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누가복음 4장 12절 (시험) 201006b-이근호 목사
강남-누가복음 4장 12절 (시험) 201006b-이근호 목사
자, 두 번째 시간하겠습니다. 하나님 안에 예수님과 그 당시는 메시아니까 메시아, 예수님 안에 하나님 또는 하나님 아버지 사이에 성령이 왔다는 것은 성령은 누구를 데리고 왔습니까? 악마를 데리고 왔지요. 그러면 하나님 안에 예수님 =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같지가 않다. 왜?
악마가 여기서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줘요. 성령이 악마를 데리고 옴으로써 유대인들이 하나님 믿으면 뒤에 누가 온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온다는 이 설정에서 하나님 자체가 이 엉터리, 이게 하나님이 아니었다 이 말이죠. 이게 하나님이 아닌 거에요 이게. 그동안 악마가 지배하에 구성된 하나님의 이미지에 불과한 거에요. 악마가 만들어낸 하나님이에요. 이 하나님이.
그러면 하나님은 있다 없다가 아니라 인간이 여기에 있다고 여기면 하나님이 없는 거고 인간이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 있는 거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어렵죠? 인간이 없을 수가 있어요? 내가 여기 있는데 없을 수가 없잖아요. 인간이 없다면 비로소 있는 하나님. 이 말은 인간이 없다는 자체가 성립이 안 되니까 남는 건 이것만 남아요.
인간이 있다면 생각나는 하나님은 무조건 가짜에요. 무조건. 내가 있기 때문에. 왜? 나는 광야에서 배제되어야 될 대상인데 악마가 우리의 대표자잖아. 그러면 우리는 빠져야 된다. 빠질 인간이 하나님을 꾸준히 믿어왔다는 것은 악마의 선을 못 넘어왔다는 조건하에 완전히 악마가 가르친 가짜 하나님을 진짜 하나님으로 여기고 거기에 성경을 갖다 들이붓는 거에요. 성경을.
네비게이토 사람들 보세요. 성경교사 아닙니까. 여호와의 증인. 성경을 갖다 붓는 거에요. 붓고 난 뒤에 메시아가 온다고 기다리는 거에요. 스케줄 시간 계산해가지고 중동 전쟁 이런 거 계산해가지고. 삼년 환란 계산해가지고 계산하는 거에요. 하는 자체가 이거 엉터리인데. 그러면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러면 예수님부터 출발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부터 출발하려면 이걸 악마의 선을 넘어서야 하는데 우리가. 넘어서야 되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사탄하고 만나지 뭐 때문에 예수님 만나겠습니까. 우리와 악마의 만남은 성령의 입장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거에요. 같은 편이니까. 그 나물에 그 밥이니까. 만나서 뭐 할 건데요. 악마는 알거든요.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 누구냐? 악마가 도사 아닙니까. 악마의 할 일은 비밀을 지워버리는 그 일에 그 모든 걸 몰빵한 거에요.
구원의 비밀을 지워버리는데. 비밀은 없어. 여러분이 아는 하나님이 좋은 하나님입니다. 그걸로 그냥 줄창 그걸로 가. 교회 갈 때 그 하나님 가지고 가면 되는 거야. 그래서 재롱잔치 벌이고 시간 맞춰 헌금하고 그러면 구원받는 거야. 계속 그런 식으로 몰아세웠던 거에요. 그게 전면적으로 아니라는 생각은 상상 못했지요.
여러분 사울이라는 사람 알지요. 사울이라는 사람이 뭘로 바뀌느냐 바울로 됐습니다. 그 사람이 바뀔 때 눈에서 뭐가 떨어지느냐 하면은 비늘이 떨어졌어요. 비늘이 떨어질 때 무슨 과정하나 붙지요. 멀쩡하다고 여겼던 눈이 갑자기 뭐가 됐습니까? 주님 만나고 소경되었고 그 다음에 비늘 뜯어지니까 다시 정상적인 눈을 가졌고.
자, 이 비늘이 뭐냐? 그동안 내가 악마한테 속아서 실제 진리도 모르면서 진리인 척했던 그 모든 것이 소경이라는 과정을 겪고서 이제 떨어졌다 이 말이죠. 눈이 밝아졌다. 이걸 베드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네 마음에 새로운 빛이 떠오른다. 샛별이 떠오른다. 성령의 바람을 전부 그런 식으로 표현을 하는 거에요. 획기적으로 다른 거 없거든 입 다물라. 획기적으로. 어느 정도로 획기적이냐. 내가 아는 하나님은 바로 내가 구상한 또는 악마가 구상한 가짜였습니다.
그렇게 달라졌다 해서 달라질게 뭐가 있는데 이렇게 되거든요. 내가 하나님 바꿨다고 해서 달라질게 뭐가 있느냐. 어떤 점이 그럼 이제부터 바꿔지느냐. 그거는 이제 성령이 오게 되면 알 수 있지요. 성령이 오게 되게 되면 이제는 하나님이 누구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였었는가가 이제부터 내가 누구였었는가를 알게 되는 거에요. 내가 누구였었는가.
이 때는 적당하게 노래가 하나 들어가야 이해가 될 거에요. 이문세가 불렀던 노래 있어요. ‘사랑이 지나가면’이라는 노래에 보면 이런 내용 있어요.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 이게 말이 돼요? 알면 서로 아는 사이인데 왜 그대는 나를 알아도 나는 모르겠느냐. 이미 주님은 우리를 알고 있었어요.
다만 우리가 성령이 오기 전까지는 내가 사랑의 대상인 것을 내가 몰랐어요. 사랑의 대상을 몰랐기 때문에 내가 억지로라도 사랑할려고 주님을 사랑할려고 애를 써 온 거에요. 목사 시키는 대로. 교회에서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한 거에요. 내가 사랑해줘야 많이 봐줘서 긍휼히 여겨서 천당 보내줄 그렇게 착각을 해온 겁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사랑한다는 사실을 생각도 못해, 생각도 못했지요.
내가 여기 있으면 누구 하나 타인이 의식하게 되어 있고 내 나름대로 그 사람을 위해서 잘해주면 내가 잘해주면 그 사람도 잘해줄 것이다라고 생각한 겁니다. 이게 뭐냐 하면 노동시장에서 노동해서 배웠던 거에요. 노동해서. 뭐가 내가 움직여야 내가 필요한걸 전체적으로 줄 수 있는 요건이 된다. 이게 노동시장이에요 이게. 매일 이런 삶을 산다고 바빠요.
이 노동시장처럼 그렇게 해서 ‘나’가 구성되기 때문에 이런 나를 누구하고 상대하느냐 하면은 예수님이나 하나님 상대할 때도 이 버릇을 그대로 사용한 거에요. 뭐를 바쳐야 복을 받지. 바쳐야 복을 받지. 제가 예수 믿고 교회 부흥회 하는데 부흥회 부흥 강사님들 하는 거 참 어지간히 따라다녔습니다. 이미 시작한 구원을 도중에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이만큼 해왔는데 여기서 탈락하게 되면 너무 후회스럽다 해가지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 부흥사들이 뭐를 저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 하면은 로마서 11장을 안 가르쳐줬어요. 로마서 11장에 보면 뭐냐? “누가 먼저 주께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건 안 가르쳐줬다 이 말이죠. 네가 바치기 전에 먼저 주님께서 필요치 않고 이미 다 줬다는 이야기를 로마서 11장 35절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는 방향으로 구원을 받겠느냐 묻는 거에요. 네가 바친게 있기 때문에 구원받는다라는 논리는 아예 하늘나라에는 없고 저기 지옥에는 있다는 거에요.
만약에 드려서 복 받는다면 지옥에나 가라 이 말이에요. 지옥에나 가라. 주님이 우리에게 하는 노래는 딱 한 노래에요. ‘사랑이 지나가면’ 이문세.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저는 기억이 안 납니다” 이 고백 말고 다른 고백이 더 필요할까요? 이문세 할렐루야다. 누가 작곡했나. 이문세 아니고 이영훈 친구가 작곡했지만. 오늘 저녁에 가서 한번 들어보세요. 노래도 괜찮아요. 여러 가지 버전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 이 정도로 나는 죽은 자였었습니다. 죽은 자를 성령이 와서 깨웠어요. 깨 보니까 내가 바쳐서 선교하고 헌금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고 그런 짓 하나 안 하나 보지도 않고 선교를 몇 번했고 헌금을 얼마 그런 거 보지도 않고 충성하고 이런 거 보지도 않고 아예 처음부터 사랑했다는 겁니다.
그 사랑은 어디 있느냐?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한 그 사랑을 1도 빼지 않고 조금도 빼지 않고 아버지가 예수님 사랑한 그대로 우리에게 “자 먹어라.” 성령을 통해서 그 사랑 그대로 온 거에요. 그러니까 예수님한테 새삼 뭐 달라고 하지마세요. 그 사랑만 해도 우리는 받을 거 다 받아 챙긴 거에요. 하나 빼지 않고. 아버지가 아들 예수님 사랑한 그 사랑을 그대로 준겁니다.
그 사랑이 뭐냐? 죽어라 내가 살릴게. 그 사랑이. 죽어라. 너 어차피 죽을 자 죽어라 그래도 내가 살릴게. 이게 바로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주신 사랑. 버림받아라 내가 너를 건지마. 그 사랑이에요. 그 사랑을 일찌감치 준비했습니다. 그럼 여기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중간 결론은 뭐냐? 이렇습니다. 내가 준비한 것보다 주님이 친히 준비한 것이 더 크다. 내가 마련한 것보다 주님이 우리 줄려고 마련한 것이 더 커요.
이걸 시간적으로 한번 써 볼까요. 시간적으로 쓰면 이렇게 됩니다. 기다림이 내가 기다린다고 애썼던 것보다 더 크다. 초조하게 기다렸던 그 긴긴 세월보다 막상 주어진 그 결과는 내 기다림이 하나도 아깝지도 않아요. 손실한 느낌이 들지를 않아요. 어마어마하게 큰 걸 준비했기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상상도 못할 정도로 큰 걸 준비했기 때문에.
로마서 8장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네가 복음을 알면 이 땅에서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장차 올 영광은 이 고난과 족히”, 족발같은 거 생각하지 마시고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남하고 비교하거나 경쟁하지 말라. 세상에 지옥갈 거하고 경쟁, 비교하지 말라는 거에요.
첫째 시간에도 이야기했지만 인간의 성도로 하여금 이 땅에서 물론 이 땅에서 일하게 하십니다. 놀면 안 되지요. 성도가 노동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내가 나를 낯설게 보도록 하는 거에요. 내가 나를 낯설게 보도록. 내가 이번 프로젝트만 따내가지고 나는 이제 몇 십억을 벌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얼마나 기쁠까라고 예상했는데 막상 20억을 딱 손에 쥐니까 ‘나’라는 것이 기껏 20억 줄려고 주께서 찾아 오셨냐. 에이 20억 이거 아무것도 아닌데. 지금 제가 상상하는겁니다. 20억 없어요. 그런 경험한 적도 없습니다. 20억 이게 뭔데. 친구가 그럼 20억 필요 없으면 나 줘 하면 미쳤나? 당장 펀드에 집어넣어야지. 20억 그거 아무것도 아닌데 뭐.
갑자기 20억 벌면 마치 행복해지려는 내가 마치 낯설게 느껴지는 거에요. 낯설게. 이번에 교회에서 권사 투표 있는데 내가 권사 되게 되면 진짜 이 교회 갈아치운다. 이 교회 완전히 개혁시킨다. 내가 바른 소리해가지고 주의 종처럼 해가지고 친히 솔선수범해서 봉사하고 와~역시 권사 되더니 당신 없이는 교회 안 돌아간다라는 칭찬받을 줄 알고 딱 했는데 딱 되고 난 뒤에는 아이고 권사 이게 뭔데. 이것 할려고 했나. 본인이 굉장히 날이 갈수록 낯설게 돼요. 이게 전부가 아닐 것인데.
그래서 우리는 늘 우리한테 이별해야 돼요. 늘 나한테 이별해야 돼요. 제가 주일에 설교 한 것처럼 우리가 우리 자신을 늘 밀어내야 됩니다. 밀어내지 않는 사람은 나 자신을 그대로 있는 사람은 지옥 갑니다. 지옥 갈 사람들 다 집결되어 있어요. 자기를 붙들고 있는 사람들 지옥 다 갔어요. 부자 있잖아요 부자. 나사로한테 에비앙 이거 달라고 주문한 사람 있잖아요. 아직도 거지인줄 알고. 내가 지금 목마르니까 부탁한단 말이죠. 아직도 내가 있는 거에요.
그러나 천국 간 사람은 면류관을 미쳤어 이걸 왜 내가 써. 면류관을 주님 발 앞에 던지는 거에요. 내가 평소부터도 이 땅에 있을 때부터도 내가 나를 밀어냈어요. 주여 나 같은 것은 갖다버리세요. 나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그런 생활을 했다 이 말이죠. 그렇게 보면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교회가 있다는 것이 여러분 감사해야 돼요. 우리 교회부터 해가지고 100% 가짜입니다. 100% 가짜에요.
교회가 교회 붙들려고 하면 안돼요. 복음만 전하면 되지 교회 붙들어서 뭐 할 건데요. 필요 없어요. 교회를 기다리는 게 아니잖아요. 교회 오백명 모이는 것이 나의 기다림의 끝은 아니란 말이죠. 고작 500명 기다릴려고. 500명도 있지도 않으면서. 500명 기다릴려고 이렇게 애썼습니까? 주님 기다려야지요. 왜 중간에 토끼처럼 잠을 자요. 거북이 보세요. 기어이 올라가잖아요. 기다림의 끝장 아닙니까 거북이가. 기다림의 끝장이잖아요. 속도는 느리지만 방향은 바르게 간다.
자, 그렇다면 이 악마의 만남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왜? 우리가 어떤 한계를 왜 못 벗어나서 자꾸 예수님을 모르고 하나님 안에 있는 예수님, 내가 아는 하나님의 아들로 자꾸 예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느냐. 진짜 예수님은 우리가 가짜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수님인데 도대체 우리 생각하고 예수님 생각이 얼마나 격차가 났기에 이러한 우리는 자꾸 가짜 예수, 가짜 하나님만 찾느냐. 거기에 대해서 여기 나옵니다.
여기 2절에 나옵니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 거에요. 이게 마귀가 선빵 날리는 겁니다. 마귀는 왜 우리를 선빵 안 날리느냐. 우리는 똑같은 인간인데 뭐 가치도 없는데. 사탄아 물러가라 그런 소리할 자격도 없습니다. 자기가 사탄이면서 뭐 사탄아 물러가래. 그냥 마귀는 나 죽을래 이러면 오지를 않아요. 자꾸 어떤 노동의 댓가나 내 것을 자꾸 다독거리고 쥘려고 하니까 마귀가 오는 거에요. 나는 거기서 달려든다고 화내고.
그래서 봅시다. 그래서 성령께서 일부러 최악 조건을 일부러 걸어버려요. 인간은 나를 건들지 말라는 조건을 만드는 쪽에 모든 노력을 혼신의 노력을 다 하고 있습니다. 나 건들지마. 나 이 정도 된다고. 그런데 성령께서 일부러 예수님한테 40일을 굶어버려요. 40일을 굶어버립니다. 몸무게 몇 키로 빠졌겠어요?
제가 이스라엘 갔을 때 예수님 시험받은 곳에 제가 가봤습니다. 광야에 올라갔어요. 갔는데 꼭 광야까지 가야했나 나는 우리집에서도 잘하는데 이런 생각 들었어요. 40일을 굶은 겁니다. 굶으니까 얼마나 인간이 죄 된 육신을 갖고 있잖아요. 인간은 자기 육신을 못 이긴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그 조건을 예수님은 반대로 우리의 죄를 이길 수밖에 없는 조건을 자기한테 둘둘 감아버립니다.
자기가 자기를 지킬 수 없도록. 그래야 그 다음 말이 돼요. 뭐냐 하면은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마귀가 말을 너무 길게 했어. 쉽게 하면 되잖아요. 살아라. 너 살고 싶지? 이러면 되는 문제를 너무 길게 이야기했어요.
돌이 떡덩이 되게 하고 하는 그것은 뭐냐? 네가 기적을 베푸는 메시아라면 멋들어지게, 살아도 폼나게 사는 돌이 떡 되는 폼으로. 목적이 뭡니까? 인간 세계에서 기적의 목적은 뭡니까? 추구하는 것은? 죽는 거에요? 사는 거에요? 사는 거죠. 인간 세계의 사는 게 전부 다 악마의 기적이에요. 주님 덕분에 살았다. 그건 악마가 준 기적이죠. 모든 기적은 끝지점을 봐야 돼요. 끝지점이 나를 살리면 이것은 전부 다 천국 못가기 위해서 복음 감추기 위해서 더불어 준 기적입니다.
스데반의 기적이 뭡니까? 병 고치는 거였어요? 아니면 돌에 맞아 죽는 겁니까? 성령이 충만했을 때 스데반은 돌에 맞아죽었어요. 아마 이 세상 사람 이걸 보면 이렇게 이야기해요. 자기야 뭐 자기가 믿는 신 믿고 장렬하게 폼 나게 어이구 믿음 좋다 하고 칭찬을 기대하면서 죽는 건 좋은데 너 자식새끼는 어떡할래? 너는 폼난다만은 오늘날 우리가 늘 듣는 시험입니다.
네가 재미나하는 그 복음, 그 복음 재미나게 해가지고 밤늦도록 코로나 무릎쓰고 듣는건 좋은데 이 순간 네 자식들 저녁 굶고 있는 건 생각 안 하나? 그럴 때 여러분 어떻게 답변해야 됩니까? 어떻게 답변해야 됩니까? 여기 나오지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이렇게 되어있다고요. 마태복음은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말씀으로 산다” 했지요.
대구강의할 때 제가 어떤 청년 이야기하면서 청년이 있는데 청년한테 둘 중에 하나를 준다고 했지요. 하나는 사람을 주시던지 아니면 말씀을 주시던지 둘 중에 하나를 주는 거에요 . 사람 받아 버리면 이건 사람 세계에 속해요. 말씀 받아버리면 이 사람은 서울 와서 구원받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 주시고자 하는 것은 말씀을 주시는 거에요.
어디에 섞여서? 떡을 섞어서. 그래서 집에 가서 식사를 하되 말씀 섞인 채 식사준비해주면 돼요. 어떻게 섞이냐 하면 얘들아 나 기다린다고 수고했다. 고맙다. 고맙소 고맙소 그래가지고 맛있는 밥 해주면 되는 거에요. 엄마 성경공부 하는데 그것도 못 참아!!! 이러지 마시고. 고맙소. 고맙소. 고맙다 하면 되는 거에요. 너같은 시험거리 있기 때문에 내가 자꾸 사는걸 포기하게 만들어요.
모든 일이 말씀이 밑에 딱 담겨있어요. 제주도 가니까 망개떡 있어요. 망개떡은 위에서 보면 떡인데 밑에 보면 나뭇잎파리가 전부다 하나씩 다 붙어 있지요. 그처럼 성도한테는 똑같은 일이에요. 똑같이 영화보고 똑같이 백화점 물건사고 똑같이 식사하고 운동해도 뭐냐. 말씀이 밑에 깔려있는 게 성도의 특징. 그 말씀이 없으면 내가 나를 지켜야 돼요. 그런데 말씀이 있으면 그 말씀이 뭐냐?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
주님께서 창세전부터 사랑했다는 것이 밑에 해버리면 이런 일로 인해서 실패한다 성공한다 내 인생 꼴아박았다 이겼다 하는게 의미가 없어져버려요. 말씀 자체가 완결성이기 때문에 종결적이거든요. 종결자거든요. 최후의. 마지막. 제가 지난 수요일인가 설교할 때 어떤 분이 그런 전화를 했어요. 시간이 컴팩트됐단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거에요. 상당히 어려운 말인데..
시간이 CD, 컴팩트 디스크, 시간이 압축됐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라고 하길래 장래의 예수님이 하실 일이 이미 아모스의 예언 속에 다 있었던 거에요. 그러니까 아모스가 예언하고 예수님은 이루고 그걸 도로 아모스가 거꾸로 아모스 예언 속에 거꾸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 시대의 이 예언으로 그 사람들이 구원받는 겁니다. 그 시대의. 우리 신약은 십자가 이후에 구원받고.
그러니까 컴팩트란 우리가 지난 지루한 시간, 인생, 나 몇 년 살았다 이거 말고 컴팩트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순간 구원이에요. 순간 구원. 딱 하면 구원돼요. 마치 E.T가 손가락으로 이렇게 하는 것처럼. 또는 미켈란젤로의 그 명화에 보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비스듬히 아담하고 누워있으면 손가락 내밀잖아요.
그러면 손가락과 손가락 해가지고 맞춰오면서 흙이 사람이 되는 장면 있지요. 순간 창조죠. ‘순간 창조’. 성령이 오게 되면 떠나지 않습니다. 왔다면 오게 되면 새 창조가 일어나거든요. 왜 그러느냐 하면 비록 순간이지만 그 안에 뭐가 들어있어요. 모든 창세전부터 마지막까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부 다 컴팩트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서 우리 인생은 컴팩트된 흘러들어와서 우리 인생 자체가 어떤 인생이라도 만족한 인생이 되는 겁니다. 그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생, “내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 중에 화평이다 평화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컴팩트되는 거에요. 성령이 오게 되게 되면.
그래서 항상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어떻게 보느냐 하면은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이 없습니다”라는 그런 자세로 보시면 돼요. 이게 어렵습니까? 아니 이걸 몰랐다니. 이런 감사거리가 있는 것을 내가 놓쳤다니. 이렇게 해야지. 지키겠습니다. 다 실천에 옮기겠습니다 이렇게 보면 그거는 하나님 속의 가짜에요. 그냥 고맙습니다. 그 고마움 거리를 만들어내는 거에요.
물론 그 작업을 하기 위해서 말씀을 보게 되면 먼저 내 노동의 가치, 노동에 의한 것을 뜯어낼 필요가 있어요. 내 꿈과 희망이 좌절될 필요가 있어요. 아파요. 그리고 이럴려고 예수 믿었나 대들 때가 있어요. 그러나 수술할 때는 좀 아파도 할 수 없어요. 수술할 때는 강제로 마취해가지고 배를 자르듯이 우리 아픈 곳을 찌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의 아픈 순간순간들도 장차 올 주께서 마련하신 것에 비하면 족히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맛집 새벽부터 줄서서 기다리지만 먹고 난 뒤에는 뭐 만족했다 안합니까. 그건 내가 못 믿겠어. 아무리 골목식당이지만 못 믿겠어.
다시 말해서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밥 안 먹는다는 뜻이 아니고 밥을 먹든 죽을 먹든 그 바닥에는 망개떡 잎사귀처럼 항상 말씀의 완성에서 주님께서 더 살으라고 내가 지금 데려갈 수 있는데 지금 아직도 할 일 있으니까.. 참 주님이 미안해.
내가 데려가야 할 텐데 좀 수고스럽지만 고생 좀 해라. 내가 한 25억 줄 테니까 고생 좀 해라. 차 벤츠로 바꿔줄 테니까 고생 좀 해라. 너 애 사법고시 수석 합격시켜줄 테니까 고생 좀 해라. 네 아이 수석합격해가지고 네가 성에 안 차는 거 다 알지만 그러나 이왕 고생하는 거 다시 고생 더 하기 위해서 이정도 일단 참아내라 하는 식으로 우리로 하여금 60평짜리 아파트 강남 아파트 사주고 이렇게 해주는데요.
그럼 아 또 살아야 되나. 주님의 십자가 고난 위해서 살아야지 뭐. 우짜노 이래가지고 해야죠 뭐. 할 일이 천지 삐까리로 많잖아요. 할 일이 아직도. 따라서 성령 받은 성도는 예수님의 시험 받음을 껴안게 돼요. 주께서 이런 시험을 당했구나.
그래서 이 시험에 대해서는 우리한테는 추가 시험이 없구나. 이 시험 합격한 다음에 너 지옥 가라는 시험이 우리한테는 면제되어 버리는 거에요. 면제되어 버리는 거에요. 예수님 단순히 모범이 아니에요. 껴안은 거에요. 예수님께서 이 시험을 십자가에서 이루었다 할 때는 시험을 버틴 시험을 이겨버린 그 몸을 껴안으니까 우리로 하여금 마귀의 시험이 어떠함을 인생을 통해서 오늘이든 내일이든 알게 하실 거에요. 아 주님께서 이 시험을 당하셨구나.
그런데 똑같은 시험을 우리가 지금도 당하고 있으니까 우리가 주님과의 동류, 히브리서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동류 또는 요한복음에는 친구. 동류라고 해요. 운명을 같이 한다고요. 가는 길이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동류, 같은 부류라고 이렇게 표현했어요. 히브리서 2장에 보면.
우리가 할 일은 뭐냐? 예수님이 시험받은 것을 체험하면 되지요. 자 오라~ 시험이이여 오라. 어차피 우리는 합격된 입장에서 까짓것 시험받지 뭐. 일부러 굶지는 마시고요. 굶게 하실 때가 있을 거에요. 밥 안줘서 한 24시간 굶을 때가 있을 겁니다. 밥 할려고 하는데 삐져가지고 싸워서 밥 안 할 때는.
그 다음에 5절에 봅시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마태복음에서는 세 번째에 나오는데 여기서는 두 번째에 나와있어요. 천하만국을 보여줬다 말이죠. 여기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아요. 천하만국을 예수님이 마귀하고 같이 갔습니다.
자, 여러분들이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지우고 이 자리에 여러분을 세우는 거에요. 왜냐하면 여러분들 속에 예수님이 계시니까 마찬가지인거에요. 세웠다 합시다. 마귀가 하는 말이 다 줄게. 다 줄 거란 말은 이 모든 것은 지금 누구 권한 안에 있다? 줄 수 있는 권한이 나에게 있다. 누가 오기 전까지는?
예수님이 오기 전까지는 세상 모든 이 세상 신, 마귀 손에 있다는 것을 마귀가 예수님 앞에서 증명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날 내용증명하는 거에요. 이미 최고 지도자 그런 것 따지지 마. 최고 지도자 이미 정해졌어요. 마귀, 악마. 악마가 최고 지도자에요.
사람이 정신에 문제에 있어서는 육체도 그렇지만 정신을 장악하면 모든 걸 장악한 겁니다. 정신 문제에서 가장 우수한 도를 닦는다든지 진리는 깨우친다든지 뭐 하늘을 해도 그 최종 지점에는 누가 가 있어요? 예수님이에요. 모든 것을 다 가졌다 그 증거가 뭐냐? 모든 인간은 나 중심이기 때문에. 나 중심인 이상은 우리의 대장은 악마가 우리 대장입니다. 나 중심. 내 중심으로 되어있는 거.
왜냐하면 자아라는 것은 전에도 이야기했지요. 자아라는 것은 원래 없었는데 자아라는 것은 자의식이거든요. 자의식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없었는데 내가 나를 볼 필요가 없었는데 나를 보고 벌거벗었음으로 부끄럽게 여기는 순간 이 사람은 이것이 그 사람의 몸의 기본이 되는 거에요.
그 다음에 인간이 하려고 하는 것은 그 부끄러움을 감추는 일에 모든 노동을 다 거기다 쏟아놓는 거에요. 부끄럽지 않는 조건을 만드는 거에요. 인간이 한평생 노력하는 것은 내가 절대 부끄럽지 않는 존재인 것을 증명할려고 인간은 모든 한평생을 다 소비하고 있습니다. 소모했어요. 내가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 나를 무시하지마라 또는 나는 남한테 지기 싫다는 것.
그 악마의 본성을 악마가 딱 내가 나를 보는 그것만 딱 집어넣어버리면 그 정신만 집어넣어 버리면 나머지는 뭐 악마가 시키는대로 하는 거죠. 그 자기 하수인들을 시켜 놓으니까 일개미 같은 인간들이 부지런히 만들어 놓은 그 모든게 뭐냐? 그 모든 것을 가지고 문명이라고 합니다. ‘문명’. 악마의 지시를 받아서 죽을둥 살둥 젖 먹는 힘으로 한번 가봅시다. 오늘 죽던 살던 한번 가봅시다. 자, 갑시다. 청춘을 돌려다오. 젖먹는 힘으로. 테스형한테 배워가지고 하는데.
문명이에요 문명. 어떤 문명? 우리들이 잘 사는. 내가 필히 포함된 내가 잘 사는 문명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인간의 지혜와 그 성의와 그 정열과 모든 아이디어를 다 쏟아붓는 겁니다. 코로나를 정복해야 되고 이겨내고 7번 넘어지면 8번 일어나야 되고.
문명의 역사는 질곡과 좌절과 극복의 반복이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지구에서 못 살면 화성에 옮겨 살면 되지. 화성 못 살면? 목성에 가나? 전부 다 무슨 소리해도 마지막엔 뭡니까? 살자. 이 ‘살자’ 때문에 구원을 훼방한다니까요. 악마가 이걸 노린 거에요. 협박과 급박과 공갈 모든 것은 결국은 우리가 어떤 자신일 때 오는 거에요? 유의미있게 오는 겁니까? 내가 살고 싶을 때 협박, 공갈.
드라마 보면 그런 거 많습니다. 아주 정의로운 형사가 딱 체포됐어요. 재벌 3세가 사람 사가지고 “너는 절대로 우리를 고소하지 마라.” “어림도 없지 나는 정의로운 법을 지키는 형사로서 내 본분을 다 할 것이다.” “그래?!” 그 때 전화 딱 해. “통화해봐라.” “아빠!” 딸의 음성. “네가 만약 우리말 안 들으면 딸은 죽는다.”
그러면 일관되게 딸이 죽든 말든 딸이야 늙으면 죽는다. 나도 죽는다. 그러면 되는데 이러지 않아요. 내 딸 건드리면 가만 두지 않는다! 딸도 정의롭죠. 그 아버지의 그 딸이니까. 아버지 구하지 마세요. 저는 어떻게 되든 괜찮습니다. 그 딸 그렇게 외쳐도 나중에 데이트 폭력 당하면 신고할 건데. 이게 아까 제가 이야기한 뭡니까?
아까 첫째 시간에 뭐라고 했던가요. 가정법을 뭐라고 했던가요? 자연법이라고 했지요. 이건 타고난 것. 내가 스스로 어떻게 지울 수 없는 본능적인 것. 국가의 법 말고. 엄마가 밥 하면서 월급 달라고 합니까? 없지요. 왜 그렇습니까? 노동해도 이거는 사랑이라. 댓가 없어. 내 새끼 내 남편 우리 가족은 내가 책임진다. 여기에 무슨 돈이 있어요? 남편이 바깥에 노동하고 관계없어요.
그런데 그것은 바로 이 영적 전쟁, 이 세계 전쟁에 대해서는 그것도 소용없습니다. 누구든지 무조건 착출해가지고 전쟁에 내보내지요. 애굽의 맏아들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괜히 히브리인들 보내가지고 모조리 온 집안에 전쟁 통, 여호와의 전쟁에 다 죽었잖아요. 다 전사했잖아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자체가 싸움하는 나라에요. 그 싸움통에 영적 전쟁통에 귀한 육적인 아들 애굽의 맏아들까지 바로 왕의 맏이까지 죽어버렸단 말이죠.
이게 무엇을 뜻하느냐? 이건 그냥 성경 이야기가 아니고 현실 그대로를 말해줘요. 현실 그대로를 말해주는 거에요.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다는 거에요. 우리가 주어진 태어난 이 현실에 대해서 내가 새삼스럽게 손쓸 수가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됩니까? 또 나온다. 네 번째다.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
이렇게 살아볼려고 해도 마음대로 안 되고 죽고 싶어도 죽기 싫고 어떻게 내가 내 단도리를 못해요. 주님께서는 못해도 괜찮다는 거에요. 못해도 괜찮다는 겁니다. 내가 너 조건보고 사랑했던가? 이미 네가 나를 사랑하기 이전부터 나는 너를 알고 있었다.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 천하만국을 보게 됐을 때 우리가 여기 서게 된다면 악마가 다 줄게 라고 하지요. 거기에 대한 답변. 객관식 1번 안돼. 2번 다오. 몇 번입니까? 몇 번이에요? 악마가 다 줄게 하면 어떻게 해야 돼요? 경상도 말로 “도”. 몇 번입니까? 정답 2번이지요. 2번이지요.
이래야 우리가 죄인답죠. 챙길 건 일단 챙기고 구원은 구원대로 챙기고 이거 남는 장사 아닙니까. 이거 요령이잖아요. 뭐가 어려워요? 어려운거 뭐가 있습니까? “안돼”라고 한다고 해서 보통사람들은 “안돼”를 정답으로 하는데 이게 이제 얍삽한 거에요.
“안돼”하면 더 줄까 싶어서. “안돼”라고 신앙티를 내게 되면 혹시 하나님께서 아이고 착하구나. 이 도끼가 네 도끼냐? 아닙니다. 그럼 이 도끼가 네 도끼냐? 아닙니다. 그럼 다 가져가거라. 그걸 딱 알아가지고 다 챙길려고. 욕심쟁이 우후훗. 그냥 줄 때 받아 챙겨놓으세요. 어차피 아무리 많아도 나의 존재는 주님의 것이 됐기 때문에.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께서 주신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마귀가 준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주님이 주신 거에요. 우리가 지금 없어서 난리지. 주면 입이 헤~벌어지지요. 주님이여 이것 가지고 참 떠나고 싶지만 주님이 떠나지 말라면 돈 한 250억 쓰고 돌아가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쓰고 가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중요해요. 천하권세 모든 영광이 성도한테는 그 영광과 권세가 다 불쏘시개 지옥의 불에 들어갈 벌벌 끓는 그거 있잖아요. 도가니 속의 영광이에요. 곧 불로 재가 될 영광. 그러니까 우리는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거에요. 쓰레기니까 뭐 당신한테는 귀하지만 나한테는 쓰레기다. 쓰레기 가져가라 이 말이죠. 죽음이 끓고 있는 현재 이 죽음 같은 세상을 사람들은 속이죠. 영광이라고. 복음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서 온갖 개념들을 다 반대로 다 바꿔놓는 거에요.
다시 이야기합니다. 예수님 안에 아버지는 몰라요. 성령이 아니고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자체적으로 폐쇄적이기 때문에. 기껏 우리는 이걸 대체해서 하나님 속의 메시아로 이것 가지고 천당갈려고 시도하거든요. 그러나 이것은 뭐냐 하면은 결국 예수님의 시험을 극복 못한 자들이 쳐다보는 그러한 가짜 이미지입니다.
진짜 이미지는 얼마든지 이런 시험이 오더라도 반길 수 있어요. 이겼으니까. 이미 이쪽으로 건너왔으니까. 주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니까. 마음 편안하게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잘못에 대해 묻지도 않고 잘못에 대해 지적하지도 않아요. 그 다음에 7절에 보면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보세요 또 소유격. 하여튼 이 세상은 내 것 아니면 네 것, 네 것 아니면 내 것. 전부 다 것으로 놀아요. 왜? 인간은 거기에 완전히 빠져버리고 사니까. 내 것이 될 때 그걸 둘러치는 그게 존재가 되는 거에요. 소유가 없으면 존재가 될 수 없어요. 소유 있어야 돼요.
자살할 때 내 몸 내가 버린다 하잖아요. 자기 소유잖아. 우리는 소유가 없는데 자꾸 소유를 찾고 있어요. 악마가 이미 우리에게 알려줬어요. 오늘 제일 중요한 게 7절이네.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그 다음에 다 같이 읽어볼께요. “다 네 것이 되리라.” 네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네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거에요.
네 인생의 주인공으로 번듯한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게. 이게 악마라는 말 하지 말고 여러분의 선배고 친구라고 생각하세요. 가볍게 여러분의 친척이고 형제로 생각해보란 말이죠.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안돼” 하지 말고 “도”. 그 쓰레기 줘.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그러니까 악마가 하나님 안에 있는 메시아를 생각할 때는 이렇게 생각해요.
하나님 경배하고 그 하나님 경배했다고 그 댓가로 주어지는 그 축복으로서 내 것이 되면 되지 않겠느냐 악마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축복으로 준 것은 절대로 내 것이 아닙니다. 욥기에 나오지요. 주신 분도 하나님이요 가져가신 분도 하나님이 될 때 그 때 그 인간 자체가 축복이기 때문에 내 것 없는데 존재가 생기는 거에요.
이 세상은 내 것이 있어야 존재가 되는데 가져가도 주의 것입니다가 되는 그런 조건이 성립되는 것. 그것이 제대로 하나님 경배할 때 주어지는 주님의 것으로서의 내 모습이죠. 그게 존재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너무 전도서의 말씀대로 너무 아낄려고 하지마세요. 아낄려고 아낄려고. 너무 아낄려고 하지마세요. 샤바샤바 그런거 하지 마시고 쓸 때 써야 되지 아껴봐야 눈독 드린 사람들이 한두명이 아닙니다.
자식들이 와가지고 아버지 오늘 뭐 샀는가 한번 보자. 명절날 와가지고 쓰윽 한번 검열해요. 친정집에 뭐 새로운게 들어왔는가. 어! 로봇청소기 들어왔네. 말하게 되면 또 엄마가 얘야 너희 없는데 가져가라. 이야기 안하겠어요? 왜? 자연법이니까. 딸이 잘 되는게 누가 잘된다? 내가 잘되는 거니까. 나는 없어도 돼. 너희만 잘 살면 되지. 나 같은 건 뭐 없어도 괜찮다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이게 자연법, 혈육적. 그래서 우리의 원수가 집안 식구.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왜 성전꼭대기에 서커스할 일 있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건 뭐냐 하면은 뛰어내리라는 세상에서 말하는 기적. 자, 악마의 생각은 이겁니다. 악마의 생각은 이거에요. 뛰어내려도 죽었다? 살았다? 어느 게 기적이에요? 뛰어내렸는데 죽었다? 살았다? 살았다가 기적이죠.
항상 악마의 기적은 항상 마지막에 멀쩡하게 살았다. 인간답게 살았다. 존경받고 살았다. 살았다가 악마의 카드에요. 그 악마의 카드를 친척의 카드, 내 친구의 카드 심지어 내가 나한테 내민 카드. 사람은 한평생 사는데 사람답게 살아야지. 이렇게 지지리 궁상. 이게 사는 건가. 내가 나를 불평을 하고 내가 나를 체벌하고 나무래고 따지고 그러면 안돼요.
인간의 모든 범죄는 본인이 본인한테 미안할 때 생긴다고 했지요. 내가 나를 다독거리면서 미안하다 내가 못나서 지금 돈을 못 벌었구나. 기다려봐라. 내가 사기 치더라도 내가 너 호강시켜줄게. 이게 범죄의 시작 아닙니까. 범죄 뭐가 있어요. 자기가 자기하고 의논해서 자기 소유로 만들려고 하는 거지요.
뛰어내리라 할 때 10절에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기록되었다는 말은 악마가 이야기한 거에요? 예수님이 이야기한 거에요? 이 귀한 시편의 말씀을 누가 인용한 겁니까? 악마입니까? 예수님입니까?
지금 대사가 각본대사 잘 봐야 돼요. 이 대사를 악마가 한다고요. 악마가. 성경구절 달달 외우는 여호와의 증인이 한다니까요 이걸. 성경구절을 외우는 건 좋은데 마지막에 뭐가 있으면 안 된다? 산다가 있으면 안돼. 산다가 되면 안된다. 이렇게 하면 빨리 세상 끝난다 이게 되야 되는데 산다가 되어 버리면 성경 구절 잘못 적용한 거에요.
여러분 기도합시다. 기도해서 코로나 시대 우리나라 위해서 기도합시다. 기도하면 얻는 게 뭡니까? 우리나라 잘 삽니다. 그러니까 기도해서는 안 되는 거에요. 여러분들은 이렇게 어려울 때 우리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기도하게 되면 우리 교인들 많이 옵니다. 그러니까 그 기도 안 되는 거에요. 그 기도 엉터리 기도에요. 이쯤해서 우리는 이 땅에서 발 뺄 수 있습니다 이런 거.
그러니까 그 말 듣고 옛날부터 저보고 하는 소리가 목사님 기도할게 없어요. 기도할게 없으면 기도 안하면 되잖아요. 나 참 답답해. 기도 안하면 되는데 왜 꼭 기도를 해야 된다는 생각을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있는 거라도 날라갈까 싶어서. 있는 거라도 망칠까 싶어서. 있는 것 내 것 아닙니다. 주신 자도 하나님이요 가져가신 분도 하나님이요. 내 것 아니에요.
우리는 소비만 돼요. ‘소비’. 남편 되시는 주님이 월급 주거든 우리는 아내가 되가지고 백화점에 가가지고 룰루랄라 쇼핑백 여러개 놓고 이 땅에서 싸돌아다니면서 백화점마다 다 돌아다니면서 소비하면 되는 거에요. 소비도 못합니까. 바보들이지. 소비하면 돼요.
우리의 목숨도 소비하고 우리의 간, 신장부터 해서 다. 지금도 소비하고 있어요. 지금도 날이 가면 갈수록 간이 안 좋고 피곤해지고 그렇잖아요. 연세 많은 분들 다 느끼잖아요. 알아서 빨리 소비하란 뜻이에요 그게. 오래 지탱하지 말고 떠날 때 되면 빨리 떠나란 말이죠. 떠나야 반가운 분을 만나지요.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할 거에요. 긴긴 기다린 시간을 끝장낼 때가 오면 반갑지요 도리어.
그 다음에 11절에 보면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다시 말해서 네 쪽에서 내 쪽으로 건너올 생각하지 마라. 절대로 너와 나는 끝난 상태다. 관계가 끊어졌을 때는 이미 시험이라는 것이 성립되는 겁니다. 관계가 끊어졌을 때.
우리는 주님을 시험할 필요 없어요. 주님 것이 우리 것이기 때문에. 하나이기 때문에 구태여 테스트할 필요가 없어요. 테스트한다는 것은 거리가 떨어졌다는 거에요. 사회적 거리두기 합니까? 주님하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이만큼이라도 우리를 지금 그리스도 증거하라고 살려주신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 마귀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 이야기가 된 것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구원받았기에 마귀를 무서워하지 말고 주께서 경험했던 그 경험을 기쁘게 받아내는 남은 생애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