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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1장 71절 (존재의 흐릿함) 200407a-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1장 71절 (존재의 흐릿함) 200407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1장 46절부터 보겠습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라고 되어 있지요. 찬양이라는 말이 나오고 기쁨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찬양할 수밖에 없고 기쁨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게 뭐 때문에 그렇냐 하면 이것 때문에 그래요.

인간의 그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예언이 박차고 바깥으로 나오게 되면 이게 예언이 바깥에 나오면서 기쁨이 되는 겁니다. 기쁨이니까 자동적으로 나로 인하여 기쁜게 아니니까 누굴 위해서 기쁘냐 하면은 찬양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예언이 인간을 박차고 나온다. 상당히 신기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박차고 나올 수가 없지요.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인간이 인간을 박차고 나올 수 없는 이유가 뭐냐 하면은 인간에게는 뭐가 있느냐 하면은 부러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어린애가 신데렐라 동화를 보고 백설공주를 봤을 때 그 어린애 눈에 뭐가 들어오겠습니까? 이게 들어오겠지요. 부러운 것. 아 나도 저렇게 드레스 입고 싶다. 이쁘고 싶다. 부러운 것이 들어오죠. 이 부러운 것은 뭐냐 하면은 부러움의 특징은 나로부터 시작한 것이 도로 나한테 귀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부러운 것은.

남 줄려고 부럽지는 않잖아요. 내것 만들려고 부럽지요. 이게 소유 또는 소유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유하는 것. 바깥에 있는 좋은 것이 나에게 들어와서 내가 좋아지는 것 이게 인간이 살아가면서 일상으로 하고 있는 거죠. 그런 인간을 박차고 나온다.

인간이 인간을 박차고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없지요. 못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인간이 인간을 박차고 못나온다는 말은 이 말이 맞다고 한다면 인간에게는 뭐가 안 나온다는 말입니까? 기쁨이 안 나온다는 말입니다.

잠시 기뻐할 수 있지만 영원한 기쁨은 안 나오고 기쁨이 안 나온다는 말은 자기한테 자기 자신한테 굉장히 후한 점수를 주지 누구한테 전적으로 찬양하지는 않지요. 하나님께 찬양하지 않습니다. 찬양이라는 말을 아주 어렵게 설명해드리겠는데 찬양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자기 죽음도 개의치 않는 상태를 찬양이라고 해요. 자기 죽음도 개의치 않는 상태를 찬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죽음을 챙기려고 한다면 여기는 찬양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뭐가 나오느냐 하면 공포가 나오지요. 두려움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노래를 불러도 자기 위로 삼아 부르는 것은 찬양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해서 저는 찬양을 둘로 나누고 싶네요. 자기 생각이 없는 것, 자기 생각이 없는 찬양 이게 정답이겠지요. 그 다음에 두 번째로는 자기의 괴로움과 위로받고 공포로부터 해방되려고 스스로 자기에게 자기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것.

너무 힘드니까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마음이 너무 괴로우니까 찬양이라도 해서 뭔가 해소를 할려고 하는. 자기 자신에게 작업을 개시하는 것. 작업을 제공하는 것. 자신을 가지고 작업을 벌려 나가는 것. 그런 찬양 이거는 뭐 100% 가짜입니다. 잘못된 거에요.

다시 강의 처음부터 다시 하게 되면 누가복음 1장의 마리아는 지금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예언이 찬양형식으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말하기를 예언 시작하면서 기뻐한다고 이야기했지요.

자, 이렇게 기뻐하고 찬양하는데 이렇게 기쁨, 찬양이 되려면 예언이니까 인간을 박차고 나온다고 했습니다. 좀 더 상세히 들어가겠습니다. 인간을 박차고 나온다는 것은 인간은 항상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면 부러운 것을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이 부러운 것을 자기 힘으로 채우려고 해요. 이것을 다른 표현으로 하게 되면 ‘자기만족’ 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정리하면 인간은 어떻게 산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산다. 그럼 자기만족을 위해 살게 되면 여기에 대한 뭐 하나님께 찬양을 한다든지 기도를 한다든지 하는 모든 행위도 결국은 어디고 귀속되느냐? 어디로 돌아오느냐 하면은 자기만족을 위한 수작에 불과한 거에요. 자기만족을 위한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이죠.

애씀과 노력 자기가 자기한테 작업걸기. 작업걸기가 적당하다. ‘작업걸기’. 찬양을 하든 기뻐하면서 손뼉을 치든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거에요. 그런데 제가 여기 계속 강조하는 것은 박차고 나온다는 거에요. 인간은 박차고 나오려면 자기만족에도 이걸 자기만족마저도 이걸 제껴버리는 거에요. 자기만족에 신경 쓰지 않는 겁니다.

자기 박차고 나온다라는 경우를 어떤 식으로 우리가 아느냐 하면은 이걸 우리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사전에. 지금 누가복음 1장을 보면서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가지고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마리아의 임신은 마리아가 미리 예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에요. 이게 중요한 거에요. 예측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거에요.

인간이 예상하고 예측한다는 것은 그냥 예측하는게 아니고 예상하는게 아니고 어느 것이 나에게 가장 만족스러우냐를 내다보면서 거기 적합한 미래를 꿈꾸면서 예상하게 되어 있어요. 예측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인간이 박차고 나왔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이런 이런 일은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은 기쁨이 되고 진정한 찬양, 자기 생각, 자기 죽는 것도 그것도 신경 안 쓸 정도로 그 정도로 찬양이 되려면 이것은 그 사람에게서 예언이 그 사람을 통해서 박차고 나오는 거에요.

그래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임신했다도 되고 같은 말로 할게요. 마리아는 예수님을 임신했다. 누가복음 1장에서 계속 나오잖아요. 임신했다. 같은 말이 뭐냐? 마리아는 예언을 임신했다. 임신했다는 말은 예언을 몸에 심기워졌다. 심기워졌다. 그것이 뭐로 나온다? 하나님에 대한 예언과 찬양으로 나오는 거에요.

그냥 나왔다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인간을 박차고 나온다고 설명해야 됩니다. 앞에 인간을 집어넣어야 돼요. 인간을 박차고 나온다. 이렇게 인간을 설정해야 되고 박차고 나온다는 그런 액션도 같이 이렇게 연결시켜줘야 돼요. 왜냐하면 인간은 그냥 곱게 사는 것이 아니고 부러운 것을 자기 것으로 담아내서 자기만족에 빠지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결국은 무엇과 무엇의 투쟁이 되겠습니까? 인간의 자기만족과 그리고 누구의 만족? 하나님의 만족과의 갈등 또는 투쟁, 다툼 이런 것이 하나님의 예언이 등장하는 현장에서는 계속해서 이루어질 거에요. 내 만족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만족이냐.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내 만족입니까? 하나님의 만족입니까? 살아가는게. 이렇게 보게 되면 이 논리가 별 하자 없이 보일 겁니다. 하자 없이 보이면서 여기에 대해서 동의하고 싶지만 칠판 다 지우겠습니다. 여기에 동의하고 싶지만 뭔가 꺼림칙한게 우리 마음에 들을 수가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결국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의 도구로 사용했다 이 말밖에 안된단 말이죠.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도구로 사용해버리면 인간 고유의 것은 뭐냐? 인간은 뭐냐 하는 겁니다. 자, 인간은 뭐냐? 인간 고유의 것은 뭐냐? 그럼 ‘나’라는게 없잖아. 나는 왜 있느냐 하는 그런 허망감이 들 수 있단 말이죠.

그럼 인간은 성경에서 뭐로 보느냐 하면 그냥 조용히 왔다가 그냥 조용히 사라지는 겁니다. 이 내용이 어디 주로 나오느냐 하면은 이게 바로 전도서에 주로 나옵니다. 저는 오늘 제목을 여기서 찾겠습니다. 제목은 뭐냐? 존재의 흐릿함 또는 흐릿한 존재. ‘존재의 흐릿함’.

존재가 흐릿하다고 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이 파란 글씨가 흐릿하지요? 이게 오래 되서 흐릿할 거에요. 그처럼 인간의 존재는 흐릿해지게 되어 있어요. 그냥 요란스럽게 태어나더라도 결국은 흐릿하게 희미해져가면서 소멸해가는 겁니다.

그러면 이 말은 너무 허무주의적이지 아니냐 하는데 존재의 흐릿함이라는 이 내용과 같이 보면 뭐냐 하면 ‘예언의 뚜렷함’. 두 가지 제목 가운데 같은 내용이지만 제목 가운데서 예언의 뚜렷함 보다는 존재의 흐릿함이 저는 그렇게 이것이 더 와닿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예언의 뚜렷함 하면 존재도 뚜렷한데 거기에다가 덧붙여서 예언의 뚜렷함 이렇게 오해할 소지가 있어요. 그런데 예언이 뚜렷해진다는 말은 오히려 반대로 그동안 ‘나’라는 것이 그동안 너무나 내게 강렬하잖아요. ‘나’라는 게.

하여튼 24시간 우리한테 ‘나’라는 것이 너무 강렬해. 너무 강렬한데 그건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결국 같은 말은 뭐냐 하면 예언이 반대로 예언이 흐릿하게 무시했다는 그런 무시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우리 자신이 너무 강렬하니까 예언의 뚜렷함을 감추면서 살아온 겁니다 우리가. 따지고 봅시다. 그냥 조용하게 왔다가 조용하게 간다.

자, 예를 들어서요. 제가 어느 단체를 이야기할 테니까 이 단체가 어떤 단체인가 보세요. 어떤 사람이 80세 된 인간이 있었는데 자기를 교주로 따르는 사람이 35만명. 자기를 추앙하는 사람이. 35만명. 재산이 5천억. 어떻습니까?

자, 아까 배운거 써먹겠습니다. 80세 넘은 사람이 이름이 이만희라고 합시다. 이만희. 같은 이씨 집안인데 이만희가 자기를 추종하는 자기 팬클럽이 35만명. 이거는 그냥 팬 정도가 아니고 완전히 교주로 여기는 35만명. 성령 다음으로 오는 보혜사라고 추종하는 35만명의 추종세력과 알려진 것만 5천억이 되는 재산을 가졌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이만희라고 본인이라고 여겨봅시다. 이게 좋습니까? 이거 자기 덫에 빠진거에요. 왜 35만명을 조사해보면 아까 나왔던 원리입니다. 부러운 것이 있었던 거에요. 부러운 것. 누가 이렇게 뭐 35만명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가 이렇게 수천명 목사가 됐다.

그러면 신학교 간 사람들은 그게 다 부러운 거에요. 나도 언제 저렇게 조용기처럼 신자가 많아지는가. 나는 큰 교회의 당회장으로서 존경받으며 설교하게 되면 아멘 소리 들리는 그런 멋드러진 설교를 하는가. 이게 부러운 거에요.

부럽게 되어버리면 뭐가 되느냐 하면 존재가 흐릿해지는 것이 아니고 존재가 뚜렷해지면서 예언이 흐릿해져버려요. 이거는 찬양도 아니고 기쁨도 아니에요.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게 인간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전도서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마치 물이 그냥 여기서 저기서 흐르고 바람이 이리로 저리로 흐르다가 나중에 흘렀나? 뭐 불었나? 관계없이 소멸되는 것처럼 인간은 그냥 소멸되기 위해서 태어나는 거에요.

그래서 소멸된다 없어진다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점차 점차 흐릿해진다. 이걸 더 흐릿하게 써야 돼 사실은. 너무 뚜렷해. 존재가 흐릿해져 버려야 돼요. 언제 누가 있었는지 할 정도로. 그런데 그 존재 흐릿한 중에 한 사람이 누구냐? 오늘 본문에 누구라고요? 마리아에요.

마리아가 존재가 흐릿해져야 돼요. 그리고 마리아는 그냥 보통 여자 보통 사람 가운데 한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 누가 임신했다고요? 예수님을 임신했지요. 천지 창조주가 임신되어있다 이 말이죠. 이만희 정도가 아닙니다. 재산 5천억 정도가 아니에요. 예수님을 임신해버렸어요.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예언이 임신된 겁니다. 그럴 때 마리아가 나오는 존재를 굉장히 중요한데 여러번 반복합니다만 다시 크게 쓸게요. 존재를 박차고 이거 ‘박차고’ 갑자기 이 박차고를 제목하고 싶네. 존재를 박차고 나올 때 뭐가 되느냐하면 이게 기쁨이 된다는 거에요. ‘기쁨’.

어느 정도 기쁨 된다 했던가요? 내 죽음도 개의치 않을 정도로. 왜? 내 존재는 흐릿한데 뭔가 여기에 붉은 걸로 여기 또렷한 것이 나타났어요. 이게 뭐냐? 예언이다 말이죠 ‘예언’. 흐릿한 존재가 그냥 흐릿해도 돼요. 그냥. 흐릿하게 살다 늙어 할머니 돼서 죽어도 좋아요.

되는데 이 처녀에게 갑자기 또렷한 예언이 등장한 겁니다. 예수님은 예언의 완성이고 예언 자체이고 예언을 주시는 분이고 그렇죠. 예언이 나타나버렸어요. 예언이 나타나면서 동반되어서 나타나는 게 뭐냐하면 마리아 입에서 기쁨이 나오고 뭐가 나왔다? 찬양. 찬양이 뭡니까? 다 주께서 홀로 하셨습니다. 주께서 혼자 하셨습니다.

그러면 찬양이 주께서 홀로 하셨습니다 되어 버리면 그럼 마리아 존재는 뭐가 돼요? 찬양을 보여주는 기쁨을 보여주는 증거물로 하나의 수단이 되는 겁니다. 그냥 흐릿하게 살아도 무상하게 무의미하게 살아도 괜찮아요. 살아도 괜찮은데 하나님께서 딱 마리아를 붙잡아서 뭘 삼았다?

예수님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한 겁니다. 남들이 보기에 마리아가 복 받았다 하지만 지금 마리아 본인은 내가 이정도야 그런 생각 가질 여유조차 없어요. 처녀가 애 낳는데 뭘 이정도겠어요. 적어도 이만희처럼 35만명 정도 되어야 되거든요.

여기서 아까 중요한 점 다시 한번 중요한 점 언급합니다만은 하나님의 기쁨과 찬양이라고 하는 것은 전제가 뭐라고 했어요? 자기 죽음조차 개의치 않다 이렇게 했지요. 만약에 여러분 가정에 엄마 아빠 있는데 딸이 신천지에 빠졌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지금 신천지에 빠진 애들의 특징이 뭐냐? 기가 세요. 걔들은 존재가 흐릿한 게 아닙니다. 악마가 반대로 나가. 악마는 예언이 없어요. 이미 악마의 힘이 지배하기 때문에 예언은 없고 악마가 득세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존재의 흐릿함이 아니고 존재의 뚜렷함, 나는 무조건 십사만 사천 함께 해가지고 거기에 당선돼가지고 천당가겠다라는 존재의 뚜렷함만 쥐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그 엄마가 그 딸에게 어떻게 해야 되느냐? 딸에게 쥐어패야지요. 이게 뭐냐 하면은 엄마의 기가 세되 어느 정도 세야 되느냐 하면 애가 갖고 있는 기보다 더 세야 되는 거에요. 자식에게 휘둘리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어떤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쫌 이렇게 고집을 부렸단 말이죠. 오냐오냐 해주니까 지 잘난 체 하네. 엄마는 그 딸한테 더 세게 나오는 겁니다. 더 세게. 그것보다 더 세게 나오니까 딸이 꼼짝도 못해.

더 세게 나온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바로 나의 죽음, 엄마 자존심부터 해가지고 엄마 죽음, 나의 죽음부터 개의치 않고 예언대로 예언이 뭐냐 하면 진리거든요. 진리가 뭐보다 세다? 죽음보다 세다. 지금 그 이야기하려고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겁니다.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임신을 시켰잖아요. 그러면 마리아한테는 예수님이 임신이 되고 오늘날 우리한테는 성령이 예수님의 영 그 영이 영으로 오나 육신으로 오나 마찬가지에요. 예수님을 임신하는거나 마찬가지에요.

성령이 우리한테 왔다면 이건 뭘 뜻하느냐 하면은 네가 마리아라는 뜻이에요. 마리아의 뜻은 뭐냐 하면은 내가 원하지를 않았어요. ‘나’라는 존재를 박차고 나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벌써 다 잊어버렸지요.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산다고요? 자기만족에 살아요.

그 만족은 어떻게 한다고요? 주위의 눈에 부러운게 있다고요. 백설공주, 신데렐라. 뭔가 부러운게 있고 그 부러운 것을 나한테 내가 소유함으로써 약간의 자기만족대로 사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존재가 흐릿해지는 것이 아니고 존재가 뚜렷하지요.

뚜렷하게 되면 뭘 잊어버리게 되느냐 하면은 인간은 그냥 조용히 왔다가 그냥 조용히 사라진다는 이 전도서의 사실, 하나님의 말씀의 사실이 완전히 묻혀버리고 천하 이 이만희처럼 자기가 뭔가 이 땅에서 칼을 휘두르고 대단한 영웅이 되고 추종세력이 많고 돈도 엄청나게 벌어야 그게 나다운 줄로 생각하는 거에요.

어떤 TV프로에서 신천지 비판하면서 TV에서 프로를 만들었는데 신천지 비판하는 프로를. 제가 보기에는 같잖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일단 공중파가 아니고 뭐 케이블이든 공중파든 TV에 미디어로 나온다는 말 자체는 그들은 전부다 무슨 류냐 하면 이만희 류거든요. 이만희하고 같은 종류에요.

이만희와 같은 종류가 이만희를 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그 프로에 어떤 신천지 있다가 빠져나온 어떤 청년이 한 서른살 좀 더 되보이는 서른다섯살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나와서 하는 말이 나는 이만희에게 3년동안 빠졌다가 나와서 이만희가 이런 단체라고 거기서 지금 고발하고 있는 거에요.

그런데 그걸 듣고 있던 패널들이 패널들 외국사람도 있고 한국사람도 있고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나는 무교인데요. 세상에 무교가 어디 있어요. 무슨 영국청년이 나는 무교인데 궁금한게 있는데 묻습니다 하는데 아무리 이만희를 까고 이만희를 비판해도 본인이 뭔가 이만희를 비판하는 소리를 듣고 있는 본인이 뭔가 부러운게 있고 되고싶은게 있고 그것이 자기인생을 한번 살았으면 인생을 그냥 조용히 보내기 싫다는 거에요.

내가 대만족되는 뭔가 나 여기 있다하는 영웅심 자랑하고 싶은 그런 욕망이 있는 채로 이만희를 까고 있고 비판하고 있으니까 그게 무슨 비판이 되겠습니까? 그 35만명이 바보들이 아닙니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을 이만희가 미리 땡겨서 됐으니까 내가 여기 조직에 이 조직대로 가담하게 되면 나도 이만희처럼 이런 재산과 명예를 얻을 수 있고 나중에 죽어서 천당 갈 수 있다. 그런 기대를 갖고 올게 아닙니까.

그게 뭐냐? 존재의 뚜렷함이에요. 존재의 뚜렷함. ‘나’라는 존재. 나를 조용히 보낼 수 없다는 거에요. 약이 올라서. 이게 마귀들린 거에요. 마귀들린 자가 마귀를 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죠. 모든 인간이 죽음을 못 이깁니다. 죽음을 못 이긴다는 진정한 기쁨과 진정한 찬양이 안된다는 거에요.

나는 무교니 나는 종교가 없다하는 인간에게 그럼 왜 삽니까 물어보게 되면 결국 나 이렇게 나 이런 인간되고 싶습니다 그게 이만희야. 네가 되고 싶은 그게 이만희였어 그게. 그게 네가 까고 있는 이만희라고요. 인간의 욕망이거든요.

그게 종교적이든 뭐든 이게 과학적이든 마찬가지에요. 이만희 신천지에 들어갈 때 빠져들어 갔다고요? 그러면 내가 신천지 들어갈 때 무슨 마음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그 방송에서 이야기해야 되지 않습니까? 속았다는 거에요. 속기는 뭘 속아요. 본인이 노림수가 있어서 들어갔지요.

사기 당한 사람이 그냥 사기 당합니까? 자기가 원하는게 있으니까 사기당하지요. 그리고 거기서 빠져나왔다. 빠져나오면 사기 안 당합니까? 적어도 그 프로에 나와서 신천지를 까려면 신천지가 나쁘다고 까려면 뭐 신천지 이단이라고 이단 사이비의 차이점 여러가지 이야기하는데 까려면 신천지만 까면 안 되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방송국부터 그 피디부터 해가지고 그 인간들까지 전부다 똑같다는걸 이야기해야지요.

뭐 그렇게 이야기하면 방송 틀어주지도 안겠지만. 이게 생방송이 아니고 편집한 방송이라 그걸 다 잘라내겠지만 어쨌든 세상 사람 보기에 마리아도 이단입니다. 마리아도 이단이고 예수님 임신했다고 우기는 마리아도 이단이고 처녀가 임신했으면 인생 조졌다해야 이게 정상인데 오늘 본문에서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찬양 나왔고 “내 마음이 주로 인하여 기뻐한다”. 기뻐한다.

이게 바로 뭔가 광신도 아니에요? 이 모습이. 세상 사람들 보기에 이 패널들이 보기에는 광신도인데. 돈도 없고 마리아가 돈도 없고 처녀가 임신해 놓고 하는 말이 내 영혼이 기뻐한다고요? 하나님을 찬양한다고요? 그 이단 내용이 누가복음 47장에 나오네요.

결국 성경이라는 것은 예언이 우리 자신을 까는 겁니다. 우리가 이만희를 까는게 아니고 이만희가 우리를 까는게 아니고 하나님의 예언이 우리 자신을 멀쩡하다고 자부하는 우리 자신을 까고 비판하고 심판하고 정죄하는 내용, 그게 성경이고 그 예언은 마리아를 통해서 우리에게 찬양으로 이렇게 누가복음 1장 46절부터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경해석 어떻게 해야되는지를 감이 오십니까? 성경해석을 통해서 나한테 얻고자하는 것을 얻겠다고요? 그런 마음 안에서 아직도 세상에 대해서 또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자기를 신처럼 드러내겠다는 욕망, 그리고 그 부러움 이런 것들이 깔려있기 때문에 성경해석에 대해서 잘못된 해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대로 봅시다. 제대로 보게 되면 마리아는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의 수단이 되었다. 예수님의 예언이 예언한대로 세상은 예언한대로 현실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도구로서 사용되었습니다. 이게 정답이에요. 이게 정답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나도 도구되었으면 부러워하시면 안됩니다. 그것은 잘못이에요. 그것은 십사만 사천 합격하겠다는 이만희 집단하고 똑같이 되어버려요. 성경에 나오는 것은 주께서 이렇게 일하신다지 그 주님의 그것을 내것으로 만들겠다가 되어 버리면 제가 아까 지적한 것처럼 그것은 뭐냐 하면은 그것은 자기만족일 뿐이고 만족은 뭘 낳는다 했습니까?

벌써 다 잊어버렸죠. 자기만족은 뭘 한다? 예단하고 예측하고 예단하고 예상한다 자꾸 성경을 보면서. 기도 자체도 기도할 때 뭔가 예상하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자기만족과 무엇과의 싸움이라고 했습니까? 주님 자신의 만족과의 싸움이에요.

주님 자신의 만족은 뭘 합니까? 마리아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임신시켜버린 거에요. 우리에게 그냥 성령이 와버리는 거에요.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이 이렇게 발현되는 겁니다. 이것은 일방적인 우리는 인생 조지는 것이겠지만 인생은 아이고 난 이단되기 싫어 나는 정상인처럼 종교가 없다는 패널처럼 난 조용히 살고 싶어. 나는 내 만족 살고 싶어도 주께서 가만두지를 않아요.

왜냐하면 그게 주님의 만족이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성도 되는 것이 우리의 구원의 위함이 아닙니다. 주님의 자기만족 때문에 그런 거에요. 자기만족. 이게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는 것은 우리 존재는 흐릿하고 예언은 뚜렷하고 이런 상반되는 두 가지 내용이 상반되서 등장하게 되지요. 여기까지는 하나의 서론이다. 초반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오늘 강의의 초반이다.

자, 그렇게 찬양을 하는데 그 다음에 51절에 보겠습니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교만한 자, 교만 나왔어요. 그 다음에 뭐냐 하면은 권세있는 자, 권세있는 자 나왔습니다.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도다. 부자, 부자를 어떻게 보내신다고 했습니까? 빈손으로 보낸다 공수레로 보낸다 했지요.

자, 교만한 자 반대말은 마리아죠. 겸손이죠. 마리아=겸손. 권세있는 자는 힘없는 자, 비천한 자 되어있지요. 그 다음의 부자의 반대말은 여기는 주리는 자 이렇게 되어있지요. 자, 이 내용이 왜 마리아의 찬양에 나오느냐 하면은 악마는 악마를 수치화할 수 있다. 참 희한하죠.

우리가 생각하는 악마는 영적 존재에요.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실체가 인간의 실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좀 설명이 필요한데. 자, 천사, 악마는 타락한 천사라고 하지요. 천사, 악마, 하나님, 주님, 성령 전부다 이게 뭐냐 하면 주님은 몸이 계시지만 하나님 이쪽은 몸이 없어요.

몸이 없으면 개체가 없어요. 개체가 없다는 말은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으면 숫자화가 안돼요. 숫자화가. 수량화가 안된다고요. 이제부터 어렵습니다. 왜 어렵느냐 하면 이상하게 숫자화 수량화가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성경에서 7 나오지요. 1 나오지요. 40 나오지요. 14만 4천 나오지요. 12 나오지요. 10 나오지요. 1000 나오지요.

요한계시록에 완전히 부어놨지요. 부어놨다 이 말이지요. 그리고 창세기 1장부터 7 나오잖아요. 7일 만에. 7,10,1,4 또는 40, 40일 같으면 40일 광야, 광야 40일 고난, 예수님 40일 고난 이런거. 12라는 것은 이스라엘 12지파 예수님의 12제자. 1000이라고 하는 것은 천년왕국.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천대대로 네가 복을 받으리라 하는 그런 것.

이렇게 영적인 실체, 영적인 존재를 숫자화 수량화할 수 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영적인 것을 숫자화 시켜서 숫자를 풀면 우리는 영적인 것을 압니다 하면서도 어떻게 영적인 것이 숫자로 전개될 수 있느냐? 어떤 과정이 필요하냐? 거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모르고 있지요.

천사 여기에 영적 실체를 천사, 악마라고 하는데 그중에 악마를 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악마를 수치화할 수 있다 했습니다. 뜸들이지 않겠습니다. 악마를 어떻게 수치화합니까? 목사님 이라고 물으면 악마가 수치화될 때 단계가 하나가 집어들어가요. 그게 뭐냐 하면 인간의 수치화를 통해서. 인간의 삶을 통해서.

인간의 삶 자체가 수치화하고 양화라고 하는데 어려운 말로 양적으로 계산이 가능한, 수량화할 수 있는 삶이 되게끔 인간이 인간을 그렇게 조직화한다. 질서화한다. 어렵지요? 쉽게 풀이합니다. 인간은 영적 존재입니다. 영적 존재라고 하면 모호하니까 쉬운 말로 인간은 신비스럽다. 인간은 신비스러워요. 인간은 단순히 물질이 아니고 신비스러운 존재입니다.

계속해서 제가 예를 들어갑니다. 이 세상에 인간들이 만든 과학이나 화학을 통해서 보게 되면 인간의 이 세상에 있는 기본 원소가 몇 가지냐 18개에요. 18원소를 갖고 있습니다. 18개를 주기율표를 하게 되면 18종에서 종마다 전부다 성질이 18종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죽 이렇게. 그리고 인간은 이걸 세가지로 나누지요. 어떻게 상태를 나누는데 하나는 기체, 하나는 액체, 고체로 나눕니다.

자, 이 원소가 110가지고 이렇게 모든 원소를 나누어서 기체, 고체로 나눈다. 이게 틀린 말입니까? 이게 고양이가 그렇게 했습니까? 아니면 코끼리가 그렇게 했습니까? 이런 원소 과학. 누가 했겠어요? 누가 합니까? 인간이 하지요.

그래서 제가 얼마전에 설교한 것처럼 인간이기에 뭐가 되느냐? 반항이 돼요. 왜냐하면 인간은 다른 동물과 관계없이 자체적으로 지상천국을 시도하려고 하는 유일한 피조물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창세기 11장에 보면 탑을 쌓는데 무슨 탑을 쌓지요? 바벨탑이죠. 그 바벨탑 쌓는 취지가 성경에 나옵니다. 내 이름을 하늘까지 내겠다.

그러면 내 이름에 누구가 빠지느냐 하면 내 이름 속에 주의 이름이 빠지지요. 그런데 성령 받은 사람은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구원을 받는다 하지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무슨 이름은 흐릿하다? 내 존재는 무엇의 이름은 빠진다? 내 이름은 빠지는 거에요.

내가 이 조직적인 사회에서 조직적으로 했던 지상천국을 내다보는 그 기대에 의해서 구원받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가 됩니다. 결코 그것이 나의 만족이 아닙니다. 그 말은요. 아주 어려운 말인데 그 말은 이런 뜻이에요.

평소에 다시 말해서 예언이 오기 전에 성령이 오기 전에 마리아처럼 예수님 임신하기 전에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성령이 오기 전까지는 나는 어떻게 살았느냐 하면 이게 반항인줄 모르고 주님에 대한 반항인줄 모르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지혜를 총 동원해서 모든 물질은 기체, 고체, 액체 상태다. 이것은 정답이다.

3+5=8이다. 이것은 정답이다라는 식으로 수치화하고 수령화하면서 그 수치와 수량은 어디에 동원되느냐 하면은 나만의 지상천국, 지상 완벽한 세계를 구성하는데 몰입하면서 그것이 내 만족이라고 여기면서 살아왔던 나입니다라는 고백이에요.

악마를 빼겠습니다. 악마는 수치화할 수 있다 여기서 빼겠어요. 악마를 빼고 뭘 집어넣느냐 하면은 인간은 모든 것을 수치화할 수 있다 이러면 어떻게 낯섭니까? 당연한 겁니까? 당연해보이지요. 그러나 이 당연한 것이 마가복음 16장에서는 이 당연한 게 아니지요.

마태복음 16장 23절에서 나오는 말씀인데 다 읽지는 않고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베드로가 하는 말이 예수님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예수님 그렇게 해 받고 고난 받을 일 없습니다라고 하니까 예수님 하시는 말씀이 베드로 보고 하는 말이 베드로 부르는게 아니고 베드로 보고 하는 말이 “사탄아 물러가라 네가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그 다음에 하는 말이 네가 하나님을 생각지 않고 그 다음에 사탄이라고 불러놓고 사탄이라고 말하지 않고 뭐냐 하면은 네가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여기 사람이 하는 모든 조직과 질서 잡기 그리고 인간이 끄집어낸 과학문명과 법적인 체제, 국가 법적인 체제입니다.

국가의 법적인 체제, 질서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은 결국 합리적인 수치화와 수량화에 의해서 정리 정돈이 가능한 거에요. 정리 정돈이 하게 되면 아까 신천지 프로에 나와서 나는 종교가 없는데 신천지 궁금합니다라는 그런 패널들처럼 그들은 자기가 정상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그리고 신천지는 나쁘다는 거에요.

자, 신천지가 왜 나쁘냐? 세상에서. 세상 안목에서 신천지가 왜 나쁘냐? 첫째 누구에게 종속된 것, 이만희에게 종속된 게 나쁘다. 그럼 그게 왜 나쁘냐? 민주주의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옹호되는데 거기에 반하기 때문에 이것은 나쁘다.

두 번째 나쁜 것은 뭐냐 하면 돈이 많아서 나쁜 거에요. 이 돈은 주식이라면 기업의 자본금으로 들어가서 경제 재생산, 또다시 생산해서 경제적인 부를 이뤄야 될 그 돈이 종교단체에 들어가서 이게 STOP이 되고 허망하게 되니까 이게 나쁘다.

세 번째 왜 나쁘냐? 그들이 본인들이 진리라고 우겼던 것으로 인하여 우리 인간들이 이미 합의를 본 인간세상 만세, 인간 문명의 만세와 찬양을 그들은 이 합의의 지시를 따르지 아니하고 그들만의 어떤 천국을 따로 개설한다는 것이 이것이 기분 더럽다는 거에요.

너희들이 뭔데 대부분의 이성과 지혜는 이미 합의를 봤단 말이죠. 이 세상에서. 이 세상 인간의 지혜를 모아서 인간의 문명 후손들에게 남겨주고 찬란한 문명을 남겨주고 우리는 우리의 노동에 의해서 행복하게 사는 이것이 인간이 사는 삶의 목적이다.

의학이든 과학이든 발전해서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죽으면 허무하니까 아무것도 아니고 살 때까지만 행복하게 살고 그 행복한 터전을 후손들에게 딸 자식은 귀하니까 물려줘서 같이 행복한 인류의 영원한 세계를 이루자. 이것은 이미 합의를 봤다는 거에요.

옛날에 종교가 있을 때는 뭐 성경이 있고 알라신을 믿을 때는 그때는 그게 진리였지만 진리는 우리 손으로 우리가 만들어내면 되지 않느냐? 진리라는 것 이것은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진리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지 다른 구닥다리 옛날 꼰대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합의를 봤는데 왜 네가 뭔데 합의를 위반하느냐? 그래서 신천지를 비판했다 이거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소위 정상적이라는 것, 상식적이라는 것 그것에 대해서 교만한 자를 겸손케 하고 권세있는 자를 비천케 하고 부자를 주리게 할 때 주님의 예언은 어디를 공격하고 부자와 권세와 교만한 자를 공격한다는 거에요.

그런데 스스로 부자 재벌이 스스로 자기가 교만하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자기가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합니까? 열심히 살았지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영화에 나왔듯이 부자는 곧 뭡니까? 부자란 어떤 자? 선한 자에요. 왜? 이웃사랑을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웃사랑을. 이웃사랑을 많이 할 수 있는 거에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나눈다면 간단하게 이렇습니다. 자본주의는 절약해서 살자. 자본주의입니다. 사회주의는 있는 것 떨어먹자. 이게 사회주의에요. 둘 중에 어느 것이 이웃사랑 됩니까? 절약해서 절약해야 그 다음에 뭔가 재생산 기업이 한 달 하고 기업 그만둡니까?

장사 그만둬요? 계속 장사하기 위해서 자본을 절약해서 그걸 다음에 또 넘겨줘야 이웃사랑의 취업이 되고 그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그런 더불어 사는게 이웃사랑이겠어요 아니면 사회주의처럼 있는 것 떨어 먹고 때려치우자. 이게 이웃사랑이겠어요?

그런데 이 사회주의가 이웃사랑을 주장한다고요. 돈 없다? 문재인한테 달라고 하면 돼요. 100만원 준다고 하잖아요. 이웃사랑처럼 보이잖아요. 성경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아무리 사회주의가 이웃사랑 주장하고 하지만 이 부자, 권세 이거는 인간의 지향성이에요. 지향점입니다. 인간의 지향점.

욕하면서 부러워하는 거에요. 욕하면서. 아까부터 부러워한다는 말 많이 나왔는데 욕하면서 본인이 재벌이 교만하겠어요? 재벌은 교만하지 않지요. 왜냐하면 자기는 성실하게 똑같이 5천만원 주면 나중에 10년 뒤에 하나는 재벌되고 하나는 거지되는데요.

공평하게 자기가 재벌된 거에요. 교만하지 않아요. 자기를 오히려 공평한 자, 정의로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준 자로 보는 거에요. 권세 있고 부자된 것 이게 모든 인간의 부러움, 목표입니다. 목표에요. 결국은 이건 뭐냐? 이것은 인간들에게 뭐가 될 수 있다?

수치화될 수 있는 거에요. 수량화될 수 있는 거에요. 양적으로 계산하는 거에요. 양적으로. 질적으로 아닙니다. 나도 노력하면 숫자가 늘어나면 나도 저렇게 부자 될 수 있다. 부자, 재벌, 힘 전부다 계산될 수 있어요. 계산될 수 있습니다. 한 달 수입 어려우면 얼마내고 다 수치화되잖아요. 수치화된다고요.

여기 인간이 수치화된다는 말은 인간 자리에 집어넣는 거에요. 악마를. 왜? 마리아를 임신하게 하신 분이 바로 인간 모습이지만 사실은 인간으로 오셨지만 누구냐 하면 바로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이 임신을 하고 하나님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예언하는 형식으로 바깥에 터져나오게 되면 그게 뭐가 되느냐?

그것은 바로 노리고 들어가는 겁니다. 예언은 뭐 한다? 노리고 들어간다. 누굴 노리느냐? 반항하는 자. 무엇에 반항하는 자? 예언의 주인공에 반항하는 자. 그럼 예언의 주인공은 누구냐?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 반항하는 자를 하기 위해서 그들의 현재 기존의 것을 뒤엎어버리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잘 한번 보세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의 지향점이 교만과 권세와 부자, 교만은 사실은 이것은 재벌로 봅시다. 부러운 사람, 유명인사로 봅시다. 한다면 여기 겸손한 자 비천한 자 주린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지금 내가 가난하다하는 것은 가난이 아니에요. 부자를 겨냥하게 되면 그것은 가난한 자가 아니고 부자의 마음이에요. 권세가 부러우면 권세를 지향하는 거에요. 기생충에서 부자 욕하지만 기생충은 뭡니까? 지하방에 지하벙커에 누구 들어살잖아요. 집을 지어놔요. 그 안에. 기생하는 어렵게 거기서 부자덕에 얻어먹는 사람이 기생한다 이 말입니다. 그게 세상 구조다 이 말입니다.

욕하면서도 필요한 거에요. 욕하면서도 그분들 없이 못사는 겁니다. 그들은 모순도 역설도 아무것도 아닌 거에요. 당연한 거에요. 욕한다는 말은 부럽다는 뜻이에요. 그 사람들이. 따라서 겸손, 비천 이거는 없는 거에요. 이거는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목표를 부자, 권세 모든 인간은 여기에 한통속이 되어서 부러워하고 있어요.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는 없는 겁니다. 이 없는 자리를 예언된 자가 채워요. 그게 누구냐? 마리아. 마리아가 재산이 천억이 되어도 마리아는 겸손하고 마리아는 비천하고 마리아는 낮아진 자고. 억눌린 자 되죠. 주린 자가 되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마태복음 5장을 여기서 잠시 한번 봅시다.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쭉쭉 나오면서 마지막에 뭐냐 하면 결국 이런 마음은 어떤 마음이냐. 나를 위하여 예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그러니까 이 말은 천국이라는 것은 하나만 갖추는 사람이에요. 마음이 가난해야 되고 애통해야 되고 이게 아니고 의에 주려야 되고 이게 아니고 하나만 하면 돼요.

예수님을 위하여 핍박받으면 그 사람이 바로 가난한 자요 애통하는 자요 온유한 자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요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요 그런 뜻이에요. 여기 나중에 사도 바울이 보면 주 예수 이름을 찾는 사람 그 사람들이 바로 팔복입니다. 복이 있는 사람들.

그럼 이런 사람들 있다? 없다? 있을 리가 있어요? 모든 인간이 이거 되려고 자기만족에 빠지니 없지요. 그럼 마리아는 왜 있느냐? 마리아가 왜 있느냐하지 말고 예언이 마리아를 쳐들어 간거죠. 오늘 성령이 우리에게 쳐들어온 거죠. 쳐들어오게 되면 인간이란 어떻게 산다?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는 거죠.

이만희를 비판한다는 자체가 이만희가 부럽다는 거에요. 이만희처럼 되지 못해서 화가 난다는 뜻이거든요. 여러분들이 누굴 비판할 때 왜 비판합니까? 왜 비판해요? 부러우면 지는 거잖아요. 왜 비판하죠? 그럼 어떤 사람이 비판합니까? 기가 센 사람.

정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주시는 것으로 감사한 사람. 야 정말 주의 마리아처럼 기쁨의 원천이 마리아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또 예언에 의해서 터져 나오기를 바랍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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