 길과 예수님의 자리와 강도인 자기의 자리를 일치된 걸로 봤거든요. 왜냐하면 같은 주님이 주신 힘이 있으니까. 흘러들어온 게 같은 종류의 것이 흘러들어왔으니까요. 자기가 악마의 종 맞는데 뭔가 낯선 게 흘러들어왔어요. 이질적인 것이, 주님의 은혜가 흘러들어온 겁니다.

오늘 제목을 이걸 해볼까,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냥 후보에 불과합니다. 꼭 그걸 한다는 말은 아닌데. 제목을 미리 이야기하면, 깔때기. 깔때기인데 이걸 아주 더 심도 있게 말하면, 물고문. 중앙정보부에서 물고문 시키는 것. 그런데 어떤 물고문이냐 하면 은혜의 물고문, 깔때기에다 입 벌리고 은혜를 넘치도록 해버리면 당사자는 켁켁거리며 건들 수가 없습니다.

이질적인 것이 들어오니까 인간은 육의 본성이 있잖아요. 악마의 말이, 이 세상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아까 막대기에 달리는 그게 인간의 낙이고 인간의 성공이라고 우기면서 살아왔던 그게 갑자기 입 벌리고 하늘나라 정보부에서 깔때기 꽂고 은혜를 쏟아 부으니까 감당이 안 되네. 개구리 배처럼 터질 지경이에요. 안에 들어온 것은 안 나가려 하고 지 잘난 것은 유지하고 싶고, 깔때기 위에서는 이래도 안 나갈래, 하고 억누르고 있고 버티다, 버티다 터져버려요. 인간의 몸이 찢어진다고. 그래도 주님의 은혜는 포기를 모릅니다.

이스라엘 속에 이미 여호수아 땅의 정복까지는 자체로 순하게 넘어갔어요. 그때는 여호수아가 살아 있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기도하게 되면 하늘의 해도 멈추고 멋있게 승리해서 우리한테는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했지요. 일단 땅을 접수하고 난 뒤에 그 다음에 이 땅에 누가 오느냐 하면 장차 왕이 오셔요. 주의 힘에 의해서 왕이 오신다고요.

왕이 오시면 왕에 부합되는 왕을 왕답게 만드는 적합한 누구만 있어야 하면 백성만 있어야 돼요. 그 백성에 그 왕이어야 된다고요. 백성의 환호성을 들을만한 왕이고 왕은 그 환호성을 들을 수 있도록 왕이 아버지 하나님께 받았던 그 왕, 주의 힘에 의해서 받았던 그 왕다움을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고 흡수가 되고 감사가 되고 찬미가 되는 백성들만 남아야 돼요. 남은 백성들만 있어야 돼요.

그런데 여호수아가 땅을 접수한 이스라엘은 뭐냐 하면 심층적 이스라엘이 아니고 반대로 뭡니까? 표층적 이스라엘이에요. 이건 뭐 애굽 사람이나 원주민과 똑같아. 그냥 똑같아요. 약속의 땅에 집 짓고 잘 먹고 배부르니까 그 다음부터 뭘 찾았습니까? 내가 잘났음을 긍정해 줄 신을 찾아요. 그게 여호와의 이름이라 하든 무슨 이름이든 관계없이 내가 잘나서 이런 복을 받는다는 것을 증명해 줄 신을 찾는다고요.

여기서 신명기 봅시다. 신명기 9장 5절 누가 읽어보세요.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 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아멘.

들어가 사는 사람들은 약속의 땅, 그 왕에 부합되는 백성들은 의로워서는 안 되는 거예요. 의로운 민족을 집어넣고 악한 민족을 쫓아낸 게 아니고 동질의 악한 민족에 악한 민족으로 추방함으로 말미암아 표면적으로 네가 옳으냐, 내가 옳으냐는 경쟁마당에서 초월해서 너, 나를 거저주심으로 일방적으로 교체하신 그 차이 속에 새롭게 등장하신 왕이 진짜 왕이에요.

양쪽 다 자기 공로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 나는 잘나서 천국 가고 너는 나보다 못나서 지옥 간다는 그걸 없애버리는 그걸 뭉개버리는 그 사이에서 선악의 구조, 인간으로 선악으로 따질 수 없는 분이 등장함으로써 선악을 따지 않는 왕이 선악과 상관없는 백성들만 여기 남아있어라. 선과 악, 잘났다, 못났다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자만 여기 남아라, 천국 가거라. 그렇게 되는 겁니다.

성공과 실패를 살면서 생각하지 않는 백성이 되어라. 이게 천국 백성의 특징이에요. 왜냐하면 성공과 실패는 경쟁에서 일어나거든요. 너는 건강한데 나는 아프다. 그래서 나는 졌다. 이렇게 된다니까요. 너는 돈 있는데 나는 돈 없다, 가난하다. 그래 난 패배했어. 이렇게 된다고 모든 게. 모든 게 비교, 경쟁이 되잖아요.

주님 보시기에는 똑같은데 표면적으로 똑같아요. 전부 다 마귀 들린 점에선 차이가 없는데 차이 없는 것 가운데서 인간들이 자기들끼리 차이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차이를 만들고 그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악마가 대장질을 해서 거기서 무엇을 만들어내느냐 하면 질서를 만들어낸 겁니다. 질서 앞에 이것 하나 집어넣으면 쉬워요. ‘법’질서.

법은 어디서 나온다? 세상의 힘. 세상의 힘은 악마의 힘에 의해서 힘이 있고 그 힘에 의해서 법이 만들어지고 법이 질서가 됐지요. 그러면 주님의 힘, 메시아가 올 때는 여기서 뭐가 증식되느냐 하면 무질서의 증식이지요. 주님은 세상 법에 말을 안 들어요. 왜? 세상 법은 누가 의롭고 누가 악하냐를 선악 사고방식에 의해서 이미 정리정돈을 끝낸 상태입니다.

욥의 친구 말처럼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데 그 복이 뭐냐? 부자 되고 건강하고. 이건 욥기에 보면 쭉 나오고 있는 일관성 있는 주장이에요. 욥의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게 되면 하나님과 무엇과 연관돼 있느냐 하면 하나님을 선하신 분이고 선하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 되는데 구체적인 증거가 뭐냐? 건강하고 부자 되고.

그 잣대로 욥을 보니까 욥은 어떻습니까? 건강하지도 않고 있는 재산 다 날렸으니까 누가 봐도 이 세상에서 표면적에서는 바퀴벌레 세계에서는 죄 짓은 게 분명하다고 된 거예요. 그런데 어제 오후 설교처럼 그들의 말하는 기준에 의한 악함의 조건을, 저주받은 조건을 누가 다 뒤집어쓰고 오셨습니까? 예수님이 뒤집어쓰고 온 거예요.

반길 사람 아무도 없고, 흠모할 사람 아무도 없고 배척당한 게 마땅하지요. 배척당하면서 주님께서 세리와 창기의 친구가 됐어요. 세리와 창기의 친구, 병든 자의 친구, 이게 전부 뭡니까? 저주받은 부류에 속해요. 이 땅에선 질서가 잡혔으니까 그 질서체제 제일 바닥의 질서가 뭐냐 하면 저주받은 자들이 다 분류돼있어요. 한데 모아져 있다고. 거기 있거든요.

세리와 창기가 너희들보다 먼저 천국 간다고 예수님께서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렇게 분류가 될 때 피라미드구조에서 제일 바닥에 있는 이건 죽으면 곧 지옥 갈 사람들로 그 당시에 법질서로 분류가 돼있거든요. 여기에 복음이 전파되는 거예요. 희년이 되게 되면. 이거는 강남강의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이 바닥에서 복음이 전파돼야 돼요. 기쁜 소식은 위해서 전파되는 게 아니고 바닥에서 환영받고 위에서는 거절당하고. 이 바닥 중에 바닥이 뭐냐 하면 십자가 처형당하는 것, 아주 잔인하게. 죽어도 곱게 저녁 먹다가 돌아가신 게 아니고 공개적인 웃음거리, 똑똑한 척하다가 당하기는 혼자 당하는, 공개적인 웃음거리로 창피를 당하는 일을 겪을 때 죽어도 그냥 죽는 게 아니고 비참하게 온갖 설음과 억울함을 겪으면서 죽게 만듭니다.

이 바닥이 표면구조에서 표면층에서 버림받았으니까 이 층의 내막이 뭡니까? 심층 층이죠. 안에 심층의 구조에요. 표면에 가려진 바닥, 진짜 밀려나간 자들의 모임, 그쪽이죠. 이 세상의 법질서에서는 그걸 뭐라고 하느냐? 지옥이라 해요. 그걸 이단이라 하고 예수님 보고 악마의 괴수라고 했어요. 오야봉.

그러니까 악마의 세계에서 뭘 논합니까? 악마를 논하고 지옥을 논하는 거예요. 천국을 논하고. 막 나가는 아침드라마 보면 이런 장면이 나와요. 착한 아버지를 내쫓고 나쁜 저희들끼리 부자와 단짝이 되어 팔지 말아야 될 땅을 팔고 지들은 땅값 받았다고 좋다고 아침상을 차려놓고 있으니까 아버지가 화낼 때, 여자들의 화낼 때는 김치 싸대기가 동원되지만 남자들이 화낼 때는 그 상을 뒤엎어버립니다. 그러면 상이 공중에서 회전을 해버려요. 표면을 밑에 들어가고 엉망진창이 되지요.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경상도 말로 학 뒤비뿌리는 거예요. 상채로. 그걸 판을 뒤집는다고 해요. 주님을 판을 뒤집어버린 거예요. 옛날 50년대에 한참 못 살 때에 겨울에 스웨터 입으면 이의 서식처가 됩니다. 바깥에 보면 대충 잡았는데 안쪽은 못 잡았거든요. 학교에서 건강신체검사에서 옷 입으면 이들이 돌아다닌다고.

옷을 거꾸로 뒤집어버리면 그동안 안 잡히던 이들이 나오는 것처럼 주님께서는 악마의 뜻이 노출되는 쪽으로만 말씀을 증거해요. 왜? 상을 뒤집어버리니까. 판을 뒤집어버려요. 그러니까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이 세상의 표면적 언어, 고상한 언어, 거룩한 언어 있잖아요. 거룩한 언어가 밑에 들어가면 뭐냐? 언어의 강등, 언어가 질적으로 떨어지는 거예요.

예를 들면 가스펠송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용어 자체가 성경 그대로 따오잖아요. 고상한 찬송가기 때문에 거룩한 예배할 때 노래기 때문에. 그 가사를 들으면 가사가 나한테 오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나 대중가요는 상대적으로 저질이고 천박하기 짝이 없다고 하지요. 그런데 제가 아는 대중가요 보면 복음성가보다 더 좋은 내용이 많아요. 그중에 하나를 보겠습니다.

너에게로 또다시 돌아오기까지가 왜 이리 힘들었을까
이제 나는 알았어 내가 죽는 날까지 널 떠날 수 없다는 걸

세상에 이렇게 복음적인 게 어디 있어요. 주님께서 은혜를 물고문 하는데 그게 너무 아프지요. 주님께서 패는 거예요. 거저주심 말고 네가 공들였고 네가 믿음으로 했다는 걸 다 빼는 거예요. 패면 팰수록 성도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주님과 결별하는 게 아니고 힘들지만 비로소 아는 거예요. 내가 죽을 때까지 주님을 떠날 수 없다는 걸. 노랠 부르면 천박하다 하고.

패면 팰수록 너에게로 또 다시 돌아오기까지 왜 이리 힘들었을까. 얼마나 패고 얼마나 빼앗아야 돌아오느냐. 이제 때리니까 비로소 성도는 아는 거예요. 내가 죽는다 할지라도 주님 품에서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생각해보세요. 악마 천지에요. 모든 들려오는 것이 악마의 질서 된 고상한 언어들입니다. 그 속에서 찐드기에서 쥐 뜯어내는 것보다 더 힘들어요.

살아온 관행이 있잖아요. 시집가서 시어미니한테 들었고 가족들한테 들은 게 있잖아요. 혈육이 있고 내 자식이 있고 거기서 너무 얽히고설킨 게 많아서 이게 도망쳐도 도망이 안 돼요. 빠져나올 수 없어요. 왜? 너는 잘났어. 경쟁에서 안 졌어. 너는 성공해서 우리 집안을 빛내야 돼. 내가 얼마나 널 키웠는데. 이러면 얼마나 부담되겠어요.

이런 끈끈한 초코파이, 정, 이런 정들이 얽혔다고요. 그들의 대언자가 돼야 되고 그들의 희망사항에 부응해야 되고 그들의 요구사항에 충족돼야 된다는 그 사명감, 그게 평생에 짐이 되어서 개미허리에 25톤짜리 쇳덩어리처럼 하루하루 살면 살수록 거기서 해방될 수 없어요. 자유? 자유란 말은 잃은 지 오래 됐습니다. 지켜보는 눈들의 너무 많아요.

제가 강남 가서 그런 이야기했지만 악마가 계속해서 우리한테 이야기하는 것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네가 그렇게 살아야 되겠어?” 압박감. 네가 신자라면 그렇게 살아야 되겠어. 뭐 거저주심도 없고 은혜도 없고. “남의 기대에 실망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라, 이놈아.” 맨날 집구석에 들어가면 듣는 소리가 그 소리에요. “네가 엄마를 실망시켜야 되겠어. 내가 얼마나 너를 키웠는데.” 이게 딴소리 아니지요. 우리들이 우리 자식에게 하는 소리 아닙니까.

뭐 거저주심도 없어요. 내 공로로 이만큼 키웠다. 내 행함으로 내가 이만큼 됐다는 거예요. 기존교회가 예수님 복음 무시해도 가만있다가 장로의 공로 무시했다간 장로가 가만두질 않아요. “너는 이 예배당 짓는데 땅 바쳐봤어?” 이렇게 나와요, 벌써. 나오기를 자기 집 팔고 전세 옮기고, 눈 동그랗게 뜨고 예배당 벽돌 값 낸 적 있냐고 나온다고요. 그놈의 예배당이 문제라. 부동산이 문제에요, 부동산이.

이 진자교회 전세 얻는데 누구 집 팔았습니까? 그저 나그네, 여기 있다가 없으면 딴 데 가면 되고, 그것도 안 되면 집에서 모이면 되고. 세상 배짱 편하지요. 아무리 이 땅에서 우리가 빠져나오려 해도 못 빠져나옵니다. 이걸 누가 아느냐? 악마가 알아요. 악마는 자신만만합니다. “네가 장로, 목사, 신학을 백날해도 너는 나한테 발 못 빼.” 이거는 악마의 자신감이에요.

왜? 인간을 알아도 너무 잘 아니까. 예수님 빼놓고 어느 누구도 못 빠져나왔다는 이건 기본진리입니다. 못 빠져나옵니다. 못 빠져나와야 되고 우린 지옥 가는 게 당연한 거예요. 천국은 생각도 하지 마세요. 지옥 가야 돼요. 그런데 여기 물고문, 깔때기로 성령이 와버리니까 우리 본인이 놀래버려요. 우리 본인이 처음에는 거부한다니까요. 그냥 하던 대로 놔두세요, 주님. 이렇게 나온다고요.

내가 한 행함에 스스로 자위하고 격려하는 그런 식으로 살게 해달라고 우리는 오히려 주님을 욕한단 말이죠. 베드로, 열두 제자 다 그랬어요. 주님이여 내 걸 건드리면 어떻게 됩니까. 가룟 유다가 자살한 이유가 뭐냐? 자살을 해야 내 것이라도 건지기 때문에 그래요. 자살한 사람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도 장렬하게 자살함으로써 건진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악마가 심어준 가장 기본원칙은 뭐냐?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한다. 선택 문제였어요. 왜냐하면 악마가 하나님께 대들 때 자기 선택을 거론했거든요. 하나님이여, 그때는 악마지요. 나라는 천사는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선 악마가 그런 결정할 줄 알았지요. 왜냐하면 선악에 대해서 악마가 이미 하나님처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요.

선악만 알면 그 다음부턴 독립하려고 아주 안달이 나게 돼있어요. 이 피조물 존재가. 그래서 하나님은 아시고 딴 건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만은 먹지 마라. 그러면 네가 피조물이 안 돼. 그러면 나와 결별하게 된다고 당부했건만 악마가 꾀어서 악마나 인간이나 전부 다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진다는 거예요.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는 거예요.

여기에 관한 이야기만 교회에서 한다면 난 교회 다닐 요량이 있다. 하나님 믿을 요량 있다. 하지만 반대로 한다면 나는 반대소리 안 들을 거야. 이게 자기 소리겠어요, 그 사람 속의 악마 소리입니까? 악마 소리에요. 인간은 아무리 용을 써도 악마의 힘에서 못 빠져나옵니다. 거저주시는 힘이 오지 않는 한.

따라서 성도의 특징은 뭐냐? 주님이 주시는 조치에 의해서 맞춰서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인생입니다. 주님이 내리시는 조치에 의해서. 주님의 조치는 우리가 미리 알아요, 몰라요? 미리 모르지요. 미리 모르기 때문에 그 현장에서 지시하는 게 있을 거예요. 그걸 믿음이라 하는데 그게 바로 마태복음 8장에 보면 백부장이 그 믿음을 갖고 있었어요. 가라 하면 가로 오라 하면 오나이다. 가져가면 가져가시고 주시면 가져가는 것도 고맙고 주시는 것도 고맙다고 날름 받겠습니다. 사나죽으나 주의 것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주님의 뜻은 조치는 언어적 형식은 이미 다 내려졌어요. 목숨이 있든 없든 네 목숨 아니니까 네가 신경 쓸 필요 없다. 사나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형식이 있는데 이건 하나의 이론이고 지식이거든요. 이제 남은 것은 뭡니까? 실습이에요. 이론 할 때는 아주 희희낙락 설교 듣고 나중에 점심 먹고 피자 사먹고 좋아요.

그런데 막상 실습에 들어가면 이게 난리도 아니에요. 애들 보고 병원에 갈 때 주사 놓으면 따끔 아프다고 하면 아파봤자 죽이기까지 하겠는가, 참지. 하지만 애들은 주사 맞기 전에 병원 의사 가운만 봐도 아니 병원 간판만 봐도 발에 브레이크 걸고 난리도 아니에요. 안 들어가려고. 그 소독약 냄새, 상상을 하거든요. 상상이 문제라. 이 상상문제를 어떻게 뚫고 가느냐? 그건 10분 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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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1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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