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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91101a 울산강의-레위기 24장 : 끈 떨어진 자자유게시판레위기

20191101a 울산강의-레위기 24장 : 끈 떨어진 자
(강의:이근호 목사)

레위기 24장 10절부터 제가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애굽 사람 된 자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나가서 한 이스라엘 사람과 진 중에서 싸우다가 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며 저주하므로 무리가 끌고 모세에게로 가니라 그 어미의 이름은 슬로밋이요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었더라 그들이 그를 가두고 여호와의 명령을 기다리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저주한 사람을 진 밖에 끌어내어 그 말을 들은 모든 자로 그 머리에 안수하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당할 것이요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 훼방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방금 읽었던 이 말씀, 레위기 24장에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한다. 훼방한다는 말은 망령되이 일컫는다, 또는 모독한다, 그런 뜻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모독하면서 우습게보면서 또 저주했어요. 저주했을 때에 사람들이 하나님 이름을 저주한 사람을 데리고 모세한테 갔고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니까 확실한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 명령은 뭐냐 하면, 저주하는 말을 들은 사람에게 안수하게 하고 온 회중은 그를 돌로 쳐 죽이라고 돼있어요. 그리고 말하기를 이게 법칙이 되어서 이스라엘 가운데서 누구든지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면 반드시 돌로 쳐 죽이라는 것이 계속해서 그 다음에 법칙으로 법령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자, 이 대목을 풀면서 제일 먼저 해야 될 것은 인간 대 인간에서 원, 투가 있다면, 인간1, 인간2, 제3의 하나님의 개입이 들어간다는, 제3의 요소. 제3의 요소에 의하면 1도 어떤 자격이나 권리가 없고, 2 인간도 자기 권리가 없고 오직 권리는 누구한테 있느냐? 하나님에게만 권리가 주어져서 상황이 종결됩니다.

그런데 여기 죽었던 사람이 뭘 했느냐 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모독했던 사람이에요. 그러면 저주하고 모독했던 피해자가 누구냐? 하나님이고, 죽은 자가 가해자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은 목격자가 되지요.

제가 이렇게 설명하니까 어려운 게 없지요. 별로 어렵지 않지요. 인간이라 하는 것은 그냥 목격자일 뿐이지 저 사람을 죽일 권리도 그들에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피해자고 가해자는 돌에 맞아 죽은 이 사람이 가해자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자기를 처리한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별 어려운 게 없는데 뭘 하나 지우면 이야기가 복잡해져요.

제3의 요소, 하나님을 지워버립니다. 왜 지우느냐 하면, 하나님은 안 보이니까. 이 사람은 죽은 걸로 돼있는데 죽은 걸로 하지 말고 이야기를 처음으로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거예요. 그럼 여기에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있지요. 이 사람이 누구와 싸우다 화가 나서 여호와를 저주했을 때 1과 2는 이 사람에게 돌을 던질 권한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권한이 없지요. 그냥 인간들 사이에 능히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중 하나가 돼버려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한다. 우리는 뻘줌하게 있다. 이게 뭐냐? 2019년도 울산의 상황이에요. 방금 하나님의 개입을 치워버렸다는 말은 레위기 24장 10절에서 16절을 치워버린 거예요. 성경을 치워버린 거예요. 성경을 치워버리니까 이 사람이 돌에 맞아 죽지도 않고 아주 신이 났어. 하나님 욕하는데 재미를 붙여서. 교회 가는 인간들은 뻘줌하니 서있고. 여긴 저주하고. 지금 우리가 이런 상황에 놓여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경을 레위기 24장을 여기다가 투입한다고 칩시다. 투입이 됩니다. 투입이 되면 이 사람은 계속 저주하면서 하나님을 욕하고 주님을 욕하고 살아갑니다. 자, 제가 질문 드립니다. 이 사람이 살았어요, 죽었어요? 성경이 없을 때는 이 사람은 산 인간으로 간주되는데 레위기 24장이 오게 되면 돌에 맞든지 안 맞든지 상관없이 이미 이 사람은 죽은 자가 됩니다.

그러면 이 말은 뭐냐? 죽은 자이기 때문에 레위기에서는 저주를 하니까 돌로 쳤는데 그거는 이 사람의 본성을 하나님께서 양쪽에 있는 이스라엘로 확인케 하기 위해서 돌로 쳤을 뿐이고 이 사람은 천성이 태생이 하나님한테 언제든지 저주할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태어났단 말이죠. 그렇다면 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산 자가 아니고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자가 되는 거예요.

결국 이것은 21세기 울산바닥에서 성도는 누구와 같이 산다는 말입니까? 죽은 자들과 같이 사는 거예요. 말씀에 입각해서 볼 때 죽은 자들과 함께 살아요. 문제는 죽은 자들이 99.99%가 된다는 것, 온 천지에 죽은 자들뿐이라는 사실, 온 천지가. 여러분 이러한 현실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래도 이 세상이 지옥 아닙니까? 온 천지가, 눈에 밟히는 인간들이 하나님을 저주하며 살아가거든요.

하나님께서 레위기 24장 상황에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돌로 이 사람을 쳐 죽이라 했다고요. 그런데 2019년도 울산바닥에 있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을 절에 간다고 돌로 쳐 죽을 수 있습니까? 경찰에 잡혀가는 데요? 아무 감각 없지요. 욕을 하나마나 감각 없지요. 그러니까 여기 있는 1번과 2번도 역시 죽은 자에요. 평소에 돌을 때려죽일까 하는 분노 같은 게 전혀 일어나지 않아요.

왜냐하면 2019년도 울산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지 밥벌이 돈벌이에 바쁘고 애새끼나 잘 키우려고 생각하지 이렇게 두리번두리번 안 살핀다 말이죠.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저주하는 사람이 혹시 있나 살피지 않아요. 혹시 있을 리 있습니까. 전부 다 인데. 전부 다 저주하는데 달리 또 혹을 찾습니까? 전부 다 인데. 교회 다니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다 저주하고 있는데요.

하나님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아요. 레위기 하면, 그것 어디서 들어본 적은 있는데 레위기가 뭐지? 성경이구나. 성경을 워낙 안 보기 때문에 레위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레위기를 안 보니까 분통을 터뜨릴 이유도 없고 그냥 나는 밥이나 먹고 살면 천당 가겠지 하는 이런 미신에 빠져서 아무 생각 없어요. 결국 1, 2, 3번 인간들 다 돌에 처 죽을 인간들이에요. 성경이 투입되지 아니하면.

그래서 성경이 오지 아니하면 우리는 내가 누군지 몰라요. 자기를 정상으로 봐요. 멀쩡하다고 여긴다고요. 성경을 안 보면 복음을 안 듣게 되면 자기는 아주 멀쩡해요. 남들 살아가는 것처럼 살아가기 때문에 하하 호호 이러지요.

예를 들어서 우리는 교회 다니고 성도인데 사돈네가 교회 안 다니고 절에 간다 합시다. 그러면 상견례 할 때 주머니에 짱돌 서너 개 들고 갑니까? 오늘 너, 나한테 돌에 맞아 죽어봐라. 그렇게 안 가잖아요. 오늘 말조심해야 돼. 자칫하면 결혼 파토 나는 수가 있어. 요새 아들, 딸들 결혼한다 하면 웬 기적이냐 하는데 이번 찬스에 내가 말실수해서 깨지면 안 되는데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지.

반갑게 맞으면서 먼 길에 이렇게 만나게 됐는지 무슨 하나님의 인연인지. 이렇게 살살 빌지요. 살살 빈다고요. 무슨 짱돌 갖고 이 사람 저주하면 때려죽인다고 돌 들고 짱돌 들고 가는 상견례 없어요. 좋은 게 좋다고 흔히 말하는 은혜 아닙니까. 그냥 넘어 가. 좋은 게 좋은 거야. 하나님이 알아서 천당 가고 지옥 보내겠지. 내 소관 아닌데 난 몰라.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친히 벼락을 내려 죽이는 게 아니라 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돌을 들고 심지어 그 사람에게 안수를 해서 돌로 쳐 죽이라고 했단 말이죠. 그런데 24장 10절에 보면, 죽었던 사람의 어미가 나오지요. 이름도 나와요. 11절에 그 어미의 이름은 슬로밋이라고 돼있지요. 왜 여기서 어미를 강조하느냐 하면, 인간의 육신적인 본성에 있어서 자식은 내 목숨보다 더 귀해요. 차라리 내가 죽으면 죽었지 어미 입장에서 자식 살리는데 있어서 얼마든지 희생할 각오가 돼있어요.

유복자라 하지요. 아버지 죽고 난 뒤에 태어난 아들, 유복자. 유복자 있다고 해서 주위에서 어떤 아줌마가 여자가 지지리도 재수가 없어서 남편 일찍 보내고 네가 들어와서 집안이 망했다고 하니까 그 여자가 화가 나서, 그래 네가 내 남편 죽는데 보탠 준 것 있느냐, 하면서 물바가지 확 부어버리고, 네가 뭐라 해도 내 자식 지킨다. 얼마든지 모든 어머니들은 그렇게 할 수 있어요. 특히 고두심부터 해서. 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내 아들 내가 지킨단 말이요. 내가 지금껏 사는 존재의 이유는 네가 있기 때문이다. 막내아들 용식이 너 하나 지키기 위해서 어미가 있었다. 형들이 뭐라 하니까, 가만있어라. 너희들은 아버지 얼굴은 봤잖아. 야는 아버지 얼굴도 못 봤어. 쟤 건들지 마라. 나는 쟤 때문에 지금까지 식당일하면서 버티고 살았다. 자식은 내 생명이에요.

그런데 자기 자식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저주했다 칩시다. 그러면 우리가 어미라면 돌로 치겠습니까? 아니면 철이 없어서 그런 걸 그럴 때 있지요. 사춘기 아닙니까. 그런 식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왜 성경에서 어미 이름을 그렇게 강조했냐 하면, 인간인 이상 아무리 하나님이 대단해도 나보다 대단하지 않아요. 예수님이 사랑이 많고 전능하신 하나님, 자비하심 해도 아무리 고귀해도 아무리 하나님이 숭고해도 나 자신보다 덜 숭고하고 나 자신보다 덜 대단합니다.

나보다 더 대단한 존재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니 내 자식이 얼마나 대단해요. 우리가 주님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내가 지키고자 하는 내 가치 선 바깥에서 소중해요. 만약에 하나님이 아무리 훌륭하고 소중하고 가치 있다 해도 내가 지키고자 하는 선을 넘어서게 되면 그때 인간은 분노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슬로밋의 아들이 그냥 평소의 버릇대로 하나님을 저주하고 모독했습니까? 뭐 때문에 모독했어요? 여기 본문 10절에 나오지요. 평소에 그렇게 하나님을 저주하는 게 취미라서 그런 겁니까? 아니죠. 울컥했지요. 지금 싸움이 일어났잖아요. 싸운다는 것은 내 가치를 양보 못하겠다는 싸움 아닙니까. 모든 사람이 다 그렇거든요. 멱살 쥐고 싸우고 부부싸움하고 이게 뭡니까? 너보다 내가 더 가치 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욱하니까 모독한 거예요. 화가 난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한테 물어봅시다. 어려운 문제 아닌데 막상 제가 질문하면 괜히 어렵게 생각하는데 아주 문제 내겠습니다. 사람은 왜 화를 냅니까? 쉬운 문제인지 어려운 문제인지 모르겠다만. 사람은 왜 화를 내지요? 화 낼만 해서 화내지요. 어떤 경우에 화를 냅니까? 크게 쓰겠습니다. 잊지 마시라고. 날 무시해서 그래요. 글자 하나 넣을까요? 개 무시해서. 오용익 목사님이 우리교회 와서 한 설교제목이 ‘개’지요. 참.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성경 들이대지 않으면 인간은 자기가 누군지 몰라요. 그런데 성경 들이대면 물려고 달려듭니다. 태어날 때부터 개 버릇이 있어요. 누구든지 내가 지키는 선 넘어서면 그게 누가 됐든 물어버립니다. 심지어 철딱서니 없는 자식은 그렇게 키워줘도 부모는 남들 앞에서 내 생명보다 내 자식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옹야옹야했던 자식은 극단으로 넘어가면 부모마저 물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돌로 쳐 죽이라는 그것도 하나님이 죽였다는 게 아니고 네가 돌 던지되 그냥 던지지 말고 책임 있게 안수하고 돌 던져라. 여기 14절에, “그 말을 들은 모든 자로 그 머리에 안수하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그러면 돌로 쳐 죽여 버리면, 세월호입니다, 세월호.

제가 아까 그림 그릴 때 하나님이 개입해서 돌로 죽이라 했잖아요. 레위기 24장. 그림 다시 그려볼까요. 인간1 있고 인간2 있잖아요. 여기 죽은 사람 있다 했지요. 기억나십니까? 하나님이 개입해서 죽였다 했잖아요. 그런데 2019년도 울산에는 뭐가 없다 했습니까? 하나님의 개입이 없지요. 그러니까 이 인간은 죽을 리 없고 돌에 맞을 리 없고. 돌 던지면 경찰에 잡혀가고. 멀쩡하게 있으면 하나님을 저주하잖아요. 그렇지요.

만약에 이 사람이 하나님을 저주했다고 우리가 돌로 치는 정도가 아니고 욕이라도 한 마디 했다고 하면, 이 사람에게 레위기 24장은 없잖아요. 없으니까 이걸 누구 탓으로 돌리겠습니까? 바로 우리한테 되받아 공격한다 이 말이죠. 이게 이 사람이 이미 죽은 티를 내는 거예요. 죽었다는 건 숨이 끊어졌다는 게 아니고 그 사람이 말을 하거나 행동하거나 숨 쉴 때마다 하나님을 모독할 수밖에 없는 죄가 마구마구 침 튀듯이 튀어나오는 기능을 이 사람이 발휘하는 거예요. 2019년도 울산바닥에서.

내가 이게 살아 있는 게 아니라 했지요. 죽은 자지요. 죽은 자가 요양병원에 가만히 누워있는 게 숨 끊어진 게 아니고 온 동네마다 돌아다니면서 하나님을 거리낌 없이 저주하고 거리낌 없이 모독해도 나, 벼락 안 맞잖아. 큰소리치고, 나, 예수 안 믿어도 부자 됐고 행복했고 고난도 없고, 시편에 나오는 말씀처럼. 죽을 때도 아프지도 않아. 애들은 어찌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지, 땅 던져놓으면 열 배씩 땅 값 올라가고 주식하면 주식 대박 나고. 하나님은 안 믿어도 만사가 형통해요.

제가 언젠가 그런 이야기했거든요. 이 세상에서 착한 사람 중에서 분류해봅시다. 첫째, 부유한 사람. 두 번째,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이 착한 일 많이 해요, 가난한 사람이 착한 일 많이 해요? 이건 어려운 문제도 아닌데. 어느 쪽이 착한 일 많이 합니까? 돈 많은 쪽 착해도 착해요. 여윳돈이 있거든요. 가난한 사람은 밥 먹을 것도 없는데 뭘 남을 도와줘요.

가난한 사람은 지도 못 먹고 사는데 일가친척 오게 되면 건사하지 못합니다. 부자 된 사람은 일가친척 오면 섭섭지 않게 차비라도 오만 원 주고 가요. 이쪽은 오면 욕바가지로 너 때문에 일이 안 돼. 가라, 가란 말이야. 네가 와서 되는 일이 없어. 옛날 cf처럼 낙엽 집어던지면서 가라, 가란 말이야. 네가 와서 되는 일이 없단 말이죠. 내 꼬라지 봐라. 뭘 뜯어먹을 게 있다고 왔느냐. 그래서 없는 사람은 항상 조마조마해요. 나보다 더 가난한 일가친척 올까봐 벌벌 떨고 있다고요.

부자는 일가친척한테 자랑하려고 기마이 쓰는데 바빠요. 국밥 이천 원짜리 자기가 낸다고 인심 쓰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자가 착한 사람이에요. 돈이 있어야 착해지지 돈도 없는 주제에 뭘 착해요. 그러니 이 사람은 하나님을 안 믿을 수밖에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지요. 사회에서 인정받는데요. 아까 했잖아요. 자기의 가치, 자기의 고귀, 자기의 대단함, 자기의 잘남 그게 유지되는데 구태여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지요.

그래서 교인들도 하나님 믿는 이유가, 사실은 하나님한테 벗어나려고 믿어요. 왜? 부자만 되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부자 되면 기도 안 해도 되잖아요. 아쉬운 게 있어야 기도하잖아요. 빨리 교회 나와서 잘 보여서 부자 되고 난 뒤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하나님은 부모 같아서 자식들 소원이 뭡니까? 부모로부터 독립 아닙니까. 은근히 노린다 이 말이죠.

왜 하나님께서 목격자로 하여금 돌을 들어 치라했는가? 그것은 이스라엘 속에 하나님의 저주 사건, 죽음 사건, 심판 사건을 주입시키기 위해서, 마치 문신할 때 받아서 문신 새기지요. 이스라엘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사건으로서 새겨지는 이스라엘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하나님께서 벼락 쳐도 죽일 수 있는데 그들로 하여금 돌로 쳐 죽여라.

인간 대 인간들이 있더라도 하나님은 눈에 안 보이니까 적어도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답게 되려면 보이는 인간이 주가 아니고 제3의 하나님이 지켜보시고 그것도 말씀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너희들이 인식하고 있어야 이스라엘이라 이 말입니다. 그 한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가는데 여기에 누가 등장하느냐 하면, 소경 한 사람이 등장했지요. 제자들의 열두 명입니다. 많습니다. 예수님까지 포함해서 많은데 여기에 소경 한 사람이 나타났어요. 이 사람은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떠야 되는데 눈 뜨기 전에 사람이에요. 오니까 제자들의 뭐라고 하느냐 하면, 저 사람은 자기 죄 때문에 소경됐습니까, 조상의 죄 때문에 소경됐습니까, 라고 이야기한 거예요.

그럼 여기는 살아 계신 하나님은 빠져버리고 인간 대 인간으로 비교한 거예요. 하나님의 제3의 요소, 말씀의 요소란 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눈을 어디로 두게 하느냐 하면, 나와 너를 비교하는 그런 생각하지 말란 말이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저 사람이 소경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소경됐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건 뭐냐 하면, 제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유해서 다시 보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보게 하고 그 다음에 제자들 스스로 보게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경유해서 보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소경됐지요. 자기가 소경이라 하니까 주의 영광에서 보게 되지만 니가 본다고 하니까 너희들은 도리어 소경이 된다 이 말이죠. 이 말은 하나님을 경유하게 되면 인간 대 인간으로 봤던 그 모든 의미가 완전히 뒤집어진다 이 말이에요. 반대로. 반대가 되는 거예요.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우리는 내가 생각한 그 반대로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거꾸로 지금 엉뚱한 길로 가고 있는 거예요. 천국 가는 게 아니고. 천국 간다는 말을 흔히 하는데 제가 여러 번 이야기했잖아요. 천국 간다는 말은 간단한 거예요. 지금 죽기 전에 네 생활이 천국 생활이냐? 그걸 물어서 지금 천국 생활이면 천국 가고 지금 천국 생활 아니면 천국 못 가요. 죽고 나서 말고 지금, 지금. 아무나 넣어주는지 압니까?

지금 천국 생활이란 뭐냐 하면, 자기를 비춰볼 수 있는 그런 분과 동행하고 있어야 돼요. 독자적으로 내가 남을 평가하기 이전에 주님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를 늘 비교할 수 있는 주님이 계셔야 돼요. 함께 있어야 돼요. 쉽게 말해서 성령이 함께 있다 이 말이죠. 십자가와 함께 있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십자가 앞에서 우리 모습은 뭡니까? 진즉에 돌로 처 죽임을 당해야 될, 레위기 24장의 돌로 처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지요.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하나님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안 믿고 하나님을 욕되게 한 그 사람이 남의 자식 같으면 대번에 돌 던져서 자기 믿음 있다는 것을 돌로 침으로써 상대적으로 내 믿음 있음을 남한테 과시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만약 내 아들이라면 내 딸이라면, 아니 아들딸보다 더 귀한 게 있어요. 내 손자라면 내 손녀라면, 어린애가 노골적으로 저주하지는 않겠지만 평소에 돌로 칠 마음자세가 돼있습니까? 안 돼 있지요.

그 말은 뭐냐 하면, 나는 돌로 칠 마음의 준비가 없다 이 말이에요. 나는 나한테 쳐들어오는 하나님을 돌로 칠 만반의 준비는 돼있지만 하나님 앞에 나를 돌로 칠 만반의 준비는 안 돼 있어요. 우리가 어딜 봐서 신자입니까? 무엇에 근거해서 우리가 신자라 할 수 있어요? 엉망진창이죠. 신자 아니에요. 신자랄 게 있어야 신자지요.

그래서 구약성경은 그 누구도 신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책이 구약입니다. 야곱 신자 아니에요. 이스라엘이 신자지요. 아브람은 신자 아니에요. 아브라함이 신자에요. 아브람에서 아브라함 되는 것은 본인의 노력이 아닙니다. 야곱이 이스라엘 되는 것은 본인의 노력이 아니에요. 거기에 누가 개입했습니까? 하나님이 밤중에 얍복강에 찾아왔잖아요. 그래서 야곱은 죽고 그 죽은 자리에 누가 시작됩니까? 이스라엘이 시작되는 거예요.

자, 왜 그러면 그 깨끗하고 어린양의 피로써 구원받았다는 이스라엘 내에서 하나님을 저주하는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 10절 봅시다.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애굽 사람 된 자가” 이스라엘과 애굽이 결합해서 어느 게 우세다? 이스라엘이 우세가 아니고 애굽이 우세가 되는 거예요.

아담의 몸을 지닌 우리가 살아가면서 뭐가 우세냐 하면, 아담이 지녔던 그 죄가 나의 복음적 지식보다 우세하게 터져 나옵니다. 오죽했으면 주께서 이렇게 했습니까? 너희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담는 그릇이 못 됐다 이 말입니다. 우리에게 담긴 복음과 우리가 그걸 감당하기 위해서 받는 육신이 좋게, 좋게 가는 법이 없어요.

십자가의 능력과 우리의 육신이 그냥 조용히 그냥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관계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실제로 작용하는 십자가는 안 받아들이고 십자가에 대한 지식으로 육신과 연결시켜버리죠. 그러면 아무 탈이 없지요. 그냥 지식이니까. 그냥 이론일 뿐이니까 실제가 아니라 하지만 만약에 실제로 십자가의 능력이 닥치게 되면, 우리는 뭘 느끼느냐 하면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무시당함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아까 무시당하니까 뭐가 일어났습니까? 화가 분노가 일어났지요. 보통 교회에서는 이런 것도 강제로 시킨답니다. 옆에 나란히 앉아있으면, 여러분 맹숭맹숭 교회 오지 마시고 사랑의 교회 만듭시다. 전부 다 서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 보면서 인사를 나누세요. 그러면 갑자기 앞에 보고 있다가 어색하게 옆 사람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면서 자매님을 형제님을 사랑합니다. 이게 얼마나 어색한지 마치 콜센터의 여자 같이, “고객님, 사랑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와 같이 너무 기계음 같아.

그래서 기존교회처럼 사랑한다 하지 말고 진짜 십자가 교회는 이제부터 옆에 있는 교인을 약을 올려봅시다. 당신은 못 생겼군요. 당신은 차라리 교회 오지 말고 절에 가지 무엇 때문에 왔습니까? 다 같이 한꺼번에 합시다. 상대방 개 무시하기, 시작. 그러면 개 무시하는 걸 멈출 수 없어요.

안 그래도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는데 아예 기회를 주니 안 그래도 너한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차라리 잘 됐다고, 당신 말투가 왜 그래. 당신 아침에 머리 안 감고 왔어, 안 감고 왔어? 당신 옷 입은 꼬라지하고는. 준 것도 없이 참 밉네. 차라리 죽어, 죽어, 죽어. 교회 나타나지 말고 죽어 버려. 그렇게 인사 3분하고 할렐루야. 생각만 해도 상당히 흥미로운데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약 자체가 율법 앞에서 어떤 인간도 율법은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저주 아래 있게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모형으로 사용하시는 겁니다. 이스라엘 속에 죽어 마땅한 요소를 하나님께서 일으켜서 거기다가 저주 사건을 새겨버려요. 그 다음 이 시점부터 이스라엘은 뭐가 포함됐느냐 하면, 하나님께 욕하다가 누가 돌에 맞아 죽었다는 그 사건이 함유된 채 한 발짝 더 전진하는 겁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이스라엘 사람들 깜짝 놀라게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출애굽기 20장 7절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오거든요.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모독하지 말라, 훼방하지 말라, 같은 뜻이에요.

이게 십계명 안에 있으니까 하나의 이론이지요. 교과서에 있는 글자지요. 그 교과서의 글자들을 하나님께선 생생하게 역사적으로 실제적인 일로 만들어버린 거예요. 하나님의 일을 모독하는 자는 죽인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말에 그 협박에 누가 겁낼 줄 아나.” 그런데 실제로 사건을 일으켜버린 거예요.

싸우다가 무심코 하나님을 저주한 사건을 일으키니까 결국 그 사건에서 돌로 쳐 죽인다는 처벌까지 앞으로 이스라엘이 진전하는데 요소로서 동력원으로 들어갔다는 이 말은 결국 말씀이 그냥 말씀으로 있는 게 아니고 이것이 실제 현실을 꾸려나가는 하나의 소스가 된다는 거예요. 소스란 말 아시죠. 원천이 되는 거예요.

전기가 있어야 콘센트에 선풍기든 마이크든 꽂으면 작동될 것 아니겠습니까. 전기가 나오는 소스에다 꽂아야 될 것 아닙니까. 이게 안 꽂으면 이론 돼요. 지식이에요. 나는 십계명 잘 외운다. 마태복음 19장에 어떤 부자 청년 십계명 잘 외웠던 사람 나왔어요. 어릴 때부터 다 외웠다는 겁니다. 자기 말은 외운 게 아니고 아예 행했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십계명 만드신 예수님 앞에 나왔어요. 출제자 앞에 나온 거예요. 나와서 어릴 때부터 다 지켰다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모든 걸 다 팔고 날 따르라 하니까 겁나서 도망갔어요.

그러니까 이게 뭐냐 하면, 그 소스, 전기 콘센트에 꽂히질 않은 거예요. 그걸 뭐라고 하느냐? 이걸 제목 후보감으로 쓰겠습니다. 끈 떨어진 자. 여러분이 친구끼리 오늘 점심값 누가 낼까하고 제비뽑기를 합니다. 끈을 열 개 준비해서 하나는 손에 꽉 쥐고 아홉 개는 안 쥐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한 사람씩 뽑기를 하는 겁니다. 뽑히면 점심값 안 내도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연히 당겨도 안 당겨지는 거예요. 왜? 추첨을 주도하는 그 사람 손이 꽉 쥐고 있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십자가게 꽂혀있는 사람은 이 울산바닥에서 환난과 곤고나 핍박이나 어떤 일이 있더라도 쥐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에서 뽑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건 사랑의 양태에요. 사랑의 모양태가 되는 거예요. 인생이 어떻게 되던 간에.

그런데 지식으로 교회만 한 사십 년 다녔어. 해서 온갖 감투는 다 썼어. 승진할 것 다 했어요. 여자의 최고 승진은 권사, 남자의 최고 승진은 시무장로. 올라갈 때까지 다 올라갔어. 거기 올라가려고 돈 얼마나 냈는지 교회에 얼마나 목돈 바쳤는지 몰라요. 나중에 천국 가서 뽑아본다고요. 이게 십자가와 연결이 안 돼서 뽑혀버렸어요.

마태복음 7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반석 위에 지은 집이 모습은 표가 안 나도 결국은 티가 들통 나게 돼있어요. 우리 인생이. 조금만 기다려요. 한 오십 년만 기다려요. 들통 다 나게 돼있어요. 십자가에 꽂히지 않고 십자가 지식, 뭐 안다는 소리는 다해요. 피가 어떠니 십자가가 어떠니 언약이 어떠니 들은 건 있어서 다 이야기해요.

하지만 그 사람 사는 걸 보면 바닥이 십자가 피가 안 묻어있어. 붉은 잉크, 피, 인생의 뿌리에 피가 올라오질 않아요. 지옥에서 올라오지. 지옥은 뭐냐? 주님보다 자기가 더 가치 있다는 게 지옥이지 딴 게 지옥이겠어요. 그걸 앞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지금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컬었다는 말은 물론 여기서는 애굽의 요소에요. 하지만 성경의 다 끝나고 난 뒤에서는 그게 어디서 나왔는지 그렇게 하게 된 원형이 있어요. 요한계시록 17장 3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광야는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 마귀가 나타난 그 광야 아닙니까.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 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신에 대한 모독들이 가득하다는 거예요. 그게 뭐냐? 바로 음녀에요. 음녀가 둘이 아니에요. 이 세상은 음녀로 하나의 음녀로 통합돼있어요.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모독에 합당한, 다시 말해서 왜 이런 되느냐 하면, 하나님이 나한테 그다지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존재는 누구지? 나다. 내 새끼 내 자식 내게 속한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필요할 때 이용은 하겠지만 그러나 궁극적으로 최종 소중한 것은 나다. 하나님이여, 내가 설정한 내 선을 넘어오지 마세요. 넘어오면 교회 안 다닐 거야. 그렇게 되는 겁니다.

결국 요한계시록 17장은 뭐냐 하면, 음녀에요. 악마에요. 옛 뱀이라니까요. 모든 인간은 악마에 매여 있다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악마를 이 세상 신이라 했어요. 에베소서 2장 2절에 보면, 우리는 전에 이 세상에 신에 의해서 내 멋대로 살았던 사람이었다, 악한 신에게 지배받던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출신을 말합니다. 우리의 출신은 중립지역이 아닙니다. 악마의 손아귀에 있었던 거예요.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그냥 놀고 있던 사람 데려오는 게 아니고 악마의 집에 가재도구로 사로잡혀있던 입장이었는데 주께서 담을 타넘고 와서 주인을 꽁꽁 묶어놓고 그 다음에 주인과의 관계를 끊어놓고 가재도구인 우리를 주의 나라로 천국으로 데려가는 그런 방식을 사용하는 거예요.

아담이 죄 지을 때 우리는 이미 죄 안에 있어요. 그리고 그 죄는 너무나 강력해서 우리 힘으로 탈출이 안 됩니다. 우리의 출신 성분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서 제대로 늘 정리하고 있어야 돼요. 그러면 우리 본색은 뭐냐? 제가 지난 낮 설교에 그런 이야기했는데 에스겔 37장에 의하면 우리의 본색은 해골이에요. 해골인데 육신의 껍질을 뒤집어쓴 거죠. 지난 수요일도 그런 이야기했어요. 뒤집어쓴 거예요.

제가 무심코 수요일에 이야기했는데 그냥 이야기했거든요, 옳다고. 그런데 이게 영화화 돼있어요. 제 말한 것이. 최근에 개봉된 영화가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라는 새로운 터미네이터가 등장했어요. Rev, Revelation 요한계시록 9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기계이름이, 요한계시록이 영어로 Rev이거든요. 계시록 9장에 나오는 그 모습을 따서 인공지능이 만든 기계. 전에 터미네이터 영화시리즈는 그냥 몸이 하나인데 시커먼 기름 뒤집어쓴 해골 모습으로 삐걱거리며 돌아다니고 바깥에는 인간의 경찰복장을 하고. 평소에 이렇게 다니다가 뭔가 공격받으면 이게 분리돼요. 해골과 이중으로 분리된다고. 이 사람에 제 아이디어를 써먹었는가.

에스겔 37장에서 우리는 해골입니다. 해골인데 아담의 육체로 붙지요. dna 조사해보면 전부 다 아담의 dna를 갖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해골이 우세하기 때문에 바깥은 후패해지는 겁니다. 우리 몸이 점점 쇠약해져가요. 안쪽이 우세하니까. 바깥쪽은 세월 가게 되면 사그라지고 와르르 와해되는 겁니다. 전도서 마지막에도 그렇게 돼있고. 나훈아도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청춘을 돌려달라고 그렇게 해도 안 돼요.

그런데 세상은 악을 쓴다고요.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구십 넘어서? 돈이 있어야 사랑하지 돈도 없는 주제에. 아주 발악을 해요. 살려고. 해골은 해골답게 살아야지. 해골을 해골답게 살아야 돼요. 지금은 건강해서 그렇지만 나중에 조금만 나이 들면 삐걱거려요. 해골, 일어서지도 못해. 모든 게 어설프기 짝이 없어요.

이 말은 아까 말한 처음부터 인간은 본성 가운데서 하나님을 훼방하고 싶은 그런 힘이 작용하고 있어요. 악마의 사슬에 매야 태어났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정상적이에요. 왜? 그래야 악마다우니까. 그래야 악마의 권세 아래 놓여있는 티를 팍팍 내는 거니까요.

오히려 복음을 이야기한다는 게 진짜 지식인지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이 나오는 것인지 그것을 아우라로 이야기해요. 아우라는 뭐냐? 내가 예상도 못한 어떤 다른 힘이 악마의 힘을 뚫고 나오는 고백, 그 고백은 뭐냐? 나는 개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맞습니다, 라는 그런 고백. 세상에 나는 오십 년 다녀서 알 것 같다. 이게 아니고 나는 목사니까 죄인 아니다. 이게 아니고 지금 죽어도 전 상관없어요.

지금 죽으나 오십 년 전에 죽으나 오십 년 후에 죽으나 죽는 날은 맨 그 날이에요. 죽는 그 날밖에 없다고요. 그러니까 제가 자주 이야기하지만 그냥 하루치만 사세요. 일용할 양식 주신 걸 감사하면서 하루치만 사시라고요. 어제는 과거는 잊어버리고요,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까 없는 거고, 미래는 주님의 미래지 우리 미래가 아니에요. 우리는 운명이라는 것도 없어요. 운명은 주님 운명이지 나한테는 운명이라는 것도 주면 안 돼요. 내가 운명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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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4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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