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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강-호 5장 6-10절(뿌리뽑힘)191218-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호세아

20강-호 5장 6-10절(뿌리뽑힘)191218-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호세아 5장 6-10절입니다. 구약성경 1260페이지입니다.

호세아 5:6-10

“저희가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저희에게서 떠나셨음이라 저희가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자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저희와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너희가 기브아에서 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호각을 불며 벧아웬에서 깨우쳐 소리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찌어다 견책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무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 필연 있을 일을 보였노라 유다 방백들은 지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저희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

호세아라는 선지자가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이야기를 할 때에 그 당시 사람들이 이걸 이해를 못하는 이유가 있어요. 그것은 당해봐야 아는 겁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모든 말씀은 예언이거든요. 예언이기 때문에 마치 경고성 말씀을 주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들이 이 말의 뜻이라도 알아야 경고가 되지요. 선지자가 이야기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협박이나 공갈처럼 들리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사람은 매일매일을 반성해서 아무 문제없는 쪽으로 최선을 다해서살았기 때문에 선지자의 말이 참으로 과격스럽게 들릴 겁니다. 그래서 한두 번 이야기를 듣는척 하다가 그 다음부터는 아예 외면하고 듣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선지자 입장에서는 “너희가 내가 경고성 발언을 해도 너희들은 이해가 안된다는 이유 때문에 결국은 안들을 거잖아. 그러니까 내 말이 맞지.”

경고성에서 실제로 나중에 이루어질 일을 내가 미리 언급하는 것이 확실한 거예요. 이야기해도 무슨 뜻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특히 오늘 본문에서 7절에 보면 “저희가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자를 낳았으니.”라고 했는데 사생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식들을 너희들은 너희들 자식이라고 우기고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내 자식이니 귀하다”고 나왔을 때 선지자를 통해서 “그것이 사생자다. 자식도 아닌 남의 자식이다.” 그렇게 언급을 할 때 이 말을 듣고 “그렇습니다.”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진짜 귀한 내 아들인지 아니면 남이 낳은 사생자인지 그 진위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같은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준이 전혀 없어요.

미리 말씀드려서 “하나님보시기에 아무도 현재 너희들 입장에서는 천국에 오지 못한다. 그 이유는 너희들이 참 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신약성경에서 이야기한다면 참 아들이다, 혹은 아니다, 를 우리가 분간할 수 있도록 어떤 기준을 제시해야 할 텐데 그 기준이 없어요. 그런 이야기는 누가 하느냐 하면,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렇다면 사람들 보기에는, ‘자칭’입니다, 자칭, 사람들 모두 이성이 있는 인간들 같으면 충분히 ‘아,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맞구나.’ 하고 용납이 되어야 할텐데 예수님이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에게는 자칭, 그걸 참칭이라 하는데, ‘꾸며서, 속여서, 그렇지도 않은데 그런 양 우리를 속이려고 그 소리를 하고 있지?’ 하는 식으로만 해석할 수밖에 없어요. 현재 인간들은.

‘자칭 메시아가 나를 믿으라고 했으니까 그 자칭이라는 허위를 우리는 죽여 없애버렸다. 우리는 참 잘했다. 왜? 율법을 어기는 것은 사탄에 속하고 귀신들린 자이기에 잘 죽였다.’ 이것이 요한복음 7장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의 합의된 내용입니다. ‘예수라는 청년을 잘 죽였다. 왜? 우리가 요모조모 아무리 따져봐도 전혀 하나님의 메시아의 면면을 찾을 길이 없었다.’

뭘 보고 메시아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떤 접촉점도, 어떤 기대하는 면도 주지를 못한 거예요. 예수님도 도마보고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요한복음 20장에서.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 했는데 사람은 일단 믿고 안믿고는 내가 판단할 수 있도록 봐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러나 일단 보게 되면 영 이건 메시아가 아니에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 하면 내가 진짜 믿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이게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거든요. 불가능한데 아무 느낌 없이 그냥 ‘나 예수 믿는다. 교회 60년 다녔다.’ 그러고 있으니까 도저히……, 그냥 ‘예수 믿는다.’ 하면 좀 믿을만 한데 ‘교회를 60년 다녔다’ 하니까 ‘아, 아니구나. 엉터리구나.’ 오래 다닌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한 가지 예를 들게 되면 이런 겁니다. 6절에 보면 “저희가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렇게 되어 있어요. 여로보암 그 때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풍요하게 살던 때였습니다. 열왕기하 14장 25절에 보면, 그 때가 가장 영토가 넓었어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로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그리고 북 이스라엘을 집적거릴 어떠한 강대국도 없어서 평화로울 때입니다. 자, 나라가 평안하지요. 모든 물자는 풍부하지요. 대외적으로 침노할 적들이 없지요. 태평성대를 이룬 겁니다. 태평성대를 이루니까 양떼가 많고 소떼가 많아졌지요. 너무 고마워서 “하나님께 나가자.” 하고 예배를 드리려고 갔는데 “나는 너희 꼴보기가 싫다. 난 너희를 만나지 않겠다.” 하고 호세아를 통해서 분명히 예언을 하고 언급을 했습니다.

그러데 여러분이 생각을 해보세요.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있지 않겠다.’ 하는 것이 과연 날벼락같은, 청천벽력같이 그렇게 크게 낙담할 이야기입니까? 요즘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안만나준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기 싫대.” 그 이야기가 충격적으로 막 다가오고 ‘그러면 안된다.’ 하면서 몸서리치고 그런 내용입니까? 이것이 그렇게 심각한 내용처럼 들려옵니까?

제가 예를 들겠습니다. 영화에 보면 그런 것이 나오지요. 조폭들을 다 소탕하는데 형사 한 두 명이 딱 가니까 건장한 조폭 한 30명이 골목을 지키고 있습니다. 체포하러 갔는데 조폭들이 흉기를 들고 있고 형사들은 권총 한 자루씩 차고 있습니다. 저 조폭들을 완전히 제압해서 굴복시키고 그래서 아주 조용하게 순순히 경찰서까지 오게 하는 방법이 어떤 것이 있겠어요?

“너희들 반항하지 말고 다 흉기를 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 이야기 안해준다. 다시는 예수님 이야기 안해줄거야.” 이러면 조폭들이 “아, 그것만은, 제발, 그것만은! 무서워요. 항복할게요.” 하고 순순히 수갑 차고 경찰서까지 옵니까? 고 3인데 애가 수능을 앞두고 공부를 안해요. 엄마가 막 화를 내면서 “너 자꾸 공부 안하면 이번 주일에 교회 안데려간다!” 이러면 애가 “엄마! 제발 그것만큼은. 공부할게요.” 그렇게 되는 겁니까? 이것은 코미디지요.

그런데 지금 호세아가 풍족하게 아무 탈 없이 여유롭게 넉넉하게 잘 살고 있는 그 당시 북 이스라엘을 보고 하는 말이 “너희들은 사생자를 낳았고 하나님이 너희들을 안만난대. 무섭지? 그지? 겁나지 그지?” “웃기고 있네, 정말 참! 웃기네.” 오늘날 교회가 그 지경입니다. 교회가 그 지경이에요. 하나님은 하나도 안무서워요. 예수님 이야기도 듣고 싶지도 않아요. 기도해서 복받은 이야기만 듣고 싶어요.

얼마나 금식하고, 얼마나 기도하고, 얼마나 헌금해서 원상회복, 과거에 부도난 것 회복되고, 암 4기인데 낳았다는 그런 이야기 듣고 싶고 교회 와서 복받은 이야기만 하고 싶어요. 자식 잘되고, 애 성적 올라가고. 그 이야기 외에는 다른 이야기 하면 다 잡니다. 그러니 사생자라 하면 진짜 코웃음 칠거예요. ‘무슨 소리 하고 있어? 우리가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이렇게 자손이 많은데 이게 사생자라고? 이게 하나님의 진짜 아들이 아니라고? 호세아 저 사람이 미친 모양이지? 듣지 말자. 무시하자.’

그런데 8, 9, 10절에 나오는 이야기가 뭐냐? “너희들이 지금 나를 굉장히 무시했는데 그 무시한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무시할 수밖에 없는 것 뻔히 알고 이야기하는데 그 결과가, 너희들은 이 땅에서 다 쫓겨갈것이다.” 어떤 적이 와서 갑자기 평화로움도 깨지고, 풍요함도 깨지고, 갑자기 긴장상태, 전쟁상태에 돌입되면서 그 약속의 땅이라는 풍족한 땅에 살지 못하고 쫓겨가게 됩니다.

그래서 9절에 보면 “견책하는 날” 징계하는 날이지요. “견책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무할 것이라.” 북쪽 이스라엘이 에브라임이거든요. 그리고 10절에 “유다 방백들은 지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 땅 네 땅 없이 다 쫓겨가니까. 땅 등기한 것, 내 부동산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 없어요. 왜? 다 포로 잡혀가니까, 남의 나라로 다 가니까.

“내가 나의 진노를 저희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 이렇게 10절에 나와 있습니다. 호세아선지자가 괜히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미리 너희들이 당할 일을 이야기하면서 “너희들은 이렇게 그 살기 좋은 내 땅, 내 나라, 우리영토, 하나님이 영원히 택한 자리라고 여겼던 그 자리에서 왜 우리가 난데없이 이유도 모르게 쫓겨난다고 생각할거지? 하지만 그 이유를 내가 미리 이야기할게.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버리기로 했다. 왜? 너희들은 사생자를 낳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사람들은 또 ‘우리가 무슨 사생자를 낳아?’ 벧아웬이라는 곳이 어디냐 하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이에요. 물론 바알에게 예배 드렸지만. 그래서 뭐가 문제가 되는지를 그들이 잘 몰라요. 왜? 다른 신을 섬기고, 요새 말로 하면 하나님, 예수, 건성건성 섬겨도 집안에, 내 재산에 아무 손해가 없고 더 번창하고 잘된다면, 사람이 편하게 살게 되면, 자기한테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잖아요.

바로 이것이 오히려 위험한 때에요. 아무 문제없고 자기는 하나님보시기에 복받을만해서 복 받는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위기의 순간이 다가온 거지요. 그러면 사생자라는 단어를 왜 사용했으며 왜 갑자기 멀쩡하게 잘 사는데 쫓겨간다고 이야기하느냐? 이 내용 속에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7절에 보면 “저희가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자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저희와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했는데 새달이라는 것은 돌아오는 달, 한 달이 끝나면 돌아오는 다음 달이 새달이 되거든요. 그 새달은 뭐냐 하면, 보통 옛날에는 율법에 월삭이라 해서 한 달의 첫날이 여호와께 제사하는 날로 정해져 있었는데 이게 습관화 되니까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면서 바알에게도 제사를 드리고 그랬던 모양이지요.

어떤 날, 새 날이라는 시간적인 요소를 가지고 호세아가 설명을 하고 또 8절에 보면 “너희가 기브아에서 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호각을 불며 벧아웬에서 깨우쳐 소리하기를” 이것은 전부다 우상제단이 있던 곳이에요. 원래 여호와를 섬겨야 될 장소가 우상으로 다 교체가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찌어다.”

하나님이 베냐민을 쫓아내려고, 자기 백성을 막 쫓아내려고 그렇게 조성할 날이 온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것은 뭐냐? 너희들이 분명히 약속의 땅에서 배부르게 사니까 정상적인 신앙이고, 하나님의 백성이고, 참 아들이라고 여기는데 이것을 여러분이 생각해보세요. 송판 두 장을 겹치려면 못으로 두 장을 다 뚫어나가야 되는데 한 짝만 뚫고 밑에 숨어 있는 송판까지 다 뚫리지 않으면 자기는 두 장이라고 여겼는데 한 장만 덜렁 가져가겠지요.

이게 어려운 것이 뭐냐? 약속의 땅에는 물론 젖과 꿀이 흘러요. 맞아요. 하지만 그것은 윗송판이에요. 송판의 윗짝이고 아래짝은 뭐냐 하면, 여호와의 희생이 들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희생바탕위에 그 희생 덕분으로서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고 삼시세끼를 먹는 거예요. 오늘날 모든 인간들이 삼시세끼를 먹는 이유가 주님의 희생 값으로 밥먹고 사는 겁니다.

강남강의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주님께서 나중에 밥값 다 받아낼 거예요. 지옥 가서. 그냥 우리가 노력해서 밥먹는 것이 아니에요. 밥 먹도록 주님의 허락이 되었기 때문에 밥을 먹을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희생의 은혜가 그만큼 주어진 겁니다. 사람들은 잘먹고 잘사니까 송판 아래쪽까지 뿌리를 내려야 되는데 아래쪽 까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위쪽만 가지고 “하나님 덕분에 잘먹고 잘 삽니다.” 해서 그만 못이, 뿌리가 거기서 스톱이 된 거예요.

사사기 2장 10절에,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하나님덕분에 살아간다는 것은 곧잘 잊어버려요. 주일에 교회 올 때는 복음으로 산다고 해놓고는 문만 열고 나가면 다 잊어버리고 내 힘으로 산다, 해서 아래쪽까지 그 뿌리까지 못이 박히지 못하고 뿌리가 자꾸 ‘나 잘먹고, 행복하고, 나 건강하고, 태평하면 그만’이라는 위쪽 송판에 머물고 마는 겁니다.

그래서 위쪽 송판에서 어떤 바람이 불고, 어떤 힘든 일이 있고, 누가 직장에서 나를 괴롭히게 되면 고민거리가 아닐 수가 없어요. 막 고민고민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하나님 믿고 하나님도 잘 아는데 왜 저 상사는 나를 못잡아 먹어서 그러는지.’ 아침 출근만 하면 날 잡아먹으려고 기다렸다가 덤벼들고, 그래도 사표는 낼 수 없고, 계속 다니려고 하니 그 사람 밥이 되고, 자존심이 상하고, 계속 다녀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고민인 거예요.

이제 어떤 사람의 두 가지 경우를 말씀드릴 테니까 여러분이 이런 경우라면 어떤 대책을 세우면 되겠습니까? 한 사람은 36세 된 청년인데 아버지는 60이 넘어서 일용직으로 노동일을 하고 있고, 어머니는 간이 안좋고, 관절 안좋고 당뇨에 걸렸어요. 그 늙으신 부모를 36세 된 청년이 혼자 다 부양해야 되는데 어떻게 하느냐?

아침 5시부터 12시까지 물류택배회사에서 물건을 트럭에 싣는 일을 해요.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 편의점에 가서 아르바이트합니다. 오후 7시부터 새벽 4시까지 노래연습장에서 밤샘 하면서 또 거기서 알바해요. 쓰리잡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잠 2시간 자요. 이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슬픈 기색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자기 집안이 지금 이런 꼴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같으면 어떤 대책이 있겠어요? 누가 도와줘야 된다, 후원자가 있어야 된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또 한 경우는 44세의 여자분입니다. 어머니가 부산에서 아구찜집을 해요. 친구들이 하도 아구찜집 딸이라는 소리를 해서 그 소리 듣는 것이 너무 짜증내서 성공하러 간다고 자기 딴엔 거금 3만원을 가지고 무작정 가출을 했어요. 3만원 들고 서울 갔는데 서울생활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남자를 잘못만나서 임신해서 2살 먹은 애 하나 데리고 부산에 있는 엄마의 아구찜집으로 다시 귀환했답니다.

그래서 아버지 없이 그 아들 하나, 7세쯤 된 그 애 하나 키우면서 이제 열심히 아구찜 집에서 서빙하고 산다는 거예요. 참 힘들고 모진 인생이지요. 방금 제가 호세아 이야기를 해드리면서 현재 있는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두 이야기 가운데 매칭을 어떻게 시킬 겁니까? 송판으로 시킬 거예요. 그 두 사람은 송판을 뚫을 때 송판의 그 뿌리가 한 짝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잘먹고, 잘살고, 나를 사랑해주고, 위로해주고, 갑자기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잘되어서 부자가 되고 부모님 건강하고 나는 애 잘 키우고 어느날 좋은 남자 만나서 재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 이게 송판 하나거든요. 그러면그 송판은 뭐냐? 고결하고 우아하고 고상하고 고매하고 멋있고, 그러한 인생이거든요. 송판 하나에.

그러면 인간은 모든 뿌리를 어디에 내리느냐 하면, 나 제발 남들처럼 고결하게 살고 싶고, 고상하게 살고 싶고, 나도 우아하게 살고 싶다는 거기에 뿌리를 다 내리는 거예요. 이 짓을 누가 하느냐? 그 당시 북 이스라엘, 남쪽 유다가 그 짓을 한 거예요. 뿌리가 아래송판까지 내려가지를 못했어요. 하나님은 이용가치가 있어서 이용할 때만 하나님이에요.

중요한 것은 위 송판만 있으면 돼요. 내가 우아하게 이렇게, 이렇게 잘먹고 잘 살면 더는 소원 없다는 거예요. 주님께서는 그들을 약속의 땅에서 내쫓는 이유는 그 모든 송판을 다 잘라내고 아래쪽에 있는 송판을 드러내려는 겁니다. 아래쪽 송판을 드러내기. 그게 포로 잡혀 가는 겁니다. 나를 위한 땅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 세상이 나를 위한 세상, 나를 위한 약속의 땅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 약속이라는 것이 나를 위한 약속이 아니었어요. 그래놓고 이스라엘사람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왔으니까 이제부터는 약속의 땅의 젖과 꿀로 내가 잘될 것이라고 여겼던 거예요. 이러한 오산, 자기에 대한 착각, 거기서 하늘의 별과 같이 자식을 잘 낳으면, 나만 잘되면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얼마든지 할 용의가 되어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주님께서는 ‘약속의 땅이 뭔가? 도대체 약속의 땅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이 의미가 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다시 그들은 이방민족에 다 포로 잡혀갑니다. 너희들을 약속의 자식으로 보지 않고 이방민족의 자식으로 만들어버려요. 너희들의 썩은 그 사고방식은 이방민족과 똑같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7장 끝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모래위에 지은 집이 있고 반석위에 지은 집이 있거든요.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쓸려 내려가는 물위에 뿌리를 내려보세요. 결국은 그 물과 함께 그 뿌리조차 다 날라 가버리지요. 지금 하나님께서 묻고자 하는 것은, 너라는 그 인간존재가 어디서 발화된 뿌리인가를 보는 거예요. 뿌리를 보고 싶어요, 그 뿌리를.

여러분이 저녁에 간식거리로 치킨을 샀다 합시다. 날갯죽지를 뜯어먹다보면 나중에 뼈가 나오지요. 주님은 뼈를 보고 싶은 거예요. 살점 말고. 우리는 살점을 원하는데 주께서는 그 뼈를 보고 싶은 거예요. 너 지금 어디에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느냐? 모래위에 지었든 반석위에 지었든 사람들은 몰라요. 본인도 몰라요. 왜? 남들 흉내 내고 남들처럼 살아가면 그게 잘사는 것처럼.

넓은 길로 가게 되면 그것이 멸망의 길이거든요. 예수님께서 넓은 길 이야기를 왜 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전부 다 그쪽으로 가거든요. 겉만 번지르하고, 남앞에 고상하게 보이고, 우아하게 보이고, 고결한 내 모습을 지키면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여기는 그러한 대세와 이 분위기 그게 이방민족과 다를 바가 뭐가 있느냐는 겁니다.

특이해야 되잖아요. 적어도 천국가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달라야 된다고요. 지옥가는 자녀하고 달라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 모습은 그냥 아들이고 그냥 딸이고 그냥 사람이에요. 조사할 것은 하나밖에 없어요. 뿌리를 보는 거예요. 그 뿌리를 파헤치는 거예요. 주님께서 너무나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다른 민족 같으면 건드리지도 않는데 자기민족,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이기 때문에 보자, 해서 그 뿌리를 다 드러내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 뿌리가 약속의 땅에 깊숙이 박히지 않고 붕 떴어요. 정말 이것은 무서운 이야기에요. 호세아의 예언은 딴 것이 아니고 뿌리가 드러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 그게 바로 새날이에요. 그리고 뿌리가 드러나는 공간, 그것이 바로 원래 여호와를 섬겨야 될 땅을 바알을 섬기는 땅으로 만든 벧아웬이에요. 벧엘이지요.

하나님께서 벧엘을 섬기라고 할 때 사람들은 어떤 지명을 섬기라고 하는 줄 알았어요. 어떤 지명만 섬기면, 특정지점에 제단을 쌓으면 그것이 제대로 섬기는 것인 줄로 알고 있다는 말이지요. 마치 교회 오면 신앙생활이고 집에 오면 신앙생활 아닌 것처럼 여기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미국국경하고 멕시코국경을 생각하면 그게 붙어 있잖아요. 같은 땅이에요. 이쪽 사람이나 저쪽 사람이나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없어요. 이쪽 사람이 저쪽으로 갈 수도 있고요. 왜? 멕시코를 통해서 두 나라국경이 맞대고 있기 때문에.

그러나 약속의 땅과 이방민족의 땅은 그렇게 붙어 있는 땅이 아니에요. 지리적으로는 붙어 있지요. 출애굽이라는 놀라운 하나님의 어린양 죽이시는 희생이 아니면 절대로 애굽에서 광야로 나설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의 위상을 드러내기 위해서, 약속의 땅에 거저 온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동반된 약속에 의해서 들어와 놓고 너희들은 약속에 뿌리를 안내린 거예요. 약속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송판이 두 장인데 두 장 밑까지 못이 안박힌 거예요. 붕 떴어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출애굽을 취소해버리고 다시 이방민족에게 잡혀가게 합니다. 남쪽은 바벨론, 북쪽은 앗수르에 잡혀가게 했어요. 북쪽은 bc 722년에 앗수르에 잡혀가고 남쪽은 bc 586년에 바벨론에 잡혀갑니다.

잡혀가고 난 뒤에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수 있느냐? 못돌아와요. 왜? 제 2의 출애굽이 있어야 됩니다. 미국과 멕시코국경이 아닙니다. 사람만 왔다갔다하면 되는 것이 아니에요. 사람자체가 개조가 되어야 돼요. 이것은 오늘날 무엇을 의미하느냐? 천국은 사람 개조되지 않으면 천국에 못갑니다. 사람개조가 뭐냐? 뿌리를 십자가에 꽂는 거예요.

여러분 제가 이렇게 하면, ‘거 뭐 십자가에 꽂는 그것 어렵나? 십자가에 꽂으면 되지.’라고 하지요. 맞습니다. 굉장히 쉽습니다. 쉬운데 그 십자가 뿌리를 보기 위해서 그 십자가 빼놓고 회오리바람 태풍불어서 치킨 살점 다 떨어지게 해도 거기에 십자가일 거예요.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을 깨뜨려서 진짜 하나님의 소중한 것을 거기서 끄집어내려고 하거든요.

얼마나 이게 아파요? 그래서 안아픈 방법은 뭐냐 하면, 평소에 밥 세끼 먹을 때 ‘주님의 십자가의 피의 은혜로 먹는다.’ 이렇게 생각하고 먹으면 되는데 ‘이 삼시세끼 먹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고생했고 내가 이 아파트 하나 사기 위해서, 이 부동산 마련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 정도로 나는 고상하고 고결하고 우아하고 고매하고 착하고 훌륭하다.’라고 거기에 내 착함, 내 고결함에 뿌리를 내리신다면 바람 불면 그 고결함은 다 날라갑니다. 그 헛방 다 날라갑니다.

주님의 말씀은 빈틈이 없어요. 반드시 예언대로 다 됩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우아함과 고상함을 자진해서 폐기처분할 위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사생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에요. 그러면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잡혀가고 난 뒤에, ‘대체 약속의 땅은 우리 민족의 땅이었는데 왜 쫓겨나갔지?’라고 쫓겨난 입장에서 다시 한 번 바라보게 하시는 거예요.

바라보게 하시면 그 약속의 땅은, 전에는 ‘약속의 땅이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준비된 땅이다.’ 쉽게 말해서 천국은 나를 위한 천국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위한 천국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 언약, 하나님의 시나리오 그 계획을 계획대로 완수했다는 표시로서 만들어진 것이 천국이고 약속의 땅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우리 힘으로는 갈수가 없어요. 우리는 스스로 자기를 망가뜨릴 용의가 없기 때문에. 아무리 나쁘다 해도 우리는 다 내편이기 때문에 나를 부정하거나 부인할 마음은 없습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가 예수님 잡혀갈 때 아주 큰 소리를 쳤어요. “제가 내 목숨을 버린다 할지라도 나는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장담했어요.

자기자신의 고상함과 고매함과 그리고 주님에 대한 충성심, 순수한 믿음, 열정 이런 것을 갖고 있다고 자기자신에 대해서 좋은 점수를 준 거예요. ‘다 배신해도 나에게는 배신이라는 것은 내 사전에 없다.’ 하고 자신만만했는데 주님께서는 “네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고 이미 말씀을 줬잖아요.

그러면 주의 말씀을 들을 때 베드로는 그 말씀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납득이 안되니까. 내가 그럴 위인이 그럴 인간이 아니라는 거예요. 어딜 봐서 내가 배신할 인간입니까? ‘주님 지금 농담하시죠 그죠?’ 이렇게 된 거예요. 꼭 오늘날 우리 같아요. ‘수십 년 예수 믿었는데 내가 주님을 배신할 리가 있습니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을 믿는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거창하게 하면서 여전히 자기뿌리는 뭐냐? 자기로 스톱이 되어 있어요. ‘나는 믿음 좋다. 나는 주님을 사랑한다. 나는 주님 앞에서 순수하다.’ 자기한테 뿌리가 그냥 있는 거예요. 예수 믿고 예수 사랑하는 이것이 무엇의 근거가 되느냐 하면, ‘그러니까 나는 잘났어.’가 형성돼요. 송판 한 장이에요. 겹쳐 있는 것을 모르고 한 장이라고 보는 거예요.

주께서 닭을 울게 해버렸습니다. 닭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하찮은 닭이에요. 그러나 하찮은 닭이 주의 말을 순종합니다. 베드로 본인이 결심해서 순종했다는 그 순종보다 자기보다 못한, 그냥 잡아먹히면 먹히는 그 닭이 어떻게 주에게 잘 순종하는지 꼬끼오, 하고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딱 시간 맞춰서 울어버린 거예요. 그게 말씀입니다.

닭이 잘했다는 말이 아니고 말씀이 그냥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따라서 베드로 네가 구원받는 것은 ‘너희 결심을 내가 참고로 들을게.’ 그런 것이 없어요. ‘네가 얼마나 잘하는가를 보고 알아서 할게.’ 이런 것이 없고 그냥 일방적으로 주님이 던진 그 말씀을 주님이 그냥 이루어나가시는 겁니다. 거기에는 우리라는 것이 없어요. 내가 나를 생각해버리면 내가 사생자가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아들의 모델은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은 왜 모델이 되느냐 하면, 예수님은 죄를 경유했거든요. 육신의 몸으로 오셨어요. 그냥 하늘에 있던 아들이 아닙니다. 이 땅에 와서 십자가를 지셨어요. 죄인이 되셨다가 아버지에 의해서 다시 살림을 받는 흔적, 그러한 과정이 예수님 안에 들어 있을 때 예수님은 진정한 아들로서 드러나는 겁니다.

누가 그렇게 하셨는가? 성령께서 그렇게 하셨지요. 성령께서 예수님에게 그렇게 하셨다면, 예수님이 우리의 모델이 된다면 그 모델 되게 하는 성령님께서 그것을 원형으로 삼아서 똑같이 우리에게 집어넣는 거지요. 밥 먹으면서도 이것은 주께서 값은 치르고 밥은 공짜로 주어졌다는 그런 의식, 햇빛과 공기와 비내리는 모든 것, 심장 뛰는 것, 주님이 전부 다 값을 치르고 주어졌다는 것.

우리는 잃어버린 자인데, 우리는 마땅히 아들이 아닌자고 약속의 땅 천국에 갈 수 없는 자인데 주님의 말씀이 스며드니까 스며든 그것이, 새로운 그것이 신종 천국백성의 뿌리로서 같이 엮이게 된 거예요. 예수님의 피가 거기서 발화된 거예요. 씨앗이, 열매가. 세상사람들의 뿌리는 자기의 잘남과 고상함이지만 나의 뿌리는 뭐냐? 없는데 있고, 죽은데서 살아나고, 잃어버렸는데 얻었다, 가 우리의 뿌리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포로 잡힌 그것을 감사해야 되지요. 왜? 그것이 호세아의 말씀의 계획대로 일이 차질 없이 진행된 증거기 때문에. 잃어버렸다가 얻어야지요. 이게 탕자이야기가 아닙니까? 누가복음 15장의. 잃어버린 동전 이야기고, 들에 양 99마리 놔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가는 주님의 그 속마음이 역사적으로 전개되었어요. 이스라엘이 포로 잡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뭘 이야기하는가? 진짜 예수님께서 죽었지만 주님 안에 있는 약속으로 말미암아 사흘 만에 살아난 것처럼 성령이 가져다주는 ‘다 이루었다’는 약속이 우리 안에, 십자가의 다 이루심, 용서하심이 우리 안에 뿌리로 박혀 있다면 우리는 이 땅에 사는 이유가 나의 행복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그 십자가를 자랑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그 면면들이 살아가는 그 구석구석마다 굽이굽이마다 드러나게 될 겁니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고요. 우리의 모든 대인관계나 그 모습 속에서 복음이 나와야 돼요. 유-튜브 강의에서 그런 이야기했어요. 부부사이에 물어보라고요. “당신은 나에게 뭘 원해?” 또는 가족끼리 “아빠는 나에게 뭘 원하는데?” “너희들은 부모한테 뭘 원하는데?” 이렇게 서로의 만남에서 뭘 원하는지 물어보라고요. “여보, 난 당신에게서 복음만 나오기를 원해.” 그러면 킥, 하고 또 웃지 마시고요.

“나도 당신에게서 복음만 나온다면 더는 소원이 없어.” “나는 아빠 입에서 복음이 나오면 그게 제일 아빠가 훌륭하게 보여.” “딸아, 네 입에서 복음이 나오다니 이게 웬 기적이냐?” 이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런 이상한 패밀리같은 느낌이 들지요. 마치 형사가 조폭을 보고 “빨리 너희들이 흉기를 버리지 아니하면 예수님 이야기, 그 참된 이야기 안들려준다.” 할 때 조폭이 벌벌 떨면서 흉기를 버리는 것처럼 이것은 있을 수 없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처럼 들리지요.

이것이 하나님 말씀 안에 들어 있는 중첩된 숨어 있는 현실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대로 이루어질 때 세상은 무시했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팔아먹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환란과 고난가운데서도, 모든 것이 다 작살나고 깨지더라도 비로소 우리의 뿌리가 십자가의 은혜로 그동안 살았음을 고백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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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3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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