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20200611a슥1:12(속함과 포함)-이 근호 목사
안양20200611a슥1:12(속함과 포함)-이 근호 목사
스가랴1장7절부터 스가랴 제일 끝 절까지 하겠습니다. 천사 이야기 나옵니다. 천사라고 할 때 이것부터 생각하시면 됩니다. 천사는 번식과 출산이 없다. 천사의 특징은 자식을 못 낳아요. 자식을 못 낳고 그리고 번식을 하지를 못합니다. 이 말은 인간이 있다면 천사가 인간을 통해서 나름대로의 번식과 나름대로의 자기의 세계에 번식을 시도하는 그런 인간 세계에 들어와서 인간 세계를 통해서. 그러면 인간들이 인간들은 이게 천사는 번식과 출산이 없는데 인간은 뭐가 있느냐 하면 출산과 번식이 있지요.
번식이 있어봤자 그 천사가 인간을 장악하게 되면 인간이 아무리 출산하고 아무리 번식을 해도 인간의 사고방식은 자기에게 덮친 천사에 의해서 이렇게 제한적입니다. 악마가 주관하는 정신세계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어요. 천사에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 곁에 있는 천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곁에 있다가 성질나서 땅으로 내려온 천사. 땅으로 추방된 천사. 땅으로 추방된 천사가 인간을 덮치지요. 인간을 덮쳐버리면 이 인간의 출산과 번식하는 내내 땅으로 추방된 천사의 지배력이 계속해서 정신을 인간 세계에 담을 수가 있습니다.
천사가 인간을 지배하고 난 뒤에 인간은 땅에서 천사가 추방된 세계기 때문에 땅의 세계는 땅의 세계 = 어떤 세계냐 하면 추방된 세계에요. 이것이 창세기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추방되고 난 뒤에 두 번 다시 생명나무 쪽으로 갈 수 없지요. 땅의 세계=추방된 세계에요.
추방됐기 때문에 땅의 세계에서 하늘나라로 원대 복귀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없어요. 그러면 이 땅의 세계가 인간에게 뭐가 되느냐 하면 고향이 되는 겁니다. Take Me Home, country roads. green green grass of home. 고향으로 데려가 주오. 땅에 대한 냄새. 땅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게 있어요. 땅에 대한 그리움. ‘땅에서 왔기 때문에 땅으로 가는 그것이 인간의 서클이다. 순환이다. 사람 사는 게 뭐 있겠나. 땅에서 태어나서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사는 거지 뭐 그 외 뭐가 있겠어.’ 라고 하는 생각이 여기 이 세계에서는 굳어지는 겁니다.
이 인간세계에서, 땅의 세계에서 만약에 죽고 난 뒤에 그걸 저승이라 하지요. 죽고 난 뒤에. 영화에 보면 나오지만. 죽고 난 뒤에 염라대왕 만나는 거 있잖아요. 여호와증인 같으면 천국을 그릴 때 골프장 있고 이리 있지요. 이슬람의 코란이나 경전에 보게 되면 분수 막 나오고 그래요. 애들 많고, 여자들 많고, 그런 거 있어요. 이 저승이라 하는 것은 그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우리가 죽고 난 뒤에 어떤 죽은 자의 집합, 죽은 자가 모이는 세계가 있다면 그 아이디어, 그 정보는 어디서 가져오느냐 하면 인간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요. 인간의 고향은 어디냐 하면 이 세상에 있던 이 모습을 그대로 저승까지 가는 거예요. 저승까지.
그래서 이집트의 종교. 태양신을 믿는 옛날 고대 이집트의 종교에 보게 되면 이집트의 종교는 뭐를 인정하지 않느냐 하면 죽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집트 종교는 죽음이 아니고 그냥 이 땅의 삶의 연장으로서의 죽은 자들의 세계가 따로 있고, 거기에 이 땅의 왕도 그쪽에 가면 왕이 되고, 그런 종교가 고대 이집트에 종교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건 만약에 우리가 천사를 계산하지 않는다 합시다. 땅에 추방된 천사, 하나님 곁에 있는 천사 이걸 계산하지 않는다면 이 천사가 없다고 여기면 결국 우리가 평소에 하는 상식이지요. 땅에서 태어나서 부모님 만나서 양육 받고 죽으면 부모님 가는 곳으로 간다. 부모님 가는 곳으로 가지요. 그래서 그 부모님 만날 때 잘 만나기 위해서 조상숭배를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의 모든 민족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전부 다 조상숭배가 있습니다. 선조 중에 우리가 잘살고 못사는 것은 선조가 얼마나 기도를 잘해주느냐에 따라서 보는 겁니다.
이 조상숭배를 잘 이용한 종교가 있었으니 뭐냐 하면 천주교지요. 천주교. 천주교는 사람이 죽고 난 뒤에는 사람이 성자가 되는데 성자의 기도는 우리가 살아있는 사람의 기도보다 더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바로 함께 있기 때문에 기도가 말발이 서는 거예요. 허블 우주 망원경 하는 것이 있거든요. 이 세상의 모든 망원경은 지상에 높은 산에 이렇게 건설되지만, 허블 망원경은 어디서 건설되느냐 하면 우주 공간에 설치가 돼요. 그렇게 되게 되면 외계에서 오는 빛이 대기의 장애를 받지 않고 더 또렷하게 선명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조상이 이 지상에서 죽은 자가 예수님 곁에서 기도를 하게 되면 인간세상에서 지저분한 기도보다 훨씬 효과가 더 있게 된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죽은 조상이 중보자가 되는 겁니다.
기도의 중보자가 되어서 우리는 조상한테 잘하면 되고 조상은 또 주님한테 잘하면 되지요. 천주교의 이 조상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누구냐 하면, 바로 산타 마리아. 성모 마리아지요. 성모 마리아. 성모 마리아가 왜 어떤 성자보다 베드로나 야고보보다 더 말발이 되느냐 하면 예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래요. 세상에 어떤 자식이 어떤 효자가 있다면 그 누구 말 듣겠습니까? 효자 같으면 엄마 말에서는 껌뻑하고 죽지요. 다 들어줄 거 아니냐 말이죠.
그래서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 곁에서 이 땅에 있는 자기 백성들의 기도를 중재역할을 하는 거예요. 중재역할을 해가지고 잘해주게 되면 응답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당 앞에 가면 신자들이 그냥 못 들어가지요. 뭐 하나 절을 해야 됩니다. 막 꽂잖아요. 나는 비록 부족해도 예수님이 사랑하는 어머니한테 부탁하러 왔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성부, 성자, 성령으로 꽂아가는 겁니다.
왜 그런 근거로 하느냐 하면 예수님이 평소에 사도요한에게 자기 죽으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어머니다. 이렇게 해서 이제부터는 니가 효자해라. 그런 쪽으로 이야기했답니다. 그래서 그 마리아는 끝까지 예수님 어머니의 위치를 유지하기 때문에 죽어서도 그렇게 유지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리고 이 마리아가 남자가 아니고 여성이기 때문에 모성애가 있지요. 이 모성애가 있으니까 사랑이 한결같이 변덕스럽지 않고 한결같이 유지한다고 보는 겁니다.
지상에서 어미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과 여기서 동질성, 같은 성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이 천주교에서. 자, 이런 경우에 있어서 방금 이야기한 모든 것에 대해서 문제점이 뭐냐 하면 땅에 추방된 천사가 인간 세계를 이미 장악했다는 그 사실을 여기서 계속해서 모른 척 하는 거예요. 모른 척해요.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추방시킬 수밖에 없는 그러한 사고방식이 가동되고 있다. 인간이 하는 모든 생각은. 모든 생각은 다 그렇게 가동되고 있다. 라는 것이 성경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는 이런 인간들의 생각에 대해서 어떻게 되어야 돼요? 차단해야 되겠지요. 차단. 인간끼리의 모든 생각. 인간들이 생각하는 이 종교라는 것. 마리아가 어떻게 기도하고 조상이 어떻게 복주고 하는 모든 것은 차단되어야 돼요. 엉터리지요. 하나님 뜻이 아니고 엉터리다 말이죠.
그러면 차단되었을 때에, 그 차단되었다. 끊어졌다. 인간의 모든 생각은 하나님께서 거부한다. 라는 증거들이 구약에 보면 욥이 나오지요. 욥이 고통을 받습니다. 고통을 받으면서 욥이 인간들이 생각할 수 있는 걸 다 끄집어내지요. 신약에 오게 되면 이 차단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뭐냐 하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있고 이 십자가에서 열 두 제자가 예수님을 끝까지 지상에서는 끝까지 따라 갔지만, 열 두 제자가 어디서 예수님과 헤어지지요? 십자가에서 다 돌아서버립니다. 십자가에서. 이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이유는 인간이 본인이 자기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몰라요. ‘내 마음이 아마 천국까지 갈걸.’ 이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천국에서 오신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이 뭐 이렇게 멋진 길로 가는 게 아니고 골목길로 가던 따라가겠다고 나서는데 이 골목길도 아니고 나중에는 결국에는 자진해서 돌아설 수밖에 없는 그길로 가버리는 거예요.
어느 누구도 갈 수 없는 길. 안가고 싶은 길. 어느 누구도 마다하는 그 길. 그 길에서 열 두 제자가 모두 다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의 십자가라 하는 것은 다시 이야기합니다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천국에 올 수 없도록 차단하는 그러한 기능이 뿜어내고 있어요. 차단하는 기능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올 수 없다. 왜 올 수 없습니까? 니 생각하는 것이 니가 이 땅에 추방된 천사의 지배당한 그런 세계기 때문에 너는 그 사고방식 가지고는 하늘나라에 합류할 수 없다. 그걸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렇게 보게 되면 십자가라는 것은 뭐냐 하면 다른 말로 하면 차단이란 말도 되지만, 더 명확하게 해서 ‘막혔다’ ‘천국 가는 길이 막혀있다.’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믿는다하는 말은 뭐냐 하면 “막혀있음을 믿습니다.”에요. 우리가 천국 가는 길이 막혀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시도, 모든 생각관이나 교회 가서 어떻게 하는 그것조차도 십자가를 뚫을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어떤 행위라든지 어떤 생각도 거부합니다. 받아주지를 않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로 막아났다면, 그러면 이렇게 막혔다. 또는 막았다 합시다. 막혔다는 인간 쪽이고. 막을 때 주님의 의도가 뭐냐, 주님께서 이렇게 막아놓으신 의도가 뭐냐 하면 이 십자가를 뭐로 보느냐 하면 십자가가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보는 거예요.
약속은 성취해야 됩니다. 약속은 성취해야 되거든요. 약속은 성취로 이어져야 된다. 성취로 이어져야 되는데 방법은 뭐냐, 인간들이 달려드는 것을 완전히 막아버리고 예수님께서 홀로 이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모든 인간이 개미떼처럼 기어 올라오는 것을 다 막아버린 거예요. 예수님 혼자 하겠다는 거예요. 이 예수님 혼자 하겠다는데 여러분이 기분 나쁩니까? 짜증나요? 우리를 무시하는 게 아주 속상합니까?
십자가를 믿는다는 말은 주께서 홀로 하셔야 할 일을 아버지께 받은 것을 우리가 인정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끼어 들 자리는 아니올시다. 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예요. 내가 끼어 들 자리는 아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 보게 되면 4장에 꽤나 유명해요. 4장 마지막에 보면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누가 같이 오느냐 하면 주께서 홀연히 천사장과 나팔소리와 하나님이 친히 하늘로 강림하실 때에 그렇게 되어있지요. 천사들과 함께 오게 되어있어요. 천사들과. 주님께서 수행자들이 있어요.
예수님과 올 때에 천사들과 함께. 여기는 천사장이 오지요. 천사장은 천사들을 대동하고 있어요. 천사장하고 미카엘인데. 천사장하고 천사들하고 예수님하고 같이 하늘에서 나타납니다. 하늘에서 나타나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이제부터 어려워요. 물론 제가 어렵다. 어렵다. 해도 들어보면 하나도 안 어려운데 척하고 아시는데. 예수님이 천사를 닳았다고 생각하세요. 천사의 기능하고 예수님의 기능이 동일해요. 같은데, 이 천사의 기능이 뭐냐 하면 ‘빈자리의 지배자입니다.’ 오늘 제목으로 하겠어요.
빈자리의 지배자. 빈자리.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약간을 얻는 게 좋습니까? 전부를 얻는 게 좋을까요? 여러분들이 어떤 일을 할 때에 약간 일부를 얻는 게 좋습니까? 몽땅 다 얻는 게 좋을까요? 그냥 몽땅 다 얻는 게 좋겠지요. 그런데 일부를 얻을 때는 기존의 있는 것을 가지고 추가적으로 일부를 얻을 수 있는데. 몽땅 다 얻을 때는 나를 몽땅 다 버려야 돼요. 그래도 몽땅 다 넘겨줘도 좋아요?
빈자리의 지배자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무엇을 의식하느냐 하면 우리 인간이 자리를 확보하고 있는 거예요. 확보. 확보니까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소유지요. 인간은 살아가면서 뭘 추구하느냐 하면 자꾸 어떤 자리를 더 확장시키고 끌어 모으려고 해요. 이건 내 자리. 아파트도 좁은 아파트보다 넓은 아파트를 더 좋아하잖아요. 내 영토, 내 능력이 더 확장되는 걸 의미하는 겁니다.
교인수가 몇명 안 되는 것보다 많은 숫자 되는 게 좋지요. 교인 수 좀 많으면 2미터 띄울 수 있는데 교인수 작은 교회는 띄울 수 없어요. 가게세가 비싸가지고. 딱딱 붙어가지고 코로나 다 걸리고. 그래서 어느 날 기도하게 되면 자리, 영토 예배당 성전을 확장하게 하옵소서. 넓히게 하옵소서. 그런 식으로. 땅에 대한 기도 있잖아요. 내 지경을 넓히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 통성으로 막 시키잖아요. 이게 뭐냐 하면 자리를 확보하는 거예요. 자리가 확보되면 이건 빈자리일까요? 이미 있는 자리일까요? 이미 있는 자리이지요.
그래서 인간이라 하는 것은 그냥 홀로 있지 않고, 내가 확보한 자리와 더불어서 인간은 있습니다. 내가 확보한 자리. 확보한 이 자리가 있다 말이죠. 그러면 내가 만약에 죽어서 천국가려면 나만 가는 게 아니에요. 내가 마련한 자리도 같이 넣어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됩니다. 이 자리가 무슨 자리인가 하면 바로 생식+번식의 자리이지요. 처자식이다 말이죠. 처자식.
그리고 내 있던 아파트 지분해가지고 부동산, 동산까지 이걸 한마디로 말해서 과거에요. 과거. 나의 과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꼭 쥐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천사가 악마가 인간에게 들어올 때 악마도 천사니까. 천사가 들어올 때, 인간에게 들어올 때는 이 과거를 다 토해내야 돼요. 점심식사 했는데 또 이런 이야기해서 곤란한데. 욱!
자기 과거를 다 토해내야 됩니다. 만약에 토하지 않으면 일부를 얻는 게 돼요. 일부를 얻어버리면 이건 진리가 아니고 뭐가 되느냐 하면 지식이 됩니다. 지식의 특징은 자꾸 추가적이에요. 요거 알고, 그 다음에 요거 좀 더 알고. 창세기 알고, 그 다음에 신명기 더 알고. 나중에 요한계시록도 알고. 만약에 보태고 보태고 추가하고 추가하게 되면 내가 확보한 성경의 정보가 나를 구원하겠지. 이리 되지요.
그러면 그걸 확보해봐야 뭐냐 하면 과거에요. 과거지사에요. 과거의 일이에요. 과거라 하는 것은 토해내야 하는 겁니다. 원래 인간은.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게 아니고 전부 다 범죄한 천사지요. 악마가 전부 다 인간에게 집어넣어준 거예요. 내 것, 내 소유, 이것까지는 내 것이다. 이건 내가 못 놓겠다. 이런 의식과 사고방식이 악마가 악한 천사가 하나님께 대들던 사고방식을 그대로 머릿속에 입력당한 결과입니다. 악마한테 우리가 인수인계 받은 게 있어요. 에베소서2장2절의 말씀입니다. 세상 신에 대해서 우리는 철저하게 세상 신이란 악마지요. 사탄이지요. 사탄에 의해서 철저하게 모든 출산과 번식에 천사가 악마가 다 개입한 거예요. 이걸 로마서5장에서는 죄가 지배했다 하는 겁니다. 죄가 지배했다.
그러니까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배자가 인간의 모든 것을 빈자리를 천사가 인간 자리에서 인간자리를, 빈자리를, 보이지 않는 그 천사가 악마가 다 지배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인간에게는 이 악마가 안 보이니까 어떤 자기 자리 확보 그것만 신경 쓰고 살아가는 겁니다. 과거지요. 과거를 토해야 된다는 말은, 과거라는 말은 이건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시간에서 나오지요.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니까. 과거를 토한다. 과거가 없다는 말은 천사의 특징은 뭐냐 하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천사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요. 과거, 현재, 미래라는 것은 천사한테는 없습니다. 참, 신기해요.
하나님께서 천사를 대하던, 악한 천사를 대하던 간에 시간을 묻지를 않아요. 시간을 거론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성도 새로 지움 받은 성도에 대해서도 시간에 대해서는 묻지를 않습니다. 창세전부터 구원받은 거예요. 창세전부터 택함을 입었다고 되어있어요.
아까 예수님은 누굴 닮았다고 했습니까? 천사를 닮았지요. 천사처럼 예수님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예수 안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아요. 예수 안에는. 그러니까 성령을 받았다, 또는 성도가 됐다는 말은 시간이 없어진 예수님 앞에 우리의 시간을 내어준 거예요. “주님이여! 덮치소서. 덮쳐서 시간에 구애받는 우리가 더 이상 시간에 얽매이지 않게 하옵소서. 나의 과거에 억매이지 않게 하옵소서.”
내가 과거에 이렇게 살았고, 저렇게 살았고, 과거가 이렇게 잘났고, 못났고, 그것에 대해서 주님께서 일체 함구함이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요. 그냥. 일체 함구에요. 묻지 않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악마가 아담을 덮쳤을 때, 인간을 덮었을 때, 마찬가지로 그냥 악마는 빈자리에 살던 족속이기 때문에 그 빈자리가 인간의 자리를 그냥 덮쳐서 차지한 거예요. 이 천장이 무너져가지고 그냥 1층으로 내려온 거예요. 2층에서는 어떤 시간이나 공간이나 성립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스가랴의 천사 이야기 아까 얼른 읽어봤지요. 스가랴 이 천사이야기는 스가랴 전체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천사가 여전히 시간과 공간에 집착하고 있는 자기 백성, 언약 백성, 이스라엘에 대해서 천사답게 지배하는 그러한 과정을 이야기한 것이 스가랴입니다. 여전히 시간과 공간에 집착하고 있는 그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천사가 천사답게 지배자로 장악하는 거예요.
그러면 천사가 뭐 지배자입니까? 예수님이 지배자이지. 할 수 있거든요. 예수님 오시기 전에 먼저 천사가 예수님의 기능, 본질, 그 존재에 대해서 스가랴를 통해서 미리 예수님에 대해서 미리 예고하고 있는 거예요. 주님이 일을 할 때 이런 식으로 일한다. 천사가 등장할 때 특징은요, 사람에게 사전에 물어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열 제자가 문 닫고 로마 군병이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을 때, 이건 공간의 공포지요. 벌벌 떨고 있을 때, 자기들은 로마 군인이 자기를 잡으러오는 것을 무서워해서 밀실, 그러니까 문이라는 것으로 차단시켜 놨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문을 잠가놨는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뿅하고 쓰르륵하고 이렇게 등장했어요. 등장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뭐냐 하면 “평안하뇨? 잘 있었느냐?”라고 물으신 거예요. 굿 모닝하는 것처럼. 잘 있었느냐 묻는 거예요.
이 말은 뭐냐 하면 지금 제자들은 벌벌 떨고 있는데 예수님은 평화롭지? 라고 묻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이 시.공간에서 평화로운 거예요. 아무것도 구애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내가 평안한 것처럼 너희도 평안해야 돼! 그런 대상이야. 니 그 몰랐어?” 이런 뜻이거든요. 내가 너희들과 함께 섞인다는 것은 섞여있는 나도 편하지만, 이젠 나만 평안하지 말고 너희들도 나처럼 시공간에 구애되지 말고 평안해야 돼! 그게 너희들의 원래 내가 의도했던 너희들을 찾아갈 때 의도했던 뜻이 그거였어.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게. 라는 그런 뜻입니다.
스가랴에서는 천사가 찾아왔지만, 신약에서는 누가 오냐 하면 성령이 찾아오잖아요. 성령도 마찬가지로 천사의 기능도 마찬가지로 시공간 구애받지 않고 그냥 와요. 어떤 사람은 설거지하다 오는 사람도 있고, 운전하다가 성령 받은 사람 있고, 화장실에서 용변 보다가 성령 받은 사람 있고, 성령은 그냥 오는 거예요. 잠자다가 오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당구 치다가 오는 사람도 있고요. 쓱 들어오면서 peace, 평화. 나 평화로운데 니는 내 안에서 같이 평화로워라. 라는 그런 의도를 가지고 오시는 겁니다.
마리아, 마르다, 오빠가 나사로인데, 마리아, 마르다는 오빠 죽어서 벌벌 떨고 있을 때 나사로는 그냥 나흘 만에 되살아났지요. 로마 사람들이 나사로 또 죽이자고 달려들 때에 나사로는 아무 구애받을 필요 없어요. 왜냐하면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시간에 얽매여 죽었다가 이제는 시간을 탈피해서 시간을 구애받지 않는 삶을 잠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 나사로의 모습이 오늘날 성령 받은 모습을 미리 앞당겨 보여 준 거예요. 성령 받은 사람은 시간이 주는 공포, 공간이 주는 공포에 그렇게 구애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까지는 여러분들이 아신다 치고, 빈자리의 지배자 아시겠지요. 인간을 인간이 지배하는 게 아니고 사탄이 지배하고 있고, 또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성령께서 또는 선한 천사가 우리를 빈자리의 지배자로 이렇게 찾아오는 겁니다. 빈자리라 하는 것은 빈자리의 지배자거든요. 빈자리의 반대말이 공간이겠지요. 또는 다른 말로 하면 시간. 공간. 같이 취급하면 됩니다. 요새는 물리학에서 이걸 합쳐서 시. 공간이라고 하는데.
시간과 공간의 특징은 인간의 세계의 특징이에요. 인간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이유는 출산이 있고 플러스 출산되고 난 뒤에 뭡니까. 번식이죠. 출산에서 번식에서 나타난 게 뭐냐, 역사라는 겁니다. 역사. 역사인식. 여러분, 인간의 의식 가운데 공간의식이 먼저겠어요? 시간의식이 먼저 있겠어요? 평소에는 공간이 나 어디에 산다. 나 서울에 살아요. 대구에 살아요. 하지만, 이렇게 멀리 여행 간다든지 혼자 잠을 잔다든지 꿈에 보게 되면 공간보다도 내가 살아온 역사가 더 우선입니다. 내가 살아온 역사가.
만약에 어떤 낯선 곳에 간다면 그 낯선 곳을 생각하는 것보다도 ‘아이구, 내가 애가 셋인데 지금 애들 밥은 잘 해먹는지. 놀러왔을 때는 기분 좋았다마는 빨리 밥해줘야 되는데.’이런 생각이 들지요. 과거에 했던 그 과거의 기억 시간의식이 어느 공간을 막론하고 초월해서 그 과거 속에 자아를 두는 겁니다. 자아를 거기다가 자기를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의 세계는 역사, 그래서 이걸 합치면 인간의 세계하고 역사 플러스 하게 되면 역사 안의 인간. 이게 역사안의 인간의 존재입니다. 그럼 역사는 인간 존재가 될 경우에는 여기는 빈자리가 아니에요. 자리가 있어요. 자리. 과거, 현재, 미래가 여기서 구분되어있습니다. 자리가 구분되어있어요. 여기서 여기까지는 내 자리. 결혼하게 되면 니 자리, 내 자리 합쳐서 큰 자리. 요렇게 되겠지요. 어떻든 간에 자리는 있다 말이죠.
그럼 자리가 있으면 요거는 내 자리고 요거는 너 자리거든요. 이건 뭐냐 하면 개성이지요. 살아온 자기만의 개성. 이건 내 역사에요. 이건 어렵지 않습니다. 이건 너의 역사입니다. 너의 역사. 나의 역사와 너의 역사가 합쳐서 가정을 이루면 우리의 역사로 새롭게 꾸려나가는데 여기서 자식을 출산하고 번식을 하게 되면 우리의 역사가 형성되는 겁니다.
그런데 내 역사, 니 역사 이게 뭐냐 하면, 이게 구분 또는 분리 개성이 있으니까 각자 구분되고 분리되겠지요. 너와 내가 분리된다 말이죠. 심지어 같이 부부가 되더라도 같은 것이 모두다 분리가 되니까. 이 분리되면서 우리는 뭘 생각하느냐 색깔을 나만의 색깔을 가질 수 있습니다.
스가랴1장8절을 누가 한 번 읽어보세요. “내가 밤에 보니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기로” 한 사람이 붉은 말 그 다음에 자주색 말 그 다음에 하얀 말을 탔지요. 색깔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색깔은 이 지상에 있어요. 지상에 있어요. 천사는 영적 존재기 때문에 색깔 같은 것이 어떤 색깔인지를 그건 알 수가 없어요. 뭐냐 하면 빈자리거든요. 빈자리. 공백.
자리는 공간이고 빈자리는 공간이 아니에요. 빈자리에요. 천사를 묘사하고 예수님을 묘사할 때 뭐로 묘사하느냐 하면 인간의 언어를 가지고 묘사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의 언어가 어디에 막히느냐 하면 빈자리 공백에 대해서는 인간의 언어가 넘어갈 수가 없어요. 그 빈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인간의 언어로서 설명할 길이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것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설명할 길이 없어서 이것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것을 사건이라고 하는 거예요. 사건. 특이성. 특이한 거예요. 사건이다. 빈자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러면 이 사건 말고 이 사건 외에 있는 것은 뭐냐 하면 역사가 돼요. 역사는 무슨 세계냐 하면 창세기1장부터는 창조된 세계입니다. 창조된 세계, 피조물의 세계에요. 피조물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이 다 창조된 거예요. 인간도 창조된 겁니다. 피조물의 세계는 구분이 돼요. 구분이. 빨강색하고 자주색하고 따로, 따로입니다. 빨간색이 자주색이고 자주색이 하얀색이고 그거 아니에요. 구분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빈 공백을 지배하는 그 천사를 이 땅에 오게 되면 이 땅에서는 사람들이 구분하는 그 표현방식에 천사가 그대로 거기에 그걸 사용해서 천사의 자기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있어요.
구분된다, 차이가 난다는 말은 인간이 각자 어떤 사람이 빨간 옷을 입고 어떤 사람은 자주색 옷을 입고 어떤 사람은 하얀 옷을 입었다. 그럼 같은 사람 아니지요.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직업도 다를 수가 있고 평소에 그 사람이 살아왔던 과거, 역사, 역사도 다 다르지요.
역사라는 말을 여러분들이 가볍게 여기지 마세요. 역사는 곧 뭐냐 하면 지금의 나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나 누구냐, 라는 말을 세상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느냐 하면, 나 왕년에 이랬어! 라고 대체하고 있어요. 니 누구야? 나, 이래! 애는? 세 명이야! 자기의 과거를 가지고 지금의 자기를 설명하는 거예요. 천사는 그런 게 없어요. 천사는 과거, 미래 그런 거 없습니다.
천사의 기능은 있어요. 주님이 시킨 일이 있어요. 그 일을 할 때는 인간세계에 나타날 때는 인간세계에 나타난 형식을 덧입어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나게 되어있어요. 예수님은 누굴 닮았다 했습니까? 천사를 닮았지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인간의 육신이 없습니다. 육신이 없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기 위해서는 뭘 입어야 돼요? 인간의 육신을 입어야 해요.
인간세계에서는 여자 따로 남자 따로고, 아버지 아들 관계 다 있어요. 모든 게. 빈자리가 아니고 있음이거든요. 번식과 출산 다 있다 말이죠. 그리고 여기에 나온 천사들이 다 사람모양이에요. 여자 모양은 별로 없는데, 전부 다 남자 모양인데.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에 분명히 남자긴 남자인데 너무 이뻐. 너무 이쁘게 생겼어요. 그래서 천사의 모습, 그 소돔과 고모라에서는 그 이쁘장한 남자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이 굉장히 궁금해 해요. 왜 궁금해 하느냐 하면, 오늘 배운 대로 하게 되면 왜 궁금해 하느냐 하면 인간의 모든 인식은 역사인식에서 나왔거든요. 과거에 내가 아는 지식 쪼가리에다가 뭐 하나 더 보태는 식으로 상태를 알려고 한다 말이지요.
그래서 아~ 소돔과 고모라의 얼마나 이뻤으면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그 남자들이 그 동성애하자고 그렇게 왔을까, 왜 그렇게 이뻤을까, 하는데 최근에 TV프로그램에 보면 천사의 모습과 비슷한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누구냐 하면 김희재. 트로트 7명중에 한명. 김희재가 비슷하게 생겼어요. 남자 같은데 모든 모습이 여자 같아. 춤추는 거 부터해가지고 음색부터 해가지고 하는 게 전혀 여성들에게 위협의 대상이 안 돼요. 우락부락하면 위협의 대상이 되지만, 곱상하게 생긴 사람은 위협의 대상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의 남자들이 만만해서 달려든 겁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이 세상의 윤곽이 좀 잡힙니까. 이 세상에 있었던 모든 구분과 구별은 본인이 갖고 살았던 과거가 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너와 내가 다르다. 공통점은 있지만, 요 점은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나고 너는 너라는 말은 뭐냐, 나의 살아온 과거가 너의 사는 과거와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출신성분부터해가지고 모든 출신성분보다도 니가 살아오면서 쏘아대던, 쏘아대던..., 아까 배웠으니까 아까 분명히 어렵다고 했는데 이제는 어려워질 거예요. 응용하게 되면.
내가 평생 살아온 지금 살던 간에 하늘에서 뭐가 떨어지겠어요? 계속 사건이 주어지는 겁니다. 사건은 보이지 않아요. 사건은 보이지 않지만, 인생의 변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여러 가지 변화. 사건의 다발이 오늘날 내가 된 거예요. 그동안. 7살 때 차 길 가는데 끽! 해서 갑자기 바쳐가지고 지금 다리에 상처가 난 것은 7살 때 교통사고 나서 생긴 것이다. 모든 주변에 있던 그런 흔적들이 전부 다 내 안에 하나의 마음의 상처, 육신의 상처로서 다 모집돼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달을 망원경으로나 보게 되면 달이 곰보 같아요. 달이 표면에 엉망진창이지요. 왜 그렇습니까. 유성이 너무 많이 떨어져서. 유성이 많이 떨어져서 그래요. 전부 다. 위에서 쳐서 그래요. 우리의 마음가짐인 것이 곱게 살 수가 없어요. 천사가 사건을 때리는 겁니다. 때린다는 것은 우리보고 때리는 게 아니고 우리의 정신을 장악하고 있는 사탄, 마귀보고 때리니까 우리에게 이렇게 역정도 생기고 상처도 생기고 악마와 더불어 고생, 고생하고 살아가는 거예요. 마음은 안 바뀌지요. 주님께서 사탄보고 때려서, 귀신보고 때려서 애매한 우리보고 쥐어 패니까 얻어맞는 것은 우리가 얻어맞는 거예요. 그냥. 이게 바로 역사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사고방식은 죽으라고 이 역사를 못 버려요. 왜? 그게 나니까. 나니까 버릴 수 없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자기 고유의 역사. 니가 하나의 신처럼 된다고 했으니까. 자기만의 역사와 타인 간에 이렇게 넘어갈 수가 없어요. 부산강의에서 그런 강의했는데. 나라는 것과 남하고 이렇게 연결이 안돼요. 아무리 결혼해서 50년 같이 살아도 절대로 나는 나고, 너는 너에요. 자식도 마찬가지고. 어떤 류도 건너갈 수 없습니다. 각자 때리는 사건이 다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들 두 문장을 써 볼 테니 어떤 문장이 있는데 어떤 문장을 쓸 거예요. 두 개의 문장을 쓰는데 여기 “참! 잘했어!” 라고 칭찬할 수 있는 문장이 둘 다 해당되는지 여러분이 한 번 보세요. 첫 째 뭐냐 하면, 9살 먹은 여자애가 발바닥 지짐을 당하고 얻어맞고 했는데 어느 날 탈출해가지고 편의점에 나타나가지고 그 애가 치료받고 있고 아빠, 엄마는 이제 구속당하게 됐어요. 그런데 애가 아빠, 엄마를 탈출했을 때 이게 “참 잘했어요.” 가 성립되는가, 성립되지 않는가, 이 세상에서. 천사 빼고 그냥 편하게 생각해서. 그럼 그 엄마, 아빠 양 부모 앞에서 얻어맞아야 합니까. 참, 잘했어! 되지요.
그럼 요 문장을 참 잘했어. 해봅시다. 윤 계상하고 이 하늬하고 7년 만에 결별했어요. 이거 참 잘했어요. 어떻게 돼요? 교회 목사가 보기에 이 하늬는 매일 성경만 읽고 신앙생활 너무 너무 잘하고 칭찬을 많이 받아요. 윤 계상은 교회 다니는지 안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윤 계상이가 우리의 교인 아니니까, 이 하늬는 같은 종교니까, 만약에 윤 계상이가 교인을 괴롭힌다면 뒤에 뭘 붙이겠습니까? 참 잘했어요. 붙이겠어요? 까짓 거 그거 이혼해버려라. 7년 동안 잘 버텼다. 같은 참 잘했어요, 인데 참 잘했어요. 라는 이 평가, 이 판단, 판단은 어떤 경우냐 하면 참, 잘했어요. 라는 평가를 내릴 때 나는 나를 포기 못한다. 이 정신으로 이런 판단을 내리는 겁니다.
나는 이 세상 말고는 갈 데가 없다. 때려죽어도 나는 이 세상 사람이고 싶다. 이 세상에서 행복 하고 싶고, 남한테 훌륭한 소리 듣고 싶어. 이 세상에서 나는 진짜 밉상 받아서 버림받아가지고 다른 세상 가는 것도 나는 싫어. 나는 이 세상에서 나는 모든 승부를 걸 거야. 라고 할 때, 이 사람은 빈자리의 지배자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라 볼 수 없어요.
계속해서 지금껏 내가 살아온 나의 역사와 나의 과거를 이게 상처투성이인줄 알면서도 포기 못하겠다는 거예요. 나의 과거를 욱하고 토해내지를 못하겠다는 겁니다. 누가 그렇게 하겠어요? 누가. 내가 아는 게 그것밖에 모르기 때문에 지금껏 고생한 것이 아까워서 내가 내 이만큼 살아온 공들인 것이 아까워서 지금 이걸 어떻게 포기해. 다만, 십자가가 뭐며, 복음이 뭐며, 성경이 뭐며, 지식 쪼가리 더 보태가지고 지금 고생, 고생, 그렇게 고생한 나도 지식 쪼가리의 덕분으로 지금 이대로 천국 가는 걸 더 원해. 이게 바로 인간들의 보통 교회들의 삶이지요.
그런데 제가 강의 첫 번째 뭐라고 했던가요? 십자가는 뜻이 뭔가요? 막혀있다는 겁니다. 이제 십자가가 막혀있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십자가가 막혀있는 이유는 시간이나 공간에서 형성된 자아를 나는 사양합니다. 안 받습니다. 라는 뜻이에요. 이 땅에서 이 악마에서 성공하신 분은 단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밖에 없어요. 예수님 밖에 없다는 말은 다른 사람은 왜 안 되느냐를 생각해야 돼요. 다른 사람은 왜 안 될까요. 그놈의 과거 때문에. 그놈의 자의식 때문에.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십자가가 뭡니까. 천국 뭡니까. 그거 알아서 뭐하는데. 알게 되면 이 둥치를 이 덩어리를 어떻게 천국까지 넣어볼까. 하는데 무거워서 안 들어가지요. 무거워서. 좀 빼세요. 이게 무거워도 너무 무거워서 이 덩치를 천국까지 가려고하니 중력에 반해가지고 주저앉게 되었어요. 그동안 고생한 것이 아까워서 라도 그냥 내가 아무것도 한 것도 없이 가기에는 뭐하다 말이지요. 이렇게 진짜 나한테 못되게 했던 거 꿀밤이라도 몇 대 주고, 복수할 것은 복수하고 가고 싶어. 그냥 가려하니 내 자존심이 허락 안 해. 너 죽고 나죽자 하고 한바탕 하고 난 뒤에 나 천당 간다 하고 바이, 바이 그러고 싶어. 실컷 나를 힘들게 한 그 힘든 만큼 7배나 갚아주고 가고 싶어.
그것이 뭐냐 하면 여전히 자기 개성과 자의식을 포기를 못하는 자기의 색깔을 못 버리는 겁니다. 홍색, 자색, 백색의 특징은 색깔 있는 이 세상 자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모든 색깔. 그래서 천사의 색깔이 한 색깔이 아니고 여라 색깔이 된다는 말은 이런 뜻이에요. 천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임을 색깔로 보여주는 거예요. 기능으로 보여줍니다. 천사의 특징은 결코 내가 했습니다. 내가 잘났습니다. 없어요. 하나라는 것은 나에게 해당되는 숫자가 아니올시다. 라고 천사는 극구 그 하나 됨을 거부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아무리 남들이 있어도 역시 눈에 띠이게 늘 아주 가깝게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의 역사에요. 천명이 있고, 군중 속의 외로움 하는 게 있지요. 많은 숫자가 있지만, 여러분 외롭지 않던가요. 아무리 친한 사람 많고 일가친척 많고 누구 하나 생일가게 되면 나도 모르는데 일가친척이 왜 그리 많은지. 그렇게 많더라도 외로움을 느끼거든요. 13살, 12살, 14살, 애들 친척집에 모이면 그것도 건성으로 외삼촌한테 인사해라 하면 그것도 안녕! 해놓고 스마트폰 켜놓고 문 닫아 놓고 스마트게임하고 있어요.
이게 뭐냐 하면 자기 본성이에요. 둘이 있던 셋이 있던 일가친척 누구 관계없고 나는 나만의 고유한 세계를 유지하고 싶다. 그게 바로 악마가 선악과 따먹으면 정녕 네가 절대적 네가 단독자가 된다. 니가 자립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구애받지 말라. 니한테 잔소리하는 선악과 니가 아예 없애버려. 따먹어서 없애버려. 이제는 누가 간섭하는 사람 없지. 그럼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죽으라는 그 계명이 없어졌으니까 죽을 턱이 없어. 너는 이제 니 맘대로야. 죽음이 무서우면 종교 만들면 되니까. 여호와증인처럼 종교 만들면 되잖아요. 불교처럼. 나는 부처다. 이러면 되잖아요. 그런 아이디어를 끄집어내면 된다 말이지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천사의 특징은 여럿이다. 여럿이고, 자기한테 모든 걸 돌리지 않는 반면에 인간은 아무리 예수 믿어도 중요한 것은 예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유독 최종적으로 중요하다. 이렇게 해서 천사의 기능과 인간의 기능은 서로 다릅니다. 천사는 예수님을 증거 하지만, 우리는 나 잘남을 증거 하기 위해서 인생을 살아온 거예요. 이 문제를 천사는 어떻게 바꿀 것인가. 10분 쉬고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