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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3장 7절 (구원 시스템) 200707b-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3장 7절 (구원 시스템) 200707b-이근호 목사

자,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어디서 찾는가? 하나님을 어디서 찾는가라는 질문을누가복음에서는 사람을 어디서 찾는가? 참된 사람을 어디서 찾는가? 참된 사람. 아버지로부터 인정받는 유일한 사람을 찾아라. 이 말은 사람을 찾는다는 말은 나는 일단 아니고를 전제로 하지요. 하나님에 의해서 움직이는 진짜 사람은 어디 있는가?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이 되기 때문에. 말씀이 육신이 되기 때문에 그런거죠. 그럴 때 우리는 말을 이렇게 바꾸면 됩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어디 있는가? 같은 말이에요. 참된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라는 이 말은 세상 사람들 세상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어디에서 사는가?

세례 요한같은 경우에는 광야에 나와있지요. 세례 요한이 훌륭하다 생각하지 마세요. 세례 요한은 실체가 없다고 생각하고 배후에 주님이 계시거든요. 주님의 마이크니까. 한번 적어보겠어요. 방금 한 질문을.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는 지옥 갈 사람의 평가를 두려워하지말라. 같은 뜻인데요 지옥 갈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라. 이재용같은 사람. 지옥을 앞두고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마라.

그러면 이런 것이 다 될려면 일단 나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지요.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도 마찬가지고 자꾸 예수님께서 두려운 쪽으로 제자들을 몰아가요. 풍랑 일어도 “아이고 무서워라.” 뭘 해도 “저 사람들이 저 권세자들이 우리를 체포하면 어떡하겠습니까” 하고 겁을 내고. 주님께서 성도의 인생을 몰아가는데 꼭 우리 힘으로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그런 사태를 자꾸 부딪히게 만들어요.

어떤 때는 속상하지요. 제발 좀 나를 건드리지 말고 제발 나도 좀 숨 좀 쉬고 삽시다. 숨 좀 쉬고. 힘들어서 못 살겠습니다. 그 정도 밟았으면 그만큼 백인이 흑인을 8분 40초 동안 밟았으면 이젠 좀 놔주면 될텐데 하나님은 8분 40초도 아니고 평생을 우리 모가지를 밟고 힘들어 하니까 이제는 하나님이고 예수님이고 괴로워 못살겠다. 나 좀 삽시다 이렇게 나오겠지요.

주께서 이렇게 압박을 가하고 강박을 가하고 지옥 갈 사람을 괄호에 넣어버리고 그냥 사람으로 보는 거에요. 사람. 저 사람이 나 싫어해. 저 사람은 너무 부러워. 지옥 간다는 이 사실을 자꾸 괄호에 집어넣는 겁니다. 집어넣는 거지요. 일종의 이거는 판단 중지가 되어 버리죠. 판단 중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 안하고 무조건 사람들이 뭐라고 한다면 수군거리면 오들오들 발발 떨어요. 자기만 떠는게 아니에요. 애들보고도 집에 아내나 남편 보고도 당신 말조심해. 말조심해라. 차타고 가다가 남편이 운전하다 좀 다투면 조수석에 앉은 여자들이 할 일이 뭡니까? 여보 그냥 갑시다. 벌벌 떨면서 그냥 가자고 하잖아요.

물론 반대되는 사람도 있어요. 에이그 쪼다 한마디도 안하고 뭐 이런 부인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가자~ 미쳤다 생각하고 그냥 갑시다 이렇게 하지요. 모든 것이 비틀거리거든요. 그 공포에 알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에 매일같이 벌벌 떨면서 사는 겁니다. 그 대책은 뭡니까?

계속 착한 짓, 착한 짓, 이쁜 짓, 이쁜 짓으로 자기 방어 체제를 갖추는 거에요. 이만했으면 설마 안 좋은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 그런데 주께서 이렇게 압박을 가하는 이유는 우리의 정신을 둘로 쪼개기 위해서, 두 갈래. 우리의 정신을 두 갈래로 나누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성도에요. 성도는 완전한 자도 아니고 실수 없는 자도 아니고 세상 삶을 초월한 사람도 아닙니다. 아니고 뭔가 다른 정신이 와버렸어요. 그러니까 성도가 아니라면 인간적으로 처리할건데 성도이기 때문에 더 센 힘이 인간들로 하여금 그 성도로 하여금 난관이 있으면 뒤돌아서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병합함을 뚫고 지나가게 하는 겁니다. 뚫고 지나가게. 난관을.

멀리서 보면 난관인데 가까이서 보니까 그냥 허망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들오들 발발 떨었는데 막상 그 일을 겪어 보니까 그냥 넘어가는 거에요. 마치 운전면허 시험처럼. 뭐 대단하게 뭐 이렇게 해야되느니 하는데 막상 쳐보면 그냥 차 모는 건데요. 내가 너무 쉽게 이야기 했나? 뭐 저 같은 사람은 한 번에 된 줄 아는데 7번 떨어졌어요.

7번 만에 됐고 우리 집사람은 한 번만에 됐고. 7번 떨어졌는데 그래도 또 갔지요. 그거 떨어졌으면 필기도 무효될 뻔했어요. 마지막에 됐어요. 그러나 뭐든지 지나고 나게 되면 아이고 뭐 별거 아니네 이렇게 되지요. 그게 별거 아니네 하면서 또 내일 되면 또 숙제로 주어지게 되면 또 바들바들 떨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먼저 일부러 상황을 우리 힘이 아무 소용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려요. 어떤 노력도 어떤 시도도 무용지물로 되는 상황 속에 우리를 몰아세웁니다. 대표적인 것이 아까 이야기했지요. 신종 코로나. 이건 뭐 대통령 잘 뽑아도 소용없어요 이거는. 옛날이 좋았다. 옛날이 좋아도 참을 수가 없어요.

20대 아가씨들 취직해가지고 돈 모아가지고 북유럽 놀러갈라고 준비 다 해놨는데 어떤 친구는 벌써 갔다 온 사람 있는데 올해 계획 해가지고 다 해놨는데 코로나 해가지고 올해 계획 다 막혀 버렸어요. 이게 사람 마음대로 됩니까? 안되지요.

자, 아까 그 문제 계속 해봅시다. 하나님을 어디서 찾는가? 이걸 다른 말로 뭐라고 합니까? 참된 하나님의 의해서 연결되어 있는 인간은 어디서 찾는가? 하나님을 찾지 마세요. 참된 인간을 찾아야 돼요. 여기 4절에 봅시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했잖아요. 여기 4절 5절 보시면 여러분 이거 생각하시면 돼요. 택지 개발 생각하면 돼요.

택지개발. 못사는 동네 울퉁불퉁 뭐 어떤 잘사는 집도 있는데 불도저하고 포크레인하고 한 12대 동원해가지고 개발할 때 어떻게 합니까? 한 달 전에 어느 집 있었지? 없어요. 싹 갖다 밀어버리죠. 높아진 것 낮아지고 낮아진 것 높아지고 전부다 평토, 평탄하게 만들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움직이는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하면 모든 세계를 일괄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드신 그 분을 찾으면 되지요. 목사가 됐든 장로가 됐든 헌금을 하든 말든 기도를 2시간 3시간 하든 안하든 예배를 몇 번 참석하든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몇 살이 됐든 90이 됐든 10살이든 1살이든 관계없이 똑같이 밀어버리는 사람. 그렇게 선언해 버리는 사람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에요.

그러면 그것이 오늘 본문의 이사야 말씀이라면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여러분들 중에 머리 좋은 사람은 알거에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다는 말은 네가 스스로 택지개발 당해라 이런 뜻이겠지요. 울퉁불퉁이 다 평평해지니까. 이건 뭐냐 하면은 나를 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거에요. 말씀을 주는 것은 나로 하여금 포크레인 불도저 밑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주는 것이 바로 주의 말씀입니다. 주께서 하신 모든 말씀이.

예를 들면 베드로에게 “네가 고기 잡는 사람이 되지 말고” 라고 했잖아요. 그러면 물고기 잡는다는 말은 물고기 나는 이만큼 잡았기 때문에 나는 이만큼 잡는 사람이라고 남들이 그렇게 평가하고 저 사람은 10마리 나는 100마리, 저 사람은 100마리 나는 10마리 나는 저사람보다 못하다 또는 잘났다 벌써 이게 높낮이가 생기겠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제는 고기 잡는 사람 되지 말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라 할 때에 나는 두 사람 세 사람 이렇게 생각하면 안돼요. 주의 말씀은 내가 10명을 전도하든지 2명을 전도하든지 아니면 한명도 전도 못하는 것과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주님 앞에 동등하다. 모든 것이 동등한 거에요. 그렇게 외치는 사람을 만나면 돼요. 그렇게 외치는 사람을.

아까 요한복음 8장 7절을 여러분 외우는 사람은 외우잖아요. 간단하잖아요. 돌을 치되 “죄 없는 자가 돌을 치라.”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인간은 죄 있다는 점에서 어떤 인간도 주님 앞에 손 들고 나올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다. 어떤 사람도 남을 평가할 수 없다는 말은 모든 인간은 그 자신의 죄에 대해서 너는 죄 더 졌고 나는 더 많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에요.

왜? 택지개발해서 다 없애버려요. 모든 인간은 죄. 끝. 죄로 태어났으니까 끝이에요. 깔끔하지 않습니까. 나는 속이 다 시원한데요. 이걸 지금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친다하니까 “아아 마이크 테스트 아아아” 이렇게 하면서 “전부다 다 똑같은 인간들아 똑같이 나오너라.” 외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이 똑같이 하는 방법은 뭐냐? 유니폼을 입힌다? 아니요. 그럼 잉크물을 뒤집어씌운다? 아닙니다. 그럼 세례 요한 옷 양털 한도 모피, 모피 옷을 입힌다? 아닙니다. 그럼 다같이 공동체 훈련해서 사막에 공동체 해가지고 전부다 조그만 집 지어가지고 공동체 생활한다? 아닙니다. 뭐냐 하면은 모두 다 앞으로 요단강 물속에 들어가. 다 처넣어버립니다. 물속에 들어가죠.

자, 이게 요단강 물 수면입니다. 여기 요단강에서 들어갑니다. 들어가는데 현재 요르단에서 들어가는 방법 있고 이스라엘에서 들어가는 방법이 있는데 어느 방법도 괜찮아요. 여기 요르단이고 여기 이스라엘인데 요단강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잖아요.

그럼 사람 들어갈 때 무릎만 들어간다? 어떻습니까? 무릎만 들어간다? 아니겠지요. 그러면 허벅지까지 들어간다? 아닙니다. 그러면 가슴 어깨까지 들어간다? 아닙니다. 어떻게 돼야 돼요? 다 들어가야 돼요. 왜냐하면 이 요단강이 뭐냐 하면 바로 홍해의 재편성. 아까 했지요.

누가 마가 요한복음은 인간을 육으로 재료로 해서 그 시스템을 재편한다. 항상 재편한다. 세례 요한님 저는요 착했어요. 그거 재편되야 돼요. 착한 거 없어요. 다 집어넣었어요. 자, 홍해의 특징은 뭐냐 하면 그 60만 이스라엘 남자만 60만 그 많은 사람이 홍해가에 섰을 때에 그중에 박태환 있었습니까? 있었겠지요. 박태환. 아 내가 헤엄쳐서 갈게. 이렇게 했습니까?

어떤 인간도 홍해를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그럼 홍해를 못 넘어선다는 말은 하나님이 약속한 그 나라에 그 의에 들어갈 수가 없지요.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그 나라의 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못 들어간다는 이야기이에요. 들어갈 수가 없다는 이야기에요.

그럼 무슨 작업이 일어나느냐 평토, 택지개발하는 작업이 일어줘야 돼요. 좋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조리 전부다 뭘로 만듭니까? 죄로 만들어버려요. 죄로 만들었다는 말은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없다? 없어요. 윤리 도덕으로 아무리 남한테 구제를 하고 봉사를 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해도 그것으로 요만큼의 자기의 가치가 늘어나지를 않아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은 인간의 시간은 항상 뭘 한다? 항상 지연이 되어버리면 나중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는 항상 미흡해요. 지금 착하기도 착하지만 내일 착한 일 더 해버리면 오늘의 착한 일은 그만큼 어제는 내가 철이 없어서 모자라서 내가 인생을 재편성 제대로 못했어.

내가 기껏 그 정도 알아놓고 인생을 다 알았다고 까불었어. 오늘 살아보니까 어제 산 것은 내가 너무 철없는 짓이었었어. 하지만 모레 되면 또 오늘과 똑같은 소리한다 이 말이죠. 똑같은 소리 할 거 아닙니까. 어른들이 젊은 사람들 보고 하는 소리 가운데 실속 없는 충고가 뭐냐 하면은 나도 젊을 땐 다 그랬어. 뭐 어쩌라고. 네가 청춘이니까 아프다.

그 말이 실없는 소리인 이유가 뭐냐 하면은 아프다도 정도가 있어요. 20대 아픈거하고 30대 아픈거 하고 40대 아픈거하고 달라요. 제가 설교 때 그런 이야기 드렸죠. 여자들이 결혼하고 난 뒤에 보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인줄 알았지요? 결혼 하고 난 뒤에 결혼하고 난 뒤에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아픔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지요.

육을 재료로 재편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육을 재료로 자꾸 재편하는 거에요. 그래서 시간에서 빠져나와야 돼요. 시간에서 빠져나와야 됩니다. 못 빠져나오지요. 빠져나오는 방법을 제가 말씀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힘으로 못 빠져나와요. 마치 우리 힘으로 요단강을 못 건너는 것처럼.

그러면 우리는 결론은 뭡니까? 결론은 에베소서 2장 5절 이미 하늘에 앉혔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이 뭐냐? 이미 구원시켜 놓고 우리를 구원된 우리 육을 재료로 해가지고 내가 구원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주께서 어떻게 해내셨느냐를 우리 인생을 통해서 계속해서 그걸 드러내게 하시는 겁니다.

그래야 내 자랑 안하고 주님 자랑만 할 게 아니겠어요. 주님 덕분입니다. 이 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우리로 하여금 인생을 그냥 주님께서 계속 지연시키면서 생을 연장을 시켜주는 거에요. 코로나 기침하고 환자 옆에서 한다고 되는게 아니고 그냥 주께서 계속 살려내게 되면 코로나가 아니라 뭐가 와도 더 살게 되어있어요. 죽고 싶어도 못 죽게 되어있다니까요.

유럽 사람들이 사망자가 많은 이유는 이렇습니다. 왜냐하면 늙어서 그냥 사는 것보다도 죽는게 안 낫겠나. 나 마스크 안 쓴다 이래서 다 죽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죽는 거에요. 아이고 나 더 살라고 애 안 쓴다. 차라리 외로운 것보다 사는 것보다 덜 고통스러운게 죽음이다 이래가지고 많이 죽는 겁니다. 말 안 들어서 죽는 거에요.

그래서 코로나 있고 난 뒤에 공기가 맑아졌다. 미세먼지가 없어졌다. 그것만 없어진 게 아니에요. 거리에 노인네들도 없어졌어요. 지하철 분위기가 확 좋아졌어요. 약간의 위로, 긍정적인건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세례 요한으로 하여금 전부다 계급장 다 떼고 나이 다 떼고 전부다 물속으로 다 입수. 다 들어와. 다 들어갔지요. 그러면 홍해 재현이기 때문에 홍해는 일단 홍해는 길을 내고 들어갔지만 이게 바다의 길이 났다는 것은 참 희한한 일이죠. 하여튼 진짜 희한한 일인데 그게 길이 물속에 있다고 봅시다.

물속에 있다고 본다면 전부다 다 들어오겠지요. 그럼 다 물속에 빠져 죽었지요. 죽음 안에 길이 있습니다. 죽어야 길이 있어요. 죽어야 길이 보입니다. 우리가 정신 차리면 길이 안보여요. “아 진짜 이런 일이라면 미쳐버린다.” 미쳐 버린다 하지 말고 그 경계선을 넘어 그 문턱을 넘으세요. 차 타면서 턱 있지요? 그냥 넘어서면 돼요 그냥.

문턱을 넘어서버리면 진짜 미쳐버리면 그렇게 편해요. 안 미쳐봐서 그래요. 진짜 미쳐버리면 내 관리, 내가 스스로 나 착하게 관리했다는 것이 얼마나 그동안 악마한테 속아 넘어갔는지 악마가 미워 죽겠어 정말. 결국 내가 착할 수 있다는 이게 악마가 준 마지막 미끼였다는 것을 발견해요. 너는 더 착해질 수 있어. 착하면 복 받는거야.

이거 뭐 주위에서 목사부터 해가지고 전부다 구라를 치니까 그래 착하면 복 받아. 내 자식이라도 복 받고 내 가정이라도 복 받겠지. 이번 일은 내가 나쁜 짓해서 우한이 있었는데 빨리 착해져서 빨리 원상회복하는거야. 본인이 마귀한테 속아서 그렇게 속아가지고 하는데 아까 그 말은 자기를 정상으로 본다? 비정상으로 본다? 계속 자기를 정상으로 보는 거에요.

정상으로 보면서 내가 착해질 수 있어 복 받는 것을 하나의 목적으로 하니까 비정상이 비정상 목적을 세운 거에요. 마귀는 좋다고 그거 갖고 노니까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그런 인간을 가지고 노니까 참 재미있지요. 자기가 알아서 기어들어오니까. 나쁜 짓하면 그냥 기도하다가 갑자기 꿇어앉아서 기도해. 주여. 그냥 기도해도 되는데 밥 안 먹고 기도하고 이렇게 나를 낮추고 이렇게 했는데 더 심하게 안하겠지요 주여. 애 만큼은 건강하게 해주십시오 이런 식으로.

하는 그 수법이 바리새인 같은 수법 그대로 따라가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누가복음 3장에도 나오지만 어디 나오느냐 하면 여기 나오네. 누가복음 3장 7절에 나오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데 누가 나오느냐 하면은 여기 무리가 나오는데 세례 요한은 이렇게 봅니다. 세례 요한이 보는게 아니고 예수님이 보는거죠.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독사의 자식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이게 한국말로 번역하면 이렇게 하면 안돼요. 개새끼. 이게 개새끼에요. 독사의 새끼들아가 개새끼야. 욕을 평소에 해본 적이 없습니다. 성경대로 독사의 새끼들아. 같은 이야기에요. 사람을 사람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비정상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백성만 넣어주는 곳에 너희들은 겁도 없이 낄라고 그렇게 오느냐 이 바리새인들아. 너희들 잘하는 거 있잖아. 너희들 잘하는 거. 말씀 지켜서 복 받는 거 잘하는 거 있잖아. 왜 그거 하지 왜. 여기 온 사람들은 그런 착한 사람 아니야. 인생 포기한 사람들이야. 잘난 네가 왜 와. 잘난 네가.

이렇게 하면서 도끼 있으면 도끼로 찍어버려. 도끼로 찍어버린다 마태복음 3장에 그렇게 나오지요. 도끼로 찍어버린다. 다시 말해서 너희들은 엑스레이를 통과하고 있다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통해서 세례 주는 그것이 하나님 안보이니까 그냥 어떤 인간이 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건강검진 보통 1년에 한번씩 하라고 하는거 뭡니까?

건강검진하는 그 기계를 통과하는 거에요.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는거에요. 그런데 너희들은 와보니까 뭐였다? 독사의 새끼로 판정난거에요. 이게 하나님을 하나님 찾지 말고 바로 지금도 말씀 속에서 내가 정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이런 평가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사람들이 자기가 정상적이면서 싫은 세상에서 지옥 갈 사람들의 평에 대해서 바들바들 떨고 있잖아요. 이게 무슨 정상입니까? 이게 무슨 정상이에요?

그리고 지옥 갈 사람들을 그렇게 부러워하고 나도 그렇게 평생 돈 못 벌어서 미안하고 뭐 이런 그런 생각 들고 지옥문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말라고 했잖아요. 제가 어느 설교에는 그런 표현했어요. 지옥문을 앞두고 사람들은 전부다 차례가 있는 거에요. 발발 떨면서. 그럼 천사가 아주 냉혹하게 이야기하지요. 다음 분. 그 다음에 다음 분. 전부 다 지옥 갈 사람들은 그렇게 가는 거에요.

그런데 천국 갈 사람들은 뭐 잘한게 있어요? 뭐 착한 일 했습니까? 다른 사람 지옥 갈 사람하고 똑같아요 하지만 어디로 불러옵니까? 미리 엑스레이 찍고 미리 CT 촬영하고 미리 하나님이 친히 준비한 이벤트 있잖아요. 이벤트.

그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 요한복음에서 그렇게 이야기한 것은 요한복음에서 특히 물을 강조한 것은 요한일서에서도 마찬가지에요. 물을 강조한 것은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세례 요한이 물세례 할 때 성령 세례를 약속한 곳이 바로 요단강 물세례줄 때 왜 그렇게 중요하냐 하면은 똑같은 엑스레이 기계이기 때문이에요.

물세례도 엑스레이 건강검진 기계고 십자가, 아까 발라낸다고 했지요. 다 뜯어지고 예수님이 당했던 십자가를 예수님의 불세례라고 해요. 내가 받을 불세례 남아있다. 물세례 다음에 그 다음의 CT촬영이 뭐라고요? 불세례지요. 불세례인데 사람들 다 떨어져요.

불세례가 뭐냐 하면은 바로 이게 십자가를 불세례라고 합니다. 내가 받을 화끈한 것. 화끈한 저주를 말해요. 모든 저주를 받는 저주세례가 물세례라고 해봐야 뜨듯한 물 물속에 잠기는 하지만 어푸하고 빼내면 되니까. 그런데 이 저주 세례는요 저주를 옴팡 받기 때문에 그냥 저주를 받는 거에요. 버림받는 거에요.

나 너하고 같이 있지 않겠다. 함께 있지 않겠다. 제일 무서운 저주가 대구강의에서 그런 이야기했지요. 제일 무서운 저주가 나 너하고 같이 있지 않겠다. 영원히 같이 있지 않겠다. 이게 제일 무서운 거에요. 남편에 있어서 제일 아내가 무서운게 뭐냐 하면 밥 안 해주고 그런게 아니고 밥 안 해주면 사먹으면 되잖아요.

난 너하고 같이 살지 않겠다. 이게 제일 무서운 거에요. 하나님이 같이 있지 않겠다.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같이 있는다면 네가 이 땅에서 거지가 되도 고마운 줄 알아라 너는. 함께 있는 거 되면 더 이상 다른 거 바라지 말아라. 함께 있다는데 거지 되는 것도 주의 뜻 아닙니까?

그러니까 함께 계신 분이 중요한 거에요. 물세례 때에 불세례 있는데 물세례 때 누가 들어옵니까? 지금 이게 문제인데. 대중탕, 남자 대중탕에 남자가 10명 정도 있거든요. 10명 정도 있다 이 말이죠. 요새는 목욕탕에 그런 거 없지만 우리 어릴 때 대중탕에 거기서 노래 부르고 우끼지도 않아요. 왜 목욕탕에서 노래 부릅니까? 자기 혼자 기분 좋으면 요즘 그런 사람 없습니다만은.

10명 앉아 있는데 여기 수건 들고 한명 들어와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물속까지 들어온 거에요. 그럼 물속은 어떤 동네다? 죽었지요? 죽었잖아요. 물은 잠수시키는 죽여버리는 거에요. 너는 사나 죽으나 살아도 비정상인데 죽어도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죽었는데 죽음의 동기, 동창생 되어버린 거에요. 누가? 예수님이. 이게 하나님이 만든 구원의 장치입니다. 홍해를 재현시킨 거에요. 요단강 홍해를 재현시킨 거에요. 왜 이렇게 요단강에서 재현시켰느냐 하면은 원래 광야 끝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개판됐다고요. 개판되었으니까 재편한다고요. 새로 다시! 다시! 다른 의미로서 이제는 사막에서 들어온 겁니다. 전에는 요단강 건너서 약속의 땅에 들어왔지요. 지금의 세례 요한 때의 요단강은 뭐를 배제합니까?

독사의 새끼들은 배제하고 이거는 산 채가 아니라 물속에 죽은 채로 끄집어내는데 우리 같으면 물속에 들어갔다가 어푸~ 하다가 도저히 못 참겠다 하고 나오면 되잖아요. 뭐 그럴 수도 있는데 물속에 있을 때 다시 말해서 죽어 마땅한 죄 속에 물속에 같은 말이에요. 죽어야 마땅한 죄 속에 물속에 다 같이 있을 때에 예수님이 같이 죄 속에 같이 들어와요.

같이 들어온다면 세례 요한이 그런 일은 없지만 내가 일부러 꾸민다면 내가 물속에 또는 목욕탕 속에 10명 들어갔다 합시다. 어떤 사람은 답답해서 먼저 뛰어나올려는 사람도 있는데 세례 요한이 붙들어요. 아저씨 가만, 나오면 안돼. 나오면 안돼. 나오면 안돼. 자, 내가 신호줍니다. 하나 둘 셋에 같이 나오는 겁니다.

하나 둘 셋 하면 예수님도 따라 나오겠어요? 안 나오겠어요? 나오겠지요. 그걸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된 사람’. 로마서 6장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았다는 경력이 이 육적인 재료에 하나의 코팅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코팅이 되어버렸어요.

이 몸은 어떤 몸이냐? 이미 죽은 몸이에요. 이미 죽었다는 말을 우리가 쓰는 시간 과거 현재 미래로 계산하지 말고 아까 에베소서 5장의 말씀처럼 영원한 현재로 계산해버리면 우리는 영원히 죽었기 때문에 영원히 산 사람이 되는 겁니다.

몸이 늙어간다는 것은 뭐 별로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언제까지 살지도 모르고 아무리 90을 살아도 되돌아보면 나는 하루를 산거에요. 95세를 살아도 다 산 것은 다 없어지고 지금 내가 느껴지는 것은 오늘 내가 살았다. 오늘 아침에 미역국 먹었다 그것만 기억에 남고 나머지는 다 없어지는 거에요.

마찬가지로 100세 산다고 기분좋은게 아닙니다. 지나가고 보면 늙은 얼굴이 한스럽고 사진 찍기도 싫고 몸이 이렇게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조그만 뭐하면 허리 아프고 아침에 일어나면 찌뿌둥하고 허리 아프고 잠도 안 오고 그러한 현재적 육의 컨디션 그것만 남지 과거의 튼튼했다. 지금 와서 왜 과거 이야기 꺼냅니까. 과거에 안 튼튼한 사람 어디 있어요. 다 튼튼하지요.

과거에 토실토실 피부 좋았다. 두 살 애들 두 살이고 한 살 애들이고 다 피부 좋아요. 아이들 다 피부 좋아요. 얼마나 피부 좋은지 할머니 이마까지 긁어가지고 상처내고 자기 맘대로에요. 어린애들은 책임을 묻습니까? 안 묻습니까? 안 묻지요. 책임을 묻는 것은 어린애들처럼 되지 못해서. 세상에서 그렇게 같은 도둑놈들이 책임 물어서 그렇게 된 거에요.

죄 없는 자가 뭐하라? 돌로 쳐라. 우리가 남을 평가하고 죄 없다는 게 아니에요. 다 같이 죄 있다 다같이. 택지개발 똑같아요 똑같애. 똑같기 때문에 내가 너보다 낫다는 소리하지 말고 똑같이 일괄적으로 처리하시는 일괄적인 처리에 CT촬영, 엑스레이 촬영 그걸 믿어야지. 그걸 믿어야지요. 그게 바로 물과 성령으로 어떻게 난다? 거듭나는 거에요. 거듭나는 거에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거에요. 한번 더 나는 거에요. 그것도 죽고 한번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다시 태어난 자만이 물의 의미가 무엇이며 영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겁니다. 자, 아까 이야기한 요한복음 3장 해봅시다. 그러면 이 불세례가 무슨 세례입니까?

이제 예수님께서 뼈가 되가지고 다 발라지지요. 그러면 다른 사람 다 도망갔지요. 누구만 남았습니까? 예수님만 남았지요. 저주로 인하여 예수님이 뭘 얻습니까? 피가 생산되지요. 피가. 피가 생산돼요. 이제부터 어려운 것은 뭐냐? 이 피가 누구 피냐 하면 예수님 피에요. 예수님의 개인적인 피죠.

어떻게 개인적인 피가 남의 죄를 씻을 수가 있습니까? 이거는 진짜 난감하기 짝이 없어요. 어떻게 어떤 특정 사람의 피가 다른 사람의 죄를 씻을 수가 있느냐 말이죠. 어떤 사람의 고름이 그 사람의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다. 이게 바로 그 면역체 아닙니까. 면역. 주사잖아요. 백신 이잖아요. 이거는 되잖아요.

이거는 되는데 예수님의 피가 어떻게 우리의 죄. 병이 아니고 죄. 병은 눈에 보이지만 죄가 안보이잖아요. 죄의 증상은 의외로 상당히 낯설죠. 왜냐하면 죄의 증상은 죄가 있다는 증상은 뭐냐 하면 자신을 멀쩡하게 본다는데 있어요. 그게 정신병이죠. 아까 정신병자 이야기했지요. 죄가 있는 특징이 뭐냐? 남은 죽어도 나는 안 죽어야 되고 남은 걸려도 나는 안 걸려야 된다. 왜냐하면 나는 가치 있으니까. 이게 바로 증상이 보통 증상이 아니에요.

그게 바로 여기 7절에 나오는 “독사의 자식들아.” 원뜻은 독사의 새끼들아 되어있어요. 독사의 새끼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그 다음에 뭐라고 합니까.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려 하느냐.” 그러면 장차 올 진노를 피하려 하느냐 하는 말은 이건 독사의 자식들끼리 이야기한 거죠.

그러면 이 진노를 그 역사 속에 세례 요한이 그 현장 속에서 뭘로 하느냐 하면은 물세례를 통해서 그걸 보여주는 거에요. 하나님이 죄에 대해서는 봐주는거 없다. 죄 있거든 그냥 다 죽어도 마땅하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바로 그 사람이 죽어도 마땅한데 라고 하는 그 현장에 누가 들어왔습니까? 예수님이 들어왔지요.

어떻게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용서할 수 있느냐?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상대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이걸 이제 그림을 그리면 쉽지요. 물이 있습니다. 물속에 10명의 장정이 들어갔다 칩시다. 여기에 예수님이 들어왔어요. 들어왔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개개인을 상대하지 않고 뭐하느냐 하면 이것. 물의 시스템, 심판의 시스템을 상대해요.

이런 것 보면 생각하면 됩니다. 그 물건 이름을 잘 모르겠는데요. 장식품인데 플라스틱으로 딱 고정시켜놨는데 그 안에 조개도 들어있고 빨간 산호도 들어있고 옛날에. 요새는 그런 장식품 없는데 산호하고 뭐 이렇게 조개같은 거 만들어 놓고 그걸 압축해서 플라스틱 만들어가지고 책상위에 놓으라고 딱 놓지요. 상당히 딱딱해요. 싸움할 때 그거 던져버리면.

그걸 뭐라고 합니까? 왜 그걸 예를 드느냐하면 인간들 여기에 완전히 그 딱딱한 플라스틱에 고정되어 있어요. 인간이 설친다고 죄 되는 것이 아니고 가만히 있는다고 죄 안 되는게 아니고 설치든 고정하게 하든 이 시스템은 우리하고 상대를 하는게 아니에요.

우리하고 상대하는게 아니고 주님께서 이 시스템을 인간으로 하여금 죄인 만들게 된 이 시스템이 있어요. 이게 누구냐 하면 바로 악마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을 죽게 한 죄짓게 한 창세기 3장에서 선악과 따먹게 한 그 악마를 상대로 해서 하는 거에요.

그래서 주님은 우리하고 상대를 안해요. 착해라 훌륭해라 말씀 들어야지 우리하고 상대 하지를 않습니다. 주께서 우리보고 잔소리하는 것은 네가 아무리 해도 네가 지킬 수 없고 왜 지킬 수 없냐 하면 네 배후에 누가 있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의 원수가 있기 때문에 너는 지키면 지킬수록 기껏 해봐야 진노의 자식, 바리새인 밖에 안 되는 거에요. 그걸 염두에 두고 주께서 친히 악마와 상대하시는 겁니다. 악마와 상대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쯤 되가지고 악마가 예수님에 대해서 어떤 짓을 했는지 그걸 아셔야 되겠지요. 알아야 되겠지요. 누가복음 4장 봅시다. 3장을 건너뜁니다. 4장에 보면 거기에 성령께서 예수님께서 일하기 전에 성령께서 예수님을 부릅니다. 불러가지고 예수님을 떠미는 거죠. 어디로 미냐. 악마가 있는 쪽으로 살짝 밀어요. 살짝 밉니다.

그럼 예수님은 등 떠밀어져 가보니까 그게 광야고 거기서 40일 동안 금식하는데 그걸 누가 맡느냐 하면은 여기에 마귀한테 시험을 받는다 했지요. 자, 아까 배운거 얼마나 아는지 복습해봅시다. 육적인 시간에서 육적인 인간한테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존재한테는 시간이 있어요? 없어요? 시간이 없어요.

예수님도 마찬가지고 악마도 마찬가지고 영원히 그 현재밖에 없어요. 현재밖에 없으면서 시간이 현재로만 있을 때 등장하는게 뭐가 등장하느냐 하면은 이게 등장해요. ‘관계’ 또는 ‘관계성’. 아까 제목을 뭐라고 한다고 했습니까? 제목을 잊어버렸다. 아! ‘비정상’. 제목 좋으네.

악마하고 예수님하고는 관계가 원수지간이에요. 원수지간입니다. 왜냐하면 선악과 따먹는 것을 부추겼기 때문에 원수가 된 거에요. 선악과 따먹은 취지는 여러분 잘 아시지요? 잔소리들을 때는 잔소리하는 자체를 없애버리면 더 이상 누구한테 지적받지 않을 수 있다는 이 악마의 사고방식, 악마는 자기를 지적하는 그것을 없애버림으로서 자기가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누구도 나한테 잔소리하지 마. 이게 악마의 모습이에요. 관계성이다 이 말이죠.

관계성인데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통해서 악마까지 다스릴 수 있는 모든 지배권을 예수님한테 다 주는 거에요. 예수님께 다 줘요.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이게 주 되심이다. 주가 되심이에요. ‘주’. 하나님의 악마부터 해가지고 모든 천국 지옥 다 다스리는 그 권한을 예수님에게 주시고자 하나님께서 일을 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주가 될려면 여기 반드시 뭘 거쳐야 되느냐 하면은 전쟁을 해야 돼요. 악마하고 전쟁을 해서 승리자가 될 경우에만 주가 되시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가 못돼요. 요한계시록 12장에서. 그러면 지금의 악마는 뭐냐 하면은 주의 자리가 아들에게 주기로 되어 있는데 악마는 이게 싫어서 자기가 권세자가 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악마가 인간세계의 주인공, 이 세상의 신이라고 하는데 그 주인공할 때 모든 써먹은거 있잖아요. 인간으로 태어났으며 악마의 모든 수법 있잖아요. 수법. 그 수법을 그대로 그 무기를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인간이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전부다 그 똑같은 수법을 거기에다가 다 적용시켜버리는 겁니다. 어떤 인간도 못 이겼던 것.

첫 번째가 뭐냐 하면은 바로 40일 동안 굶게 한 것. 성령님께서 8장을 이렇게 보시는 거에요. 보시게 되게 되면 그 광야 40일 금식 그 곽구. 곽구란 말 알아요? 곽구. 케이스. 액자 안. 곽구. 그 곽구 안에가 마치 격투기할 때 철조망 쳐놓고 두 사람 넣어놓고 나머지는 관람 구경하잖아요. 그 곽구. 그 안쪽, 그 테두리 안쪽은 세상의 축소판이 됩니다. 세상의 축소판.

그동안 지금의 세상의 지배자, 악마. 악마 있고 저쪽에는 뭐냐 하면은 인간을 이 시간 속에서 데려가야 될 메시아, 자기 백성을 데려갈 메시아가 있지요. 그러니까 격투기에요. 양쪽 다 집어넣은 겁니다. 선제공격을 누가 합니까? 선제공격을 악마로부터 먼저 선공에 들어갑니다. 원래 선빵 때리는 거죠. 선공이 들어오죠.

어느 인간도 자신의 육체가 있는 한 굶고는 못산다. 먹고 싶은 욕망을 어느 인간도 이긴 적이 없다. 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렇게 선공에 들어오죠. 그러면 이것을 누가복음 4장에 있지만 이걸 평소에 우리의 모습으로 돌아봅시다.

우리의 모습으로 돌아보게 되면 명예도 좋고 사랑도 좋고 다 좋지만 역시 귀한 것은 뭡니까? 돈. 제가 설교시간에 했지요. 부부가 이혼 못하는 것은 비용 문제 때문에 이혼 못한다고. 비용이 많이 드는 거에요. 가장 부부의 결혼의 기본은 돈입니다. 돈이에요. 이걸 뭐 신앙으로 포장하지 마세요. 다 발라내야 돼. 뼈다귀 다 발라내야 돼.

다 발라내면 피가 아니고 피 때문에 결혼 안했어요. 돈 때문에 한 거에요. 돈 때문에. 집사님은 아닌 것처럼 하는데 모든 부부가 다 그래요. 모든 부부가. 돈 때문에 하는 거에요. 돈 있으니까 사랑하고 이런 거에요. 여자 입장에서 볼 때 여자입장에서 가장 기본은 뭐냐 하면은 말은 안하지요. 자존심 상해서 말은 안하지만 무조건 남편아 너는 나를 먹여 살려야 한다.

그게 기본 중에 기본이에요. 먹여 살려야 돼요. 너 뭐 이쁘다고 내가 먹여 살려. 무조건 너는 나를 먹여 살려야 돼요. 나는 놀아도 되는데 너는 놀면 안돼. 네 자식 있잖아. 너 자식. 여자들이 보통 남자들보고 네 새끼 어떻게 할래? 하지만 사실은 자기 새끼에요. 네 새끼 해놓고 네 자식인데 무책임하냐 이렇게 한다고요.

돈입니다. 그거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모두 다 나는 돈 있어야 살아요. 이 비정상! 그렇게 욕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왜? 이미 악마에 물들었기 때문에. 악마가 그렇게 가르쳐놨기 때문에. 따라서 교회 와서 사람들이 예수님 부르는 것은 돈 달라는 거에요.

그것도 돈 안주면 떼를 쓰고 주여! 주여! 노골적으로 돈 달라고 하면 되는데 그걸 우회해가지고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하옵소서 이렇게 하면 되던데. 이렇게 기도하면 응답되던데. 자꾸 이런 식으로 하는데 딱 까놓고 이야기하면 돈 주세요, 돈 없이 못 살겠습니다. 예수고 뭐고 나는 돈이 우선이고 돈이 있으면 섬기지 말래도 섬기고 십일조할테니까 일단 돈 주세요.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나오지요.

그러니까 어느 인간이 마귀의 권세에서 못 벗어납니다. 불가능이죠. 불가능할 때는 그냥 주저 앉으면 돼요. 이게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거에요. 그래 나 죄인이다. 그 한마디에 마귀는 그 다음 답변이 막혀버렸어요. 착해 착해 착해야 복 받아 착해야. 선한 자에게는 복을 주신대. 성경 봐라. 선한 자에게 복 주신데 이렇게 되야 먹히는데요.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그 말씀 앞에서 나는 아무도 나를 내가 남을 평가할 수도 없고 또 남이 나를 평가해도 평가받고 싶지도 않다. 왜? 죄 있는 주제에 뭐 잘났다고 나한테 평가해. 우리는 모두 택지개발이라 똑같애. 평탄해. 높아지고 낮아지고 전부다 주님 앞에서 완전히 전부다 죄인 되었어.

그 앞에서 마귀가 할 말이 없습니다. 할 말이 없어요. 유혹거리가 없다는 거에요. 유혹거리. 시험이거든요. 유혹거리가 없다고. 예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말씀으로 산다.” 이번 주일 낮에 제일 중요한 포인트를 찾으라 하면 이거에요.

내가 있고 말씀이 있는 것이 아니고 말씀이 먼저 있고 내가 있어요. 이 한마디에 게임 끝났습니다. 게임 끝났어요. 말씀이 먼저 있고 내가 있는 거에요. 사두개인 중에 사두개인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 그거는 내가 살기 위해서 하나님 일할 때는 바리새인이었죠.

그러나 주님 찾아오고 난 뒤에는 주님이 주님 되시기 위해서 내가 있는 거에요. 내 아픔 내 고통 내 인생 엉망진창된 거 이게 우선이 아니고 주의 말씀이 우선이에요. 말씀이 말씀되게 하기 위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늘 우리에게 내 힘으로는 구원이 안 되는 불가능한 요소로 계속 오는 이유는 이미 우리가 구원됐기 때문에. 이미 구원됐기 때문에.

제가 아까 동영상 찍을 때 그렇게 이야기했지요. 욥기 이야기했지요. 하나님께서 이미 욥을 구원시켜놓고 그 다음에 뭡니까? 마귀로 하여금 흔들기 들어간다 했지요. 똑같은 거에요. 마귀의 임무가 흔들기에요. 흔들 자에게 흔들어보는 거에요. 그러나 그 흔드는 것과 주님의 확정됨 어느 것이 우수합니까? 주님의 확증이 우수한 거에요. 주님의 확증이.

그래서 예수님께 찾을 것은 뭐냐? 예수님께 찾을 것은 예수님의 피하고 나와 무슨 상관있느냐는 거에요. 예수님이 들어가셨던 물하고 내가 무슨 상관있어요? 우리는 물에 안 들어가고 물에 들어간 예수님 보지 말고 예수님 들어갔다면 수장됐다면 우리는 어디 가야 됩니까? 같이 어디가야 돼요? 물속에 예수님을 만나야지요. 내가 죽어야 되는데 예수님이 같이 죽었단 말이죠.

그래서 세례 요한도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주님이 세례 받을 필요 없습니다 할 때 주님께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이로서 우리는 아버지의 의를 이루어야 한다.” 아버지의 말씀을 이뤄야 된다. 왜? 마귀는 아담한테 선악과 따먹으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선악과보다도 네가 우선이니까 따먹으라고 했고 주님은 말씀이 완성되기 위해서 네가 태어났다고 이야기했으니까 말씀되시는 주님이 먼저 물속에 계시고 그분이 먼저 떠오르면 다 같이 떠오르는 거에요.

예수님의 코스대로 우리가 밟아나가는 겁니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했지요 그 다음에 뭡니까? 우리도 죽었다가 부활한 것. 예수님이 갔던 그 경로를 똑같이 밟아가도록 주께서 말씀으로 이끄시는 거에요. 방법은 “나 죄인이다. 나 비정상이다. 나 무너졌어.” “그런데 이만큼 사는 것은 다 주님의 과분한 선물보따리다.” 그렇게 사시면 되는 거에요.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누가복음 3장 다시 돌아가봅시다. 9절 이거하고 마치겠습니다. 8절. “너희들이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 돌들로도.

이 말은 뭐냐 하면은 너희들은 뭐다? 너는 돌보다도 더 못한 돌. 죽음보다 못한 죽음이라고 했지요. 돌보다도 더 못한 돌. 돌은 잠잠히 있기나 하지. 왜 고함지르고 잘난 체는 어떻게 하는지 돌보다도 더 못한 돌.

그래서 여기에 “이미 도끼가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좋은 열매는 알곡을 말합니다. 예수님으로 파생된 가지들. 예수님으로 뻗어 나온 가지들. 출발이 예수님이고 출발이 내가 아니고 출발이 예수님이고 예수님에게 뻗어난 가지는 그 관계성이 말씀으로 늘 이미 확증된 관계에 있습니다.

따라서 그 사람들은 내가 먼저가 아니고 나의 본체에 있는 말씀의 완성, 십자가가 먼저고 십자가에서 뻗어나온 것이 이 땅에 몇 년도 태아나야 했다. 그래서 어느날 우리는 십자가를 알았다. 다 인간들 비켜라. 나는 피만 보겠다. 그렇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더 이상 바들바들 떨며 살지 말게 하옵소서. 아직도 우리한테 미련두지 말게 하옵소서. 있는 그대로 예수님의 십자가 피와 연결되어 있는 피의 증인인 것을 우리가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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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2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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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