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이유 191206
20191206a 울산강의-레위기 24장 : 죽는 이유
(강의:이근호 목사)
레위기 24장 15절부터 23절까지 하겠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당할 것이요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짐승을 쳐 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그렇게 진행돼있지요.
성경은 상당히 무거운 책입니다. 왜 무거운 책이냐 하면, 거기에 죽음의 이유에 대해서 나와 있어요. 인간은 보통 살면서 끝에 죽게 되는데 죽어가면서 이유를 알고 죽어야 되거든요. 죽음이란 것인 인생의 끝에 있지만 죽는 이유는 죽음이 오기 전에 모든 하루하루의 그 이유가 바닥에 다 깔려 있습니다. 결국은 죽기 때문에 그래요. 이래 죽든 저래 죽든 죽기 때문에 인간은 사는 이유가 죽는 이유와 동일합니다. 왜 사는지, 왜 죽는지 같은 이유가 돼요.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과 죽는 것이 구분이 없다. 구분되지 않는 겁니다. 사람들 모여 있으니까 죽는 것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사는 것이 곧 죽는 것이고 죽는 것도 이게 하나님의 일이에 돼요. 그러면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겁니다. 이러이러하면 죽는다는 말은, 사는 것이 조건부로 살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면 죽는다는 말은, 그것도 돌로 쳐 죽인다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면 죽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걸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사는 겁니다. 사는 이유가.
그것 아니면 우리가 왜 사는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아요. 어차피 사는 것의 끝은 죽음이기 때문에 죽음과 삶이 구분 없다면 죽는 이유가 곧 사는 이유가 된다면, 그 죽는 이유를 성경에서는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면 죽는다.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 그걸 드러내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면 죽는다는 그 사실만이 유일한 현실인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 인생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이 세상 모든 것이 인간의 무대가 아니고 하나님의 무대란 뜻이에요. 이 세상 현실은 인간의 무대가 아니고 하나님의 무대, 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작용하는 나타나는 무대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을 위한 세상은 없지요. 나를 위한 그런 현실도 없고요.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면 죽는다는 말은 이걸 바꾸어서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과 같은 거예요. 너의 생명은 어디 있지? 너의 목숨은 어디 있지?
길 가는 사람에게 물어봅시다. 당신 생명은 어디 있습니까, 라고 물으면 그 사람은 화낼 겁니다. 질문을 해도 알아먹게 해라. 내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 내 목숨이 내 안에 들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당신의 생명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저의가 뭐냐? 아마 굉장히 분노할 거예요. 과학에서 말하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는 에너지 때문에 살아간다. 그 에너지는 어디서 왔는데? 우주에서 왔다. 그럼 우주는 어디서 왔는데? 그건 모르죠. 어디서 온 걸 몰라요.
인간에겐 대략 60조 개의 세포가 있는데 세포는 각자 살아 있습니다. 과학에서는 살아 있는 그것이 에너지의 힘으로 살아 있다. 쉽게 말해서 그 힘 때문에 인간은 살아 있다고 이야기하거든요. 그러면 그 힘은 어디서 오는데? 모르지요. 그럼 죽는 건 왜 죽는데? 에너지가 빠지면 죽는다고 하겠지요. 그러면 에너지가 왜 빠지냐고 물으면, 또 답변 못해요. 에너지가 지가 빠지고 싶어서 빠집니까? 세포가 암세포 되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까? “주여, 세포가 암세포 되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겁니까? 아니지요. 검사 해보니까 암세포가 퍼져있는 거예요.
그럼 그 암세포가 어디서 온 겁니까? 암세포가 도대체 멀쩡한 세포를 잡아먹는 거예요? 그걸 암세포에 물어봅시다. 암세포야, 너는 왜 멀쩡한 세포를 잡아먹는데, 라고 물으면 암세포는 이렇게 이야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