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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00403a 울산강의-레위기 25장 : 값 치름자유게시판레위기

20200403a 울산강의-레위기 25장 : 값 치름
(강의:이근호 목사)

첫째 시간, 레위기 25장 13절부터 하겠습니다.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기업으로 돌아갈지라 네 이웃에게 팔든지 네 이웃의 손에서 사거든 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라 희년 후의 년 수를 따라서 너는 이웃에게 살 것이요 그도 그 열매를 얻을 년 수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인즉 년 수가 많으면 너는 그 값을 많게 하고 년 수가 적으면 너는 그 값을 적게 할지니 곧 그가 그 열매의 다소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이라 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고 너희의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여기서 속이지 말라는 말이 나오지요. 속인다는 말은 서로서로 사이에 다른 제3의 존재가 개입했다는 뜻입니다. 여기 한 사람 있고, 또 한 사람이 있을 때 속인다는 것은 어떤 경우냐 하면, 절대적인 기준, 제3의 어떤 분, 하나님이겠지요. 하나님이 말씀하심, 하나님이 계심, 이것을 배제한 채 서로가 서로에게 대화를 한다든지 상관을 한다든지 그렇게 될 경우를 속인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면 속인다, 안 속인다는 기준이 각 개인에게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속인다는 개념이 첫째는, 인간 대 인간이 속고 속인다. 이런 개념의 속인다. 이건 우리가 보통 아는 속인다는 것인데 하나님은 그렇게 보지 않고 하나님이 내려주신 기준을 배제하면 인간 대 인간이 서로 속이고 않고 정직하게 할지라도 그건 속이는 것이 되는 겁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특이성, 또는 특수성이란 이방민족과는 달리 모든 매사에 하나님이 개입하셨고, 그 개입은 기준점, 속인다, 속이지 않는다. 옳다, 그르다. 죄다, 아니다, 라는 그 기준점 자체를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다는 사실이 이방민족과 다르죠. 그러면 그 기준점을 주셨다면 기준점이 있음이에요. 그 기준점이 확산이 되고 확대가 되면서 여기에 기준점 자체의 있음 더욱 더 확대시키게 되면 제대로 있음과 없음의 구분조차도 이 기준점에 준해서 있는 겁니다.

내가 만약에 어린아이를 낳았다. 또는 자식이 있다. 이것이 옳은가? 옳은 게 아니에요. 내가 여기 있다. 집이 있다. 국가가 있다. 이런 것은 옳은 게 아닙니다. 있음을 있다고 해서 옳은 게 아니란 말이죠. 하나님이 있음을 있다고 해서 옳다고 보지 않고 기준점이 있을 때만 옳다고 보는 겁니다. 기준점과 연관되어서 관련지어서 있을 때만 옳다 또는 바르다, 복되다.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다른 것은 성립이 안 됩니다.

그래서 이 말은 곧 뭐냐 하면, 인간들이 자기의 있음을 기준으로 해서 내가 있는데 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또는 영생 얻기 위해서 나의 있음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어떻게 차용해보겠다, 하나님을 믿어보겠다는 것은 옳은 게 아니에요. 이건 잘못됨이고 오늘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을 속이는 짓이 됩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짓이 되게 되면 하나님께선 이 있음도 없음으로 간주해버리죠. 있으나마나하다.

세상에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이게 세상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특히 과학적 안목에선 이렇게 되는데 하나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있는 것은 없고 없는 것이 있게 된다. 뭐가 있게 되는가? 없는 것인데 뭐가 없는가? 인간들 기준에서는 하나님이란 없는데 어떤 기준점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이것이 가치를 결정하는 표준으로써 기준으로써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성도. 성도는 누구나 알겠지요. 성도는 천국 가는 사람, 천국 가는 하나님의 백성을 성도라 하지 않습니까. 성도가 하나님께서는 나 여기 있으니까 있음이니까 성도 되게 해 달라, 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성립될 수 없어요. 성립되지 않습니다. 성도란 이 땅에 없어요. 없는 성도가 나타나는 게 아니고 기준점이 나타나고 기준점 안에 성도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것은 이미 내가 있다고 여기는, 나를 어떻게 조작하고 나를 관리하고 나를 붙잡고 변화시키려고 하는 모든 시도를 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예상 못한 도저히 터무니없이 들릴 거예요. 그러나 모든 개념, 교회, 천국, 지옥 이란 것도 기준점이 등장해서 비로소 기준점 안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교회, 새롭게 만들어진 천국, 새롭게 만들어진 지옥, 이것이 성경에서 원하는 하나님의 개입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준점이 먼저 있고 기준점에 의해서 확산하고 확대되면서 거기에서는 기준점에 부합되는 새로운 있음이 그제야 만들어지는 거예요. 기존의 있음은 있음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기준점이 있고 그 기준점과 관련됐을 때 기준점이 없었을 때가 있으니까 기준점이 없었을 때 없다고 여겼던 것이 기준점이 있음으로서 비로소 있다고 등장하는 겁니다.

그 기준점이 오늘 본문에 희년이라는 겁니다. 희년, 기준점이죠. 희년이란 7x7+1=50년입니다. 인간들의 시간 개념으론 아주 간단한 수식으로 나타낼 수 있어요. 희년이란 50년이다. 어떻게 50년이냐? 순차적으로 7x7+1해서 50년이다. 50년을 분석하면 7과 7에 +1해서 모든 요량한 의미가 같이 복합적으로 해서 50이 되는 겁니다. 7이란 7년째 오는 안식년이 일곱 번 되고 49로 마감돼야 되는데 49로 끊어지는 이것을 한계를 초과해서 이 모든 것의 목적을 둔 새로운 해가 오는데 그게 바로 50년 되는 희년이다. 이렇게 시간적으로 간단하게 설명이 가능해요.

그러나 이렇게 해서 기준점으로 한다면 인간들은 그럼 우리가 이걸 지키면 되잖아. 일곱 번째 해는 농사 안 짓고 그렇게 일곱 번 지나서 그 다음 해 칠월 십일에 희년 행사 돌리면 되지, 라고 간단하게 생각하는데, 희년이란 인간들의 시간개념으로 지킬 수 있는 그러한 율법이 아니에요. 인간들은 이미 또 다시 설명합니다만 있음이 문제에요. 본인이 없다고 여겨야 되는데 자꾸 있다고 여기니까 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율법을 차용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럼 기준이 뭐냐? 율법이 기준이 아니고 내가 있음이 기준이 돼버려요. 내가 더욱 더 잘 있기 위해서 멋있게, 행복하게 영원히 있기 위해서 율법을 가져온 셈이 되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기준점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기준점이란 내가 없음이 될 때 기준점만 있음으로써 없음이 있음으로 바뀌는 그러한 현상을 나타내야 그게 바로 제대로 기준점 노릇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 희년으로 이 점을 어떻게 설명하느냐? 오늘 본문에 보면 50년이 기준이 돼요. 그러면 50년이 되지 않고 45년 또는 30년째, 20년째 이럴 경우에 50년이 기준이기 때문에 여기서 계산을 50번째 날부터 시간을 계산해서 의미를 부여하란 말이죠. 그래야 50이란 기준점이 의미로서 기존의 이스라엘 땅에, 이스라엘의 시간개념에 흡수가 되고 포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50년째 뭘 해야 되느냐? 각자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받았던 자기 땅으로 돌아가라. 이게 기준입니다. 50번째 되는 날은 하나님께 선물을 받은 또는 기업으로 받은, 상속으로 받은 그 땅으로 되돌아가라. 그냥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여받은 땅에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경우에는 가만히 갖고 있으면 되죠.

하나님께 부여받았다는 말은 조상으로부터 부여받은 거예요. 부모가 자식한테 상속하면서 이 땅은 아버지 땅이 아니고 하나님 땅이라고 분명히 그 실체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자식에게 주게 되면 받는 자식은 아버지로부터 상속받는 게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상속받게 돼있어요.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것을 상속받는 백성, 이 관계가 바로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맺어진 관계기 때문에 언약백성, 또는 약속의 백성, 약속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부각이 되는 그런 관계의 백성이죠.

그래서 이 백성은 본인이 밥 먹고 사는 게 목적이 아니고 자기가 나타내야 될 약속을 보여줘야 돼요. 약속을 보여줌으로써 약속이 내 안에 스며들었다는 걸 자인하고 그렇게 해서 내 안에 나를 주도하는 것은 나를 지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럴 경우에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 쪽에서 뭔가 준 게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게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 이거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죠.

백성이 아니면 하나님의 언약이란 기준점에 의하면 있으나마나 없는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께선 그것을 사람 취급을 하지 않지요. 그냥 물질로 보지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언약을 줄 때 하나님의 언약은 항상 어떤 현상을 동반하느냐 하면, 부수적으로 버려야 될 자,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오지 말아야 할 자를 버리는 작용이 계속 일어나요. 취할 백성은 취하되 버릴 백성은 버린다. 그게 바로 기준점 아니겠습니까. 기준에 부합되는 자와 부합되지 않는 자를 구분 짓는 작용을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서 하게 되는 겁니다.

보통 인간의 시간은, 지금 내가 여기 있음이니까 지금 내가 계산하는 시간, 이 시간 속에서는 뭐가 있느냐? 지금까지 내가 나답게 된 기간, 지금까지 내가 이만큼 살아오면서 내 기억 속에 있는 모든 시간, 그것이 인간들의 시간이 되겠지요. 추억이 될 수도 있고 과거의 시간. 그것에 준해서 나는 현재 땅을 소유하고 있다, 또는 가옥을 소유하고 있다. 약속의 땅에 하나님이 주신 땅과 하나님이 주신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단 말이죠.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내가 여기 어떤 지역에 살고 있는데 내가 조상께 받은 기업은 지금 이 땅이에요. 하나님께서 야곱의 자손 열두 지파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만들고 그 땅을 열두 지파에게 인구수에 비례해서 평등하게 나눠줬다고 볼 수 있어요. 특수한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인구수에 비례해서 한 거예요. 레위지파 경우엔 특수하게 각 지파 속에 파견근무하게 돼있어요.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땅을 분배했다. 그러면 이게 왜 상속이냐 하면, 하나님이 친히 홀로 용사가 되시고 전쟁을 하셔서 분배된 땅이기 때문에 이게 상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땅을 어떤 기준으로 분배했느냐 하면, 약속에 준해서 약속이 없는 비-약속 민족, 원래 가나안 땅의 토착민이죠. 약속이 없다는 이유로 추방시켜버리고 그 빈자리에 약속이 있는 자기 사람을 거기다 심어서 약속의 땅이 되게 하신 겁니다.

그러한 전쟁 가운데서 그 약속이 하나님의 일하심의 핵심이 되고 기준점이 됐다는 것을 전쟁을 통해서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선교나 전도라도 딴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약속을 소개하는 겁니다. 그러면 약속이 없는 사람은 극구 반대하겠지요. 그건 바로 아까 이야기한 약속을 주게 되면 버림받는 내어버려두는 작용이 됩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안 받아들인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마귀 뜻인가, 라고 생각하는데 복음을 안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에요.

고린도후서 2장 15절에 “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여기 ‘망하는 자들’이라고 규정된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안 믿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죽은 자고, 죽은 자라는 사실이 더 이상 숨기거나 감춰지지 못하도록 복음을 전하란 말이죠. 너는 지옥 가야 될 죽은 자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기능으로서 복음을 전파한다는 뜻입니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 찍을 때 인물 좋게 하려고 찍는 게 아니잖아요. 안에 자기가 모르고 있는 어떤 질환 같은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 사진을 찍듯이 인간은 자기가 장래에 죽어서 정말 지옥 갈지 천국 갈지 본인은 모르지요. 그냥 희망은 있지요. 천국 가고 싶다. 하지만 천국 가고 싶다고 해서 다 천국 가는 것이 아니고 사전에 미리 하나님께서 기준점을 제시해요. 십자가 복음을 전파해서 거부하는 사람은 그게 원래 망하도록 돼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거부하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니까 지옥 가는 사람들에게는 악취가 되는 겁니다. 향기가 아니고 악취가 되고,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냄새라고 돼있어요. 냄새는 외부적으로 일방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자기가 일부러 만들어내는 게 아니잖아요. 복음은 외부에서 다가오는 어떤 냄새인데 그게 악취가 될 수 있고 향기가 될 수 있고.

그 복음 우리 자신의 정체성, 진짜 우리 자신의 본질을 까발려주는 그런 향수를 하나님께서 전도자를 통해서 성령 받은 성도를 통해서 널리 전하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화생방 전쟁하는 전쟁터라고 볼 수 있어요. 그걸 먹고 토하는 사람, 복음을 거부하는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이상스럽게 그 복음에 대해서 충격을 받고 눈이 떠지면서 그동안 내가 살아온 것이 내 위주로 살았구나. 그게 바로 악마가 나를 속여 왔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는 그런 희한한 현상도 일어나지요. 참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줬다는 것, 우리 보기에는 모세가 설교했겠지, 이 정도인데 사실 따져보면 희한한 일이에요.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보이는 것만 있다고 여기거든요. 보이는 산이나 들이나 산에 있는 짐승이나 보이는 인간이나 그리고 하늘에 떠있는 달, 별, 천문학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에요. 다 보이는 것들을 대상으로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존재는 없다고 여기거든요. 없으니까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기겠지요.

그러면 인간의 삶이란 보이는 것들만 붙잡고 상대하고 거기서 울고불고 행복하니 불행하니 이 모든 것은 보이는 것들에 준해서 우리가 그렇게 단정 짓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보이지 않는 것의 개입이다. 그게 얼마나 신기한 일입니까. 희년을 인간이 만들었어요? 안 만들었지요. 하나님이 희년을 준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만들어준 희년이란 법이 있다고 적혀있는 그러한 책을 보고 있는 우리 자신도 희한한 존재에요. 그까짓 것 안 봐도 괜찮잖아, 라는 식으로 우리는 그동안 줄곧 살아왔어요. 누구에 의해서? 내가 기준점이에요. 보이지 않는 기준점이 아니라 보이는 내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내 방식이 나의 삶의 미래의 기준점이 됐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희년은 이런 인간들의 미래에 대기하고 있어요. 어서 오라는 식으로 지금 대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 있는데 이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조상한테 받은 상속받은 토지가 있다. 각각 토지에서 살면 돼요. 그런데 이 사람에게 갑자기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벌여서 이 사람이 가족이 있는데 전쟁터에 나가서 전사하게 만들었어요. 전사하면 남는 것은 과부된 아내가 남겠지요. 그런데 아내가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농사를 짓지 못하니까 나한테 와서 돈 빌리고, 빌리다 나중에 돈 갚을 길이 없어서 그만 이 토지 자체를 나한테 팔아버려요. 그러면 이 사람한테는 하나님이 주신 상속이 날아가 버리죠.

물론 상속이 날아가는 것은 자기가 노름해서 나쁜 짓해서 그 보상해주느라 날아갈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사건을 일으키고 부부가 다 죽어버리면 고아 된 자식만 있겠지요. 또는 아들도 죽고 딸만 남을 때 이들이 기업을 유지하지 못해서 밥은 먹고 살아야 되겠고 해서 토지도 팔고 심지어 자기 몸까지 나에게 노예로 팔았단 말이죠. 그러면 나는 그 사람에게 사주는 게 이웃사랑이에요. 내가 돈 안 받겠습니다. 그냥 드리겠습니다. 하지 말라 이 말입니다. 이게 중요해요. 내가 남한테 동정한다고 그냥 봐주는 식으로 해선 안 된다 이 말입니다.

결국 봐줘도 그 다음에 처음에 전쟁 나서 가정이 파탄 난 것이 한 5년 되었다. 그래서 내가 돈 안 받고 그냥 사세요해도 그게 5년 더 가서 10년 되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아요. 그렇다면 받아들여야지요. 노예로 삼고 토지는 내 소유 토지로 하고. 그렇게 하는데 이걸 언제까지 보유할 것인가? 여기에 미래의 기준점이 있는 거예요. 50년째가 되게 되면 그냥 돌려줘야 돼요. 원상복귀가 된다고요.

원상복귀가 된다는 것은 뭘 뜻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기준점이 이 땅에서 확대하는 그것이 목표가 아니고 확대된 기준점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귀환하는 것, 원래의 자리로 귀환함으로써 원래 희년이란 기준점을 주신 하나님의 취지로 그 많던 사람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합류하게 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희년이란 시간이 나중에 인물이 돼요. 시간이 인물이 되면 시간은 여기서 날아가 버리죠. 인물이 되면 모든 시간은 인물 안에 허수가 되기 때문에 인물은 어떤 인물이냐? 영원한 인물, 시간과 공간, 영원한 시간으로 있는 인물. 전에 있었고 지금도 있고 나중에 있을 인물, 그 인물로 모든 것이 흡수가 되는 겁니다. 참 신기한 일이에요. 정말 놀라운 일이지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어떤 해답을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돼요.

이렇게 보게 되면 지금껏 내가 나를 공들여가면서 살려고 애썼다. 옛날에 있었던 내가 지금도 있기 위해서 그만큼 고생 고생했다. 이게 정답이 아니지요. 정답이 아니면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버려지는 내침을 당하는 천국에서 쫓겨나가는 이스라엘에서 버림받는 존재가 돼요. 지옥 가야 될 존재가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이만큼 고생했다는 것이 자기의 기준점으로 고집을 부리고 우기게 되면 하나님이 주신 희년의 취지를 공격하는 바가 돼버려요. 이걸 대드는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희년이 오기 전에 이 사람이 여유가 있으면 돌려줘야 되는데 땅을 산 나는 손해가 되지 않겠느냐, 할 때 손해가 되지 않도록 50년부터 계산해서 시간이 많이 남으면 값을 많이 쳐주고 작게 남으면 적게 쳐주란 말이죠. 49년이라 1년 후에 희년이라면 값을 적게 쳐주고 희년 돼서 돌려주면 된다는 뜻입니다. 기준이 내 시간기준이 아니고 50년이 기준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나라는 부자가 땅장사해서 더욱 더 하나님이 일으킨 사건, 남에게 불행한 사건을 기회로 삼아서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내가 부자가 되고 부가 부를 낳고 자본이 자본을 낳아서 더욱 더 자본을 낳고, 그래서 이 사람의 노동 가치는 떨어지는 식으로 부자가 더 많아지고 가난한 자가 더 가난해지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그걸 차단시키는 겁니다.

모든 인간은 원래 하나님께 받은 대로 되돌려줘라. 이것은 경제상으로 똑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분배받은 적이 있음에 동등하다. 하나님께 뭔가 상속받은 점에서 동등해야 되지 어떤 재산을 재화로 재물을 양으로 측정해서 내가 너보다 부자다. 그런 뜻에서 차등을 두는 것은 하나님의 취지에 위배되는 겁니다.

누가복음 4장에 보면, 희년에 대한 인물에 대해서 나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여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 가난한 자에게 돈을 주는 게 아닙니다. 복음입니다.

가난한 자가 돈이 없어 가난한 게 아니고 가난한 자가 뭐가 빠져있냐 하면, 하나님이 적용하는 기준점, 희년이라는 기쁜 소식, 이것이 없는 자를 가난한 자로 보는 겁니다. 아까 제가 이야기했듯이 모든 가치나 의미라는 것은 하나님 빼고 인간들끼리 통용되는 그 기준으로 가난과 부요를 논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준점으로 가난과 부를 논하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포로 됐다는 말도 기준점이 상실된 사람. 눈먼 자도 마찬가지에요. 눈먼 자도 장님이란 뜻이 아니고 기준점을 보지 못하는 자. 눌린 자도 마찬가지에요. 억압받는 것도 기준점이 없어서 억압받는 사람.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심이라. 그렇게 된 거예요.

이렇게 될 때 예수님께서 이사야에 나오는 말씀을, 이사야 61장 1절과 2절에 나오는 말씀인데 이사야의 말씀을 펴놓고 만약에 예수님 방식이 아니고 현재 내가 옳다고 여기는 하나님을 배제하고 인간들끼리 옳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이사야 예언을 그대로 적용시켜 보라고 하면, 혁명이 일어날 거예요.

가난한 사람에게 나라에서 월 백만 원을 준다든지 재해기금을 준다든지 그렇게 해서 해결 지으려 하고, 눈먼 사람한테는 안과 병원 세워서 눈 뜨게 해준다든지, 옥에 갇힌 사람들은 사면조치해서 풀어준다든지, 눌린 자들은 혁명을 일으켜서 눌린 계급을 지배 계급으로 바뀌게 한다든지, 그래서 자유를 준다. 이런 방식을 사용할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그런 방식으로 안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이해하는 복음이란 것, 그리고 자유라는 것, 희년이란 개념과 예수님이 알고 있는 희년, 자유, 복음 개념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실제로 그 개념을 예수님은 어떻게 적용시키는가? 여기 누가복음 4장 25장에,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라는 대목이 나와요.

이 말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희년, 기쁜 날이라 할 때 그게 왜 기쁘냐? 하나님은 50년째가 기쁘다 하는데 인간은 기뻐할 이유를 모르지요. 그 해가 그 해고, 그 해가 그 해고, 봄여름가을겨울, 봄여름가을겨울 똑같이 반복되는데 그게 뭐 기쁘냐 말이죠. 작년에 진달래 피고 또 피는데 그게 기뻐요? 49는 안식일의 취지가 축적이 되고 +1은 그 완성이 되는 겁니다. 안식일의 의미가 완성이 되기에 특혜를 베푸는 날로서 50번째 해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정말 이 해가 하나님은 기쁘다고 희년이라 했는데 우리 인간들 입장에서는 어딜 봐서 기쁘고 우리가 어떤 식으로 그 기쁨을 공감해야 되는지 근거가 뭐냐는 거죠. 그게 뭐냐 하면,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고. 다시 말해서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 땅에 많은 과부, 불쌍한 과부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뭐라 하느냐? 아무도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라고 이야기해요. 아무에게도.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 과부에게 갔다는 그 사실은, 왜 아무에게도 안 갔습니까? 한 사람에게는 갔잖아요, 라고 하게 되면 기쁨이라는 요소가 상실돼요. 아무에게도 가지 않았다는 것은 인간이 이 기쁨을 요청하거나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먼저 확실하게 깔아두는 겁니다. 은근히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은근히 예수 믿고 천당 가버리면 천당이 그렇게 좋은 세계가 아니에요. 기쁨의 세계가 아닙니다. 하나님 지 할 일 하고 우리는 그 혜택 입으면 되잖아. 자기 숙제하겠지. 이런 식으로 하면 기쁨이란 게 솟구치지 않지요.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았다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도 없다는 말과 같은 말이에요. 이 세상에 은혜 받을 존재는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런 인간, 구원받을 자격 있는 인간 없는 겁니다. 구원받을 인간 없어도 괜찮아요. 또 없는 게 마땅하고, 또 없어야 하고.

그러면 아무도 없음을 아무도 없음으로 고수하지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았다고 단정하면서도 왜 시돈 땅에 사렙다 과부에게는 찾아가는가? 그게 바로 특혜가 되는 겁니다. 안식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특혜를 베풀어도 죄인을 의로운 나라에게 들어가려면 정당한 근거가 있어야 되거든요. 그 근거가 안식일의 완성을 통해서 이미 확보되었다는 거예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지옥 가야 마땅한데 지옥으로 보내지 않고 천국으로 보내는 합당한 근거가 안식일을 통해서 마련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고 죄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로움, 하나님의 정의로움, 하나님이 죄인을 심판하는 그 심판에 위배되지 않고 죄를 심판하고 지옥 보내는 그 원칙에 준해서라고 이게 맞는 이야기란 말입니다.

그게 바로 안식일을 통해서 플러스알파, 희년이라는 것을 제공할 때 이건 처음부터, 희년이란 원래 자리로 돌아오니까, 애초부터 하나님이 준비된 사랑을 확대시켜서, 백성이 없다 했지요. 없는 백성을 하나님의 사랑이 확산되면 없던 백성이 생겨나는 거예요. 사랑을 안 받아도 되는데 사랑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본래 준비된 사랑의 자리, 희년의 그 자리, 원래 상속된 땅의 자리로 되돌아오게 하는 하나님의 일관된 사랑의 작업을 희년을 통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그게 바로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고 오직 사렙다 과부에게만 베풀었기 때문에 왜 우리한테는 천국 안 보냅니까, 우리는 왜 은혜 안 주십니까? 그렇게 닦달내지 말라는 말이죠. 인간은 원래 없던 존재인데 과부 하나가 하나님의 언약이 언약대로 증거하기 위해서 그 여자는 태어나야 했고 그 여자는 과부가 돼야 됐고 그 과부된 시기가 3년 6개월 동안 비오지 않던 그 시기에 타이밍 맞추어서 그 과부는 엘리야를 만나는 혜택을 입은 겁니다.

바로 이러한 정신, 이러한 사상이 어우러질 때 그게 바로 참된 이스라엘이 되는 겁니다. 그래야 희년이 희년답게 이스라엘을 통해서 만끽되기 때문에 활짝 피기 때문에 그래요. 만개되고. 그리고 그것이 기준점이죠. 희년이란 기준점이 활짝 피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희년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 다음에 이 기준을 이스라엘 백성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적용시키는 게 아니고 특혜를 받는 사람이 등장하는 겁니다. 레위기 25장 29절에 보게 되면, “성벽 있는 성내의 가옥을 팔았으면 판지 만 일 년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그 기한 안에 무르려니와 주년 내에 무르지 못하면 그 성내 가옥은 산 자의 소유로 확정되어 대대로 영영히 그에게 속하고 희년에라도 돌려보내지 아니할 것이니라”

땅은 50년째에 돌릴 수 있지만 가옥은 50년 돼도 주인이 돌려줄 필요가 없다. 땅이 중요하지 인간이 잠시 거주하는 주택은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초점이 어디 있다? 땅에 있는 겁니다. 땅이 하나님의 기준점, 하나님이 지은 시간, 50년째 되는 땅은 돌려줘야 돼요.

그러면 우리가 강의를 처음부터 새로 하게 되면, 시간에 기준점이 있다는 자체가 굉장히 기이한 발상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인간으론 그렇게 생각할리 없지요. 시간은 보이지 않는데 보이지 않는 것을 기준점으로 삼았다는 이 말은, 보이는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에 종속돼야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겁니다. 그런 뜻이 거기에 포함돼있어요.

그러면 50년째 되는 날, 그러니까 인간보다 무엇이 우세하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제가 아까 이야기했듯이 신약에 오면 이 시간은 인물이 된다 했지요. 누굽니까? 안식일의 주인인 예수님이죠. 예수님으로 인물이 되는 거예요. 희년의 주인공은 예수님이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인간보다 우세하다. 이 말은 뭐냐 하면, 인간의 모든 태어남과 죽음, 활동은 하나님의 활동을 드러내기 위해서 종속돼야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사실을 이방만족에게는 알려주지 않고 오직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이 사실을 알려준 거예요.

그렇다면 시간에서 점차 인물로 바뀌면서, 이것이 너무 급작스럽지요. 중간에 제사장을 집어넣습니다. 일반인과 차이 나는 제사장. 일반인들은 가옥을 50년째 되도 물려주지 않아도 돼요. 일 년 내에는 주고받고 하겠지만 50년째는 안 물려줘도 되는데 제사장의 가옥만큼은 50년째에 반드시 돌려줘야 된다는 것이 여기 레위기 25장 32절에 나옵니다.

“레위 족속의 성읍 곧 그 기업의 성읍의 가옥은 레위 사람이 언제든지 무를 수 있으나 레위 사람이 만일 무르지 아니하면 그 기업된 성읍의 판 가옥은 희년에 돌려보낼지니 대저 레위 사람의 성읍의 가옥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얻은 기업이 됨이니라” 그러니까 레위사람을 다른 일반인과 부각시켜서 레위사람의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조치하는 것과 희년을 만든 취지와 관련성이 있다 이 말이에요.

레위인도 인간이고 일반인도 인간이죠. 그러다보면 저 사람과 나와 별 차이 없네, 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레위인을 함부로 나와 별 차이 없다고 여기는 것은 레위인이 하는 업무와 자신이 살기 위해서 농사짓는 것과 별 차이 없다고 여기는 그러한 무관련성이 돼버려요. 종속되고 비종속이 날아가 버려요. 그러나 레위인이 하는 일이 뭡니까? 제사 드리지요. 안식일도 제사 드리고 평소에도 제사 드리고. 제사하는 업무가 일반인들이 살기 위해서 농사짓는 업무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희년 안에도 이걸 새겨넣어버린 겁니다.

자, 시간에서 인물까지 오기 전에 제사장을 집어넣는다면, 결국 예수님은 제사장 계열을 따라서 가는 거예요. 예수님의 일이 뭐냐?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일이 뭐예요? 목수였습니까? 예수님 아버지가 목수지요. 예수님이 하는 일은 뭐냐 하면, 죽는 게 일이에요. 이 땅에서 모든 율법을 이룬 것이 일이거든요. 율법을 이루게 되면 율법을 이뤘다는 그 답은 곧 예수님 스스로의 죽음입니다. 희생이에요. 세상 죄를 지고 어린양으로 가는 것이 예수님이 하는 일입니다.

죽음을 보편화하는 거예요. 죽음을 원칙화하는 겁니다. 살았다고 너희들이 생각하는데 산 게 아니고 사실은 죽어 있음을 제대로 말하는 기능을 예수님이 하시는 거예요. 예수님의 영이 오게 되면 그 영을 받은 모든 사람은 이 사실을 압니다. 우리 삶 위에 죽음이 찾아오는 게 아니고 죽음의 바탕 위에 죽음을 드러내기 위해 살아간다는, 우리는 죽음이 뭔가를 알리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사실이죠.

이게 바로 희년 앞에 안식년, 다시 말해서 제사 잡는 모든 일의 마감의 결과로서 기쁜 날이 온다는 말은, 이 제사의 본질과 제사의 취지가 계속해서 살아있을 경우에만 이것이 천국이 되고 약속의 땅이 된다는 겁니다. 삶의 취지가 아니라 죽음의 취지. 더 정답에 가까운 것은 예수님의 희생의 의미가 계속 살아있을 경우에만 그게 약속의 땅이 되고 천국이 되는 겁니다.

천국은 내가 여기 살아있음이 천국이 아니고 내가 여기 행복하다가 천국이 아니고 예수님의 희생을 높이세, 그것을 찬미하세. 그게 바로 천국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사는 멋진 세계는 천국이 아닙니다. 그건 마귀가 조작한 거예요. 예수님의 희생의 완성이 모든 혜택으로 주어진다면 안식일, 안식년, 이런 모든 것은 예수님의 희생을 앞당겨서 거기에다 새겨 넣는 거예요.

레위기 25장 초반 3절에 보면, “너는 육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년 동안 그 포도원을 다스려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제 칠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땅 자체를 땅이라는 공간보다 희년을 향하는 시간의 의미를 더 우월하게 봐서 공간을 시간 안에 종속하게 만들었다 이 말이에요.

21절에 보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가 만약에 평소대로 농사 안 지으면 먹을 게 없는데 만약에 농사 안 지으면 우린 못 먹잖아, 라는 그런 걱정이 있을 것을 주께서 예상하시고, 20절에 보면, “혹 너희 말이 우리가 만일 제 칠년에 심지도 못하고 그 산물을 거두지도 못하면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내가 명하여 제 육년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그 소출이 삼년 쓰기에 족하게 할지라”

제 육년에는 복을 내려서 삼년 분량의 양식을 한꺼번에 주겠다는 겁니다. 마치 옛날 광야에서 안식일에 만나를 줍지 못하게 하면서 다음날까지 충분하게 먹을 양식을 채우는 것처럼 주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주겠다는 이 사실이 미래에 주겠다는 거잖아요. 인간이 기껏 아는 것은 전부 다 과거 것이란 말이죠. 쭉 살아왔던 과거만 알고 있던 인간에게 미래에 주겠다고 하면 인간은 뭘 걱정하느냐 하면, 안 주면 어떻게 하느냐? 실제로 세 배 소출이 안 나면 어떻게 하느냐? 이런 걱정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걱정한다는 자체가 약속의 백성으로서 약속이 기준점이 되지 않고 내 생존이 기준점이 되었다는 것을 그냥 여과 없이 티내는 바가 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피를 믿어도 나를 구원 안 하면 어떻게 하느냐? 주께서 용서하셨다는데 진짜 용서 안 되면 어떻게 되느냐?

이런 걱정은 자기 구원욕에 빠져있는 거예요. 내가 구원받으면 나는 챙길 것 다 챙겼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건 구원도 아니지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기준점에서 시작된 것이 구원이고 천국이고 복이지 내가 기준이 되어서 뭔가 하나님의 이런 정보를 얻어서 내가 계속 잘 되겠다고 하는 그것은 기준점을 모독하고 반항하는 사고방식이 되는 겁니다.

10분 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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