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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주가 쓰시겠다 2004년 12월 12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21:1-5설교마태복음

Re..마 21: 1- 5 (주가 쓰시겠다)

이름 : 이근호(IP:)

주가 쓰시겠다
2004년 12월 12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21:1-5

21:1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1:2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21: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21:4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21: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일은 없는데서 있게 하시는 식입니다. 있는 것을 끌어 모아 자기 것으로 삼는 식은 인간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먼저 된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을 모습으로 많이 내놓게 됩니다.

즉 '이만큼 업적을 쌓았으니 설마 하나님이 나를 버리실까"라고 여깁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없는데서 있게 하는 식으로 일하심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인간들의 과거 업적이 화려하더라도 늘 무(無)로 돌리겠다는 원칙이 바로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가 하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거부하고 정죄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 다니엘에 보면 교만한 자가 하나 나옵니다. 벨사살 왕입니다. 그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올리는 잔으로 술을 담아 자기 입 속에 집어넣습니다.

그 때 갑자기 허공에 왠 손이 나타납니다. 그 손으로 인해 벨사살 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립니다. 그동안 아부하는 신하들의 추앙도 그 순간 받을 기분도 안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식으로 신이 나타나느냐하는데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아무리 성경에 대해서 많이 알고 세상적으로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는 순간, 그 모든 것은 하찮은 것이 되고 맙니다. 얼굴이 창백해 질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실상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 성경을 읽으셔야 합니다. 4절에 보면,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라고 되어 있습니다. 벨사살 관점에서 이 말씀을 대해야 비로소 이 말씀이 이해됩니다.

세상 일이란 모든 것이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원칙으로 통합니다. 자신이 직접 노동하고 실천에 옮기지도 않는데 누가 옆에서 가져다 준 것으로 산다는 의식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상식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선지자에게 주신 그 말씀이 성취'되는 결과로서 '있게 된' 것이 이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큰 차이가 나는 대비입니다. 아무 것도 한 것도 없이 무엇을 얻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일요일 예배에 참석한 그런 경력으로 인하여 한주간 복을 받는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반대로 생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배 참석도 하지 않았는데 한 주간 복을 내내 받는다는 발상은 참으로 나오기 힘든 겁니다.

그러나 사실은 인간은 행함과 상관없이 일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왜 그런가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표현으로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주께서 친히 쓰신' 결과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노력한 결과로 현실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께서 친히 만들어 나기시는 세계입니다.

사실 같은 인간들로 보이는 사람끼리 '주'라는 말을 쓰기에 조심스러워집니다. 누가 결에서 자신이 '주이시다'고 우기면 그 자체가 우리 자신에 대한 모욕감과 동시에 미친 자로 간주합니다.

만약에 자칭 주라는 자의 주장을 인정해 버리면 나는 졸지에 그 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노골적으로 자신을 '주'라고 지칭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제부터는 예수님께서 주님으로서 선지자가 예언한 바를 성취할 차례라는 겁니다. 선지자가 하신 예언의 말씀 성취는 주님의 몫입니다. 그 외에 어떤 자도 완수할 수 없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그 주님에 의해서 쓰임을 받을 뿐입니다. 이런 체제를 예수님은 나타내고 계십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들으면, '주가 쓰시겠다'는 말씀은 참으로 거만하고 독단적으로 건방진 발언으로 들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씀에 우리의 전부를 던지고자 합니다. 즉 주님으로 쓰임을 받음을 믿지 않는 자는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자입니다.

흔히 교회에 나오면서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를 부러워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T.V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과연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를 피우는가를 보세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성도라고 하면서도 그런 세계에 미혹받고 부러워하는 모습을 나타내게 됩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신이 쓰여지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우리의 안타까운 처지를 기정 사실화하고 일을 시작하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이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 속에 놓여있는지도 모르면서 '주님'을 운운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나서서 나귀를 타시겠다는 것은 선지자가 묘사하는 그 말씀으로 인간 세계의 진찌 모습으로 등장시키기 위함입니다. 즉 예수님의 나귀 타심은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의 성취입니다. 즉 인간 세계가 교만함으로 인해 참된 구원자이고 하늘이 인정하신 왕은 겸손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러한 거꾸로 된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시온의 딸'이 누구를 말하는지부터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선지자는 택함 받은 자기 백성을 묘사하면서. '딸'이라는 여성형으로 묘사할까요? 얼마든지 '시온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딸'이라는 여성으로서 시온을 표현하고자 합니까?

스가랴 12:10에 보면,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다윗의 집'이라는 것이 곧 '시온'입니다. 그런데 이 시온에서 대 통곡소리라 터져나옵니다. 그것은 유다 임금들의 인간적인 면모 때문에 언약에 의해 자기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징벌이라는 것이 바로 자식과 생이별하는 겁니다. 자식이 적군에 살해당하고 빼앗겨 버려지는 겁니다, 자식에게 징벌이 주어지게 되면, 남자보다 어미들의 마음은 미어집니다. 통곡합니다. 한이 맺힙니다. 이 세상의 형편에 대해서 절규합니다.

평생과 고통과 아품을 가슴에 품게 됩니다. 여자에게 있어 자식이란 곧 하늘이 내린 복의 증거물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를 자녀로 인정한다는 뜻에서 하늘의 축복으로 인해 자식을 얻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귀한 자식이 인간 왕의 죄악으로 인해 하늘로부터 심판을 받아 생이별하게 된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살던 두 살 아래의 아기들은 예수님을 찾는 헤롯 군병에 의해 모조리 몰살당하고 맙니다. 그 때 아버지들 보다 어머니들이 애통합니다. 위로 받지를 거절할 지경입니다. 마태복음 2:18에 보면,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고통 중에 안고 사는 '시온의 딸'에게 희망이 있다면 제대로 된 왕이 자기들을 찾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완전한 왕이신 예수님께서 이 '시온의 딸'들을 방문하시는 겁니다. 이러한 왕의 강림을 위해 자기 백성들은 주님으로부터 쓰임을 받는 나귀들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선지자 말씀대로 진행된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주께 쓰임을 빋지 못하는 자'라면 인생 잘못 살고 있는 자들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 6:19-20의 말씀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을 위해 자신이 쓰임 받지 말게 하시고 오직 주님으로부터 쓰임받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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