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분란 191209강의시편

20191209a 부산강의 : [시편]24(16편)-분란
(강의:이근호 목사)

시편 16편 하겠습니다. [다윗의 믹담]이라고 돼있지요. 다윗의 시로 돼있습니다. 시편을 여러분 읽어보셨겠지만 성경에 나와 있는 시편 16편 같은 내용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내용이 있단 말이죠. 시편 16편이니까 우리는 보통 생각하기를 신앙 생활하는 나에다가 시편 16편을 참조로 해서 더 보태면 된다고 보통 이렇게 생각해요. 좋은 아이디어기 때문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잘못입니다.

신앙의 콘셉트는 이걸 없애버리고 시편 16편에서 정리하고 배치돼있는 개념들로 채워야 돼요. 이 개념 뒤에는 누가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여기 있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평소에 시편 16편 말고 누가 일한단 말입니까? 내가 그냥 일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위해서 일을 하는 게 돼요. 내가 만든 내 콘셉트에 맞춰놓고 시편을 집어넣으려고 한다면 콘셉트 자체가 안 맞는 거예요.

확 밀어버리고 이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야 되는데 사실은 가져오질 못하고 이게 이중성을 갖게 돼요. 아래층은 우리 일이 위층에 새로운 시편 16편이 들어온단 말이죠. 중첩되겠지요. 중첩됐으니까 주님은 양보를 안 할 거고 우리도 양보를 안 할 거니까 여기서 신앙적인 투쟁이 있을 것이고 긴장관계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긴장관계라는 것은 신앙의 구조가 이미 하나님이 알아서 다 정해놨는데 우리가 너무 오지랖을 떨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에게 잘 보이려고.

이렇게 하면 하나님 기뻐하시겠지요, 이렇게 하면 나에게 점수를 더 주겠지요, 라고 자기 적절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정리한 거예요. 예를 들면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때 애들과 같이 놀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지. 헨델의 를 공연하면 기뻐하시겠지. 하는데 그런 것은 주님께서 확 밀어버리고 싶어. 다 지워버리고 여기서 들어오시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것이 침노가 되는 겁니다. 점령군이 와서 그 지역을 점령하는 데서 비로소 구원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점령하는 분이 계시고 점령당할 자가 있지요. 침노하실 분이 계시고 침노당할 자가 있지요. 이걸 오늘 제목으로 해도 괜찮은데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분란. 여기 시편 16편 2절에 보면,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분란을 일으킨 이게 복입니다. 주님 쪽에서 가만있는 나를 더 쑤시는 게 복이에요.

그러면 이게 분란이라면 저주는 뭡니까? 분란이 없는 게 저주겠지요. 이걸 로마서 1장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내어버려둠이라 합니다. 아, 이거 정말 무서운 거예요. 그냥 내어버려두는 거예요. 왜냐하면 사생자기 때문에. 친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그냥 내어버려둬요.

생중계를 하는데 생중계를 담당하는 제 아내에 의하면 제가 설교하게 되면 거기에 카톡방인가 뭔가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있데요. 그런데 실시간으로 생중계를 하니까 스트리밍이라 합니까? 뭐라고 불만이 있느냐 하면, 제가 어제 갈라디아서 4장 8절에서 악마의 종은 악마를 모른다는 게 악마의 종이에요. 인간에게 무슨 악마가 있습니까?

악마가 없으니까 인간은 그대로 창세기 3장의 꼴로, 3장의 인간형으로 있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시작이 나부터 해서 나로 시작이 되겠지요. 그러니까 인간의 자율적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자존적 존재가 되는 거예요. 천상천하유아독존, 이게 악마의 죄의 종의 모습이거든요.

이걸 설교하는 대목이었던 모양이지요. 그래서 여기서 뭐라고 토를 다느냐 하면, 자유의지를 발휘하면 악마의 종이란 말인가, 불만하고 쑥 나가버리는 거예요. 그럴 때 그 사람은 결국 뭐냐 하면, 내어버려두는 거예요. 그럼 어떤 사람이 여기 대해서 달기를, 끝까지 들어봐라. 그렇게 자기들끼리 나는 설교하기 바쁜데 끝까지 들어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내어버려둔다는 것은 시작을 출발하는 거예요. 이런 예는 세상도 찾아볼 수 있지만 오늘날 교회 내에서 아주 허다하게 발견될 수 있는 거예요. 모든 콘셉트를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악마로부터 출발하는 게 아니고 이미 악마로부터 맛이 갔다, 악마의 사주를 받고 있다. 그것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정상이라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겁니다.

나는 뭔가 남보다 더 성실하고 제대로 해보려고 지금 마음 다 잡고 교회 왔다. 술, 담배 끊고 마음잡았으니까 이것만큼은 주께서 괜찮은 콘셉트로 인정해주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누구의 종이라는 의식이 전혀 없는 거예요. 자존적이고 자립적인. 교회 갈까, 절에 갈까? 본인이 선택한 거죠.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복이란 것은 분란을 일으키는 겁니다. 가만 놔두질 않아요. 왜? 친아들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건드려주는 겁니다. 그런데 저주받은 사람은 이건 어차피 맛이 간 인간들이기 때문에 내어버려두는 거예요. 항상. 로마서 1장에 나오듯이 지가 동성애를 하든지 무지개를 날리든지 마음대로 해라. 그냥 놔두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의 친 백성은 놔두질 않지요.

그럼 시편에서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은, 이 이론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가만두십니까, 건드리십니까? 가만두지 않고 계속 건드리지요. 건드릴 때 다윗의 시, 다윗의 신앙의 특징은 죄가 보인다는 겁니다. 보통 보인다고 할 때는 죄가 보인다는 말을 잘 안 써요. 세상이 보인다. 그런데 세상이 보이기 때문에 죄는 안 보이게 되거든요. 세상이 보이는 것은 이렇게 돼요.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가 됩니다. 또 다른 세상이 있단 말이죠.

그럼 다른 세상과 현재 눈에 보이는 세상과의 관계는? 그건 모르지요. 보이지 않으면 없는 거니까. 눈에 보이는 게 전부니까.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 목사 당신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확정할 것인가? 괜히 말을 만들어서 하나의 개념을 당신 마음대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은혜 주려고 사람들을 혹하려고 뭔가 조작해낸 개념일 수 있지 않느냐고 하겠지요.

그럴 때 이렇게 이야기하세요. 요한복음 1장 18절.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 이야기할 때는 생각 안 났는데 돌아서서 이 말할 건데. 그런데 그렇게 후회하고 애석해 해도 그것조차도 배우는 거니까 그런 식으로 복음으로 달려가는 하나님의 분란이거든요. 복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너무 후회하지는 마세요.

요한복음 1장 18절에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사도 요한은 분명히 하자는 거예요.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면 하나님은 없는 거예요. 없는데 하나님이 있다는 것은 조작된 겁니다. 전부 다 구라입니다. 거짓말입니다. 모든 신은 다 거짓말이에요.

제가 어제 낮에 그런 이야기했는데요. 전통적 이천 년 동안 신학은 삼위일체 이론 같은 걸 보면 예수님을 뭐라고 표현했느냐 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도 하도 인간이다. 이게 저는 틀렸다고 한 거예요. 왜냐하면 사람들에게는 보이는 것이 전부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어요. 그리고 인간들이 자기를 인간으로 보는 것, 이건 창세기 2장이고, 창세기 3장에 죄의 종이 된 상태에서 자기를 인간으로 규정한 겁니다. 인간이 뭔지도 몰라요. 그냥 자기를 인간이라 한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인간이라 하면 안 되고 예수님은 하나님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이에요. 만약에 예수님이 하나님이고 인간이고 한다면 이 콘셉트를 인간이 자기 과업으로 내가 천당 가기 위한 과업으로 이 지식을 확보해서 구원받으려고 시도한단 말이죠. 저는 믿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인간입니다. 그것 믿는다고 구원받은 것 아니거든요. 그건 내가 하는 작업이잖아요.

이거는 외부에서 자기를 분란을 안 일으켰잖아요. 자기를 건드리지 않았단 말이죠. 내가 나를 자극해서 신앙인이 아닌 나를 내가 손질해서 신앙인 만드는 겁니다. 바다에 사는 상어고기 있지요. 상어고기를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727건 중 6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2,602 강의 사무엘상 55강(새로움), 마태복음 117강(기싸움). 191231 - 최고관리자 19-12-31
2,601 강의 [19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67 - 구멍 뚫린 허무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19-12-25
2,600 강의 유튜브강의(298강, 299강), 웃음과 비웃음, 해야 될 일 191217 - 최고관리자 19-12-17
2,599 강의 [19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66 - 공동의식(수정)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9-12-15
2,598 강의 특수한 인간 191212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19-12-13
2,597 강의 꿈과 현실 191212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9-12-13
열람 ➜ 강의 분란 191209 시편 최고관리자 19-12-09
2,595 강의 죽는 이유 191206 레위기 최고관리자 19-12-06
2,594 강의 두 개의 시선 191203 - 최고관리자 19-12-03
2,593 강의 유튜브강의 (296강, 297강) 만남, 슬픔의 이유 191203 - 최고관리자 19-12-03
2,592 강의 [19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65 - 기능자 전도서 최고관리자 19-11-28
2,591 강의 사무엘상 54강(선물), 마태복음 116강( 사단의 구멍) 191126 - 최고관리자 19-11-26
2,590 강의 유튜브강의 (294강, 295강). 타인 , 불신자의 심정 191119 - 최고관리자 19-11-19
2,589 강의 동거 191111 시편 최고관리자 19-11-11
2,588 강의 [19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64 - 요령과 희생 전도서 최고관리자 19-11-11
2,587 강의 선입견 공략 191107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19-11-08
2,586 강의 부정성 191107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9-11-08
2,585 강의 포대기 191105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9-11-05
2,584 강의 유튜브 강의 (292강, 293강) 행복과 불행 , 진지함 191105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9-11-05
2,583 강의 끈 떨어진 자 191101 레위기 최고관리자 19-11-01
2,582 강의 사무엘상 53강(골리앗), 마태복음 115강(겟세마네기도), 191029 - 최고관리자 19-10-29
2,581 강의 19대구강의(전도서속의그리스도)63-뼈다귀 - 최고관리자 19-10-28
2,580 강의 사이 191015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9-10-15
2,579 강의 유튜브강의 (290강, 291강) 사물과 인간, 영광과 수치 191015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9-10-15
2,578 강의 [19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62 - 예능인 - 최고관리자 19-10-14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