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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서울의존강의20200514a 베드로전서4장 3절(지옥생활)-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베드로전서

서울의존강의20200514a 베드로전서4장 3절(지옥생활)-이 근호 목사

베드로전서 4장 3절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3절부터 할 차례입니다. 여기 여러 가지 항목들이 길게 나열되어 있는데 이것이 이방인들에게는 뭐가 되느냐 하면, 이 여러 가지 항목들이 유혹거리가 돼요. 자, 이렇게 정리합시다. ‘이방인의 특징은, 즉 불신자들의 특징은 이 세상 것이 다 유혹으로 작용한다. 유혹과 같은 말로 시험거리로 작용한다.’ 이렇게 정리하시면 됩니다.

현재 인간-남자, 여자-이 모두가 뭘 통과했어요. 뭘 통과했느냐?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의 유혹을 겪었던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현재 인간-남자, 여자는 유혹의 힘에 질식당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현재 모든 인간세계는요, 모든 보이는 것이 유혹거리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들이 이 세상과 함께 있다는 것은, 여기서 중요합니다, 함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고 하는 그 하나님의 명령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겁니다. 아직도 계속해서 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거예요.

로마서 5장에서 이 점을 사도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로마서 5장에서 무엇과 무엇을 대비하고 있느냐 하면 아담의 죄와 새 아담 또는 마지막 아담의 의를 나란히 배열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죄라 하는 것은 옛날 옛적 이야기잖아요. 현재 우리 인간세계에 인간들이 살고 있다면 분명히 옛날 옛적 이야기가 지금도 절대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겁니다. 아담이 선악과 따먹은 그것이 그 이후에 인류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그 효력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 말이에요. 살아있는 거예요. 이 바이러스는 없어지지도 않아요. 대물림되죠. 계속해서 주어지는 거예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금지했는데 그 금지를 위반했거든요. 금했는데 그걸 위반했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금지했고 인간은 위반했고. 한쪽은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한쪽은 그 따먹지 말라는 자체를 위반했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금지했는데 위반했다는 이 틀, 시작과 끝 지점이라는 이러한 원칙에다가 인간을 집어넣습니다. 인간들을 여기다 집어넣는다고요. 그러면 아무리 인간들이 세월이 지나서 자식을 낳고 낳아도 자식을 놓으면 놓을수록 금지하고 위반했다는 이 사실은 계속해서 살아있게 돼요, 살아있어요.

쉬운 예를 들게 되면, 하는 노래가 있다 칩시다. 이걸 조항조가 불렀거든요. 조항조가 누군지 그런 거 프로필 알 필요 없어요, 그런 사람 있어요. 조항조가 불렀는데 이것을 김호중이 불렀어요, 김호중이 누군지 몰라도 돼요, 그런 거. 라는 걸 불렀단 말이죠. 그러면 가수는 바뀌어도 노래는 그 노래가 그 노래죠? 그렇지 않습니까? 이후에 제일 히트했던 노래, . 불렀던 가수가 한둘이 아니란 말이에요. 노래는 계속해서 살아있죠. 안동역 가면 노래비 하나 만들어져 있는데.

계속해서 그 노래는 효과를 보는 거예요. 김목경씨가 작곡, 작사했고 그것을 김광석이 불렀고 김광석이 불렀던 것을 임영웅이 불렀던 . 가수 누가 불렀건 상관없어요. 인구가 몇 명이고 몇 대를 더 지났나 관계없어요. 하나님께서 추궁하고 있는 근거를 계속해서 효과 있게 가져가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이 죽어야 될 이유는 딱 한 가지에요. 따먹지 마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자신의 엄명, 자기의 선언을 선언답게 유지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 따먹게 된 그 사건을 과거 일회성으로 멈추지 않고 계속 줄기차게 대대로 지속시키는 겁니다.

그걸 저는 ‘영향을 준다’, 선악과 따먹은 그것이 끝장을 보는 거죠, 한 마디로. 갑자기 제목을 로 하고 싶은데...끝장을 보는 거예요. 그런데 아담이 선악과 따먹을 때 어떻게 따먹었냐 하면 뱀의 유혹에 빠졌죠. 뱀의 유혹에 빠졌거든요. 그러면 그 후대에 태어난 모든 인간들은 지금 선악과 있어도 따먹게 될까요, 아니면 끝내 참을 겁니까? 따먹게 되겠어요, 아니면 참을 수 있겠습니까? 끝내 따먹어야 돼요. 끝내 이기리라가 아닙니다. 끝내 따먹어야 돼요. 왜? 물려받은 게 그게 전부기 때문에.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걸 의도하신 거예요. 그래야 하나님의 처벌이 정당화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조치가 정당화되기 때문에.

“금지했잖아. 그런데 너네 위반했지?” 하는 이 원칙에 모든 인간을 거기에 다 집어넣습니다, 다 집어넣어요. 자, 여기서 뭐가 나온다 했습니까? 유혹이 나오죠. 유혹 때문에 따먹었다고 되어 있죠? 그러면 인간은 무엇을 못 이긴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거예요.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금지시키느냐를 들추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누가 필요하냐? 아담이 필요하고 인간들이 필요한 거예요.

하나님께서 금지시켜 놓은 이유가 있어요. 금지했다. 금지했는데 인간은 금지한 것을 말을 듣지 않고 따먹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원수, 악마와 인간은 단짝이 되었고 한패가 되었다. 하나님이 증명하고 싶은 것은, 인간은 누구 편이다? 악마 편이다. 인간이 유혹을 받는다는 것은 그 내부에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느냐 하면 마귀적 의도를 갖고 있다는 거죠. 마귀적 의도는 하나님께 할 수 있는 한 대들고 싶다는 겁니다.

교회도 안 나오고 성경공부도 참석안하고 이건 무엇을 의미하느냐? 더 땡기는 게 있는 거예요, 더 땡기는 게. 이게 유혹이에요. 그래서 성경공부 참석하는 게 굉장히 수상하고 이상한 일이에요.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럴 수는 없어요. 유혹을 물리치고 성경공부 참석한다? 이건 거짓말입니다. 이런 건 없어요. 세상의 모든 걸 끊고 오직 말씀을 사모한다? 이건 미친 짓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고요. 그런 시건(철) 난 인간은 없습니다.

여기서 강제성이 동원됩니다. 강제로 복음 듣게 한 거예요. 강제로 구원시킨 겁니다. 구원은 내가 자발적으로 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세상 유혹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자석에 S/N극 있잖아요. 만약에 S극이 천국이고 N극이 지옥이라면 인간이 자발적으로 N극이 당기는 힘을 거절하고 S극,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위인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강제성이 있어야 돼요, 강제성.

여기까지는 여러분 이해하시겠죠? ‘이방인들의 특징은 이 세상 것이 다 유혹으로 작용한다.’ 강제성의 특징은 뭐냐 하면 ‘불가능성’이죠. 가능치 않아요. 그러니까 강제에요, 강제. 그냥 놔둬버리면 세상으로 도로 팽~하고 돌아갈 거예요. 고무줄이나 용수철 같은 게 있어가지고. 하나님께서 계속 당기지 않으면 팽~하고 다시 세상과 딱 붙을 거예요. 그런데 강제성이 있으면 강제로, 눈길은 여기 가는데 귀는 주님이 잡아당기는 거죠. 호기심 많은 애들 데리고 엄마가 시장이나 장난감 가게 들어가 보세요. 거의 강제적으로 질질 끌고 나와야 돼요. 저거 사 달라, 이거 사 달라, 떡볶이 사 달라 온 말해서 그 때는 쥐어 패면서 강제로 끌고 가잖아요.

그러니 불가능성이라 하는 것은 우리의 자의적인,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서는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거죠. 후려치고 때리고 볼기짝 차고 그야말로 강제성을 동원해가지고 하나님께서는 꾸역꾸역 구원하시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주의 은혜에 기쁜 경우가 있죠? 그거 몇 초 가던가요? 이 세상이 진공상태가 아닙니다. 무중력 상태도 아니에요. 이 세상은 강력한 흡입력이 있어요. 진공청소기 200만원짜리 모터 돌아가면 당구공도 막 빨려 들어간다고 홈쇼핑 보면 선전하거든요. 당구공 빨아들여서 쥐어가지고 이렇게 흡입력이 강력합니다. 블랙홀 같아요. 모든 것은 다 잡아당기는 거예요. 강력한 중력에 의해서 모든 것을 다 잡아당기는데 거기에 끌리지 않고 주님한테로 이끌려간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입니까?

자,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무슨 힘이 있다? temptation, 유혹의 힘이 있죠. 그러면 세상이 잡아당기는 유혹의 힘과 정반대되는 힘이 누구로부터 나오겠습니까? 주님으로부터 나오겠죠. 주님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면 이 가운데서 “정말 우리가 주님한테 강제로 이끌렸을 때 우리의 마음가짐은 무엇일까요?” 라고 물을 수 있어요. “우리가 강제적으로 끌릴 때 그 때 우리의 마음가짐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을까요?” 라는 질문이 등장하겠죠? 왜냐하면 그걸 알아야 지금 내가 자의로 성경공부 나왔는지 강제로 끌려나왔는지 그걸 우리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마음 단단히 먹고 교회 나오고 성경공부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주님의 강제성입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생각할 수 있거든요. 그러나 그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그 각오, 그 결심 그거 얼마 못가요. 3,4월은 강제로 못나오게 해서 안 나오지만 5월에 또 나온다 하는 것은 인간의 힘이 아니거든요. 누구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강제성. 어떤 마음가짐이 될 때, ‘아 주님께서 나를 강제로 이끄는구나.’ 하는 마음이 될까요?

다 털리게 된 상황.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무가치한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마음. 이게 주님의 강제성 동원입니다. 찬송가에 그런 거 있잖아요. “아 하나님의 은혜로” 그 다음에 나오는 찬송가 가사가 “이 쓸데없는 자”. 이 쓸데없는 자. 그런 마음이 들 때 주의 강제성이 강렬하게 작용합니다. 그러면 이 말은 쓸모 있다고 하는 순간 그 사람은 어디로 갑니까? 이미 세상에서 한번 튀어볼까 하는 유혹의 강한 힘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거예요. ‘이 쓸데없는 자’ 이걸 아주 함축적으로, 아주 어렵게 제가 표현하겠습니다. 이것은 뭐냐? ‘자기 평가지점이 소멸된 자’. 자기 평가지점, 쉽게 말해서 내가 잘했다 못했다를 내가 평가하는 내 평가를 없애버리는 거예요. 없애버리는 그런 경우. 내가 나를 평가하지 않는 거예요.

내가 뭐한다고 평가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여기 3절에 봅시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宴樂)과” 연락이라는 것은 파티 즐기는 것 이런 거죠, 킹클럽 나이트 클럽이죠. “무법한 우상 숭배” 자 이거 할 때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에 대해서 본인이 이것은 음란이고 이것은 음란 아니라고 평할 수 있는 그 평가지점이 있으면 그건 이방인이에요. “내가 뭐라고 그걸 평가해.” 이러면 그 사람은 주님한테 강제로 지금 천국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좀 이게 설명이 필요할 대목 같죠, 느낌상?

내가 누구를 평할 때는 그 순간 나는 세상의 옴파로스(Omphalos), 배꼽이 돼요. 중심점이 되어 버린다고, 내가 누구를 평할 때. “이 벽지가 되게 이쁜 거 같아요.” 그러면 벽지 전문가가 또는 우리 목사님께서 “니가 뭐한다고 함부로 그 입을 놀리느냐?” 이렇게 나올 수 있거든요. 벽지 전문가가 보고 있는데 “이 벽지는 참 예쁜 거 같아요. 꽃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분홍꽃이.” 그러면 벽지 전문가가 “내가 보기엔 적당한데 전문가 아니면 그 입 다물라.” 이렇게 나온다 이 말이죠. 그 입 다물라. 이 벽지만큼은 니가 중심점이 아니다 이 말이죠.

음란, 정욕, 술취함, 방탕, 연락, 무법한 우상 숭배를 규정짓는 그 평가지점에서 너가 개코도 모르는 게 니가 뭘 안다고 이거는 음란이고 이거는 음란 아니고 정욕이고 정욕 아니고 술취함이고 술취함 아니고 그걸 니가 평가하지 말라는 거예요, 니가. 만약에 우리가 이것은 술취함이고 방탕이라고 평가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우리의 우상이 되어 버려요. 이렇게 평가를 잘하는 나를 설마 지옥 보내겠어? 라고 자기 자신을 우상화시킨다 이 말이에요. 절대화시킨다. 자기 평가를 절대화시켜요. 그러면 뭐가 됩니까? 아 쓸데없는 자가 아니라 갑자기 자기 자신이 쓸모 있는 자가 돼요. 말씀대로 세상을 평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는 그런 사람인 냥 행세하게 된다 이 말입니다.

마태복음 7장 1절~5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신약성경 9페이지에 있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이렇게 되어있죠.

인간이 자기 눈 속에 들보가 있는 사람 같으면 이미 눈이 망가졌어요. 평가하는 평가기준이 망가진 거예요. 평가기준이 망가졌기 때문에 그 사람은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자기 눈이 망가진 입장에서 남을 보니까 그게 티로 보인다 이 말이죠. 안 망가졌으면 티로 안보일 건데 망가졌기 때문에 티로 보이는 그런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는 것은 평가하고 안하고는 누구 손에 달렸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주님에게 달렸지 네가 나서지 말고 네가 나대지 마라. 그리고 이건 남한테 이야기하는 거죠. 남한테 이야기하는 것뿐만 아니고 들보, 티에 있어서 네가 너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인물인지를 네가 스스로 자문자답해봐라. 진짜 네가 너 자신에 대해서 알기는 알아? 모르지? 너 자신도 모르면서 남의 일에 콩 놔라 팥 놔라 이렇게 시비 걸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겁니다. 남의 일에, 너 자신도 모르고.

자, 오늘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제가 오늘 본문을 유혹으로 생각합니다, 유혹. 이방인들은 세상 것들이 뭐다? 전부다 유혹거리죠, 유혹거리입니다. 1. 저것은 유혹할 만한 것이다. 2. 저것은 유혹거리가 아니다. 라고 기준을 할 때 누가 평합니까? 내가 나 자신의 결심과 결정을 평하고 판단을 내리겠죠. 그거하고 아까 제가 얘기한, 주님에게 강제로 이끌리면서 성도는 어떤 마음을 가진다 했습니까? 나는 세상이나 나 자신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릴 권한이 없다 했죠? 이것은 뭐냐? 내 인생, 내 운명에 대해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없다.

“그 동안 밥 먹고 산 것만 해도 황송합니다. 과분한 조치였습니다.” 라고 하는 거예요. 왜? 아무 쓸데없는 자를 지금까지 말씀 듣도록 인도해주셨으니까. 이것보다 주님의 강제성을 더 깊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강제로 나를 잡아당겼다’ 이 말보다도 ‘나는 지금 구원받을 자격 없어. 구원 안 해줘도 나는 주 앞에 뭐라고 할 수 없어.’ 어느 쪽이 더 강제성을 적나라하게 부각시키는 거예요?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아는 거죠, 자기 자신을. 나는 아무것도 평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에서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가 있는데, 만약에 7개 아니고 49개 항목이 쫙 촘촘히 세밀하게 있다고 한다면 그 틈새를 사람이 어떻게 빠져나가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거짓말쟁이는 태풍불고 소나기 빗줄기가 쏟아지는데 그 대나무 줄기처럼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사이를 교묘하게 빠져서 나는 비 안 맞고 집에 왔다는 거예요, 무려 2km를. 이게 말이 돼요? 그 빗줄기가 오니까 빗줄기가 안 오는 틈으로 피해서 갔다는 거예요.

마치 적외선을 피해 나가는 톰크루즈 같아요, 미션 임파서블이에요, 이거는. 온 폼을 하면서 보물 있는 데까지 접근하잖아요, 인디아나존스 주인공보면. 고대 유물에 적외선을 해놓으면 그걸 다 피해가지고 사이사이를 빠져나와서 발각되지 않도록 뽑아내는 미션 임파서블. 그야말로 불가능한 사명같이 어떻게 촘촘히 박아놓은 이 모든 항목들을, 7가지지만 사실 더 확장되게 되면 여러 가지 항목, 49가지 될 수 있고 50가지, 100가지를 전부다 요리조리 피해가지고 ‘나는 죄지은 거 없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 이 말이에요, 어떻게 가능하냐.

신종코로나 유행할 때는 “기침할 때 조심히 침이 튀지 않게 하세요.” 그러면 사람들은 기침해놓고 난 조심하게 했다는 거예요. 그러면 나라에서 법을 만들죠.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옷소매로 입을 막으라는 거예요. 누가? 보건복지부 장관이 법을 세워서 이걸 옷소매로 막으라 해놓고 지는 회견하면서 주먹으로 입을 막는다고. 옷소매로 가려야지. 그러면 소매로 가릴 때 각도를 60도로 할거냐 90도로 할 거냐 이게 또 나온다고요. 마스크 종류도 또 세밀해진다고요. 촘촘하게 세밀해지고 계속해서 그 리스트를, 카테고리, 조항을 계속해서 늘려 나가는 거예요.

그걸 무슨 수로 빠져나갑니까? 그걸 빠져나가겠다는 의도가 뭐냐 하면 내가 판단 가능한 것이라고 본인이 그렇게 우기기 때문이에요. ‘아, 저건 위반한 경우고 위반하지 않은 경우는 이렇다.’라고 본인이 판단 가능하다는 거예요. 판단 가능하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아직도 판단력이 살아있는 쓸모 있는 인간이라고 자부하고 싶은 겁니다. 그거 악마의 미끼에요. 악마한테 딱 걸렸어요, 그거는. 걸렸어요. 악마는 더 촘촘하게 만들어버릴 걸?

“기도할 때 몇 시간 기도하면 됩니까?” 거기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기도할 때 몇 시간 기도하라고 되어있던가요, 사도바울은? 나훈아가 부른 노래에 이 노래가 있어요. 가 있다고. 무시로. 시도 때도 없이 기도하라. 그 다음에 복음을 전파할 때 하루에 복음 얼마나 전해야 돼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쉬지 않고 뭐해라? 복음을 전해라. 그 다음에 감사하라. 하루에 몇 번 감사할까요? 어떤 것에 감사할까요? 범사에 감사하라, 모든 일에. 빠져나갈 틈이 없습니다. 빠져나갈 틈이 없어요. 오른 손이 범죄하면 그걸 잘라 버려라. 완전히 우리는 오른손, 왼손 토막 날 판이에요. 마음속으로 간음한 것도 무슨 죄다? 간음죄다.

성경에서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이것을 제시할 때 이걸 누구보고 제시하느냐 하면 세상에 대해서 아직도 끌리고 있는, 세상 자체가 유혹거리고 미련을 갖게 만드는 세상이라고 보는 사람에게 이 3절, 4절을, 방탕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제시해버립니다. 그러면 그 인간은 자기가 세상 것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여기면서 이것을 분석하고 연구하겠죠? 왜 연구하고 분석하겠어요?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위해서. 자기 행동은 정당하다는 것을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서.

나는 성경에 나오는 지적질, 여기에 대해서 나는 거기에 빠져들지 않았다. 나는 피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가치 있고 쓸모 있는 인간이다. 그것을 뽐내기 위해서 성경을 연구하는 거예요, 성경을. 그게 바로 유혹받은 거예요. 그게 악마와 단짝이 된 겁니다. 그렇게 자기 정당성 옹호하고 나 죄지은 적 없다. 고의로 죄지은 적 없다고 우기고 싶은 그 의도가 뭐에요? 그 의도가 뭡니까? 나는 그냥 가만히 놔둬도 가치 있다. 이 이야기거든요. 나는 그냥 가만히 놔둬. 나보고 교회 나오라 하지 마. 성경공부 하라고 하지 마. 나는 이대로 그냥 살래! 왜? 나는 가치 있으니까.

“선악을 아는 과실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되어 있죠? ‘죽으리라’를 □쳐 봅시다. 선악을 제대로 분별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주어진다? ( )이 주어진다? 1번, 칭찬이 주어진다. 2번, 라면이 부상으로 주어진다. 3번, 천국 간다. 4번, 정녕 죽는다. 몇 번입니까? 정녕 죽는다 아닙니까, 정녕 죽는다. 선악을 아는 이 자체가 악마가 인간을 유혹케 한 결과에요. 선악을 몰라야 되는데 알아버렸잖아요. 그러니 이것은 이미 사단난 거예요, 이거는. 그런데 인간들은 뭐냐? 선악을 아는 것과 단짝이 되어서 선악을 아니까 나는 쓸모 있잖아. 나 사람구실 하잖아. 나 괜찮은 인간이라고 쳐줘. 나를 그런 인간으로 대우해줘. 왜? 선과 악에 대해서 나는 빠삭하니까, 도사니까. 이거 아는 데까지 나 힘들었어. 성경공부 한다고 힘들었어. 주님은, “그게 바로 유혹이야, 이 인간아! 네가 마귀를 몰라도 너무 몰라.”

마귀는요, 예수그리스도를 보고 있는데 인간은 예수그리스도를 보지 않고 마귀한테 배울 건 배우겠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떳떳하고 싶은 거예요. 이런 나를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실수라고 외치고 싶은 거예요. 그게 마귀짓이에요. 하나님 당신이 실수한 거야. 건전하고 괜찮은 인간인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는 것은 뭔가 행정착오지. 아니 천국을 나 같은 사람이 안가고 누가 가겠어? 무엇이 방탕이고 무엇이 음란이고 무엇이 정욕이고 무엇이 술 취함인지를 내가 모르는 게 아니고 다 알고 있는 이상 실천에 옮길 능력도 있는데 요리조리 피하면 그만 아니냐 이 말이죠. 그러면 이 베드로전서 4장 3절은 나한테 해당사항이 없는 말을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에이 째버리자. 내 책 아니고 남의 책인데... 째버려요, 나한테 해당사항 없으니까.

음란 안하겠다, 정욕 취하지 않겠다, 술 취하지 않겠다, 방탕하지 않겠다. 그게 유혹인 줄 본인이 모르는 거예요. 마귀가 아담에게 한 유혹이 그 유혹이에요. 스스로 서라 이 말이죠. 언제까지 하나님한테 질질 끌려 살래? 나 봐라, 하나님한테 독립했잖아. 너도 나 따라 독립해. 바로 그 효과. 악마에 물들었다는 그것을 티내는 효과, 효력. 그것이 바로 3절에,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되어 있죠? 이방인들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이라는 거예요.

자, 이방인들, 불신자와 신자의 차이점은 아까 이야기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뭐가 동원된다? 강제성이 동원되죠, 강제성. 강제성이 동원될 때 성도의 그 마음가짐은 어떻다 했습니까? 내가 나를 책임지고 나를 평가하거나 나는 이번 일을 잘했나 못했나 하고 측정할 그러한 평가지점이 나에게는 일체 남아있지 않다. 평가지점. ‘내가 여기서 저 사람을 평가할까? 2m 떨어져서 평가할까? 위에서 볼까?’ 하는 지점이에요, 지점. 평가안목을 갖고 있는 지점 자체가 나한테는 허락될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는 겁니다. 남을 평가할 의도자체를 나로부터 삭제당한 거예요.

내 앞가림도 못하는 게 뭘 남을 평가해. 내가 남을 평가할 입장이 됩니까? 그저 덤으로 살아가는 입장에서 어떻게 평가가 됩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기르시는 들풀이 옆에 있는 들풀보고 “야, 들풀아, 너 왜 그리 못생겼느냐?” 그러한 권한이 있습니까? 다 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그런 같은 처지에서 그럴 수가 없죠. 왜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면 안 듣냐? 세상 자체가 우리에게 진리와 비진리를 평가할 수 있는 그것이 유혹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아담 대대의 후손들에게 작용하는 죄의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 죄란 비판하는 것 또는 평가하는 거죠. 평가는 남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여기에 포함이 되는 겁니다. 내가 마치 내 것인 것처럼. 내 인생을 내가 관리해야 되는 것처럼. 남한테 욕 얻어먹지 않기 위해서 마치 내 행동을 조심해야 될 주인공인 것처럼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거예요.

부산강의를 했는데 부산강의의 제목이 이거였습니다. 에요. 사람들은 몸의 창조, 신체의 창조만 생각하죠. 그런데 정작 하나님이 더 나아가는 것은 나의 마음의 창조, 주체 창조에요. 창조라는 것은 없는 데서 만들어진 거예요. 그래서 아담의 때의 후손들은 모두 죄의 지배를 받는 주체가 되는 겁니다, 주인공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로마서 5장에서 아담 말고 또 다른 분이 등장하죠. 누굽니까? 예수님이 등장하죠.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 또는 새 아담, 두 번째 아담이라고 되어 있다고요. 첫 번째 아담, 두 번째 아담. 첫 번째 아담이 죄를 전수한다면 두 번째 아담은 뭐를 전수하느냐 하면 죄의 반대, 의를 전수하는 거예요. 그래서 죄는 기정사실로 쫙 깔려 있고, “죄가 더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리라 또는 의가 넘치리라”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은혜가 더 넘치는 거예요.
자, 의가 넘친다는 말은 아담의 후손들이 갖고 있던 악마의 생각이 예수님한테는 없다는 뜻이죠. 그걸 제가 아까 뭐라고 했느냐 하면 여러 번 이야기합니다만 자기가 잘했다 못했다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점 노릇을 나는 할 자격이 없다. 그냥 주신대로 사는 거예요. 그걸 아담에서는 뭐냐. 은혜로 사는 겁니다.

로마서 5장 한번 볼게요. 5장 20절,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뭐가 넘친다?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뭐한다? 왕 노릇 하는 거예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17절에 보면,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뭐한다? “왕 노릇 하리로다” 18절,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이렇게 되어있다 이 말이죠.

그러면 죄가 왕 노릇 할 때 우리가 죄에서 자유로웠습니까, 아니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까? 죄가 왕이에요, 죄가 주인공이에요. 우리는 거기 쫄따구죠. 그러면 죄 안 지을 수가 없죠. 그렇죠? 죄 안 지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죄 안 지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은혜에 속한 사람이 그렇게 보는 거고,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이 말씀자체를 거부합니다. ‘멀쩡한 이성과 멀쩡한 양심을 가지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니 이것은 나에 대한 엄청난 모욕이다, 모독이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이제 여러분들이 베드로전서를 봅시다. 베드로전서 4장 오늘 본문에서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고 또 방탕에 달음질을 한다는 이러한 죄에 대한 항목들이 나올 때에 그래, 나는 이 짓을 안 하고 피해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결국 아담의 후손이에요, 새 아담의 후손입니까? 어느 쪽입니까, 이걸 피해보겠다는 사람은? 아담의 후손이죠. 아담의 후손입니다. 그게 죄에요. 내가 알아서 피해보겠다고. 죄의 왕 노릇을 못 피한다는 것이 명백한데 꼴에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죄인이라는 나쁜 소리는 듣기 싫은 거예요. “내가 착실하게 살아서 피해 볼게요.”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마치 인형 눈을 붙이는데 1시간에 10개를 붙인다. 주인이 하는 말이 “아, 이거 버거울 건데요. 인형 눈 붙이는 거 쉽지 않습니다. 1시간에 10개 못 붙일 건데.” 그 소리 듣고 오기가 나가지고 “붙일 수 있습니다!” 하거든요. 그래서 10개를 줬어요. 과연 10개를 붙였어요. 이야기 끝났습니까? 그 다음에 100개를 갖다 줘요. “안될걸?”,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100개. 그 다음에 1000개를 갖다 줘버려요. 이게 뭐냐 하면 사탄의 수법입니다. 악마의 수법이에요. 처음부터 하나도 못했으면 거기에 시달리지는 않을 거잖아요.

“뭐 죄인인데 죄밖에 지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나오면 아무 문제없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이거 뭐 유격훈련도 아니고요. “할 수 있습니다. 내 인생 책임질 수 있습니다. 난 훌륭한 아빠, 훌륭한 엄마가 될 수 있습니다!” 너나 수습하세요, 너나. 참 이게...악마가 살살 인간의 약을 올리면서 평생 인간을 질질 끌고 다닙니다, 질질 끌고. 아니 그렇게 죄인 되기 싫은가요? 죄인 되는 그게 그렇게 싫은가요?

죄인 속에 합류하지 않으면 어디에도 의가 없어요. 의는 죄 안에 들어있습니다. 팥죽 안에 옹심이 들었죠. 엄마가 분명히 옹심이 2개 넣었다 했는데 보이지를 않네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벌건 팥죽을 숟가락 가지고 휘저어야 거기서 하얀 옹심이 2개 나오죠? 하나님의 의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내가 의를 한다고 그게 의가 되는 게 아니에요. 또 새로운 범죄의 카테고리가 또 덮칩니다. 10개, 100개, 1000개 또 나와요. 내가 형제를 몇 번 용서하면 됩니까? 7번 하면 됩니까? 지 딴엔 7번 하죠. 주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 했어요. 안돼요.

어떻게 하면 돼요? 죄 속에 있으면서 죄인이 아니면서 억울하게 죄인 취급받는 분을 찾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서 누가 나와요? 주님이 나와. 주님이 거기서 왜 나와. 아니 하늘에서 계실 분이 그 시커먼 죄 속에서 왜 나옵니까? 주님이 하시는 말이 나만이 죄의 권세에서 벗어났거든요, 나만이. 예수님만이 죄의 권세에서 벗어난 거예요. 다른 사람은 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없다? 없다는 거예요. 오직 예수님만 죄의 권세에서 벗어난 거예요. 그러면 그 주님의 은혜, 선물이 오게 되면 주님의 선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의 은혜 받아서 십자가 피로 죄 용서 받은 사람은 뭐를 자랑하겠어요? 지 죄 안 지은 거 자랑하겠어요, 아니면 지 죄 지은 거 자랑하겠습니까? 죄 지은 거 자랑하죠. 여기에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 연락, 무법한 우상 숭배 되어 있지만 정말 성도라면 “7개 정도가지고 되겠습니까? 7배에 7배에 7배에 7개 깔아놓으셨어야지. 나는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7개만 못하는 게 아니고 7개의 7배도 못하는 죄인입니다.”라고 그렇게 나와야죠, 그렇게 나와야 된다고. 천하에 아무 쓰잘데기 없는 존재인 것을 본인이 기쁘게 그걸 수용해주는 겁니다.

지옥에 간 사람은 끝이에요. 지옥에 갔다가 다시 천국 간 사람은 누구밖에 없느냐 하면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6절에,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지옥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어요.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미 우리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기정사실화시키는 거예요. 7개뿐만 아니고 다른 모든 것도, 심지어 꽃에다 물 주는 것까지도 죄가 돼요. 왜? 물 줄 때 의도가 있기 때문에.

밭에 물 줄 때, “왜 물 주려고 합니까?” 물으면, “오이를 잘 키우려고 합니다.”, “오이 키워서 뭐 할 건데요?”, “오이 키우면 이거 장날에 농협에다 납품해가지고 돈 벌려고 합니다.”, “돈 벌어서 뭐 할 건데요?”, “돈 벌면 아이들 시집, 장가보내고 나도 먹고살고...”, “살아서 뭐 할 건데요? 잘 살았다고 소고기 사먹겠습니까? 도대체 살아서 뭐 할 건데요?” 거기에 대한 해답이 없네.

그러니까 개인이 하는 모든 일에는 해답이, 끝이 안보여요. 끝도 모르면서 그냥 열심히 살려고만 해요. 이게 지옥 가는 짓인지 천국 가는 짓인지 내막도 모르면서 그냥 남한테 싫은 소리 안 듣고 열심히 살았다는 소리 들으면서 열심히 살자. 끝. 그게 뭐냐? 방탕이라고 되어 있어요, 방탕. 방탕이란 사는 이유와 목적과 해답을 모르면서 사는 것, 이게 방탕이에요. 이게 방탕입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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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2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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