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강-YouTube강의(울부짖음 마태복음 8:29)20200720-이 근호 목사
320강-YouTube강의(울부짖음 마태복음 8:29)20200720-이 근호 목사
제320강, 제목은 ‘울부짖음’. 울부짖음은 자기의 예상대로 세상이 안돌아갔을 때 뭔가 폭발하는 거죠. 사람이 화를 내고 분노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세상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를 상대하느냐 하면 사람하고 사람을 상대해요. 사람하고 상대하게 되면 그 가운데 예의라는 게 있습니다. 배려, 예의, 예의범절, 에티켓 이런 게 있단 말이죠. 그런 게 있어줘야 사람 사는 관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죠.
그런데 그렇게 예의 차림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를 좋게 보고 사귈만한 사람이라고 호감을 갖도록 유도하죠. 벌써 그 때부터 세상을 잘못 읽기 시작한 겁니다, 그 때부터.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고 잘 보여야 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처분하거나 그것을 일굴 수 있는 그러한 대상이 아닙니다.
울부짖을 때에 여러 가지 생각도 많이 하겠습니다만 마태복음 8장 28절에 보면,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드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렇게 되어 있죠. 자, 이 점을 제가 자세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을 방문 안했으면 이 세상은 누구 세계냐 하면 귀신 세계, 마귀 세계 맞아요. 그들은 울부짖을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딱 지나가니까 그 쪽에서 귀신들이 먼저 예수님을 알아보고 “소리 질러 가로되”. 절망적이다 이 말이죠. 이제 자기 미래는 끝난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귀신같이, 마귀처럼 자신의 미래를 알았으면 좋겠어요. 예수님이 왔을 때는 ‘이 땅의, 이 세상의 주인이 인간이다’ 라고 행세할 수 있는 시효가 만료되었어요, 끝났어요. 주인도 아닌 게 그동안 주인 행세한다고 꽤나, 경상도 말로 참 ‘욕봤다’ 이런 말 있죠, 욕봤다. 헛수고 했다 이 말입니다. 수고는 많이 했는데 다 헛짓이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면서 남을 만날 때 이 세상 자체가 세상 신인 악마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너도 욕보고 있고 나도 욕보고 있고 둘 다 헛짓하고 있는 거예요. 믿을만한 대상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인간은 믿을만한 대상이 아니에요.
그런데 둘 다 복음을 모른다 칩시다. 그러면 이 세상 사는 것이 만만하지 않잖아요, 힘들죠. 자기의 욕망은 높은데 세상은 자기 뜻대로 안되는 겁니다. 들었던 이야기인데 여자나이는 36이고 남편나이는 39이에요. 여자는 필리핀 여자고 남자는 놈팽이쯤 돼요. 나이 39인데 머리 노랗게 물들이고, 39에 물들였어요, 젊을 때 물들였으면 말을 안해요, 귀걸이 딱 하고. 그것도 연예인 쪽이 아닌데 다른 데인데.
남자는 그냥 엄마 집에 대충 얹혀서 살고 36살 먹은 필리핀 여자하고 결혼했는데 이 필리핀 여자는 한국말 잘 못해요. 할 줄 아는 게 뭐냐 하면 “우리 남편 돈 없어. 나 돈 쓰고 싶어.” 그 말밖에 못해요. 아무 일도 안 해요, 아무 일도. 애 하나 놓고 또 임신해놓고 돈은 혼자 있는 늙은 시어머니가 열심히 벌어서 아들 내외 다 먹여 살리는 그런 형편이에요. 여자는 그저 돈 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몰라요, 필리핀 여자인데.
그럴 때 필리핀 여자가 갖고 있던 심정을 ‘우리는 이해못하겠다’ 라고 하지를 않아요. 왜냐하면 이 땅에 태어나서 그냥 인간의 내면에 갖고 있는, 툭 치면 그냥 나오는 이야기가 “돈 쓰고 싶어요. 그러나 돈 벌기는 싫어요.” 나도 한국말 잘 못한다면, “돈 벌기 너무 힘들어요. 그러나 돈 쓰고 싶어요.”
그 필리핀 여자는 가장 근원적인 것을 그대로 표내는 겁니다. 그리고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 이해 못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왜냐하면 누구나 동일하게 그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러면 이 땅에서 울부짖는다는 것은 결국 뭡니까? 돈 없어서 마음대로 못써서 울부짖고 또는 돈 있어도 자기 몸이 아프면 병원에 누워있고 약 들어가면 팔팔하게 활동 못하는 게 서러워서 또 울고불고 하잖아요.
그런데 오늘 이 본문 마태복음 8장 28-29절 말씀에 의하면 이 귀신이 울부짖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에요, 차원이. “지금껏 우리가 이 세상 주인노릇 했는데 왜 당신이 오셨습니까?” 그것 때문에 울부짖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좀 더 이어봅시다. 귀신의 이러한 울부짖음에 대해서 귀신의 오야붕이 사탄이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서기관들보고 뭐라고 했느냐 하면 네 아비는 악마라 했습니다. 악마가 예수님을 어떻게 처리했습니까? 제발 우리 눈앞에서 좀 사라져 줘. 그래서 그들이 공모해서 죽였잖아요. 이것은 귀신의 울부짖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예수님에 대해서 분노를 갖고 있는 겁니다. 화를 내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에 대해서.
아까 제가 얘기한 필리핀 여성을 보고 이해 안되는 게 없죠? 우리 속에도 그런 마음 들어있으니까. 철이 없어 그렇지 우리도 사실 내면에 그런 게 있죠. 이해를 한다 이 말이죠. 나는 시집왔는데 왜 이 집에 돈이 없냐고 화내고 울부짖는 것은 이해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도 똑같은 입장에서 울부짖고 있으니까. 애써 그걸 억누르고 참고 있을 뿐이죠.
그런데 귀신이 울부짖는 것은 뭐냐 하면 지금껏 우리 판인데, 우리 마음대로 인간을 갖고 놀았는데 당신 오시면 우리 일이 방해되고 끝장났으니까 울부짖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본문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봐야 되죠.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뭐 천당 가려고 온갖 아양을 떨면서 “주님 사랑합니다” 뭐 찬송 부르고 뭐 주여 불쌍히 여겨달라고 온갖 것 하죠. 하지만 그러한 그 표현이나 표정 속에 못마땅함, 주님에 대한 떨떠름함, 주님께서 나를 너무 홀대한다든지 무관심하게 방치한다는 것에 대한 섭섭함 이런 것이 섞여 있을 수가 있어요.
그걸 애써 감추기 위해서 “주님은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 지시고 너무 고마워요.” 말은 그렇게 하는데 우리 마음속에는 주님에 대한 서러움, 울분, 이게 아까 이야기한 부르짖음. ‘주님, 내가 내 주인인데 주님 와버리면 내 뜻은 좌절되니까 섭섭합니다.’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죠. 이게 바로 마태복음 8장에서 귀신이 주님 앞에 이런 태도를 가진다는 거예요.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내 죄를 내가 안다는 것은, 성령 받은 사람들은 바로 자기의 내용이 속속들이 다 까발려지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그 점을 주님께 감사한다는 거예요. 그냥 건성건성 예수 믿는 게 아니고 까발려지면서 아, 이런 죄까지 용서했다는 것, 제대로 주님의 하신 일이 이해가고 그걸 인정하고 수긍이 되는 사람. 감사로 이어지죠. 울부짖음에서 감사로 이어지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