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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00501b 울산강의-레위기 26장 : 표면존재자유게시판레위기

20200501b 울산강의-레위기 26장 : 표면존재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첫 번째 시간 끝에 콜센터 여직원 이야기를 했지요. 콜센터 여직원이 고객들에게 대출이자 높였다는 이 말이 자기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관계없이 똑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위에서 이미 결정한 결정된 사항이 말단 직원을 통해서 다양하게 퍼지지요. 할아버지든 할머니든 자기 고객들이라면 조건 달지 않고 은행의 조건만 그냥 내뱉을 뿐입니다.

이걸 이렇게 보면 돼요. 부분 속에서 전체가 나옵니다. 성도란 하나님과 낚싯대로 관계가 돼버리면 하나님에 의해서 구원되지 않은 사람은 자기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기를 위해서 살아왔기 때문에 자기를 위한 내용이 나오지요. 그러면 개인적인 시간과 개인적인 공간 이야기가 카페나 커피숍에서 세 시간, 네 시간 수다 떨면서 나오는 거죠.

만약에 여고 동창생 다섯 명 모였다. 각자 과거가 다르고 살던 모습이 다르고 현재 사는 형편이 다 다르겠지요. 다섯 명 전부 다 동일한 내용이 안 나옵니다. 각자 지 잘난 이야기만 나오지요. 자기 잘났다. 남편이 외국 나가서 뭐 사오고 다이아 5캐럿짜리 사줬다. 안 끼려 했는데 결혼기념일이라 해서. 다이아가 너무 많아서 귀찮아 죽겠다. 그 중에 어느 걸 끼고 나갈지 오늘 30분 동안 고민했다는 둥 그런 이야기 나온단 말이죠.

그런데 성도는 자기 부분 속에서 전체, 이미 합의가 된 하나가 된 천국이야기가 개인을 통해서 터져 나옵니다. 그럼 여기서 단일 시간과 단일 공간이 나올 때 단일 시간을 뭐라 했습니까? 안식일. 단일 공간은 성소. 이 이야기 나올 때 뭐가 방해되겠습니까? 남한테 이야기할 때 하늘의 방침이 그대로 서슴없이 나올 때 방해되는 게 있어요.

뭐가 방해되겠습니까? 바로 나의 시간, 나의 과거이야기, 자기 잘났다는 과거이야기나 형편 이야기, 그리고 사적인 소망, 사적인 욕심, 그것도 욕심 아닌 척하면서 부리는 욕심. 나는 내 힘으로 새순교회에 50명 전도했으면 좋겠다. 그런 욕심 있는 사람 아무도 없지만. 전도해서 뭐 하려고? 남이 날 믿어줬다고 알아보겠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나의 믿음이 사적인 거예요. 남한테 인정받고자 하는 나의 탐욕이죠.

이런 것들이 주의 일에 방해가 되는 겁니다. 방해가 되니까 고맙게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이 방해물을 방치하지 않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이걸 뜯어내요. 마치 배에 이끼 끼고 녹이 꼈을 때 망치로 패가면서 그걸 뜯어내듯이. 뜯어내야 하늘나라 공적인 것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그걸 안 뜯어내면 사적인 자기 잘남, 이것만 덕지덕지 붙어 있으니까 그걸 떼어내는 겁니다.

그걸 떼는 방법 뭐냐? 율법이에요. 하나님의 율법. 네가 이웃을 사랑했나? 하나님을 사랑했나? 그런 식으로 계속 지적질하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그게 짜증나서 성경도 안 보지요. 교회도 안 나오고 말씀도 안 듣고. 나한테 지적하기만 해봐. 하나님도 가만 안 둔다. 계속 나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나로 인하여 사는 그것이 인생을 사는 보람이고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확신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토 달지 마라.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이제부터 상당히 어렵습니다. 다만 다시 강조하는 것은, 성도란 부분을 통해서 전체가 나오기 때문에 그 전체는 자기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면 전체 이야기가 뭐냐? 전체 이야기는 예수님의 희생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희생 이야기할 때 방해되는 것은 나의 희생, 내가 얼마나 교회 봉사하고 남보다 더 충성한 이런 것들이 예수님의 희생을 방해하는 불신적인 요소라는 것은 여러분들은 새삼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물어보겠습니다. 예수님의 희생만 이야기하면 될 것을 왜 나의 희생, 나의 봉사를 방해되더라도 이야기하고 싶은가? 그것은 바로 세상 살기가 무섭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알 수 없는 무서움이 있어요. 그 무서움의 정체를 까보면 이런 거예요. 나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한다고 했잖아요.

이번에 주식에 석유에다 투자했는데 동학개미라 했는데 남편 몰래 오천 만원 넣었는데 그것 깡통 되면 쫓겨나면 뭐하고 살지? 뭐든지 움직이고 행동할 때마다 바들바들 떤다 할까요, 무서운 거예요. 마치 초등학생이 문방구 물건 훔칠 때 벌벌 떠는 것과 똑같아요. 물건 훔친다는 것은, 첫째, 손을 내민다. 두 번째, 저기 있는 장난감을 손을 터치한다. 세 번째, 가볍게 내 쪽으로 끌어당긴다. 네 번째, 집에 간다. 이러면 아무 문제없잖아요.

팔만 움직이면 물리적으로 볼 때 가볍거든요. 저 물건까지 1.8미터, 다가가서 가져간다. 물리적으로 수학적으론 아무 문제없는데 인간의 마음은 그런 게 아니에요. 이렇게 하는데 화장실 갔던 문방구 주인아줌마가 하필 그때 나오면 어떡하지? 걸리면 엄마한테 나는 도둑놈이 될 거고 옆에 친구들은 도둑놈이라고 나이 팔십구 세까지 계속 갈 건데 그 우사를 내가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이 그런 마음이 계속 떠오르게 하지요. 무서움이거든요. 그냥 팔 내밀어서 쥐면 되는데 계속해서 이게 들켰을 때 어떻게 되고 내가 망신살 뻗치면 어떻게 되고, 이 모든 생각이 든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은 이미 누구 지배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냥 물리적으로 하면 될 것을, 이게 기계잖아요. 어린아이가 젖을 먹을 때 내가 젖을 안 먹으면 엄마가 때리면 어떻게 하지? 얘는 그런 생각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어린아이 거의 기계에요. 본능이라고.

아이 좀 더 크면 인간이 육적인 본능 말고 덮여진 것, 더 추가되는 게 있어요. 그게 뭐냐? 법이에요. 선악과 따먹은 선악체계, 악마가 이것으로 인간을 지금 지배하고 있는 거예요. 인간의 마음을 지배할 때 뭐로 지배한다 했습니까? 선이냐, 악이냐를 집어넣어서 선과 악의 갈등을 일으키게 만들어서 인간으로 하여금 벌벌 떨게 만드는 겁니다. 악을 저지르면 죽게 되고 선을 행하면 살게 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에 나오지요.

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데요 햄릿에서 뜻이 뭐냐? 다 죽여 버려요. 모든 등장인물을 다 죽여 버리는 것이 햄릿의 내용입니다. 주인공부터 해서 다 죽입니다. 어떻게 죽이는가? 서로 관련되어서 다 죽여요. 햄릿이 비극이라 하는데 인간이 비극을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내 뜻대로 안 되면 어떻게 되나? 정말 비극적으로 되면 안 되지. 비극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자체가 이미 비극의 요소가 우리 안에 잠복돼있다는 뜻입니다. 누가 집어넣었겠어요?

선과 악 중에서 어느 것이 비극에 가깝겠습니까? 여러분 답변해보세요. 선한 쪽이 비극이 되겠어요, 악한 쪽이 비극이 되겠어요? 악한 쪽은 비극이 되고 선한 쪽은 뭐가 된다? 희극이, 기쁨이 되겠지요. 이 발상이 바로 뭐냐? 악마가 지금도 내 마음을 통제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악마가 나를 다스리고 있다는 증거에요. 선악체계가.

착하게 살면 복 받아 천당 가고 나쁘게 살면 하나님이 분노해서 지옥 간다. 이러한 발상을 누가 집어넣었느냐? 세상에 악마가 집어넣은 거예요, 악마가. 우리는 거기서 발을 못 빼고 있습니다. 아까 문방구 예를 들어볼게요. 자, 손을 뻗었다. 마침 그때 화장실 갔던 주인이 왔고, 안 그래도 도둑놈 잘 잡았다. 한 달 동안 이십육만 사천오백 원어치 나왔는데, 그 얘는 처음이에요. 문방구 주인이 덤터기 다 씌운 거예요. 니 아버지 불러와. 안 그러면 파출소 불려가서 콩밥 먹고 교도소 가서 호적에 뻘건 줄 그어져서 팔십구 세까지 도둑놈 소릴 듣고 취직이고 뭐고 결혼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한다, 라고 했지요.

자, 문방구 주인은 뭐가 됐습니까? 제 예에 의하면 문방구 주인은 천사가 됐어요, 악마가 됐어요? 답변을 하세요. 답변하셔야 진도 나갑니다. 문방구 주인은 악마지요. 문방구 주인이 하기 전에 먼저 문방구 주인의 논리가 내 안에 있는 거예요. 이걸 이기는 방법은 뭐냐? 간단합니다. 잡히면 되지. 이십육만 오천 원어치 갚아주면 되지. 못 갚으면 소년원 가면 되지. 가면 얻어맞겠지. 얻어맞으면 되지. 얻어맞으면 아파 죽겠지. 그 다음 마지막에 뭡니까? 죽으면 되지. 이게 해결책이에요. 그게 해결책인 거예요.

예수님 빼놓고 어느 누구도 악마에게 못 벗어난 거예요. 우사스러워서, 부끄러워서. 적어도 나는 선악을 안다는 자체가 선한 천사로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 선한 천사란 자부가 남들에게 너는 나쁜 놈, 악마의 앞잡이 그런 소리 듣는 것을 내가 용납 못하는 거예요. 뭘 느꼈기 때문에? 그걸 창세기 3장에서 이렇게 했어요. 수치, 부끄러움이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거예요.

얼굴 들고 못 다니겠다는 말이 있잖아요. 부끄러워서. 나는 이제 이 동네에서 이사 가야 돼. 부끄러워서. 어떤 집은 아들 사고 난 뒤에 대번 이사 갔어요. 부끄러워서 못 살아요. 저 집안은 저주받아서 그렇다고 할까봐. 인간은 부끄러움을 못 이기는 거예요.

부끄럽다는 말은 누가 누굴 지적한다? 남들이 나를 지적하는 것도 있지만 그 전에 누가 누굴 지적해요? 남이 욕해도 버티면 되잖아요. 그런데 못 버텨요. 왜? 남이 이야기하는 것과 평소에 내 안에 내 마음이 지적하는 것과 어찌 그리 똑같은지 지레 겁을 내고 있는 거예요. 사모님 말씀대로 죽으면 되는데, 그냥 죽으면 되잖아요. 예수님이 돌아가셨으니까 그냥 죽으면 되는데 그걸 할 자신이 없는 거예요. 내가 남한테 걸레 같다, 쓰레기 같다는 소리를 남이 하기 전에 내가 용서가 안 돼요.

주님은 우리한테 지시합니다. 네가 너를 구금하라, 체포하라. 범인은 네가 범인이다. 하나님이 구원하시는데 범인은 누구라고요? 누가 하나님의 방해물이라고요? 내가 방해물이에요. 그게 레위기 26장 1절에 “너희를 위하여” 자기를 위하여 사는 이게 범인입니다. 주의 일의 방해꾼이에요. 우리가 악마의 앞잡이입니다. 그 잘난 우리가.

이왕이면 선을 행하면 살고 악을 행하면 죽는다. 이게 거짓말이거든요. 그러나 이 거짓말 이외에는 우리가 아는 말이 없어요. 이 거짓말을 진리라고 우리는 장착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가보세요. 새순교회 말고 다른 교회에 가보세요. 전부 다 이런 인간들 악마의 아바타, 악마의 가면 쓰고 다 앉아있어요. 가면 쓰지도 않았어요. 악마를 탑재하고 다 앉아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 사이에 누가 더 의로운지, 누가 더 착한지 경쟁을 뭐로 비교하느냐? 누가 더 부자인가, 누가 집안이 행복하냐, 누가 우환이 적으냐, 작년에 누가 가정이 더 행복했는가? 그런 것들을 끄집어내서 누가 복을 받고 있는지, 아니면 누가 저주받고 있는지, 저주받고 있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 앞에 벌 받고 있는 거고 복 받고 있는 우리 집안은 분명히 하나님 보시기에 착하기 그지없다고 지금 복을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성경은 그것이 아니고 반대라고 보여주는 책이 바로 구약에 욥기입니다. 성경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상식에서 벗어납시다. 그런데 구약에서 문제는 이거에요. 말씀이 있고 우리가 따로 있어서 우리가 선+악으로 말씀에 다가가니까 결국 말씀을 지키는 목적이 뭐냐 하면, 내가 보다 악을 버리고 선을 얻기 위해서, 선을 얻어야 내가 복 받고 천당 가기 때문에 말씀에 있는 좋은 말씀과 나를 일치시키기 위해서 용을 쓰고 애를 쓰는 거예요. 나의 선행을 키우기 위해서, 내가 착하다는 것을. 착해야 복을 받으니까, 나쁜 짓하면 벌 받으니까. 내가 용서가 안 되니까 말씀으로 내가 선을 높여보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이 뭐가 문제냐 하면, 말씀이 지금 이 사람 속에 들어온 겁니까, 아니면 지가 다가간 겁니까? 이게 본인이 말씀으로 다가가서 얻을 것 얻고 다시 내 것 키우고 내 자랑거리 키우고 또 다가서서 또 키우고 하지요. 이게 바로 구약입니다. 구약의 특징은 말씀은 말씀대로 남고 나는 안 죽고 멀쩡하게 따로 남는 게 구약이에요. 그런데 약속의 땅에 말씀 차버리면 약속은 날아가 버려요. 멸망해 버립니다.

그 이유는, ①내가 여기 있고, ②말씀은 저기 있고, ③내가 그 말씀을 내 안에 담고, 마지막으로 ④나는 여기 있고. 1번, 내가 여기 있고 4번도 내가 여기 있지요. 그럼 2번, 3번은 뭡니까? 말씀은 저기 있고, 그 말씀의 좋은 걸 내가 정보를 중요한 것을 내 안에 장착하고 채택하고 거둬들이는 거죠. 이게 구약인데 구약은 결국 인간은 왜 망해야 되고 악마인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이 순서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인간들의 누굴 죽였습니까? 예수님을 살해했잖아요. 십자가가 그래서 중요한 거예요.

십자가가 왜 중요하냐? 십자가는 쇼윈도가 아닙니다. 그냥 보고 지나가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는 그 안에 들어가야 돼요. 다시 말해서 말씀의 완성자가 처음에 누구라 했지요? 예수님이죠.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버리는 겁니다. 들어와 버리면 우리가 지킬 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없으면서 뭐냐? 네가 하는 모든 선악적인 스케줄, 이 계획이 나를 죽이게 했다. 예수님을 힘들게 하고 아프게 했다. 따라서 섞자. 네 안에 내가 들어갈게. 섞어버리는 거예요.

섞어버리니까 그 다음부터 뭐가 일어나느냐 하면, 죽기를 무서워 벌벌 떠는 이것도 내 안에 있고 또 뭐냐 하면, 그것을 선악과 따먹은 악마의 모든 죄를 구원하기 위해서 낚싯대로 우리를 딱 걸어버린 예수님의 용서하심도 들어있는 거예요. 그래서 둘 중에 어느 걸 자랑하겠어요? 나는 이만큼 잘났다, 기도 잘한다, 헌금 많이 했다. 이게 아니라 절대로 나는 타고났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고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어요. 나는 안 고쳐집니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나는 죄인 중에 괴수에요. 이건 갈수록 나라는 인간은 나 밖에 모른다는 것이 절절하게 연세가 많아도 느껴져요. 지금은 연세 많은 사람 별로 없지만 나중에 팔십 넘어 보세요. 팔십 넘으면 완전히 전영록이에요. 전영록이란 가수 알지요. 또라이, 돌아이. 돌멩이 같아. 사람 마음이. 연세 많은 사람의 특징은 뭐냐? 돌멩이 같아. 이걸 경화증이라 합니까? 딱딱해지는 거예요. 씨도 안 먹혀요.

“어머니, 그만 고집부리지 마시고 요양원에 모시겠습니다.” 어머니 하는 말이, “내 집 놔두고 어딜 가노?” “어머니, 이러면 자식들 다 불효하게 만듭니다. 자식들의 힘듭니다. 어머니 하나만 이동하시면 자식들의 편하게 모실 건데 이러면 자식들 간에 싸움이 일어납니다. 이러지 마시고 요양원에서 모시겠습니다.” “못 간다. 내 집 놔두고.”

자, 내 집 놔두고, 아까 배웠잖아요. 내 집 놔두고, 라고 고집부리는 것은 인간은 단독적인 뭐가 있다? 단독적인 시간과 단독적인 공간 내 집. 내 추억이 있고, 어릴 때 내 모든 추억이 있는 지점이잖아요. 보세요. 현관에서 유리액자로 손자 돌 사진부터 흑백사진까지 붙여놨잖아요. 그 집 놔두고 요양원에 왜 가지요? 내가 죽어도 이 집에서 죽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식들 멀리서 사륜구동 차타고 촌까지 와서 반찬 해대고. 자식 다섯인데 지가 반찬 해대면 반찬 하는 그날부터 자식 하나가 단독자기 때문에 누굴 욕합니까? 5-1 나머지 넷을 욕하는 겁니다. “하여튼 형님은 싸가지가 없어.” 이런 식으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돌보지 않고. 내가 멀리서 서울서 여기까지 와야 돼?” 그때부터 드디어 이웃사랑 날아가 버리고 개판 돼버리지요.

인간은 안 고쳐집니다. 나 밖에 몰라요. 이건 부부도 예외가 없지요. 전에 이야기했는데 남편이 죽도록 고생해서 나이 칠십 넘어서 은퇴했는데 부인이 구박하는 거예요. 왜? 돈 벌어오라고. 칠십 넘었는데. 돈도 못 벌어오는 인간은 밥 먹을 자격도 없다. 돈을 벌어줘야 반찬이 있지 돈도 안 벌어주는데 무슨 밥을 달라하느냐, 이 염치없는 인간아, 라고 얼마나 구박을 하던지. 그동안 남편이 벌어준 건 주식해서 다 날려버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인간은 자기밖에 모릅니다. 이제부터 왜 그런지 그 점을 설명에 들어갑니다. 이건 아시겠지요. 성도가 오게 되면, 예수님의 말씀이 직접 들어와서 우리로 하여금 악마의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무서워 벌벌 떨고 남한테 비난 들을까봐 벌벌 떨고. 벌벌 떨면 떨수록 또라이가 되는 거예요. 전영록이 해야 되는데. 돌+아이. 완전히 돌처럼 자아가 딱딱하기 시작해요. 그만큼 인생을 살면 살수록 갈수록 자기를 철통같이 방어해요. 철통같은 방어는 국방부에서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철통같이 방어해요.

뭐만 민감하게 남는가 하면, 자식이 와서 내 집 잡히라고 하지 않을까. 요양원에 앉아서 그것만 생각하는 거예요. 첫째 왔다 갔지. 둘째는 언제 오나, 정기적으로 봉투에 얼마 넣고 오나. 이런 것. 내가 너한테 뭘 해줬는데 너는 왜 자주 안 오냐. 이것만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옆에 할머니한테는 우리 자식 잘한다고 칭찬하고. 며느리 자랑하다가 오게 되면 며느리 욕하고 가고 나면 옆에 할머니한테 며느리 자랑하고. 전부 다 내가 자식 다 키웠다는 자기 자랑 외에는 나올 게 자기 시간, 자기 공간 외에는 아무것도 나올 게 없습니다.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정리가 될 수 있느냐? 이제부터 어렵습니다. 땅이 두 종류입니다. 그냥 기존에 있는 땅이 있습니다. 물어봅시다. 땅 위해서 삽니까, 나란 인간을 위해서 살아요? 땅을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위해 살지요. 땅이란 내가 밥 먹고 살기 위해서 있는 게 땅이지요. 텃밭을 가는 것은 텃밭 위해서 하는 게 아니고 배추나 상추 먹으려고 텃밭 갈잖아요. 나를 위해서 하잖아요. 이게 이방민족의 땅입니다.

이방민족은 나라는 인간을 위해서 땅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가 1순위고 땅이 2순위에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땅이 1순위고 인간이 2순위입니다. 땅이 마음에 안 들면 다 나가. 다 내보내요. 이게 바로 레위기 26장 그 뒤에 쭉 나오는 이야기에요. “네가 만약에 이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면 이 백성에 쫓아내고” 땅이 우선이고 인간은 나중이에요. 그래서 땅에 뭔가 문제 있다면 인간을 없애버려요. 죽여 버립니다. 이건 이스라엘 땅이에요.

사실은 세 번째 땅이 있는데 이건 어렵기 때문 보류하고요. 첫 번째는 인간이 우선이고 인간이 밥 먹고 살리기 위해서 땅이 있다. 대지가 있다. 다른 말로 토지가 있다. 토지는 날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있다고 박경리는 에서 그렇게 봤어요. 일제시대의 그것을 다뤘습니다. 그런데 그건 이방민족이고요.

이스라엘에서는 바로 이스라엘이 땅을 위해서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혼자 사는 땅이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땅이에요. 하나님의 땅입니다. 이걸 약속의 땅이라고 합니다. 약속이 빠져버리면 살 수 없는 땅이에요. 참 희한하죠. 이게 굉장히 신기합니다. 여기 레위기 26장 3절에 보면,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지라”고 돼있어요.

그러니까 일기예보를 비롯해서 모든 것은 눈에 보이는 인간 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 사는데 접합한 땅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주인인데 거기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에요. 이게 천국이에요. 예수님이 주인이고 예수님이 천국을 만든 주인공이고 우리는 보탠 게 없어요. 내가 사는 여기에 너도 같이 살자, 하고 낚시 던져서 꿰서 강제로 끌어당긴 것이 뭐냐? 천국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은 나 위주가 아니고 예수님 위주지요. 나의 살던 고향과 달라요. 나의 살던 고향은 단독적인 나를 위한 땅이지만 천국은 그런 자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뭐가 어렵다는 말이냐? 이 땅이 없어져버려요. 2번 땅이 없어진다고요. 왜냐하면 땅은 뭐로 바뀌느냐 하면, 여기에 이불 덮였으니까 땅은 율법으로 바뀌겠지요. 율법은 예수님의 인격이라 했지요. 예수님이 이 땅에 있지 않고 어디로 올라갑니까? 하늘로 올라가지요. 하늘로 올라가게 되면 지상에 있던 율법도 예수님의 인격도 땅도 다 없어져버려요. 물론 교회도 마찬가지고. 하늘로 올라가니까. 하늘로 올라가는데 생기는 게 뭐냐?

제가 자꾸 뜸 들이는 이유가 있어요. 지금껏 제가 강의 중에 제일 어려운 대목에 여러분들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중심이 되면, 인간이 여기에 땅을 잡게 되면 여기를 안이라 보고 바깥 또는 밖이라 하잖아요. 이것은 땅 위에 있을 때는 내가 사는 아파트, 내 집은 안에 있고 그 외는 바깥이다. 그것이 성립이 되는데 이 땅 자체가 둘둘 말려서 없어져버리면 인간의 밖이라는 것이 성립이 안 돼요.

안과 밖이 성립되는 것은 이 세상 자체를 성공적으로 빠져나간 분에 의해서만 안과 밖이 돼요. 이걸 사도 바울의 편지에 보면 예수 안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예수 안은 인간이 내 안에 있는 식으로 갈 수 없어요. 성립이 안 돼요. 왜? 땅이라는 조건 하에 성립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걸 어떻게 설명하느냐? 그림을 그려보겠어요. 저는 이걸 좋아합니다만 도넛이에요. 수학 위상학적 용어로 토러스라 하는데 쉬운 말로 도넛. 도넛이 있는데 여기에 개미가 있다고 합시다. 이 벌레는 아무리 평생을 돌아다녀도 도넛 위를 돌아다니겠지요. 이것이 뭐냐? 표면존재. 이 개미는 도넛이 없으면 살 수가 없어요. 평생을 기어 다니니까. 계속해서 기어 다니면서 이 땅에서 자기가 먹고 살아야 되니까.

공부한 것 다시 복습해봅시다. 먹고 산다. 살려면 뭘 해야 산다? 선해야 돼요, 악해야 돼요? 선하면 살고 악하면 죽는다. 벌벌 떠니까. 선하기 위해선 뭘 해야 되겠어요? 하나님 말씀대로 섬기고 예수 믿고 하여튼 할 짓을 다하지요. 그렇잖아요. 1~4번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다하는 거예요. 내 가족이 살기 위해서. 사실은 내가 살기 위해서예요. 내 가족도 날 욕하면 빠이빠이에요. 내가 살기 위해서 모든 짓을 다하는 거예요.

여기서 내가 착하다는 티를 내야 되겠지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선하다면 그냥 선한 게 아니에요. 무슨 증거가 있어야 되지요. 그 증거가 뭐라 했습니까? 하는 일이 만사가 형통하고 잘되고 부자 되고 건강하고 가정이 행복하고 다복할 때 우리는 선하다고 자부할 수 있겠지요. 장담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하는 일마다 안 되고 집에 불나고 부도나고 이러면 주여, 뭔가 이상합니다. 몸이 아프다든지 하면 안 되겠지요.

여러분, 스트레스를 왜 받습니까? 스트레스를 내가 살려고 받는 거예요. 내가 착해서 욕 얻어먹지 않고 살겠다는 게 엄청난 스트레스에요. 스트레스 안 받으려면 돈 수십 억 가지고 자연인, 산 속에 갈 수밖에 없어요. 가끔 읍내에 나와서 돈 찾아서 쓰는 것, 그게 소망이에요. 돈 많이 벌어서 노후에 가정이고 뭐고 혼자 사는 것. 산 속에 집 지어놓고, 라는 프로그램에서처럼 남자들의 로망이라니까. 돈 들고 혼자 살며 지하고 싶은 대로 사는 거예요.

어느 날 설교에서 그런 이야기했어요. 남자들의 어떤 여자를 원하느냐 하면, 여자는 돈 벌고 남자는 그냥 취미 생활하는 것, 이게 남자들의 로망이거든요. 여기는 그런 분이 안 계시는 모양이네. 반응이 없는 걸 보니까. 그냥 노는 거예요. 노는데 돈이 필요해서 돈은 니가 벌고 놀긴 내가 놀고. 그게 제일 좋은 아내에요. 그래도 잔소리하지 않는. 그걸 줄이면 잔소리하지 않는 여자, 최고의 여자에요.

이게 이 땅에서 계속 내가 선한 걸 증명하기 위해서 부자 되기 위해서 애를 쓴 사람은 도넛 위에서 한다. 이게 땅이거든요. 땅인데 자기는 편평한 땅이라고 여겼지요. 안에 구멍이 뚫렸다는 걸 인간들은 상상도 못했지요. 이게 뭐냐 하면, 비어있는 곳이 구약의 성소입니다. 성소는 인간이 못 들어가요. 못 들어가는데 그 곁에서는 살 수 있어요. 이게 이스라엘 구조에요. 제사장만 1년에 한 번 들어가고 다른 사람은 못 들어가요. 들어갈 수 없어요.

하나님 사는 구역 따로 있고 인간이 사는 구역 따로 있는데 이스라엘입니다. 그 안의 성소의 단일성과 영구성, 그 시간도 안식일을 반복하면서 영원하다고 했지요. 1234567, 1234567 계속 돈다 했지요. 시간이 흐르지 않아요. 그냥 뺑뺑이 도는 거예요. 단일화로 봐야 돼요. 그것을 성소에 하나님이 계심으로서 하나님 자기의 계획을 스스로 이뤄나가시는 겁니다.

이 성소가 구멍이거든요. 비어있단 말이죠. 비어있다는 말은 비어있을 때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의 완결성, 모든 단일성이 완성이 되면 이 땅에서 빌빌빌 다니다가 이렇게 구멍 속으로 와버려요. 그런 사람은 더 이상 평생을 살아보겠다고 두려워하면서 착한 사람 되겠다고 노력할 필요 없어요. 그냥 같이 동행해서 들어와 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인간도 그게 없어요. 모든 이 세상은 하나님, 하나님 하지만 결국은 내가 복 받고 선한 사람 되어 죽어서 천당 가고 이런 것을 미래에 다 보장받고 다 나를 위해서 미래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다보니까 최종적으로 예수님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 되는 거예요. 내가 돼버리면 내가 있는 곳이 안이 되고 밖은 바깥이 되지요. 이런 것은 성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건 마귀 들린 인간들이 타고난 것이기 때문에 성소라 할 수 없어요.

성소는 이 안이 비어있습니다. 비어있는 구조를 주께서는 이걸 영구화, 고정화시켜버린 거예요. 동결시켜버린 겁니다. 그러면 여기는 뭐가 되느냐 하면, 천국이 되겠지요. 이게 천국이 되고 바깥은 그야말로 밖이죠. 주 밖에. 이건 주 안이고. 예수 안에서 구원받는 거예요. 들어오려면 어떻게 들어오느냐? 예수님께서 여기 있다 들어올 때 죽어서 들어왔습니다. 희생물로 들어왔거든요. 따라서 여기 있는 사람이 예수 안에 함께 있으려면 예수님과 함께 죽어서 들어와야 돼요.

이 그림이 어렵고 이제부턴 쉬워요. 예수님과 함께 죽는다는 말은 무척이냐 쉽습니다. 왜 쉬우냐 하면, 예수님과 죽으라 하니까 어떤 사람은 채찍으로 자기를 때리고 어떤 사람은 굶고 어떤 사람은 선교사 간다고 난리고 철야하고 금식하는데 그건 자기를 살리는 것이지 죽이는 게 아니에요.

자기를 죽인다는 것은 막 사는 것을 의미하는 거예요. 팔을 뻗었다. 장난감 쥐었다. 걸리면 소년원 가겠지. 그러면 난 집에서 쫓겨나겠지. 하지만 그 마지막은 뭐냐? 그렇게 비리비리 살다가 죽겠지. 할 때 막 산다는 것은 이미 내가 죽은 자로 산다. 이걸 더 간편하게 하면, 죽음을 드러내는 식으로 산다. 내가 사는데 뭘 사느냐? 나는 죽음을 드러내는 식으로 산다. 죽음으로 사는 이유가 있어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 조상이 따먹었다. 따라서 선악을 안다는 자체가 이미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죽은 상태인 것을 드러내는 거예요.

그러면 선악으로 산다는 것은 뭡니까? 그야말로 막 사는 것을 의미하는 거예요. 이미 주님한테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내가 왜 내 힘으로 구원되지 못하는 걸 보여주려면 나는 선과 악 사이에서 매일같이 내가 요동치고 있으면서 그걸 겁내고 발발 떨며 살아가는 거예요. 내가 행동했을 때 이 행동이 옳았을까 틀렸을까, 바보, 바보, 병신, 병신. 그런 실수를 왜 했을까? 그런 실수를 왜 했을까 후회하고 반성한다고 그 다음부터 그런 실수를 안 합니까?

이건 실수가 아니고 자기의 본질이에요. 실수란 말하지 마세요. 자기의 본색이 드러난 겁니다. 본색이 본색대로 살 뿐이에요. 죽은 자가 죽은 자답게 사는데 그게 뭐가 흠이 됩니까. 문방구에서 물건을 훔치게 되면 나는 그것이 정말 부끄럽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자체가 내가 정상이 아니고 악마에 사로잡힌 자란 뜻이다. 따라서 물건을 훔치느냐, 안 훔치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내가 훔치고 싶다. 안 훔쳐도 괜찮아요. 저 물건이 탐난다는 자체가 그 순간 우리가 기뻐하는 것은 뭐냐? 주여, 내가 죽은 자 맞습니다, 라는 걸 아는 기쁨이란 말이죠. 물건을 훔치라 했다고 괜히 남 탓하지 말고.

여러분들이 사십 대나 오십 대 동창생 만날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좀 산다고 여유 있다고 부부동반 골프모임, 여기와는 아무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부부동반 일본 온천 가기 그런 모임 있잖아요. 부부동반으로 갈 때 남자들이나 여자들이나 늘 신경 쓰이는 게 있어요. 내 아내가 다른 여자보다 얼굴이 못 생겼다든지 특히 얼굴은 어느 정도 따라가는데 몸매가 박스형이라든지 밑바닥이 안정돼있다는 뜻이에요. 든든하게. 이럴 때 데려가야 될지 말아야 될지 친정이나 갔다 오라고 이런 식으로 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왜 내 아내가 몸매 좋은 다른 부인들보다 부끄럽게 느껴지느냐 하면, 그게 선과 악과 관련돼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부부동반 골프모임, 주께서 주신 시추에이션, 상황을 통해서 내가 죽어있다는 것을 내가 이미 선악적으로 약간에 탐을 내고 갈등을 일으키고 주저한다는 자체가 내가 죽어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는 멋진 기회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거예요.

우리는 사랑의 콜센터 직원입니다. 주께서 선악과는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우린 콜센터 여직원이 되어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그걸 마음껏 이 세상을 향하여 바깥을 향하여 외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내를 데리고 다녀야지요. 이게 막 사는 거니까. 그래 내 아내, 니 여자보다 못 생겼다. 어쩌라고, 이런 식으로 이게 막 사는 겁니다. 본래 우리가 이렇게 생겨먹었어. 이렇게 태어났어. 태어난 거야. 그렇지 여보? 이러다가 여보한테 잔소리 듣고 아내한테 확인할 필욘 없고요. 눈치 없이. 본인의 신앙과 관련돼있기 때문에 그냥 막 사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한 여름 밤에 풀숲에 놀러가잖아요. 작은 길에 후레쉬 들고 가면 뭐가 달려듭니까? 나방하고 온갖 벌레, 모기, 파리들이 다 달려들지요. 이 세상이 비어있는 게 아니에요. 선악으로 가득 차 있어요. 인생을 살아보면 부딪치는 모든 문제가 선악 문제입니다. 우사스러워냐, 남한테 부러움을 사느냐. 그 문제가 매일같이 살아도 부딪쳐요.

그게 내가 남한테 욕 얻어먹기 싫어서 철저하게 철통같이 자기를 방어하고 사수하다보면 아까 뭐가 된다 했습니까? 인간은 또라이, 돌 되지요. 그게 연세 많은 사람의 특징 아닙니까. 평생을 자기 잘난 맛에 살았고 자기의 허점과 약점을 누가 지적하고 자식 욕하면 용서하지 않는 것, 그게 습관이 돼서 나 이렇게 잘났다고 계속 가는 거예요. 그래놓고 십자가 전하면 나, 십자가 알아. 교회를 몇 년 다녔는데 십자가 모를까봐. 이런 식으로 버티는 거예요. 그게 바로 죽은 거예요.

다시 합니다. 선악을 안다는 자체가 이걸 못 고칩니다. 그 자체가 죽은 거니까 죽은 것을 죽음으로 드러내주는 것이 콜센터 위층에서 윗분들이 결정한 사항이에요. 이 땅에서 선악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은 지금도 취소되지 않는다는 사실, 성경에는 모든 말씀이 나를 죄인으로 만든다는 그 사실을 우리 생을 통해서 그걸 체득하고 체험하고 그걸 뿜어내는 거예요.

그런 여유, 그런 자유. 막 사는 자유. 이미 죽었는데 이미 죽은 것을 죽어줘야 되지 죽어있는 게 산다는 것은 억지 아닙니까. 그러니까 죽은 인간이 돈 벌고 살려하니까 너무나 뻔해 보이는 억지고 위선인 거예요. 돈 있다고 삽니까? 지옥 가지요. 바르게 산다고 사람들은 칭찬할지 모르지만 우리 일가친척은 칭찬하지요. 예수 믿더니 인간 됐구나. 그건 인간 될 수 없어요.

그냥 인간 바뀌었다면 전에는 내가 죽은 인간이란 걸 몰랐는데 십자가 앞에서 이왕 내가 주님 보시기에 주님께서 안 받아주는 지옥 갈 인간인 것을 깨달을 때 주님의 낚싯대가 유효한 겁니다. 낚싯대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 희생 때문에 네가 살았지 네가 교회 충성한다고 구원받는 것 아니다. 네가 행동에 조심한다고 해서 대인관계가 원만하다고 천당 가는 그런 건 없다.

그런 걸 알려면 네가 세상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친한 친구들, 직장 동료들, 주변 일가친척들 만나봐라. 전부 다 그 사람들은 네가 복음을 모를 때 사고방식을 그대로 날파리처럼 계속 부딪치게 될 겁니다. 전에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니가 잘났나. 나도 잘났다. 이렇게 살았는데 이제는 복음 알고 어떻게 산다고요?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래 니 잘났다. 나 못났다. 난 못난 재미로 산다.

왜 그런 배포, 그런 배짱이 없습니까? 바로 이 세상에는 율법의 세상이고 말씀의 세상이에요. 이 세상은 이미 멸망당하도록 돼있습니다. 둘둘 말이에요. 세상은 말려서 불타버립니다. 이 사악한 세상에서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같은 선악과끼리 비교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죽은 놈들인데. 말 좀 심하게 했다.

죽은 자들인데 죽은 분들인데 이미 지옥 갈 분들인데 그 사람들에게 잘해주세요. 칭찬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훌륭하다고 맞춰주세요. 비유 맞춰주면 돈이나 생깁니다. 속으론 니가 십자가 복음을 알아? 나는 주님의 희생을 알아. 얼마나 감사한지. 그래서 복음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어떤 것도 무섭지 않아요. 어떤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신발을 신고 살잖아요. 이것부터 우리가 문제 있다는 뜻이에요. 무슨 신발 신고 삽니까, 옷을 입어요? 이건 원래 인간 아닙니다. 우린 이 땅이 아니고 새로운 땅, 주님 가신 그 땅이 영원한 새 생명의 천국인 것을 여러분들이 성령으로 관계있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온 천지가 말씀에 부딪치고 또 악마의 얼굴들에 부딪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에는 그들의 정상이고 우리가 비정상인 줄 알았는데 성경을 보고 이스라엘 역사를 보니까 진짜 정상인 것은 주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했다는 사실 그것만이 유일한 현실인 것을 단일한 현실인 것을 이제는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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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2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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