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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3장 10절 (죄의 회수) 200720a-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3장 10절 (죄의 회수) 200720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3장 10절에 보면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그 대목부터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을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은 보통 이방 민족에서는 시작이 ‘내가 있다’ 라는 것부터 시작이 되는데 이스라엘은 그게 아니고 ‘율법이 있다’가 우선입니다. ‘내가 있다’ 보다도 ‘율법이 있다’가 우선이에요. ‘율법이 있다’가 먼저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이방인들은 이해가 안되는 거에요.

법이라 하는 것은 내가 먼저 있고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나한테 이익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율법을 줬다 하는게 이게 일반적인 상식인데 이게 그래서 이방 민족이죠. 그런데 이스라엘은 뭐냐 하면은 율법이 먼저 있어요. 율법이 있고 그 다음에 내가 있다가 아닙니다. 그 다음에 뭐냐 하면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율법이 있고 이스라엘이 있고 그 다음에는 뭐냐 하면 이스라엘의 하나의 요소로서 구성원으로서 내가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구성원으로서. 그래서 보통 나에게는 국가가 있다. 이거는 뭐 흔히 아는 이야기잖아요.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게 아니고 나에게 국가가 있다 보다 더 우선되는 것이 나에게는 율법이 있다. 나에게는 법이 있다 이렇게 돼야 됩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하나님의 뜻은 율법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이스라엘 만들었고 그리고 너희들이 거기에 속했다 그렇게 되어있어요. 이 점을 먼저 이런 구조를 먼저 마음의 구조를 설정해주셔야 돼요. 지금 다시 말씀드리면 ‘내가 있다’가 아닙니다. ‘내가 있다’ 아니에요. ‘율법이 있다’가 ‘나 있다’ 보다 먼저 선행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이 먼저 있기 때문에 율법대로 누가 등장해야 하느냐 하면은 선지자들이 오게 되어 있고 선지자 그 다음에 누가 오느냐 하면은 바로 메시아가 오게 되어 있어요. 메시아 또는 구원자가 오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자는 어디 오느냐? 이스라엘에게만 구원하기 위해서 구원자가 오는 이유가 이스라엘에게만 먼저 율법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걸 지금 우리가 아는 식으로 하면 ‘율법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언약이 있다’ 이렇게 돼요. 언약이 없는 이방 민족은 메시아가 오게 되면 그들은 ‘이제는 죽었다’가 되는 겁니다. 그들은 이제 저주 받는 거에요.

그래서 성경의 신약이나 구약의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특히 구약 같은 경우에 신약 초반에도 그렇지만 모든 핵심은 누구하고 이렇게 연결지느냐 하면 이스라엘 사람, 유다 민족과 주고받고 주고받고. 예수님도 죽으신 것은 이방 민족보다도 그 당시의 체포당한 것도 이스라엘 지도자한테 체포당하지요. 이러한 구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그런데 이 구조가 이제 바뀌게 돼요. 우리가 오늘 강의에서 먼저 염두해둘 것은 이겁니다. 세례 요한과 사도 바울이 생각하는 구조의 차이점은 이거 하나 딱 아셔야 돼요. 세례 요한과 사도 바울의 세상을 보는 차이점은?

세례 요한은 구약과 신약의 경계선에 있기 때문에 율법에 그대로 기초하고 있어요. 그래서 세례 요한은 율법의 마지막 주자라고 합니다. 율법의 마지막 주자. 율법의 끝 사람. 율법의 끝 사람이에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뭐냐 하면 바로 율법의 완성인 ‘사랑’입니다.

이 사도 바울의 사랑을 알기 위해서 세례 요한을 안 거치고 바로 사랑을 알면 안돼요. 세례 요한을 거쳐야 우리가 아는 이 사랑과 세례 요한을 거치고 나온 사랑이 확연하게 틀립니다. 완전하게 다르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이제 이렇게 보니까 세례 요한이 등장해야 될 분명한 그 이유는 명확해졌지요. 세례 요한이 등장할 이유는 바로 율법에 의해서 선지자가 이렇게 오는데 그 선지자가 세례 요한이다 이 말이죠. 그러면 지금 율법대로 선지자 기다리고 메시아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냐 하면 이스라엘 집단이거든요.

그렇다면 이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선지자하고 세례 요한하고 생각이 같아야 된다. 이 이론대로라면 같아야 되겠지요. 같지 않습니다. 여기 7절에 보게 되게 되면 “독사의 자식들아” 욕을 하지요.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는 율법에서는 두가지의 목표점이 있다. 하나는 뭐냐 하면은 복이죠. 또 하나는 뭐냐 하면은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가 주어지는 겁니다. 율법에는 칼이 두 개가 있는데 두가지가 뻗어 나오는데 하나는 복이고 하나는 저주다 이 말입니다.

지금까지 설명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이해를 잘 하셨다면 우리는 복 받아야 된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제 강의를 헛들은 겁니다. 왜냐하면 ‘내가 있다’가 없다고 분명히 언급을 했어요. 내가 있고 율법이 있는 것 같으면 내가 있고 나 복 받을거야. 나 복 받고 싶어. 어! 율법이 있네?! 순서가 이렇게 되는 거에요.

그런데 내가 먼저 있는 것이 아니고 율법이 먼저 있다면 여기 나온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기능 또는 역할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고 안 받고 문제가 아니고 율법의 실체가 역사 속에서 완성이 될 때는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가를 구현하는 그 자리가 이스라엘 자리에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실제로 있었지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실제로 있습니다.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실제성, 실제로 있다. ‘실제성’. 어려운 말인데 실제성. 실제로 있다 이 말이죠. 그런데 실제로 있는 이것이 가상이고 허상이고 진짜 실제를 있게 한 다른 그 보이지 않는 진짜 현실이 있다.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실재, 실재성이라고 합니다. ‘실재’ 또는 ‘실재성’이라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분명히 없는게 아니고 분명히 있는데 눈에 안 보이더라 이 말이죠. ‘ㅓㅣ’에서 ‘ㅏㅣ’를 지향하는 겁니다. 바라보는 겁니다. 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스라엘이 실제로 있다 이 말이죠. 있다면 그럼 실재는 뭐냐? 율법이죠. ‘율법’. 율법이 있는 거에요.

그런데 내가 있다고 먼저 생각하고 율법 있어버리면 실재는 뭐냐 하면 율법이 실재되는게 아니고 내가 최종적인 실재에요. 내가 최종적인 실재. 그래서 성경에서 시험 들었다 하잖아요. 시험 들었다 또는 죄 지었다 악하다. 이 공통점이 뭐냐 하면 시험 들었다 죄 지었다 악하다 할 때 이걸 물으신 분들이 여러 분 돼요.

도대체 목사님, 시험 든다는 말이 어떤 상태를 시험 들었다 합니까? 물으시는데 이참에 제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시험 들었다 하는 것은 나의 목적성을 내가 갖고 있을 때 이게 시험 든 거에요. 내가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 겁니다. 내가 도달해야 될 내가 추구해야 될 목적을 갖고 있다면 그건 시험 든 겁니다. 왜냐하면 내가 최종점이기 때문에.

거북이와 토끼의 그 마지막 깃대는 거북이가 뽑잖아요. 경주를 하지요. 결국 이겼다고 환호성을 보냅니다. 토끼가 먼저 갔지만 잠을 잤기 때문에 거북이가 이겼지요. 물론 그 다음에 한번 붙었다면 절대로 잠자지 않는 토끼 보냈을 거에요. 어쨌든 사람들은 어떤 도달점에 목표할 때 그때 본인은 사는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 의미가 뭐냐 하면은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기대하는 그 지점에 내가 가 있는 것. 이게 바로 죄고 악이고 시험 든 거에요. 물론 악마는 이 점을 부추기고 악마는 그걸 설득했지요. 그런데 방금 강의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시험 안 든게 뭐냐? 뭐가 죄가 아니고 뭐가 악이 아니야?

율법이 율법대로 최종점은 스스로 자체적으로 율법의 스스로 완성이 되는 그 상태. 그것은 바로 시험 든 것도 아니고 죄도 아니고 악도 아닌 거에요. 율법이 스스로 율법 되게 하는 것. 그것은 주님이 그렇게 하신 거에요. 모든 율법을 다 이루었잖아요.

그럼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되는 것은 뭐냐 하면은 나는 있다가 선행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씀이 말씀대로 완성한다면 우리는 박수칠 일이 된다는 말이죠. 누구십니까? 말씀대로 이루신 분이 누구십니까? 관심사나 모든 생각이 그쪽에 가 있어야 돼요. 주께서는 말씀을 줬는데 이 땅에서는 깜깜 무소식이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헛수고한 거죠. 하나님이 헛수고한 거죠. 그러나 하나님이 진짜 실재하시는 분이고 진짜 계시다면 자신이 이루고자하는 모든 프로젝트 계획이 율법을 통해서 다 선지자를 통해서 율법을 이루었다면 그거는 우리가 피조물 입장에서 같이 좋아해줘야 우리가 주와 한 편이다 같은 쪽에 있다고 이렇게 확인이 될 수가 있지요. 논리상 제가 이게 맞는 말이에요. 그러나 현실상은 정말 이거는 억수로 어려운 이야기죠.

거북이 같은 우리하고 토끼 같은 주님이 경주하면서 야 너 나하고 경주하자. 그러나 1등은 토끼 내가 하는 거다. 알겠냐? 아이고 뭐 알아 모시겠습니다. 자, 시작! 우리는 느림보 거북이, 토끼는 앞에 가서 깃대 뽑아버렸어요. 일등 했다고요. 우리 기분 좋아야 되는 겁니까? 아니면 우리가 수습해야 되는 겁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돼요?

이 말을 달리 해보겠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는 다 이루었다. 그럴 때 베드로부터 해가지고 12제자들이 좋아해야 됩니까? 아니면 도망칠 일입니까? 거기에 다 이루었다 할 때 거기에 아무도 없었어요. 다 도망가 버렸어요. 뭐 비아냥댈 수 있죠. “좋겠네 주님은 혼자 승리해서” 뭐 이런 식으로 그렇게 나오겠지요.

그러니 우리가 세례 요한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인간으로서는 되지를 않는 일을 그 시대에 세례 요한 혼자서 바로 이것을 바라보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 보고 뭐냐? 너희는 저주받는다 하나님의 진노가 있는데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이 말은 세례 요한이 이스라엘을 율법의 기능에 의해서 저주 쪽에다가 이스라엘을 딱 세워버린 거에요. 그러면 이 세례 요한이 이스라엘을 전체를 저주 쪽에다가 세웠죠. 임박한 진노를 피하려 하느냐 이 말은 너희들 배는 침몰중이다 뭐 이런 거죠. 비행기 같으면 추락중인 비행기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거죠.

자, 그러면 세례요한은 그런 말하면서 자기는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 검역소 있지요. 검역소. 사람들이 왕래하는 동대구역이나 이런 거 있을 때 체온 체크할 때는 사람들이 왕래하는 폭을 줄여버려요. 사람들이 오더라도 이렇게 줄을 쳐가지고 이곳으로 한곳으로 모이게 해요.

모이게 하고 여기에 모니터 있고 들어가자마자 내 이마에 체온 원격으로 다 재는 거 있고 손 소독제 있고 여기 봉사하는 사람들 있고 이렇게 하잖아요. 이 지점에 세례 요한이 있어요. 세례 요한. 쭉 오다가 다른데 새면 안돼요. 세례 요한은 온 인류를 향하여 외치고 있는 겁니다.

“모든 인간들아 너희들 이스라엘에게만 진노가 있는게 아니야”. 온 인류에게 이스라엘 진노 받는다는 것은 율법이 없는 이방 민족은 말할 것도 없지요. 율법이 있는 쪽도 진노 받는다면 아예 처음부터 율법이 없는 민족이니까 이거는 지옥가야 될 사람들이죠.

그러니까 이 사실을 폭을 좁히자 이 말이죠. 세례 요한이. 한 줄로 오라고 한 줄로. 자기 맘대로 나가지 말고 내 쪽으로 오라 이 말이죠. 이렇게 되면 세례 요한 없이는 뭐도 없다? 구원이 없는 거에요. 세례 요한 없이는 구원도 없는 거에요.

세례 요한을 거친다는 말은 세례요한으로부터 무슨 소리를 들어야 하느냐 하면 이 추락하는 세계에서 네가 구원받을려고 설치느냐. 같이 추락하지. 추락하는 인간들이 뭘 구원받겠다고 나와. 너 주제파악이나 해 라는 그러한 격한 잔소리를 들을 각오하시고 오시라 이 말이죠. 아이고 어서 오세요. 기다렸어요 이거 없어요. 한소리 들어야 됩니다. 한소리 들어야 돼요.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욕해도. 세례 요한한테 삿대질 “너는 뭐냐!!” 이렇게 나오면 안돼요. 이 사람은 세례 요한은 선지자입니다. 선지자 없이 메시아 오는 그런 원칙은 없어요. 왜냐하면 율법 자체가 그러니까. 율법 자체에 선지자 오도록 되어 있으니까 순서가 선지자 오고 그다음에 메시아 오는 겁니다. 검열한다니까요. 한 줄로 쭉 체온 재듯이 한 줄로 딱 오라하는 거에요. 모든 인류 향해서.

그럼 이렇게 될 경우에 임박한 진노가 너희에게 임했다. 나한테 오라. 물론 물세례죠. 세례받기 위해서 오는구나 라고 할 때 이것은 뭐냐 하면은 이거에요. 인간의 기원은 인간 속에 없다. 자아의 그 원천은 내 안에 없어요. 이걸 오늘날 20세기 21세기 사람들은 몰라요. 이 사실을. 뭐 20세기 아니라도 사람들은 몰라요.

나의 뿌리가 내속에 없어요. 이거는 이스라엘만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뿌리는 율법이지 나를 분석해서 내가 어디서 왔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는 모른다. 율법이 우리의 뿌리라면 이 말은 선지자가 하는 이야기가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기원에서 나오는 목소리다. voice. 목소리다 이렇게 봐야 돼요.

그리고 선지자가 우리의 기원에 관해서 뿌리에 대해서 원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면 선지자 뒤에 오시는 메시아야 말로 우리의 존재의 시작점이고 뿌리인거에요. 뿌리. 그러니까 이거는 구원 받는게 아니고 원래 우리의 원천과 합성하는 거죠. 연결 짓는 거에요. 뭐로? 율법으로. 율법으로 땜질하는 겁니다. 끊어진 것을 율법으로 잇는 거에요.

그래서 율법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이걸 매개라고 합니다. 매개라고 하는 것은 두 선이 나와 타자 또는 어떤 두 개의 물건이 떨어져있을 때에 접촉하기 위해서 그냥 하면 붙지를 않으니까 이쪽도 붙고 저쪽도 붙고 다 붙는 것 그걸 매개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매개 물질이 뭐냐 하면은 비누에요. 소수성 침수성 물과 친한 것과 기름에 친한 것이 두 가지 성분이 비누 안에 있어서 비누 안에 들어가게 되면 기름이 붙고 물에 붙어서 때라는 이름으로 벗겨내가지고 갖다 부으면 다 날라가잖아요. 깨끗하게 씻어지죠.

그러니까 이 매개, 율법이 매개라면 이것은 무슨 역할? 방금 이야기한 비누처럼 무슨 역할을 하느냐 하면 씻는 기능이 있어요. 이걸 구약에서는 이걸 정화라고 하죠. ‘정화’. 대구에 가면 정화여고 있어요. 깨끗하게 씻는 것 깨끗하게. 성스럽게 하는 것. 정화시키는 것.

정화가 될려면 매개의 강조성을 위해서 내 율법의 매개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율법 다음에 있는 것이 뭐라고 했어요 아까.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바로 오염되고 더러운 인간 속의 더러움을 바깥으로 표면화시키는 그러한 역할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이스라엘 만든 겁니다.

호세아가 그런 대표적이죠. 북이스라엘로 하여금 일부러 너희들은 호세아 부인은 일부러 그 바람난 여자하고 호세아가 결혼을 해요. 해서 필히 뭐냐? 자식을 낳아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들 보기에는 우리의 실제성이 여러번 나오는데 참 중요해서 실제성은 사람으로 보이지요. 아니에요. 그 자녀들은 뭐냐 하면은 음란한 여인이 낳았던 율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 나온 아이들이에요.

그러면 뭐가 실재성이냐 하면 바로 하나님의 율법대로 움직인다는 것. 하나님께서 율법이란 언약, 모세 율법대로 움직이는 그것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진정한 실재지요. 사람 눈에 보이는 사람들 설치고 다니는게 이게 실재가 아니라 그 인간으로 하여금 그런 기능을 하도록 배후에서 하신 그게 바로 실재가 되는 거에요. 이게 바로 매개에요. 매개거든요. 또는 매개라고 하는 것은 매개 없이는 연결도 없다 그런 뜻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한다는 말은 우리의 원래 뿌리를 주님이 자기 뿌리라고 그것을 우리에게 통보하고 주님 소유로 가져가는 거에요. 좀 기분 나쁜 이야기지만 여러분들이 만약에 쥐를 잡았다 합시다. 이렇게 내가 쥐를 잡았다. 그러면 치워야 하잖아요. 쥐의 머리 부분을 잡을까요? 꼬리 부분을 잡을까요? 꼬리부분을 잡지요.

주님께서는 피 묻은 장갑 끼고 이 더러운 우리를 가지고 오는 거에요. 꼬리를 잡아서. “너 원래부터 너는 내 사람이었어 가자 이놈아” 하고 우리로 하여금 자기세계 천국 가는 겁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내가 있고 나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았다 그런 이야기는 성경에 아예 없는 거에요.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 역할하는 자기 것을 도로 회수하는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구출, 구원이라는 겁니다.

그게 출애굽기 3장에 보면 나오지요. 내 백성을 건져라. 왜? 그 백성은 나를 섬겨야 될 사람이기 때문에 바로야 내 백성 건져라. 주님이 누군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그들은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는 애굽 나라에 갇히게 해서 충분하게 못 빠져나온다를 충분하게 거기서 다 드러내요. 넉넉하게 충분하게.

빠져나오고 싶어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건들을 계속 주는 겁니다. 열 가지 재앙이 그거에요. 열 개의 층으로 굳어져있다고 보면 돼요. 바로 왕의 생각이 완악하다 이렇게만 생각하지 마시고 완악한 바로 왕에 갇혀 있는 그 히브리인들과 애굽인들도 그 바로 왕 못지않게 완악해요.

나일강 물 없이는 못 삽니다. 메뚜기 지배해서 농사하면 못 삽니다. 개구리가 왜 식탁에 이렇게 올라옵니까. 그래서는 못 삽니다. 파리 있으면 안 됩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살기 좋은 깨끗한 환경으로 우리는 이 세계가 좋습니다. 이 세계 말고 다른 세계는 생각지 않습니다라는 생각이 바로 생각이 아니고 애굽의 모든 사람 히브리인 생각이지 전부 똑같은 생각이에요. 그 생각 말고 그 외의 여분의 생각은 인간들에게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모세에게는 나오지요.

모세는 그전에 이미 한번 봤거든요. 떨기나무 불붙을 때 한번 알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세계 바깥의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태어나서 겪고 살아오면서 울고불고 TV 보고 신문 보고 온 정보의 홍수 속에 들어온 것은 뭐냐 하면은 이 세상 날 버리면 나는 죽는다에요. 그런 생각이 있는 사람이 무슨 뭘 구원을 받아요.

물론 다른 세계 있으니까 눈에 보이는 이 세계 말고 다른 세계 없는데. 그래서 나는 누구냐? 그딴 거 돈도 안 되는 거 그걸 왜 묻냐? 내 기원이 뭐냐? 나의 원천이 뭐냐? 묻고 싶지도 않아요. 그런데 주님까지 오셔가지고 너는 원래 이 동네 이 세상 동네에 같이 지옥 갈 사람과 살 사람 아니다. 쥐꼬리 잡듯이 잡아가지고 질질 끌고 우리는 빼내주는 겁니다.

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끊어진게 아니고 찾아왔는데 그것이 바로 말씀대로 율법대로 그렇게 찾아오는 거에요. 율법 안에 우리의 기원이 있는 겁니다. 그 율법대로 오신 분이 누구다? 선지자. 선지자고 그 선지자 뒤에는 누가 있다? 메시아가 있다고 누가 주장하느냐? 세례 요한이 주장한 거에요. 나는 오실 분의 선지자다.

그러면 그 당시에 현실적으로 사람들 눈에는 누구만 있습니까? 세례 요한만 있지요. 세례 요한만 눈에 보이지요. 그렇다면 이것은 뭘 의미하느냐 하면은 구원자 부재입니다. 구원자 부재에요. 메시아가 없어요. 실제적으로. 왜? 눈에 안보이니까. 메시아가 있다고 우기는 사람만 눈에 보입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자꾸 이야기하기를 나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에요. 나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믿음의 대상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 나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라고 되어 있어요. 여기에 16절에 보게 되면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그러니까 물세례는 폼이라는 거에요. 폼이고 일종의 스포일러? 예고편 이 정도고 본격적으로는 시작도 안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에게 세례 요한의 말만 들리지 이렇게 세례 요한을 보는 것처럼 성령과 불로서 오시는 그 메시아가 ‘부재’, 없다는 사실이에요.

심지어 놀라운 사실은 세례 요한 본인도 마태복음 17장에서 오실 분이 당신 맞습니까? 이렇게 하는 거에요. 이것은 뭐냐 하면 보고 있다는 것은 철저하게 믿음을 감추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는 겁니다. 못 믿게 하는 방식이 돼요. 눈에 본다는 것은.

목사님 어디 아픈데 없어요? 어디 등짝에 무리한다든지 피아노에 받쳐서 아프다든지 뭐 그런거 없어요? 아프다 하면 제가 안수를 하지요. 안수를 하게 되면 어?! 다리를 안수를 하니까 어?! 일어섰다. 예 믿음 없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이. 그 순간이 드디어 사람에게는 시험 드는 순간인데 어떤 목표점이 갑자기 생기게 돼. 목표점이. 나도 암 걸리면 돈만 드니까 골치 아프니까 안수하겠다.

그동안 한국교회에 병 고쳐준다는 목사가 한두 명이 아니에요. 굉장히 많아요. 지금도 용하다는 권사들 기도원이 많이 있잖아요. 신종 코로나 뭐합니까? 그 사람들. 아 나는 이해가 안돼. 지금 가장 필요할 때 아니에요? 온 국민이 필요할 때라고요.

해외에서 들어온 사람들 아예 인천공항에 출근해가지고 입국하는 절차에다가 그냥 안수하면 돼요 안수하면. 이러면 되잖아요. 검역이 필요 없어 안수하면 다 낫는데. 그 용한 도사들 다 어디 갔어요? 여러분 마술하는 것이 진짜 아니지요. 가짜지요. 가짜지만 진짜처럼 보이잖아요.

왜냐? 다 짜고 치거든요. 짜고. 마술은 다 짜고 해요. 조수들하고 다 짜고. 하여튼 이러한 상자 안에다가 여자 조수 넣어가지고 톱으로 썰잖아요. 왜 남자 조수는 왜 안하는지 모르겠어요. 남자 조수 들어가는 거 봤습니까? 왜 안 되느냐하면 남자 조수는 덩치가 커서 그래요. 구부리는 것이 잘 안돼서. 덜 속아 넘어가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세상에 이런 것은 매개자가 없으면 전부다 속임수에요. 매개자가. 인간 대 인간은 절대로 아무리 친하게 지내고 죽고 못 살아도 하나가 안 됩니다. 부부도 물론이고 자식도 형제도 절대로 연결이 안돼요. 할 수가 없어요. 율법과 이스라엘 사이에 여기에 진노가 주어지는 이유는 그동안 율법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연결이 안됐다는 뜻이에요.

율법을 자기 딴에는 지킨다고 지켰는데 이게 준비하신 매개자보다 영 이게 시원찮아. 엉터리에요. 율법대로 못 사니까 못 살면 뭐한다? 진노. 지키면 복. 이중에서 이스라엘은 진노일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선지자가 왔을 때 야 선지자는 어떻게 되겠지. 아니야 나는 아니냐. 나는 메시아가 아니야. 나는 그냥 선지자야.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나를 그냥 외치라고 보냈을 뿐이지 나는 그 분과 쨉도 안돼. 아무것도 안돼. 상대가 안돼. 그렇게 이야기한 거에요.

그렇다면 이것은 결국 이 이야기는 뭡니까? 구원자 있다? 없다? 보이는 세례 요한이 있다는 사실은 현재는 그런 식으로서는 메시아는 구원자는 부재해요. 없어요. 그래서 마태복음에 나올 때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눈으로 보이는 세례 요한을 분석하기 위해서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메시아와 관련성이 있는가를 조사단을 파견한 거에요.

그거 보고 세례 요한이 마태복음에서 이 독사의 새끼들아, 자식들아 욕한 겁니다. 니들이 구원받으면 돌멩이도 구원받겠다 이런 식으로 하죠.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세례 요한이 뒤에 오시는 메시아의 지시에 의해서 보이는 것으로 분석해서 세례 요한 말을 들을 수 있는 방편은 그런 것은 주께서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사다리를 차버린 거에요. 건너올 사다리를 차버린 겁니다. 봤는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독사의 자식들아 진노가 너희들에게 임한다라고 할 때에 그걸 9절에 보면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 좋은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짤린다. 심판하러 온다. 이렇게 이야기할 때 그걸 어디 바리새인만 들었겠습니까? 여기에 허다한 무리가 다 들었잖아요.

그러니까 세례 요한에게 오는 사람들도 겁이 난 거에요. 물은 거에요. 이런 시국에서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면 되겠습니까? 물은 겁니다. 지금 세례 요한의 위치가 어디냐 하면 황무지에요. 광야지요. ‘광야’. 세례 요한이 황무지에 있는 이유는 뒤에 오실 분 그 한분 때문에 자기가 지금 황무지에 와있는 겁니다.

무슨 좋은 낙을 보기 위해서 와있는 거 아니에요. 자기 나름대로 어떤 의도 있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온 게 아닙니다. 그분 때문에 자기는 황무지에서 외치고 있는 거에요. 그분 때문에. 나 때문이 아니고 세례 요한 본인 때문이 아니고.

여러분 어떻게 살아가요? 살아가는 것이 나 때문에 삽니까? 오실 그 주님 때문에 삽니까? 의미가 나로 종결됩니까? 아니면 주님까지 의미가 이어집니까? 주님이 일하라 했잖아요 이렇게 돼요? 아니면 내가 하고 싶어서 이걸로 마감되는 거에요? 어떻습니까?

세례 요한은 자기가 이게 취미라서 그런거 아니에요. 땡볕에 모피옷은 왜 입습니까. 땀띠 나게. 엘리야 흉내내는 거에요. 엘리야 흉내내라고 말라기 율법대로 하라고 한 거에요. 그러니까 이 황무지에 있는 세례 요한 입장에서 이렇게 돼요. 나는 아무것도 없다가 돼요. 나는 아무것도 없다. I’m nothing. 아무것도 없는 거에요.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여기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서 있어야 될 이유는 나한테 찾지 마라. 내 뒤에 오실 분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그분 없이는 난 아무것도 아니다. 바로 그분을 증거하기 위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여야 한다. 왜? 그분이 everything이니까. 그분이 ‘everything’, 모든 것이 되거든. 모든 것. 영어 막 나오지요. 태양의 후예 드라마 보면 everything 나와요.

그분이 모든 것이 되기 때문에 나는 차라리 아무것도 아닌 것이 기쁘다 뭐 이런 식으로 광야에 서있는 겁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할 수 있는 것은 뭐냐? 너희들도 나처럼 아무것도 아니여라. 아무것도 아니여야 한다 이걸 제시하는 거에요.

그동안 나의 나됨, 나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을 그냥 던져버려라. 그냥 던져버려. 던졌는데 그냥 던지면 쓰레기 차 필요하기 때문에 옷 두벌 있는 사람은 하나 줘버려라. 누구한테 주라는 말은 없어요. 왜냐하면 누구한테 이웃 사랑이 목적이 아니고 그건 율법이 되어버리니까.

지금 율법의 완성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율법대로 뭘 하라는 말이 아니고 지금 누구한테 줬습니다가 아니라 나에게는 이것들이 전에는 나와 함께 있었는데 지금은 이것들이 나에게는 없습니다. 왜? 나는 없음이라는 위치에서 세례 요한처럼 메시아를 기다리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에요.

장재남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가수인데 한 30년 된 가수인데 그 사람이 불렀던 노래, 나는 의자라는 노래가 있어요. 서 있는 사람은 오시오. 한명이라도 좋고 두명이라도 좋고 여럿이 와도 좋소. 당신이 앉는 편안한 의자가 되어 드리리다라는 노래에요. 노래가 가사가 상당히 너무 직설적이죠. 서 있는 사람은 오시오. 여러분들은 기억나지요?

이게 바로 세례 요한하고 사도 바울 차이점입니다. 세례 요한은 어디서 멈추느냐 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에서 멈춰요. 그런데 사도바울은 나는 쓰레기통. 모든 쓰레기는 나한테 가져오세요. 나한테 가져오세요.

질문 자체가 잘못됐어요. 구원받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됩니까라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거에요. 세례 요한도 세례 요한의 한계가 그랬어요. 세례 요한은 율법시대이기 때문에 메시아가 와서 약속대로 우리를 구원한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뭐가 문제냐 하면은 나에게 과연 구원받을 권한과 자격이 나한테 있느냐를 세례 요한 수준에서는 물을 수 있는 건덕지가 없어요. 세례 요한 수준에서는. 그분이 오시면 우리를 구원한다 이렇게 되지 그분이 오셔도 우리를 찬다 하는 그 대목까지는 아직까지 이르지 못한 겁니다.

나의 뿌리는 주님과 관련되어 있다라는 것까지는 세례 요한이 이해하는데 율법이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나의 뿌리가 주님의 원수가 된다 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어요. 백성들이 세례 요한을 맞이한 것처럼 세례 요한이 사라지고 난 뒤에 주님이 올 때 주님을 맞이하면 구원이 되는 줄 알았어요.

쉽게 말해서 친하게 지내면. 주님과 각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면. 주님 앞에 맛있는 거 사드리면 주께서는 호감 있게 나를 보는 줄 그렇게 알았지요. 12제자도 그렇게 생각했잖아요. 우리 쪽에서 주님을 차버리는 그러한 속성이 내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것을 제자들도 몰랐어요. 나는 저 사람 저주합니다 이런 소리가 차마 내 입에서 나올 줄을 생각도 못했지요.

그 원인이 바로 이거였습니다. ‘부재’.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 같으면 자꾸 뭐하냐 하면 상상을 해버려요. 상상의 출발은 나의 건재함, 나의 기대와 희망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나의 상상과 연결된 메시아는 이게 가짜입니다. 자기 부정이 안 되니까. 자기 부인이 안 되거든요.

자꾸 뭔가 이렇게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자꾸 살리는데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아니고 아예 끊어졌다는 거에요. 완전히 끊어져서 구원받을 가능성 자체가 없어요. “저는 아니지요?” 하는 사람도 거기 포함된다니까.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사도 바울의 입장은 세례 요한 말고 사도 바울의 입장은 뭐냐 하면 로마서 5장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원수된 자에요. 경건치 않는 자에게 주님께서 그냥 받아주는게 아니고 주의 매개가 있어요. 그 매개가 뭐냐 하면은 피입니다. 그 피 안에 뭐가 들어있느냐 하면은 우리 죄가 들어있어요. 우리 죄로 인하여 야기된 결과가 피거든요.

우리 죄로 인하여 안 죽어야 될 분이 죽었다는 그 피가 그걸 앞장 세워서 ‘우리 때문에 죽었습니다’가 우리 안에 삽입이 되면 그걸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받는 거에요. 기가 차지요. 기가 차고 코가 찰 일입니다 정말로. 아무리 그런 내용을 이야기해도 인간의 능력으로 이걸 믿고 받아줄 사람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기초가 내가 떠밀은 저쪽에 내가 싫어한 저쪽에 저 쓰레기통 안에 나의 뿌리가 저기 있기 때문에. 뿌리로부터 나왔던 내가 내 뿌리를 내가 차버리는 거에요. 이 도중에 우리는 변질된 겁니다. 나도 모르는 채 벌써 변질된 거에요. 태어날 때부터 모친의 태중에서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성령을 받아서 예수님의 피가 ‘아! 그 피가 그 피구나. 내 죄로부터 나왔던 피구나’를 아는 사람 같으면 나를 문밖으로 배웅해가지고 다시는 산자로 되돌아오지 못하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나’가 갑자기 피로 인하여 두 개가 되어버리는 거에요. 하나는 예수님을 ‘안 믿는 나’, 또 하나는 예수님에 의해서 선물로 ‘믿게 된 나’. ‘나’가 이렇게 두 개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어느 ‘나’를 안 받아줘야 되느냐 하면은 당연히 예수를 안 믿는다는 말은 누구를 믿는다는 것? 나를 믿는다. 내가 나의 모든 행함과 나의 모든걸 믿는 나로 하여금 나한테 작별인사를 해야 돼요. 나한테 작별인사를 해야 돼. 쉽게 하면 이렇습니다.

여러분들이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이렇게 안면 있는 사람 같으면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하잖아요. 그 뒤에 뭐가 달려야 돼요. 그냥 “안녕하세요 곧 죽을 인간아”. 그 말은 너무 입밖에 내지 마시고요 그때는 마스크 써가지고.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가만히 있지. 곧 죽는데”. 그 인사를 매일같이 나한테 하는 거에요.

내가 나한테 인사를 하는 거에요. “잘 있었나? 내일 살지 안 살지 모르는 인간아”. 이런 거요. 이제는 작별해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주께서 쥐꼬리 잡아 받아줬기 때문에. 두 개가 됐기 때문에 하나는 아낌없이 날려도 괜찮아요. 하나는 날려도 괜찮아요.

비슷한 커트라인에 있는 학교를 두 과를 합격했다. 다시 말해서 경찰대학도 합격되고 서울법대도 합격했다. 보면 경찰대학은 공짜로 4년이거든. 둘 다 날릴 수 없으니까 하나 날리잖아요. 날릴 때 아깝고 그런거 없어요. 이미 넉넉하기 때문에 날릴 수 있단 말이죠. 사실 또 날려보내야 되고.

바로 사도 바울이 소원이 뭐였습니까? 여러분한테 물어볼게요. 사도 바울이 소원이 뭐였지요? 나를 날려버리는 거에요. 빨리 속히 죽고자하는 거에요. 그만큼 배부르다 이 말이죠. 히딩크처럼 배고픈게 아니고 배불러요. 넉넉해요.

내가 스스로 나를 살리려고 아등바등 애쓰는 것은 날려보내도 괜찮습니다. 날려보내고 그 다음에는 놉니까? 하나의 ‘나’가 주님 혼자 있는게 아니고 주님의 손에 붙잡혔기 때문에 나한테 지시와 명령이 있어요. 그리스도가 나를 살렸다라는 사실.

이미 율법의 완성인 사랑으로써 피로써 자기의 피로써 우리가 잘못함으로 생긴 그 피로써 우리 죄를 씻어줬기 때문에 그 피가 있는 한 더 이상 우리 죄는 없어요. 우리 죄는 없다고요. 만약에 목사님 그 옷 입고 천국가면은 천사가 검역반에서 안 받아줍니다. 그 옷 가지고.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뭐냐 하면은 검역관이 이렇게 온도 재듯이 조사를 해요. 그러면 그 옷에 피로 희어졌는지를 봐요. 어린양의 피로 희어졌다는 것. 이게 또 하나의 자아를 갖고 있어야 이해가 돼요. 성령으로 ‘주와 함께 있는 나’가 있어줘야 이게 납득이 된다고요.

그러면 나는 다시 봅시다. 지금 세례 요한까지는 인간들이 용납해요. 그런데 세례 요한이 아무리 큰소리쳐도 안 보이니까 부재하겠지요. 부재한다는 말은 안 보인다는 말 아닙니까. 그러나 인간들 보기에는 주님 보시기에 이 구원받을 인간은 없어져야 될 인간이에요. 이 인간이 부재한 거에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 자아상, 예수님 안에 있는 그 인간만 있고 창세전의 예정한 인간만 있고 야곱 아브라함 이런 것만 있는 거죠. 이쪽 인간은 없는 거에요. 여러분 이 땅에서 아브라함이 영원토록 살았습니까? 아니지요. 아브라함이 오래 살았지만 아주 천년동안 산 건 아니지요. 없잖아요.

없는데 아브라함 어디 가있습니까? 그러면? 아브라함 죽을 때 아브라함 어디 가있어요? 성경에 나오지요. 하나님과 함께 있잖아요. 엘리야 죽을 때 엘리야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있잖아요. 모세 죽을 때 모세 시체 못 찾았지만 모세는 주님과 함께 있지요. 신약에서는 뭐냐? 지금 내가 너희 속에 너희가 내 안에 있다고 이미 성령 안에 있다고 확정 지었습니다. 성령 안에 있다고.

그런데 이 눈에 보이는 나만 아침마다 거울 보면서 보이는 나만 이것만 자꾸 신경 쓰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누구를 무엇의 가치를 완전히 하락시키느냐 하면 예수 안에 있는 우리를 하락시키게 되는 거에요. 눈에 보이는 것이. 내가 부재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내가 부재하다고,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면 주님께서는 내 안에 너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계속 살려고 하는 나를 힘들게 만들어버려요. 이래도 살래? 뭐 좋다고 살래? 이 지옥같은 세상에. 네가 오늘도 인사 안했구나. 안녕 죽어라 인간아. 죽어도 상관없어요. 계속 주 안에서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에.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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