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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2장 1절 (신의 국경에서) 200421b-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2장 1절 (신의 국경에서) 200421b-이근호 목사

이제 누가복음 2장이 슬슬 눈에 들어오지요? 왜 역사인가. 그리고 아 주님께서는 우리 보고 우리가 노력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활성화시켰다는 것. 활성화의 반대말은 뭐냐? 비활성화겠죠. 활성화시킨다. 비활성화시킨다. 이걸 성경적으로 하면 충만하다 충만하지 않다라는 뜻인데 성령에 충만하다 충만하지 않다.

스데반 집사가 죽을 때에 성경 표현에 충만해서 죽었거든요. 평소에 사도 바울이 화장실 가서 죽을려고 활성화되지는 않았고요. 활성화 그 시점도 그것도 하나의 우연이에요. 사건이 되는 거죠. 스데반 집사가 스스로 자기가 성도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대고 설치는게 아니다 이 말이죠. 스데반 집사의 구원은 없어요. 주께서 말해지는 거죠.

그 현장성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은 현장성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있다’가 아니라 ‘여기에 주님이 계시다’를 보여주는 현장성이죠. 주님이 계시다. 주님이 계시다를 보여주기 위해서 내가 그동안 방해 놓는 거에요. 나 개별자가.

주님이 계신데 주님이 계시는 방법은 내가 여기 있는 이것이 나로 있고 싶어서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살고 있는 것이 내가 살고 싶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계시다라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 있다는 식으로 하나님께서 현장성을 하는 겁니다. 이건 하나의 사건이에요. 90년을 살아도 90년 자체가 사건이에요. 이거는 필연적이 아니고 우연적이에요. 늘 우연적이에요.

내일을 우리는 보장 못해요. 내일 살지 안 살지 보장 못합니다. 내일 못산다는 것을 너무 안타까워하지 마시고 반대로 생각해야 돼요. 지금 내가 없어야 되는데 여기 내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눈물 나도록 이게 고맙소. 김호중이 부른 ‘고맙소’. 눈물 나도록 고맙고 감사합니다. 내가 여기 왜 있지? 없어도 되는데 왜 있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하기 짝이 없어요. 내가 왜 있지? 고맙습니다 하는 것. 그것도 활성화될 때 하는 이야기고요. 활성화. 성령의 충만화될 때 이야기죠. 성령의 충만함의 특징은 전에 이야기했는데 성령의 충만함의 특징은 뭐냐 하면은 ‘취한다’에요. 취한다. 취한다에 보통 취한다가 아니라 앞에 뭐가 붙습니까? 술에 취하는 것과 성령에 취하는 것을 상호 비교시켜놨어요. 에베소서 2장에 보면.

보통 여러분들은 술을 절대 입에도 안 대잖아요. 맥주도 안 되잖아요. 보리음료는 입에 대지만 맥주는 입에 안 대잖아요. 술 먹으면 특징이 뭐에요? 바로 자기가 자기를 잊어버리잖아요. 성령에 취함도 뭐냐 하면은 자기를 잊어버려요. 내가 내일 어떻게 하지? 나는 어떻게 해야 내가 성공한 인간이 되지 그거 다 잊어버려요. 내가 어떻게 착하면 성화되어서 천당 가지? 이거 다 잊어버리는 거에요.

나를 증거하기 위해서 내가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잘나고 내가 이렇게 구원에 성공했다 그거 자랑질하려고 남한테 인정받으려 살아가는 것이 내 사는 목적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활성화되는게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활성화되는 현장에서 활성화되는 현장 자꾸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우리의 육신은 보통 강력한 육신이 아니지요.

바로 이 현장성을 우리가 조작해낸다는 겁니다. 이 구분, 구분 짓기 힘들어요. 성경에 보면 천사의 그 감격스러움을 내가 인위적으로 조작해내는 거에요. 물론 여기서 큰 교회 파이프 오르간이 하나의 보탬이 되겠고 수백명의 할렐루야 성가대가 조작하는데 감흥을 줘가지고 내가 스스로 기만하는데 보탬이 되는 그런 흥을 돋을 수가 있겠지요.

그리고 그걸 오감만족이라고 하는데 몸에 있어서 오감만족, 오감만족하는 것은 바로 미각 시각 청각 촉각 후각 이 다섯가지. ‘안이비설신’ 불교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그게 우리 속에 새로운 잠자는 나의 혼을 깨운다는 거에요. 워치만 니의 신학에 의하면 육과 혼과 영 삼분설 되가지고 육에서 혼으로 일단 전파하고 그리고 혼에서 영으로 전파하고 점프 두 번해서 구원받는다는 것.

그러니까 이분설이나 삼분설 그 자체가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 구원이죠. 여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내 구원 내가 살고자 할 때 무엇이 가려집니까? 바로 주님이 여기 계시다는 것 그게 그다지 안 기뻐요.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이 기쁘지 주님이 여기 있다라는 것을 본인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10절에 봅시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했지요.

지난번 강남 제가 혼자서 녹화할 때 사실 혼자 한 게 아니고 제 아내하고 옆에 같이 있었어요. 동영상 켜고 올 때 내 등짝 보이는게 싫다고 해가지고 같이 있었는데 그때 강의할 때 큰 기쁨이라는 것은 예상 못하고 예언이 나를 통해서 튀어나옴으로서 큰 기쁨이 되는 거에요. 활성화죠.

바이러스의 활성화는 외피와 알레르기에 있는 바이러스 외피를 뚫고 알레르기가 튀어나오는 알레르기는 변신 변형이 일어나요. 변형이 일어난 그것이 와서 10만배나 폭발해버릴 때 이게 바이러스의 활성화거든요. ‘활성화’.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내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되돌아오는 기쁨은 기쁨이 아니에요. 나를 찢어버리고 나오는 것이 기쁨이라고. 나를 찢어버리고. 여기서 말한 큰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예상 못한 겁니다. 그냥 우연이에요. 우연히. 분명히 이건 조작이 안 되는데 그런 일이 있고난 뒤 그 다음부터는 육신으로 돌아와서 또 조작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여기서 도대체 인간의 자아라는 것이 얼마나 이렇게 지독한가를 정신분석학적으로 설명하면 이렇게 돼요. 제가 그림으로 설명할게요. 인간의 기본은 쾌락입니다. ‘쾌락’. 쾌락이라고 하는 것은 기쁨과 불쾌함 또는 기쁨과 편안함. 몸의 편안함과 불편함. 이게 기본적인 쾌락이거든요.

이거는 뭐냐 하면 이거는 자아 유전이에요. ‘자아 유전’. 애가 태어나면서 엉덩이 축축하면 울지요. 기저귀 갈아달라고. 그리고 인간의 본능적으로 배고프면 엄마한테 달려들지요. 갓난애들. 그때 엄마의 젖을 먹고 갑자기 불쾌에서 뭘로 됩니까? 기쁨으로 전환되지요. 인간은 기쁨과 불쾌 이것이 성인이 되도 제일 기저 상태. 밑의 상태 그대로 가는 겁니다. 그대로 가는 거에요.

대구강의에서 제가 이걸 언급했어요. 대구강의에서 제가 공리주의라고 이야기했는데 뭐라고 했습니까? 공리주의는 무엇이 진리고 무엇이 선이라고 했습니까? 내가 편하고 내가 컨디션 좋으면 이건 진리가 되고 내가 행복하면 진리고 내가 불쾌하고 편하지 못하면 이거는 진리가 아니라고 했지요.

편한 것을 가지고 영어로 ‘GOOD’이라고 해요. ‘GOOD’. 좋다. 그 반대말이 ‘BAD’. ‘나쁘다’. BAD BOY 하잖아요. 나쁜 인간. GOOD과 BAD로 이렇게 결정되는 거에요. 이게 밑에 깔렸다 이 말이죠. 깔린 거에요. 이것이 아무리 교회에서 말씀 듣고 백날해도 기본의 선은 뭐냐 하면은 나한테 잘해주면 천사고 내 돈 떼어먹으면 전부 다 악마에요.

나한테 욕하면 악마고 나한테 잘해주면 전부다 성령이고 천사고 하나님이 찾아오신 거에요.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구성하는 거에요. 이게 공리주의라고 하는 겁니다. ‘공리주의’. 그래서 국가가 공리주의라고 할 때는 뭐냐? 많은 사람이 행복해하면 그것이 그 국가의 진리가 된다는 거에요.

그렇게 되면 누가 손해되겠어요? 없는 사람, 못 배운 사람, 가난한 사람 이렇게 하겠지요. 그래서 그래서는 안 된다. 제일 없는 사람부터 먼저 배려하자 이게 롤스의 의무주의라 하는 거에요. ‘의무주의’. 다시 말해서 피자 한판을 세 사람이 나눌 때 가장 공평한 방법은 피자한판을 세 조각으로 나누고 그 다음에 제일 불만 많은 사람부터 먼저 셋 중에 하나를 고르게 하는 최고다 이 말입니다.

제일 따지는 사람. 제일 욕심이 많은 사람에게 먼저 고르게 하는 거에요. 그래야 말이 없어요. 만약에 욕심 많은 사람 나중에 하게 되면 네가 먼저 잘랐지. 누가 무슨 의도로 잘랐어? 이러면서 말이 안돼요.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무지의 베일. 커텐이 있는데 커텐 뒤에서는 몰라요. 모르기 때문에 그 사회에서 가장 약자한테 먼저 우선권을 주는 거에요. 약자한테. 기회를 주고.

70만원을 그 사람한테 주는 거에요. 70만원 80만원 100만원을 그 사람한테 먼저 주는 거에요. 그래야 입을 닫을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저쨌든 간에 이거는 전부다 뭐와 관련 있느냐 하면은 이거는 뭐냐 하면은 생존과 관련 있어요. 생존할 때 몸 아프고 나서 링겔 꽂고 몸 아프면 생존 아니지요. 차라리 죽는게 낫지요. 어떻게 돼요?

건강하고 돈도 많고 여유 있고 자기 취미생활 맘껏 할 수 있는 그런 상태에서 생존하는 것. 이게 목적인거에요. 이게 진리가 되는 거에요. 이게 대다수입니다. ‘대다수’. 그래서 이걸 대다수라는 말을 했지만 정확하게 말해서 모든 인간들끼리 공통점. 어떤 인간이든. 신자든 신자 아니든 거기서는 고개 끄덕일 수밖에 없는 보편적인 것이 서로 동일시되는 요소가 이미 인간세계에 살아 있는 거에요 이게.

쾌락이 있는데 이 쾌락을 전에 대구 강의할 때 이걸 이 쾌락이 개별적, 사적 쾌락이죠. 태어날 때 개인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형이 있는데 처음에는 자기 밖에 없었지. 동생이 나오게 되면 누굴 질투합니까? 이미 동생을 질투하고 때리고 하는 거에요. 왜냐하면 아빠 엄마의 모든 관심사가 자기에게 쏠리다가 애 낳고 동생 낳고 나니까 애한테 하니까 자기한테 뭘 느낍니까? 결핍을 느끼는 거에요.

결핍을 느낀다는 말은 전에 내가 누렸던 기쁨이 양이 안찬다. 그 기쁨만큼 되지를 않는 거에요. 그래서 인간은 이걸 다시 되찾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데 정신분석학에서 세 가지를 합니다. 하나는 뭐냐 하면 이 절대적인 것에 도달하지 못해서 우회로 비켜가는 것. 이걸 가지고 신경증이라고 합니다. ‘신경증’. 일반적으로 신경증이라고 하면 잘 익숙한 단어가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지어냈지만 가장 적합한 단어가 뭐냐? 신경질. 확 와 닿지 않습니까? ‘신경질’. 그 다음에 또 하나는 뭐냐 하면은 도착증. 도착증세. 도착이라고 하는 것은 물신. 그러니까 이 쾌락이 여의치 않으니까 대체물을 찾는 거에요. 대체물을. 대체물 그걸 이뤄가지고 자기가 스스로 기만하는 자기 속이는 거에요. 이 정도 되면 나 성화된 거 맞지? 본인이 본인의 믿음의 표준으로 삼는 거에요.

자꾸 뭐하죠? 변명하죠. 핑계대고 변명하죠. 정면 돌파하는 것. 정면 돌파. 용감하지요? 이게 바로 정신병. 이게 정신병이에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 현장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아무리 나이트클럽 찾아도 그 남자 그 여자 없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은 두 사람이 만나면 된다고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말 여러분들 어렵지만 들어보면 납득이 되는게 그때 자기를 차고 배신했던 남자를 우연히 만나가지고 등 두드리면서 나 벌써 용서했노라. 노래 한번 들어보세요. 우연히. 할 때 그때 마침 나왔던 음악이 색소폰 불던 음악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그 현장에 있던 둘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그때 그 나이트클럽에 있던 인원수가 76명. 76명과의 엮어진 구조와 음악소리.

그때 음악에서 그것도 2절 중간쯤. 2절 중간쯤하고 있는데 거기에 웨이터 가다가 엎어져가지고 맥주 깨는 소리. 이런 변수. 이런 변수들이 모여서 하나의 함수를 이루어서 그때 여자가 그때 그 정신에 정신이 사나워서 그런지 그래 내가 용서했다는 소리가 나오지 막상 무대 만들어놓고 그때 그 기분 날라가버렸어요. 없어요. 없어요. 억지입니다.

참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얼마나 좋아하는지. 나는 찬송부를 때 그때 있을 거에요. 하지만 찬송을 또 불러 보세요. 그때 감흥 전혀 살지 않습니다. 이미 지나갔어요. 이미 지나가버린 거에요. 천사가 큰 기쁨 봤다. 그렇다면 우리 같으면 그 천사가 큰 기쁨 본 것에 사람들이 그냥 있겠습니까?

큰 기쁨을 되풀이해서 경험하고 싶어서 그 사람의 목자나 그 후손들이 다시 그 장소에 가겠지요. 하늘 쳐다보겠지요. 누구 오기를? 천사 나타나기를. 큰 기쁨 소리고 천사가 하늘에서 무슨 소리 했습니까? 13절에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천사들이 했지요.

듣고 난 뒤에 이 소리가 너무 좋아서 천사님 한번만 더 해주시기 바랍니다. 휴대폰 꺼내가지고 녹음 준비해가지고 다시 한번 녹음 제대로 큐 싸인 들어갑니다.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지요. 왜냐하면 목자가 죽어야 주님이 사니까.

그 목자의 현장에 목자의 큰 기쁨의 현장은 누구 소유냐 하면은 주님이 시작하기 때문에 주님의 소유가 됩니다. 주님의 소유가 돼요. 목자가 또 받을 자격 없습니다. 목자는 그냥 당한 거에요. 이용당한 거에요. 재료로써. 주님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폭격기를 퍼붓는가 하면은 우연히 누가복음 2장 보다가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이 한글로 된 이 글자를 보면서 성령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그 당시의 천사가 있던 그 기쁨을 이 짧은 한국말 번역된 그 말씀을 보는 순간 “야! 이것이 바로 현장이다!”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이것이 현장이라고 주께서 바이러스를 활성화 시키듯이 인공지능 활성화시키듯이 활성화 시키면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말해지도록 주께서 그렇게 다뤄진 거에요. 말씀의 활성화되도록. 목자의 손에서 떠나버렸어요.

이것은 주님에게 뭐가 있느냐? 면허권이 있어요. 주님의 특권이 주님한테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 속에서 활성화되는 거에요. 말씀이.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그냥 목사님이 이스라엘 가라고 하는데 나도 가서 한번 볼까? 가봤자 저는 그걸 보고 느꼈지만 다른 사람은 “와 이리 덥노? 35도가 넘고 왜이리 더워? 짜증난다 빨리 가자”.

아까 짜증난다 뭐였습니까? 신경질. 쾌락을 얻고자 하다가 빨리 가서 호텔 가가지고 샤워해야지. 이게 바로 기본 쾌락일 수 있어요. 그래서 인생이란 어떻게 사느냐? 옛날 있었던 그가 미지의 쾌락을 다시 되찾기 위해서 셋 중에 하나 신경질을 내면서 하는거. 이 신경질 둘로 나눌 수 있는데요. 신경질 이 세 가지 아셨지요? 신경질만 다시 분해해보겠습니다.

이것만 분해해서 신경질이 신경증세가 신경질이 이 두 개로 나눌 수 있어요. 물론 쾌락과는 갈수 없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또 새로 생기는 거에요. 그것 가지고 안 즐겁잖아. 더 즐거워야 돼. 이 마약이 문제가 그거잖아요. 그걸로 끝내는게 아니고 그걸로 인하여 그걸 했기 때문에 새로운 기쁨의 시작이 돼요.

새로운 욕구가 또 새로 시작되는 거에요. 늪에 빠져버리는 거에요. 늪에 빠지는 것. 남자들은 알지요. 당구 200치면 잘 친다 했지요. 200쳐보세요. 뭘 노립니까? 300. 300치면 끝입니까? 500. 당구 안쳐봤지요? 그러면 뭐했어요? 검도했어요? 아이고 우리 동네에서 잘 치면 되지요. 아니지요. 우리나라 대표. 아니지요. 올림픽. 이 욕구.

바둑 두는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바둑 두는 사람도 마찬가지. 어릴 때부터 3살 때 4살 때 엄마 따라서 바둑 했고 공부 포기하고 바둑 뒀는데 3살 때부터 이 22살, 25살 되가지고 몇 년이지? 거의 20년에서 15년 동안 공부하고 그중에서 한 달 500이상 버는 사람 우리나라 330명 바둑기사 가운데서 50명밖에 안됩니다. 50명.

나머지는 축구선수하고 똑같은 거에요. 나머지는 다른 직업을 찾아야 돼요. 신진수 박정환 이정도 되야 1억하지 그 외에는 옛날 이창호 그 다음에 이세돌 그런 사람이나 몇 억 벌지 그 다음에는 없어요. 이거는 가수도 마찬가지고 트롯트하는 사람이 2만명이 넘는데 그중에서 7명 나왔잖아요.

이게 뭐가 되느냐? 쾌락이 이게 환상을 이루고 이 환상, 영어로 하면 Dream 한자로 말하면 꿈이죠. 꿈을 보고 인간은 살아가는 거에요. 꿈을 보고. Boys be ambitious! 야망을 가져라. 이게 바로 환상이고 환상을 가지고 영업하는 곳이 교회 아닙니까. 헛꿈인데. 헛꿈이거든요.

꿈을 꾸면 꿀수록 점점 더 성질만 나는 거에요. 성질만. 이 성질의 하나에서는 히스테리 또 하나는 강박증. 둘 다 신경증에 속하는데 히스테리는 뭐냐 하면은 와악!! 고함 지르는게 히스테리에요. 노처녀 히스테리. 와아아아악!!! 누나 왜그래? 나가!!!!! 히스테리. 얻고자하는 것이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신체가 자동적으로 신체가 반응을 나타내는게 히스테리에요. 이거는 병명이 없어요. 그냥 성질나는 거에요.

강박증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이것은 약간의 꼼수를 부리는 거에요. 그래야 내가 마음 낮춰야지 내가. 내가 욕심내면 안돼. 성경에 보면 마음을 낮추라고 했으니까 마음 낮추면 마음은 편하겠지. 이거 복음 아는거 같애요. 이거 사기. 받고 싶지만 주께서 주셔야 되는 것이 내 쪽에서 양보하지.

이 강박증 특징은 뭐냐? 원하는게 있으면서도 안 원하는 체 마치 포기했는 양. 포기 안했는데 포기했던 것처럼 여기는 것. 돈? 아무것도 아닙니다. 뭐 3만원 줄 때 아무것도 아니지. 30억 줘보세요. 엄마야! 하고 받지. 모든 인간은 이처럼 정신병자입니다. 정신병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편집증, 정신분열증 두 가지인데 사실은 같은 거에요.

왜그러느냐 하면은 편집증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곧 신이다 에요. 내가 곧 신이다. 소위 교회 교인들 보면 다 들어 있어요. 하나의 인격 속에 내가 곧 신이다. 내가 말씀이고 요한복음 보니까 너희가 신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신이다. 이걸 위트니스 파에서 전하는 거에요. 말씀이 육신이 되었기 때문에 여러분들 예수입니다. 이게 위트니스.

워치만 니의 제자면서도 친구라고 우기는, 우기는 거에요. 우기는게 위트니스에요. 그런데 워치만 니는 위트니스보고 친구라 한적 없어요. 희한하죠? 자기는 워치만 니 동원해가지고 지방교회라는걸 만든 거에요. 그것이 알고 싶지도 않지요. 결국 그것이 장사가 된다 이 말이죠. 그 지방교회의 특징이 뭐냐 하면은 그 지방교회를 그대로 배운게 누구냐 하면은 이만희입니다.

지방교회를 한번 들어보세요. 들어보게 되면은 그러므로. 아멘!!! 그래서. 아멘!!! 무슨 이야기 했다고 지금 아멘. 그렇게 해서 스스로 집단적으로 최면에 빠지는 거에요. 집단 최면. 이만희 하고 똑같애요. 여러분들이 신이 되고싶지요? 여러분들이 구원받고 싶지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적극적인 모션을 취해야 됩니다.

내가 한마디 할 때에 힘을 모아서 신천지 왔다 간 사람은 아니까 아멘 해줘야 스스로 자기에게 믿음이 생기는 거에요. 그래야 14만 4천에 여러분 합격할 수 있습니다. 노리는 것이 뭐냐 하면 자기 구원이죠. 자기 개별성입니다. 뭘 가립니까? 주의 일하시는 현장성을 가려버리는 거에요. 내가 여기 있다가 되어버려요. 내가 있다에 대해서 주님이 여기 계시다.

그러니까 주님이 계시는데 나를 위해서 계시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주님 계시려면 나 있다 없다가 생각나지 않아야 돼요. 왜냐하면 주님이 부활하고 난 뒤의 주의 있음은 주님의 죽으심에 의해서 호출 당한 사람들이 있음이 예수님의 있음이거든요. 왜? 십자가로 함께 있기 때문에. 복음 빠지고 우리끼리 모이는 것은 없어요. 십자가 이후에.

주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가 되지 내 신앙인 것을 내가 구원받은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모셔오는 건 안돼요. 어떤 목사는 간증하기를 새롭게 하소서 왜 그리 간증하는 사람 많은지 안 볼라했는데 요즘 또 보이데. 한 사람이 나는 신문배달 구두 닦기했는데 주의 임재하심이 나를 가득 찼다는 거에요. 주의 임재하심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가득 찼다는 거에요.

이 모든 종교의 승려들 특징입니다. 무당들의 특징일 수도 있고요. 그거는 뭡니까? 자기 말하는 거에요? 자기 말해지는 겁니까? 자기가 말한 거지요. 왜 그러냐하면 성경 말씀은 내가 아니요가 나와야지. 내가 아니요가 내용으로 들어가있어야 돼요.

다윗이 내가 내 아내 전남편을 내가 죽였습니다가 있어줘야 이게 본인이 알아서 자기 부인하는게 아니고요. 이건 정신병자고 내가 이만큼 낮추면 주께서 살아계시지 이건 정신병자고 역사적인 보편성에 의해서 실제로 죽인거 맞아요. 실제로 죽인게 맞기 때문에 따라서 나는 실제로 구원받은 거 맞아요. 왜? 내손으로 죽였으니까. 와 이 천하의 뻔뻔함.

그럼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겠어요? 다윗보고 너 잘했단 말인가? 주님이 잘했지. 주님이 잘하셨어요. 앞에 주님이 잘했기 때문에 나는 잘했다 할 수 없는 존재. 주님의 잘했음이 나의 못함을 이기고 주의 잘했음이 활성화되는 거에요. 나는 바이러스, 인공지능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에요.

좀 더 설명하게 되면 여기에 강박증이라고 하는 것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강박증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서 그래 나는 이 말씀 못 지켜. 나는 늘 죄인이야라고 뭔가 자기 조정을 시도할 때 이걸 굉장히 복음적으로 생각되겠지만 이게 얼마든지 인위적으로 조작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작이 돼요.

그래서 문제는 뭐냐? 그래서 기쁘던가요? 문제는 그거에요. 그래서 기쁘던가요? 아니면 좀 억지스러운가요? 내가 이렇게 해서라도 나는 신자이고 싶어한가요? 아니면 예상 밖의 기쁨이 있던가요? 차라리 우리 육신이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지요. 이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주의 성령이 오셔서 너는 기껏 하는 것이 너는 신경증세 환자에 불과해서 너 스스로 네가 복음 아는 사람이고 싶지라는 그러한 통보가 왔을 때 그게 큰 기쁨이에요.

그래야 항상 내 외부에 의해서 내가 다루어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나이다”를 순종으로 할 수 없고요 주께서 그렇게 순종하게끔 조성해나갑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주께서 하라 하셨습니다라고. 대전 사시다가 서울 오라고 하라 하셨습니다. 물론 그전에는 이거는 내가 가야돼. 내가 가야돼. 본인이 결정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면 그 결정이 내 결정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거기에 서울 살라는 그 모든 조성된 모든 변수들이 내가 심어놓은게 아니거든요. 내가 심어놓은게 아니다. 요즘에 어떤 사람들은 말해요. 하려고 했는데 뭘 이렇게 예배 참석하려고 했는데 마침 신종 코로나 해가지고 마침 신종 코로나거든. 마침. 자기 예상은 뭐냐 하면 다음 주에는 교회 가야지 했는데 마침 코로나해가지고 1월말부터 안 나온 거에요. 1월말부터. 마침.

내가 보기에는 진짜 성령에 취했으면 진짜 믿음 좋은 거 맞아요. 이게 뭐냐? 우연이거든요. 우연히. 이 말은 뭐냐 하면은 늘 이렇게 우연히를 통해서 나 자신을 다시 본다는 것은 자기 지나온 모든 과거도 필연은 전혀 없었고 우연과 우연의 연쇄, 연결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고백하는 거에요. 뒤늦게.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그러나 그 전에는 어떻게 봤습니까? 남하고 비교하느라 바빴잖아요. 나는 이정도 밖에 안돼. 동창생인데 나는 이런데 쟤는 저렇게 잘됐느냐. 아휴 부러워라. 나도 어떤 뭔가 돼야지. 아까 정신병에 의해서 그게 뭡니까? 그게 환각이 되는 겁니다. 환각 또는 환상, 꿈.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이거는 결핍. 없음을 자꾸 바라보는 거에요. 없음을.

네 이상적인 모습이 뭐냐? 일단 그려보지만 막상 이상적인 모습이 되어버리면 아무 기쁨이 아니고 그걸 클리셰라고 하지요. ‘클리셰’. 클리셰가 뭐냐 하면은 문학에서 상투적인 것. 진부한 것. 진부해요. ‘구해죠 홈즈’. 집 구하는 프로그램이거든요. 멋있어 보이지요. 가보세요. 이 넓은 집 줬단 말이죠. 한번 살아보라고요. 한 달도 안가가지고요 클리셰해요. 진부해요.

그리고 신경질나요. 뭐 때문에? 청소 누가 하느냐. 나는 전원생활하고 싶어. 나는 아파트 지겨워. 시멘트가 싫어! 전원생활 해보세요. 한 달 아니고 일주일만 가보세요. 잡초는 누가 뽑아요? 파리, 모기는 왜 그리 들끓는지? 쓰레기는 언제 치우는지. 집 자체가 짐이에요. 집 자체가. 따라서 두 사람 살거든 10평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10평 이상 되면 짐이에요.

아주 주님이 적절하게 주시지요. 적절하게. 세 사람 살면 15평 정도. 청소하기 내가 이거는 하나의 팁인데 청소하는데 별 힘이 들지 않을 때 가장 적합한 평수에요. 청소하는데. 뭐 낭만, 뷰가 좋다. 뷰가 좋은게 아니라 비유가 좋아. 남산이 보인다. 아이고 봐도 지루해. 바다가 보인다. 바다가 보이면 우울증 걸립니다. 전부 다 남이 갖고 있던 환상이 그걸 모방해서 그래요. 마귀가 그렇게 한 겁니다. 마귀가.

중요한 건 현장성입니다. 신의 국경에 검문소. 국경에서. 주님께서 이 목자가 이것 봤다고 해서 목자가 구원받습니까? 아니지요. 아니에요. 왜냐하면 구원받을려면 영원한 보편성 속에 포함이 되어야 되는데 자기는 그런 천사를 만났을 뿐이지 그게 보편성 속에 들어갈려면 아직 무슨 차례를 기다려야 되느냐 하면은 역사라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보편적으로 누려줘야 돼요. 보편적으로.

그러려면 어디까지 기다려야 되는가? 십자가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어야 돼요. 십자가 역사적 사건. 아기 예수 봤다고 구원받는 거 아닙니다. 십자가를 받아버리면 구태여 그 십자가 사건 안에 천사가 왔던 큰 기쁨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 기쁨은 바로 기쁨은 어떻게 기쁨 얻느냐 하면은 우리가 육신이기 때문에 육신=정신병자죠. 정신병자. 신경질 내죠. 육신을 깨트린다는 말은 내가 말한다에서 내가 말하여진다라고 전환되면서 여기서 뭐냐 하면은 여기서 기쁨이 쏟아집니다.

하나의 예를 들까요? 내가 예수 믿을 때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 눈물 흘렸다가 되지요? 오직 나는 이제부터 사나 죽으나 주님만 증거하겠습니다 했지요? 몇 분 가지도 않아서 ‘나’라는 것은 주님을 만났고 주님을 증거 하는 사람 되었다 속에 들어가지요? 그러면 이 기쁨이 기쁨은 사건이고 우연성이기 때문에 ‘나’라는 이 육신의 개별성 안에 이게 들어올 수 있습니까? 못 들어옵니까?

못 들어와요. 못 들어오는데 이미 인간은 과거에 준해서 살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그때 구원받았다 11월 3일날 구원받았다. 들어왔지요? 기쁨이 남아있습니까? 전혀 없지요? 에프킬라입니까? 모기 있을 때 치면 모기향 냄새나는데 가버리고 없어요. 향수 뿌렸는데 분명히 향수인데 오후 되면 다 날라가버렸지요. 없지요. 없다 이 말이죠.

결국 남아있는 것은 옛날에 내가 신자다. 옛날 신자니까 시간상 한번 구원받았으면 구원받았고 한번 성령 있으면 성령이 보증받았기에 영원히 구원받는다라는 논리에서 앞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해서 내가 구원받았다 되면 이건 누구 증인돼요? 주님의 증인되는게 아니고 필연적이고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나의 증인되는 거에요.

나의 증인된 것을 정신분석하면 뭐냐 하면은 ‘내가 곧 신이다’ 에요. ‘신이다’ 하는 이게 정신병자. 정신병자. 복음 이야기하니까 우리 교회 참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많은 사람이 갔어요. 처음부터 노림수가 이근호 목사 설교 듣고 내가 신자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왔는데 그 의도 자체가 여기에 있는 큰 쾌락, 구원받고자하는 쾌락을 얻고자 왔는데 그리고 그 이야기한대로 믿는다고 고백했는데 믿는다고 고백을 했는데.

자꾸 그 믿음이 주님을 증거하는게 아니고 구원받은 나를 증거합니다라는 그 소리 듣자마자 그 다음부터는 전부다 하나 둘씩 다 떠나고 말았어요. 내가 글씨 쓰지도 않았는데. 돌멩이 들고 다 가버렸어요. 가면서 하나같이 하는 소리가 또 있어요. “너만 신자냐?” 내가 언제 신자라고 했어요. 나는 신자라고 한적 없는데 “너만 믿냐?” 나는 믿는다는 소리 안했거든요.

나의 믿음은 행함입니다 이런 소리 했지. 내 믿음은 없는 거에요. 없다 했는데 괜히 자기가 너만 신자냐? 내가 뭐랬는데? 십자가 마을만 정통인가? 복음 아는가? 십자가 마을 그런 소리 하는 사람 없잖아요. 그래서 어떤 분은 화가 나가지고 글을 일부러 썼어요. 십자가 마을은 이단이다. 한번 찾아보세요. 십자가 마을에 아직 있을 거에요. 십자가 마을은 이단이다. 어쩔래?

우리는 끝까지 주님이 여기 계심의 방해자로 있는 거에요. 그게 쪼가 맞아. 나는 주님의 있음의 방해자고 그래서 우리는 주와 함께 있는 겁니다. 주와 함께 있지 않으면 내가 주의 있음의 방해자라는 인식이 안 생기게 되어있어요. 문제는 이 말도 흉내낸다는 거에요. 정신병자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게 기쁘냐 이 말이죠. 그야말로 무거운 짐이 날라가냐 문제입니다. 날라갔죠. 몇시에? 문제는 그게 날라갔는데 2분도 안지나가지고 그 기쁨 날라가버렸어. 날라가야 돼요. 왜? 그래야 주님만 살아있고 난 안 살아있는게 되니까요. 내가 스스로 나를 활성화시키면 안돼요. 주께서 활성화시켜줘야 돼요.

또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목사님 또 6분후에 활성화 안 시켜주면 어떻게 됩니까? 활성화 안 시켜주면 어떻게 되느냐하는 말은 자기가 결정을 한거에요. 분석을. 뭐라고 분석을 활성화, 활성화됨 또는 두 번째 활성화 안됨을 누가 측정했어요? 본인이 측정했지요?

이건 뭐냐 하면은 본인의 기억, 본인의 과거입니다. 본인의 기억, 과거는 자아 형성에서 나온 거에요. 주님의 사건에서 나온게 아니고 이미 존재가 된 사건이 아니고 존재가 된 상태에서 있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다른 환경을 조성해줘요. 다른 환경을.

나는 두 달 전에 믿었다 그거 말고 그거는 옛날 이야기에요. 나는 석 달 전에 이런 나쁜 짓했다. 그건 옛날 이야기에요. 그거 지나가버립니다. 옛날 죄지은 거 자꾸 왜 끄집어내요. 오늘 죄지은 거 왜 감추고. 오늘 죄지은 거 있잖아요. 나 구원받았다 이거 있잖아요. 그거는 왜 그거는 자꾸 감추고 자기가 생각하기에 옛날에 죄 지은거 왜 자꾸 그걸 기억해가지고 자기를 괴롭혀요. 학대하고. 오늘 죄지은 거는 모르고.

아까 햄버거 먹었지요? 햄버거 먹었을 때 우리는 어떤 죄를 짓느냐 하면은 그때 지난번 햄버거 먹을 때 그 기쁨의 맛이 나와야 되는데 라고 정신병자적인 기대를 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 맛이 안 났다 이 말이죠. 왜냐하면 저번에 햄버거 먹을 때는 벤츠차가 앞에 그 햄버거 집 앞을 지나간 경우고 지금 오늘 벤츠차가 안 지나갔거든요.

그때 그 현장을 고스란히 할 재간이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피동적이기 때문에. 그때 그 순간은 내 솜씨가 아니고 주님의 솜씨거든요. 주님의 솜씨는 주님께 맡겨야지 내가 그때 그 쾌락과 즐거움을 또다시 내가 그걸 추적해서 내 것으로 소유하겠다하는 것은 이것은 나로 인하여 내가 즐거워하겠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잘났잖아 자기 증인 노릇밖에 안되는 거에요. 그거는 개별성이지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보편성이 아닌 거에요. 누가 뭐래도 가이사 아구스도가 명을 내렸고 누가 뭐래도 천하의 고넬료가 수레아, 지금은 시리아죠. 시리아 총독, 시리아는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고넬료라는 시리아 총독이 정식 총독은 아니였고요. 총독이 두 번 되거든요. B.C 6년경에 한번 사절단 오고 그 다음에 A.D 6년 본격적으로 시리아 총독이 되었어요.

그래서 그때에 다 총독 될 때에 3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이걸 이제 쉽게 말하면 모든 사람이 의료보험 20만원 이하의 70%에게 돈 받으러 동사무소로 가게 함에 가게 할 때에 요셉도 70만원 받으려고 동사무소 갈 때에 그때 예수님이 잉태했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총독이 어떤 황제가 있다는 자체가 우리 구원과 무관한게 아니다 이 말이죠. 주께서 조성하게 되면 배치가 다 엮여져있게 되어있어요. 따로 이점 이점 이점 뽑아서 나 이것 때문에 내가 되었다 하지 마세요. 내가 그때 눈물로 결심해서 손 모아서 기도해서 되었다 이러지 마세요. 자칫하면 손가락 부러지는 수가 있습니다 나중에.

어떤 9살 먹은 애가 멕시코 애인데 길거리에서 기도하는 것을 사진기사가 찍었어요. 길거리에서. 사진기사 찍고 난 뒤에 물었어요. 찍는데 배경 좋아 멋지게 혼자서 코로나 물러가라고 기도했거든요. 기도하는데 사진기자가 물었어요. 왜 집에서 안하고 길에서 하느냐? 할 때 소녀가 하는 말이 집에서 시끄러워가지고 기도가 안 들릴까봐서 밖에 나와서 한다는 거에요.

그러면 기도하기까지 구성요소를 누가 정한 거에요. 본인이 정했지요. 본인이 정했으면 그것이 기억에 사라질까요? 남을까요? 남겠지요. 만약에 그 애를 기도 때문에 마침 신종 코로나 멕시코 그 동네 물러갔다면 그 아이가 뭘 생각하겠습니까? 그때 기도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하겠지요. 그러면 그때 기도할 때 집안에서 기도했으면 큰일 날 뻔했지요? 왜? 밖에 나가서 기도했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질 때는 인간은 얼른 그것과 관련된 원인과 결과를 다 수집해요. 자기가 아는 범위 내에서. 이거는 누구 증인입니까? 주님의 증인을 빙자한 자기 증인이죠. 정신병자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자에요. 정신적으로 삐뚤어져있어요. 그러니까 마귀가 얼마나 기고만장하겠어요.

예수님보고 베드로 백날 해도 베드로는 내 손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어떤 경험을 하게 합니까? 네가 너 일이 네가 결정한 것이 아니고 악마의 의해서 결정했다는 것을 악마한테 넘기지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어떻게 해요? 세 번씩이나 부인하지요. 악마를 물리치게 하는게 아니에요. 주님께서.

베드로로 하여금 악마가 뭐를 노리고 인간의 정신을 통제하고 있느냐를 베드로를 통해서 대신해서 보여주는 거에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잖아요. 얼마나 고마운지. 왜? 우리 모습을 보는 거에요. 우리 모습을. 지금 환경이 괜찮으니까 이런 환경 속에서 자기가 믿는 것처럼 되지요?

그러면 만약에 우리가 그 권세의 환경 왔을 때에 노골적으로 내가 주님의 성도가 있는데 성경에서는 이렇게 되어있어요. 어떤 소녀 하나가 불 쬐고 있는데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그걸 솔직한 말로 가시나거든요. 어떤 가시나가 건방지게 베드로 보고 “아저씨! 그때 예수님 옆에 같이 있었잖아요?!” “이거 가시나 이거!!”

주님께서는 미천한 가시나를 통해서 하게 하는데 그게 누구의 생각이에요? 주님께서 악마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용한 거에요. 3년 동안 다녔고 물위를 걸었고 장모 병이 낫고 완전히 다 무너져버렸어. 다시 말해서 신의 국경에서는 나는 뭐로 발견되야 된다? 애초부터 죽은 자로 발견되게 해주시는구나.

죽은 자로 발견된다는 것은 에이 죽었구나 이게 아니라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신이고 하나님이고 예수고 다 이용했다는 그 사실이 주님을 가린다는 뜻에서 죽은 자에요. 악마의 노릇을 하고 있다는 죽은 자. 이거는 우리가 평생 할 각오하세요. 이거 뜯어고칠 생각하지 마세요 이거. 이거는 죽어야 되는 겁니다. 이거는 육체가 죽어야 되지 살아있으면서 개과천선해서 될 문제가 아니에요.

자, 그러면 계속 봅시다. 5절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자, 오늘 공부한 것을 적용시키고 마칩시다. 여기에 마침 여관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없지요? 아무것도 없지요? 호텔도 없다 이 말이죠. 사람이 있을 곳이 없었음이라. 이걸 가지고 히브리서 같은데나 이걸 뭐라고 하면은 예수님께서 비천하게 태어났다. 비천하게 태어났다.

그러면 이 요소는 결국 뭐냐 하면은 십자가 죽을 때만 십자가가 아니라 이미 태어날 때부터 십자가가 기저에 깔린 거에요. 출생 자체가 비천하게 태어났으니까. 그러면 이 비천하게 태어났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은 모든 인간의 꿈이 어떻게 하면 내가 비천해질까 그런 꿈을 꾸겠어요? 아니면 반대로 나가겠습니까? 반대지요.

방향이 반대로 가면 만남의 가능성이 있어요? 없어요? 전혀 없어요. 인간이 추구하는 것과 소위 교회에서 기도하면서 교회 다니면서 나 천당갈려고 추구하는 것과 실제로 우리가 구원받는 것과 만날 가능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부 없어요. 만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왜? 반대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개별적인 구원을 추구하기 때문에. 없어요.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 이미 주님과 같은 쪽에 있습니다.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 그러나 성령 안 받은 사람은 아니야 있을 거야라고 계속해서 꿈과 희망을 포기를 못하고 있습니다. 나 구원될 수 있을거야. 대다수가 이야기합니다. 그놈의 대다수 대다수. 베드로가 왜 부인했습니까? 대다수가 다 예수님 죽이는 것에 찬성했으니까 걸려들면 자기가 목이 달아나잖아요.

신의 국경에서는 목이 달아나야 돼요. 그런데 베드로는 거기까지는 안돼요. 아직 성령을 안 받았기 때문에 없어요. 안돼요. 그러면 베드로가 나중에 성령 받았다는 말은 뭘 뜻합니까? 통과했다는 거에요. 신의 국경선에서 통과된 거에요.

통과 됐으니까 이제는 다윗이 밧세바 남편 죽였다는 그것을 주께서 활용하는 것처럼 베드로가 자기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세 번 부인한 것도 충분하게 주께서 성경으로 기록하면서 활용해 주시는 것에 대해서 영광스럽게 생각해야죠. 영광스럽게. 이게 얼마나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거에요. 초과한 겁니다.

그래서 지난 오후설교 때 끝에 이런 이야기했잖아요. 예수님께서 유대와 갈릴리에 다니면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셨을 때 참 주님께서 좋은 일했다 얼마나 감사하냐 하지만 막상 당한 당사자는 어떤 생각 갖는다 했습니까? 사적인 일을 공개적으로 떠벌려가지고 불편하게 했지요. 불편하게 했지요.

왜냐하면 인간은 숨어 지내는 것을 소원으로 하고 있는데 주님이 난데없이 와가지고 이봐 옛날에 창기였어. 이게 뭐 자랑이라고. 이봐 삭개오는 세리였어. 돈만 알았어. 이게 뭘 자랑이라고 떠벌릴 때에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그런데 막상 본인 삭개오와 세리는 예상 밖의 큰 기쁨으로 주님께..

“잘하셨습니다. 활용당하는 것이 나의 본분인 것을 주께서 찾아오니까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것이 곧 나의 사망, 나의 죽음입니다.” 천국에 넘어가는 그 국경선에는 이런 현상이 이런 현장성이 현상이 일어나고 그 현상을 지금 이 자리에서 현장성으로 주께서 성령으로 늘 생산해내고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증인되야 될텐데 우리는 자꾸 미끄러져서 도로 나의 증인으로 전락하는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자체가 이걸 알게 된 자체가 성도임을 이제는 고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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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