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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3장 10절 (죄의 회수) 200720b-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3장 10절 (죄의 회수) 200720b-이근호 목사

첫 시간에 이어서 계속 하겠습니다. 세례 요한은 눈에 보이니까 그 말을 눈에 보이는 사람이 말하니까 믿을려고 애를 쓰지요. 그건 매개는 아닙니다. 온전한 매개는 아니고 세례 요한도 헛갈리는 거에요. 그러나 자기 할 일은 자기가 할 일은 다하지요.

그러면 세례 요한이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면 그러면 그다음에 메시아를 믿으면 되지 않느냐. 세례 요한 뒤에 오시는 예수님도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어떻게 믿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도 예수님을 못 믿어요. 세례 요한 보는 믿음 가지고는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어요.

왜 그러냐 하면은 예수님은 뭐냐 하면은 본인들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결정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믿음을 줘야 믿게 되는 분으로서 메시아가 오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세례 요한도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했잖아요. 참 이게 이상하지요.

분명히 자기가 하나님께 계시 받고 다 하고 예수님 세례 줬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에 일어날 성령과 불로서 세례 준다하는 그것을 세례 요한이 생각해보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든요. 아무 일도. 뭐 하늘에서 불도 안 떨어지고. 그럼 자기가 하는 말이 전부다 거짓말 되버리는 거에요. 꼭 요나 선지자 비슷하게. 이래가지고 의견 안 맞아서 일 못하겠습니다. 정말. 저만 쪼다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식으로 불평을 할만하단 말이죠.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고.

그것은 뭐냐 하면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믿는 방식으로서는 메시아는 그거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믿게끔 해줄 때만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이게 어떻게 되느냐 하면은 그래야 내가 믿는 예수가 아니고 ‘예수님께 소속된 나’라는 것이 등장하기 때문에.

내가 믿는 나의 신앙이 안되고 그러면 내가 믿는 나의 신앙이 되어 버리면 이게 소속이 내 신앙 소속이 내게 속하거든요. 이것은 바로 버릴 카드에요. 주님이 믿게 하는 신앙, 주님이 믿게 하는 신앙은 내가 믿는 신앙을 가차 없이 버려도 상관없는 신앙을 주시는 겁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누가 되느냐 하면은 이 사람이 바로 오늘날 세례 요한이죠. 모든 성도는 세례 요한을 능가하는 선지자가 돼요. 그래서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아이가 세례 요한보다 더 위대하다 이 말이에요. 주님에 의해서 믿는 성도죠.

이 성도의 특징이 뭐냐 하면 부재하기 때문에 믿는다는 거에요. 안 계시기 때문에 믿는 거에요. 안 계시기 때문에. 왜냐하면 계신다면 기존의 나로 인하여 얼마든지 믿을 수 있거든요. 그때 병 고쳐줬었잖아요. 어떻게 사랑을 베풀고 이렇게 되는데 그거 없이 나보다 주님 먼저 아시지 않습니까.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니까 그것은 제가 주님을 사랑하기 이전에 먼저 주님이 저를 사랑했잖아요. 아시면서 자꾸 부끄럽게 만들려고 하십니까 이러는데 원래 주님 주시는 신앙이 가동될 때마다 우리가 굉장히 미안해요. 여러분 미안하다는 말은 믿음이 있다는 뜻이에요.

악을 쓰고 복 달라고 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거고 살면 살수록 이런 짓까지 해도 된단 말인가. 되게 미안한 거 있죠. 되게 미안한 거 있죠. 서울 사투리. 진짜 너무하다 할 정도로 미안한 거 있죠. 너무하다. 아 이렇게까지 안하셔도 되잖아요 주님이여 이런 거.

이번에 책 나온 이름이 ‘역사검열’. 역사검열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와요. 어떤 사람이 주님한테 주님, 임금이시여 나에게 귤을 주옵소서. 하니까 임금이 이놈! 무엄하도다. 여봐라! 당장 이놈에게 과자를 주고 사과 열 개를 더하라! 그게 벌이다.

귤 달라고 하는데 우리 달라는 것을 일체 안주고 우리가 기대하지 않은 엄청난 것을 주시는 거에요. 그게 뭐냐? 죄 용서거든요. 심적 부담을 덜어주는. 우리 죄 용서를 해버리니까 아 이런 것 까지는 염치없어 안 받을려고 했는데 안 받고싶은걸 더 주시는 거에요.

그게 바로 이 땅에서 주님 때문에 목 베인 영혼들이 목 베여놓고 뭐 좋다고 합니까 목 베였는데. 목 베어놓고 좋다고 주님한테 나오는 요한계시록의 그 장면입니다. 자기는 목 베였는데 귀한 목숨 잃어도 상관없다는 거에요. 주께서 내 목숨보다 더 엄청난 것을 주었기 때문에 이미 받아놓고 내 목 치는 것 이거는 남는 장사지요. 손해 보는게 아니지요. 남는 장사지요.

그래서 이 과정에서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주님을 알아보는 사람 아무도 없게 했습니다. 아무도 없게 했어요. 아무도 주님을 알아보는 사람 없게 했습니다. 그리고 주의 영을 보냄으로 말미암아 정말 주님을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주님의 멋진 전략이라는 사실. 아 진짜 주님의 오묘한 지혜를 이 세상 어떤 피조물이 이걸 눈치 챘을까. 아무도 몰랐지요.

그게 로마서 11장에 나옵니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 오묘한 이야기. “모든 것이 주로부터 와서 주로 말미암아 주께로 간다”. 게임 끝났어요. 게임 끝났어. 뭐 다른 사람한테 설명을 해도 설명 할 길이 없네.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해요. 이거 어떻게 설명합니까.

한우 맛이 한우 맛이 맛있다는 것을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요. 맛있는 것을 맛있다고 하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합니까? 설명할 길이 없네. 평생을 두고도 설명할 길이 없어요. 그래서 그냥 설명 안하고 그냥 선포할 뿐이죠. 선포할 뿐.

네가 믿는 것은 네가 스스로 조작해서 네가 네 구원받고 싶어 환장해서 네 정신 상태를 조작했잖아. 이렇게 나오면 그래! 나 그랬어. 그런데 너와 나의 차이점은 너는 모든 신앙은 인간이 조작한 그것밖에 모르지? 나는 조작한 것도 알고 조작이 아닌 것도 알아. 너는 그 차이를 몰라.

로마서 11장 33절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아무도 그 지혜를 훔쳐서 미리 사전에 빼내심을 받겠느냐”. 아무도 없는 거에요. 인간의 그 지혜가 인간의 자기 구원을 막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내가 훼방해요 내가. 나를 향한 주님의 그 열심과 사랑을 내가 짜증을 내고 내가 발악을 한다고요. 내가 원한 것을 달라고 내가 원치 않는 것을 주지마시고 이런 식이에요.

그래서 믿는 사람에게 성도에게 있어서의 메시아는 없습니다. 구원자는 없어요. 다만 인간들이 구원받기 위해서 자기 천당 갈라고 하는 그런 예수밖에 없어요. 나에게 죄로 물든 나에게 없는 분이 나를 구원했기 때문에 그분이 찾아온 순간 이제부터는 주님이 생겨버리고 내가 없어져버린 거에요. 내가 없어져요.

그래서 ‘있는’ 내가 발견하는 메시아는 없고, ‘없는’ 내가 믿는 메시아는 있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으세요. 오늘 본문에 나온 세례 요한 이 사람에게 구원받을려고 나온 사람들 백날 세례 요한한테 나와 봐야 그들은 세례 요한에서 발걸음을 멈춰야 됩니다. 세례 요한에서 발걸음을 멈춰야 돼요. 그것이 구약의 끝이에요. 구약은 거기까지, 세례 요한까지입니다. 더 이상 못나가요.

세례 요한 비켜봐라. 뒤에 누군데? 누군데? 한번 보자. 어떻게 생긴 분인데? 세례 요한도 글쎄 저분이 맞는지 나도 모르겠어. 세례 요한도 본인도 본인이 확신이 없어. “오실 분이 당신 맞습니까?” 왜 세례 요한이 그렇게 예수님한테 의문점이 발생한 이유는 세례 요한이 갖고 있던 율법의 연속성 실선 점선 연속성이 세례 요한에게는 율법의 단절이 없었어요.

아 이거는 수련회 때 해야하는건데 또 아껴 놓을라고 했는데. 세례 요한과 메시아 사이는 매끄럽게 연결됐다고 생각했지요. 이게 중간에 끊어졌다는 것을 생각을 못한 거에요.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보내시면서 세례 요한의 사고방식의 점선으로 연결됐다는 이 대목을 반대로 바꿉니다.

어떻게 바꾸느냐 하면은 귀머거리가 듣게 되면 소경을 눈을 뜨면 절름발이가 걷게 되면 충격적인 것은 죽은 자가 살아나겠지요. 그러면 이 죽은 자, 귀머거리 다 공통점이 저주입니다. 그러면 예를 들면 죽은 자, 죽은 자에게서 이미 죽었기 때문에 여기서 믿음 소망 사랑은 가치 있습니까? 가치 없습니까?

죽은 자의 소망은 죽은 소망이고 죽은 자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죽은 자의 사랑은 죽은 사랑이기 때문에 가치가 없어요. 더 놀라운 사실은 죽은 자가 그냥 죽어 있잖아요. 죽어 있는데 배시시 한 눈 뜨고 주님이 지금 나 구원하러 오는 거 아닌가? 배시시 볼 수 있는 실눈을 뜰수 있습니까? 못 뜹니까? 실눈을 못 뜨지요. 그래야 죽은 자니까. 반 죽은게 아니에요.

좀비는 이렇게 대들기나 하지. 좀비가 아니고 좀비도 완전 죽었어요. 그 죽은 자라는 것을 확인하고 난 뒤에 주님은 어떻게 한다? 그 사람에게 “죽은 자여 일어나라”고 언급을 하면서 “네가 어둠가운데 빛 가운데 일어나라” 에베소서 5장 말씀처럼 일으켜 세운단 말이죠.

그러니까 살아난 사람은 첫 소감이 얼떨떨한 거에요. 오늘 제목은 ‘얼떨떨’이다. 제목 ‘얼떨떨’ 너무 심한 부사인데. 어떨떨한 거에요. 세례 요한은 마스터 키를 안 갖고 있습니다. 마스터 키는 주님이 쥐고 있어요. 마스터 키는 모든 인간을 살리는 게 아닙니다. 내가 살려낼 자와 살려내지 않을 자를 가려내는 거에요.

만약에 예수님한테 새치가 있다면 자기 새치와 똑닮은 새치가 있는 자만 뽑아내는 거에요. 모발모발. 예수님과 동일한 DNA. 예수님이 자기와 똑닮은 사람을 끄집어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에 데려갈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천국의 원리는 하나님이 아버지로 계시기 때문에 아들이 아니면 천국에 못갑니다.

아들의 원형은 아들의 모델은 이 세상에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되지 아니하면 어느 누구도 아들이라고 할 수 없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지난 낮설교 때 했잖아요. 로마서 8장에 보면 “이제는 종이 아니고 내 성령을 받음으로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물론 양자입니다. ‘양자’에요.

그래서 이런 모든 이렇게 이미 죽은 자에게 일방적으로 건지심으로써 구원받고자하는 모든 인간은 그 구원이 좌절되고 실패로 끝나게 만들어요. 만들고 그 가운데서 주께서 너!너!너!너! 하고 찝은 사람은 창세전에 예정된 사람은 뽑혀 나오는데 뽑혀 나온 사람은 얼떨떨한 거에요. 자꾸 제목이 이쪽으로 가요. 얼떨떨하게 되어버린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뭘 하느냐? 예수님의 증인되는 거에요. 스데반처럼 돌에 맞아죽어도 그거 신경도 쓰지 않아요. 그 돌 맞아도 괜찮아요. 주님으로부터 구원됐기 때문에. 자, 아까 제가 모든 구원받고자 하는 사람 어디서 멈춘다고 했습니까? 세례 요한에서 멈추지요. 그럼 여기 단절, 간격이 있어요. 메시아하고 예수님하고 세례 요한하고 간격이 딱 있어가지고 여기서 stop 이 돼야 됩니다. 여기까지는 구약이죠.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가 세례 요한이니까.

구약 율법대로 그냥 갈 수가 없어요.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율법을 없애버립니다. 왜 없애냐? 이미 건너올 사람한테는 율법이 필요하지만 건너온 사람한테는 다리를 차버려. 발길로 차가지고 이미 건너왔기 때문에 율법을, 필요로 한 게 없어요. 필요치가 않는 거에요. 율법을.

그래서 히브리서에 보면 10장에 보면 뭡니까? 옛것과 새것을 이야기하고 옛것을 치워버리죠. 율법을 치운다는 말을 법조항을 치운다는 것이 아니고 나를 치운다는 것이에요. 나를. 우리를 배설물로 여긴다 이 말이죠. 세상과 친했던 나를 자기를 부인하게 만들고요.

그렇다면 실제적으로 세상 사람에게 보여지는 성도는 뭐냐 하면은 버려지는 겁니다. 버려지는 나. 내가 버려지기 위해서 살아가는 내 모습이 그들에게 보이지요. 그러니까 상당히 이상하게 보이지요. 사실은 세상을 초월했지만.

이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먼저 시범을 보이는데 예수님은 어떻게든 죽을려고 애를 썼어요. 예수님의 생애가. 어떻게 하든 죽을려고. 마지막 겟세마네 기도에서는 뭡니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한다는 말은 죽을 타이밍에서 제가 그냥 아버지에 의한 죽음을 죽게 하옵소서. 그게 율법을 이루는 유일한 방식. 다른 길은 없으니까. 다른 길은 없어요. 다른 길은 없다.

다른 길은 없다 이 한마디에 여러분 목숨 걸어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실제적으로 이게 바로 실재이기 때문에. 다른 길은 없어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나 사도들이 설교할 때 한번 들어보세요. 딱 이 이야기해요. 다른 소리 안해요. 죽었다가 부활했다. 이게 역사 속에 있는 유일한 다른 길은 없다의 실제적인 증거가 된다 이 말입니다. 실제적인 증거. 죽어도 부활한다. 죽었다. 율법대로 죽었다 율법대로 산다.

그래서 여기서 예수님 죽을 때 그걸 뭐냐 하면은 율법대로 했다는 말. 율법 또는 실재. 이 세상 인간이 우선이 아니라 율법이 우선이에요. 모든 것은 말씀대로 되어가는 겁니다. 오늘 하루하루 모든 일이. 그래서 우리가 뭘 해야 됩니까 말 하지마세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이 갔던 사도행전이 나오는 사도 바울이 갔던 그 길을 한번 보세요. 전부다 그 길이 뭐냐? 자꾸 사태가 일어나요. 자꾸 무슨 사태가 일어나요. 그 사태가 일어날 때에 번번히 사람들은 속고 있습니다. 당신이 했지? 사도 당신이 했지! 사도는 실재로 이야기합니다.

내가 안했어. 너희들 보기에는 실제는 내가 한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내가 한 것이 아니야. 이거는 보이지 않는 주께서 그 사람에게 믿음 줘서 한 거야. 저 사람 구원받는 거 내가 설교해서 구원받는 거 아니야. 보이지 않는 주님께서 저 사람에게 믿음을 선물로 줬기 때문에 이 말씀과 화합이 된 거다. 연결됐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래서 어누 누구도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보내심을 입었기 때문에 외치고 외쳤다고 다 구원되는 게 아니에요.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울이 설교할 때 인간의 힘으로 했겠어요? 성령으로 했겠어요? 성령으로 했는데 구원받은 꼬라지하고는. 별로 되지도 않아요. 몇명이 뭡니까 도망가기 바빴지요.

목사가 교회에서 성령으로 좀 설교하고 있지요? 성령으로? 교인 수 많이 늘어났어요? 어떻게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까? 분노만 유발, 공분만 증가된 거 아니겠어요? 자꾸 뭔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보고 뭔가 추가하라는 것이 아니고 플러스가 아니고 빼라는 겁니다. 빼도 괜찮다는 거에요. 지금 죽어도 인간아 욕심쟁이야 챙길 거 다 챙겼어 이렇게 되는 거에요.

자, 이 작업을 위해서 세례 요한도 이미 일괄적으로 죽은 자를 살리는 이 작업을 사실은 해왔습니다. 누가복음 3장 봅시다. 3장 4절부터 보게 되면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여기 평탄, 평탄이라는 말이 나오지요. 평탄케 하라 나오지요? 이 말은 인간들끼리 서로 경쟁하고 높낮이 누가 출세했나 성공했나 누가 돈 벌었나 돈 안 벌었나 하는 것은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는 것, 실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거 속지말라는 겁니다. 속지마라.

주님께서는 돈 많다고 “어머나~~” 하고 죄 많다고 너는 안 되겠다 이런 거 없어요. 똑같애. 평탄케 하라. 지난 낮 설교에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선한 자나 착한 일이나 나쁜 일도 피 앞에서는 다 날라가 버린다고요. 주께서는 피로 자기 백성을 사지, 착한 일 했다고 그런 거 없어요.

구원받아놓고 착한 일하겠다는 것은 전형적으로 그 사람은 지금 구원을 못 받았다는 것을 티내고 있는 겁니다. 그 사람의 의미는 자기한테 왔기 때문에 내 착한 일하는 나를 본인이 못 버리고 있어요. 착한 일하는 나니까 나는 착한 일을 했으니까 나를 구원할 것이다.

그것은 전형적인 율법의 흠이 없다 이 사람한테 걸리면 아주 따귀를 받지요. 네가 그것도 착한 일에 속하냐? 이래가지고 혼쭐납니다. 혼쭐나요. 구원자가 찾아오지 않는 사람들, 구원자가 찾아와서 나를 찾아와서 성령을 주지 않고 구원하지 않았다면 끝까지 이 세상 가면서 믿을 것은 자기 몸뚱아리 밖에 없어요. 자기 몸 밖에 없지요. 자기 몸 밖에.

모든 투자와 모든 사활을 자기의 몸의 가치에다가 다 퍼부어놓습니다. 조금 흠집이 있다. 흠집이 났다. 상식적인 선택사항은 뭐냐? 자살이죠. 자살. 그럼 이 말은 뭐냐 하면 자살하기 전에 이미 그 인간은 항시 자살할 몸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도. 엄마가 뭐라고 하면 자기 방에 들어가가지고 자살하지요. 문 닫아놓고 안 열어주고. 나는 내 몸밖에 없다. 엄마가 뭐라하고 나무라면 문 닫고 잠그지 말고 자기만의 세계 그걸 고수하지 말고 문 열고 나와 쇼파에서 심포지움을 여는 거에요.

어머니의 의견과 자기 의견을 조율하고. 이렇게 하면 애가 아니지요.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때 성령을 받았다. 엄마가 만약에 나무랜다. 그러면 어머님, 그때는 어머님 해야 돼요. 성령 받았기 때문에. 어머님, 어머니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십자가 앞에서는 다 사소한 일인 것을 어머님 모르십니까?

어머니 인생을 오래 안 살아봐서 그런가본데 오래 살아보게 되게 되면 이 땅에서 이런 일 저런 일 뭐 별거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귀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아이는 제가 못 봤어요. 어머님 아들 하나 없다고 치세요. 플러스가 아니고 마이너스입니다 어머님. 나긋나긋하게 이렇게.

그 상황 속에서도 일어난 사태 속에서도 누구만 증거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 증거하는. 그런 애를 두면요 엄마가 겁나서 제가 뭐 다 아는 것 같애. 여보 여보 말조심해. 제가 우리 하는 거 다 아는 것 같애. 이렇게 되겠지요.

세례 요한부터 평탄케 함으로써 이걸로 완전히 세상을 평탄케 하는 것은 그 자체의 모든 의미의 높낮이를 무의미로 의미 없음으로 다 바꿔놨어요. 어떻게 살던 어디서 무얼 하며 어떻게 살던 희미한 가로등불 아래서 뭘 어떻게 하든지 아무 의미 없어요. 아무 의미 없어요. 인기를 얻든 없든 관계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고 그렇다면 세례 요한이 이렇게 만들어 놨다는 것은 오실 예수님도 세례 요한 거기에다가 더더구나 모든 것을 평탄케 한 거죠. 세례 요한은 평탄케 했지요. 예수님은 모두 다 죄인 만들었어요 예수님은 동일하게 죄인 만들었어요. 세례 요한은 아직 거기까지 못나가고 그냥 평탄케 하는 겁니다.

다만 나처럼 네 것을 모든 것을 비우고 네 몸으로 메시아를 맞아라 이 정도였는데 그 빈 몸조차 예수님은 죄인으로 만들어버린 거에요. 그래야 나중에 사도 바울에게 넘어가요.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1장에서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천사라 할지라도 심지어 나, 우리들이라고 할지라도 저주를 받는다. 저주를 받는다 이렇게 되어있어요. 지옥 간다 이 말이죠.

그러면 이렇게 죄인 되고 평탄케 했을 때 그러면 여기서 그 다음에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이겁니다. 이 죄밖에 없는 여기에서 천국이 찾아오는데요 예수님이 천국을 몰고 찾아오는데 천국은 어디서 드러나느냐 하면은 죄가 천국을 갉아 먹는 그 범위 내에서만 천국이 보이도록 되어있어요.

천국은 없어요. 메시아가 없는 천국은 없는데 내 죄가 주님 오신 천국을 건드릴 때 상처 낼 때 갉아먹었을 때에 그만큼의 양만 천국이 드러나는 겁니다. 이 말은 어느 누구도 주님이 세운 이 천국을 몽땅 다 알 수는 없다 이 말이죠.

다만 아는 방법은 천국을 연구한다고 아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죄가 주님의 하신 일과 관련성 있게 연결될 때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다시 한번 드러내면서 아 내 죄로 인하여 천국의 진면목이 나타났구나. 그래서 느끼게 되는 겁니다.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죄가 더한 곳에 비로소 죄가 있는 그곳에서만 은혜가 넘치지요.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은 죄를 노출시키는게 아니고 반대로 죄를 자꾸 은폐하고 감출려고 하는 거에요. 전에 설교시간에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손대면 안 터져요. 손대면 아지트에 벙커에 더 숨는다니까요. 손대면 더 깊숙한 곳에 도피를 해요. 도망을 친다고요. 도망치다 도망치다 안되면 산에 가서 자살하지요. 핀란드 대사관 이쪽에 가서 죽잖아요.

이게 뭐냐 하면은 드러내는게 아니고 더 숨어서 자체폭발, 자기파괴 대표적인 사람이 가룟 유다. 사탄이 들어가서 사탄이 결국은 하나밖에 없는 너니까 네가 마지막의 하나밖에 없는 그거 못 지키면 사나 죽으나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상당히 합리성 있는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사탄이.

평생 동안 나에게만 투자를 한 거에요. 그런데 내가 웃음거리가 됐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내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자폭을 해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안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왜? 나는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폭발시켜버리면 폭발시킨 나도 없어지고 나도 없어지니까 그게 참 좋은 수가 되잖아요. 나를 찾는 사람에게 내가 없어져버리는 거에요. 그럼 그 말은 뭐냐? 평소에 누굴 의식했다? 나를 찾는 사람을 의식한 거에요. 수많은 서울 시민들.

박원순 그 사람이 7급 공무원, 9급 공무원 같으면 자살했겠어요? 하나 죽어도 뭐 누가 죽었나 모르지요. 그게 바로 성도 아닙니까. 나는 있으나마나 한 거에요 나는. 자살 안하니까 참 좋지요. 나는 있으나마나 한 거에요. 김성수 목사가 교인수가 한 열댓명 같으면 죽었겠어요? 설교하면 조회수가 수만명이에요. 수만명. 얼마나 그 사람들이 실망스러웠겠어요.

본인이 본인 걱정하고 있는 거에요. 내가 남한테 실망시키면 안된다. 내가 나한테 지시를 내리는데 그게 내 지시가 아니고 마귀지시입니다. I’m nothing.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I’m something. 자꾸 뭐라도 된냥 여기는 거에요. 뭐라도 된냥.

보통 조그마한 교회 같으면 말을 편하게 하고 설교할 때도 이렇게 하면 되는데 만약에 이명직 목사님이 700명 교회에 갔다. 거기서 한번 설교하는 것은 그냥 하지만 만약에 10년간 삼선에 도전해 가지고 세 번 됐다 해보세요. 목소리가 달라져요. 목소리가 위엄 있고 이래요.

교인들 기싸움에서 안 질려는 목소리가 개발해서 나온다니까요. 그런 교육기관도 있어요. “믿습니까~~~할렐루야~~~.” 이런게 있거든요. “그러므로!!! 그러므로”, 이거는 조용기 목사가 하는건데 조용기 목사가 “그러므로 그러므로” 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은 설교할 때 다음 대목이 생각이 안 나잖아요. “그러므로” 하면서 생각하는 거에요.

“아~~~또~~~” 뭐 이런 거란 말이죠. 그것도 생각 안 나면 “믿습니까!!” 해가지고 쉬어가고 부흥사들처럼 “믿습니까!!!” 그것도 생각 안 나면 “믿습니까~~!!!” 하고 자꾸 딴 생각하는 거에요. ‘다음에 무슨 말하지’ 그거 한다고 하는 거에요.

인간은 그럴 수 있어요. 그것이 십자가, 천국과 관련성 있어야 돼요. 네가 나를 핍박했다. 너한테 투자하는 것이 너 타고난 본성인데 좋아! 그 본성 좋아. 모든 인간은 그랬으니까. 다 평탄케 되고 모든 인간은 죄인이니까.

그러나 그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관련성이 있고 연결될 때 우리는 바로 내 죄로 인하여 죄가 있는 곳에 비로소 주님의 의가 나타나요. 의가 나타나요. 배설물 속에 뭐가 있다고 했습니까? 배설물 속에 하나님의 의가 들어있어요. 복음이 나타나요. 하나님의 의가.

사도 바울이 말하는 그게 뭐냐? 사랑입니다. 사랑의 주변의 요건은 필수 요건은 뭐냐?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주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올 때에는 이미 나는 지독하게 나만 사랑했음이 주님의 사랑 십자가 피를 통해서 이미 그것이 확인됐기 때문에.

나는 철저히 나만 사랑한다는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는 사실이 주님의 사랑이 등장했기 때문에 나올 이야기에요. 주님의 사랑이 등장하면 그런 소리가 안 나와요. 물론 그건 흉내 낼 수 있지만 그건 흉내일 뿐이고요. 그 다음에 계속 진도 나가겠습니다. 그 다음에 제가 할 것은 이겁니다. 여러분은 누구와 마주하고 있습니까? 누구와 대화합니까? 누구와 마주하고 누구와 대화하느냐?

메시아하고는 대화가 안돼요. 왜냐하면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메시아를 밀기 때문에 대화 상대로 보지 않고 밀어내기 때문에 대화가 안돼요. 그러나 인간들은 인간하고 상대하는 거에요. 전에 제가 어느 설교나 강의 때 그런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지금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왜 사람들이 인생에 문제가 생기느냐 하면 사람하고 상대했기 때문에 그래요.

주님하고 상대 안하고 자꾸 사람하고 상대해서. 어느 강의에서 제가 한 기억이 나요. 사람하고 상대하니까 기대하고 실망하는 거에요. 탓은 하나님께 돌리고. 자기가 사람하고 상대하고. 여러분 지금 누구하고 마주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는 여기서는 사람들하고 상대를 하지요.

사람들을 상대하게 되면 여기서 반드시 비교가 돼요. 비교. 자꾸 비교하고 경쟁을 하게 되고 질투를 하게 되고 이렇게 돼요. 질투라고 하는 것은 내게 없는 것을 네가 왜 갖고 있느냐? 이게 질투 아닙니까? 모차르트가 음악의 천재지요. 그런데 그 옆에 살리에르 그 사람은 화가 나는 거에요. 신이시여 왜 내게 없는 것을 쟤가 왜 갖고 있습니까?

이거는 모든 의미가 평소에 자기 의미로 모든 것이 최종성을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 시험이라고 했지요? 죄라고 했지요. 모든 목적은 무조건 내 만족이 되야 된다는 게 최종 의미가 되는데 최종 의미는. 그런데 그것이 모차르트가 나타남으로서 그게 좌절됐잖아요. 그렇게 미워하는 거에요.

만약에 초등학교 나온 남편이 대학 나온 여자하고 결혼했다. 그런 사람 더러 있어요. 있을 때 돈을 벌어도 여자가 더 잘 벌어 똑똑해도 여자가 더 똑똑해. 그렇다고 여자가 남편을 무시하는 게 아니고 잘해줘. 잘해주기 때문에 아내가 더 싫은 거에요. 열등의식 있어가지고.

너 지금 내 심리에 대해서 다 파악하고 있지? 되도 않는 시비 걸어가지고 가정파탄을 일으키고 가정 분란을 일으킬 때에 처음에 인물보고 잘생겼다 했는데 인물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인물이 아니고 갖고 있는 과거가 나 잘나기 위해서 끌어 모았던 그 자료들의 분량 문제에요.

내가 나 되기 위해서 끌어 모은 그 자료와 네가 너 잘나기 위해서 끌어 모은 그 자료와 현격히 차이가 나니까 여기서 열등의식을 느끼는 겁니다. 자,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 죄라는 것은 어디서 생겼느냐 하면은 남과의 만남에서 죄가 생겨요. 타인과의 만남에서.

남과 비교하고 이런 것에서 죄가 생긴다 이 말이죠. 흔히 말하는 자존심이라는 게 여기서 생기지요. 그러면 성도끼리 만났다면 성도끼리 만나면 그럼 성도끼리 만났다. 그럼 성도 이렇게 현실적으로 두 몸이 만났잖아요. 할 때에 성도끼리니까 여기에 유령기사 주님이 이렇게 있거든요.

그러면 먼저 1번 내가 상대방에서 이야기하지 말고 주님과만 이야기해야 돼요. 여기서 뭐가 등장하느냐 하면은 주님의 천국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아까 공식에 의하면 뭐가 도입되어야 한다? 피로만 맺은 사이기 때문에 뭐가 도입되어야 한다? 나의 죄가 드러나겠지요.

주님께서 나에게 A라는 사람에게 B를 주신 것은 내가 그동안 잠잠해 있던 나의 자존심을 자극시키는 나의 분통과 질투심을 자극시킵니다. 자극시킬 때 그 죄하고 나하고 먼저 만나지 말고 주님하고 먼저 이야기해야 돼요. 그러면 주님 이건 뭐냐 하면은 너 그 자존심이 바로 죄라는 거에요. 그러면 이 사람은 자존심을 꺾느냐? 꺾을 필요가 없어요.

인간의 몸은 죄 지으라고 있는 몸이에요. 죄 지으라고 있는 몸을 충분히 대우를 해줘야지. 죄 지으라고 있는 몸을 죄 안 지으려고 하면 안돼요. 자존심과 질투와 미움과 시기를 그대로 상대방에게 주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죄입니다. 이게 나의 부족한 정도가 아니고 이게 나의 뿌리고 나의 기원이고 나의 죄입니다. 나는 당신을 만나고 난 뒤에 나한테는 이런 죄들이 마구 살아났습니다. 주님이 이런 죄 이야기하라고 나보고 시켰습니다.

그러면 이 상대방이 그러니까 내 앞에 꿇어! 이러면 안 되고 그럼 그 사람하고 상대하지 말고 그 사람이 누구한테 묻느냐 하면은 자기 갖고 있는 주님한테 또 묻는 거에요. 주님에게 물으면 너는 이렇게 해라. 당신의 죄 못지않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에요.

그리고 난 뒤에는 헤어질 때는 밥값 누가 내느냐? 각자 냅시다. 죄인끼리 네 밥값 내가 낸다고 의인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성도의 만남, 목사와 교인들의 만남, 집사들 만남, 모든 성도의 만남은 죄로부터 시작해서 죄로 끝나야 돼요. 죄로 끝나서 하하하 죄 이렇게 끝내야 돼요. 죄로 끝나야 돼요.

바로 이 점에서 대해서 세례 요한이 사도 바울에게 아직까지 미치지 못한 겁니다. 세례 요한은 뭐냐 하면은 어떤 사태를 우리가 기다리면 된다고 하는 거에요. 우리가 기다릴만한 괜찮은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세례 요한은 계속 구약적 인식을 가지고 다가서는 겁니다.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로 박살낸다는 생각은 세례 요한에게는 없었어요. 그럴 수가 없단 말입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이스라엘이 박살내버리면 구원받을 자가 없잖아요. 우리 가운데 몇 명 있어야 되지 않느냐 그런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온 사람은 저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괜찮은 사람 없어요. 모든 인간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이 말이죠.

그래서 여기 16절 봅시다.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이렇게 했는데 여기 세례 요한이 능력이 많다는 말은 맞는 말인데 능력이 많다는 점이 어떤 점에서 능력이 많다는 것은 세례 요한이 잘 모르고 있어요. 세례 요한이 받은 계시는 알곡은 모으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운다 했는데 여기서 세례 요한 알곡은 들어있을 줄 알았지요.

예수님 때의 알곡은 예수님 혼자 밖에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알곡은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이 스스로 믿는 자를 발생시키고 생산해야 돼요. 창조해야 된다고요. 알곡을 주는 방법은 그 사람의 양심이나 마음에 호소하는 게 아니에요. 기존의 양심이나 마음은 전부다 아담 노선이거든요. 예수님 노선이 없는 거에요.

예수님 노선이 뭐냐? 성령이 와야 돼요. 성령이 와서 예수님 마음을 그 사람에게 심어주게 되면 그게 바로 모발모발, 예수님의 모발과 동일한 모발, 예수님의 몸과 동일한 몸의 요건이 갖춰지는 겁니다. 동일한 요건.

그래서 요한복음 8장 10절에 보면 제가 자주 언급하지만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면” 그러니까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영이 너한테 안 거하면 네가 아무리 착하고 어질고 순해도 그 영이 없으면 너는 끝난 거야.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거에요.

반대로 네가 아무리 악하고 모질고 고집 세고 자존심 세고 남과 비교하기 좋고 남한테 지기 싫어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면 너는 마땅히 죽어야 되겠지만 죽은 자를 살리신 영이 네가 오게 되면 역시 너도 그 절차를 그대로 따라서 일단 죽여 놓고 살리는 거에요.

죽여 놓고 살린다는 말은 죽은 채로 욕하고 죽은 채로 돈 챙기고 죽은 채로 욕심 챙기는 거에요. 그럼 성도는 뭡니까? 그런 짓하면서 나 죽었어. 나 다 죽었어. 나 지금 죽으니까 이런 짓 까지 나오네 해서 자기 죄와 예수님의 훌륭하심이 아니에요. 자기 죄와 예수님의 피와 연결시켜야 되는 거에요. 피에요. 예수님의 훌륭하신 인격이 아니고 예수님의 피라니까요. ‘피’.

피로 말미암아 씻겨져요. 예수님의 인격이 아니고 훌륭함이 아니라 피에요. ‘피’. 왜? 피 앞에서는 뭐밖에 없으니까? 훌륭한 인격이 아니라 뭐밖에 없으니까? 죄밖에 없으니까. 그 죄는 무슨 죄다? 혼자 짓는 죄 아니에요. 누구를 겨냥한 죄죠. 누구를 겨냥했습니까?

예수님 자신을 겨냥했잖아요. 자기를 죽인 자를 자기가 살리는 거에요. 요한1서에 보면 이점에 대해서 굉장히 물과 피와 성령이 바로 예수님의 실제다. 예수님의 실제다. 증거하는 이는 셋인데 뭐냐? 물과 피와 성령이다. 이 모두는 하나입니다. 물과 피와 성령이 삼위일체.

자,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습니다. 그럼 왜 성령과 불로서 이렇게 타작마당을 하게 하시느냐? 그것은 세례 요한이 마지막 선지자에요. 그러면 세례 요한이 죽어버리면 무엇이 날라가요? 구약전체가 날라가요.

구약 전체가 날라가버리면 율법으로 해서 율법이 낳은 나라가 무슨 나라 입니까? 이스라엘이죠. 율법이 이스라엘이 되고 이스라엘이 망해버리면 역사는 그걸로 끝이에요. 끝났어요. 그래서 요엘서 같은데 보게 되면 구약, 이스라엘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이스라엘 나라가 망한 것을 가지고 이걸 종말 또는 말세라고 합니다. 상당히 일방적 주장이죠?

이스라엘 망하면 말세에요. 하나님의 언약 망해버리면 끝나는 거에요.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는 남은 자를 뽑는데 남은 자는 성령이 와야 돼요. 그 성령이 온다는 것을 송민석 집사님 글에 댓글을 해놨지요. 예언하는 것, 젊은이들은 꿈을 꾸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예언하지요.

이게 뭐냐? 현실에서 볼 때에 현실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망하는 게 이게 마지막 때에요. 마지막 때에 성령이 오시게 되게 되면 성령이 오면 율법의 완성으로 오죠. 성령은 이미 다 이루었다에서 오는 거에요.

그러면 성령이 우리 안에 있다는 말은 우리 안에 뭐가 있다? 다 이루었다에요. 이제는 강의제목을 얼떨떨에서 바꿔야 될 거 같은데. ‘다 이루었다’가 우리 안에 있어요. 다 이루었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죄를 더 짓는 게 아니고 죄를 더 많이 알게 되는 거에요.

많이 아파. 우리 많이 아파요. 다른 사람보다 더 예민해요. 이 세상에 대한 모든 것,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예민하고 철저하게 잘 사는 게 아니고 철저하게 죄를 아주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짓는다는 사실을 남은 몰라도 본인은 알아요. 얼마나 교묘하게 죄 짓는지.

말을 해도 모든 의미가 나에게 최종 의미가 주어지는 그러한 전략을 세우면서 한다고요. 전략을 세우면서. 뭐 하나 도와줘놓고는 주여, 저는 겸손해서 주께서 하셨습니다. 뭐 이런 식으로 하면서 또 기분 되게 좋아지고 이런 간파하는 꾐, 요령.

그러나 우리가 요령이나 어떤 죄를 지어도 아무 구원에는 지장이 없는 거에요. 왜냐하면은 이미 주와 함께 있기 때문에 내가 몰랐던 내 간교한 죄가 배설물로 계속 나오는 그 재미가 쏠쏠합니다. 즐거워요. 내가 이렇게 못됐구나. 그렇다면 이번에 서울시에서 받은 재해기금 이게 왠 횡재 이렇게 되지요. 이렇게 못됐음에도 불구하고 70만원 받았으니까 아이고 이거 횡재다 싶죠.

재해기금만 공돈입니까? 우리 목숨은 공돈 아니에요? 이렇게 나쁜 놈 밟아죽여도 되는데 안 죽이고 계속 살려내는 것은 죽을 때까지 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증거하라고 살려두게 하시는 거에요. 그런데 세례 요한은 거기까지 몰랐는데 사도 바울은 알았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선지자의 한도와 그리고 거기서 간격이 생기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고 사도바울의 전한 복음, 이 복음의 안목에서 성경을 다시 볼 수 있는 그러한 눈을 성령을 통해서 허락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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