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00605b 울산강의-레위기 26장 : 미완료자유게시판레위기

20200605b 울산강의-레위기 26장 : 미완료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스라엘의 역할이 뭐냐 하면, 상호대립적인 차이를 가운데서 보여주는 거예요. 이스라엘의 역할은 상호대립적인 것을 가운데서 보여주는 기능,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로 보여주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보여주는 거예요. 복음은 부활이 아니에요. 복음은 십자가지. 십자가가 돼야 상호대립적인 겁니다. 천국과 지옥을 다 보여주라고 우리 성도가 있는 거예요. 자기 홀랑 천당 가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보여주는 기능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는 말씀을 지키는 게 아니에요. 교회를 그만큼 오래 다니고 성경을 그만큼 봐도 이게 이해 안 돼. 이걸 몰라요. 성경을 말씀을 지키는 게 아니고 무엇이 못 지키는 것이냐, 무엇이 지키는 것이냐, 이걸 양쪽을 보여주는 기능을 하는 거예요. 지키라는 게 아니라 못 지키는 것은 어떤 경우에 해당되며 지키는 것은 어떤 경우에 해당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성도의 기능이에요.

그럼 성도한테 말씀을 지키는 게 있습니까? 지키는 게 없지요. 지키는 건 오직 예수님만이 말씀을 지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출제위원이기 때문에 출제자로 문제 낼 때 출제 의도를 문제 낸 예수님 본인만이 알 수 있어요. 심지어 모세 율법이라고 해서 모세가 지킨 게 아닙니다. 모세는 율법을 제대로 못 지켰어요. 그러니까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갔지요. 못 들어가고 인도하고 마지막에 자기가 살짝 비키고 말지요. 선도하듯이, 마라톤 1등 가다가 빠지듯이.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에 가게 하고 못 가게 하는 것은 모세 본인이 잘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기어이 모세의 한계를 주께서 드러내게 하시는 겁니다.

그것으로 오늘 강의에서 제일 중요한 대목이 나옵니다. 왜 우리는 율법을 못 지키느냐?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미완료적 안목을 지녔기 때문에. 율법에 대해서 우리가 접근할 때 미완료성적 인간적 이해 때문에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내가 계속 율법을 지키겠고 말씀을 지키겠다는 것이 미완료적 생각이에요. 쉽게 말해서 시키는 대로 한 번 해보지 뭐. 이런 거요. 갈 때까지 가보면 99.9. 99.9는 100이 아닙니다. 미완료에요.

인간은 계속 미완료에 머문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그것이 바로 무엇이 못 지키게 하는가? 인간은 출발부터 완료적 존재가 아니고 미완료적 존재라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달아야 돼요. 그래서 완료적 존재는 누굽니까? 100은 누굽니까? 외부에서 와야 돼요. 하늘에서 따로 내려와야 돼요. 지상에서는 없어요.

백설공주가 공주 된 게 자기 노력 때문입니까, 아버지, 엄마 때문입니까? 뻔한 거지요. 아버지, 엄마가 왕이고 왕비니까 백설공주는 나오자마자 프린세스, 공주가 돼버린 거예요. 뭐 이런 불공평이 있어요. 이스라엘이 아들 된 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잘 지켜서 애굽에서 바르게 살아서 아들 됐습니까? 백설공주가 공주 된 것이 아버지, 엄마 때문이듯이 이스라엘이 아들 된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 때문이에요. 그 둘 사이를 언약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계약이 성사가 되면 계약관계가 유지되면 아들관계가 유지돼요. 그런데 계약관계가 되지 아니하면 아들관계가 되지 못하는 겁니다.

그렇게 여러분들의 아시고 자, 율법이 모세를 통해서 산 위에서 내려옵니다. 산 위에서 내려올 때 산 아래 사람 삼천 명이 죽습니다. 율법을 맞닥뜨릴 때 삼천 명이 그대로 몰살당합니다. 그 삼천 명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이쪽 기능, 율법을 우리가 못 지킨다는 사실을 인정 못하는 자, 삼천 명 날아가 버립니다.

율법을 어겨서 죽는 게 아니고 우리는 어길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법을 못 지킨다는 것에 대해서 동의 못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에 의해서 작살나야 돼요. 지옥 가야 돼요. 왜냐하면 상호대립적인 기능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모세가 40일 만에 내려왔단 말이죠. 양쪽에 깨진 돌 판 들고 내려온 거예요.

그럴 때 우리가 산 밑에 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봅시다. “뭐 하다 이제 왔어요. 당신, 애굽에서 우릴 인도할 때 지도자로 인정했는데 지도자가 책임감도 없이 혼자 훌쩍 산에 놀러나 가고. 어쩌란 말이냐.” 이렇게 대들 수 있지요. 무슨 돌멩이 주워서 글씨 써서 들고 왔는데 그런 게 무슨 소용 있어요. 우린 지금 광야에서 밥 먹고 살아야 되는데. 그래서 이참에 우리는 당신 빼고 마음이라도 단결해서 하나가 돼야 살아남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애굽에서 건져낸 여호와 신 중심으로 여호와 하나님 마음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 전부 다 금가락지, 여호와는 제일 귀한 분이니까 금붙이들을 가져와서 녹여서 송아지를 만들어서 이걸 송아지로 보지 말고 여호와로 보자, 하고 우리는 축제를 벌였다. 이게 문제 된다면 모세 당신한테도 일말의 책임이 있어요. 이런 짓하기 전에 진즉에 내려와야지. 하고 난 뒤에 화내면 안 되고 돌 판 던지고 성깔부리면 안 되지.

쉽게 말해서 뭐냐 하면, 우리가 애굽에서 나올 때는 죽으려고 나온 게 아니고 더 좋은 삶을 보장받겠다는 약속 하나 믿고 나왔다는 거예요. 애굽에 사는 것보다 젖과 꿀이 흐른다니까 하나님이 그걸 보장해준다니까 우리는 그것 하나 믿고 나왔다는 거예요. 그러면 모세 당신이 책임을 져야지. 그렇게 나오겠지요.

그럴 때 모세가 하는 말이, 당신들이 기껏 생각하는 것이 금송아지 만들고 여호와께서 했다고 추상적인 것을 형상화시키면 구체화된 여호와 신앙으로 결속된다는 그 아이디어, 그 생각이 기껏해야 인간의 마음에서 나올 수 있는 극대치인 거거든요. 거기에 대해서 출애굽기 32장에서는 자기를 위하여 자기가 살기 위해서 자기가 안 죽기 위해서 뭐라고 할 수 있다는 인간이 내놓을 수 있는 극대치에요.

그런데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는 뭐냐? 죽여라. 그럴 때 여러분들이 있다 합시다. 저도 있고. 그래? 우리는 우리 할 도리 다했는데. 이 마음가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했는데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죽여라에 해당 돼? 율법에 의하면, 하나님의 법에 의하면? 아하 그건 몰랐잖아. 이러면 그 사람은 사는 거예요. 금송아지 안 지켜서 사는 게 아니고 그러면 사는 거예요.

그런데 삼천 명 죽였다는 것은 다 죽인 게 아니에요. 남자만 육십 만 중에서 삼천 명은 다 죽인 게 아니잖아요. 그러면 죽였다는 것은 뭡니까, 뭘 고집한 거예요? 하나님의 평가를 안 받아들인 거예요.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출애굽기 32장에 나옵니다. 내가 나를 위해서 이런저런 노력을 했다는 이 정도는 하나님께서 어여삐 여겨서 불쌍히 여겨서 봐줘야지. 이렇게 나오면 다 죽였어요.

왜 그걸 죽여야 되느냐? 인간이 끄집어내봤자 그건 못 지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계명을 줬다는 말은, 주께서는 이 계명 따라서 인간은 못 지키지만 하나님은 지켜서 아들 되게 하는 요소가 새롭게 집어넣었다는 사실, 그러니까 인간은 못 지키고 개입된 하나님의 것은 지키고 이 상호대립적인 양쪽을 보여줄 때 이스라엘은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명령이 있고 많은 지시가 있지요. 그렇다면 그 지시와 명령만 있으면 되는데 십자가는 왜 끄집어냅니까? 왜 세상 죄를 대신 지고 가서 세상 죄를 해결한다는 어린양의 개념이 왜 이슈화되는 거예요? 그게 왜 등장하는 거예요? 세리와 창기는 왜 등장해야 되고 십자가에서 구원받은 강도는 왜 등장해야 됩니까? 우린 무슨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세리와 강도, 구원받은 창기의 특징은 뭐냐? 이게 특징이잖아요. 못 지키는 것과 지키는 것, 서로 대립되는 것을 다 보여줍니다. 38년 된 병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 간통하다 잡힌 여자, 막달라 마리아, 전부 다 특징이 뭐예요? 나의 행함은 아니었다는 거잖아. 내가 불성실하고 내가 착한 일 못해서가 아니라 타고났다는 거예요.

인간은 율법이 요구하는 완료성에 미완료적 존재로 타고났다는 겁니다. 세상에 얼마나 성령을 받아야 이걸 알 수 있어요? 이건 박사가 되도 몰라요. 내가 죄 짓는 것은 타고난 거고 내가 손댈 수 없다는 것을 서슴없이 인정한다는 것, 이것 십자가 영 안 받으면 이런 고백 안 나옵니다. 하나님 말 안 듣는 겁니다.

첫째 시간 강의했잖아요. 아버지 마음 모르는 자는 아버지 나라에 못 간다고요. 아들 나라에 못 들어가요.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돼야 돼요. 아버지 뜻은 뭡니까? 자기 멀쩡한 아들까지 지상에 내려가서 고생하라고 죽여 버렸잖아요. 그게 아버지 마음이에요. 여러분, 요 근래에 아까 오면서도 이야기했지만 6․25 전쟁 같다고. 얼마나 제가 실감나게 들었는지. 저는 6.25 전쟁 중에 태어났어요. 나이 많은 것 드러나는데 그냥 끄트머리, 태어나고 얼마 뒤에 휴전 됐으니까. 한 달 만에.

로마서 8징 18절에 이런 말씀 있어요.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이게 어떤 경우에 기쁨이 오냐 하면, 십자가와 죽음에 꽂혀있을 때 살아가면서 예수님은 왜 죽었지, 왜 사흘 만에 살아났지? 여기에 꽂혀있는 사람은 그것보다 더 중차대한 일이 없어요.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일이 그 일에 있다면 이 땅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영광은 장차올 영광과는 족히 비교가 될 수 없어요.

이 땅의 사람들이 고난을 받아도 그냥 일시적 고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고난 받는 이유가 고난을 대처할 기쁨을 영광을 찾지 못하고 있어요. 그걸 못 보고 있어요. 그저 고생하니까 돈이나 벌어서 고생이 메워지기를 보상되기를 옛날에 내가 잘 먹고 잘 살았던 그 시절이 회복될 그것만 생각하지 정작 하나님이 준비한 게 뭔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되게 노력은 해요. 먹고 살려고 무지무지하게 노력은 해요. 세 시간 동안 콩나물 다듬고 온갖 노력은 하는데 기쁨이 없어요, 기쁨이. 낙이 없어요. 자기가 해서 성과 내는 이것 외에는 아무것도 다른 어떤 기쁨이 없어요.

엄마, 아빠는 고생해도 너 하나 공부 잘하면 보람이다. 그 애가 공부 잘하면 진짜 보상이 될까요? 공부 잘하면 지 잘나서 공부 잘했다고 생각하지 언제 부모에게 공 돌리겠어요. 자식 키워본 사람은 알잖아요. 인간은 모두 미완료적이라는 것, 완료적이라고 기대하는 자체가 아예 큰 실수입니다.

어떤 노래에 보면 이런 게 있어요. 돈보다 친구가 좋다고. 그래서 사기 당한 겁니다. 돈보다 보배 같은 친구가 낫다고요? 이 세상에 완료적인 것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식구를 비롯해서 자식, 부모, 주변 사람들은 전부 다 사기꾼들이에요. 자식을 비롯해서 모든 인간은 사기꾼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나의 잠자는 욕망을 부추기기 때문에.

내가 분명히 미완료로 태어났는데 남들이 자꾸 완료된데. 이처럼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자꾸 환상을 유발시켜요. 망상을 유발시킵니다. 그걸 좀 토속적으로 말해서 귀신 씌운 거예요. 사실은 마귀 씌운 거지만. 언젠가 낙을 보겠지. 무슨 낙을 봐요? 언젠가 희망 오겠지. 희망 안 옵니다. 그건 다 사기에요. 인간에게는 이 땅에 희망 없어요. 이 땅은 하나님이 복수하는 곳이에요. 율법도 못 지키면서 낙을 본다? 이게 레위기 26장에 보면,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아예 꿈 깨란 이야기에요. 그런 것 없어요.

그럼 이 땅에서 성도가 자기가 무엇을 못 지키는가? 본인이죠. 무엇을 지키는가? 누굽니까? 예수님이죠. 그러니까 성도는 누굴 증거 해요? 예수님을 증거 하되 전제가 뭡니까, 무엇부터 출발해야 돼요? 예수님 좋습니다에서 출발하면 안 돼요. 나한테는 기대 걸 게 0도 없음을 인정해야 돼요.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한테 주어진 것은 나의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이것은 웬 떡이지? 내가 왜 집에서 잠을 자고 있지? 나는 왜 라일락 향기를 맡을 정상적인 코가 가동되고 있지, 이상해? 내가 왜 아침에 눈을 떴지? 전부 다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혜택입니다.

주신 것은 완료에요. 이런 것이 어려운데 야고보서 1장에 나오지요. 각양 좋은 것은 위에서부터 온다고 했어요. 우린 이미 각양 좋은 것을 받았어요. 완료된 것을 받았는데 아까 제가 해 보고 달 보고 하는 것처럼 거제도 바닷가 몽돌해수욕장 보듯이 문제는 뭐냐 하면, 본인이 자꾸 욕심을 내서 완료인 존재처럼 하니까 주어진 모든 것이 짜증나, 미흡해. 내 욕구에 만족스럽지 않아요. 40일 기도했는데 기껏 이것 줬나. 이런 식으로. 코로나 났는데 나라에서 백만 원밖에 안 주나. 이런 식으로. 줘도 문제거든요.

그럼 성도는 어떻게 살았는가? 성도가 살아가는 방법, 오늘 알려드리겠습니다. 이것만 되면 돼요. 성도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성도가 살아가는 방법은 자신을 무시하세요. 자신을 심히 무시하세요. 자기 자신을 무시해야 돼요. 자기를 무시해야 남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자신을 무시하지 않으면 남이 무서워요. 집에 누가 들어오는 게 두려워요. 나를 쓰레기로 봐야 돼요. 트럼프 대통령 말처럼. 나를 쓰레기로 볼 때 집에 대통령이 와도 쓰레기로 보입니다. 냄새 나는 쓰레기로 보이는 거예요.

만약에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쓰레기로 본다면 그 집에 시집온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어떻게 봅니까? 방금 배웠는데? 쓰레기로 보는 거예요. 그런데 쓰레기 라면을 끓일 줄 알아. 이런 기적이? 라면에다 계란 풀 줄 아네. 그것도 끝부분에 가서 푸는, 어디서 배웠노, 우와. 시아버지 본인이 자기를 무시하니까 상대방에게 아예 기대를 안 해요. 왜? 며느리 들어왔다는 것은 집에 사기꾼 하나 들어온 거예요. 사기꾼인 줄 알았는데 라면을 끓이죠. 사기는 나중에 치더라도 일단 라면은 먹고 보자. 니가 이런 걸 할 줄 아는구나.

차마 이 말은 하지 마요. 니가 쓰레기인데, 쓰레기는 빼야 돼요. 사이 별로 안 좋습니다. 니가 어떻게 이런 할 줄 아느냐. 니가 딸을 낳을 줄 아네. 아들을 낳으면, 니가 아들을 낳을 줄 아네. 아기를 업으면, 니가 아기 업는 걸 언제 배웠어? 인간이 자기 자신을 무시하니까 상대방을 우대하는 게 아니에요. 상대방에게 전혀 기대하지 않다가 의외의 요소, 그걸 율법의 완성에 나온 새로움이에요.

율법이 완성이 되면 새로움이 나옵니다. 그런데 소위 신자라고 율법을 지켜버리면 거기에는 구닥다리가 나와서 새롭지 않아요. 새롭지가 않습니다. 복음, 십자가 이것 새로울 게 뭐가 있어요. 없지요. 그런데 십자가가 능력이 되어서, 다시 복습합시다. 십자가는 나는 왜 안 되느냐? 그런데 주님은 왜 안 되는 나를 되게 하셨느냐? 왜 주님은 지옥 갈 나를 천국 보내느냐? 이게 십자가 안이거든요. 그럼 십자가가 우리한테 들어온다면 항상 나는 무시하라 했지요.

기억 안 나면 앞에 ‘개’ 하나 붙이세요. 개 있는 데선 하지 말고. 그러면 개에 대한 모독이니까. 개 없을 때 나를 개 무시하는 거예요. 개 무시할 땐 이빨 좀 빠져도 괜찮아요. 어차피 죽을 개인데 이빨 빠져도 괜찮은데 돈 있어서 이빨 해 넣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럼 그걸 고맙게 여겨야 돼요. 임플란트 한 걸 고맙게 여겨야 된다고요. 나라에서 65세 이상이면 반값으로 해줄 땐 고맙게 여겨야 돼요. 범사에 감사해야 돼요.

복음이 우리한테 들어와 버리면 뭐가 나오느냐 하면, 레위기 26장에 나오거든요. 이렇게 보면 참 쉬워요. 26장 14절 다시 보겠습니다. 명령을 준행치 않으면 하나님의 계명에 의하면,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 이게 원래 하나님의 조치라니까요.

여러분들이 지금 눈이 그다지 안 어둡지요. 뭔가 흐릿하지만 보고 있잖아요. 그러니 이거는 내 주제에 부합되지 않고 내 주제보다 추가적인 혜택을 입고 있는 거예요. 말씀에 의하면 지금 장님이 돼야 돼요. 그리고 폐병 돼야 돼요. 열병이 와서 거품 물고 이래야 돼요. 그런데 아직 그 정도까진 아니란 말이죠. 허리가 좀 아파서 그렇지. 그럼 이건 뭐냐 하면, 바로 복을 받은 자에게 주는 여분의 혜택을 비록 못난 자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는 거예요.

이름으로 준다는 것이 너무 상투적이라서 실감이 안 나는데 제가 군에 갔을 때 가끔 이웃 교회청년회에서 와서 위문공연 한다고, 말이 위문공연이지 가스펠송 부르고 전도하면서 뭘 주느냐 하면, 쑥떡을 줘요. 그러니까 여분이 것을 주는 거예요. 쑥떡 해달라고 요청한 적 없어요. 여분의 것을 주는 거예요. 그냥 혜택을 주는 거예요.

혜택을 받을 때 우린 뭘 느끼느냐? 쓰레기 같은 내가 잘해서 오는 건 아니고 보자 이 혜택이 어디서 오지? 혜택이 어디서 옵니까? 예수님의 완료에서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린 미완료인데 미완료에 뭐가 같이 중복돼 있느냐 하면, 주님의 완료성이 중복돼 있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나 잘났다가 아니라 내가 이렇게 밥 먹고 사는 것도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완료 덕분입니다, 라고 소개할 때 그게 바로 예수의 증인되는 겁니다.

그리고 레위기 26장 앞으로 보겠지만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들이 바로 하나님의 계명, 율법의 실제성, 율법의 현실성, 율법이 말로 그치는 게 아니고 현실 자체가 율법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약속의 땅에서 그런 변화들이 대자연을 통해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가 조금만 잘나게 되면 좋다하고 그러다 이방민족이 으르렁거리면서 달려들어 괴롭히면 잘못했다고 빌고 하잖아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엉뚱한 구원자, 시시해 보이는 구원자가 놀라운 능력을 행하면서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데 적들을 물러가게 해요.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구나. 우리는 미완료자인데 하나님이 완료자로 언약의 완성이기 때문에 왔구나.

그게 얼마 가지도 않아. 세월 지나면 또 역시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사는 거지 누구 도움 필요 없어. 나는 독자적이고 자율적이야. 또 이런 되지도 않은 미완성이면서도 미완료면서도 자꾸 완료적인 행세를 또 하게 돼요. 이게 계속 반복돼요. 오늘날 이 땅에서 이 현실 속에서도 반복된다고요. 아직 중요한 것은 남아있어요.

그 돌 판이 와서 삼천 명 죽였다는 이야기까지 했지요. 자, 죽였습니다. 그 돌 판을 하나님께선 어디다 보관하느냐 하면, 인간이 손대지 못하게 만들어요. 미완료니까 다시 언급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성경을 준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를 채용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무서운 율법, 율법은 완료지요. 우리는 뭡니까? 미완료잖아요. 미완료와 완료 사이에 여기서 뭐가 일어나요? 삼천 명 죽음이 일어나잖아요. 그런데 미완료란 말은 아까도 설명했지만 나는 미완료라고 한 사람은 이미 완료를 알기 때문에, 완료와 서로 대립된 걸 알기 때문에 저는 부족합니다가 되는데 이 죽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완료된 것을 싫어하는 거예요.

완료는 내가 되어야지 나 말고 이 세상에 완료자는 없고 내가 만족해야 되고 내가 이 땅에서 즐거워야 돼. 완전한 즐거움은 내 차지여야 돼, 라고 여기는 자가 율법에 의해서 사정없이 저주받고 심판받습니다. 인간이 행하지 못하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에요. 행했느냐, 행하지 않았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나는 애초부터 행할 수 있는 능력자가 아닌 것을 완료 앞에서 인정하는 거예요. 겸손으로 하는 게 아니고 완료 앞에서. 십자가와 부활 앞에서 인정하는 거예요.

내 대신 돌아가신 분으로 인하여 내가 생명적으로 완전한 생명을 얻게 되었구나. 그럼 내가 앞으로 할 일은 뭐냐? 심하게 나를 개 무시하는 거죠. 개 무시한다. 다시 말해서 몸무게 다이어트 한다 이 말입니다. 싹 빼는 거예요. 거의 숨 끊어지기 직전까지. 원래 몸 빼는 사람들이 숨 끊어지기 직전까지 밥을 굶는답니다. 그래야 뱃살이 들어간 데요. 소위 폼이 들어간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오일 바르고 보디빌딩 하는 사람들 있지요. 그게 죽음의 힘이에요. 자기를 개 무시해서 그러한 찬란한 몸을 만든 거예요. 자기를 학대하는 거예요. 때려라, 이 무거운 것을 들어라. 계속 들어서 나에게서 쓸데없는 살점은 다 빼는 거예요. 맛있는 것 안 먹고 삼겹살 안 먹고 연한 닭 가슴살 먹고 고구마 먹고, 그런 것만 먹어가면서 그래 나 죽을래, 해야 몸이 아름답게 돼요.

그러니까 그런 혹독한 작업은 자기를 완전히 개 무시해야 가능한 겁니다. 물론 반대로 무시해서 너무 찌는 사람도 있지만. 몰라. 나는 내일 죽더라도 오늘 먹고야 말리라. 인위적으로 그렇게 몸을 꾸미듯이 나를 무시해야 되는데 인간은 본성상 절대로 죽음의 몸을 가졌기 때문에 무시하지 못하지요. 무시할 수 없어요, 인간은. 또 무시한 걸 자랑하는 이런 이상한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무시하도록 주께서 주변에 모든 돌아가는 것이 내가 무시당하기 때문에 내 뜻대로 안 되게 해요.

우리는 어떤 완료를 생각합니다. 애가 만약에 셋 있다면 전에는 애가 전교 1등, 두 번째도 전교 1등, 세 번째는 전교 100등. 앞에 둘은 손댈 것도 없는데 셋째는 걱정이다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셋째가 전교 1등. 그러면 갖출 것 다 갖췄지요. 이게 완전이에요. 완료지요. 그런데 첫째가 까불다가 넘어져서 깁스했다. 좋다고 했는데 갑자기 완료가 졸지에 결핍이 생기죠. 그래서 세상 돌아가는 것이 이 정도하면 만족한다는 게 아니라 계속 뭔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결핍이 생기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사십 되도록 장가를 안 갔다. 그런데 사십 넘어서, “엄마, 내가 색시 하나 얻었어.” 해서 결혼했다. 그런데 색시가 나보다 다섯 살 더 많아. 그러면 엄마가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너, 사십까지 결혼 안 해서 얼마나 걱정했다고. 니들 마음 맞으면 됐지. 난 더 이상 죽어도 소원 없다.” 몇 개월 가지도 않아요. 그래도 아이는 있어야 되지 않나. 하나의 완료가 되고 난 뒤에 갑자기 욕망이 또 생기는 거예요. “애는 하나 있어야지. 시험관 아기 해봐라.” 돈 들더라도 해보라고 이런 식으로 나오기 마련이에요.

이처럼 인간이 사는 것이 뭐냐 하면, 내 즐거움의 만족을 위해서 끝도 없는 만족을 위해서 계속 가는 거예요. 따라서 주님께서는 이 율법으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인간이 미완료가 손대면 죽으니까 인간은 자기 잘난 척하니까 손 못 대는 데 집어넣습니다. 그게 뭐냐? 언약궤에요.

언약궤는 상자인데 상자 안에 돌 판이 들어가 버립니다. 그러면 이 돌 판은 누가 만질 수 있어요, 없어요? 아무도 못 만져요. 웃사란 사람이 만졌다 죽었어요. 사무엘상에 보면 웃사가 언약궤 실은 수레 끌고 가다 만져서 죽어요. 너무너무 무섭기 때문에 만지면 죽어요. 그러니까 상자 안에 넣어놨단 말은 보인다, 안 보인다? 넣어놨으니까 안 보이잖아요. 그러면 진짜 완료는 보인다, 안 보인다? 안 보이죠.

그럼 보이는 것은 전부 다 미완료에요. 그래서 인간은 사기꾼이란 거예요. 미완료이면서도 자기를 개 무시하지 않고 자꾸 완료를 추구하게 돼있어요. 직장생활 때려치우기 부동산투자란 이름으로 사기꾼이 되어 남의 돈 모으겠다는 이유가 뭐예요? 돈 모으는 게 취미가 아니고 이왕 남자가 돼서 찌질하게 살기 싫고 남들처럼 골프 치고 남들처럼 여행 가면서 넓은 아파트에서 동창생한테 성공했단 소리 듣고 내가 보기에도 만족스럽게 살고자 사기꾼 길에 들어서는 겁니다.

사기꾼이라 해서 노골적으로 부동산투기하고 다단계만 사기꾼 아니에요. 모든 직장에 승진을 노리는 자들 보세요. 그들의 특징이 뭐예요? 사기꾼 기질이 있어요. 남을 밟아야 지가 올라서거든요. 학교도 마찬가지에요. 교감 하겠다, 뭐. 뭔가 하겠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멀쩡한 직장 때려치우고 미스터트롯 일곱 명 잘 팔리니까 나도 음악에 미쳤어, 해서 음악학원 다니고 노래 잘하지도 못하면서 나이 오십에 트롯 판 내고. 이런 것 보면 사기꾼 또 하나 생겼네. 참,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완전한 것 있지요. 그러면 오늘날 완전한 것은 어디 있습니까?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안 보이지요. 그것을 사도 바울의 편지에 뭐냐? 예수 안에 있는 십자가에요. 갈라디아서 3장에는 보이지 않음을 뻔히 알면서도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1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더 충격적이에요. 누가 너를 꾀더냐? 누가 너를 네 자신이 아닌 가짜 자신으로 위장해서 살라고 뒤에서 부추기더냐. 사기꾼으로 태어났으면 사기꾼으로 살아야지 마치 사기꾼이 아닌 것처럼 행세하지 마라. 사기꾼은 본인만큼은 사기꾼으로 인정하고 자기를 개 무시할 줄 알아야 돼요. 미완료적인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됩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을, 5절을 봅시다. 너희가 율법을 지키게 되면, 5절부터 보면,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우나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너희가 대적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내가 너희를 권고하여 나의 너희와 세운 언약을 이행하여 너희로 번성케 하고 너희로 창대케 할 것이며” 이렇게 돼있어요.

이건 뭐냐 하면, 여기에 대한 복의 리스트가 한 개입니까, 여러 개입니까? 여러 개지요. 그러니까 이건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이것 보고 하려면 이것 놓칠 수 있고 저것 보고 하려면 저것 놓칠 수 있다고. 이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이지 이것 챙기고 저것 챙기란 이야기가 아닙니다.

레위기 이것 보고 신명기 28장에 비슷한 이야기 나오잖아요. 네가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그게 전부 다 미완료적인 인간에게 뭐가 되느냐 하면, 미끼가 돼요. 이런 복을 준대. 다섯 명이 백 명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아갈 정도로, 와 얼마나 기분 좋아요. 그러니까 이게 갑자가 잠자고 있는 우리 욕망을 확 일깨워줘요. 저걸 내가 한 번 가져봐? 저런 상태에 내가 도달해봐? 이런 욕심이 확 깨난다고요.

그래서 율법을 준 것은 우리로 하여금 뭘 하게 하느냐 하면, 죄를 더욱 더 짓게 만들기 위해서 율법을 줬다는 겁니다. 왜? 율법에는 경품권이 있기 때문에. 행운권이 있어요. 율법에는 상품권이 있어요. 경품이죠. 경품이 있다는 소식 듣고 가만 누워있을 사람 없습니다. 집에 밤 되면 잘 안 나가는 사람인데 창문 밑에 지나가는 사람이 오늘밤에 강가에서 폭죽놀이 있대, 라고 그냥 자기들끼리 이야기했는데 그 사람은 잠을 이룰 수 없네.

아홉 시에 폭죽놀이 있다는 거예요. 평소에 밖에 안 나오던 사람이 아홉 시 되면 한 번 나가볼까. 왜 그래요? 왜 갑자가 밤 마실 나섭니까? 들은 게 있기 때문에, 미끼에 물린 거예요. 그러니까 폭죽놀이 구경하러 나오듯이 인간은 어떤 경품 같은 것이 오게 되면 나 같은 것은 죄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 안 줘도 돼요. 이럴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네가 못 지키면 저주받는다는 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그래서 사기를 당하는 겁니다. 이번 주식 너에게만 특별히 알려준다. 은행이자 몇 프로냐? 세금 떼면 영점 몇 밖에 안 되거든요. 새마을금고는 약간 더 주는데 그것도 얼마 되지 않아요. 그러면 남는 돈은 어디에 투자할 거예요? 주식투자해야지요. 주식투자는 도박판에 뛰어든 것과 똑같거든요. 나는 저 기업이 내 도움이 많이 커지기를 바라요. 이런 것 없어요. 지 돈 벌기 위해서 주식투자하지 기업체가 잘 되고 그런 것 없어요. 남의 기업 왜 내가 잘 되게 해야 되는데.

들어올 때 맛을 한 번 봤네. 초반 좀 땄어. 첫 끝 발이 개 끝 발인 걸 아시잖아요. 오늘 개 몇 번 나왔는지 모르겠다. 제목을 개로 할까. 거기 들어가는 순간 그 사람은 벌벌 떱니다. 기쁨이고 감사고 해를 보고 즐거워하라. 그런 것 없어요. 이제는 내가 기대하는 완료에 대해서 내가 이루지 못하면 나는 나를 용서하지 않으리. 이렇게 나와 버리는 겁니다. 세월 가는 것 후딱 가요. 그런데 빠지면 세월 갑니다. 자기만족과 자기 이익과 즐거움, 시합하고 경쟁하는 건 그것 밖에 없어요.

여호수아 6장 22절 보겠습니다.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내라” 이끌어내는 것은 살려두는 거예요. “정탐한 소년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 부모와 그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 진 밖에 두고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이렇게 돼있잖아요.

제가 여호수아 6장을 왜 보느냐 하면, 기생 라합이 구원되는 그 대목입니다. 구원이 뭐냐는 겁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걸 복습해봅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맞지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습니다. 출애굽기 4장.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은 본인이 아들 돼서 천당 가겠다는 아들이 아니고 여기에 무슨 사건이 덧입히지요. 어떤 사건? 애굽에서 너희들을 아들로 불러낸 거예요. 본인이 아들 되고 싶어 한 게 아니고 아들로 불러낸 거예요.

성도는 그래야 돼요. 성도는 아들 되고 싶어서 천당 가고 싶어선 안 되고 주께서 아예 어떤 관계성을 유지해요. 아들 되는 관계로 이끌어냈습니다. 자, 아들의 역할은 누구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까? 아들이니까 아버지가 있겠지요.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취지, 아버지께서 이 땅을 다스리는 원리원칙에 대해서 공유하고 있는 자가 아들이에요.

그런데 아들 마음속에 금송아지가 있더란 말이죠. 애굽에서 나왔으니까. 금송아지 있으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모세가 돌 판 들고 왔지요. 와보니까 금송아지 생겼다 이 말이거든요. 인간의 본성이니까. 그때 금송아지 때문에 죽이라는 게 아니라 금송아지 섬긴 것이 아버지의 완전한 뜻과 부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인정 안 한 자가 삼천 명 죽었잖아요.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뭡니까? 나는 죄인이다, 라고 알아요. 나는 미완료다, 죄인이다. 미완료란 말은 하나님이 요구하는 율법에 온전하게 들어줄 수 없는 죄인이다. 그런데 왜 사느냐? 이건 우리가 모르는 완료에서 나온 혜택을 입고 있다. 그러면 그 혜택은 나에게서 나온 건 아니죠. 나는 미완료고 죄인이기 때문에 내가 잘해서 이런 혜택을 입는 건 아니고 완료적 혜택이 바로 제사제도에요. 어린양이 매일같이 죽는 거예요. 피에서 나온 거예요. 중간이. 그러니까 서로 상호대립 되는 중간에서 계속해서 뭐가 나오느냐? 피가 흘러나오는 겁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했지요.

자, 이런 집단이 어디를 쳐들어가느냐? 여리고 성을 쳐들어가요. 완료와 미완료의 대립적인 차이까지 다 알고 있는 집단이 여리고 성을 간다 이 말이죠. 그럼 여리고 성에 있는 어떤 누가 구원이 된다면 방금 이야기한 이 원리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아들 됨의 마음가짐과 동일한 마음가짐이 있으면 되겠지요. 구원이란 같은 편끼리는 안 죽이잖아요. 지금 쳐들어오는 이스라엘 마음과 여리고 성에 있는 어떤 사람의 마음이 동일한 마음이라면 이 사람은 죽이면 안 되겠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구원이란 걸 설명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사람 앞에 여리고 성에 기생 라합이란 사람을 마련해두어서 이걸 이스라엘 사람에게 시범 모델로 보여주는 거예요. 너희는 이러해야 된다. 너희들 마음은 기생 라합과 같은 마음이어야 해, 란 뜻이에요. 그러면 쳐들어왔을 기생 라합은 왜 정탐꾼을 두 명 살려줬을까? 정탐꾼 마음과 자기 마음이 일치됐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물론 기생 입장에서는 자기의 조국을 배신한 배신자가 되겠지요. 배신자 안 되고 망할래요, 지옥 갈래요, 배신자 될래요?

모든 여리고 성 사람들은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자체적으로 완료로 보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들의 이웃에게 일가친척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 사람들이 마음을 안 여는 이유가 있어요.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내가 어딜 봐서 죄인이냐, 이래요. 자체적으로 나는 완전을 향하여 완전을 얻을 수 있는 자격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들은 완료가 없기 때문에 본인이 완료에요. 내가 즐겁고 내가 만족하고 내가 맛있는 것 먹고 나 편하면 그게 나의 행복이에요. 내가 최고가 되고 내 행복 앞에 모든 생각과 관심이 거기에 다 집중해있고 그것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쑥 당신 지옥 간다 하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내가 어딜 봐서 죄 지어서 지옥 가느냐 고 도리어 화를 내겠지요. 이것이 바로 여리고 성이에요. 따라서 그 사람들이 화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데 우리도 마찬가지였던 거예요. 그런데 이상한 게 뭐냐 하면, 기생 라합은 창기죠. 어떻게 기생이 내가 망해야함을 어떻게 아느냐 말이죠. 그건 나중에 신약에 보면 성령이 예수님의 영이 임해서 그런 거고.

여기서 제가 여호수아 6장을 읽은 것은 주님께서 바로 살려낸다는 거예요. 여호수아가 명령하기를 이 두 사람 살려내고 나머지는 다 불태워버려라. 그러면 기생 라합은 상호대립적인 것에 어떻게 돼요? 중간에 선 중간자 입지, 중보자의 입지에 충실한 거예요. 왜? 나는 지옥 갈 세상에서 살았었음을 본인이 만끽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정탐꾼 안 왔으며, 기생 라합한테는 정탐꾼이 구원자에요. 그때 어떤 사람이 와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안 했더라면 아무것도 모른 체 여리고 성과 함께 멸망당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웃사랑이 뭐예요? 이웃사랑은 딴 게 아니에요. 당신 지옥 갑니다. 이것보다 더 이웃사랑은 없어요. 남편한테 맛있는 밥 해주고 마사지해주고 아내한테 용돈주고 그게 사랑이 아니고 너, 지옥 간다. 그럼 상대방이 맞아. 나도 지옥 가야 돼. 그런데 지옥 간다고 알게 한 마음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마음이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강남강의에서 했지요. 시체는 시체와 대화가 된다고 했어요. 시체는 시체와 대화가 되고 쓰레기는 쓰레기와 대화가 되지 멀쩡한 사람과는 대화가 안 됩니다. 감사함으로 슬슬 자기를 무시함으로 드디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인생을 무겁게 가져가지 마시고 가볍게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율법을 주신 것은 지키라고 준 게 아니고 우리가 원초적으로 죄지을 수밖에 없고 지옥 가야만 될 그런 존재인 것을 알려주셨사오니 이것이 다 십자가의 효과인 것을 알아서 그 생명을 귀하게 여기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26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8,017 자유게시판 47강-호 12장 11-14절(야곱의 동질성)200624-이 근호 목사 호세아 최고관리자 20-06-25
18,016 자유게시판 36강-욥기 10장 15~22절(뻘쭘한 인생)20200621 이근호 목사 욥기 최고관리자 20-06-21
18,015 자유게시판 18강-빌 2장 25-30절(주님의 윤리)2006021-이 근호 목사 빌립보서 최고관리자 20-06-21
18,014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돌아온 탕자 / 200621 - 최고관리자 20-06-21
18,013 묻고답하기 개 빌립보서 최고관리자 20-06-21
18,012 묻고답하기 The Work(Interests) of Jesus 예수의 일 - 최고관리자 20-06-19
18,011 자유게시판 46강-호 12장 7-10절(거짓저울)200617-이 근호 목사 호세아 최고관리자 20-06-18
18,010 자유게시판 317강-YouTube강의(혈연관계 아가 6:9)20200616-이 근호 목사 아가 최고관리자 20-06-17
18,009 자유게시판 316강-YouTube강의(속과 겉 마태복음 26:7)20200616-이 근호 목사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20-06-17
18,008 강의 유튜브 강의( 316강, 317강) 속과 겉, 혈연관계 200616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20-06-16
18,007 자유게시판 35강-욥기 10장 7~14절(인간 창조)20200614 이근호 목사 욥기 최고관리자 20-06-14
18,006 자유게시판 17강-빌 2장 19-24절(예수의 일)2006014-이 근호 목사 빌립보서 최고관리자 20-06-14
18,005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삭개오의 구원 / 200614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0-06-14
18,004 묻고답하기 죽을 일 빌립보서 최고관리자 20-06-14
18,003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200611b 베드로전서4장 7절(복음의 해석)-이 근호 목사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20-06-14
18,002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200611a 베드로전서4장 7절(복음의 해석)-이 근호 목사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20-06-14
18,001 묻고답하기 The Drink Offering 관제 - 최고관리자 20-06-12
18,000 자유게시판 45강-호 11장 12-12장 6절(야곱의 울음)200610-이 근호 목사 호세아 최고관리자 20-06-11
17,999 자유게시판 20200608b 부산강의 : [시편]29(18편)-나와 남 시편 최고관리자 20-06-11
17,998 자유게시판 20200608a 부산강의 : [시편]29(18편)-나와 남 시편 최고관리자 20-06-11
17,997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2장 36절 (시체 재활용) 200602b-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0-06-10
17,996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2장 36절 (시체 재활용) 200602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0-06-10
열람 ➜ 자유게시판 20200605b 울산강의-레위기 26장 : 미완료 레위기 최고관리자 20-06-09
17,994 자유게시판 20200605a 울산강의-레위기 26장 : 미완료 레위기 최고관리자 20-06-09
17,993 자유게시판 34강-욥기 10장 1~6절(분열된 자아)20200607 이근호 목사 욥기 최고관리자 20-06-07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