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서울의존강의20200611b 베드로전서4장 7절(복음의 해석)-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베드로전서

서울의존강의20200611b 베드로전서4장 7절(복음의 해석)-이 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해봅시다. 사랑에 대해서 언급할 때 인간이 여기 있음으로써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어차피 인간은 아무리 사랑해봐야 대가를 찾기 마련이고 은근히 노리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요한일서에 보면 “사랑은 여기 있나니” 라고 해서 먼저 인간 사랑에 대해서 강력하게 밀어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한 게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에게는 사랑이 못나온다. 안 나온다. 나올 수가 없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은 절대로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복음을 설명하면서 왜 사랑을 같이 연계해서 생각하느냐, 언급했느냐. 상당히 중요하거든요. 그것은 사랑 아니면 모든 복음의 진리에 대해서 어디를 추구하느냐 하면, 옛날 구약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보게 되면 인간은 자기 영광을, 스스로의 영광을 추구해요. 자기 영광을 추구한다 이 말이에요, 스스로.

이걸 좀 어렵게 설명하겠습니다. 이렇게 보면 돼요. 먼저 하나님께서 일을 할 때 인간의 행태 또는 행위를 먼저 쫙 깔아놔요. 쭉 깔아놓고 그다음에 주께서 그걸 하나하나 파헤치는 거예요. 지적하는 거예요. 인간은 기껏 이런 행동을 하는데 어느 것 하나 하나님 보시기에 죄 아닌 게 없다는 식으로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펼쳐 오는 겁니다. 인간이 먼저 일을 시작하게 해요. “해봐, 해봐.”, “하나님은 어떻게 합니까?”, “아니 네가 생각한대로 해.” 하고 뒤따라가서 그러니까 조목조목 “네가 잘못되었다, 네가 잘못되었다.” 이렇게 하십니다.

구약성경에 특히 그런 게 많죠. 먼저 율법 줘가지고 율법대로 한번 해봐, 해봐. 해놓고 율법의 정신과 율법의 뜻과 너희들이 한 것과 서로 틀렸다. 따라서 율법을 위배했으니까 너희는 매 맞아도 할 말 없지? 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처벌해버리는 겁니다. 주님 쪽에서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인간 쪽에서 먼저 시작하게 해놓고 그것을 전부다 거부하는 거예요, 부정해버리고. 거부하는 식으로.

그렇다면 그 모든 죄에 대해서 열심히 하면 되지 않습니까? 바르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착하게 살면 되지 않습니까? 라고 하는데 바르게 하는 것하고 뭐 착하게 사는 것. 그렇게 하려면 뭐가 되요? 본인은 본인에게 어떤 가능성, 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인이 계속해서 못 버리고 있는 거예요. 미련을 갖고 있는 거예요. 나 착할 수 있는데. 나 어질 수 있는데.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데.

그런데 여기 8절에 보면 끝에 “사랑은”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그러니까 덮으려면 뭐가 올라와야 됩니까? 죄라는 것이 규정되어야 되죠. 죄라는 것이 퍼질러져야 되죠, 죄라는 것. 죄라는 것이 퍼질러져야 되고 여기서 덮는 것으로 합쳐져서 죄와 덮어주는 것을 합쳐서 이걸 뭐라고 이야기한다? 사랑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사랑. 하나님께서는 이 죄를 안 받아요. 죄는 안 받지만 덮어주는 것을 보고 주님께서는 그걸 사랑으로 인정해주는 거예요. 죄가 있으매 그걸 덮어주는 것으로.

그러면 죄를 덮으려면 죄보다 어느 것이 더 우세해야 되요? 어느 것이 더 세야 됩니까? 더 많아야 되고 어느 게 더 넉넉해야 됩니까? 죄지음보다 뭐가 넉넉해야 되요? 덮어주는 사랑이 더 넉넉해야 되겠죠? 그래서 죄짓는 것은 인간이 자기의 목숨 아까워서 바들바들 떨면서 자기 살려고 죄를 짓죠. 아까도 자기 것이 있으면 뭐가 된다? 사랑이 아니죠. 그러면 덮어주는 것은 인간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오신 주님의 사랑으로 이걸 덮어주는 겁니다. 인간의 것에다가 뭐가 덮인다? 하늘의 것이 덮여서 그걸 사랑으로 규정한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래서 우리 인간이 남을 용서하는 것은 그건 사랑입니까, 사랑 아닙니까? 사랑이 아니죠. 주제넘게 왜 남을 용서해요? 아니 죄인에게 죄짓는 것이 그게 죄입니까? 같은 죄인이 같은 죄인에게 등쳐먹고 사기칠 때, 그 죄인이 나는 피해자라고 우길 수 있어요? 없지요. 인간은 자기가 당한 것만 크게 생각하고 지가 남한테 해코지하는 것은 아주 작게 축소하고 감추고 조작하는 그런 재주가 있어요, 인간에게는. 내가 한 실수는 별로 작고 남이 한 것은 죽일 놈이라고 달려들고 그런 게 있는 겁니다. 너무 자기 자신에게 관대해요.

이 허다한 죄,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말에 대해서 진짜 해야 될 말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아까 그 고고학을 했죠? 고고학을 하면서 같이 언급한 것이 인간의 문명에 대해서 문화 또는 문명, 인간이 하는 모든 업적들, 인간의 지혜로 하는 모든 업적들, 문화와 문명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걸 뭐로 보느냐 하면 이걸 현실로 봐요. 현실은 실제적으로 의미 있고 실제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가치가 있고 없고는 뭐로 매겨지느냐 하면 가격으로 매겨지는 거죠, 시장에서. 가격으로 매겨지는 겁니다.

전에 19세기 말 미국에서 뭘 발명했느냐 하면 접시 닦는 기계를 발명했어요, 1800년대 중반에. 발명가가 만들어놨는데 시장에서 팔렸겠어요, 안 팔렸겠어요? 안 팔렸죠. 여자들 할 일도 없는데 앉아서 접시 닦으면 되지 뭐 때문에 그걸 시장에서 사겠어요? 생각해보세요. 자기 딴에 가치가 있다고 했죠. 가치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가격이 매겨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 아는 사람이 뭐를 발명하는 걸 좋아해요, 처가 쪽에서 아는 사람이. 돌아가셨는데. 그 분이 뭘 발명했느냐 하면 연탄불에 올려놓으면 연탄불의 화력이 세지는 것을 발명 했어요. 그거 가지고 사업 크게 벌여보려고 했는데 그게 사업이 안됐었어요. 왜냐하면 그다음부터는 사람들이 연탄을 안 때고 기름을 땠거든요. 그 사람이 노력을 안했다는 말이 아니에요. 시간을 투자 안했다는 말이 아니에요. 나름대로 했는데 그게 자기는 가치 있고 의미가 있는데 그게 가격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세상에서 의미와 가치는 어디서 결정되느냐 하면 바로 시장, 소비시장에서 결정되는 거예요. 여기 시장이름이 신곡시장이라고 했죠. 신곡시장은 작은 시장이고 세계 시장, 시장에서 결정되는 겁니다. 시장이라 하는 것은 남들의 의견이거든요. 남들의 의견에 의해서 결정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제가 물어봅니다. 이 시장에서 사랑과 허다한 죄를 덮어주는 것이 얼마짜리입니까? 이거 얼마짜리에요?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지 않으면 이것은 비실제적이고 이것은 현실과 위배돼요.

어떤 사람이 대학을 나왔다. 전공이 뭐냐? 전공은 미생물과 나와서 지금 신종코로나 백신 개발에 하나의 팀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면 이 사람은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되죠. 백신 내지는 치료제. 걸리고 난 뒤에 치료하든지 아니면 걸리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약을 만들든지. 그러면 그 사람은 대학 4년 나와 가지고 갑자기 시장 몸값이 올라가는 거예요. 아이고, 너 좋은 대학 갔다. 좋은 대학은 뭐 좋은 대학이에요. 미생물학과 들어갈 때는 입학률이 별로 높지도 않고 수능 점수도 낮았는데. 그런데 이게 타이밍이 딱 들어맞은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원자력 발전소를 있는 것도 다 부순다고 하는 판에 서울대 원자력과 나왔다. 그러면 이것은 타이밍이 안 맞는 거죠. 이 운때가 안맞는 겁니다, 운때가.

전부다 가수한다고 아이돌 한다고 할 때에, 전부다 출세하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획사에 들어가서 어릴 때부터 춤추고 다 합니까? 요새 아이돌의 아이들은 별로 안 쳐줘요. 정동원, 이찬원, 탑 세븐, 임영웅, 김호중. 성악해서 독일까지 유학 갔다 와도 트롯트. 이게 운때가 맞는 거예요, 운때가. 그런데 문제는 이 소비층이 몇 개월 갈지 그걸 또 아무도 모르네. 이제는 너도 나도 실용음악과에 트롯트과 몇 명 뽑습니다. 지금 이렇게 나오거든요. 그런데 만약에 올해 지나고 트롯트가 확 시들어버리면, 트롯트 좋아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다 죽어버리면 그다음부터 딴 게 또 나오는 거예요, 딴 게. 그러니 인간의 현실이라는 것은 인간도 장담할 수 없는 자본주의 시장, 시장 경제 원리에 의해서 된다 이 말이죠.

그럴 때 베드로는 뭐라고 하느냐면 한결같이 가치 있는 것이 뭐냐?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이라는 거예요.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

만약에 어떤 사람이 2차 대전 끝나고 난 뒤에 독일에 교회가 있는데 2차 대전 방금 끝났습니다. 끝났는데 1945년 쯤 되었겠죠. 독일에다가 폐허가 된 교회에 미국의 부흥사 목사나 또는 영국의 목사나 독일에 살아남은 목사가, 나치 반대하는 사람들이 교인들 모아놓고 베드로전서 4장 “여러분, 사랑은 말로 하는 사랑, 그런 형식적인 사랑은 필요 없습니다. 허다한 죄를 덮어줘야 그게 사랑이라” 이렇게 외치면 얼마나 그 사람들이 은혜 받고 주께 돌아오고 감사하겠습니까, 1945년도에. 그런데 2020년도에 교회에서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면 지금 교회 사람들이 내가 무슨 죄를 졌는데? 무슨 죄졌는데? 복음도 때가 맞아야 돼요. 같은 복음인데 먹힐 때 있고 안 먹힐 때가 있는 거예요. 별로 인기가 없어요. 시장성이 떨어지니까, 시장성이.

지금 이 시대의 복음은 뭐냐 하면 동성애해도 구원받습니다. 이게 또 먹히네, 이게 또 먹혀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교회 목사가 동성애도 그 사람개성이니까 봐주자 이런 소리 해가지고 와, 저래야 교회가 커지는구나. 그렇게 되는 거예요, 목사들이 설교할 때. 요새는 뭐가 이슈인지, 교인들이 원하는 소리가 뭐냐? 그걸 체크하는 거죠. 전광훈 목사 쳐야 인기 있는 목사 되는 거예요, 뭐에요?

그러니 베드로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이렇게 할 때 뭐 옳은 소리네, 뭐 그럴싸하네, 복음적이네 아무리 해도 우리 가슴에 와 닿겠어요, 안와 닿겠어요? 안와 닿는 겁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 원인을 이제 설명해 드릴께요.

죄라는 것 속에 본인을 포함시켜야 돼요. 죄 속에 본인을 포함시켜야 됩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본인을 죄 속에다가 안 집어넣는 거예요. 남의 허물을 덮어줄 생각하지 본인이 죄인이라는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거예요. 사람들 말은 내가 뭐 죄인이냐고 하는데. 자,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셨잖아요, 복음이잖아요. 예수님의 복음 앞에서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조작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누군지를 모르기 때문에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자기 이상적인 모델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기가 내가 생각해봐도 괜찮다고 하는 그쪽에 닮아간다고 스스로 자기를 계속해서 변형시키는 거예요. 이유가 뭐냐 하면 내가 누군지를 몰라요. 인간은 내가 누구라고 얘기하는 것을 인간의 어떤 학문이나 인간의 어떤 지혜도 내가 누군지를 이야기해준 인간의 지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존재하지 않아요.

군에서 선임자가 새로 온 신병들 애먹일 때 하는 말장난 같은 게 있어요. “김이병!” 이병이 군에서는 제일 낮은 거예요, 일병이 낮은 게 아니라 이병이 낮아요, 군에 안 갔다 온 여자분들은 잘 모르는데 일병이 더 높아요 이병보다, “김이병, 너 고향이 어디야?” 그러면 “대구 대명동입니다.” 그러면 선임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명동이 다 네 거야?”이렇게 하거든요. 누가 내 거라 했어요? 또 말대꾸하면 얻어맞으니까 말대꾸도 못하고.

나는 누구냐? 여자다. 여자가 다 너야? 모든 여자가 다 너야? 아니죠. 여자인데 나는 아직 결혼을 안한 처자다. 결혼 안한 여자가 다 너야? 그러니 이게 도대체 나를 규정할 수가 없어요. 이 세상 어떤 것도 나를 규정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규정이 안 되니까 따로 무리를 짓습니다, 애들이. 따로 무리를 지어가지고 공통점을 끄집어내요. 특히 비행소년들, 날아다니는 거 말고 나쁜 짓하는 거 있잖아요,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 괜히 길거리에 침 뱉어 보는 거예요. 그러면 비슷한 친구가 “야, 너 우리 청계천 왕자파에 들어올래?” 자기들끼리 뭐냐 하면 “너 담배 피워봤어?”

자꾸 자기가 소속을 정해요. 담배피운 ‘나는 누구다’를 알기 위해서 고등학교 2학년 때 담배 피워본 그 무리 속에 포함됐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규정하기 위해서 찾아다녀요. 찾아다니고 무리지어 그룹을 만들어 보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어느 학교 출신이고 누구하고 동창생이고 자꾸 동그라미를 걸치고 그러면서도 내가 누군지를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한방에 ‘네가 누구냐’를 이야기해줘요. 너는 죄인이다. 이 말은 죄인은 죄인이 누구를 덮어주거나 용서할 권한이 없어요. 그것마저 뭐가 되느냐 하면 죄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누구를 용서하고 누구를 용서해주는 것은 이렇게 함으로써 죄인이 아닐 것이라는 본래 의도했던 이상형이 있어요. 그것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그렇지. 나는 죄인이 아니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야.’ 이러고 싶은 거예요. 자기가 자기에 딱 맞는 그 규정을 본인이 찾아가는 데 사람은 아주 평생을 다 소모합니다, 소비합니다, 거기에. 내가 누군지를. 그러면 성경에서는 죄인이라 했죠? 그것은 듣지도 않아. 내가 왜 죄인이야? 그것은 아예 제껴 버려요, 제껴 버리고 ‘내가 일단 죄인은 아니고 과연 내가 누구지? 누구지?’ 찾고 있는 거예요.

성경에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성도란 성령을 받은 사람을 성도라 해요, 성령 받은 자. 성령 받은 자에요. 그러니 ‘성도란 이렇다’라는 것을 성령은 어디서 오느냐? 십자가 영에서 오거든요.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영이 성령이에요. 그래서 성령이 와야 예수님과 처소를 같이 해서 영원히 천국에서 처소를 같이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성령이 왔다는 말은 성령이 오기 전에 성도가, 인간이 자기를 스스로 규정하는 그 어떤 많은 규정들이, 그런 자기 정의들이 성령이 옴으로써 이건 다 무산되는 겁니다. 소용없는 짓을 한 거예요, 그동안. 성령 옴으로써.

성도라 하는 것은 로마서 8장에 나오는 말씀 있지요? 8장 9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다음에 뭡니까?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교회를 몇 년 다니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전도하고 이거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에요. 성령이 임해야 돼요, 성령이 임해야 된다고요.

그러면 성령이 내게 임했는지 안했는지 어떻게 압니까? 그게 바로 베드로전서 4장 11절,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 말은 뭡니까? 봉사하면서도 본인이 봉사의 주인공이 아니고 성령 또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 주인공이 되는 거예요. 나의 인생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죠.

그게 10절에 보면,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이것은 받는다는 이야기가 먼저 선행되는 겁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주셔야 되느냐 하면, 안주게 되면 인간은 뭐이기 때문에? 그냥 죄인이에요. 여러분들 잘 아셔야 되는데 죄인이라는 말은 그냥 죄짓는다는 말이 아니고, 내가 누구냐를 하나님의 규정 말고 내가 내 마음에 드는 내 규정을 따로 챙기려고 부지런히 시도하는 거예요.

그것은 불신자들 모습 보게 되면 딱이에요, 딱. 불신자들이 뭐냐 하면 바로 성령 받지 않은 진짜배기 딱이에요. 딱 찐이야. 진짜 불신자의 찐은 뭐냐 하면 내가 지금보다 향상되고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고 애쓰는 거예요. 그러나 죄인은 나아져봐야 죄인이에요. 못해도 죄인이에요. 죄인되는 역할은 내가 더 나아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힘이, 다른 영이 와서 내가 성도되었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그 기능으로 사는 게 성도에요.

자, 성도라 하는 것은 죄인이기 때문에 본인이 뭘 해도 죄인이고 그다음에 성령이 임하게 되면 그리스도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거기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만약에 성령이 안 오면 어떻게 살아가느냐? 안 오면 나를 좀 더 좋게 하기위해서 좋은 존재 만들고 남한테 욕 얻어먹지 않는 그러한 칭찬받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 부지런히 쉬지도 않고 노력한다니까요, 불신자들이.

아니 사람들이 남한테 욕 얻어먹는 거 싫어해요. 왜 싫어합니까? 본인은 죄인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에 본인은 죄인은 아니고 완전하지도 않지만 자꾸 다른 이상향을 찾고 있어요. ‘내가 지금보다 더 향상된 모습이 저 모습, 그게 나일거야.’ 라고 자꾸 상상들을 하는 겁니다, 세상을 살면서. 세상에 얼마나 많은 모델들이 있는지 몰라요. 엄청나게 많은 모델이 있어요.

명절날 친척들 모였을 때 시집 안가고 있으면 “너는 어떤 타입의 남자가 좋아?” 이렇게 묻잖아요. 박보검? 난 박보검이 칼인 줄 알았어. 뭐 어떤 타입을 좋아하는데? 박서진? 머리카락 좍 올려가지고 가운데만 섬처럼 남기고 다 깎아버리고. 하여튼 드라마 나오는 미남자, 유아인, 얼마나 많은 후보감들이 있어요. 나는 누구 타입이다, 누구 타입이다 하잖아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예수님 모델 하는 사람, 스데반 집사를 모델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가 망가져야 되고 죽어 지옥가야 될 본질을 성경이 이야기하는 본모습은 애써 안 듣고 세상에 눈에 보이는, 건전하고 괜찮아 보이는, 마치 자기가 좋아한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 타입이 되어 버렸어요. 그게 바로 죄에요, 그게 죄라니까요. 그래서 허다한 사랑으로 덮음을 당했으면 자기 나름대로의 어떤 음흉한, 나는 이런 스타일, 이런 사람 되려고 시도하는 그 자체가 아예 그런 것을 넘보면 안돼요.

이걸 아까 뭐라고 했나. 나한테는 어떠한 권한, 권리가 없다. 내가 나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나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내가 나를 닦달내지 않는다. 나를 심하게 학대하지 않는다. ‘이 바보야, 등신아. 네가 이것도 못하고 왜 사냐’ 라고 나에게 질책하지 않는 거예요. ‘그런 실수를 해선 안되지. 왜 실수했어?’ 라고 나를 나무라지 않는 거예요. 왜? 주께서 우리보고 죄인이라고 했잖아요. 죄 지어서 죄인이 아니고 아담에서 나온 것은 다 죄인이에요. 신종코로나 걸려 죽어도 우리는 할 말 없습니다. 처음부터 죽어있었기 때문에 죽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죠.

자 그렇게 세상이 마지막이다, 심판이다, 우리는 죽어 마땅하다, 죄인이다 할 때 시장에서 허다한 죄를 덮어주는 사랑의 가치가 어떻겠습니까? 그런 사람에게만 시장에 나오는 어떤 전자제품보다도 냉장고보다도 이 세상에 천억 로또보다도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이 제일 귀하죠. 이게 진짜 찐이에요. 진리가 아니고 찐리에요, 찐리. 언제? 지금! 찐찐찐이에요, 언제? 지금. 가장 고귀한 것은 바로 그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입니다. 그건 복음에서 나오죠. 그러면 그 사랑을 사랑답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힘으로 안 되고 바로 하늘의 은사가 내려오는 거예요.

강의를 다시 하겠습니다. 베드로가 지금 쭉 이야기하는 것은 복음 되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시켰던 해석이에요. 복음에 대한 해석이다. 우리가 베드로를 부러워하지 마세요. 우리도 동일하게 성도 같으면, 그리스도의 영을 받았으면 우리 자신이 해석입니다. 어떤 해석? 나는 죄인인데 허다한 죄를 사랑으로 덮임을 받았다. 참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떳떳하죠. 죄인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당당하고 이렇게 떳떳할 수가 있어요? 복음 때문에, 사랑 때문에 그래요. 기죽지 않아요.

넓은 저택에다가 호사스럽게 금으로 떡칠을 하고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는 온갖 물건들을 다 구비해서 살아도 “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다” 그 자랑에 대해서 우리가 자랑할 것은 뭡니까? “우리 집에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이 있다.” 그거보다 더 귀한 게 어디 있습니까? “너 신종코로나로 죽는다.”, “죽어도 좋아, 죽어도 좋아. 원래 죄인이 죽는 게 당연하지.” 이것이 인간의 능력이 아니고 하늘의 은사가 주어진다는 거예요. 8절에서 10절이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허다한 은사는 그 본질상 뭐가 되느냐 하면 재주꾼이 되는 게 아니에요. 탤런트 되는 게 아니고 그 본질은 동일해야 돼요. 뭐냐? 허다한 죄를 덮는 것, 사랑으로 움직여야 돼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유명한 말씀 있죠? 천사의 말을 하고 아무리 강의를 하고 설교를 한다 할지라도 뭐가 없으면?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다 이 말이죠 (고린도전서 13장 1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찹쌀모찌 하나 먹어도 사랑으로 받아들이면 그것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고 감사할 수 있는 요건이 되는 겁니다. 사람 사는 게 그거에요. 그렇다면 내가 남보다 월급 적고 집안이 좁고 하더라도 돌아보면 하나하나가 전부다 뭐가 되느냐 하면 주님이 주신 택배에요, 택배상자. 주님이 주신 사랑이에요, 전부다. 죄인 주제에 이 요구르트 하나도 아깝다, 너 같은 게. 요구르트 하나도 아까워요. 하나 잡수세요, 나중에 주께서 뺏어가기 전에 잡숴 놔야지. 이거 먹는 것도 아깝다.

물어요. “왜 먹느냐?”, 배웠잖아요. “너 살려고 먹지?”, “아닙니다. 왜? 이거 먹고 죽을 거예요, 앞으로 50년 살다가 나 죽을 거예요.” 이거 먹고 죽는 거예요. 생계자금 타가지고 죽는 거예요. 왜? 죽어야 사랑해주신 그 분을 만날 게 아니겠습니까? 세상은 마지막 때 지금 심판의 대상이기 때문에 전부다 거창하고 대단하고 똑똑하고 잘살고 부자 되고 그걸 각자 전부다 이상적인 자신의 모델로 봐요, 모델로 여긴다고요. 전부다 그 경쟁해요. 그러나 어느 누구도 “나 죄인인데 허다한 사랑만 있으면 족해요.” 라고 그걸 모델로 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오직 하늘의 은사 받은 사람 빼놓고요.

은사 받은 사람이 남보다 손해 아니에요. 소위 잘난척하는 사람들은 그냥 주신 모든 햇빛과 공기 이런 것들에 대해서 고마워할 줄 몰라요. 돈은 많은데 감사도 없고 기쁨도 없고 고마움도 없어요. 그런데 은사 받은 사람은 뭐 개코도 별로 가진 것도 없고 간당간당 살아가면서도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고 사랑이 있고 용서가 있는 겁니다. 비록 시장에서는 돈 다 끄집어내봐야 그건 가격 쳐주지도 않지만. 사실은 하늘에서 온 건데 어떻게 가격을 매기겠습니까? 죄인인데 어떻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죄인인데 사랑으로 다 덮임을 받아서 용서를 받았다는 이런 생각이 어떻게 불현듯 확 떠오르죠? 이것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자 한번 정리해봅시다. 자꾸 진도 나간다고 좋은 게 아니고. 죄라는 것은 뭐냐? 자기 스스로의 영광을 취하는 것. 세상 영광을 취하는 것. 죄라는 것은 내 것을 가지고 세상의 귀한 것, 영광스러운 것과 일치시키는 것, 이게 바로 죄가 되는 거예요. 이건 타고났어요, 말릴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교육을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자연적으로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자연적으로 세상의 영광을 향해 달려가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자기 자신을 포기 안합니다. 잘난 맛에 살아가요. 이게 이 세상에서는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런데 자연스러운 가운데서 예수님 오셔가지고 십자가 짐으로써 그 자연스러움이 심판받기에 자연스러운 세상이 되고 말았어요.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어요. 다 심판 받아야 되요. 마지막 때고. 시간적으로 이게 마지막 때라는 그 인식, 심판받아야 된다는 인식, 십자가 지심으로 세상은 마지막 때가 되었다는 그 인식, 이게 어떻게 인간의 교육으로 가능할까요? 안되죠.

그리고 자기가 뭐다? 뭘 해도 죄인이라는 것. 죄인도 슬퍼하면서가 아니고 죄인이라는 사실이 기쁘고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몰라요. 내가 무슨 시건이 있어서 주님이 보는 안목과 동일한 안목을 가지고 나를 죄인으로 볼 수 있는가. 내가 죄지어서 죄인이 아니고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이 땅에 죄짓기 위해서 태어나고 그 죗값으로 죽기 위해서 태어났다. 이러한 안목이 자연스럽게 서슴없이 “뭐 어때서? 이게 진리인데, 이게 현실인데. 딴 소리하냐?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지.” 라고 이걸 아주 거침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진짜 주님의 사랑에다가 모든 걸 일임한 사람에 해당되는 그 자유함, 넉넉함이에요.

그리고 9절 봅시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베드로가 보기에, 베드로의 뜻이 아니고 주님 뜻이지만, 인간이 대접하라고 할 때 아, 원망을 얼마나 했겠습니까? 참 이거 참 누구 이야기 아니지만, 우리 집 이야기이지만. 우리 사돈, 사돈의 주특기가 뭐냐? 대접이에요. 뭐 부산서 아예 차타고 와가지고 귀한 따님 주셔서 감사하다고 대접을 해요. 대접을 하면 우리 집사람은 또 가만히 있습니까? 농심이죠. 받은 대로 또 “아니야, 이건 사돈이 받아야 됩니다.” 주고. 내가 옆에서 제3자 입장에서 볼 때 그냥 안주고 안 받는 게 최고인데 왜들 이러십니까, 정말? 왜들 이래요.

그래서 대접을 하는데 우리는 서로 자기 걸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이해를 하는데, 만약에 세상사람 같으면 원망 나옵니다, 원망 나와요. ‘내가 작년에 준 것만 해도 세 번인데 입 싹 닦고 한 번도 안줬지? 그래서 니 딸이 친정에서 그따위로 배웠더냐?’ 이래가지고 며느리한테 구박을 할 수밖에 없죠. 괜히 자기만 뭔가 바보가 된 거 같고 자기만 유난떠는 것 같아가지고. 지가 홀로 자기가 생각해놓고 남들로부터 자기 예상대로 어떤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는 자기 혼자 설쳐댔는데 괜히 제 뜻대로 안됐다는 원망을 그 사람에게 퍼붓게 되어 있어요. 그게 원망이라는 거예요. 왜 세상은 내 뜻대로 안되느냐에 대해서 제3자, 무작위적으로 이제 공격하는 거예요, 무작위적으로.

그러니까 이것은 결국 강의를 쭉 들어보니까 모든 원인은 어디에 있어요? 내 것이 있다는 것에. 다 넘겨야 되는데 안 넘기고 꼭 쥐고 있는 거예요. 마지막에 단풍 두 장 딱 쥐고 있는 거예요. 마지막에 포커 쥐고 있는 거랑 똑같아요. 그거 왜 쥐어요? 아이고 내 마지막 자존심입니다. 그 자존심 해서 뭐하려고, 그래? 하나님께서 십자가만 받아요. 다른 건 안 받아요. 죄를 덮는 허다한 사랑만 받아요, 다른 건 안 받아요.

유월절 출애굽할 때 천사가 뭐만 봤습니까? 이 집이 양반이나 그런 거 안 봤어요. 뭐만 봤습니까? 흠 없는 양의 피, 피만 보고 넘어갔다고, 피만. 왜? 약속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 약속에 충실해요. 인간이 제시한 약속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오직 자기 약속에 충실한 겁니다. 우리가 가룟유다를 이해해야 돼요. 우리가 성도입장에서 가룟유다가 참 답답하죠.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내 살과 내 피로 네가 생명이 있다고 했는데 왜 그 주의 말씀을 안 받아들일까?’ 라고 참 측은해 하는데 가룟유다가 그 소리 들으면요, 가룟유다 본인도 가슴 칩니다. 내가 안 믿어지는데 어떻게 하냐, 안 믿어지는데. 그러면서도 왜 안 믿어지는지 이유를 모르는 거예요.

왜 안 믿어집니까? 물론 사탄이 들어가서 그런 건데 그럼 사탄이 뭐를 거부합니까? 뭐를 받아들이고 뭐는 계속 밀어냅니까? 바로 인간이 행함 없이 구원받는 것은 사탄이 제일 싫어해요, 행함 없이 구원받는 거. 그딴 소리 하지 말라는 거예요. 사람이 뭘 실천해야, 뭘 해야 구원받지 행한 것도 없이 어떻게 구원받느냐? 그거는 진짜 성령 안 받은 사람은 끊임없이 그걸 밀어내요. 심지어 이런 소리까지 합니다. 내가 예수 믿는 행함을 했다고. 예수 믿어서 구원받았다고 기어이 자기 행함을 챙기려고 해. 이것은 결국 교회에서 봉사해봐야 티내게 되어 있어요.

여기에 11절 봅시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이거 굉장히 설교자에게 올 시험이죠. 설교할 때 나는 주의 말씀대로 설교한다. 나는 그냥 마이크다. 나는 그냥 스피커에 불과하다. 앰프에 불과하다.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말하신다. 이렇게 주장들을 하거든요. 그러면 어떤 사람이 와가지고 “앰프 이거 발로 차도 괜찮죠? 킥해도 괜찮죠? 앰프 꼬라지하고는.” 분명히 자기는 앰프고 그냥 나오는 대로 외쳤을 뿐이라고 했는데 “아이고 설교 꼬라지하고는. 차라리 죽어라. 그것도 설교라고.” 하면 괜히 또 화가 나는 거예요.

나는 글을 쓸 때 주님의 은사대로 썼지, 이건 내 글이 아닙니다. 주의 글입니다. 권투할 때 슉슉, 이건 나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주먹 치는 소리라고 하듯이 이건 내 글이 아닙니다. 했는데 거기서 수상한 댓글 있잖아요, 수상한 댓글. ‘똑바로 믿어라’ 라든지 ‘니가 십자가 복음을 알아?’ 했으면, 앰프 같으면 그냥 가만히 두면 되는데 거기에다가 열불내가지고 분명히 200자 칸에 10자 썼는데 자기는 200자 다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서 400자 채워가지고 콜! 갔다 내밀면 저쪽에서도 화가 나서 저쪽에서 콜! 이거 뭐에요, 이게. “말하거든 주의 말씀대로 하라” 하거든 앰프, 마이크 차고 앰프 걷어차더라도 ‘나는 뭐 나하고 관계없다.’ 이렇게 되어야죠. 이렇게 되어야 돼요.

그리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라” 봉사하는 것. 자, 봉사가 뭐냐? 봉사는 허다한 죄에 대해서 사랑이기 때문에 죄에 사랑을 덮어서 봉사가 나왔잖아요. 그러면 여기서 봉사라는 것은 어떤 봉사든 봉사가 되려면 내 것이 유지되어야 돼요, 사라져야 돼요? 이것은 봉사해본 사람은 알아요. 봉사하면서 봉사하게 되면 힘들죠. 나만 바보된 거같아. 나만 혼자 남아 청소하는 것 같아. 바보된 거 같죠. 바보된 것 같은데 일단 그러한 경험, 마음이 들어야 돼요. 해놓고 아, 이게 바로 봉사함으로써 죄라는 게 내 것이 생길 때 죄도 같이 발생된다는 사실.

봉사하면서 사랑이 와버리면 정말 진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이렇게 귀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까? 이렇게 감격하면서 봉사를 해야 돼요.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데 그 봉사, 청소할 때 그게 8분 43초밖에 안가요. 8분 43초 지나면 점점 바보 같아. 아니 나만 봉사하나? 왜 제가 8분 43초를 강조하느냐 하면 백인 경찰이 흑인 모가지 밟은 게 8분 43초거든요. 주님이 밟아줘야 돼요. 진짜 그 뉴스 듣고 저게 복음이다. 우리는 놔두면 안돼요. 주께서 무릎으로 밟아줘야 돼요, 이렇게. 까불락거리고 촐랑대는 우리를 그냥 꽉 밟아줘야 되죠. 그래야 이게 우리가 복음의 해석이 돼요.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내 해석이 나와 버려요, 내 해석이.

“누가 봉사하려거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야, 이게 또 어렵네, 그 다음에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이게 확정된 거거든요, 확정된 것. 자 아까 강의 처음부터 다시 해봅시다. 처음에 뭐라고 했냐 하면 마지막 때라고 했죠? 복음은 무슨 용이다? 심판용이라고 했죠. 왜 심판용이라고 하냐면 세상 것을 안 받습니다. 왜 안 받습니까?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만 받기 때문에. 받는다는 말은 그만큼 그것이 영광스럽다. 영광스러움이 단일화된 영광스러움이에요, 오직 그것밖에 없어요. 받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다 이루심만 받아요. 영광스러워요. 확정된 거란 말이죠, 확정된 거. 그러면 이것이 확정된 게 복음이거든요.

여기에 봉사하고 설교하는 사람은 뭡니까? 복음의 해석이 되어야 돼요. 오늘 제목은 인데 복음의 해석이 되어야 되거든요. 그런데 복음의 해석이 복음을 대체하면 안돼요. 이현리라는 그런 이단이 있어요. 대구 지방교회인데 위트니스파의 계열이거든요, 워치만 리 계열. 그 사람들 예배시간 설교 들어보면 뭐 말 한마디 해도 아멘, 신천지도 그거 베끼는 거 같아. 한마디만 하면 아멘이에요. 물 좀 마시고 아멘! 그러므로, 아멘. 진짜 이거는 북한도 아니고 왜 이러는지.

북한이 종교단체인 이유가 거기에 있죠. 무조건 따라 해야 되는 거예요. 그 이유가 아까 소속감 때문에, 내가 누구냐를 거기에 기댐으로써 자기 자신을 규정을 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그것도 죄인 아닌 쪽으로, 잘난 쪽으로 규정을 시키는 거예요. 그 이현리의 설교 주제가 뭐냐 하면, 사람들 끄는 방법이 뭐냐? 예수를 믿지 마세요. 예수 처음 믿을 때 초신자나 예수믿지, 믿지 마세요. 여러분이 예수입니다. 그거에요. 여러분이 예수라는 거예요. 한 때 인기 끌었어요. 아, 신선하다. 못 듣던 이야기다. 뭐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그 분위기 자체가 성령이 와서 자기를 잊어버려야 되는데 복음이 와서 자기를 잊는 게 아니고 우싸우싸하는 분위기로 말미암아 거기서 몰입되어 가지고 자기를 잊어버려서 마치 자아를 부인하고 마치 은혜 받은 것처럼 그 분위기로 인간적인 집단으로 조작해내는 겁니다. 조작한다는 말은 노림수가 있다는 말이거든요. 내가 이 집회에서 은혜 받아야지. ‘은혜 받아야지’ 노림수 자체가 자기가 죄인임을 모르고 방향이 반대방향이에요. 그냥 살면 되는데 은혜받아야 되겠다는 말은 또 무슨 욕심이에요, 그게. 은혜 받은 성도된 내 모습을 나의 이상적인 모델로 삼는 겁니다.

여기 10절 끝에 보면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그다음에 뭐라고 되어있지요?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은혜를 받았다. 은혜란 말은 선물을 받은 거예요. 아까도 강의했는데 다 잊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여러분들이 언제 감사합니까? 바로 자기가 죄인이고 더 살 이유도 없는데 집구석 돌아보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고 이 뛰고 있는 심장도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내 힘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힘입니다. 그 힘은 어느 용도냐 하면 너는 죄인이고 내가 너를 사랑으로 덮었다는 것을 해석하도록 우리에게 지금 목숨을 유지케 하시는 거예요, 어디를 가더라도.

복음을 해석하는데, 방법은 나는 죄인이고 주님의 사랑이 덮었다. 이것만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유일한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너 봉사 많이 했네, 설교했네.” 하면 아니야,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그 해석, 유일한 복음에 대한 그냥 해석자로, 스피커로, 앰프로써 우리가 이 땅에 주님으로부터 뜻이 있는 한까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주께서 허락하시는 한까지 살아가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제파악하게 하옵소서. 우리 자신이 내가 그럴싸한 내 모습이, 이상형이 내가 아니라 이미 죄인으로 규정되어 있음을 오히려 기쁨으로 받아들여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알게 된 그 선물을 하나님 앞에서 세상에 널리 전파할 수 있는 봉사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26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8,017 자유게시판 47강-호 12장 11-14절(야곱의 동질성)200624-이 근호 목사 호세아 최고관리자 20-06-25
18,016 자유게시판 36강-욥기 10장 15~22절(뻘쭘한 인생)20200621 이근호 목사 욥기 최고관리자 20-06-21
18,015 자유게시판 18강-빌 2장 25-30절(주님의 윤리)2006021-이 근호 목사 빌립보서 최고관리자 20-06-21
18,014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돌아온 탕자 / 200621 - 최고관리자 20-06-21
18,013 묻고답하기 개 빌립보서 최고관리자 20-06-21
18,012 묻고답하기 The Work(Interests) of Jesus 예수의 일 - 최고관리자 20-06-19
18,011 자유게시판 46강-호 12장 7-10절(거짓저울)200617-이 근호 목사 호세아 최고관리자 20-06-18
18,010 자유게시판 317강-YouTube강의(혈연관계 아가 6:9)20200616-이 근호 목사 아가 최고관리자 20-06-17
18,009 자유게시판 316강-YouTube강의(속과 겉 마태복음 26:7)20200616-이 근호 목사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20-06-17
18,008 강의 유튜브 강의( 316강, 317강) 속과 겉, 혈연관계 200616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20-06-16
18,007 자유게시판 35강-욥기 10장 7~14절(인간 창조)20200614 이근호 목사 욥기 최고관리자 20-06-14
18,006 자유게시판 17강-빌 2장 19-24절(예수의 일)2006014-이 근호 목사 빌립보서 최고관리자 20-06-14
18,005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삭개오의 구원 / 200614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0-06-14
18,004 묻고답하기 죽을 일 빌립보서 최고관리자 20-06-14
열람 ➜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200611b 베드로전서4장 7절(복음의 해석)-이 근호 목사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20-06-14
18,002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200611a 베드로전서4장 7절(복음의 해석)-이 근호 목사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20-06-14
18,001 묻고답하기 The Drink Offering 관제 - 최고관리자 20-06-12
18,000 자유게시판 45강-호 11장 12-12장 6절(야곱의 울음)200610-이 근호 목사 호세아 최고관리자 20-06-11
17,999 자유게시판 20200608b 부산강의 : [시편]29(18편)-나와 남 시편 최고관리자 20-06-11
17,998 자유게시판 20200608a 부산강의 : [시편]29(18편)-나와 남 시편 최고관리자 20-06-11
17,997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2장 36절 (시체 재활용) 200602b-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0-06-10
17,996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2장 36절 (시체 재활용) 200602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0-06-10
17,995 자유게시판 20200605b 울산강의-레위기 26장 : 미완료 레위기 최고관리자 20-06-09
17,994 자유게시판 20200605a 울산강의-레위기 26장 : 미완료 레위기 최고관리자 20-06-09
17,993 자유게시판 34강-욥기 10장 1~6절(분열된 자아)20200607 이근호 목사 욥기 최고관리자 20-06-07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