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양20200709a슥2장5절(로드킬)-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스가랴

안양20200709a슥2장5절(로드킬)-이 근호 목사

스가랴2장입니다. 천사의 활동에 대해서는 구조적으로 파악해야 돼요. 구조적이라 하는 것은 구조를 딱 생각하게 되면 거기에 틀에 다 맞도록 되어있습니다. 2장1절~5절에 보면,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측량줄을 그의 손에 잡았기로 네가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 그가 내게 대답하되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를 보고자 하노라 하고 말할 때에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나가고 다른 천사가 나와서 그를 맞으며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스가랴)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불성곽이 된다는 말은 어떤 외부 침입도 다 방어해 낸다는 겁니다.)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요렇게 되어있지요.

이것을 구조적으로 설명하려면 구조를 맞춰나가야 되는데요. 혹시 이 집에 삼성전자 직원들이 갑자기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전자제품 주문하게 되면 아저씨 둘이 와가지고 설치하지요. 한 사람이 설치하고 난 뒤에 딩동~ 눌러가지고 “잘 작동되는지 서비스 보러 왔습니다.” 하는 것처럼, 천사 둘이 교대로 스가랴에게 들이닥치는 겁니다. 그럼 그 구조적으로 한다는 말은 뭔 뜻이냐 하면, Subway. 어디서 들어본 적 있어요? 샌드위치 프랜차이즈지요. 서브 웨이 샌드위치. 빵이 이리 있고 작대기 빵 이 사이에 뭔가 야채나 고기를 집어넣습니다. 집어넣으면 샌드위치 빵이 이렇게 형성이 됩니다.

둘이 왔다는 것은 스가랴를 둘로 쪼갠다고 보면 돼요. 서브웨이의 샌드위치처럼 둘로 쪼개가지고 중간에다가 천사의 활동을 거기다가 집어넣는 거예요. 천사의 활동을. 그러면 샌드위치 되는 거죠. 이게 바로 뭐냐 하면 관통이에요. 관통. 천사가 와서 내 인생을 관통을 해버립니다. 관통하게 되면 우리 성도는 스가랴가 성도기 때문에 선지자기 때문에 성도는 하나가 두 조각나고 두 조각나서 그 하나의 본드처럼 두 조각인데 다시 하나가 돼요. 다시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이 중에 뭐가 포함이 되었는가 하면, 영적 요소가 포함된 채 다시 하나로 봉합이 되어버리지요. 봉합이 되는 거예요. 이런 서브웨이 샌드위치 말고 제가 옛날에 먹던 옛날의 빵 보름달이라는 빵이 있어요. 샤니에서 나온 보름달도 있고 요건 빵 조각에다가 곰보 비슷한 게 있고요, 밑에는 하얀 크림이 있지요. 이걸 좀 냉장에 보관하면 크림이 막 새어나옵니다. 하얀 게 막 손에 묻고 하지요. 50년 전에 나온 빵이에요. 지금도 나오고 있어요. 크림 삼분의 일이 딱 들어가게 되어있지요.

그러면 이 사람이 성도가 만약에 크림빵, 보름달 빵이라면 성도가 어디에 가든지 무엇이 흘러나오겠습니까? 하얀 크림이 흘러나오겠지요. 서브웨이 샌드위치 입 벌리고 먹으면 입 작은 사람은 안에 속에 있는 거 다 튀어나옵니다. 다 흘러버리지요. 다 튀어나오지요. 스가랴는 선지자입니다. 선지자이기 때문에 영적인 것에 의해서 구성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지상을 방문하게 되면 성도를 재료로 해서 구조적으로 활동하게 되어있어요. 구조적으로 활동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성도 입장에서는 혼자 있는 게 아니지요. 홀로 있는 게 아니에요. 스가랴2장을 우리가 보고 있는데요. 스가랴2장을 보고 있으면서 참, 이 성경을 가지고 그냥 실천을 하려고 하는 사람한테는 딜레마가 되어버려요. 난감하지요.

왜냐하면 이 스가랴2장처럼 살려면 아무리 용을 쓰고 애를 써도 소용없어요. 왜냐하면 천사가 안 오면 끝나기 때문에. 천사가 안 오면 끝나거든요. 그러면 이 스가랴2장에 대해서 이건 누구의 이야기냐 하면 스가랴 사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려요. 우리하고 상관없는. “아이구, 스가랴 좋겠다. 영적인 천사를 만나서 좋겠네. 아이구, 신앙생활 저절로 되겠네. 이렇게 뭐 질투하면서도 부러워하면서도 그건 나하고 상관없어.” 이렇게 밀어낼 수가 있어요. 그러나 이건 구약이다 말이죠.

구약에는 개인적으로 있던 것이 신약에는 집단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구약에 개인적으로 왔던 그 상황이, 상황이라 하지 말고 아까 구조했으니까 그 구조가 개인구조가 신약에서는 집단구조로 찾아오게 되어있어요. 집단구조로. 제가 이렇게 말로 하는 것 보다 성경 본문 찾아보면 더 확실하겠지요.

사도행전10장13절에서 14절 봅시다. 베드로에게 천사가 나타났어요. 베드로가 기도하는 가운데서 지붕에 올라갔는데 시간은 제육시. 육시니까 점심 때 쯤 됐는가, 시장하여 먹고자 함에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고 한 그릇이 내려오는데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에 매여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 땅에 있는 각색 네발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 있어 가로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할 때 베드로가 못 먹습니다. 이리 된 겁니다.

베드로가 배가 고플 타이밍을 노려가지고 하나님께서 베드로보고 비몽사몽간에 꿈도 아닌 것이 현실도 아닌 것이 이렇게 주어지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활동하는 구조를 지금 우리는 구축하고자 합니다. 베드로가 할 때, 먹어라. 못 먹습니다. 먹어라. 못 먹겠다. 왜 못 먹느냐 하면, 율법에 의해서 먹을 수 없는 것들이 보자기에 싸여서 내려왔기 때문에 못 먹습니다. 되어있는 거예요.

이게 바로 신약의 상태에요. 개인적으로 스가랴는 유대인입니다. 이스라엘이에요. 개인이 율법을 지니고 있지요. 그래서 스가랴는 자기 구조가 뭐냐 하면 율법구조에요. 그렇다면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율법과 율법 사이가 갈라지고 여기에 새로운 서브웨이 샌드위치처럼 갈라지고 그 위에 하나님의 율법과 상관없는 것이 여기에 관통하면서 여기에 정착하게 돼요. 들어온다 이 말이지요. 요 사이에 율법과 율법이 갈라진 사이에 그냥 들어온 겁니다.

그런데 들어온 것이 이게 들어와야 선지자가 되거든요. 선지자의 특징은 뭐냐, 율법의 완성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구조가 뭐냐 하면 율법은 인간으로서는 미완성이에요. 미완성 가운데 뭐가 들어옵니까? 율법의 완성이 들어와 버려요. 그러면 어디에 주도권이 있느냐 하면, “나는 율법대로 못 살았어. 어떻게?” 하는 것이 주도권이 아니고, 율법완성을 여기에 이미 장착하고 있는 거예요. 지니고 있는 거예요. 율법완성을 지니고 있는 겁니다.

이걸 가지고 신약에서는 뭐냐 하면 영적 존재라고 하는 거예요. 영적 존재. 영적 존재는 신비로운 게 영적 존재가 아니고 이게 신약에 오게 되면 다 이루었다는 겁니다. 영적인 상황이 들어와 버리면, 영적 상황의 특징은 뭐냐 하면 시간의 끝. 시간의 끝 그 다음. 끝의 끝. 시간의 끝의 끝. 시간의 끝의 그 다음에 있는 상황이 주어지게 돼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구원된 겁니다. 언제 어디서든 무엇을 하든 구원된 겁니다.

요 똑같은 원칙이 베드로에게 온 거예요. 사도행전에 베드로는 뭐냐 하면 구약과 신약이 겹치는 과도기적 인물이에요. 베드로가. 그래서 사도바울한테 추궁당한 겁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추궁 당한 거예요. 베드로 생각을 들어보면요, 일리가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셨다. 율법을 주면서 그냥 준 게 아니고 율법의 완성이 되어야 복을 받는다. 신명기에. 율법이 완전해져야 복을 받는다. 따라서 너희들은 이 율법을 지켜라, 고 되어있어요. 지켜라. 순종하라. 몸을 다하여,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도 이야기했고 베드로도 그걸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베드로 입장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느냐, 구조적으로. 율법이 끝나고 난 뒤에 그 다음에 율법의 완성이 온다. 라는 것이 베드로 입장에서는 상식입니다. 율법이 끝나고 난 뒤에 율법의 완성되시는 분이 온다.

그런데 율법이 끝나기 전에 미리 주님께서 율법의 완성된 게 주어진 거예요. 그러니까 베드로가 복음을 전한다는 말은 본인이 복음을 전할 만큼 대단하고 완벽하고 흠이 없는 자가 아니라 도리어 완성이 옴으로서 자기가 대외적으로 대인관계에 있어서 흠이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예요. 흠이 있는 사람.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율법 전한다고 핑계대로 자기 행동의 완전함과 옳음과 자기 잘남을 율법이라는 명목으로 전해버리는 오류를 차단하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이걸 쉽게 하면 우리는 늘 주님에게 당해야 한다. 그래야 이게 복음이 나와요. 늘 나부터 주님한테 늘 당해야 돼요. 당해야 될 이유가 나는 나의 완전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래요.

나의 완전을 추구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보면 내가 죄가 없어야 복을 받으니까. 사적을 욕망을 포기 못하고 율법과 나의 결합으로 내 잘되기를 바라는 그것이 계속 펄펄 살아있는 거예요. 그러면 주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이걸 오히려 역으로 가는 거예요. “주님, 저 성도입니다. 차마 이건 못하지요.” “먹어라.” 이리 되는 거예요. “제가 이걸 먹어버리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율법이 다 폐기됐다고 그들이 그렇게 아주 방탕에 빠질 것이고 혼선에 빠질 것인데 내가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주님께서는 “그냥 먹어라.” “그냥 먹어라.” “나는 니 못난 속에 잘난 내가 들어가겠다.”

그래서 이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과도기적인 입장에서는 베드로에게는 개인이 있잖아요. 그런데 베드로가 복음을 전한다고요. 사도바울도 마찬가지고 복음을 전해요. 지난 낮 설교에 우리가 빌립보서를 보면서 사도바울이 마치 자기가 과거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요.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나는 율법에 흠이 없고 나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고, 그리고 나는 하나님 앞에 열심히 있어서 교회를 핍박한 자다.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던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9장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고린도전서9장20절,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굉장히 여기 구조가 복잡해요. 이것을 이렇게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나는 율법 없는 사람 이방인에게는 나는 율법 없는 사람으로 다가선다.” 가 아니에요. 율법 있는 사람한테는 율법 있다고 다가서는 게 아니고, 율법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는 율법 없는 사람으로 다가가고, 율법이 없는 사람한테는 율법이 있는 사람으로 다가가는 거예요. 반대지요. 이유가 뭐냐 하면, 조금이라도 나를 증거 할까봐. 나 자신은 중간에 서브웨이로 쪼개졌는데 이게 쪼개졌는데 복음으로 봉합된 것임에 불구하고 마치 내가 알아서 복음을 가져온 것처럼, 내가 알아서 복음을 관리하고 있는 것처럼 이렇게 착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율법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복음은 항상 그쪽을 공격해요. “율법 없는 게 자랑이다. 인간아!” 이런 식으로. 그게 바로 복음이고, 율법 있는 자한테는 “율법 있는 게 자랑이다. 인간아!” 이런 식으로 공격을 하는 겁니다. 그건 왜 그러느냐 하면, 인간이 어떻게 구원받고자 하는 것은, 구원받고자 하는 그 자체가 이게 천사의 왕림을 무효로 하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알아서 잘 할 것 같으면 외부에서 올 필요가 없잖아요.

누군가가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있는 자가 와가지고 닦달내고, 율법 있는 자는 율법 없는 자가 와가지고 “니 아직도 졸업 못했나?” 이런 식으로 닦달 내어서 내가 하늘나라로 가고자 하는 계단을 천국의 계단을 밟아가는 이 모든 시도가 헛방이고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게 하는 겁니다.

계단으로 올라가려면 쪼개져야 되는데 인간은 본인의 동질성이란 주체의 동질성 때문에 안 쪼개지고 점점 더 단단해지려는 거예요. 쪼개지고 쪼개지면 완전히 해리되고 해체돼요. 고체가 액체 되어 버린다고요. 흘러내려야 돼요. 아무것도 없어야 된다 이 말이죠. 이러한 이치내의 근원은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창세기3장에서 구조가 되어있는데, 그 창세기3장 구조를 잠시 말씀드리고 질문하나 던질게요.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 하면, 일단 창세기3장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아담과 하와를 쫓아내시고 동쪽으로 쫓아냈지요. 에덴동산 동쪽이라면 동쪽 길을 하나 마련하고 이게 동쪽 길에서 떨어지면 이게 뭐냐, 근본 토지가 되는 겁니다.

이 토지는 말이 토지지, 저주가 열기를 뿜어내는 저주가 쉬지 않고 움직이는 거예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말 안 듣듯이 이 땅의 저주는 우리가 잠재울 수가 없어요. 우리말을 안 들어요. 이건 주님의 말을 듣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종의 딸꾹질 심한 사람은 딸꾹질을 멈추라고 한다고 멈추지 않잖아요. 내 마음 따로 자기 몸 따로 놀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이 땅은 땅의 본성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가 나무란다고 잠잠해질 땅이 아닙니다.

저주 없는 곳은 이 땅에 없어요. 인간들이 일부러 저주 없는 곳을 만들어내지요. 그게 뭐냐, 지하벙커. 지하벙커나 아니면 한적한 곳에, 부자들이야 신종 코로나 있으니까 미국의 부자들은 외딴섬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곳에다가 저택을 만들어놓고 드론이 있어가지고 전화해가지고 음식 같은 걸 배달해가지고 그들은 지금 한적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부자들은. 돈은 많겠다 음식 시켜먹는 거예요. 먹고 즐기는 거죠.

그러나 이 땅에는 어느 곳에 가도 저주 없는 곳이 없어요. 토지가. 제가 질문하는 것은 이겁니다. 에덴동산에서 내보내놓고 여기에 용역인지 모르지만, 경비요원들을 천사를 통해서 경비요원들이 지킬 때, 제가 질문하는 것은 이 사람들이 불칼을 가지고 지키는데 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고 두루 돌아요. 두루 돌면서 교대 근무로 돌면서 지키는데 왜 지키느냐 하는 겁니다. 그게 질문입니다. 왜 지키느냐? 음식 먹고 난 뒤에 토해서 올라오면 안 되겠지요. 식도에서는 그걸 막는 장치가 있지요.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막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뭐냐 하면, 이게 기본 구조인데. 천사의 세계와 인간 세계는 뭐가 있느냐 하면 여기에 불 심판이 있는 겁니다. 불 심판이. 아까 스가랴 다시 한 번 봅시다. 스가랴2장 5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그 사면에 불 성곽이 된다고 했지요. 불 성곽. 그러니까 지금 오늘 본문 내용이 이거에요. 본문 내용이 뭐냐 하면, 천사 둘이 와서 천사1, 천사2가 와서 뭘 하느냐 하면 처음에는 척량기사가 와요. 척량기사. 두 번째는 설계도에서 실무자가 오게 됩니다. 건축. 이렇게 만든 것은 요 경비요원들이 만든 불 심판을 지상에다가 심어버리는 역할을 하는데, 심을 수 있는 그 도성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예루살렘으로 하는 거예요. 예루살렘 또는 다른 말로 하면 시온. 이렇게 계획을 잡았다는 거예요. 여기에.

2장 전체에 보면 다 그렇게 되어있어요. 예루살렘 되어있지요. 그 다음에 10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이라 되어있지요. 시온의 딸아. 천사의 계획은 여기다가 구조를 만드는데, 지상에 있는 자기 백성 속에다가 이 구조, 이 구조적인 요소를 집어넣는 거예요. 그럼 백성들은 사적인 것이 아니고 집단구원이니까 신약에는. 백성들 모은 곳이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걸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거예요. 예루살렘으로.

여러분이 가장 이해하기 가장 쉬운 단어로 제가 표현한다면 이게 뭐냐 하면 주님께서 이 땅에 박아 넣은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겁니다. 성도 자체가. 성도 자체가 율법의 완성되는 요소를 박아 넣음으로서 기준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성도는 뭐로 되어 있느냐 하면 천국과 지옥이 중첩된 것이 샌드위치에 요소로서 우리 안에 들어오는 거예요. 심판의 기준이라는 것은 이 사람은 천당 가고, 이 사람은 지옥 간다. 의 기준으로서 자기 백성 만들기에 나선 거예요.

측량을 한다는 말은 숫자 헤아림을 그렇게 헤아리는 거예요. 측량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에 예루살렘을 건설한다는 것은 벽돌 하나, 하나가 사람의 숫자 하나, 하나라는 말이지요. 144,000을 짓기 때문에. 열 두지파 열 둘 이라는 그 헤아림이 있잖아요. 1, 2, 3, 4,...12이 뭐냐 하면 그게 하나의 문을 형성하고 문에 필요한 벽돌, 건물을 형성하는 거예요. 스가랴에다가 이렇게 해서 천국 가고, 이렇게 해서 지옥 간다는 고 중심 되는 기준을 주께서는 박아 넣어버립니다.

그러면 전에 창세기3장에서 중심 되는 기준, 그러니까 생명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생명을 생명답게 보호하기 위해서 저주 받은 인간은 생명나무에 온다, 못 온다? 올 수 없도록 박아 넣은 그 경비요원들의 그 기능을 이제 누가 하느냐 하면, 오늘날 신약 성도들이 그 기능을 하는 거예요. 이래 봐도 용역회사 직원들이에요. 천국의 용역회사 직원들이라고요. 이 기능을 하는 거예요.

기능을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이겁니다. “와 봐야 소용없다.” 불가능성이지요. 구원 불가능성. 구원 불가능성을 마음껏 외치는 겁니다. 본인은 구원 받아놓고 구원 불가능하데. 참, 성도의 팔자가 이런 팔자에요. 본인은 멀쩡하게 구원받아 놓고 인간 구원 받지 못한데요. 어떻게 애를 쓰나 노력해도 구원되지 못한답니다. 스가랴가 얼마나 욕 얻어먹겠어요. 스가랴가.

왜 구원받지 못하느냐 하면, 여기에 구원되려고 불 화염검에 찾아온 사람들이 전부 다 왜 찾아오느냐 하면, 천국가려고 하는 이유가 나한테 필요하기 때문에 그래요. 나한테. 나한테 필요하기 때문에 이것이 구원이 안 되는 거예요. 이 구원이라는 것, 이 천국이 나한테 필요한 천국, 나한테 필요한 구원, 지옥이라는 그 고통을 끝내 피하고 싶어서 내게 유리하다 싶어서 그렇게 해서 성경보고 찬송하고 교회 나오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구원이 불가능한 겁니다.

옛날 개그콘서트에 그런 코너가 있었어요. 어떤 뚱뚱한 여자 신입 대학생이 대학 들어오니까 어떤 멋있는 선배가 기타치고 있더란 말이죠. 기타 치는 곡목은 김광석이 불렀던 서른즈음에 그 노래를 부르는데. 여자가 막 이렇게 해가지고 자기에게 오라고 춤도 추고하거든요. 그러나 관심을 안보이니까 땡! 탈락! 하는 거예요. 그 오빠가 놀리듯이 아휴~ 아쉬워라. 아이구~ 아쉽다! 하는 그런 대목이 있거든요. 세상 사람들은 모든 시작을 샌드위치가 아니에요. 그냥 빵 덩어리에요. 그냥. 딱딱한 바게트라. 딱딱한 바게트로 살기 때문에 복음 모른다 해도 땡! 탈락! 해도 아쉽지도 않아요. 그 사람들은.

시편2편3절 잠시 보겠습니다. 개그콘서트 코너까지 하나도 버릴 게 없어요.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여기 웃는다는 말은 앞에 ‘비’자 하나 더 들어가야 돼요. 그냥 웃는 게 아니고 킁~ 콧방귀 뀌는 거예요. 비웃는 거예요. 세상 관원들이 교회 소모임 모이면 벌금이 얼마? 삼백만원. 이렇게 할지라도 성도는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이게 비웃는다.

왜 모이지 말라고 하느냐 하면 모이게 되면 병에 걸리고 병에 걸리면 왜 안 되느냐 죽거든요. 그들은 그들의 일은 안 죽는 게 일이거든요. 안 죽는 게 일이에요. 그러나 생명나무 입장에서 보면 벌써 이미 이 토지에 산다는 자체가 이미 죽어있는 겁니다. 죽어있으면서도 안 죽겠다고 하는 것이 이게 완전히 이건 대 사기꾼에게 사기 걸린 거예요. 이건. 크게 사기 걸린 거예요. 이렇게 보시면 되는 겁니다.

아버지, 어머니 사고로 돌아가시고 자식들은 그 아버지, 어머니가 생명보험에 들은 걸 모르고 그냥 아버지 장례 치렀다 말이죠. 엄마가 보험에 들었다는 것을 모르고 그냥 사는데 어느 날 보험회사에서 와가지고 “아이들아, 나한테 잘 보이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되면 돈 줄게.” 이렇게 했을 때 애들은 어떤 낯선 아저씨가 와서 돈 준다 하니까 시키는 대로 다하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건 뭘 행함으로서 얻는 게 아니고 이미 주도록 되어있는 거잖아요. 이게 사기에 말려든 거라고요.

인간은 이미 이 저주받은 토지에 사는 인간들은 구원을 받도록 되어있는 게 아닙니다. 구원을 받도록 되어있는 것이 아니고 천사의 기능, 다시 말해서 주님이 찾아오게 되면 천국이 있음을 알려주는 그런 기준의 기능자에요. 기준의 기능자지, 집단구원이 그거에요. 집단적으로 시온 또는 예루살렘 시민이 되는 것이지 내가 원하는 내가 살길을 찾아서 주께서 복음주시고 예수님 보내신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니가 이렇게 하면 구원된다는 것은 지금 그 악마의 사기꾼들이 교회를 통해서 사기치고 있는 겁니다. 장난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면 어떤 사람은, 사도바울이 성령으로 일하니까 어떤 사람은 돈 주고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 이러고 있다 말이죠. “얼마면 성령 주겠습니까?” 이게 뭐냐 하면 꼭 자기중심이다. 꼭 자기중심이거든요. 그런데 아까 사도행전10장에서 베드로는 뭐냐 하면 본인이 뭐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본인은 처음에 어떻게 했습니까? 율법을 고소하기 때문에 나는 못 먹겠다. 이건 내 구원받는데 지장됩니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 베드로의 고백이 무슨 뜻이냐 하면, 인간들의 평소의 고백이에요. 그게.

평소는 하나님을 생각하던, 예수님을 생각하던, 나한테 이익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던 겁니다. 나를 일꾼으로 용역회사 경비사원으로 주께서 나를 고용한다는 생각을 못하고 내 회사를 내가 차리는 거예요. 내가 사장되고. 내가 회장되고, 내가 이사되고. 나를 재벌2세로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계속 자기 생각밖에 안돼요. 자식이 재벌2세 되려면 아버지, 엄마는 재벌 되어야 되거든요. 자기가 재벌2세가 되지 말고 재벌2세하고 시집가면 되지. 인턴으로 취직해가지고 계단에 커피 들고 가다가 우연히 마주쳐가지고 재벌2세하고 결혼하면 되잖아요.

성도가 보기에는 이 땅에는 저주뿐이에요. 이 땅에서 내가 사는 방법은 땡! 탈락! 이에요. 내가 잘 살 수 있고 구원되는 어떤 여지도 이 땅에 없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와서 심어줘야 되는 거예요. 이 땅에는 없으니까. 이 땅에서 율법 지켜서 구원받는 게 아니에요.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한다고 구원받는 게 아니고 없어요. 없고, 위에서 서브웨이 샌드위치처럼 중간에 알갱이를 속에 심어줘야 돼요.

심어주게 되면 나는 두 조각나지요. 나의 주체는 갈라지면서 주도권은 나에게서 날아가 버렸어요. 내가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 하는 자체가 없어요. 왜냐, 베드로는 율법에 의하면 율법을 위반했거든요. 베드로가. 왜? 먹지 말라는 율법을 본인이 어겼으니까. 그런데 베드로는 이야기할거예요. 내가 먹으려고 한 게 아니고 주님이 시켰다! 시켰다! 이리 되는 거예요. 바로 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주께서 시켜버리면 내가 따로 어겼다. 안 어겼다. 를 말을 입을 다물으라 이 말이지요.

나는 율법을 어겼습니다. 안 어겼습니다. 율법을 어겼다. 안 어겼다. 말을 한다는 것은 아직도 내가 따로 살고 싶은 거예요. 개인 구원에 대해서 내가 성공하고 싶은 거예요. 탈락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에요. 그게 깨져야지. 그게 깨져야 돼요. 생명나무 가는 길을 막았다. 불로서 막았다. 그래서 시온산에 위가 화산이에요. 불붙은 산이에요. 인간들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런데 주께서는 모세를 시내산까지 불붙는 화산 위로 올라가지요. 올라가면 모세가 경험한 것은 뭐냐 하면 저는 이걸 제목으로 할까. 로드킬.

이쪽 숲과 도로 새로 났고요, 이쪽 숲에서 고라니 한 마리 건너오다가 아무것도 없다고 여겼는데 건너오다가 차에 완전히 작살나서 온 몸이 찢어지지요. 찢어지고 난 뒤에 시체를 이쪽 맞은 편 숲에다가 툭 던져 놓으면 이게 바로 성도의 팔자 아닙니까. 아무도 없는데 주님한테 로드킬 당했어요. 나는 고라니다. 멀쩡한 고라니가 죽은 고라니 됐는데 이쪽에서는 바로 생명마저 이겨내는 부활의 힘이 작용하거든요. 죽었던 고라니가 이쪽에서는 살아있고 이쪽에서는 죽어있고. 그 사이에 십자가라는 로드킬이 일어난 거예요. 십자가 로드킬이 있는 거예요.

건널 때는 만만하게 봤지요. 교회 와서 찬송 부르고, 삼위일체 배우고, 제자훈련하면 되는 줄 알았지요. 건너오다가 진짜 주께서는 “먹어라!” 하면, “저는 그거 못합니다. 나 성경 좀 압니다. 그걸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까라 하면 까라.” 그게 완전히 나보고 옛날의 나. 단단히 뭉쳐진 나. 그걸 해체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전략이었습니다. 못난 내 안에 잘난 천사의 업무가 주어지는 거예요.

그런 그게 천사보다 더 위대한 게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영생을 얻는 표준모델이 되기 때문에 위대한 거예요. 죄인으로 불구하고 의인만 간다는 천국에 들어가니까 천사들이 부러워하는 거예요. 요한계시록 마지막에 보면 천사가 나타났을 때 사도요한이 절하니까 천사가 거부하는 거예요. “왜 그러십니까? 오히려 당신이 더 부럽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천사의 몸으로 오신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죄 있는 육신의 몸으로 왔다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이게 하나님의 계획안에 포함되어있는 거예요. “너희 죄인 되기 싫지. 내가 죄인 될게. 내가. 너희들이 싫어하는 죄인 될게. 너희 지옥가기 싫지. 내가 갈게. 내가 지옥 갈게. 같이 죽자! 그러면 내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스가랴에 나오는 새롭게 구성된 시온, 예루살렘도성이 그렇게 마련된 겁니다. 스가랴는 이제 죽었어요. 천사가 와서. 스가랴는 이제 할 일은 고난 받는 것 밖에 없어요. 실컷 욕 얻어먹는 것 밖에 없어요. 왜? 율법을 고수하는. 다른 사람은 율법을 지켜야 된다. 율법은 저만큼 있으니까 우리는 조금씩 계단 밟듯이 조금씩, 조금씩, 심화학습해가지고 더 정교하게 지켜야 된다. 하는데 스가랴는 벌써 끝났어요. 다 끝나버렸다.

다른 사람은 뭐냐, 토끼에요. 토끼. 토끼인데 거북이는 이미 태극기 벌써 다 뽑아버렸어요. 오늘 제목을 토끼와 거북이할까. 로드킬이 더 멋있다. 이미 도달해버렸어요. 욕본다. 야들아! 니하나 몸 건지기 위해서 니가 벌벌 떠는 거 보니까 욕본다. 나는 그런 식이 아니고 이미 구원 받아버렸는데. 주께서는 이런 방법이 있다는 것은 이건 예수님이 오시게 되기 때문에 그 방법이 구약의 스가랴로서 미리 그게 예시가 된 거예요.

예수님이 죄된 육신의 몸으로 오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에게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스가랴 니 이리와! 심판받아. 그걸로 끝나는 거예요. 천사가 와서 스가랴를 쪼개어서 중간에 박아 넣었다는 말은 바로 스가랴의 하나의 그 경우가 장차 올 모든 예루살렘의 백성들의 경우를 먼저 앞서 보여주는 겁니다. 여러분이 모세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지요? 모세라는 말이 구원의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의미를. 어디로부터 건저 냄이거든요. 어디서부터냐 하면 물에서부터 건저 냈다는 거예요. 물.

그러니 모세가 물에 들어간 이유가 그 당시의 애굽의 바로왕이 지시를 한 거예요. 소그룹 모이면 삼백만원 벌금. 이렇게 지시를 해서. 여자는 살려두되 남자는 다 죽여라. 그 지시가 먼저 있었고 그 지시가 없었더라면 자기 엄마, 아빠 품에서 얼마든지 재롱부리면서 살 수 있어요. 그러니 평범하지 않고 핍박을 받는 겁니다. 그게 아까 봤지만 다시 말씀드리면 세상의 모든 어떤 세상에 저주 받은 세상, 땅의 토지 저주가 어떤 힘을 구축하는데 그 힘이 뭐냐 하면 기름 부은 자의 관계를 끊고자 하는 식으로 그들은 어떤 활동성을 드러내요. 어떤 속성을 드러낸다고요. 속성을.

나라가 중요하냐, 교회가 중요하냐, 교회 소그룹 모임이 중요하냐, 나라가 중요하냐, 나라는 뭐냐 하면, 저주 받은 자의 성곽이거든요. 성곽. 스가랴식으로 하면. 하나의 캐슬이라 말이죠. 집합체 또는 공동체. 국가 공동체를 말합니다. 국가 공동체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공통점을 뽑아내야 돼요. 공통점. 왜 이들은 하나로 묶여서 사는 걸 그리 좋아하느냐의 공통점. 그러면 새로운 시온 또는 예루살렘. 신약의 교회는. 무슨 공통점이 있느냐, 이 두 공통점이 첨예하게 대립되어야 되지요. 스가랴에 의하면.

이쪽의 공동체는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혈통에서 나오고 혈육에서 나왔어요. 요번 수련회에서 혈육 강조 많이 할 겁니다. 혈육의 실체를 밝힐 거예요. 혈육의 실체를. 미리하면 안되는데. 룻은 초반부터 혈육이 끊어져요. 두 개 끊어집니다. 한 개 끊어지고, 두 개 끊어지고. 이 두 개를 여자가 어떻게 점프해서 잇느냐, 그 과정이 룻의 이야기에요. 혈육이 끊어져요. 혈육은 혈육을 단단히 묶기 위해서 그들은 도성이라는 도시를 만드는 겁니다.

여기서 뭐냐 하면 법이 주어지는데 법에 순응해요. 법에 순응하는데, 이 저주받은, 생명나무가 없음에 따라서 이미 죽음이잖아요. 생명나무가 없는 곳이기 때문에 죽음이에요. 죽음인데 나름대로 죽음을 거부하고 살았다는 흉내를 내기 위해서 그들은 안 죽으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그러니 법이라 하는 것은 법안에 내용이 뭐냐 하면 “이렇게 하시면 안 죽습니다. 우리 가운데 공동체 가운데 들 죽습니다. 소규모 모임을 모이지 않으면 늙어죽겠지만 코로나 때문에 죽지는 않습니다.”라는 것에 대해서 공통점이 뭐냐, 전부 다 이구동성으로 동의했다는 사실이에요. 동의했다.

그러니까 나라에 어떤 법이 딱 오게 되면 개인은, 국민은 그걸 평가하는데 뭐냐, 저 법이 나한테 생존에 유리할 것인가, 불리할 것인가, 유리하면 따라주고, 불리하면 안 따라주고 이리 되는 겁니다. 나라의 법을 거부해도 거부하는 제스처가 수상해. 음흉해. 사적인 자기 하나 목숨 건지겠다는 거예요. 만약에 나라의 법이 더 심하게 하면 강남에 돈 있는 사람은, 홍콩 같은 경우에 법이 한 번 강화하게 되면 어디로 튀려고 합니까? 돈 있는 사람은 어디로 갑니까? 영국으로, 대만으로, 미국으로 튈 생각하는 거예요. 돈 있는 사람이에요. 따라서 유동자산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홍콩에 집 한 채밖에 없는 사람은 그거 팔면 다 날아가 못 산다니까요. 죽으나 사나 그 동네에 살아야 돼요. 그러나 여윳돈이 있는, 유동자산이 있는 사람은 해외 펀드나 해외은행에 주식을 사논 사람은 이거 포기해도 영국가 살 수 있는 겁니다.

결국 인간은 이 나라, 이 세상 나라라는 것은 개인주의가 뭘 모였다? 목적이 뭐다? 더 살기 위해서. 그거뿐이에요. 그거뿐입니다. 크게는 국가지만, 작게는 가정도 마찬가지지요. 돈 안 벌어주는데 왜 살아요. 돈 안 벌어주는데 왜 삽니까. 살기 위해서. 로드킬 당하려고 사는 게 아닙니다. 로드킬은 하늘의 작품이지요. 내 작품이 아니에요. 내가 불가능해요. 내가 불가능하거든요.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불가능한 그 방법을 주께서는 우리 안에다가 심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불가능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에요. 구원된 사람은. 다른 얘기할 수가 없어요.

“그럼 니 생각은 뭐냐?” “나는 살고 싶어.” “그런데 왜 안 해?” “내 안에 불가능이 주도권을 쥐고 있으니까.” 나는 자꾸 가능성을 시도해요. 가능성. 어떻게 하면 살 궁리가 있는가, 어떻게 하면 돈 벌 궁리가 있는가. 자꾸 생각한다고요. 틈만 나면. 신문 길가에 파는 거 해가지고 그저 뭐 적당한 거 적게 일하고 돈은 좀 되고, 수시로 내놓을 수 있는 거 찾고 있고. 그것만 찾는데. 이건 나의 가능성은 두 빵조각처럼 계속해서 살아있는 거예요. 우리는 천사가 아니에요. 죄인이에요. 죄인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안에 있는 알갱이가 빛이 나는 거예요. 이게 신약에 오게 되면 나는 세리와 창기를 구원하겠다는 그 구조하고 딱 맞아떨어져요. 강도. 별 볼일 없지. 바로 인간 아니지. 천당 간다! 바리새인보다 먼저 가. 바리새인들은 이게 찌그러지지 않았어요. 아주 단단해요.

그 어떤 사람이 포항에 가가지고 포항 중앙동에 가가지고 해초해물 칼국수를 시켜가지고 먹어봤어요.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이 백종원입니다. 골목 상품 살린다고 가봤거든요. 여러 가지 해물 들어갔는데 아무리 먹어도 해물 맛이 안나요. 왜냐하면 이 사람이 해초 해물 칼국수를 하려면 해물도 냉동해물 말고 살아있는 거 그 때 그 때 해야 되고 해초 칼국수도 시중의 시제품 사지 말고 지가 해초로 해서 밀가루 넣어서 해야 되는데 아무리 봐도 해초 해물 맛이 나지를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성도라는 것은 뭐냐 하면 이 불가능의 맛이 나야 돼요. 주께서 우리 성도를 가지고 할 때 불가능의 맛이, 인간은 적응 못하지요. 불가능이지요. 왜냐하면 자기는 살고 싶은데 주님께서는 죽게 만들었으니까.

그냥 사는 것. 나만 사는 것. 이것만 나와야 되는데 이상하게 뭐가 나오느냐 하면 분명히 나는 내 성질대로 성깔대로 내 이기주의 내 돈만 챙기는데 이상하게 내가 관리할 수 없는 다른 맛이 나는 거예요. “천국과 지옥은 내가 이렇게 애쓴다고 가는 게 아니야. 인간아!” 라고 그 다른 천국의 맛이 우러날 때 그거 맛 집입니다. 그게 맛 집이에요. 더 쉽게 말씀드릴까요. 어떤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 사람이 골목시장에 나오는데. 그 사람이 20대는 가수한 사람이고, 이제는 뭐하다가 뭐하다가 망해가지고 이제 식당 차린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들은 뭘 느낍니까? 이상하게 일반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줘요.

아침에 일어나서 식당 와가지고 정리하고 점심식사시간에 한 번 바쁘고 그 다음에 오후에 런치타임 쉬고 커피 한잔 해가지고 먹고 그게 사람 사는 거지 거기서 뭐 이상한 걸 발견하겠습니까. 그러나 성도는 이상한 걸 발견하는 빠졌다는 것을 발견해야 돼요. 그게 뭐냐 하면 천국과 지옥의 맛이 안 나요. 그 일상 삶에서. 안 믿는 남편들 혹시 있으면 안 믿는 남편들 보세요. 일상을 보세요.

천국은 이런 곳이고, 지옥은 이런 곳이라는 맛이 우러나지를 않아요. 그냥 일상에요. 시작도 내 편한대로 끝까지 내 편한대로. 그저 우리 혈육적인 우리 가정. 나아가서는 우리나라. 이런 것만 생각해요. 하여튼 교인들은 지만 생각해가지고 모이지 말래도 꼭 모이더라. 이런 이야기.

그래서 그게 뭐냐 하면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해요. 이미 천국 가기 전에 천국의 모습을 보여야 그게 성도라 하는 겁니다. 이게 스가랴에요. 스가랴 안 죽었어요. 살아있으면서 완성의 모습. 의가 완성된 천국의 모습을 스가랴에 몸을 통해서 이동하면서 움직이니까 스가랴는 기준이 되는 겁니다. 그 당시에 메시아가 되는 거죠. 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니까.

오늘날 성도가 이렇게 파종 또는 산종. 산종이라 하는 것은 흩어져서 씨앗을 뿌리는 거예요. 온 각처에 성도가 있는 이유는 그 지점에서 이미 미리 온 심판에 기준 노릇을 하는 거예요. 용역회사. 두루 두루 도는 화염검의 경비요원으로서 그 자리에 있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땅에 마지막 때 선지자지요. 성도가. 선지자인 거예요. 우리가 알아요. 그들과 똑같은 걸 알아요. 알아요.

나도 죽기 싫고 돈 좋아하는 걸 다 알지만, 다른 요소가 추가적인 요소가 있다고요. 추가적인 요소가. 그러면 이렇게 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눈치채가지고 비웃지요. 비웃으면 그게 바로 시편2편3절을 우리가 본의 아니게 실천한 게 되고 순종한 게 되고, 순종 안 했는데 순종하게 만들었고, 그게 주님의 말씀이 우선되는 것. 드러내게 하는 거죠. 그럼 그 말씀이 뭐냐, 요거하고 첫째 시간 마치겠습니다.

요것도 제목으로 괜찮은데요. 주의 말씀과 우리의 육신, 죄 있는 육신과 결합하는 이유가 뭐냐 이거에요. 주님의 부지런함. 쉬지 않고 일해요. 지금도. 우리만 살뜰히 놀고 있지, 주님은 굉장히 부지런한 거예요. 식당 주인이 자기 가게 운영할 때 부지런해보이지요. 주님은 더 부지런해요. 우리는 잠잘 때 주님은 주무시지도 않고 졸지도 아니하십니다.

갈 사람과 안 갈 사람을 갈라내는 이 작업을 어느 지점, 어느 한 순간도 멈추지를 않았어요. 그러면 그 작업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 자신이 거주지가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되게 하는 겁니다. 교회만 성전이 아니에요. 우리의 거주지가 왜 그러느냐, 이 거주지에서 우리는 육적인 알약을 먹거든요. 그런데 그 거주지에서 우리는 주님이여, 좀 주님 찾아오지 마시고 나 그냥 오늘 좀 쉴래요. 성경도 안보고, 기도도 안하고 나 오늘 좀 쉴랍니다. 하는 그 순간에도 주께서는 부지런히 우리로 하여금 낯선 영성을 떠오르게 만들어요. 떠오르게 만들어요.

다시 말해서 우리로 하여금 일상의 생활을 그냥 하지 않도록 부지런히 우리를 가지고 우리의 요원 역할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10분 쉽시다.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23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8,092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도르가의 소생 / 200802 - 최고관리자 20-08-02
18,091 묻고답하기 타이밍 빌립보서 최고관리자 20-08-02
18,090 자유게시판 2020 여름수련회 룻기강해 제9강 : 율법과의 경쟁 창세기 최고관리자 20-08-01
18,089 자유게시판 2020 여름수련회 룻기강해 제8강 : 재강의 - 최고관리자 20-08-01
18,088 자유게시판 2020 여름수련회 룻기강해 제8강 : 족보교체 - 최고관리자 20-08-01
18,087 자유게시판 2020 여름수련회 룻기강해 제7강 : 없음의 자식 창세기 최고관리자 20-08-01
18,086 자유게시판 2020 여름수련회 룻기강해 제5강 : 예외존재 - 최고관리자 20-08-01
18,085 자유게시판 2020 여름수련회 룻기강해 제4강 : 아버지의 자리 - 최고관리자 20-08-01
18,084 자유게시판 2020 여름수련회 룻기강해 제 3강 : 율법에서 생명 - 최고관리자 20-08-01
18,083 자유게시판 2020 여름수련회 룻기강해 제 2강 : 초과적인 것 - 최고관리자 20-08-01
18,082 자유게시판 2020 여름수련회 룻기강해 제 1강 : 경계 룻기 최고관리자 20-08-01
18,081 묻고답하기 Cross And Resurrection 십자가와 부활 - 최고관리자 20-07-31
18,080 자유게시판 52강-호 13장 15-16절(실패의 기적)200729-이 근호 목사 호세아 최고관리자 20-07-30
18,079 자유게시판 여름수련회 교재 못받으신 분을 위해서 시편 최고관리자 20-07-29
18,078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예수님의 승천 / 200726 - 최고관리자 20-07-28
18,077 자유게시판 23강-빌 3장 10-12절(십자가와 부활)200726-이 근호 목사 빌립보서 최고관리자 20-07-27
18,076 자유게시판 41강-욥기 12장 7~12절(단절과 부활)20200726 이근호 목사 욥기 최고관리자 20-07-26
18,075 묻고답하기 교만함의 본성 빌립보서 최고관리자 20-07-26
18,074 자유게시판 안양20200709b슥2장5절(로드킬)-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20-07-26
열람 ➜ 자유게시판 안양20200709a슥2장5절(로드킬)-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20-07-26
18,072 묻고답하기 Rubbish 배설물 - 최고관리자 20-07-25
18,071 자유게시판 51강-호 13장 12-14절(흔적)200722-이 근호 목사 호세아 최고관리자 20-07-23
18,070 자유게시판 321강-YouTube강의(숨소리 시편 104:29)20200720-이 근호 목사 시편 최고관리자 20-07-21
18,069 자유게시판 320강-YouTube강의(울부짖음 마태복음 8:29)20200720-이 근호 목사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20-07-21
18,068 강의 유튜브 강의 (320강, 321강) 울부짖음 , 숨소리 200720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20-07-20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