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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사무엘상 55강(새로움), 마태복음 117강(기싸움). 191231강의-

대전-55강 사무엘상17장55절(새로움)20191231-이 근호 목사

사무엘상 17장 55절부터 읽겠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향하여 나감을 사울이 보고 군장 아브넬에게 묻되 아브넬아 이 소년이 뉘 아들이냐 아브넬이 가로되 왕이여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매” 아브넬은 사울의 장수입니다. 56절, “왕이 가로되 너는 이 청년이 누구의 아들인가 물어보라 하였더니” 57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블레셋 사람의 머리가 그 손에 있는 채 아브넬이 그를 사울의 앞으로 인도하니” 58절, “사울이 그에게 묻되 소년이여 누구의 아들이뇨 다윗이 대답하되 나는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니이다”

사울에게 있어서 다윗은 어떤 존재냐 하면은 그냥 새로움이에요. 새로움. 새롭다는 말은, 여러분, 새롭다고 하면 굉장히 좋아 보이지만, 사울에게는 이 새로움이 오히려 자기를 왜소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자기의 존재가 갑자기 없는 존재가 돼버리고 다윗 앞에서 졸지에 무시당한 셈이 돼버리죠. 사울이 생각했던 세계가 이만큼이라면, 사울은 왕이기 때문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 하면은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게 속해있다고 생각을 한 겁니다. 내게 속해있다. 속해있는 게 A,B,C,D.. 뭐 여러 가지가 있겠죠.

예를 들면 어떤 가정이 오랜 만에 휴가를 맞아서, 여기는 휴가를 가면 주로 어디에 가죠? 대전 사람들은 계룡산에 갑니까? 대천해수욕장이나 뭐 이렇게 가족끼리 휴가를 내서 바닷가나 산으로 간다면, 그 가족 한 사람 한사람은 그 사람들이 태어날 때 호적이 어디에 등록이 되어 있습니까? 동사무소에 등록이 되어 있죠. 그렇죠.

그럼 그 사람은 한 가족인데, 아빠 있고 엄마 있고, 자식이 있으면 이 사람의 모든 것이 국가에 등록이 되어 있죠. 그럼 그 사람들이 대천해수욕장에 놀러간다. 그러면 그 사람이 놀 때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은 대천해수욕장에서 놀면서도, 노는 그 한사람, 한사람은 이 대한민국에 속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놀고 있는 거예요. 그 가족들이 놀 때는 전혀 그런 생각을 못하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우리가족이라고 해요. 우리가족. 우리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 가족에 대해서, 만약에 조선시대라면, 왕의 입장이라면, 가족들이 대천해수욕장에서 놀고 있는데 하필 그 시간에 임금님이 해수욕을 하고 싶어서 대천해수욕장에 왔다. 그럼 잘 놀고 있다가 제일 좋은 자리를 누구한테 양보해야 되겠어요? 임금님한테, 왕한테 양보를 해야 되겠죠. 왜냐하면 이 임금은 나라님이니까. 여기 이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없어져도 나라는 유지되지만 임금님이 없으면 나라가 안 되니까요. 그걸 가지고 아주 고상한 말로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대빵이라고 하죠. 대빵. 대빵이 없는 조직은 없어요.

그리고 대빵이 생각하지 않는 인생도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대빵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거예요. 가정의 대빵이 죽었다면, 벌써 갑자기 속 시원하면 안 되겠지만, 남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도 본인은 평생 동안 얼마나 그렇게 여기면서 했겠습니까? 그러나 본인이 대빵이 아니고 성경에서는 뭐가 대빵이냐 하면은 죽음이 대빵인 것을 몰랐죠. 그래서 평소에 죽기 전까지도 사는 이유가 뭐냐, 죽을까봐 살아요. 죽을까봐. 죽을까봐 산다고요. 자기는 대빵이라고 큰소리쳤는데 어디 쫓기고 있어요.

히브리서 2장 15절에서 16절에 나오죠. 죽기를 무서워해서. 이 죽음을 가지고 협박하는 자가 악마입니다. 악마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거든, 우리 마음속에 죽는 것이 무섭거든 그냥 악마가 대빵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대빵 밑에 쫄따구로 산다고 보시면 되는 겁니다. 신약 갈라디아서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흔히 오늘날 교회에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하고는 전혀 달라요. 일반인들은 내 구원을 받고 안 받고는 나의 의지와 나의 결정에 의해서 된다고 했거든요. 나의 의지와 결정이, 절에 갈까? 교회 갈까? 그래. 결정했어! 교회가기로 결정했어!

이렇게 되면 인간 앞에 절과 교회 두 군데를 놓고 자기는 중성지역이에요. 중립지역에 있는 거예요. 평소에 살아가는 것이 다 그렇게 하니까. 짬뽕 먹을까? 짜장면 먹을까? 갈비탕 먹을까? 안 그러면 돼지고기를 구워먹을까? 모든 것은 내 선택에 대해서 내가 그 결과를 낳는다는 그런 식으로, 이런 원칙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나도 못하죠.

근데 사람들은 그 중간에 짬뽕 먹을까? 짜장면 먹을까? 할 때에 그 뒤에 괄호를 생략하고 있어요. (나는 죽음을 벗어나려면 어느 것을 먹어야 되느냐?) 죽음을 벗어난다는 그것을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는 겁니다. 죽음을 벗어나려면. “에이, 라오스에 가지 말고 성경공부에 나오지.” 이거는 만약에 성경공부에 나왔다가 내가 사는데, 내가 그냥 살면 안 되죠. 행복하게 사는데 어느 것이 나한테 손실을 가져오느냐를 생각하겠죠. 그렇게 생각하겠죠.

주일 낮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신약 고린도전서 13장 5절을 보게 되면 나옵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자기의 유익을 계산하지 않는다. 자기의 유익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면 한번 봅시다. 어렵지만, 자기유익이라고 되어 있죠. 자기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 할 때에, 이 자기라고 하는 것은 이미 인간들이 알고 있다는 그 자기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사랑이라는 것이 오게 되면 자기가 알고 있는 자기를 포기해야 된다 이 말이에요.

자기유익할 때 유익은, 평소에 나는 이게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이 자기라는 그 범주 안에 이미 포함이 되어 있잖아요. 자기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추구하지 않는다. 이건 평소에 사랑이 오기 전까지는 뭐만 추구했다는 뜻이에요? 줄곧 자기유익 외에는 생각한 게 없어요. 없다 이 말이죠. 수련회 가는 것이 나을까? 마는 게 나을까? 이게 뭐예요? 이게 자기유익이잖아요. 자기유익.

그런데 사랑이 오게 되면 뭐부터 발로 차버린다? 밟아버린다? 자기유익을 원하지 않는다. 자기유익을 왜 평소에 원했는가 하면은, 히브리서에 보면 죽기를 무서워한다고 되어 있고, 갈라디아서에 보면 이런 감정적인 것보다도 더 원리적인 것을 이야기하는데, 뭐냐 하면은 인간은 죄와 저주에 쫓기기 때문에 그렇다. 죄와 저주가 무서워서 죄를 어떻게 처리해보고, 죄가 있으면 행복을 요구할 수가 없잖아요. 죄인주제에 이거 살려 달라, 이거 달라고 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자꾸 죄인이 아니고 싶어요. 그리고 뭘 달라할 때 정당하게 달라고 할 권리가 나한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겁니다. 이정도로 착하니까, 이정도로 보상은 주어져야 하나님하고 우리하고 얼추 대화가 되지 않겠습니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교회에 나오는 거예요. 교회에 나오면서 오늘도 보람된 일을 하고 있다고 이렇게 이야기하지, 뭐 오늘 교회에 나가서 작살을 한번 나볼까? 이런 기대를 가지고 교회에 안 나오잖아요.

맨날 무슨 일이 벌어지면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스스로 자기에게 자문하죠. 내가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맨날 이거죠. 내가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내가 뭐가 잘못되어서 인생을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오히려 사랑을 받은 사람은 반대로 이야기해요. 나같이 아무것도 안 한 사람에게 웬 사랑? 용서를 주십니까? 이거는 불공평합니다. 주님이여! 공평치 못합니다. 제가 천국가기 위해서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는데, 왜 저에게 용서라는 사랑, 이쁘다는 사랑, 너를 보면 기쁘다, 즐겁다는 하나님의 그 일방적인 좋아하심을 왜 제가 이렇게 받아야 됩니까? 이 큰 선물을 받을만합니까? 라는, 그런 고백을 내놓아요.

그 순간 뭐가 날아가 버립니까? 그렇게 사랑을 고백한 순간 자기유익은 저절로 날아가 버리죠. 왜냐하면 자기유익은 무엇을 낳기 때문에? 걱정과, 걱정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겁니다. 공포심이에요. 공포심. 걱정. 여행갈 때는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비행기 탈 때는 좋은 자리에 앉아야 될 텐데. 모든 발걸음 한걸음마다 계속해서 걱정근심이 마중을 나오죠. 계속해서. 그 일을 했기 때문에 등장하는 걱정이 또 새롭게 추가가 됩니다. 걱정 없이 살 수가 없죠.

아이고, 애들 군에 보내서 속이 다 시원하네. 어, 제대할 때가 다 됐네. 어떡하지? 다음 달에 제대인데 어떡하면 되지? 시간을 맞이한다는 것은 걱정이라는 맞바람을 맞는 거예요. 맞바람을. 늘 보는 해인데 내일의 해는, 내일 뜨는 해는 뭡니까? 그저 올 한해는 식구들 다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 되고 애들 공부 잘했으면 좋겠다.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것은 자기유익이죠. 자기유익을 이미 하고, 그것을 속에 담아놓지 않고 달 또는 해보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묵호 등대에, 우리나라에 일반인 가정에서 제일 가장 경치 좋은 데가 묵호라는 곳인데, 바닷가 바로 옆에 언덕이 있고 등대가 있는데, 등대 밑에 촘촘히 옛날 40년, 50년대 낡은 가옥들이 있어요. 이 가옥들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sbs기자가 물었어요. “해 뜨니 좋습니까?” “니 한번 살아봐라. 좋은지.” 처음에 하루는 좋아요. 외국에 있는 호텔이 동쪽으로 되어 있으면 해가 떠서 온 햇살이 다 들어오잖아요. 첫날 가면 해 뜬 거 사진 찍고 난리가 납니다. 한 3박해보세요. 그 다음부터는 커튼 닫아버리죠. 늘 보는 바다는 오히려 우울증을 유발합니다. 마치 나의 세계의 반이 날아간 것처럼. 반을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늘 봐도 늘 쓸쓸하죠.

인간은 자기유익으로 포위가 되어 있고, 그래서 쫓겨 가는 겁니다. 인간이라는 것이 뭔가 둘러싸여 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죄와 율법에 둘러싸여 있다. 죄와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법 쪼가리 같으면 걱정이 안 되는데, 여기서 뭘 예상하느냐 하면은 사람은 폭력을 예상하게 되어 있어요. 폭력을. 반드시 힘이 주어진다는 것. 내가 나쁜 짓하면 힘이 주어진다.

제가 광주강의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인간 속에 있는 양심이나 도덕률이 있죠. 근데 그 도덕률은 누가 심었다고 했습니까? 악마가 심어놓은 거예요. 도덕을 위반했다고 상벌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겁니다. 오히려 도덕 자체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죠. 왜냐하면 예수님은 새로우니까. 예수님은 마태복음 9장에서 이런 말씀을 했거든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는 겁니다. 기존의 인간의 도덕률하고 예수님하고 조인join이 되지를 않아요. 결합이 안 됩니다.

그런데 교회 온 사람들은 전부 다 벌벌 떨고 오잖아요. 자기 도덕률에 준해서. 인간의 도덕은 어디서 왔고, 그게 문제가 있느냐, 그게 실제적인 효과가 있느냐를 문제 삼는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을 볼 때에 나 착해야지, 이래 보면 안 되고. 내가 착해야지 한다는 것이 분명히 수상해. 이게 병든 양상인데, 이걸 어떻게 빼내고 이게 왜 문제가 있는지를 발견하기 위해서 성경을 봐야 돼요. 발견하기 위해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대화가 바로 거기서 어긋나는 겁니다. 믿지 않는 자의 대화는 항상 나름 자기의 도덕성을 자랑질 하는 것이 밑바탕에 깔려서 모든 언어를 내뱉게 되어 있어요. 헛소리죠. 헛소리. 거기서 나오는 게 최선을 다했다는 거예요. 최선이에요. 최~선, 그게 자기를 지옥으로 보내는 줄 몰라요.

길이 두 가지가 있다고 제가 이야기한 게 아니고 주님이 이야기했거든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하나의 길은 뭐냐, 영생으로 통하는 길이 있고 또 하나의 길은 멸망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고 마태복음 7장에 나옵니다. 주께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으면, 현재 주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할 때 현상적으로 어느 길이 영생이고 어느 길이 멸망인지 우리가 관심을 둬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이걸 진지하게 여기신다면, 이걸 개떡같이 여기지 않고 진지하게 여기신다면, 사람이 태어나서 죽었다, 뭐 결혼했다, 뭐 돈이다, 그거 지금 문젯거리가 아니에요. 그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이 말이죠. 공부 끝나고 어디 가서 저녁을 먹나, 그거 별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길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하니까, 지금 나는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되겠죠. 주님께서 영생으로 통하는 길, 마치 사다리타기 하는 것 같아요. 제비뽑을 때 뭔가 하나가 있는데 결과는 감추어있어요. 뽑기 같으면 아무거나 뽑으면 되는데, 이건 뽑기가 아니고 지정되어 있고 정해진 거예요. 주님이 숨겨놓은 겁니다. 왜 숨겨놓았을까요? 영생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영생 가는 길을 이야기하고 숨겨놓았다 이 말이죠.

그 말은 인간이 자기결정으로 그 영생의 길을 선택할 존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뭐냐 하면은 새로움과 새로움, 매일 새로움이 있어야 해요. 매일. 매일같이 새로움인데 그 새로움은 자기유익과는 별개, 자기유익을 고려하지 않는 새로움, 깜짝깜짝 놀라게 만드는 새로움, 오히려 걱정근심, 지금까지 살아온 바에 의하면 그 원리원칙에 전혀 맞지가 않는 새로움. 이런 원칙은 생뚱맞다. 처음이라고 매일같이 느껴지는 그 새로움. 그 새로움이 밑에 컨베이어처럼, 가만히 있어도 딸려가는 것처럼.

주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서 새로움을 주시면 우리에게는 바깥에 어떤 풍경이 보이는가 하면은, 나처럼 살던 사람이 뒤로 물러가는 풍경들이 보이는 거예요. 같이 친구라고 여기고 여고동창생이라고 여겼는데 점점 더 멀어져가네. 점점 더 멀어져가요. 같은 식구라고 여겼는데 내 원수가 집안 식구라. 점점 더 멀어져가요. 대화가 안 되는 이유가 주님의 이 원칙에 의하면 멸망하는 것들로 그쪽에서 계속 대화를 시도하죠. 그러나 그쪽에는 뭐냐, 새로움이 없어요.

오늘 본문 같으면 사울에게 뭣이 없다? 다윗이 없는 거예요. 사울은 왕이기 때문에 다윗을 자기 나라의 하나의 백성으로 간주한 겁니다. 백성으로 간주해서 질문이 뭐냐, “뉘 집 아들인고?” 이렇게 묻는 거예요. 다윗 같으면, 우리 같으면 “니가 알아서 뭐하게? 니가 알아서 뭐 할 건데? 니가 왜 묻는데? 왜 우리 집안이 딱딱하고 평소에 군사훈련 많이 해서 골리앗을 이 긴 줄 알아? 그거는 사울 니 식이야. 니 식. 니가 평소에 왕으로서 이 나라를 내 나라로, 나라님이니까, 왕으로서 모든 사람이 속속들이 니 손아귀에 있다고 여겼던 그 사고방식에 내가 포함이 안 돼서 화났어? 그래서 성질났어? 그래, 그러면 좀 미안하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한 거예요.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골리앗을 보냈다고 생각하셔야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자꾸 다윗 편에 서려고 하지 마시고 우리가 이 순간 누구 편에 서야 돼요? 사울이나 골리앗 편에 서야 돼요. 골리앗이나 사울 편에. 자, 사울 편에 섰을 때에, 남들 보기에는 사울 왕이 이스라엘 왕이잖아요. 다윗은 그 백성들 가운데 하나고. 그럼 다윗이나 사울은 둘 다 이스라엘 백성이 맞죠. 남들 보기에는, 외부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죠. 하나님께서 골리앗을 보내줘 버리니까, 나라가, 이 이스라엘에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나라의 잉태가 시작되는 겁니다. 새로운 나라의 잉태.

이걸 아주 어렵게 말씀드릴까요? 기존에 내가 생각했던 내 세계관에 속한 나가 아닌 새로운 나를 매일 준비해주셨다. 주님께서.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왜? 매일 새로워지니까. 그러면 내일인 내가 볼 때 오늘의 나는, 내일의 새로운 인생으로 볼 때 오늘의 나는 이미 죽은 자가 되겠죠. 왜? 과거는 죽었으니까. 그래서 주일 낮에 제가 그런 말씀을 드렸잖아요. 자기를 볼 때에 과거동사를 써서 자기를 봐라 이 말이죠. 표현해라. 과거인물로. 과거완료로.

주일에 했던 하나의 예를 다시 한 번 들어보면, 요셉이 마리아하고 정혼한 사이죠. 그러면 우리는 마리아편에 서지 말고 요셉 편에 서세요. 자, 요셉이 생각한 한도가 우리 생각의 한도하고 딱 맞아요. 그 레벨이 딱 맞다고요. 아니, 요셉은 우리보다 더 도덕률에 있어서 더 선한지는 모르겠어요. 가방 사줘, 우리 이렇게 해서 아파트하나 장만하자고 이야기가 다 돼, 이제 결혼 날짜만 잡고 혼인만 하면 될 입장인데, 어느 날 내가 모든 인생을 걸고 모든 것을 추구했던 그 사람이, 저 우리 헤어지자가 아니고, 마리아가 뭐라고 했습니까? 임신했다고 하죠. 이거 새로움이에요. 첫 번째 강의 제목은 ‘새로움’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요셉의 입장이 된다고 했죠. 참 기가 차죠. 기가 차. 이걸 우리나라 노래에 난감 하네~ 난처하다 이 말입니다. 난처한 상황을 만들었어요. 자, 어느 정도로 난처 하느냐 하면은,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자기유익을 챙길 수 있는 그 바탕이 작살나버린 겁니다. 다 깨져버린 거예요. 평소에 내가 나를 쥐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인생에 뭐가 개입했어요? 마리아가 개입했고. 마리아가 개입한 것은 전에는 좋았죠. 근데 어떤 마리아로 새롭게 다가왔습니까? 임신한 마리아로 다가왔어요. 임신한 마리아로 왔을 때 요셉은 난감 하네~ 보통 문제가 아닌 거예요.

이걸 제가 말하겠습니다. 이걸 가지고 뭐라고 했습니까? 대빵이에요. 다시 말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휩싸여 있다, 휘둘려있다, 이래보시면 됩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은 조립해서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거든요. 그게 뭐냐 하면은 왕 앞에 자기 모든 백성은 뭐가 되느냐 하면은 소유물이 되죠. 소유물. 근데 소유물이 되는데,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고 옴으로 말미암아 이 소유물에서 이탈돼버린 거예요. 이탈.

왜냐하면 왕 사울은 골리앗을 못 이겼었는데, ‘그 골리앗은 때려죽여도 이건 못 이겨. 이번 전쟁은 우리가 진 거야.’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사울 왕이 그동안 평소에 살아왔던 인생 전부를 다 농축해서, 그걸 전부다 모아서, ‘이거는 큰일 났다. 우리나라는 졌다.’라고 생각하는, 이것이 확정된 자기세계죠. 사울의 자기세계라는 범주에서, 이 세계가 자기세계의 전부가 된 겁니다. 전부. 영어로 하면 ALL올이 되겠죠. ALL. 올인데, 그 올에 포함이 되지 않은 낯선 이벤트, 사건이 벌어진 거예요.

그러면 이 사울 왕의 이 모든 것은 새로움 앞에서 자기는 갑자기 작아졌죠. 작아지고 이게 뭐냐 하면 무용지물, 소용이 없이 됐죠. 자기 인생이. 왕이라는 지위자체도 없어졌죠. 소용이 없다는 말은 뭐냐 하면은 이거는 곧 무의미가 되고, 나는 졸지에 새로움 앞에서 뭐가 되느냐 하면은 쓰레기가 되는 겁니다. 쓰레기. 구약에서 사울은 화를 내지만 신약에서는 쓰레기인 자만이 웃을 수가 있어요.

왜냐하면 내일 되면 주께서 주시는 그 새로움으로, 그 관점으로 오늘을 보게 되면 주께서 왜 나를 오늘까지 살게 했는가, 어제까지는 쓰레기였음을 확인시켜주는 거예요. 이 시간에 비해서 어제는 쓰레기가 되는 겁니다. 버려라. 쓰레기는 폐기처분하거나 버려라. 그 까짓것 얽매일 필요가 없다. 오늘 새로 태어났다고 생각해라. 신생아라고 여겨라. 그리 보는 겁니다. 신생아의 특징은 뭐냐 하면은 내가 어제 그렇게 되려고 했던 애씀과 노력과 결정과 나의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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