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설교 / 삼손의 힘 / 200301
삼손의 힘 200301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머리카락 이야기인데 삼손이 보통 힘이 세다고 하는데 민수기 6장에 보면 머리카락과 포도주가 상당히 중요해요. 그리고 머리카락과 포도주와 또 하나 세 가지가 있는데 중요한 게 머리카락과 포도주와 그리고 제물 바치는 것, 이 세 가지가 중요해요.
세 가지가 중요한데 이 세 가지가 삼손한테 다 일어납니다. 민수기 말씀은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율법이죠. 율법을 줬으면 사람들은 그 율법을 지키려고 할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천사가 나타나가지고 마노아 가정에 천사가 나타나가지고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게, 민수기 6장에 나오는 그 말씀을 지키는 게, 아니고 내가 지킬 사람을 따로 보내주겠다는데 그것이 누구냐? 삼손이라는 사람입니다.
여기 삼손, 민수기 6장 19장에 보게 되면 자기 몸을 구별한 나실인이라고 되어있는데 나실인 되려면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하나는 머리카락 하나는 포도주와 관련해서 포도주를 입에 대면 안 되며 세 번째는 마지막에 나실인은 자기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섞어 넣는 거예요. 원래 제물은 사람의 몸을 섞어 넣을 수 없어요. 왜냐하면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은 하나님의 거룩한 제물에 들어가질 않습니다. 하나님께선 죄인 대신 양과 염소와 소를 잡으라고 이야기하지요. 그 뜻을 아시겠지요? 대체하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그 만큼 더럽다는 거예요.
더럽기 때문에 더러운 인간은 하나님께서 받질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과 대체하는 그것이 결합이 되면서 대체하는 것은 안 더럽거든요. 그래서 인간을, 죄인을 뭐로 만드느냐? 의인으로 만들어주는 거예요. 대체와 결합이 된 그것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는 겁니다. 더러운 것은 내 이름이고 대체한 것은 주의 이름이고. 그래서 로마서 10장에 보면 주의 이름으로 구원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할 것은 뭐냐? 주의 이름을 평소에 내가 나를 아끼고 부르던 그 마음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이제는 나를 안 부르고 나를 안 내세우고 누구를 부르느냐?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이름이라하는 것은 존재가 있다는 거예요. 존재가 없으면 이름이 안 붙여지니까. 나라는 존재 제치고 주의 이름, “주님이 저를 구원하셨잖아요.”라고 외치는 것, 바라는 것, 그게 바로 신약에서 주의 이름으로 구원받는다는 뜻입니다. 나는 이것보다 더 쉽게 할 수가 없어요. 대체했다는 겁니다. 대신한 거예요.
그럼 삼손은 뭐냐? 민수기에 나오는 나실인이라는, 나실인이라는 것은 바친다는 뜻이에요. 나실인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는 것이 아니에요. 대체인물로 없던 인물이 새롭게 출생을 해요. 출생할 때 그 부부가 상의해서 출생하는 것이 아니고, 천사가 와서 예언을 합니다. “너희가 애가 있나, 없나?” “없습니다.” “곧 애 생길거야.” “누가 생기는데요?” “나실인이 생길거야. 그 나실인의 운명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대체해서 구원한다는 그 사실을 너희에게 일러 줄 거야.”라고 하면서 뭐냐 하면 부모 된 자는 포도주를 입에 대지 말라고 그렇게 한 거예요.
여기 그림은 사자 잡는 게 이슈가 되었는데 사자 잡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포도주를 입에 대지 말라, 니가 낳은 자식은 인간의 혈육에서 나을 수 없는 나실인을 대체물을 만들어서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고 이야기한 거예요.
그래서 나실인으로 삼손이 태어났거든요. 삼손이 태어났는데 삼손은 자기 할 일이 뭔지를 몰랐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힘이 세. 그냥 나는 힘을 한번 과시해 볼까가 아니라 힘이 센 거예요. 자기의 힘이 어디서 나온 것을 자기가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민수기 6장에 보면 절대로 머리를 깎아서는 안 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머리 깎으면 안 되는 거예요. 머리카락이 계속 자라나는 거예요. 머리카락이 자라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간의 힘 말고 하나님이 주는 힘이 살아있는 존재자, 그게 삼손이 되는 겁니다.
삼손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아야 돼요. 그러면 머리카락을 묶든지 해야 하든지 하는 거예요. 그런데 삼손이 본인이 이 힘 가지고 어디에 쓸 데가 있을까 했는데 삼손은 그 힘을 어디에 썼느냐 하면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 힘을 사용한 겁니다.
자기의 여자를 사랑하기 전에 사자를 만났는데 사자를 공격해가지고 거기서 죽였지요. 죽여 놓고 다시 오니까 사자 안에서 맛있는 게 있었어요. 꿀이 나왔다 말이죠. 그래서 사자는 죽이고 꿀을 얻었습니다. 이걸 가지고 어디에 사용하느냐 하면 자기 애인을 빼앗아간, 자기 애인의 종족인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이 그 여자 좋아한다니까 일가친척들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그 여자는 안 돼, 못 줘.” 이렇게 하거든요. 여자는 차지하고 싶고 그 가족들이 그 여자를 못 주게 하니까 삼손이 어떻게 했느냐 하면 수수께끼를 냅니다. “강한 것에서 단 것이 나온다. 사흘 만에 풀어라. 이 수수께끼를 풀어라.”
이 수수께끼는 하나님의 복음과 같아서 풀 수가 없어요. 내가 자기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한테는 이게 풀리지 않아요. 하늘의 힘이 온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삼손은 못 풀 줄 알고 못 푼다는 것을 빌미로 해서 벌칙으로서 블레셋을 조져버리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놓고 이스라엘의 구원자 블레셋을 이겼잖아.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블레셋을 친 게 아니고 건방지게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안 놔주니까 화가 나서 친 거예요. 사적인 연애감정이라 말이죠. 연애감정을 빌미로 해서 하나님의 힘을 사용한 거예요.
그런데 그게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여자가 삼손에게 눈물 흘리면서 비밀 알려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비밀을 알려줬어요. 내가 사자를 쳐서 거기서 꿀을 내었다. 강한 것을 쳐서 꿀을 내었다. 이 사건을 말한 것이다. 그것을 이야기해버리니까 이번에 삼손이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느냐 하면 이건 너희들이 알아서 낸 것이 아니고 내 사랑하는 여자를 꼬셔가지고 냈기 때문에 너희들 한번 당해봐라 해가지고 3천 명을 죽여 버립니다. 3천 명을 죽여요. 전염병도 아닌데 뭔지 모르지만 3천 명을 죽여 버려요.
그 다음에 두 번 째, 여자를 유명한 여자 삼손과 드릴라, 영어로 데릴라라고 하지요. 드릴라를 만나지요. 또 여자 문제가 걸렸습니다. 그 여자 블레셋 여자예요. 그 여자를 차지하려고 하는데 블레셋에서 결혼 못 하게 만듭니다. 결혼 못 하게 하면서 블레셋 사람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삼손이 힘이 센데 도대체 어디를 봐서 힘이 센지를 니가 니 우리 민족이니까 여자보고 알려달라고 해가지고, 만약에 알려주지 않으면 니 집안 블레셋 집안을 다 없애버릴 테니까 반드시 너는 삼손한테 이야기해가지고 머리카락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물어라.
첫 번째는 삼손이 아버지 어머니가 포도주를 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쓰시는 종이 되지요. 두 번 째는 뭐냐? 머리카락과 관련된 문제가 나오지요. 여자가 애걸복걸해가지고 결국 머리카락에 힘이 있다는 걸 알고 머리카락을 잠자는데 확 끊어버렸어요. 그래서 블레셋한테 잡히게 됩니다.
첫 번 째 두 번 째 세 번째지요. 첫 번 째는 포도주 먹지마라. 이건 삼손과 부모가 그렇게 했고, 두 번 째는 머리카락의 비밀은 소용없게 되었지요. 세 번 째 남았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 내 한 몸 바쳐서 내 한 몸 바쳐서 나라가 사는 것, 그것도 삼손이 임의대로 한 게 아니에요. 여자 밝히다가 걸려가지고 잡혀가지고 눈 다 뽑혔어요.
그 때 마지막에 죽여 달라 하지요. 죽여 달라, 이건 내 사는 걸 포기한 겁니다. 이것은 주께서 나실인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제물에 들어갈 수 없는데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대체하는 사람은 들어갈 수 있는 정도가 아니고 필히 주인공으로 들어가야 된다는,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대체물로서 필히 죽는 것, 죽을 때 그 예수님의 죽으심이 연관된 사람, 같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 그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진짜 이스라엘 백성이 된다는 사실을 삼손을 통해서 보여준 겁니다.
그래서 삼손이 마지막에 기둥에 사이에 끼어서 무너져서 삼손이 살아있을 때 죽인 사람보다 같이 죽을 때 죽은 사람이 더 많다. 그리고 난 뒤에 이스라엘은 몇 년 동안은 7년인가 모르겠는데 몇 년 동안은 태평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처럼 모든 성경은 바로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모든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경유해서 성경을 해석하게 되면 그 해석이 유일한 옳은 해석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마땅히 죽은 자로서 사랑이 나오게 하옵소서. 주께 쓰여지기를 바라면서 주 앞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