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설교 / 야곱의 변화 / 200913
야곱의 변화 200913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하나님께서 야곱과 에서 이야기를 주신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야곱과 에서 이건 한 명이 아니고 두 명입니다. 두 명이 있다는 것은 둘 다가 하나로 통합이 되지 아니 하면 각자 각자의 가는 길이 운명이 따로 있다는 뜻이에요. 둘이 하나가 되든지 안 그러면 둘이 하나가 안 될 경우가 되게 되면 가는 길이 서로 달라지는 거예요. 그리고 가는 길이 다르다 하는 것은 어떻게 아느냐? 둘이 서로 싸우게 되게 되면 가는 길이 달라요. 둘이 서로 싸우게 되면.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둘이 쌍둥이이기 때문에 마치 하나인 것처럼 생각되겠지만 쌍둥이이기 때문에 둘이 형제이기 때문에 같은 형제니까 하나이겠지 생각하겠지만 하나님은 기어이 형제를 통해서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하나의 계시로서 이야기해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자신은 우리 자신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거예요. 각자 가는 길이 다르다 이 말이에요. 야곱의 가는 길과 에서의 가는 길, 둘이 다 알고 있었느냐? 둘 다 자기의 가는 길이 어딘지를 몰랐어요.
사람이 자기의 먼 미래까지 모를 때는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면 자신의 육신의 욕심대로 그 감정에 맡기면서 살게 되어있습니다. 그 감정이라는 게 뭐냐 하면 ‘내가 너한테는 안 진다’ 이런 것, 너한테는 안 진다. 상대가 없으면 그런 생각이 안 들 텐데 꼭 상대가 있으면 나는 너한테는 안 진다예요.
나중에 결혼해서 애를 하나 낳게 되면 걔는 천사 같아요. 천사 같은데, 애 하나 낳았는데 연달아 밑에 동생이 둘 생겼다, 그러면 언니는 자기 밑에 있는 여동생을 베개로 패든지 엄마 아빠 없을 때 막 쥐어박든지 하는 그런 일이 벌어져요. 그게 Tv 상담하는데 그게 나온다고. 애를 동생 패고 질투해서 팬다 말이죠.
자기한테 몽땅 다 오리라고 생각했던 아빠 엄마의 관심이 분산 되니까 빠진 분산 된 부분에 대해서 자기가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참을 수가 없는 거예요. 사랑 받아야 될 내가 빼앗긴 그런 기분이 드는 거예요. 빼앗겼으니까 어떻습니까? 찾아와야지요. 침팬지가 자기 영역 싸움해가지고 다른 침팬지를 공격하듯이 인간은 인간들도 자기 영역에 침범자가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 마음의 내부에 경고등이 막 켜진 거예요. 삐융삐융 적들이 쳐들어왔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본성적으로 막 나오게 되어있지요. 특히 남자들은 술 먹고 그런 짓들을 많이 해요. 온 거리가 지 거리인 줄 알고 괜히 지나가는 등치 큰 사람 남자는 빼놓고 등치 작은 여자만 골라가지고 시비 걸고 하는 이유가 여기는 내 구역이라는 말이에요. 그처럼 인간은 야곱이나 에서나 서로 자기 영역 싸움에 치열하게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이미 어드밴티지가 있어요. 맏이에 있어서는. 뭐냐 하면 이미 나는 먼저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모든 재산을 내게 주게 되어있다.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어떤 재벌이 있는데 그 재벌이 자식을 아들 둘을 낳아놨는데 당연히 맏이는 모든 아버지의 막대한 수 조원의 재산이 나한테 올 것이라고 지는 당연히 생각한 거예요. 그러면 동생은 “아빠, 나는 요?” “니는 형이나 따르고 형 밑에서 기획실장이나 해서 월급이나 받아먹어라.” 이렇게 되니까 동생은 참지 못 한 거예요. 저 형만 죽으면 나는 이 재산을 내가 차지할 수 있다. 이렇게 되잖아요. 저 형만 죽이면. 그래서 교통사고로 위장해가지고 형 차 박고 자기가 “형이 죽었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식으로 하는 것처럼 야곱에게는 공격 성향이 있었던 겁니다.
형을 그냥 가진 걸 뺏는 정도가 아니고 제발 니 좀 내 앞에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형제간에 어릴 때는 사이좋게 지내는 사이가 아니고 니 같이 이 가정에 보탬이 안 되는 니는 우리 집안을 위해서 장렬하게 죽을 용의가 없나? 이런 식으로 맨날 기도 제목이 그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형으로 하여금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자기가 일방적으로 형하고 자기하고 약조를 맺은 겁니다. 이 약조는 무효입니다. 아무 소용도 없어요. 형은 알고 있지요. “형, 배고프지?” 배고플 때 되어가지고 형이 제일 좋아하는 단팥죽을 끓여온 거예요. 자기는 배고파 죽는 거예요. 그래서 형한테 팥죽을 일부러 끓여요. 냄새를 피우는 거예요. “야, 뭘 끓이냐?” “팥죽” “팥죽 나 주면 안 되느냐?” “주는데 조건이 있다.” “뭐냐?” “앞으로 형이 갖고 있는 아버지의 축복권을 나한테 양도하면 내 이 팥죽 줄게. 이제 형이 맏이가 아니고 내가 맏이 되면 어떻겠느냐?” 할 때 형이 “그거 우리끼리 이야기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야.” 하다가 제일 중요한 것은 팥죽이 중요하지 실없는 소리가 안 중요하거든요. “철딱서니 없는 동생, 그래. 니 형 해라.” 해놓고 먹고 난 뒤에는 아무 일 없다 하면 되지요.
그래서 둘 사이에는 팥죽 준 게 아무것도 아니고 다만 하나님 보시기에 에서는 팥죽을 통해서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축복권이라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인간이라 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 들통 났어요. 팥죽이 그게 뭔데, 천국 가는 것보다 중요한 거예요. 형한테는.
그래서 아버지가 마지막 임종할 때 하필이면 임종할 때 눈이 어둡네. 눈 뜨고 정신 바짝 차려가지고 돋보기 갖다놓고 아들 맞나? 이렇게 하면 되는데 눈이 가버렸네. 그 시기에. 아버지 이삭 입장에서는 자신이 있었지요. 왜냐하면 자기는 맏이를 밀어주려고 했고 맏이를 알지요. 털이 많다. 목소리도 내가 구분한다. 그리고 사냥한 고기를 좋아한다. 이런 걸 알아서 축복 주려고 이야기를 했어요. “내가 너한테 유산을 남길게. 조건이 있다.” 조건은 뭐냐? 형한테 유리한 조건이에요. 사냥 고기를 제일 먼저 선착순으로 가져온 사람에게 축복을 주겠다. 동생은 사냥 안 좋아했어요. 사냥 기술도 모르고 맨날 집에 있는 걸 좋아하고 고상하게 책 읽는 것을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형은 밖에 나가서 싸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가지고 사냥 고기는 전문이에요. 그런데 털이 많고 하니까 아버지가 실수할 일이 없다고 해서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동생이 아버지는 눈이 어둡고 자기는 변장해가지고 손에 털을 해놓고 목소리도 약간 고치고 고기는 누가 했느냐? 같은 한 조가 된 엄마가 사냥고기를 준비해가지고 나이가 많아서 맛도 갔어. 사냥 고기인지 아닌지 등심인지 안심인지 구분도 안 돼. 준비해가지고 엄마가 좋아하는 아들을 싹 들이밀었어요. 밀어가지고 “아버지의 재산을 다 받아라.”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냥 나눠주면 되지 않겠나 하겠는데 그 당시에는 나누어주는 게 아니고 맏이가 최고예요. 맏이가 최고고. 동생은 그 맏이 집에 하나의 신입사원 되는 거예요. 맏이가 농장을 하게 되면 동생들은 일꾼이 되는 거지요. 둘째든 셋째든 넷째 있고 만약 맏이가 자식을 못 낳으면 그 때는 남자 씨받이로 들어가는 거예요. 하여튼 둘째 셋째는 의미 없어요. 하여튼 첫째가 최고예요. 첫째 맏이에게 모든 걸 다 밀어주는 거예요. 그래야 맏아들 형상, 하나님께서는 2가 아니고 1이라는 거예요. 1에게 다 쏟아주는 거예요. 왜? 축복은 축복대로 해야 나머지는 저주가 발생되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다 주게 했을 때 동생이 모든 걸 차지했습니다. 뒤 늦게 와가지고 형이 헐떡헐떡 사냥 한다고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숨을 헐떡거리면서 “아버지. 제가 왔습니다.” “끝났다. 이미 계약 끝났다고. 니 동생이 다 가져갔다.” “아버지. 저한테 줄 것은 없습니까?” “있다.” “뭐?” “이제부터 동생이 시키는 대로 살아라. 나는 알았다. 이건 하나님의 축복은 내 마음대로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고 싶은 자에게 준다는 사실을 나는 이렇게 너희에게 속아 넘어감으로서 하나님이 이 자리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내가 인정하게 되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방향 틀기를 하는 거예요. 지옥에서 천국으로 지옥으로 천국으로. 우리 집안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천국 갈 사람과 지옥 갈 사람을 구분하는 그 일에 직접 하나님이 개입하신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러나 여전히 야곱은 야곱 이름 그대로 야곱 이름밖에 없어요. 자기 욕망밖에 없어요. 욕망밖에 없는데 꿈에 잠을 자는데 너풀너풀 천사들이 와가지고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자기를 향하여 올라갔다가 또 자기를 통해서 올라갔다가 자기한테 뭘 건질 게 있다고 뭐가 바빠서 분주하게 있더란 말이죠.
야곱은 처음에 몰랐지요. 나중에 천사가 자기와 동행하면서 천사가 모시고 오신 분이 있어요. 그 분이 바로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 장면이에요. 오늘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얍복강가에서 만나게 되지요. 하나님을 만나가지고 모든 자식들을 두고서 밤중에 낯선 천사와 씨름을 합니다.
여기서 야곱은 밀리지 않으려고 하고 천사는 야곱을 바꾸려고 하고 야곱의 인간성을 바꾸려고 하고 바꾸려면 인간성이 다 드러나도록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천사 입장에서는 야곱의 인간성이 얼마나 독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계속 천사는 시간을 끄는 거예요. 나중에 나는 너를 축복하려고 온 천사야.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너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이야. 라는 언급을 하게 함으로서 그동안 야곱이 낯선 사람에게 하는 그 짓거리가 복 받을 만한 일이 아닌 것을 다 노출시키고 천사는 그냥 떠나려고 했어요.
여기서 야곱은 이스라엘로 바뀌면서 새로운 복된 사람으로 바뀌면서 무엇을 인정하느냐 하면 나는 타고난 죄인입니다, 나는 날 때부터 나쁜 짓한 게 아니고 날 때부터 죄 짓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런 자를 복 주셨으니까 그 복 주신 분을 인정하겠습니다. 받겠습니다. 하고 계속 붙들고 “주시고자 하는 복 주시옵소서.” 하고 붙드는 거예요.
그래서 천사가 야곱을 다른 인간으로 바꿉니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해서 그 인간성 그 몸 그대로 있지만 이름은 이스라엘로 바뀜으로서 이제는 야곱으로서 야곱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장차오실 예수님으로서 야곱을 다스리게 되는 새로운 관계를 맺고 천사는 떠나지요.
바로 이 모습이 십자가에서 오신 주님께서 십자가 피를 흘림으로서 이 피는 니가 얼마나 독하게 니밖에 모르느냐를 알려주는 그 사건, 하나님이 사람에게 매 맞아 죽는 그 사건을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서 나는 하나님을, 나를 너무 사랑하기에 하나님을 저토록 대우했다는 죄인이라는 것을 느끼게 만들면서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그래서 새사람으로 구원되게 하는 그 작업을 야곱을 통해서 미리 보여준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일찍 오신 주님께서 야곱에게 찾아왔듯이 저희들에게 찾아오셔서 십자가가 우리 운명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깨닫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