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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두 개의 시선 191203강의-

강남-요한복음 총정리(7)-요한복음 17장 (두개의 시선)191203a-이근호 목사

오늘은 요한복음 17장,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기도하는 기도 내용인데요. 그 기도 내용 1절에 보게 되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우리로서는 잘 납득되기 어려운 말씀을 하셔요.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되어있어요.

이 말은 뭐냐 하면 아버지 그 자체로 영화롭지를 못하다는 말입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경우에만 아버지도 영화롭게 된다. 우리들의 생각은 우리는 순서를 아버지부터 시작하죠. 아버지가 영화로우면 그 아버지 덕분에 아들도 영화롭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종속되느냐 하는 그런 우리 입장에서는 참 낯선 이야기인데 이러한 아버지가 도리어 아들에게 종속되는 경우가 성경에 보면 전에 수련회 할 때 아가에 그 아가 여러분 기억나지 않지요? 무슨 이야기했는지.

대전 수련회 때 아가 했거든요. 그때 반찬같은 건 기억나도 강의 내용은 잘 기억이 안나실 거에요. 누구하고 누구하고 싸운 이야기는 기억해도 강의 내용은 기억 안날 수 있거든요. 그 아가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해 보겠습니다. 아가 이야기에서 핵심은 ‘나의 누이’에요. 그 솔로몬의 술람미 여인보고 나의 누이라고 했거든요. 누이라고 하는 것은 같은 식구일 때 이야기하는 겁니다. 한 가족일 때.

나의 누이 있다는 말은 이거는 오빠란 뜻이죠. 오빠이다. 술람미 여인에게 오빠가 두 종류의 오빠가 등장합니다. 아가에서. 하나는 뭐냐 하면 친오빠죠. 혈육적 오빠. 혈육적 오빠가 있어요. 아가 1장부터 그리고 마지막장까지 계속 혈육적 오빠가 걸리적거려요. 계속 걸리적 거립니다. 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 혈육의 특징은 뭐냐 하면 가족의 특징은 내가 선택하기 이전의 문제가 되는 겁니다. 우리가 친구하고 사귈 때는 내가 그만두면 그만이다 이렇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혈육이라고 하는 것은 본인이 어찌 할 수가 없어요.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처분불가능성이다. 내 쪽에서 처분이 불가능하다 이 말입니다. 아가 1장에 오빠가 1장 1절에 보면 오빠가 포도원에서 자기 누이동생을 일하러 보냅니다. 1장 7절에 보면. 그리고 8장 보게 되면 그 8장 7절, 8절 쭉 뒤에 보게 되면 9절 같은 경우에 “그가 성벽일진데 우리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일진대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다시 말해서 술람미 여인이 연애를 하는데 있어서 그 네 남자친구가 그냥 너하고 우리 허락도 없이 사귀는 모양인데 우리 오빠들이 너 연애하는걸 가만 두지 않겠다. 그들이 쳐들오게 되면 아예 문밖에 못 나가도록 판자를 덧대겠단 말이죠. 우리 집안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그러니까 가족이 연애를 하든 남자를 사귀든 항상 우선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이 혈육이라는 혈육, 가족이라는 것이 우선되는 겁니다. 우리 가문을 위해서 너는 시집가야 되고 네가 우리 가문을 위해서 결혼해야 된다는 그것이 아가 구조에서의 갈등구조가 되는 겁니다.

갈등구조가 되는데 그 오빠가 혈육적 오빠가 강력하게 자기 누이동생을 단속하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또 하나의 오빠가 등장합니다. 미지의 인물이에요. 솔로몬 왕이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자기 사랑하는 여자보고 나의 누이라고 합니다. “나의 누이여. 나의 누이여”.

이것은 혈육적인 나의 누이여 솔로몬이 그렇게 이야기함으로써 솔로몬은 자기 여자 친구 자기 애인을 보고 나의 누이라고 해가지고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혈육적인 관계 이전부터 나는 네 식구였다. 원형적으로. 네 식구였다는 것, 네 하나의 가족이었다는 것을 이게 알려줍니다. 가족이기에 나는 너를 데려올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가서는 갈등구조죠. 하나는 혈육이 버티고 있고 혈육을 뚫고 혈육보다 더 우선되는게 있다는 겁니다. 혈육보다 우선 되는 것. 그런데 아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오빠 누이동생은 본인이 선택해서 가지게 된 게 아니잖아요. 그게 처분불가능성이죠.

그런데 새로운 오빠도 나의 누이라고 이야기함으로써 내가 너를 보고 누이라고 내 가족이라고 하는 것도 네가 처분가능한게 아니라는 거에요. 혈육적인 오빠 누이의 그 구조를 그대로 가져오는거에요. 솔로몬이 자기 술람미 여인에게.

그러면 그 혈육적 오빠 입장에서 그냥 단순히 내 누이동생의 남자친구가 아니라 완전히 혈육적인 모든 것을 발라버리고 그걸 부정해버리는 더 원형적인 가족관계가 드디어 출몰했음을 언급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여자가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결사적으로 이 오빠는 누이동생하고 연애 못하도록 막습니다. 1장에서 막고 8장에서도 막고 끝까지 막아요. 만약에 네가 우리 말 안 들으면 너는 우리 집안에서 쫓겨나는 거죠. 그게 뭐냐 하면은 혈육적 육의 관계에서 쫓겨났다는 말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육적인 관계가 끊어진 것, 죽음을 의미하지요.

그런데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에게 죽어라. 왜? 죽음보다 더 센게 있기 때문에. 사랑은 죽음보다 더 세기 때문에. 사랑은. 이 말은 뭐냐 하면은 혈육에서 끊어지는 것이 네가 스스로 처분, 나는 이제 집에 오빠하고 안 놀아 이런다고 해서 사랑을 얻는게 아니고 먼저 사랑이 다가오게 되게 되면 혈육이 그 사랑을 방해하지 못한다. 그 사랑이.

천하 자식이나 남편, 아내나 나보다 더 사랑한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 왜? 더 원형적이니까. 더 원초적인 거니까.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의 모든 육의 관계는 영의 관계를 영적 숨어 있는 영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서 하나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비유에 해당되는 겁니다.

은유에 해당되고 은유에 해당되니까 이거는 뭐냐 하면 언어라는 것이 그 기능이죠. 숨어있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인간들이 사용하는 개념들의 연결. 그러나 그 문자나 언어를 아무리 파헤쳐도 숨어 있는 것은 나타나지 않고 진정한 사랑이 오게 되게 되면 눈에 보이는 이 모든 것은 그냥 언어에 갇혀 있는 허구와 허상에 불과하다. 껍데기에 불구한 거에요.

진정한 관계, 다시 말해서 “나의 누이여”라고 하면서 찾아올 때에 그냥 찾아 오는게 아니고 일단은 그 술람미 여인이 육에 갇혀 있는 상황을 일부러 허락해주시고 그 인간이 끊을 수 없는 육, 어떻게 그것이 사랑이 그걸 끊어내고 그 육에 갇힌 인간을 사랑 쪽에서 무사히 구원해내는가를 보여주는 겁니다. 아가가.

여기서 아가에서 육과 영이 갈등을 일으키는 겁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지요. 말씀이 뭐가 됐다 했습니까? 말씀이? 육신이 된거죠. 이 말은 육신은 말씀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영은 육신이 될 수 있어도 육신은 영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육신은 어디까지나 모형이기 때문에. 그림자기 때문에.

영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육이 있는 것이지 육 그 자체를 육이 파헤친다고 영이 나타나는게 아니에요. 이 처분불가능성 중에 또 하나가 뭐냐 하면 바로 자식과 아버지, 자식과 부모 관계입니다. 자, 육의 세계 다시 말해서 은유의 세계, 허구의 세계에서는 부모가 먼저 있고 자식이 있는 걸로 되어 있어요. 부모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자식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관계는 혈육적 관계이기 때문에 이거는 아까 이야기한 처분불가능성이죠. 친구는 사귀다가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이미 낳은 자식에 대해서는 이거는 갖다버릴 수도 없고 젖 달라하는데 젖 안주고 네가 돈 벌어서 분유 사라 뭐 이렇게 할 수가 없잖아요. 무조건적이에요 무조건적.

따라서 이 혈육관계에서는 세상에서는 부모가 먼저 있고 자식이 있지만 이게 영적세계에서는 뭐냐 하면은 자식이 먼저 있고 부모가 있는 거에요. 자식으로 인하여 부모는 자기가 처분불가능성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자식 때문에 나는 자아 찾기 못해요. 자아 찾기 해서 헬스하고 있으면 아기가 기어가가지고 젖 달라고 울 때 이거는 내 인생의 내 허락도 없이 그냥 끼어든거에요. 자식이 3명이나 돼. 어쩔 수 없잖아. 4명이 되는걸 가까스로 막았다마는.

자식으로 인하여 부모가 뭐다라는 사실을 파악하는 겁니다. 자식이 나를 일방적으로 선택한 셈이 되지요. 왜? 내가 자식을 선택을 안했으니까. 내가 자식을 선택을 안했으니까요. 태어난 후에 태어난 그 존재가 나라는 존재로 하여금 내가 어떤 위치에 있으며 어떤 입장인가를 더 세밀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처분불가능성인데 결국 인간은 자식으로 인하여 부모가 뭘 하느냐? 내 위주로 살수 없다는 것 나는 뭔가 엮여 있다는 사실을 자식의 출생과 더불어서 파악이 되는 겁니다. 요한복음 11장에 1절에 보면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지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구조를 지상에 모습으로 구조를 밝혀주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제가 처분불가능성 다시 말해서 나는 그 누구로부터 선택 당했다 라는 언급을 할 수 있습니다. 또는 다른 말로 하면 종속 된다 이렇게 되거든요. 그런데 육의 세계에서 악마의 사주를 받았던 인간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철저하게 선악과 따먹는 순간 인간은 뭐가 되었어요? 자기가 신이 되지요. 신이 된다는 말은 자기가 절대적이 되는 겁니다.

자, 선악과 따먹은 취지가 뭐냐 하면 선악지식으로 하여금 인간으로 하여금 분명히 제가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처분불가능성이죠. 내가 나를 함부로 할 수 없는 처분불가능성이거든요. 그리고 나라는 것은 홀로 나 가 아니고 내가 처분 불가능한 다른 타인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그 타인의 운명에 엮여져가지고 오히려 그 쪽이 나를 처분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관계성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으면 인간은 본인을 뭐로 봅니까? 신으로 보지요. 신의 특징은 뭐냐 하면은 처분가능이에요. 처분가능. 그래야 신이 신다우니까. 절대권한이 있어야 신이니까요. 선택을 누가 한다? 남으로부터 선택 당하는게 아니고 누가 선택한다? 내가 선택하는 거에요. 내가 선택.

자, 이제부터 어렵습니다. 내가 선택할 때 내가 모든걸 선택한다 할 때에 이것은 바로 예수님이 아버지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거부하는 거에요. 천상천하 유아독존. 나는 나밖에 없기 때문에. 내가 최고가 되어야 신다우니까. 내가 선택할 때 여기 ‘나’가 나오지요. ‘나’. 그런데 나라는 것이 이게 허망하고 허구적인 거에요. 왜냐하면 나라는게 없고 뭐만 있느냐 하면은 몸이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몸은 어디에 종속되어 있습니까? 말씀에 종속되어 있지요. 예수님 맘대로 사는게 아니지요. 아버지 뜻대로만 살지요. 아버지 뜻이라고 하는 것은 말씀이고 예수님은 철저하게 말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그런데 인간의 몸은 인간의 몸이라는 것이 선악체계, 악마에 종속되어 있으면서 인간의 몸은 여기에다가 악마의 사주를 받아서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나. 그냥 나 가 아니고 절대적 나 가 되는 겁니다. ‘절대적 나’. 왜? 내가 신이 되야 되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과 무엇이 되어 있을까요? 몸이라 하는 것은 종속되는 건데 처분불가능이거든요 몸이 스스로.

그런데 여기서 몸을 버리고 뭐만 나왔어요? 몸을 버리고 나로 나왔으니까 나는 자칭 뭐가 되요? 자칭 신이 되는 겁니다. 자칭 신. 몸인데 뭐로 추정한다? 몸인데 이건 몸입니다 이렇게 해야될 걸 나는 나 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에요.

내가 몸이라고 하면 이 몸은 어디서 왔느냐가 문제가 되지만 내가 나라고 한다면 나는 누가 만들었어요? 나는 내가 만든 거에요. 나는 내가. 이 몸을 가지고 나 라고 지칭했기 때문에 내 몸을 내가 처분가능한 거에요. 내 몸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는데 네가 왜? 이러잖아요. 내 몸이니까 내 몸이라고.

몸은 처분불가능한데 나라고 해가지고 어디서 뚝 떨어진 나 가 있어가지고 몸을 이걸 자기화 자기 걸로 만든 거에요. 그러면 나는 선악과 따먹었으니까 절대적이죠. 그런데 몸은 절대적입니까? 몸은 변해요? 안 변해요? 점점 변하지요. 감정에 따라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변하잖아요. 내가 왜 이럴까? 맨날 내가 왜 이럴까.

이가 아프다. 그럼 치과에 가야되겠지요. 이가 아픈데 치과에 가기 전에 먼저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왜 내 이가 왜 아플까? 이렇게 생각해요. 그러면 이 말은 뭐냐 하면은 나라는 인간 속에 나라는 그 개념 속에는 내 이가 아파야 돼요? 안 아파야 돼요? 안 아파야 되죠. 신이기 때문에 안 아파야 돼요. 그런데 이가 아프니까 여기서 짜증이 나는 거죠.

짜증은 뭐냐 하면 개입이에요. 간격. 벌어진거에요. 이 몸과 ‘나’가 괴리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럼 뭐라고 합니까? 치과에 가서 몸 관리해야지. 누가? 내가. 지이잉~할 때 참아야지. 치과에 가서 참으면 뭐가 되느냐 하면 몸살 되지요. 몸살 될래? 치과 갈래? 치과 가서 일어나는데 몸은 몸인데 몸살이야. 너무 용을 써가지고.

참으세요. 참으니까 몸살된 거에요. 참다보니까. 인플란트 한 두개 하면 한달 동안 몸살 걸려요. 참는다고. 모든 치과는 다 아파요. 짜증이 나는 겁니다. 짜증이 난다는 것은 뭐냐? 개입이 있다는 것. 벌어졌다는 거에요. 벌어졌으니까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나는 치과에서 내 몸 관리 잘했어 라고 스스로 자기를 위로 하겠지요.

나는 아픈 것도 참아낼 수 있는 장한 나라는 거에요. 장한 나. 그러면 ‘나’가 뭘 따로 붙이냐. 몸이 안 아픈 몸이 어떻게 되겠어요? 이빨이 아픈 몸2가 됐지요. 나는 변화하는 몸을 따라 잡아서 ‘나’가 곧 갑자기 몸2와 합의를 하고 일치하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그 몸이 또 몸3로 또 변해요. 변한다고요. 계속해서 따로 붙여야 되는 거에요. 계속해서 개입이 생기는 겁니다.

돈 한 10억하고 그만 벌려고 하는데 10억하고 더 벌고 싶어요. 계속 사업 벌리고 백종원 처럼. 계속 사업 벌리고 밥이나 먹고 살면 되는데 계속 일 벌리지요. 아직도 목마르다. 4강하면 되는데 4강 말고 결승전까지 올라가야 돼.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히딩크가 이야기한 것처럼.

내가 몸을 정하고 싶은데 반대로 몸이 나를 장악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몸 따라 변하는 나 말고 몸이 어떻게 달라지더라도 나는 한결같이 나이고 싶다. 그것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그걸 주체라고 하는 거에요. 그걸 주체라고 하는 거에요.

주체라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어요. 한결같은 나 가 있을 수가 없어요. 이 주체는 어디서 생기느냐 하면 내가 나는 절대자거든요. 절대자이기 때문에 내 몸에 대해서 절대자이기 때문에 나의 절대가 나의 주체가 되기 때문에 나는 뭐를 무슨 일을 해서 한결같은 몸 따라 변하는 이러한 불쌍한 나 가 아니라 몸이 어떻게 망가져도 불멸의 존재, 한결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은 선악지식을 여기에다가 활용합니다.

이게 무슨 기능이냐 하면은 바로 심판기능이에요. 최고의 심판자리에 앉아요. 최고의 심판자리. 내려다보면서 지적질하는 것. 지적질하는 거에요. 저 사람보다 내가 나으니까 나는 정당하다. 저 사람보다 내가 잘 사니까 나는 행복하다. 나를 절대화시킬 수 있는 구실과 빌미거리를 계속해서 모집하는 거에요. 이게 인간의 한평생입니다. 평생이에요.

나의 절대성, 한결같은 주체의 절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만만한 것들이 다 와요. 만만한 사람들 없잖아요. 전부다 나름대로 신이기 때문에. 내 구미대로 전부다 심판해도 안 먹히잖아요. 그럴 때 뭐가 동원하느냐 하면 개가 동원돼요. 고양이나 강아지 개. 만만하거든.

자기 사랑을 주고 네가 내 사랑을 아는구나 하고 흐뭇해하고. 나는 이렇게 나 말고 다른 몸을 사랑할 줄 아는 절대적인 존재. 사랑을 할 줄 아는 그런 괜찮은 불멸적인 사랑으로 사랑을 하는 존재. 그걸 강아지 옆에 끼고 그걸 확인하는 거에요. 처음부터 강아지 안 키우죠. 남편이나 아내 가지고 한번 해보겠다 하는게 전부다 사단날 때.

내가 결혼하고 불행 끝 행복 시작하는게 다 사단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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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727건 중 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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