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원수
빌립보서 3:17-19 십자가의 원수
성도는 하나님과 거래 관계에 놓인 자가 아닙니다.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는 관계가 아닙니다. 그냥 주어진 대로 여기 있게 된 존재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그 자체로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생각하는 평가물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원수’가 발생하도록 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원수’를 오늘 본문에 보면, ‘십자가의 원수’라고 하십니다. 즉 십자가 사건이 벌어진 그 현장을 지속적으로 반복시키겠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 그 현장이 어떤 분위기였습니까? 예수님 주위에 모여든 모든 이들은 각자 자기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달랑 자기 몸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몸이 보이지 않는 힘에 주눅이 든 상태였습니다. 이는 곧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게끔 정신적 압력을 가해오는 힘을 제대로 느끼면서 살고 있었던 겁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그 사람들을 다스리고 지배한 힘은 예수님을 체포하도록 분위기를 몰아갔습니다. 이 가운데서 “아니오!”라고 나설 위인들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체포와 자신의 일상을 무관한 관계이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즉 “저 예수와 나는 상관없기를 나는 원합니다”라는 고백을 다들 표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상관없더라도 지금껏 내가 살아온 나만의 일상에 전혀 지장없으니 그것으로 나는 충분하다”고 여긴 분위기가 대세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 예수님 개인의 불상사로 해석한 겁니다. 즉 십자가 사건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음을 결정적으로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천국과 관계가 끊어져도 전혀 아쉬울 것이 없이 나만의 행복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의식이 십자가 사건을 거론하고 발생하는 곳만이 분명히 드러나게 됩니다.
정말 예수님하고 상관없어도 좋아요? 정말 그런 겁니까? 내 소유로도 충분합니까? 십자가와 관계 끊어져 있어도 상관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