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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사무엘상 54강(선물), 마태복음 116강( 사단의 구멍) 191126강의-

대전-54강 사무엘상17장47절(선물)20191126-이 근호 목사

자, 시작하겠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7절요.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이게 골리앗과 싸움이야기입니다. 이 싸움이 이상해도 많이 이상해요. 참 많이 이상해요. 왜냐하면 이런 싸움이 이 세상에 없어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 싸움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싸움입니다. 이 세상에.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게 반복이 안 되잖아요. 반복이. 키가 3미터가 넘는 사람과 어린 소년이 싸워서 우연히 이길 수는 있어요. 근데 반복해서 이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반복되지 아니하면 이건 뭐가 아니냐 하면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라는 것은 그게 맞아, 그게 맞는 거예요. 그러면 그 다음에 그게 또 그렇게 돼야 돼요. 이게 소위 수학공식이라는 것이 그렇게 해서 생긴 거거든요. 이 공식을 누가 만든 거예요? 인간이 만든 거잖아요. 인간이 생각한 진리라고 하는 것은 반복이 가능해야 해요. 동일한 원인을 주게 되면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 이럴 때 뭐가 성립이 되느냐 하면은 믿음이라는 것이 성립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싸움이 반복이 되던가요? 그다음부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부 다 칼과 창을 다 버리고 짱돌 들고 설치던가요? 그것도 어른들은 다 쉬고 애들만 골라서 전쟁에 나갔던가요? 아니죠. 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무엇을 치는 싸움인가 하면 다윗이 골리앗을 치는 싸움이 아니고, 그걸 쳐다보고 있는 모든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 이 세상이 하나님 앞에 수긍될 수 없는, 받아들일 수 없는, 하나님이 용납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이 세상에 싸움이라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정당싸움도 있지만, 나라싸움도 있지만, 모든 인간은 아침에 눈만 뜨면 안 싸우고 넘어가는 법이 없어요. 부부싸움부터 시작해서 자식싸움으로 해서 싸움을 안 하고 지나간 적이 없어요. 그 모든 인간의 싸움을 공식화시킨다면 이렇습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 이 나 사이의 싸움이에요. 나 사이의 싸움.

내가 과거에 이렇게 했지만 지금은 더 나아져야 해, 라는 고집이 있잖아요. 나는 무엇이 있어야 되고 자랑거리가 더 많아져야 된다는 싸움입니다. 지금이 과거보다 더 많아져야 된다는 싸움. 미래는 지금의 나보다 더 많아져야 된다는 싸움. 이 싸움에 누굴 희생물로 해서 싸우느냐 하면은 타인들, 식구들이죠. 타인들을 공격해서, 그 공격하는 목적은 과거보다 더 나은 나를 수립하기 위해서. 수립이라는 말이 어려우면 이런 말로 하면 돼요. 재구성하기 위해서. 인간은 날마다 자기를 재구성합니다. 재구성한다는 것을 수학으로 이야기하면 플러스(+)가 되겠죠. 계속해서 더 좋은 점을 플러스하죠.

근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성경이 가는 것은 플러스로 가면 안 되고, 그쪽 노선으로 가면 안 되고, 플러스의 반대가 뭐겠어요? 빼기(-)죠. 빼기로 가야 돼요. 왜냐하면 인간들의 그 결과는 어차피 파멸이기 때문에 그래요. 인간의 결말은 파멸이에요. 제가 이 점을 보완적으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성경에서는 죽음을 두 종류로 나눕니다. 하나는 뭐냐 하면은 숨 끊어진 것, 이걸 죽음으로 봐요. 성경에서는. 이거는 뭐 우리도 마찬가지로 다 아는 이야기 아닙니까?

두 번째는 뭐냐 하면은 심판받는 것, 저주받는 것, 이걸 죽음으로 보는 겁니다. 선악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한 것에는 이 두 가지가 다 들어있어요. 둘 다. 창세기 5장에 아담이 자식을 낳고 죽었더라, 죽었더라.., 죽음이 두 가지라는 것을 여러분이 기억하고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 다음에 질문이 있어서 그래요.

생명이 무엇인가? 자, 죽음과 생명은 반대잖아요. 그러면 죽음이 두 가지라고 하면 생명은 뭣 가지겠어요? 마찬가지로 두 가지가 되겠죠. 첫째는 오래 사는 것을 생명으로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뭡니까? 저주에서 벗어나는 것. 저주에서 벗어나서 복을 받는 것. 이게 생명이겠죠. 이 죽음과 생명을 한꺼번에 다 보여주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어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부활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부활과 둘째부활이 있어요. 그러면 죽음도 뭐가 되겠어요? 첫째죽음이 있고 둘째죽음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에. 지금 내 이 말이 거짓말이라고 하시려거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그리고 성령이 오셨다는 사실을 근거해보면 이 말이 거짓말이 아닙니다. 아까 제가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이 이 세상에 없다고 했죠. 그러면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 이 세상에 있습니까? 없죠.

공동묘지에 묻어놓고 며칠 후에, 사흘 후에 살아나는 것을 확인해볼 자식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남편 죽고 난 뒤에 사흘 만에 한번 살아나나 보자 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거는 신천지 이만희나 그런 소리하지, 딴 데는 그런 소리 안 하거든요. 죽고 난 뒤에 부활한다는 소리를 했던 모양인데. 사람이 죽었다가 부활한 것을, 만약에 그 사람이 성령이 없는 사람, 성령을 안 받은 사람 같으면 두 번째는 생각 못하고 첫 번째 죽음만 생각하기 때문에, 생명도 첫 번째 생명만 이해하는 거예요. 오래살고 싶어 하는 것, 이걸 불멸성이라고 합니다. 불멸성.

성경에서 엘리제사장을 들어보신 적이 있죠? 사무엘상 4장에. 홉니와 비느하스의 아버지. 그 사람이 죽을 때 연세가 어떻게 됐느냐 하면은, 그건 나이가 아니에요. 연세에요. 98세였습니다. 두 살만 더 채웠으면 백 살 채우는데. 그 사람이 죽을 때 비참하게 죽죠. 뚱뚱해가지고 엎어져 자빠져서 죽죠. 그러면 그 사람의 말로가, 그 사람의 끝이 그 사람의 본질을 말해주는 거예요. 그 사람의 끝이. 그러니까 중간에 기차의 객차가 길다고 해서 타면 안 돼요. 어디로 가는 기차냐를 봐야 됩니다.

이게 뭐냐 하면은 지금 니가 어느 편이냐를 묻는 겁니다. “니 지금 어느 편이야?” 이거 현대인들은 굉장히 기분나빠합니다. “나는 내 편이야.” 이걸로 끝나요. 니가 어느 편이냐를 묻는 것 자체가 니는 니 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밑에 깔고 하는 거예요. 니는 어느 편을 먹어야 되지, 홀로 노력하고 몸부림친다고 해서 무슨 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깔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너 어느 편이야?” 근데 현대 젊은이들부터 해서 사람들에겐 어느 편이 없어요. 누굴 위해서 삽니까? 자기를 위해서 살면 끝나는 거예요. “니 시댁편이야? 친정편이야?” 이것도 옛날이야기에요. “나는 내 편이야. 내가 꼭 누구 편이어야 해? 이거 말도 안 돼! 나는 누구 편먹기 위해서 살아가는 게 아니야. 나는 나를 위해서 살아가.”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의 의미는 바로 여기서 나오는 거예요. “니 다윗편이야? 골리앗편이야?”라고 묻는데, 문제는 다윗편이고 골리앗편이고 간에 이런 전쟁은 이 세상에서 찾을 길이 없다는 거예요. 마치 십자가를 찾을 길이 없듯이. 다시 이야기할까요? 반복되지 않으면 뭐가 아니다? 진리가 아닌 거예요. 반복되지 아니하면.

어떤 목사가 기도했는데 암에서 나았다. 암4기인데 나았다. 개 구충제 안 먹어도 나았다. 또 암인데 그 목사는 또 나았다. 두 번은 뭐 우연히 되겠지. 그런데 세 번 네 번, 한 일곱 번 나았다. 그러면 그 목사 뜨죠. 왜 반복이 되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진리는 반복이 됩니까? 안 됩니까? 반복이 안 됩니다. 반복이 안 돼요. 왜냐하면 이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은 어떤 인간과 엮여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래요. 어떤 인간과 엮여서는 안 된다는 말은 어떤 인간도 예상 밖이어야 한다 이 말이죠.

마치 무엇이 예상 밖인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가 예상 밖인 것처럼. 왜 예수님께서는 예상 밖의, 인간들이 생각 못하는 이런 아이디어를 제공했을까요? 인간들은 이미 믿음도 아닌데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럼 그 인간은 누굴 믿는가? 자기가 예상한 것을 믿죠. 자기가 예상한 것을 믿는 것을 가지고 다윗과 골리앗에서는 누구편이냐 하면은 바로 골리앗편입니다.

오늘 본문 다시해보겠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무엇과 무엇에 있지 아니합니까?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한다 했죠.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고 그냥 결론을 내리면 되는데, 왜 ‘~가 아니요’라는 것을 선행하느냐 하면은 인간이 평소에 의지하고 있는, 이걸 다른 말로 믿음직하게 여기고 있는, 여기에서 칼과 창이죠. 칼+창, 이걸 한마디로 말하면 힘이죠. 힘. 거기다가 골리앗은 덩치가 크죠. 덩치가 크면 거기서 많은 완력이 나오겠죠. 모든 게 힘이에요.

젊은 아가씨한테 키 150되는 남자하고 결혼할래? 키 180되는 남자하고 결혼할래? 라고, 묻는 내가 잘못이죠. 그래도 아무리 못나도 키 180이라는 힘이 있잖아요. 보호해줄 수 있어요. 키 150이 되가지고 깡패만나면 얻어터지기만 하고 어디 마음에 들겠어요. 지가 보호해야 되니까. 지가 보호해야 할 판이니까. 여자는 보호받으려고 결혼하는데. 그렇게 보면 박찬숙이 결혼한 게 참 신기해요. 농구 대표선수. 키가 190이 되는데 누가 오겠어요. 서장훈이나 와야 되지. 그걸 보통 덩치가 크다고 하죠. 사위를 보는데 키가 150이다. 어느 어른도 그걸 듬직하다고 보지 않아요. 뭐 작은 고추가 맵다, 실속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이왕 실속 있는 것 커서 실속 있는 것이 더 낫겠죠.

여기 하나님께서 키 큰 것하고 꼬마하고 유치한 전쟁을 붙여놨다는 말은 지금 우리의 예상을 뒤집는 거예요. 단순히 뒤집는 정도가 아니고, 니 어느 편이야?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아! 키 큰 골리앗을 겁낸다는 그 자체가 너는 어느 편을 먹었냐는 겁니다. 골리앗과 한패라는 겁니다. 골리앗과 한패. 골리앗과 한패 되었기 때문에 골리앗이 큰소리를 칩니다. 이게 성경에 보면 나와요. “야! 복잡하게 가지 말고 일대일로 붙자! 일대일로 붙어가지고 이긴 쪽이 다 갖자.”라고 큰소리 칠 때, 그 이스라엘 어른들은 왕부터 해서 바들바들 떨었죠.

그게 뭐냐 하면은 공포입니다. 공포. 공포에요. 공포는 뭐냐 하면은 힘에 주눅들어있었다. 힘에 주눅들어있었다는 말은 뭐냐, 평소에 힘을 사모했다는 뜻이에요. 아휴, 나도 돈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만약에 아들이 결혼하는데 딸 집안이 한 30억이 된다. 한 50억이 된다. 50억이 되는데 당신 아들을 달라고 하면 갑자기 공손해지고 이 혼인이 파토 날까봐 벌벌 떨고, 상견례 할 때도 있지도 않는 아부나 재롱이 나오고, 그렇게 해서 아들을 여자한테 장가보내는 것이 아니고 50억에 장가보내는 거죠. 그게, 그걸 두려워하고 떨고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걸 선망했고 원했던 거예요. 이 힘을.

제가 문장을 적어볼 테니까, 여러 번 해봅니다. 내가 의지하는 것, 이것이 나의 무기다. 내가 의지하는 것이 무기에요. 혹시 자식을 의지하십니까? 자식이 무기가 되죠. 어디에 가도 지 자식 자랑하니까. 근데 여기에 반전이 있어요. 그게 나의 약점이다. 그게 약점이에요. 이거 무너지면 나는 죽으려고 해요. 살 의미가 없어요. 내 무기에다가 몽땅 다 의지했기 때문에. 나무를 의지하다가 나무가 무너지면 같이 무너지는 거예요.

이게 인간들이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인간들은 골리앗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아무리 홀로 서려고 해도 너희들은 어떤 골리앗 같은 존재를 기대하고 있었고 고대하고 있었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 이스라엘은 예상했던 이 골리앗 자리에 뭘 집어넣었었습니까? 하나님을 집어넣었었거든요. 근데 그 하나님이 나중에 보니까 뭐였습니까? 골리앗으로 등장하는 엉터리 하나님이었어요. 이걸 두자로 하면 인간은 거짓입니다. 인간도 거짓이고 인간세상도 거짓이고. 다 거짓된 거예요. 전부 다 거짓된 거예요.

이스라엘은 누구 나라입니까? 하나님의 것이죠. 하나님의 것인데, 막상 이스라엘을 조사해보니까 뭐로 가득 차 있었다? 뭐로 집합되어 있었다? 거짓된 것들의 집합이에요. 인간의 힘으로 이스라엘이 운영이 될 수 없어요. 하나님의 원래 이스라엘대로 될 수가 없죠. 여기에 무슨 조치가 있어야 되겠죠. 조치가 있어야 하려면 거짓된 인간들이 예상한, 잘못되게 예상한 것들을 엎어야 되겠죠. 그 엎는 계기, 사건이 뭐냐 하면은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입니다.

사사기 16장을 한번 봅시다. 사사기 16장 6절을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되 청컨대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으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곤고케 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들릴라, 영어로 하면 딜라일라가 돼요. 딜라일라. 딜라일라 하면 여러분들도 아는 그 유명한 탐 존스 노래에 나오죠. 창가에 앉아서.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되 청컨대 당신의 큰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그러니까 남자를 남자로 보지 않고 무엇의 대행처로 보느냐 하면은, 그냥 남자가 아니고 힘 있는 여기에 강조점이 있고, 힘 있는 남자니까, 남자를 존재로 바꾸어버리면 남자란 여자에게 있어서 힘 있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힘 있는 존재. 그래서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지 않아요. 힘을 사랑하지. 뭐 딱 나오는 공식이 아닙니까? 뭐 복잡한 거 없죠. 돈의 힘, 권력의 힘, 조국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힘.

사사기 16장 9절에 보니까, “이미 사람을 내실에 매복시켰으므로 삼손에게 말하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그 칡 끊기를 불탄 삼실을 끊음같이 하였고 그 힘의 근본은 여전히 알지 못하니라” 그 힘의 근본은 그 다음에 뭡니까? 여전히 알지 못했다. 야! 이게 성경이 아닙니까? 들릴라와 블레셋, 이스라엘의 적은 한패에요.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적은 골리앗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스라엘 적들의 공통점이 있네요. 똑같이.

그건 오늘날 우리들에게 뭘 이야기해요? 너희들은 지금 하나님이 너희들의 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진짜 하나님은 너희들을 적으로 본다는 거예요. 이 성경은. 지금 우리들을 적으로 봐요. 우리는 또 적다운 면모를 또 보이고. 성경 전체가, 인간이 창세기 3장에서 생명나무에서 쫓겨날 때부터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적입니다. 적인데 그걸 누가 모르느냐 하면은 인간들이 몰라요. 정말 이거는 답답한 거예요. 교회 와서 하나님이여! 이러고 있다는 말이죠. 적인데. 적인데 한패인줄 알고 착각을 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 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편이에요. 우리가 뭐 잘났다고 자기편을 삼아요. 우리를. 우리를 사랑한다고요?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요. 주님을 사랑하지. 자기 아들이니까. 예수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사랑의 대상이 될 수가 없어요. 에베소서 1장 4절에 보면 우리를 선택할 때도 그냥 선택하지 않아요. 사랑의 포클레인으로 잡아요. ‘주 안에서’ 그렇게 되어 있어요. 주 안에서. 이 말은 주 안에서를 빼면 우리는 사랑의 대상이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이 말은 다른 말로 예수님을 위해서 구원했지 니 구원하려고 주님이 계신 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지난주일 낮 설교 생각이 나네요. 우리의 구원은 없고 누구의 구원밖에 없다고 했습니까? 예수님 구원밖에 없어요. 그런데 신천지부터 시작해서 모든 한국교회 구원파들이, 교회가 상품으로 제공한 게 뭡니까? “당신 이렇게 하면 당신 구원 받는다.”라고 하잖아요. 그게 성경에 없다 이 말이죠.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적인데, 내치고 싶어 하지 우리를 거두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디서 이상한 하나님을 들고 와가지고 교회라는 장사를 하고 있어요. 영업을 하고 있다고요.

“하나님은 우리의 적입니다.”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들어본 적이 있어요?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 교회 간판부터, 교회입구부터 해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붙어 있잖아요. 이거 뭐, 하나님은 안달 났어요. 그렇게 사랑할 것 같으면 지옥을 만들지 말든지. 여호와증인처럼. 지옥 만들어놓고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지옥을 없애버리면 깔끔하게 사랑이잖아요. “그거는 니가 실수할 수 있지. 선악과 따먹었다고. 아이고, 뭐 인간인데 실수하지. 하나님이면 실수하겠어. 봐줄게.” 이러면 문제가 깔끔하게 끝날 문제가 아닙니까?

골리앗의 키가 3미터 같으면,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하나님 쪽에서는 한 5미터 되는 거인을 내세우면 문제가 깔끔하게 끝날 문제에요. 저기에서 창 들고 왔다면 여기는 기관총 들고 올 수도 있는 문제라 이 말이죠. 힘에는 힘. 이게 우리들이 믿고 있는 무기기 아닙니까? 이게 우리들이 의지하고 있는 거예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한테 물어봅시다.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예수 믿습니다.” “어떤 예수요?” “힘 있는 예수.” 이게 바로 지옥 갈 사람들이에요. 전부 다. 교회라는 자체가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가를 살피는 그게 아니고 교회 왔다는 것으로 무슨 힘을 더 축적하는, 플러스가 되는 무슨 일인 줄로 생각했어요.

아까 강의에서 뭐라고 했어요? 인간들은 뭘 원한다? 플러스를 원하죠. 플러스(+).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했습니까? 플러스가 아니고 빼기(-)에요. 인간은 소멸되어야 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죽어가고 있고, 첫 번째 죽음으로 숨 끊어지고. 두 번째는 뭡니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고 그 후에는 뭐가 있다? 심판이 있다. 죽음이 두 종류가 맞잖아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 두 개 다가 처리가 되는 겁니다. 그냥 안 죽으려면 코에 호스 꽂으면 돼요. 그런데 그것은 저주스러운 불멸인데, 그것은 어디서 하느냐 하면은 지옥이 이거 전문담당이에요. 지옥은 일종의 요양병원이거든요. 죽은 시체, 하나님 내가 죽였다는 것을 영원토록 보여주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내가 죽였다.

그리고 제가 설교시간에 그랬죠. 이 세상이라는 곳은 지혜라는 포클레인으로 파보면 뭐가 있느냐, 지옥이죠. 근데 지옥 위에 세상이, 지옥의 창문이 다 열려가지고 지옥의 기운이 그대로 세상을 뒤엎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여러분들이 아신다 치고, 자 그다음을 해봅시다. 자,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상대해요. 그 싸움 현장에서 골리앗이 몇 명을 상대합니까? 단 한명이죠. 단 한명. 이 단 한명이 소년 다윗인데, 한명이 나설 때에 여기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부 다 말렸죠. 말렸다 이 말이죠.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거는 단 한명과 다수가 여기서 결별되는 거예요. 끊어지는 거예요. 끊어진다 이 말이죠. 이쪽 골리앗은 블레셋 전부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도 골리앗 단 한명이에요. 단 한명. 결국 전쟁의 승패, 전쟁의 승리, 결말은 여럿이 달려드는 것이 아니고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몇 명만 필요해요? 단 한명이죠. 단 한명. 사도행전 4장 12절에 나오죠.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받을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다른 이름으로. 여기 다른 이름 가운데 내 이름이 포함이 됩니까? 안 됩니까? 당연히 포함이 되죠. 다른 이름 가운데에는. 당연히 포함이 되죠. 당연히.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한테 발길로 차이는 거예요. 침대가 이렇게 있는데 그 침대에는 딱 한 사람만 누우면 딱 맞는 침대에요. 예수님이 눕고 싶어서 올라오면 어떻게 합니까? 누워있는 한 사람을 발길로 차버리는 거예요. 한 사람만 눕는 거예요. 한 사람만 눕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 옆에 눕기 위해서는,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할 때는 그냥 옆에 누우면 안 되고 우리가 죽어야 됩니다. 죽은 자로서 예수님과 함께 있어요. 죽은 자로서.

열두 사도들이 있는데요. 사도바울까지 포함하면 열 세 사도가 있는데. 이 사도들이 평소에 사도행전에서 일할 때에 본인들이 살았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주님이 살았다고 생각합니까? 주님이 살았다고 생각하죠. 이게 하나의 겸손일까요? 아니면 그렇게 억지로 마음을 다잡는 겁니까? 아니면 실제입니까? 이게 실제가 되는 이유가요, 사도바울이나 베드로나 이 사람들이 어디에 주력하느냐 하면은 옥에 가있거든요. 옥에 갔을 때에 옥문을 누가 열어줬습니까? 베드로 옥문을 누가 열어줬습니까? 베드로 지가 맥가이버 칼 들고 열었습니까? 누가 열어줬어요? 천사가 열어줬죠.

스데반 집사가 예수님 만나서 구원될 때에 스데반 집사가 이렇게 폴짝폴짝 뛰었습니까? 아니면 누가 구원해줬어요?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스데반 집사가 죽을 때에 예수님이 일어서서 스데반을 반겼죠. 결국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의 일관성이 있는 이야기 한 가지는 뭐냐 하면은 “지금 주님이 살아계시고 우리를 건진다.” 그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사도들이 욕을 얻어먹는 거예요. 왜냐 하면은 골리앗과 다윗의 전쟁은 반복되지 않잖아요.

사도들이 하는 이 이야기가 지상에서 과학적으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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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