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해외특강,20제주가을특강-재정리
201909 해외가을특강 : 소모용 인생(마25,14~30)
강의 : 이근호 목사, 정리 : 오용익 목사
먼저 마태복음 25장 14절부터 30절까지 보겠습니다.
(마 25: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마 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마 25: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마 25: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마 25: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마 25: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마 25: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마 25: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마 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마 25: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마 25: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마 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 25: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마 25: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
(마 25: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제가 상당히 길게 말씀을 읽었는데, 그 스토리가 있다는 겁니다. 길어도 그 흐름이 무엇이라는 것은 다들 아시겠지요? 열 개, 다섯 개, 한 개, 주인이 그렇게 각각 종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열 개는 받은 종은 열 개를 남겼고, 다섯 개를 받은 종은 다섯 개를 남겼다는 말이죠.
그리고 하나를 받은 종은 있는 그 하나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주인에게 되돌려 주었다는 겁니다. 그러자 이 한 달란트를 받은 종에 대해서 주인이 버럭 화를 내면서,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쫓아라. 거기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라고 했다는 말이죠.
* 천국은, 분류가 발생되는 곳 !!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바로 천국 이야기라는 겁니다. 이상하지요? 천국이라면 살기 좋은 곳으로 이야기해야 납득하기 쉬운데, 천국 이야기가 살기 좋은 곳이 아니고, 이 땅에서 두 패로 나누어진다는 말이죠. 하나는 악함, 즉 악하게 등장하고, 다른 한 쪽은 충성되게 등장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악한 사람 하나, 충성된 사람 둘, 그렇게 해서 세 사람이 나온다는 말이죠.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이렇게 세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천국 이야기, 즉 달란트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이것을 모른다고 하면, 세 사람은 동등하다는 말이죠. 이 사람, 이 사람, 이 사람, 서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차이가 없는데, 천국 이야기가 개입되는 순간, 그만 여기 세 사람은 두 패로 나뉘게 되었다는 말이죠. 한 쪽은 충성된 칭찬을 받는 쪽, 다른 한 쪽은 졸지에 무엇이 되었지요? 지금 이 대목에서는 충성된 사람이 몇 명입니까 두 명이고 악한 사람은 한 명으로 되어있는데, 이게 분류라는 겁니다.
선함과 악함이 분류가 되었는데, 이게 뭐냐 하면,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천국은 이 땅에서 일을 이미 시작하게 되면 무엇이 발생한다는 겁니까? 분류가 발생하게 된다는 말이죠. "어떤 나라가 있는데 죽어서 가면 되겠지" 라는 게 아니라, 천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라, 이미 천국이 이 인간세계에 개입되고 있다는 겁니다. 즉 어떤 일을 벌이고 있다는 말이죠.
* 충성된 자, 악한 자 !!
그러면 무슨 일을 벌입니까? 성경은 무슨 일을 벌인다고 합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분류를 시키는 일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분류를 시키는데, 어떤 분류를 시킨다고 합니까? 충성된 자와 악한 자가 분류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충성된 자와 악한 자가 분류될 때, "어떤 자가 충성된 자이고, 어떤 자가 악한 자인가?"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는 그게 궁금한데, 그 결론 부분이 굉장히 궁금하다는 말이죠. 다시 말씀을 드릴까요? 이런 분류가 없을 때는 모든 인간이 동등한데, 다들 고만고만하다는 겁니다. 살아가는 것이 말이죠. 열심히 돈을 벌어서 돈을 쓰고, 그냥 그것으로 끝나는데, 모두들 똑같다는 겁니다.
그러니 "네가 잘났다, 내가 잘났다" 라고 해도 믿지 맙시다. 인간이 인간을 평가하는 것은 인정하지 말자는 것이죠. 옆 사람이 다른 옆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인정하지 마세요. 그것이 하나님의 평가가 아니라는 겁니다. "죽어서 좋은데 간다는 것은 네 생각이고, 나는 네 생각과 달라. 네가 어떻게 나를 평가해?" 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가 하나님도 아닌데 건방지게 어디서 감히 남을 평가합니까? 그러니 사람들의 그런 평가에 대해서 신경을 쓸 필요도 없고, 거기에 대해서 귀담아 들을 필요도 전혀 없다는 겁니다. 즉 "너는 네 인생을 살고, 나는 내 인생을 살면 된다" 라는 것인데, 같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서, 간섭해할 자격도 없고 권한도 권리도 없다는 말이죠.
권세가 대단한 사람에게는 아부도 하는데, 하지만 그 권세라는 것도 한 때의 권세가 아닙니까? 그런 권세가 없어져버리면, 그 다음부터 또 갈아타기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다른 권세자를 찾아다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평가할 최종적인 위치에 있지 않다는 말이죠
* 바르게 살면 천국에 가겠지 !!
"바르게 살면 천국에 가겠지" 라고 하는데, 물론 천국이 여기에 개입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천국은 죽으면 가는 나라라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뭐냐 하면, 천국이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고, 이렇게 사이좋게 서로 뭉쳐져 살아가고 있는 여기에, 천국이 찾아오게 되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몇 번을 물었는데, 또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여기에 무엇이 일어난다고 했습니까? 분류가 일어나는데, 그 분류가 뭐냐 하면, 충성된 종과 악한 종이라는 말이죠. 악한 종은 악하니까 어디에 가겠어요? 지옥에 가고, 반면에 충성된 종은 천국에 간다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이 충성된 자고 무엇이 악한 자인지, 그것이 결론적으로 궁금하다는 말이죠.
* 충성된 자, 이것은 '몰살' 개념 !!
그 궁금한 것을 제가 말씀드릴게요. 논리가 너무나도 복잡하기 때문에 미리 말씀을 해드리겠습니다. 충성된 자, 이것은 뭐냐 하면, 그것은 곧 '몰살' 이라는 겁니다. 여기 이 달란트 비유에서 몰살의 뜻이 무엇인고 하면, 그것은 곧 '자기파괴' 라는 말이죠.
그러면 반면에 악하다고 하는 것은, 이쪽은 천국에 가는 쪽인데, 여기는 그와 반대쪽이니까, 이쪽은 자기 파괴가 아니라 '자기 지킴' 이라는 겁니다. 즉 "내 인생은 내가 지키면서 살겠다" 라는 것인데, 이것이 주님이 보시기에 악함에 해당된다는 말이죠.
천국의 개입이 없을 때는, 이 세상은 다들 고만고만해서 차이점을 몰랐는데, 막상 천국이 개입하다가 보니, 사람은 두 종류로 분류가 된다는 겁니다. 한 종류는 자기 파괴, 자기 몰살, 자기 말살, 즉 자기 자신을 없애버리는 쪽이 충성된 자고, 반면에 끝까지 자기가 자기 것을 지키겠다는 쪽은 악함에 해당되어 버린다는 말이죠.
* 조카야, 10억을 다 쓰고 오너라 !!
제가 결론부터 내렸기 때문에, 어떻게 그런 논리가 나오는지를 잘 모르겠지 싶은데, 그래서 쉬운 예를 들겠습니다. 미국으로 간 삼촌이 20대 조카에게 10억을 남기고 갔는데, 가면서 "그 10억을 모두 말아먹고 3년 내에 미국으로 와라" 라는 숙제를 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20대 조카가 한국에서 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미국에서 삼촌과 합류하기 위해서, 남겨진 10억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재산을 다 말아먹으면 된다는 것이죠. 이것을 소멸이고, 말살인데, 다들 같은 뜻인데, 여기서는 소멸로 하겠는데 말이죠. 그러면 조카는 소멸하는 일을 해야하는데, 유흥업소에 가든 도박을 하든, 돈 10억을 3년 내에 다 소비를 해야한다는 겁니다.
그게 자기에게 주어진 숙제라면, 그 조카가 3년 후에 재산을 모두 날리고 미국의 삼촌을 만았을 때, 미국에 있는 삼촌이 칭찬할 조건이 무엇입니까? "내가 준 돈을 어떻게 했어? - 모두 다 날렸습니다. - 참 잘했구나. 그러니 너는 나의 충성된 조카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왜 충성된 조카인고 하면, 그 조카는 자기 것을 따로 남기지 않았다는 겁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부부의 경우에, 부부는 남편과 아내, 즉 남자와 여자라는 말이죠. 여기서 남자가 부부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어서, 자기에게 시집을 잘 왔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겁니다. 그래서 남자가 여자에게 잘해준다면, 그것은 충성된 종입니까? 악한 종입니까? 악한 종에 해당된다는 말이죠.
어떻게 이해가 좀 됩니까? 하나님께서 아내를 주신 것은, 그 아내와 더불어서 인생을 말아먹으라는 것인데, 인생 말아먹으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악한 남편은 뭐냐 하면, "내 아내를 내가 너무 사랑해서 행복하게 해주었다는 나의 의로움을 남기겠다"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바로 이것이 하나님 뜻에 위반이 된다는 겁니다.
* 하나님을 우회하는 인간들 !!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이 상상이 됩니까? 그러면 가짜 하나님은 뭐냐 하면, 자기가 하나님을 이용해서 누가 잘된다는 겁니까? "하나님을 잘 섬겼더니만, 나에게 이런 혜택을 주었다" 라고 하나님을 우회한다는 말이죠. '우회' 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다들 알지요?
인간이 아렇게 있다고 하면, 하나님을 우회해서 어디로 소환시키느냐 하면, "나는 이 정도로 괜찮은 존재다" 라고 하는 것인데, 이게 구약의 바알신이고 우상이라는 겁니다. 인간이라면 모두 이런 신을 믿는데, 하나님을 이용해서 누가 잘된다는 겁니까? 궁극적으로 자기가 빛나려는 의도를 가지고 신을 믿는다는 말이죠.
* 자기 파괴 1!
그것을 두 글자로 '종교' 라고 하는데, 그게 오늘날의 기독교라는 말이죠. 종교라는 것이 뭐냐 하면, 절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 믿는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과는 다르다는 말이죠. 다른 민족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자신이 소멸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니 10억을 받은 조카의 입장이 되는 것인데, 이스라엘은 그것을 못했다는 겁니다. 너무 아까워서 말이죠. 그런데 그것을 해낸 분이 있는데,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죠. 아버지의 뜻을 받아서, 그런데 그 아버지의 뜻은, 자기가 이 땅에서 사는 게 아니고 이 땅에서 소멸되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저주에 의해서 자기가 말살되는 것이라는 말이죠. 그것을 4글자로 무엇이라고 하는고 하니, '자기 파괴' 라고 하는데, 그래서 오늘 강의제목을 '소멸' 이라고 해도 괜찮은데 말이죠. 더 정확하게 하라고 하면 '자기 파괴'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죠.
* 달란트 비유, 과연 그러한가?
아까 했던 조카 이야기를 다시 해봅시다. 지금 제가 굉장히 쉽게 말씀을 드리는데, 조카에게 10억이 자기 돈입니까? 삼촌의 돈입니까? 삼촌의 돈인데, 삼촌의 돈을 가지고, 이것을 종자돈으로 해서 20억이나 30억으로 더 늘리라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달란트 비유' 라고 하면서, 교회에서는 그동안 어떻게 설교를 해왔습니까? 정반대로 했는데, "열 달란트를 주었으니 열 달란트를 남기세요. 두 달란트를 주었으니 두 달란트를 남기세요" 라고 말이죠. 반면에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어떻다는 겁니까?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남기지 못했으니 지옥에 가고, 충성봉사해서 교회에 남긴 사람은 천국에 갑니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교회에서 이렇게 정반대로 가르쳐왔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든 인간들에 있어서 그 신이 무슨 신이냐 하면, 참된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신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바알신은 자기를 위한 신인데, 그런 의도가 있기 때문에, 주님과는 해석을 정반대로 해왔다는 겁니다.
그들이 말하는 충성된 자는, "주께서 남기신 것을 내가 많이 불리면 하나님께 칭찬을 받겠지" 라는 것인데, 즉 "내 인생이 괜찮아야 내가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것이죠. 그러나 그것은 지옥에 가는 자인데, 악한 종들이란 겁니다. 천국에 가는 사람은 자기 인생이란 것은 애초부터 없었는데, 10억이 자기 돈이 아니고, 전부 다 삼촌의 돈이라는 말이죠.
* 아내는 괴물 !!
아까 들었던 예를 다시 들어볼까요? 남편이 아내에게 잘해주었는데, 그래서 자기는 무슨 남편이 된다는 겁니까? 훌륭한 남편이 된다고 하는데, 이런 사고방식이 바로 지옥에 갈 사고방식이라는 것이죠. 그러면 왜 결혼을 하고 아내를 만납니까? "나는 말살을 당해도 마땅한 존재다" 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 만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아내에게 해줘봐야, 아내는 괴물이 되어서 만족할 줄을 모른다는 말이죠. 혹시 그런 것을 느끼십니까? (ㅋㅋ) 아무리 최선을 다해봤자, 이 괴물은 들어가기만 하지 나오는 것은 없다는 겁니다. 뭔가 바닥이 보이지 않는데, 계속 집어넣어도 끝이 없다는 말이죠. 이것을 해주면 저것을 해달라고 하고, 저것을 해주면 이것을 해달라고 한다는 겁니다.
아니 남자가 로봇입니까? 인공지능입니까? 고맙다는 말도 없고 만족도 없다는 말이죠. 남편은 죽자 사자 일만 하는데, 바닥이 없다는 겁니다. 바닥이 없는 우물은 무엇을 던져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죠. 왜 하나님을 오해하고 자꾸만 반대로 생각합니까? 모든 교회가 그런 소리를 하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요구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껏 그래왔고, 지금도 마찬가지고, 앞으로 그렇다는 말이죠.
그러니 자기 파괴, 몰살, 소멸, 이게 얼마나 큰복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모든 고민과 근심은 어디서 나옵니까? 버티는데서 나온다는 말이죠. 지옥에 가서도 버티려고 하는데, 지옥에 가서 버티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 잘난 사람들 다 모여있다는 말이죠.
* 90년을 말아먹어라 !!
인생을 왜 삽니까? 소모하라는 것인데, 10억을 다 소모하라고 겁니다. 그것을 키울 생각은 하지말고 말이죠. '말아먹는다' 라는 게 제목으로 제일 적당하지 싶은데, 즉 "내 인생을 내가 말아먹어야 한다" 라는 겁니다. 만약에 90년을 산다면, 그러면 90년을 말아먹으라는 것이죠.
지금 달란트 비유를 길게 이야기했는데, 그것을 하나하나 다 설명하자면 시간이 많이 가지만, 핵심은 이것이란 말이죠. 이 악하고 게으른 종이 한 달란트를 계속해서 남겨두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땅 속에 남겨두었다는 말이죠. 그러면서 뭐라고 합니까? "이것은 주인님의 것이니 돌려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주인은 남겨두라고 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이것을 찬찬히 하번 생각해봅시다. '달란트' 라는 것은 옛날 돈을 이야기하는데, 그 돈을 주신 분이 직원입니까? 주인입니까? 주인이라는 말이죠. 그 주인이 직원들에게 열 개를 주고, 또 다섯 개를 주고, 그리고 한 개를 주고, 그리고 자기는 먼 타국에 가버렸다는 것이죠.
쉽게 이것을 공장이라고 하면, 그러면 그 공장의 주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없다는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말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사람들은 신경을 쓰지 않는데, 그러면 어디에 신경을 씁니까? 눈에 보이는 것이라는 말이죠. 그 눈에 보이는 것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있다', 또는 '여기 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원장님, 그 의자에 누가 있습니까? 누가 눈에 보입니까? 자기가 있는데, 오늘 강의에 의하면, 그 있음을 소모시켜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즉 "누가 소모를 잘 하고 있는가?" 라는 것을 하나님은 지금 묻고 있다는 말이죠. "네 인생을 영원토록 보존하라" 라는 게 아니고, 우리는 없는데서 생겼다는 겁니다.
"당신 생일이 언제입니까?" 라고 하면, "1958년 어쩌고" 그렇게 나오는데, 그러면 1800년도에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없었는데, 1958년에 태어났다는 말이죠. 없는데서 태어나서 지금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있으려면 이 있음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느냐 하면, 인간의 의무와 책임을 없음으로 바꿔주어야 한다는 말이죠.
* 소모하라고 준 인생 !!
이게 뭐냐 하면, 소모하라고 준 인생이라는 겁니다. 10억을 돈 더 벌라고 준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아이고 조카야, 10억 주었으니까 20억으로 불려라" 라고, 지금 삼촌이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원래 자리는 자기가 없던 자리라는 겁니다. 자기가 없는 자리, 그렇게 자기가 없는 자리가 자기 자리라는 말이죠. 신기하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서, "내가 없는 자리에 내가 있다" 라는 것인데, 그러면 없는 것이 있으려면 여기 누가 있어야 합니까? "보이지 않는 분이 작용해서 없던 내가 있게 되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합류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있는 자기를 없앰으로서, 그래서 다시 없음으로 합류하면 된다는 말이죠.
그 기능을 오늘 본문에서는 달란트가 하는데, 그래서 주인은 떠나도 무엇을 남겼습니까? 열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남겼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달란트의 용도가 무엇인고 하면, "내 것이 있다" 라는 게 아니라, "아무리 벌어도 내 것은 없다' 라는 것을 증명하는 용도로서의 달란트라는 말이죠.
그래서 열 달란트를 받은 종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 열 달란트를 자기 것으로 했습니까? 아니면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까? 주인에게 돌려주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천국은 뭐냐 하면, 우리가 돌아갈 곳이라는 말이죠. 즉 있는데 없음이 되면서 돌아간다는 것이죠.
* 내 소속이 어디인가?
"목사님, 죽으면 그렇게 되지 않습니까?" 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아니라는 겁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살아있을 때 분류가 된다는 말이죠. 즉 "내 소속이 어디인가?" 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그러면 살아있는 자기를 없애려면, 자기는 무엇을 하면 됩니까? 있는 자기를 소모하면 된다는 말이죠. 소모하는 것, 즉 "내가 없다" 라는 것을 확인하면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고3이 치는 시험을 '수능' 이라고 하지 않고 'SACT' 이라고 하는데, 그 시험을 치를 때, 엄마가 자기 일을 포기하고 그 뒷바라지를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엄마의 자기 일이 없어지는데, 그렇게 없어지니 그 순간 있음에서 무엇이 되었습니까? 없음이 되는데, 즉 자식을 위해서 자기 것을 소모한 것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한 모습을 이 주인의 직원들이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사실은 가만히 있어도 소모가 되는데, 늙어죽으니까 말이죠. 가만히 있어도 소모가 되는데, 결국은 그렇게 소모가 되면서 무엇이 아까우냐 하면, 세월이 가는 것이 아까운데, 이게 악한 종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계속 미련이 있으니까 말이죠.
* 자기 연민 !!
"평생동안 나는 무엇을 했지? 미국에 가서 고생만 하고, 도대체 미국에서 무엇을 했나?" 라고 하는데, 이것을 4글자로, 여러분이 다 아는 용어인데, '자기 연민'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2글자로 줄이면 '교만' 이라고 하고 말이죠. 이게 바로 악함인데, 자기 연민, 즉 자기 자신에 대해서 굉장히 불쌍히 여기고 가련하게 여긴다는 겁니다.
그렇게 자기를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긴다는 것은, 자기를 소모하고 버리겠다는 뜻이 아니라, 끝까지 자기를 지키겠다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끝까지 지키는 곳이 어디냐 하면, 그것이 바로 지옥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지옥이라는 것은, 주님이 주인공이 되어야 할 세계에 자기가 주인공이라고 버티는 행태이고, 그런 곳이라는 말이죠.
한 달란트를 준 것이 주인이라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니야. 이것은 주인의 것이니까, 나중에 주인이 다시 오게 되면 주인의 것으로 돌려주면 될 것이 아니냐?" 라고 하는 것은, "당신 것과 내 것 사이에 경계선이 있는데, 넘어오지 마세요" 라고 하는 이야기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당신 것을 돌려줄 테니, 당신은 내 것을 건드리면 안 돼" 라고 하는, 이것이 천국에서는 용납이 안 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인간은 없는 존재에서 있는 존재가 되었는데, 그렇게 있는 존재가 되었다면, 어떻게 해서 없는 존재에서 있는 존재가 되었는지, 그것을 과학은 전혀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 과학은 DNA !!
과학은 DNA를 기초로 하는데, 즉 과학은 있는 것에서 있는 것이 나온다는 말이죠. 왓슨과 클릭이 1953년도에 발견한 DNA 구조가 있는데, 이것으로 노벨 생리학상을 받았다는 겁니다. 제가 이 연도를 기억하는 이유는, 제가 그 해에 태어났다는 말이죠. 이게 인간이라는 것이죠(ㅋㅋ).
이들은 영국의 학자들인데, 이 DNA 덕분에 25년이나 된 미제의 범죄가 해결되었는데, 그 유명한 화성연쇄 살인사건이 말이죠. 모든 의학이 이 DNA가 아닙니까? DNA를 편집하고 잘라서 새로운 인종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그게 돈이 된다는 겁니다.
인간의 모든 육체는 껍데기에 불과하고, 이 DNA가 자기 확장을 추구해서 그게 자손이 된다는 이론이 나왔다는 말이죠. 도킨즈의 '이기적 유전자' 라는 책이 나왔는데, 거기서 그런 주장을 한다는 겁니다. 즉 있는 것에서 있는 것이 나온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DNA의 이전은 뭐냐 하면, 그냥 계속해서 DNA 인데, 그 이전은 모른다는 것이죠.
*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나왔다 !!
그러면 성경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물론 "없는 것에서 나왔다" 라는 것도 되지만, 그것은 구약이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나왔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피조물이라는 것이죠. 모르는 것이 아니고 말이죠.
그러니 천국은 누구의 세계입니까? 인간의 세계가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니까, 하나님의 세계라는 겁니다. 그 하나님의 세계에 우리가 합류한다는 것이죠. 이렇게 합류할 때는 무엇이 방해되느냐 하면, 자기 것이 방해가 되는데, 왜냐하면 천국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자기 것을 계속 사수하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땅에 60년, 70년, 계속해서 왜 사느냐 하면, 소모하라는 말이죠. 자기 것이라 여기는 것을 소모하라는 겁니다. 없애버리라는 것이죠. 아까 자식이 공부하는 것을 예로 들었는데, 또 열심히 무슨 일을 벌이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 처음부터 새로 다시 !!
강의를 처음부터 다시 해보겠습니다. 여기 세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고만고만하다는 말이죠. "네가 잘났다. 내가 잘났다" 라고 할 수 없는데, 그런 말도 들을 필요도 없다는 겁니다. 그 누구라도 자기에게 무엇이라고 이야기할 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말이죠. 인간은 다 똑같다는 것이죠.
그러니 "너는 네 갈길 가고, 나는 내 갈길 가고", 그렇게 하면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이 있으면, 각자 자기 길로 가면 그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이 인간에게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말이죠. 주눅이라는 말을 알지요? 한 때 돈을 잘 벌 수도 있고, 또한 망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망하다가 계속 망할 수도 있고, 잘되는데 계속 잘 될 수도 있고 말이죠.
누구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각자 개성이 있는 자기 인생을 살면 그만이라는 겁니다. "내 일에 간섭하지 말라. 내일에 토를 달지 말라. 너는 네 일이나 해라" 라고, 그렇게 살면 된다는 말이죠. 그런데 빨강, 노랑, 파랑, 이 셋 중에서 파랑이 교회를 다닌다는 겁니다.
그러면 빨강이나 노랑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우우, 우우" 라고 하면서, "네가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목적이 결국은 뭐냐? 이쪽은 5억이고 저쪽은 3억을 가지고 있는데, 교회에 가서 기도해서 3억이 7억이나 8억으로 바뀌면, 그것으로 네가 나를 이기려고 하지?" 라고 하는데, 그러면 이쪽이 위너가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갑자기 한 쪽이 위너가 되면서 상대방은 그만 루저가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 이 세상은, '게임판' !1
인생이라고 하는 것을 한번 따져보세요. 간단한데, 승자와 무엇의 구분이라는 겁니까?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라는 겁니다. 승자와 패자가 있는 것을 두고 '게임판' 이라고 하는데, 이 게임판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세상, 또는 현실이라는 말이죠. 사업을 하시지요? 그러면 왜 합니까? 패자가 되려고 합니까? 승자가 되려고 합니까?
승자가 뭐냐 하면, 오래 살아남는 것이 승자라는 겁니다. 일찍 말아먹고 자살해서 죽는 것은 패자라는 말이죠. 이 세상은 아무리 학문적으로 따져도 간단하게 조립하고 정리하면 딱 이것인데, 그게 '게임' 이라는 겁니다. 다들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여성보다 남성이 민감한데, 왜냐하면 먹지는 못해도 허세와 같은 것이 있어서, "나는 지지 않았다" 라고 하면서 버티는 것이 있다는 말이죠.
특히 남자들이 술을 먹는 이유가 뭐냐 하면, 낮에 패배한 것을 밤에 만회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뭔가 패배한 것을 술잔 앞에서, "나는 패배자 아니다" 라고, 그렇게 애써서 감추기 위한 허세와 같은 것으로 술을 먹는다는 겁니다. 여기에 더 플러스가 되는 술기운이 올라와서 큰소리까지 칠 수 있다는 말이죠. 승자는 큰 소리를 치고 패자는 유구무언인데, 즉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세상은 게임판인데,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승자가 웃는 자이고, 이 웃는 자를 사람들은 행복한 자로 본다는 겁니다. 인생관이 어떠니 저떠니, 그런 것은 따지지 말라는 것이죠. 인생은 게임이고, 사람은 모두들 패자보다 승자가 되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쁜 아내를 만나는 것도, 못난 아내를 만나는 것보다는 승자라는 말이죠. 자기가 남자로서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어야 예쁜 아내를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방금 이야기했는데, 자식들을 잘 먹이는데 있어서, 잘 먹이기만 하면 됩니까? 이왕이면 패배자보다는 승리자가 되게 하고 싶다는 말이죠.
* 힘이 좀 빠지면 교회로 가서 !!
여기에 기운이 좀 빠졌다고 여기면, 그러면 여자는 어디로 갑니까? 교회로 가는데, 교회로 왜 갑니까? 무엇이 되기 위해서 갑니까?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 간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종교, 또는 종교생활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이게 왜 지옥에 가는 방법인줄 아시겠지요?
이 교회에서 무슨 용어를 이야기합니까? 많이 들었지 싶은데, 주를 이야기하고, 성령을 이야기하고, 예수를 이야기하고, 삼위일체를 이야기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용어는 무엇에 필요한 겁니까? 자기로 하여금 게임판에서 승자가 되게 하기 위한 용어라는 말이죠. 그러니 그런 용어는 핑계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니 교회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조직인지 모르는데, 천국을 가로막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승자가 되고 싶은 사람, 또는 승자가 되지를 못해서 한이 맺힌 사람, 또는 승자가 되었다고 으스대는 사람, 또는 승자가 되지도 못했으면서도 된 것처럼 폼을 사람, 그런 자들이 다 모여있다는 말이죠.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가서 "하나님, 저를 말살되게 하소서" 라는 기도를 하겠습니까? "하나님, 빨리 소멸되게 하소서" 라고 기도를 과연 하겠느냐는 겁니다. 그럴리가요? 그것이 아니라, "오래 살되 건강하고 부자가 되게 해주세요" 라고 한다는 말이죠.
아까 여자 쪽에서 교회에 간다고 했는데, 그러면 남편은 왜 여자가 교회에 가는 것을 방치를 하느냐 하면, "네 확신은 믿지 않지만 혹시라도 네가 기도해서, 그런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내가 승자가 되는데 필요한 조건들을 제공한다면, 그러면 아내덕분에 내가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그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 교회와 주술 !!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교회인데, 그러면 그 교회는 누가 세웠을까요? 마귀가 세운 것인데, 십자가를 내걸어놓고 마귀가 세웠다는 말이죠. 그것을 제가 설교시간에 '주술적' 이라고 했는데, 주술적이 무슨 뜻이겠어요? 같은 단어를 반복하면 신께서 기적이나 효과를 줄 것만 같은 기대감, 이게 주술적이라는 겁니다.
옛날의 주술적인 것들은 좀 촌스러웠는데, 부적을 붙이고, 점을 치고, 토정비결을 보고, 이런 것들이 주술적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이제는 바뀌었다는 겁니다. 옛날에는 촌스러웠지만, 이제 교회에 가면 어떻습니까? 물론 그것이 서양식이기도 하지만, 찬양도 하고 성만찬도 하고, 뭔가 상당히 멋있어 보인다는 겁니다.
하지만 주술적이란 것은 달라지지 않는데, 왜냐하면 목적이 게임판에서 패자가 아닌 행운을 얻어서 승리자가 되려는 것이기 때문에 말이죠. 좋은 가정,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착하면 복을 받고, 그러면 승자가 된다는 겁니다. 착하면 복을 받아서, 그 복이 자기를 게임판에서 승자가 되게 한다는 것이죠. 패배자가 되지 않고 말이죠.
그래서 남자에게 제일 싫은 것이 뭐냐 하면, 자기가 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지기 싫어서 벌써 주먹을 쥐고 싸우려고 하는데, 어른이 되어도 마찬가지란 것이죠. "무슨 차를 타고 다녀?" 라고 하면, "음매 기죽어" 라고 하는데, 자동차, 아파트 등등, 그 모든 것이 게임판에서 자기가 최고가 되겠다는 본성은 달라지지 않다는 겁니다.
* 충성된 종 !!
처음부터 다시 돌아가서 하겠습니다. 세 사람이 있는데, 이 세 사람이 있을 때 서로가 서로를 바라본다는 말이죠. "(1) 나는 저 사람보다는 아니지만 이 사람보다는 낫다. (2) 나는 이중에서 제일 못났다. (3) 나는 이중에서 제일 낫다" 라고 했을 때, 여기서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이 평가가 맞습니까? 틀렸습니까? 이것은 틀렸는데, 왜냐하면 일방적이라는 말이죠. 이 사람이 보는 것과 저 사람이 보는 것이 다르다는 겁니다. 가위를 낸 사람, 바위를 낸 사람, 보를 낸 사람, 그렇게 각자 내는 사람들이 다 다르듯이, 어떤 하나가 진리가 아니라는 말이죠.
그러니 서로가 서로를 평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고, 다들 일방적이라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전부 뭉쳐서 돌아간다는 것이죠. 이런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은 "누가 뭐래도 나는 멀쩡하다" 라고 하는, 이런 기본적인 자세를 다들 지니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래, 잘 먹고 잘살아라. 소박하나마 나는 이 돈을 가지고 살 거야" 라고 나온다면,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아무리 돈이 없고, 힘이 없고, 남들이 나를 실패자라고 할지라도, 나는 나를 절대로 그런 식으로 패배자로 보지 않아" 라는 것인데, 이것이 4글자로 '자기 연민' 이라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내가 나를 챙겨주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누가 나를 챙겨주겠어?" 라는 겁니다. 남자들 술을 먹으면서 하는 소리가 바로 이 소리인데,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것은 자기가 멀쩡하다고, 즉 "나는 옳다. 나는 정당하다" 라고 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천국에 대해서는, "아이고, 죽어보면 있는지 없는지 그때 가서 확인하면 되지, 미리 알 것이 뭐가 있어?" 라고 하는데, 하지만 예수님은 미리 "천국은 이렇다" 라고 하셨는데, 즉 여기 와버렸다는 말이죠. 그렇게 분류를 해버렸는데, 한 쪽은 충성된 종, 다른 한 쪽은 악한 종이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제가 설명해드렸고 말이죠.
그러면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이 충성된 자가 스스로 충성된 자라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선합니까? 악합니까? 악하지 않습니까? 주님이 충성되었다고 이야기한 그 자가, 자기 스스로 "나는 충성된 자가 맞다" 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어떠하냐는 겁니다. 그 사람은 악하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충성되다' 라는 것은, 있는 분이 우리를 그렇게 규정을 해줘야 하는데, 우리 자신은 소모용이라는 겁니다. 없어질 인간인데, 그런데 "나는 어떻다" 라고, 이것을 집어넣으면, 그 충성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가 계속 살아있어야 한다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말이죠.
* 나는 예쁜데, 그런데 !!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맨해튼에 가면 세계에서 제일 비싼 아파트가 있다는 겁니다. 중앙파크에 있는 그 빌딩이 세계에서 제일 비싼 아파트라는 말이죠. 그 아파트에서 나이 50이 된 어떤 전직 모델이 그만 자살을 했는데, 자살을 한 이유가 뭐냐 하면, 자기가 옛날처럼 예쁘지 않기 때문에 자살을 했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잘 기억해야하는 것은, '예쁘다' 라고 할 때 그 앞에 무엇이 붙지요? 누가 예쁘지요? "내가 예쁘다" 라는 겁니다. 남들이 예쁘다고 하면 그래도 괜찮은데, 그런데 문제는 남들이 예쁘다고 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남들이 뭐라고 하니까, 그만 "내가 예쁘다" 라고 되어버린다는 말이죠.
이것은 어느 단계냐 하면, 예수님의 말씀이 없이 인간들끼리 살 때는 이게 가능하다는 겁니다. 자기가 예쁜 것이 아니고, 여기 있는 빨강, 파랑, 이런 사람들이 자기를 예쁘다고 했는데, 그러면 예쁘다는 말이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인기가 없다는 겁니다. 자기가 분명히 예쁜데, 그런데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러면 남들이 보기에 "예쁘지 않다" 라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한때 예뻤는데, 그런데 예쁘지 않을 때는 자기가 있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죠. 즉" 예쁘지 않은 나는 내가 용서할 수 없다" 라는 겁니다. 그래도 그 여자는 제법 살만한데, 여기서 무엇을 선택했느냐 하면, 자살을 택했다는 말이죠. 이 말은 곧 뭐냐 하면, 남들이 주는 평가가 곧 자기가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평가가 자기를 좋게 했다고 여긴다는 것이죠.
* 믿음이란, 내가 믿지 않는 것 !!
제가 다시 묻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인데, 주인이 "충성된 종아!" 라고 했을 때, 그 앞에 무엇을 붙이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는데, 즉 "내가 충성되다"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응용문제에 들어갑니다. "나는 믿는다" 라고 하면, 이게 신자입니까? 아닙니까? 아니라는 말이죠.
왜냐하면 '믿는다' 라는 말을 그 앞에 붙이면 안 된다는 겁니다. 자기는 어디까지나 소모용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나는 믿지 않는다" 라는 것을 두고 '믿음'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기존 교회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믿는다' 라고 하지 않고, "믿씁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할 때 누가 잘났지요? 믿는 자기가 잘났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존교회에서 믿는 이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자기 자신을 너무 믿기 때문인데, 즉 자기 자신이 그 교회에서 승리자가 되기 때문에, 아까워서도 소모를 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도저히 자기를 말살을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10억을 빨리 허비해야 하는데, 자기 인생이 너무 찬란하고 너무 멋있어서 소모가 안 된다는 말이죠. 목숨을 걸고 지키고 싶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신병인데, 왜 그게 정신병인고 하면, 이 빨강인 자기가 아무리 지켜도, 옆에 있는 노랑, 즉 항상 자기보다 앞서가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죠. 100평짜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있으면, 옆에는 150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겁니다.
자기는 그랜저를 몰고 왔는데 벤츠를 몰고 온 사람이 있다는 말이죠. 자기는 재산이 40억이 되는데, 동창생이 60억을 가지고 나타났다는 겁니다. 자기는 백억 자산가인데, 동창생이 천억짜리 재벌이 되어서 왔다는 말이죠. 그렇게 자기가 자기를 지키려 하니,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와서 무슨 소리를 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도로 줘버린다는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 것은 따로 놀고, 자기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즉 "나는 내가 잘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 성도 = 말씀의 운동장 !!
이제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인데, 그렇다면 성도는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죠. 성도를 다음과 같이 보면 되는데, 이게 진짜 어려운데 말이죠. "성도 = 말씀의 운동장" 이라고 보시면 된다는 겁니다. 또는 말씀의 통, 믹서기, 그렇게 보시면 된다는 말이죠.
성도는 껍데기인데, 안에 말씀이 들어있다는 겁니다. 그게 성도라는 말이죠. 그러면 이 말씀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느냐 하면, 충성된 자도 있다는 겁니다. 물론 그 앞에 '나'를 붙이면 안 된다는 말이죠. 다만 주께서 일방적으로 충성된 자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악한 자도 있다는 말이죠.
* 성도에게는, 두 가지 요소가 다 들어있어 !!
그러니 성도라고 하는 것은, 이 두 가지 요소가 다 들어있겠습니까? 아니면 악한 요소는 없고 충성된 요소만 들어있겠습니까? 어느 쪽입니까? 당연히 둘 다 들어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정답인데, 성도는 온전하지가 않다는 말이죠. 성도는 천사가 아니라는 것이죠. 성도는 자기 자신이 그 얼마나 허접하고, 얼마나 믿음이 없고, 얼마나 돈밖에 모르는지, 그것을 잘 아는 자라는 겁니다.
물론 성도가 아닌 사람은 감추는데, 성도는 그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죠. 절대로 자기 힘으로 구원이 안 된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느낀다는 겁니다. 주님께서 아무리 소모하라고 해도, "나는 내 것을 따로 챙기고 싶습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주님, 이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제가 투자했잖아요? 아이 4명을 제가 키웠습니다"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니 성도라고 해도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완전해진다는 것은 교만이고, 성도라는 것은 지기가 완전할 수 없음을 미리 앞당겨서 아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자기가 죽는 것은 자기의 죄 값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게 너무나 당연한 조치임을 안다는 말이죠.
* 성도는, 말씀의 운반체 !!
충성된 자과 악한 자, 이게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말씀인데, 이 말씀이 들어있다고 하면, 그렇다면 말씀의 완성이 과연 무엇일까요? 말씀의 완성이 곧 예수님의 십자가인데, 자기가 죽어야 되는데 누가 죽었다는 겁니까? 예수님이 대신 죽음으로 말미암아서, 예수님이 성공하신 결과가 성도라는 빈깡통 속에 들어옴으로서, 성도는 그 말씀의 운반체가 된다는 겁니다.
주님의 말씀의 운반하다가 보니까 어디에 간다는 겁니까? 천국에 간다는 말이죠. 못났는데, 악한 일과 선한 일이 다 들었는데, 그렇개 다 들어있음의 완성이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었다는 사실과,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만나서 함께 간다는 말이죠.
그러면 성도의 삶이란 것은, 하루를 살고 일 년을 더 살면 죄가 늘어날까요? 줄어들까요? 죄가 늘어나는데, 그것은 죄를 더 지었단 말이 아니고, 몰랐던 죄가 발견이 된다는 겁니다. 기도하는 것도 죄고, 헌금하는 것도 죄고, 이렇게 강의를 하는 것도 죄가 된다는 말이죠.
아까 빨강, 파랑 노랑, 이 세 명이 모두 다 성도라고 하면, 그러면 그들이 서로 무엇을 내놓겠습니까? "나는 못난이입니다. 나는 잘난 것이 없습니다" 라고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잘난 것이 없으면 누구만을 자랑하겠습니까? 못난 자를 못났다고 알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인데, 그 성령님은 예수님이 대신 죽었다는 것을 앞장세우신다는 말이죠.
* 두 강도 !!
진짜 끝으로 이 말씀만 드리겠는데, 예수님이 죽으실 때 십자가가 몇 개 있습니까? 세 개가 있었는데, 한 쪽 강도는 자기를 지키고 싶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동안 예수가 구원자라고 하면서 유명했다는 말이죠. 이 강도가 뭐라고 합니까? "당신이 능력이 있거든, 그래서 나를 당장 이 죽는데서 빼내주면 믿지 말라고 해도 믿어줄게"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이 강도의 말이 굉장히 이성적인데,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너무나 익숙한, 우리의 마음속 바탕에서 뿜어져 나오는 우리의 욕구라는 말이죠.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두 종류의 강도를 자기 양쪽 옆에 두셨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에 나에게 유리하도록 작용해주면 하면 믿지 말라고 해도 믿을게. 자진해서 헌금을 할게. 자진해서 새벽기도에 나올게" 라고, 즉 "당신이 먼저 나에게 해주면,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겠다" 라는 것이죠. 일종의 사업거래를 하듯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른 한 쪽의 강도는 말하기를, "내가 강도된 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자기는 지킬만한 가치가 없는 소모용이라는 말이죠.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한국에 있는 조카가 10억짜리 재산을 무사히 다 소모를 했다는 겁니다.
이런 발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정말로 찾기가 힘든데, "내 인생은 지키기 위함이 아니고 소모하기 위함이다" 라고 말이죠. 소모하고 결국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안다는 겁니다. 그렇게 소모하면서, 어느 정도로 자기가 악한지, 어느 정도로 자기 중심적인지, 남들을 무시하고 철저하게 자기밖에 모르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처절하게 절감하는 기간, 그게 바로 자기 인생이라는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칼을 들고 설쳐서 강도가 될 필요는 없는데, 그냥 곱게 살아도 자기 중심이라는 겁니다. 강도는 둘 다 자기 중심인데, 그러니 여러분도 여기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마세요. 다른 인생을 찾지 말라는 것이죠. 도를 닦을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겁니다.
교회에 다니나 다니지 않으나, 하나님을 믿나 믿지 않으나, 인간은 모두가 다 '나' 중심이라는 겁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쪽은 그것을 안다는 것이고, 다른 한 쪽은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말이죠. 아는 사람은 무엇을 받았다는 겁니까?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모르고 있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성령이고 뭐고 항상 옆 사람만 쳐다보고 살아가기 때문에, "누구야? 나를 지적할 사람이 없지? 나는 옆 사람을 보고 버틸 거야"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이것이 지옥에 가는 사람이란 말이죠 하나님께서 분류를 하시는데, 죽어서 분류하는 게 아니라, 살아있을 때 이미 분류를 해버리신다는 것이죠.
그러니 "죽어서 천국에 간다. 가봐야 알지"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살아있을 때 난데없이 멀쩡한 인생을 가지고, "네가 보기에는 잘나 보이지만 주님이 보시기에는 더럽다. - 그것을 당신이 어떻게 알아? - 다른 사람을 보고는 몰랐는데,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대신 희생한 것을 보면서, 나의 죄 때문에 그분이 피 흘려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라고 한다는 겁니다.
바로 그런 연관성을 가질 때, 그 연결성을 가지게 하는 것이 성령이라는 말이죠, 그 십자가와 자기가 연결성을 가질 때, 비록 자기가 돈이 좀 있어도 그 사람은 무엇만 자랑하느냐 하면,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할 뿐이라는 겁니다. 그게 성도이고 충성된 자라는 말이죠. 주님이 보시기에 그 사람은 십자가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니까, 충성되었다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짧은 시간이지만 예수님의 개입을, 일찍 오신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죽어서 만날 수도 있는데 일찍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피를 흘려주시고, "걱정하지 말라. 다 이루었다" 라고 해주신 그 뜻과 그 의미를 우리가 모르지 않고, 눈치를 채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20,10,10 재정리함 - 녹취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