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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9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67 - 구멍 뚫린 허무강의누가복음

[19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67 - 구멍 뚫린 허무

19,12,16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159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거기에 보면 누가복음 13장 32절과 33절의 말씀이 나오는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눅 13:32)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눅 13: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 예수님의 갈 길 !!

여기 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라고 하시는데,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일은 예수님이 평소에 하시던 일이란 겁니다. 그리고 33절에서는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라고 하시는데, 즉 예수님께선 자신의 갈 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이죠.

예수님께서 자기의 갈 길에 대해서 묘사를 하시면서 뭐라고 하십니까?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오늘과 내일과 모레이니, 그게 곧 3일인데, 이것이 시간으로 묘사된 예수님 자신의 갈 길이라는 말이죠. 쉽게 말해서 예수님의 경우에는 카운터다운이 된다는 것인데, 즉 "3, 2, 1" 라는 식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갈 길은 일반인들이 가는 길과는 다른데, 즉 예수님의 갈 길은 예정이 되어있다는 말이죠. 반면에 일반인들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니 카운터다운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카운터다운은 미국 나사에서 로켓을 쏘아 올릴 때 보면 하는데, 그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이미 그 시점이 정해져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그 시각이 오후 2시 27분 15초라고 하면, 그 이전 2시간부터인가 카운터다운에 들어가는데, 그렇게 "10, 9, 8, …, 0" 라고 해서, 그 시각이 되면 정확히 발사가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미래가 정해져있다는 것인데, 그러면 현재는 미래에 수렴이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찾아간다고 할 수 있는데, 즉 거기에 모아진다는 것이죠.

* 결정적 사건을 중심으로 !!

그러면 예수님의 기준은 무엇인고 하니까, 카운터다운을 시작했을 때, 그 이전의 시간들은 예수님의 결정적 시간, 즉 결정적 사건으로 중심으로 해서 다시 모아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예수님께서 죽고 나서 부활을 하시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모든 인류에서 일어났던 사건들, 즉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공격한 것이나, 스탈린이 철의 제국을 건설한 것이나, 몽골의 침입과 임진왜란 등등, 그 모든 사건들이 어느 한 곳에, 즉 최종적인 의미를 제공해주는 지점에 와야만, 비로소 그 모든 의미가 밝혀진다는 말이죠.

성경에서 예수님은 이것을 '나의 때' 라고 했는데, 즉 '카이로스' 라는 겁니다. 시간의 묘사된 우주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카운트다운이 된다는 말이죠. 물론 우리도 언제 죽을지를 알면 미리 카운트다운을 하겠는데, 우리는 모르는데, 그렇지요? 그러니 카운트다운이 되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아무리 "3, 2, 1" 라고 해도, 그 다음에 죽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시간으로 묘사된 카운트다운으로 묘사된 예수님의 결정적인 길, 그러니 그 길은 카운트다운으로 만들어진 길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마이 웨이'와는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길이라는 것은, 과거에 살았던 기억과 경험에 의해서, "이렇게 되지 않는가?" 라고 하면서 점선으로 이어진다는 말이죠.

그것이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는 미래라는 것인데, 반면에 예수님의 길은 어떻습니까? 앞에 있는 것은 도리어 점선이고, 가면 갈수록 실선으로 바뀐다는 말이죠. 그러니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명확해진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길이라는 것이죠.

* 오늘과 내일과 모레, 그리고 예루살렘 !!

이것은 시간으로 묘사된 것이고, 이것이 공간으로 묘사가 되면 어떻게 됩니까? 공간에 접근하는 식으로 결정적 사건을, 즉 "예수님의 길은 이것이다" 라고 천국의 길을 묘사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처음에 읽은 누가복음 13장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33절에서 예수님께서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공간으로 묘사된 것은 어느 것입니까?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이야기하신다는 말이죠. 우리가 이 예루살렘을 한 번쯤 가볼 만한데, 예수님의 결정적 공간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신 모든 업적과 일이 집약되어있는 시간과 공간을 여기 누가복음 13장 32절과 33절에서 소개하고 있다는 말이죠.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예수님이 묘사했다는 것은, 인간은 할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예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다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으로 측정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한 공간으로도 측정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서 "바로 여기야. 이 시간이야" 라고, 그렇게 표시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 예수님의 시그니처 !!

그것을 시그니처, 즉 사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하늘나라가 보이지 않으니 없다고 여겼는데, 이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없다고 본다는 말이죠. 하늘나라는 인간들이 위로 삼아서 지어낸 것이고, 망상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는 것인데, 그런 이성의 시대, 과학의 시대, 즉 따지는 시대라는 말이죠. 그런 시대를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가르쳐주시는 하나의 사인으로서, 자신의 육신을 통해서 그것을 보여주셨다는 겁니다.

* 독생자의 영광 !!

그게 "말씀이 육신이 되매" 라는 것인데, 즉 "하나님은 본디 없으되 독생자를 통해서 하늘나라의 모든 것이 다 알려졌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지난 시간에 했는데, 아직 기억이 납니까? 우리가 이것을 안다고 하면, 지금 이 순간 죽어도 괜찮다는 겁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런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하면 죽어도 좋은데, 지금 왜 사느냐는 말이죠. 사람들은 뭔가가 더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그것을 알려고 산다는 겁니다. 그런데 진리가 있다고 하면, 자기 목숨과 바꾸어도 괜찮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목숨보다 진리가 더 소중하니 말이죠.

신앙생활은 그렇게 하는 것이지, 목숨을 부지하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게 결코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 자랑거리나 자존심을 붙들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자기의 업적, 자기 자랑거리, 심지어 자기 목숨조차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내 인생이 어떻고, 팔자고 어떻다" 라는 짜증거리가 한꺼번에 바닷물에 휩쓸려서 사라지듯 사라질 수 있는 그 무엇, 바로 그것을 모른다고 하면 평생을 교회에 다녀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죠. 진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자기 목숨보다도 더 고귀한 것을 발견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실 때, 없다고 하는, 즉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간 속에서 표시를 해주셨고, 또한 공간 속에서 표시를 해주셨다는 말이죠. 그것을 '시그니처' 라고 하는데, 즉 표시, 혹은 징조, 징후,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 영화 '사랑과 영혼' !!

과거에 '사랑과 영혼' 이란 영화가 있었는데, 도자기를 굽는 유명한 장면을 다들 기억하지 싶은데 말이죠. 사랑하는 남녀가 있었는데 남자가 그만 죽었다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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