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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89 성전 탈환묻고답하기-

http://hompy.sayclub.com/hompy.nwz?targetmsrl=20078551&pop=pop#성전 완전정복성전 사수궐기대회 vs 성전 완전정복 (마 24: 1-28)지난 시간에 예수님 자신이 성전을 탈환코자 성전에서 전쟁을 벌리십니다. 성전을 사수 할려는 자의 방어적인 태도는 항상 역사적인 산물을 고수할려는 자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수시겠다는 것에 방해를 하고 가로막고 원수노릇을 하는 모습이 돌출 됩니다. 왜 사수 할려고 합니까 보이는 역사적 산물을 제거하면 곧 자기가 제거 되는 겁니다. 자기의 모든 공든 탑 믿음, 성전, 구원, 천국, 부활, 기도의 터전 자기가 그 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김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서 배태된 역사적 성전 눈에 보이는 성전에서 나온 그 모든 것이 묵시의 참성전이 되시는 어린양의 활동은 전혀 알 길이 없는 겁니다. 기껏 가진 것 토하는 것이 보이는 성전에서 배태된 보이려는 믿음으로 일관하고 그 보이고자 쌓는 자기 기념비적인 믿음만 양산 하는 겁니다. 바로 그런 성전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써 버림 받는 믿음으로 예수님 자신의 믿음을 펼치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전과 성전의 싸움 곧 하나님의 성전 vs 어린양 성전 ( 어린양이란 제물되는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님)의 싸움입니다.(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눅 2:34)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유대인에게는 목숨이 걸린 문제입니다 성전을 사수해야 거룩을 유지하는 것이고 성전이 있음으로 율법 지킴이 의미가 있습니다 성전이 없다면 율법도 무용지물인 셈입니다. 그 거룩을 유지함으로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에 놓여 있기에 끝까지 사수해야 함이고, 예수님은 성전을 탈환해야 약속을 성취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시는 겁니다. 즉 그리스도의 몸은 머리만 주장하는 몸이지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의 전을 사수 하는 사랑하는 사모하는 몸이 아닌, 예수님처럼 몸은 부인하고 부인 곧 십자가 지고 머리만 주장하는 예수님처럼 몸을 넘어 머리만 남기고 몸 자체를 주장하지 않는 것입니다.보이지 않는 머리에 의해 움직이는 몸은 더 이상 꾸미지 않습니다. 보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니 보일려는 믿음일 수밖에 없지만 그것 마저 빼앗겨 버려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가득채워 버립니다. 그 믿음을 선물로 받았기에 머리가 어떻게 일하시느냐에만 주목하는, 보이지 않는 머리에 지배받는 자입니다.보이지 않는 머리이기에 일단 보이는 몸을 신경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보일려는 믿음입니다. 단순한 외식이 아닙니다 도덕주의자들이 비판할수 있는 그런 외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겉만 판단하는 귀재입니다. 중심은 예수님만 보십니다. 오로지 예수님만 밝혀내신 외식이었지 아무도 눈치 못챈 외식이었습니다. 자기자신 마저도. 그러니 오늘날 우리들이 우리 자신에게서도 속아 넘어가는 외식인 겁니다. 오로지 예수님에 의해서만 지적받는 외식이라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진짜로 텃습니다. 가망 없습니다. 가망 없다는 것을 알도록 하신 일이 은혜가 한 일이라는 겁니다.어느 인간이 나 쭉정이입니다 라고 고백하며 신앙생활 합니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그래도 알곡의 모습 쪼매라도 있다고 자기 가능성을 열고 신앙을 하지 미쳤다고 쭉정이라고 고백하며 신앙할 수가 있답니까? 그랬다간 교인들의 눈총 받기 쉽상이고 짐승들의 표적감 명단에 오르게 됩니다. 제거 대상 1호. 가차없는 난도질의 대가들인데 누가 화를 자처하겠습니까? 하고파도 못하는 환경 속에 놓여졌다는 겁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예수님 눈치 볼려고 하니 교회가 날 왕따 시킬려고 하고 교회 눈치 볼려고 하니 예수님이 우시는 구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나 강도입니다 죽여주세요. 그저 십자가만 긍휼만 바라봅니다. 이래 나오면 목사는 그렇게 말한 교인이 밉습니다. 미워하기 시작 합니다. 닥 1년에 한 번 고난 주간에만 허용하고 에브리바디 다 같이 함 하고 치워버리지 1년 내내 했다간 상담 1순위에 오릅니다. 담임목사 원로목사 부목사 강도사 전도사 여전도사 다 나서서 상담 한다고 중보기도해 주겠다고밤 낮으로 전화질 해댑니다. 상담(정신감정) 결과 쭉정이 양성 반응이 나타났다. 그땐 모가지 입니다. 다 속고 속이는 마당에(보이는 교회에서 말하는 사랑은 오로지 정치임) 자기 혼자 강도라고 주장해 버리면 우리도 강도라고 해야하냐? 싫타. 강도 이제 그만, 십자가 이제 그만, 자기부인 이제 그만, 죄인 중의 괴수 이제그만, 버림받을까봐 벌벌 떠는 모습 이제그만, 이제부터 오로지 자기긍정적 사고방식, 적극적인 사고방식, 자기성숙 자기구원 자기영생 새생명의 삶 성화된 삶 믿음의 경주를 하는 뛰고 뛰어라 자 누가누가 잘하나 올치 올치 너 1등 너 2등 참 잘했어요 도장 꽝 구원확보 이래야 종교놀이 할 만 하지 않는가 말입니다. 오 영적 아버지 당신은 나의 오야봉 영적 아부지입니다. 아부지예 아부지예. 눈에 보이는 대상을 급기야 우상화 하는 겁니다.그래서 교회 부서버리실려고 보이는 것들 다 무너뜨리실려고 예수님이 성전을 탈환하시는 겁니다. 놔두면 자기양까지 다 배려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양 건지실려고 저거 아니다 저건 가짜야 내가 진짜야 내가 진짜 성전이야 라고 자신의 성전 됨을 둘 다 부서드리심으로 무너뜨리시므로 비로소 보이지 않는 믿음이 발생합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저주인데 분명 저주인데 그 저주 속에서 진짜배기 믿음이 튀어나오는 겁니다.(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장의 "믿음으로" 라는 표현을 "예수님의 열심" 곧 "십자가의 피로써" 라는 의미로 읽어보세요 보이는 교회에서 죽었다 깨어나도 나오지 못하는 믿음이 바로 이 믿음입니다. 기껏 보이는 성전에서 나오는 믿음이라고 해봐야 [보이는 성전]입니다. 곧 교회꾸미기, 교회가꾸기, 자기포장입니다. 마음껏 자기자신을 포장할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겁니다. 너도 나도 다 포장을 했으니 다들 부러워 하는 자리 상석 상좌 오늘날은 직분획득 차지하기 위해 보이는 대상을 목표로 삼아 저 사람처럼 되겠다고 나서는 형편입니다. 보이는 것을 목표 설정, 십일조(헌금,성미)내기 현황그래프 교회충성봉사 참여도, 전도현황 그래프, 보이지 않는 목표는 경쟁 할수 없음 의욕을 상실케 한다고 싫어합니다.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4) 앞 내용은 보이는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기고 오로지 푯대(목표지점), 죽으심을 본받아 죽은자 가운데 다시 사신 예수께 잡힌바 된 그 것, 여기에(그리스도의 고난) 참예치 않는 자를 바울은 눈물을 흘리며 경고하기를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 자다 라고 합니다.(빌 3:10-12) 열심히 꾸짖고 여러번 말하고 얼마나 분주한지 묵시의 세계가 더 바쁨]아무도 그 포장지를 뜯어줄 자 없습니다. 남도 자기자신도 다 속아 넘어간 상태라서 서로 부러움의 대상이지 벗어버려야 똥인줄 더러움인줄 아무도 못보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포장지를 확 뜯어 버립니다. 믿음으로 포장된 외식임을 지적하십니다. 단순한 포장이 아니라 자기도 속아 넘어갈 정도로 평생을 걸치고 다닌 배설물이었던 겁니다. 예수님만이 단순 무식하게 벗어라 라고 합니다. 우리는 따집니다 왜요? 이유고 뭐고 빨리 벗으라고 합니다. 마치 똥을 뒤짚어 쓴 사람에게 빨리 씻으라고 하지 이유를 알려줄 필요 없는 상황인 것처럼 인간만 당연함을 모르고 그 진동하는 냄새를 모르기에 이유를 따집니다. 자기가 납득할만한 이유가 대지 않으면 이단 마귀로 몰아버리듯이 예수님은 마귀로 몰려 죽었던 겁니다.(요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교회를 너무 사랑해서 참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을 머리 둘 곳 없게 죽이더라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아픔입니다.자 그럼 오늘은 그 성전을 탈환하고 성전을 사수하는 싸움 가운데에 일어나는 이 현상을 바로 종말이라고 하는데 이 종말의 현상의 여파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마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종말에 일어나는 현상을 나열하면서 그야말로 혼돈 상태, 전쟁에서 나타나는 참혹한 현실을 있는그대로 표현하신 내용들입니다.자 그런데 웃끼는 것은 지금 평화의 시대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든든하게 안정감있게 있는 이상 그런 예수님의 소리는 웃끼는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인 셈입니다. 그러니 전혀 비현실적 내용이다는 겁니다.그런데 예수님만 진지합니다. 얼마나 진지 하면 반드시 일어날 것을 지금 눈에 펼치시는 듯 소름 끼칠 정도로 상세하게 세세히 알려주시는 겁니다.그러니 예수님은 지금 평화의 시대에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종말의 상황을 지금 눈에 펼쳐지듯이 말씀하시고 계시니 과연 그 이야기가 누구에 먹혀 들겠습니까?먹혀들든 말든 묵시의 세계가 이 땅에 이 역사에 개입하는 참현실을 예수님만 바라보고 있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질 않으니 그저 보이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성전을 평화롭게 사수하는 자기 의 만 남는(챙기는) 그래서 예수님만 외식하는 자로 고발하듯 보일려는 믿음만(역사) 추구하는 자라고 묵시로써 고발하는 겁니다.지금 발등에 불 떨어졌다고 불이야 불이야 피하세요 피하세요 제발 지옥 가지 마세요 라고 외치는 분은 예수님 뿐이라는 겁니다. 성경 전문가 성화론자 새생명의 삶 행위론자 구원의 확신을 주장하는 자는 지금 불이야 불이야 라고 예수님이 피를 토하며 외치는 그 외침을 막고 방해하고 입을 찢어버리는 짖을 하는 것이 이 종말의 현상에서 다 적나라 하게 드러나는 겁니다.그러니 자기 믿음 관리를 자산 관리 하듯, 통장에 가계부 쓰기 하듯(역사만 신경씀) 합니다. 나는 무엇을 했냐 무엇을 남겻고 무엇을 믿고 어떤 행동을 했냐 라는 전기문 역사 등등의 일기입니다. 오늘 나에게 묵시는 어떻게 관여했지? 묵시는 도대체 무엇을 남겼지 왜 그 묵시가 이런 일들을 터트리지? 라는 관점은 일기장에 기록하고파도 기록이 안되는 그애말로 소멸하러 던지는 불과 같이 내 마음에 불을 지릅니다. 그러니 역사고 뭐고 기록이고 뭐고 일기든 자서전이든 전기문이든 뭐고 다 손놓고 그 묵시 앞에 그냥 마냥 엎뜨려 수그리 수그리지 않으면 그 불에 사라질 판국입니다.(평상시 성전에 날마다 예배드리러 가는 이사야의 역사적 습관이 소명을 받았다? 그렇게 생각한게 지금 제단 숯에 입술을 활라당 다 태워버리러 온 천사 앞에 통할 이야기 입니까? 죽었다 나 이제 죽었구나 복창하는 이사야가 그런 생각 했나요? (사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예수님은 지금 이 심정으로 외칩니다. 야들아 세상이 두 조각 난단다 두 조각 지구를 사과 두 조각 내듯 뚝 잘라 버리니 주님의 자녀와 거짓 선지자의 마귀 패거리들 두 패로 갈라지는 현상을 지금 말하고 있으니 거짓선지자 패? 예수님 패? 그것이 평화의 성전을 쥐고 있는 자들에게 먹혀들 리가 있겠습니까? 아무튼 예수님은 이사야가 묵시의 세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듯 예수님은 혼자 묵시의 세계를 보시고 놀라운 일들이 너희들에게 일어난다는 것을 혼자 혼자 발을 동동 구르며 외치는 겁니다.자 그럼 참 재미있는 것은 그 두 패로 갈려지는 현상을 종말로서 그 여파가 쭉쭉 땅에 지진이 나서 땅이 쩍쩍 갈라지듯 확 퍼지는데 인자의 쪽과 거짓선지자로 나누이는데 참 재미있는 것은 인자는 보이지 않는 숨어 은폐된 양상으로 표현되었고 거짓선지자는 부지런히 역사 속에서 활동하는, 즉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항상 그리스도를 내세워 여기있다 라고 보이게끔 증거하더라입니다. 즉 두 그리스도 이지요. 한 쪽은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라는 양상으로 보이는 그리스도의 출현을 증거하는 메시지, 얼마든지 포착할수 있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뒤를 따를수 있는 그리스도를 제시 곧 거짓 선지자의 외침이요, 또 한쪽은 자꾸 은폐 시키고 숨어서 활동하는 동해번쩍 서해번쩍 일지매처럼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반짝 출현했다 사라져버리는 바람같은 모습 번개같은 모습 즉 포착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는 것은 거짓 선지자의 외침이 성전에 무엇을 세운다? 보이는 그리스도를 세운다는 겁니다. 그런 그리스도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 건물이 될 수 있고, 인간이 그리스도 구세주로 서게 되고. 하여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왜죠? 표적이니깐요 보이는 표적이 아니면 거짓선지자의 외침이 사람들을 미혹 할수 없는 겁니다.반대로 예수님은 무슨 표적 입니까 십자가입니다 이것 뿐입니다. 십자가가 모든 보이고 과시하고 내세울꺼리를 자랑꺼리를 다 없애버리는 묵사발 내버리기에 요나의 표적 외에는 다른 표적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이 역사의 고발로 앞장 세우는 겁니다. 너가 바로 나를 십자가에 못밖았다 라고 말이지요. 광야 이스라엘이 이 묵시적 외침을 하며 여리고성을 돕니다.[우리는 주님을 광야에서 10번 원망했습니다 그 원망이 3가지 증표로 담겨졋습니다. 그 원망을 법궤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긍휼이 덮어버렷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법궤를 메고 이 원망한 증거와 용서의 증거를 어깨에 메고 앞장 섭니다. 뿌뿌뿌 나팔 불며 법궤 앞장세워 여리고를 뺑뺑이 도는 겁니다.] 묵시적 전쟁은 십자가만 앞장 세우는 전쟁인 겁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십자가에서만 나오기 때문입니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인줄 누가 알았으리요? 누가 십자가의 예수님이 믿음이었는 줄 누가 눈치 챘겠는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즉 모른다 라는 겁니다. 십자가도 우상화 되어 십자가든 성령이든 자기 가능성으로 변질화 시켜버린다는 겁니다. 이미 인간이 약속을 못지킨다는 것이 십자가로 확증 되어 예수님만이 언약을 완성 했거늘 이제 십자가를 믿어주었으니 자기 가능성으로 성령을 힘입어 언약을 완성해 보겠다는 겁니다. 이미 완성했는데 뭘 또 완성 합니까?자기가능성을 개입시킨 자기믿음을 첨가시켜 십자가를 믿겠다는 것은 곧 성전을 사수할려는 바리새인의 입장처럼 아직도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는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저 이론적으로 빠싹하지만 정작 예수님이 믿음을 준 적 없기에 보이는 것에만 모든 신경을 쓰는 입장 뿐인 겁니다. 그래서 죽기살기로 모든 것을 걸고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성전 사수를 하는 겁니다.보이는 역사속의 신학 성전 교리 자기확신 체험 간증 이것을 들고 십자가로 들어가면 십자가가 용납한다는 겁니다. 이런 착각과 바울의 배설물로 보는 것과는 천지 차이겠죠. 분명 바울은 다 똥이었음을 십자가에서 밝히 봄으로 더러운 것을 버렸는데 이제 아예 당당하게 오히려 십자가 앞에 서고자 똥을 잔뜩 처바르고 당당하게 십자가 앞에 서고 있으니 다들 그런 것을 믿음 좋다고 여기고 있으니 기가막힐 노릇 아니겠습니까?그래서 모르기에 그 보이는 것을 다 빼앗아버리고 발가벗은채로 무엇을 내세우는가를 통해 믿음이 결정 되는 겁니다. 성전을 빼앗긴 자는 내세울 꺼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고수하는 자는 내세울꺼리가 너무 많습니다. 이 성전을 사수하기 위해 동원된 자기의 모든 믿음들이 빼앗길리 없는 믿음이라고 하니 예수님을 죽여버리는 겁니다.그러나 지금도 주님은 살아계셔서 이 성전을 부수시는 작업을 하십니다. 성전을 탈환코자 지금도 우리들과 싸움 거시러 직접 씨름하러 늘 피하려 하는 우리들을 잡고 물에 빠뜨리시므로 날마다 죽음 속에서 믿음을 피어내십니다. 이 믿음의 꽃을 피우기 위해 주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십자가로 다가오십니다. 십자가를 회피하고 십자가 한 번 믿어준 것으로 끝낼려고 하는 우리의 얍샵한 처세술에 놀아나지 않으시는 예수님은 지금도 십자가를 지시고 본을 보여 주십니다. 빨랑 십자가를 지고 성전 탈환의 승리에 참예하자고 말이죠.(롬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주님! 성경의 위대한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은 곧 원수 지옥 마귀와의 싸움임과 동시에 바로 예수님과 나의 전쟁임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나와 예수님의 전쟁입니다. 성경은 타인을 훈계하며 가르치는 재미, 믿음을 자랑하는 재미. 간증하는 재미. 종교생활 하는 재미가 아니라 오로지 타인이 아닌 나를 겨냥하여 싸움을 전쟁을 벌리시는 핵전쟁 보다더 3차대전 보다더 무서운 전쟁이 바로 나와 예수님의 전쟁이기에 그 전쟁에 승리한 예수님의 십자가에 참예하며 기뻐 외칠수 있는 복음의 빚진자 되게 하여 주소서. 동네 사람들 에수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이기셨데요? 이 기쁜 소식을 내 생애 끝가지 나에게 증거할수 있는 복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주님 뜻대로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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