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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1장 32절 (예언과 면역체계) 200317a-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1장 32절 (예언과 면역체계) 200317a-이근호 목사

강남강의 누가복음 1장 32절부터 보겠습니다. 31절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아멘.

마리아에게 천사가 와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마리아 몸에 임신케 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은 마리아의 무너짐. 마리아 자기 인생의 무너짐을 의미하는 겁니다. 마리아는 인간이죠. 하나의 인간. 여자. 인간.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면 자기 나름대로의 자기 역사라는게 있습니다. 자기의 스토리.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그 하루하루 자기 역사를 이어져나가는데 열중하고 있다. 그게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이죠.

그 열중하는 자기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되면 이게 되돌아보면서 그게 형성이 되고 정립이 되는데 이것이 무엇으로 작용하느냐 하면 자기의 자존감으로 작용합니다. 자존감으로. 그래서 사람이 죽을 수는 있어도 자기가 스스로 죽겠다고 결심은 할 수 있어도 자진해서 남한테 욕 얻어먹겠다는 그런 결심은 안하게 되지요.

죽을 때에도 포기 못 하는게 뭐냐 하면 자존감이에요. 자존심이에요. 그리고 그것은 왜 그러느냐 하면은 인간은 자기 모든 하루하루가 자기 역사 위에 형성되고 구축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종의 그 인생 자체가 고고학적이다 이렇게 보면 돼요.

퇴적물이 쌓이고 또 쌓이고 자꾸 여기에다가 또 집을 짓고 세월 지나면 무너지고 그 위에 후손들이 또 집을 짓고 고고학으로 발굴하게 되면 이 터에 옛날에 층마다 어떤 집이 있었고 어떤 역사가 있었다는게 나오잖아요. 역사 발굴 아닙니까.

인간은 자기가 지금 살아가고 힘들지만 버티는 버팀목이 뭐냐? 나에게도 역사가 있다는 거에요. 힘들게 살아온 역사가 있고 그 역사는 지금의 나의 자존감을 형성하기 때문에 여기서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 나는 좌절 못하는 이유는 과거의 내 역사가 아까워서라도 내가 여기서 무너지면 안되겠다.

그런걸로 자존감을 삼고 이게 남들 앞에 이게 내가 존재하는 의미가 되고 뜻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상대를 만나고 누구를 만나고 심지어 어떤 목사를 만나서 복음을 듣겠다 하는 그 의도도 목사 좋아라 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좋아라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의 역사를 괜찮은 역사로 만들어서 천국까지 계속 이끌고 가겠다는 자기 의미, 포기 못 할 자기 의미와 자존감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괜찮은 사람 만나면 자기 인생이 괜찮아진다. 참으로 상식적이고 당연해 보이지요.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훌륭하다는 소리를 들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건 훌륭한게 아니고 이기주의죠. 자기중심주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 훌륭하게 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나열하는게 성경책이 아닙니다.

성경책은 뭐냐 하면은 하나님에 의해서 무너진 사람입니다. 모든 자기 역사가 붕괴된 사람. 자기 과거의 축적되고 누적해온 그 찬란한 역사가 헛된 것, 빈 것 그리고 무의미한 것으로 드러나는 사람들의 나열. 이것이 하나님이 생각하는 신앙인입니다. ‘신앙인’.

자기 역사를 유지하는 자가 아니라 그게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고 본능이라는 것은 이것은 누구나 인정합니다. 우리 인간세계에서 누구나 인정하는데 인간들이 인정하는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인정하는 것을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을 안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에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역사 이끌어가는 그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내가 나 붙드는 겁니다. 내 자존감 붙들고 살아가는 것, 의미 붙들고 살아가는 것. 인간이 할 수 있는게 그것밖에 없지만 그러나 문제는 할 수 있는게 그것밖에 없는데 그것이 바로 신앙이 아니고 저주 받을 짓이 된다 이 말이죠.

그러면 하늘나라에서 성경에서 천국 가는 사람 신앙인은 뭐냐? 하나님에 의해서 무너진 것. 뭘 무너지느냐? 자기 역사 자체가 다 무너진 거에요. 이게 다 무너진 거에요. 인간은 자기 역사를 이렇게 쭉 이어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이렇게 와서 역사라는 이 철로, KTX 열차를 완전히 폭파시켜버리는 겁니다.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걸 가지고 ‘종말’. ‘최후의 날’. 종말 혹은 최후의 날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리아가 예수님을 임신한 것은 마리아 개인적인 입장에서 자기 자신의 최후의 날을 맞이한 거에요. 모든게 마리아 혼자 했던 모든 꼼수들이 다 박살난 겁니다.

마리아에게 개인적으로 일어났던 일이 사도행전에 2장에 보면 오순절 날 집단적으로 일어나죠. 그 집단적으로 일어난 결과로서의 만들어진 그 단체를 교회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라고 하는 것은 자꾸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는데 성경에서의 교회라고 하는 것은 머리되신 주님이 만들어내는 걸 가지고 교회라고 해요.

인간의 교회는 무너질 수 있고 문 닫을 수 있지만 주님의 교회는 어떤 경우라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다만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님의 그리스도의 몸을 교회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만만스럽게 간판 걸어서 대한예수교장로회 간판 걸어서 만들었던 그 교회가 문 닫는 것.

그러니까 그것이 교인수도 없고 헌금이 없어서 이렇게 다시 흩어지는 것 그걸 가지고 사람들은 아쉬워하고 있는데 따지고 보면 그것조차도 교회라는 것 조차도 어디에 포함되느냐 하면은 자기의 자존감과 의미를 챙기기 위한 자기 역사의 일부가 되어버리죠. 그거는 신앙이 아니죠.

흔히 이단들 특히 요새 유행하는 신천지 이단들은 이야기합니다. 예수님 우리 진리를 알고 난 뒤에는 새로운 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기존의 육적인 가족을 버리세요. 되게 믿음처럼 보이지요. 마태복음 10장에 나온 것처럼 천하 자식이나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다. 되게 신앙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그렇게 그런 논리를 주장해서 다시 뭉치는 데가 있어요. 그게 뭐냐? 바로 신천지라는 교단이잖아요. 신천지.

요즘 와서 뉴스 시간에 신천지 전에는 신천지 교회라고 이야기했는데 교인이라고 뉴스에 나왔는데 어느날부터 교인이라는 소리를 안해요. 뭐라고 하느냐 하면 교도라고 이야기해요. 신천지 교도. 그러니까 옛날에 마치 동학교도. 동학교인이라고 하지 않지요. 동학교도라고 하지요. 조선후기 정부에게 대들은 그런 폭도 같은 뉘앙스를 합류하고 있지요. 교도들. 신천지 교도들.

진짜 신천지가 진리를 알게 되면 신천지 자기 집단자체도 부정해야 돼요. 신천지 교단이 자기를 구원하는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할 몫이 아니고 그것은 주님이 스스로 하실 몫이 되는 겁니다.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야 되지. 내게 어떤 이익이 된다고 해서 내가 어떤 노림수를 가지고 예수님을 이용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 돼요. 만약에 우리가 예수님을 이용하게 되면 결국 남는 것은 뭐냐 하면 구원받은 나 자신이 되어 버렸어요. 구원받은 나.

예수님으로 가야될 길이 이 길이 두 가지 길이 있다면 진짜 천국에서 온 길은 주님이 오신 길은 하늘로부터 시작해서 하늘로 가는데 인간이 이걸 포기를 못하고 이게 안 무너지니까 예수님 십자가 복음 이용해가지고 자기가 천당가려고 하는 거에요. 이 노선이 그대로 유지되는 겁니다. 이건 자기 역사고 자기 자존감이고 자기 의미가 되는 거에요.

복음을 이야기하고 십자가 이야기해놓고 결국 가만히 보게 되면 예수님 것으로 가는게 아니고 시작을 예수님부터 시작했으면 예수님으로 가야되는데 그렇지 않고 나도 구원받았으니까 구원받은 것을 인정해 달라. 본인이 자존감을 남한테 남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쪽으로 자꾸 이게 빠져버려요.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나는 구원받았다 해가지고 새로운 교회라는 단체를 또 만들어요. 자기역사의 일부로서. 무너져야 된다니까요. 왜? 종말이니까. 그래서 여기 누가복음에 보게 되면 누가복음이나 사도행전에 항상 강조되는게 성령께서 오신다 했는데 성령께서는 언제 오시느냐 하면은 마지막 때 오시는 거에요.

구약에서 성신과 신약에 성령의 차이점은 뭐냐 하면은 구약의 성령은 마지막 때 나타나시는 분이 성령이고 마지막 때가 되기 전에 이 땅을 주도하시고 이 땅에 오셔서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나님의 언약대로 일하시는 분은 성신이고 마지막 때 오시는 분은 성신이 아니고 성령이 되는 겁니다. 성신이라는 분은 없어요. 성령이에요.

성령이라는 분은 실제로 인격적으로 오시는 분이에요. 성신은 언약의 신으로서 활동하는 그 활동하는 그 주체자, 인격적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자기 인격을 드러내지 않고 주도적이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시는 어떤 신. 하나님의 신이라고 하죠. 하나님께 종속된 신이죠.

그러나 신약에 보게 되면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예수그리스도에게 주도적으로 지시하고 이끄시고 명령하시는 겁니다. 성령께서는. 성신의 존재와 성령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시는 일이 보다 구체적이냐 드디어 모든 것이 완료적이냐 미완료적이냐에 따라서 성신과 성령이 구분되는 거에요. 누가복음에서는 성령부터 해서 계속 이어지는 겁니다.

여기 누가복음 1장 15절에 보면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라고 세례 요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기서 포도주를 먹지 않는다 해서 구약의 나실인. 술을 대지 않는 나실인. 나실이라는 뜻은 ‘바쳐진 자’ 뜻입니다. 민수기 6장에 나오는 이 나실인.

구약에서 대표적인 사람이 삼손이죠. 이 나실인같은 기능을 세례 요한이 하기 위해서 세례 요한의 어머니가 임신치 못하다가 드디어 하나님의 천사에 의해서 사명을 부여받고 태어난 아들이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의 하는 기능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기능을 미리 보여주기 때문에 예수님의 출생과 유사하게 임신치 못하는 여인에게 임신이 되면서 태어납니다. 임신을 못한다라는 것은 인간이 임신을 못한다 하는 이게 인간의 육의 노선, 아까 제가 처음에 이야기 한 인간의 역사가 도중에 끊어졌다 이 말이에요.

끊어져버린 거에요. 임신을 못하니까. 자식을 못 낳으니까. 끊어졌는데 끊어진 지점을 하늘나라에서 오셔가지고 이어져나가는 거에요. 개입하셔서 이어져나가는 거에요. 그냥 애기만 놓고 돌아가시는게 아니고 여기 어떤 내용이 실리게 되는 겁니다.

그 내용을 오늘 본문에 보게 되면 여기에 32절에 보면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이렇게 되어 있지요.

여기 다윗, 다윗이란 구약의 개념이 나오고 또 야곱의 집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야곱의 집. 야곱의 집이란 개념 나오고 구약 개념이죠. 또 왕 노릇이라는 개념. 왕 노릇. 그다음에 33절에 마지막에 보면 그 나라가 나와요. 그 나라. 이러한 네 가지 용어가 용어에 담긴 예언의 취지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두 담기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께 담겼다는 이 말은 세례 요한에게도 관련 있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간에 임신치 못한 분에게 임신하는 경우는 사무엘상 장에서도 한나에게도 그런 경우 있지만 마지막 때에는 직접 하나님의 아들이 모든 것을 완료시키기 위해서 마지막 때 나오는 거에요.

이 마지막 때냐 아니냐 하는 그 결정이나 그걸 파악하는 것은 인간이 갖고 있던 인간의 역사적 자존감, 의미, 이런 안목을 가진 사람한테는 종말이라는 것은 이게 알려지지 않습니다. 본인이 종말 되기 싫은데 무슨 종말을 원하겠어요. 본인은 계속 자기가 영원무궁하기를 바라지요.

마리아에게 마리아가 무너진다는 말은 마리아는 결코 영원무궁한 왕 나라에 또는 왕 노릇, 야곱의 집, 다윗의 그러한 기능을 할 수 있는 능력자가 아니다 라는 뜻을 의미하는 겁니다. 마리아 개인적 입장에서는 자기가 계속 살고 싶고 자기 역사를 유지하고 싶고 구축하고 싶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이룰 수 있는 성취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런 고집부리면 안되지요. 하나님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예언의 성취에 있지 우리가 사적으로 나는 죽기 싫어요. 나는 천국가고 싶어요. 그 소원 들어줄려고 하나님이 예언하신게 아니거든요.

마리아의 무너짐 또는 마리아에게 종말이 왔다 이 말은 평소에 인간들은 자기 역사구축에 온 신경과 다 쓰기 때문에 사실은 하나님께서 급작적으로 습격하듯이 일방적으로 임신을 해서 망정이지 마리아 만약에 임신 전에 마리아 불러놓고 천사가 중매쟁이 불러 가지고 너 요셉하고 임신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하고 성령으로 임신해볼래? 뭐 의논하고 이런게 필요치 않아요.

그거 필요했으면 마리아는 이미 마리아도 포함해서 모든 인간도 마찬가지지만 자기 역사가 자존심이라고 했지요. 자기 자존심이 있고 역사구축에 대한 사명감같은 게 있는 이상은 극구 이러한 하나님의 재앙을 배격하고 밀어내기 위해서 아주 안달이 날 겁니다. 안달이 나요.

이 점이 굉장히 중요한데요. 사람이 태어나서 본성적으로 자기 자존심과 자기 의미와 자기 역사를 꼭 쥐려고 하는 순간부터 우리 인간은 극구 복음적인 내용, 복음의 말씀, 성경말씀을 비롯해서 복음 십자가 내용 이것은 아주 뭐 온 힘을 다하여 밀어내기에 급급해요. 밀어내기에.

요즘 같으면 좋지 않습니까. 신종 코로나 걸렸다 핑계대고 그래서 교회 안가는 것은 정당하다. 뭐 이런 식으로. 관심사가 복음이나 이런데 관심 있는게 아니고 나 어떻게 이 난리 속에서 버텨내는가? 버텨내야 내 역사가 계속 유지되니까요. 내 의미가 존속되니까. 안 망가지고. 안 망가지고 안 무너지고 계속 버텨낼 것인가. 그런 식으로 자기 변명, 핑계 얼마나 좋습니까.

병원에 있어서 교회 못나왔습니다 할 핑계 좋지요. 그런데 그 핑계가 있다는 말은 뭘 뜻하느냐 하면은 평소에 내가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본능이 내 것 지키는데 극구 거부하고 싶다는 뜻이에요. 저는 이것을 오늘 제목으로 삼고 싶은데요. 이게 뭐냐 하면은 면역체계에요. 면역체계. 자기를 위한 면역체계가 자동적으로 발동하는 겁니다. 발동하는 거에요.

자, 마리아는 무너짐 보통 모든 인간들은 면역체계 가동. 작동. 면역체계라고 하는 것은 내가 ‘나’라고 형성되는 이 바운더리에 외부 것이 왔을 때에 일단은 적이라고 간주하고 강력하게 밀어내는 본능을 두고 이야기합니다. 백혈구가 이런 역할을 한다고 하지요.

세포가 왔을 때 백혈구가 마중 나와서 잡아 먹어버리면 고름이 된다 하잖아요. 생물학적인 체계 자체가 자기 방어체제가 되어 있어요. 이거 안 되어 있으면 인간은 못 사니까. 이 병균 많은 세균덩어리 공간에서 못 사니까 면역체계로서 자기 자신의 몸을 자연적으로 지탱해왔지요. 자연적으로 지탱해왔다는 겁니다. 지탱해왔다.

오늘날 과학에서는 이걸 지탱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 오늘날 생물학에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게 진화의 결과다. 갑자기 진회가 튀어나오고 이렇게 하는데. 인간에게 진화라고 하는 것은 생물학에서 진화라고 하는 것은 내용을 뜯어보면 진화내용이 하나도 없어요.

그냥 변화했다 뿐이에요. 몰라요.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렇게 변화되었습니다. 왜 변화되었는데? 몰라요. 그냥 그렇게 변화되었습니다. 그걸 사람들은 그냥 변화되었다 하니까 자기 무식함이 드러날까 싶어서 진화되었다. 진화라는 용어를 그럴 때 사용하는 겁니다.

사실은 변화되었다는 내용인데 이걸 진화되었다고 하니까 자연도태에 의해서 스스로 그렇게 뭔가 발전된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러한 의식 자체가 바로 나의 우리의 인류의 역사를 중요한걸로 가장 중요한걸로 여기자 이렇게 그러한 태도에서의 반응을 그렇게 반영하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예를 들어서 다니엘 5장 같은 경우를 보게 되면 인간이 자기 역사 구축하기, 자기 역사 방어하기, 이런 태도가 한꺼번에 아주 얼마나 헛된 짓인가 드러나요.

다니엘 5장 5절에 제가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6절에 “이에 왕의 즐기던 얼굴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친지라.”

갑자기 사람 손가락이 나타났어요. 사람 몸체는 안 나타나고 사람 손가락이 나타나가지고 글씨를 쓴다 이 말이죠.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라는 글씨를 쓴거에요. 나중에 다니엘이 그걸 해석을 했지요.

“부족하다 부족하다 다음 나라는 바빌론이다” 라는 뜻으로 이렇게 그러한 해석을 내렸는데 이게 그 벨사살 왕의 입장에서는 이 자체가 무너짐이고 그 무너짐 못지않은 무너짐이 바로 마리아가 아무 혐의도 없이 사전에 아무 없이 자기 몸을 그냥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월세나 전세 내지도 않고 자기 몸을 그냥 메시야 마지막 종말에 모든 것을 말씀대로 예언대로 완성하실 분을 잉태케하는 자궁으로 일방적으로 사용했다는 자체가 마리아 입장에서는 이게 무너짐이란 말입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자기 나름대로의 곱게 간직하고 싶은 자기 자존감이나 자기 나름대로의 살아온 역사라는게 있어요. 그게 묵살당했잖아요. 완전히 개무시 당했다고요. 이러한 상황을 가지고 제가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오순절 성령오심’이라고 했지요.

인간이 뭐든지 예상한다는 것은 자기 역사를 좀 더 멋들어진 역사, 옳고 정당하고 바르게 살았다. 제대로 인생 완전하지는 않지만 나름 착하게 살려고 애썼다를 증명해줄 근거로서의 자기 역사. 그 역사를 꽁꽁 쥐고있었던 것이 인간이거든요.

자기 역사가 손실된다고 하면 그곳에 안 갈려고 하고 빠지고 피하고 이게 아까 말한 인간이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자기를 위한 면역체계거든요. 그런데 그 면역체계를 뚫어버렸어요. 마치 허공에 손가락이 나타나가지고 글씨를 쓰는 것처럼. 누가 글씨를 쓰라고 했습니까? 예상했습니까? 예상 못했지요. 그냥 일방적으로 손가락이 글씨 쓴 거에요. 충격이고 쇼크죠.

그 글씨가 바로 성경 우리가 오늘날 보고 문자로 되어 있으니까 기독교 서점 가가지고 돈 한 몇 만원 주고 사니까 흔해 빠진 것이 말씀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 말씀을 책에다가 놓을 것이 아니고 허공에다가 던져가지고 허공에다가 ㄱㄴㄷㄹ글자가 전부 날라다녀야 돼요. 세종대왕이 만든 한자가 공중에 날라다니면서 거기에다가 손가락까지 나타나가지고 글씨를 이렇게 공중에다가 쓰던지 벽에다 쓰던지 쓴다고 해보세요. 기절초풍할 일이죠.

그 때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몸 면역체계 나의 역사를 와르르 다 붕괴되고 무너지는 겁니다. 인간의 면역체계는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면역체계란 내 살 길 내가 알아서 하겠다 이 말입니다. 내 살 길 내가 알아서 하겠다.

그러니까 이 말은 나는 어떤 경우라도 안 무너지리라. 안 무너지리라. 어떤 경우라도 무너지지 않으리라. 나는 망하지 않으리라. 나는 나를 지키는데 혼신의 노력을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리라. 그래서 나의 역사 나의 이 가치는 궁극적으로 가치 있는 절대적 가치 이것밖에 없는 내 가치를 내가 안 지키면 누가 지키느냐? 이게 바로 인간의 고집, 인생 사는 인간의 고집이에요.

고집을 공중의 손가락 가지고 한방에 확 다 보내버렸잖아요. 그게 ‘성령오심’이에요. 인간의 이 속내에 이건 아주 강력해요. 말씀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지레 겁을 먹고 강력하게 밀어내는 겁니다. 어쨌든간에 복음을 안 들을려고 애쓰고 어떤 경우는 말씀을 안 들을려고 애쓰고 요령 피우면서 그냥 피해다니는 것, 그게 인간의 본성이죠.

그런데 마리아의 무너짐이란 하나님께서 훅 들어온거에요. 그냥 훅 들어왔어요. 훅. 오늘 제목을 ‘훅’. 훅 들어온거에요. 그냥 임신을 한 거에요. 아니되옵니다 이런 말 할 새도 없었어요. 그냥 몸이 자기 배가 불러오는 겁니다. 안에 뭐가 들었는 모양이라. 예수님이 들었겠지요.

이걸 다른 말로 하면은 예언이 부풀어오른거죠. 흔히 인간 몸에 독사의 독이나 어떤 안 좋은 요소가 들어오게 되면 피부가 부풀어오르지요. 인간은 죽기 전에도 이렇게 죽고 난 뒤에 몇 시간 안지나면 세균에 의해서 혓바닥부터 해서 모든게 부풀어 오른다고 되어 있어요.

그 마리아가 원래 마리아의 몸은요 전부다 누가 통제하고 누가 관리하고 마리아 본인의 마음과 의식이 자기 몸을 통제하는 겁니다. 어떤 행동을 결정한다든지 선택한다든지 이걸 이제 아까도 말한 것처럼 마리아의 기억에 준해서 현재의 결정을 내리는 거에요.

그런데 자기 몸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자기가 관리하고 통제한다고 여기는 이 한복판에 낯선 어떤 사건이 들어 닥치니까 마리아 몸이 아랫배가 부풀 듯이 이것은 곧 하나님의 예언이 부푼 거에요. 이것은 뭐냐 하면 마리아의 마음과 생각보다도 뭐가 더 크다? 하나님의 예언, 예언을 이루는 하나님의 의견, 마리아의 의견보다 하나님의 의견과 하나님의 결정사항과 의사가 더 큰 거에요. 더 우세한 거에요.

이것은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어머니 이름이 엘리사벳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엘리사벳과 사가랴 이 부부도 세례 요한의 아빠 엄마지요. 이 사람도 마리아하고 같은 마음이에요.

왜냐하면 그들은 애기를 못 낳아요. 못 낳는데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스케쥴이 하나님의 계획이 일방적으로 훅 들어온 겁니다. 마리아의 예언이 부풀어옴으로써 기존의 그 사가랴의 집안의 모든 예상을 뒤엎어버리고 심지어 그렇게 태어난 세례 요한의 인생도 껍데기만 세례 요한이지 안쪽에서는 하나님의 예언이 가득 찼기 때문에 예언대로 세례 요한은 그냥 모든 자기 인생 자기 역사는 산산조각 찢어져야 되겠지요.

세례 요한이 죽을 때 본인이 그런 죽음 죽고 싶어서 미리 예상했습니까? 자기 목이 쟁반에 잘려서 죽는다는 것. 그것도 왕이 요구한 것이 아니고 그 여자애가 요구한대로 자기 운명이 여자애에게 종속된다는 것, 그처럼 그렇게 수치스러운게 없겠지요. 지난 주일 낮에도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만은 인간이 죽음보다 더 싫은 것은 내 몸이 타인에 의해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이런 것이 더 모욕감을 느끼게 되어 있어요.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어서 누구나 선악을 알기 때문에 죽던 살던 내가 결정하고 싶고 내 결정에서 내가 유지되고 싶어하는데 내 뜻대로 내 결정에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고 타인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내 인생이 꼬이든지 어떻게 되게 되면 그것처럼 자존심 상하는 일이 없을 겁니다. 그것처럼 수치스러운게 없을 거죠.

예수님도 스스로 돌아가셨습니다. 사람 손에 붙잡혀서 돌아가셔야 될 이유는 주님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맡겼기 때문에 이 죄악에 맡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쨌든 간에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마리아는 자기 원대로 뜻대로 되지 않고 훅 하나님의 예언이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마리아의 자기 역사, 자기 의미, 자기 자존감은 와장창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자, 그렇다면 그다음에 우리가 생각할 것은 이 예언 아까 예언 여러 가지 이야기했지만 다시 한번 적어볼까요. 다윗의 집, 다윗의 후손되기. 그 다음에 야곱의 집. 그 다음에 왕 노릇하는 그런 기능적인 왕 노릇이라는 기능적의 완성.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영원함.

이런 요소들이 예언의 내용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데 이런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정황이 뭐냐 하면 바로 이 세상의 죄라는 거에요. 이 세상의 죄가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죄가 뭐냐? 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되지 않는 것, 하나님의 예언되지 않는 것, 하나님의 예언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

예언되지 않는 것보다도 그 반대하는 것도 예언되었다 치면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반발하는 것 그 세력으로 이 세상이 가득 차 있던 겁니다. 이 세상이. 충만했던 거죠. 이 사실을 그동안 인간은 모르고 마치 이 세상이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따뜻한 온실인냥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거기서 생일잔치도 하고 환갑잔치도 하고 결혼도 하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죄라는 것, 죄가 있으면 여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있지요. 진노를 유발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를 유발하고 지옥불로 데려가는 그런 요소로 가득 찼음에도 불구하고 이걸 전혀 못 느끼는 거에요.

신종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좀 죽어나갈 때 이때 사람들이 정신 차리지 만약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함께 있어도 아무 증상이 없으면 이 세상은 그냥 좋은 세상이에요. 유별나게 신종 코로나가 19가 COVID-19 이 어떤 증상을 발휘하니까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이지 아무 증상이 없으면 신종 코로나 이 바이러스가 없다고 한다면 그나마도 오직 유일하게 기대 걸 수 있는 세상은 이 세상밖에 없다고 이렇게 사람들은 생각하는 겁니다.

인간이 바이러스 없어도 바이러스 증상은 결국은 뭐였던가요? 기침한다. 폐렴같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결국 증상이 뭐였던가요? 죽음이지요. 공동묘지로 가는 거지요. 죽음이지요. 그러면 죽음 자체가 뭐냐 하면은 이 땅이 수상하다는 증상이잖아요.

그러면 신종 코로나 있기 전까지는 사람은 죽었어요? 안 죽었어요? 죽었지요. 사람이 그냥 늙어죽는다 하지 말고 늙어 죽던 이 세상이 정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죽음이라는 증상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전부다 바보, 등신이 되어 가지고 자기가 정상적인 인간인 줄 알고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죽어가고 있으면서.

성경 말씀은 인간은 왜 죽는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 때문에 죽는다고 분명히 명문적으로 진짜 손가락 가지고 글씨 쓰듯이 그렇게 분명하게 글자로 알려줬음에도 불구하고 줬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이 세상을 이 세상에 미련 두고 집착하고 있다 이 말이죠. 죽으면서도.

인간자체가 악마의 바이러스에 걸리면서도 사람들 생각하기를 자기 자존심만 챙기는 거에요. 악마의 바이러스가 가득 찬 것도 그것도 귀하다는 겁니다. 왜? 그게 나니까. 악마의 바이러스로 가득 차 있는 내 모습이 곧 ‘나’가 되어버리죠. 자기 자신을 부정하거나 부인할 줄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했겠어요? 죄를 죄라고 가르치지 않았던 다시 말해서 예언이 도입되어야 죄가 드러나니까 예언을 차단시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차단시키면서 약속과 언약을 차단시키면서 이대로 사는 것도 정상이다라고 우겼던 배후에 누가 있느냐? 악령이 있었던 겁니다.

성경에서 성령을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그냥 이야기하면 안 되고 악령의 존재를 전제로 해서 이야기되어야 돼요. 악령의 존재를. 그 점을 먼저 잠시 보겠습니다. 여러분 다 아는 이야기지만 잠시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그 다음에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했다.”

여기에 “내가” 라고 하신 분이 누구냐 하면 바로 현재는 누가복음 1장에서는 마리아 몸에 들어가 계신 그 분을 말합니다. 마리아의 몸에 훅 생겨버린 그 분. 아기 모습으로 태아의 모습으로 있는 그 분이 말하기를 자신의 기능이 뭐냐 하면 귀신을 쫓아내서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일을 하신 분이 지금 마리아의 몸에 그냥 들어온게 아니고 훅 들어오신 거에요. 그냥.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는 성령으로 훅 우리 몸에 악마의 바이러스 죽음의 바이러스 죄의 바이러스밖에 없는 우리 안에 성령을 통해서 주님이 훅 들어오신 거에요. 마리아의 그 팔자나 우리 팔자나 동일한 팔자가 되는 겁니다. 이미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우리의 모든 자존감과 나의 찬란한 역사 지키기 그런 것은 다 그런 시도는 헛된 시도에요. 소용 없는 겁니다. 그 공중에 손가락 썼던 그 글씨가 아예 공중이 아니라 우리 안에 들어왔다고 생각해보세요.

자, 그러면 여기서 말씀드리는 것은 인간이 악령이 있다는 말은 곧 무엇을 의미하느냐? 신천지 교인, 요새는 교도라고 하니까 교도들의 그 의식을 보면 악령이 들어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를 잘 알 수 있어요.

신천지 교도들의 특징은 부적같은 것을 지님으로서 자기의 모든 불안감을 해소하려는데 있어요. 부적같은 것. 어떤 부적이나 어떤 물건. 신기한 물건을 하나 소유함으로서 구원받으려고 하는 거에요. 자기가 영원히 행복해지고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기 위해서 뭔가 하나 소유해야 된다. 뭔가 소유. 소유. ‘소유’. 뭔가 소유해야 한다는 거에요.

신천지 교도가 소유한 것은 신천지 교단 자체거든요. 교단 자체. 신천지 교단을 소유함으로써 내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내가 살 수 있는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고 챙길 수 있는 방법을 뭔가 소유하는 거에요. 왜냐하면 그들에게 그들은 요한계시록에 꽂혀있거든요.

요한계시록에 보니까 세상에 지옥이 있고 멸망을 당한다 하니까 그 딱 보는 순간 뭐라고 생각하느냐 하면 이 생각 드는 거에요. 신천지 교도들이. 요한계시록을 보면서 늘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뭐냐 하면 살아야겠다. 또는 살아남아야겠다. 살아남아야겠다.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부적이나 안 그러면 신기한 효과 있는 것. 성경의 해석이라든지 이런 것. 신천지 교단. 이런 것들을 소유하게 되면 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거에요. 문제가 뭐냐 하면 살아남는다는 이게 안 무너지려고 하는 거에요. 나는 망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나는 지옥가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이게 바로 악령이 계속해서 신천지에 힘을 실어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딱 하나밖에 없어요. 살기 위해서 무슨 짓도 다한다. 살기 위해서. 성경에서는 죽으라고 이야기하는데 여기 신천지는 살아야겠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얼마나 악마적입니까? 이게 신천지만 해당되는 이야기겠어요? 오늘날 한국 교회는 해당 안 됩니까? 다 해당되는 이야기에요. 교회 안가는 사람도 해당되는 이야기에요.

종교가 없어도 마스크하는 것 보세요. 교회 안 다녀도 자기가 알아서 손 씻고 하는 것 보세요. 나라에서 손 씻으라 시키는거 다 해요. 왜? 살기 위해서. 그런데 인간은 살기 위해서 태어난게 아닙니다. 죽기 위해서 태어난 거에요.

그러면 자기가 죽는 이유는 뭘까요. 죽는 이유를 한번 대보란 말이죠. 살기 위해서 그렇게 애를 썼는데 결국은 나이 70, 80, 90 되서 죽는 이유는 뭐에요? 앞뒤가 안 맞잖아. 앞뒤가 안 맞잖아요. 뭐 진화론이 어떻고 과학이 물리학이 어떠느니 과학을 논하고 철학을 논하고 백날해도 늙어 죽는데 어떡해. 늙어 죽는데. 죽는 문제 어떻게 할 건데요.

죽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죽고 난 뒤에는 아무도 모른다. 자기 혼자 모르지. 성경에서는 다 이야기했는데요. 인간은 죽는 것이 그냥 죽는 것이 아니에요. 살라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악마의 바이러스, 죄의 바이러스 죄값으로 죽어요. 죄값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으로 죽는다고요. 그 하나님이 지금 마리아의 몸에 지금 임신해 있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 내막을 하나님의 예언으로 예언을 통해서 펼쳐내고자 하는 겁니다. 물론 인간은 이런 이야기가 듣기 싫어서 강력하게 밀어내겠지요. 나 사는데 보탬이 안 된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인간이 밀어낸다고 하나님의 일이 겁나가지고 멈출 분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강제적으로 일방적으로 인간이 싫어하는 종말을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인간세계 역사 속에 종말을 넣어버린 거에요. 마리아와 의논도 없이 그냥 일방적으로. 또 세례 요한, 엘리사벳과 의논하지 않고 사가랴와 의논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종말을 집어넣은 겁니다.

제가 지난 오후 설교에서 이런 이야기했습니다. 교회 수십 년 다니면서 열심히 기도했는데 하나님께 받은 택배 안에는 택배를 받았는데 택배 안에 택배상자 안에 뜯어보니까 아무것도 없더라 했어요.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30년, 40년 교회 다니면서 주시옵소서 했는데 막상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버린 그 택배상자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복음대로 목회하고 복음대로 설교하게 되면 아마 하나님께서 이쁘장한 교회하나, 100명 200명 욕심안내도 50명이라도 이쁘장한 교회 되겠지. 하나님이 의도한 것은 이런 소망마저 작살내시고 아무것도 없는 빈 상자에요. 그냥 빈 공기만 들어있는 상자.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은근히 기대하고 그래도 교회 와서 기도하면 뭔가 주시겠지. 예수 십자가 믿고 복음 믿으면 뭐 주시겠지 뭔가 주실게 있을거야 은근히 기대했던 사람은 얼마나 여기서 실망스럽겠습니까? 아무것도 없다는데.

그런데 아무것도 안준다는 것은 누구에게? 나에게 아무것도 안준다는 것은 나 자신을 제대로 알아라 이 말이죠. 그게 복이에요. 뭔가 내가 받을만한 가치나 권리가 있고 교회 다녔으니까 그 긴긴 역사가 효과 있어서 뭔가 얻어 챙길 것이고 그럼 결국 뭐겠어요? 나만 살겠다는 그 의도 자체가 과연 나만 살겠다는 그 ‘나’가 하나님께 구원받을 대상이 되느냐 하는 문제, 구원받을 가치나 권리가 있느냐하는 문제.

주께서는 너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려주는 그것마저 더 큰 복이 어디 있습니까? 비로소 아무것도 내가 챙기고자 했던 그 생각 자체가 오후 설교에 보면 인생 헛 산 거에요. 엉터리로 산거에요. 엉터리로. 아무것도 안줍니다. 왜? 아무것도 안 줄 뿐더러 오히려 뭉개뜨리지요. 무너지게 만들지요.

종말을 앞당겨서 받은 사람 다시 말해서 십자가가 앞당겨서 온 사람만이 이게 바로 영생에 들어가는 천국 백성이 되는 겁니다. 내가 받을 것은 없고 주께서 일방적으로 집어넣어준 것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말씀이고 약속이고 언약이고 하나님의 예언이 되는 거에요.

본인이 안 무너지니까 자꾸 뭔가 주시겠지를 기대하는 거에요. 생활이 어렵다. 직장에 짤렸다. 수입이 없다. 그래도 수십년동안 교회 다닌게 있으니까 뭔가 주시겠지. 아무것도 없는데요. 몸이 아프다. 그동안 복음 위해서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마지막 때는 건강케하시겠지. 안 건강하고 늙어죽는데요. 아파 죽는데요.

얼마나 그동안 신천지를 비롯해서 한국교회가 하나님과 인간을 상대로 사기를 쳐왔습니까. 그게 뒷 배후에 악령이 이미 여기에 상주해서 이 세상을 꽉 쥐고 있어서 그런 거에요. 마치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이 세상에 꽉 차있는 것처럼 이런 악마의 사기술이 이 세상을 꽉 차서 사람들로 하여금 십자가 복음의 광채 그 진수를 못 보게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속고 사는 거에요.

그래서 악령은 지금도 복음 못 전하게 하기 위해서 극구 복음 전하는 그들을 밀어내고 배척하고 그만해라 안 듣겠다고 몸부림치고 그러지요. 자기 역사, 자기 자존심과 자기 의미를 무너지기 싫어서 빼앗기기 싫어서. 택배상자 속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욥은 아무 것도 없는 정도가 아닙니다. 원치 않는 오히려 고통이 배달되는 거에요. 왜 고통 주십니까? 욥이 하나님께 대드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간단해요. “내 것에 내 맘대로 사용하는데 네가 왜?” 이게 정답이에요.

욥은 자기 몸이 자기 것이라고 여겼어요. 지난 과거 지난 역사가 있다고 생각하고 고고학적 역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 몸을 계속 자기 것이라고 오해한 겁니다. 내 건데 주님께서 내 것에 십자가 고통을 주신 건데 물론 나중에 그 십자가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관련된 언약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욥은 아프니까 아프다고 이야기한 거에요 그냥. 욥 입장에서는 왜 아픈지 모르겠다는 거에요. 여전히 구약적 인물이기 때문에 그런데 신약에서는 바로 그것은 신약에서는 성령을 받으면 성도는 바로 그 정도를 이겨내 벗어날 수 있고 극복해야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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