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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요한복음 총정리(4)-요한복음 9장부터 (사이)191015b-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요한복음

강남-요한복음 총정리(4)-요한복음 9장부터 (사이)191015b-이근호 목사

두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첫번째 시간 잠시 한번 정리하면요 우리가 스스로 반성이 되려면반성이라는 말은 쉽게 해서 개선이죠. 내가 전에 잘못했으니까 두 번 다시 그런 짓 안하겠다 반성이 되어버리면 반성의 결과가 자기 밖으로 빠져나가질 못해요. 반성이 담긴 괜찮은 나로 연속성을 이루어야 되는 겁니다.

연속성이 이루어지게 되면 이 반성이 그 다음에 또 어떤 경우가 되게 되면 계속 더 괜찮아진 나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현재 있는 나를 기준으로 해서 일방적인 반성이 계속 또 주어지는 거에요. 그러면 이 반성한다는 말은 뭐냐 하면 내가 똑바로 행동해야 된다. 똑바로 행동해야 된다.

그러면 술 먹고 음주운전 측정할 때 경찰이 와서 여기 10m걸어 보세요 하면 그 술 먹은 사람이 똑바로 걸어요. 그런데 지구가 둥굴기 때문에 아무리 똑바로 걸어도 이렇게 좌우로 흔들리기 마련이거든요.

예수님을 죽였던 그 자들이 누구냐 하면 반성하는 자들이에요. ‘반성하는 자’. 예수님의 적이 뭐냐? 반성하는 겁니다. 반성하는 자아거든요. 이게 대결상태로 계속 나아가지요. 그럼 주님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제자들로 하여금 소경되게 한다는 것은 뭐냐 하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망가뜨리기 위해서 아주 작심을 한 거에요.

그게 이제 요한복음 11장에 마르다 마리아 가정에 예수님이 찾아오신 거에요. 일부러 늦게 갑니다. 늦게 가게 되면 그 마르다 마리아가 생각하는 사랑하는 오빠가 나사로잖아요. 오빠 나사로는 없어요. 죽었어요. 죽고 예수님의 표현력, 예수님의 표현력으로 오빠가 되살아나는 겁니다.

그러면 이 오빠는 예수님만 마르다 마리아를 나무라는게 아니고 오빠가 마르다 마리아를 나무랄 수 있는 새로운 근거로써 그 가정에 투입이 돼요. 믿음 대신에 자기정립, 자기확장된 내 가정 지키려고 하는 이 자기정립이 뭐로 바뀌어야 되느냐 하면 믿음으로 바뀌어야 되거든요.

그럼 여기서 필히 이 자기정립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중심이 되는 기둥이 되는 오빠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 죽음을 새로운 중심으로 믿음이 형성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새로운 믿음이 형성되는 거에요. 예수님의 죽으심이. 그리고 매일같이 내일은 없다.

그리고 네 존재가 있으면 또 너 나름대로 나 위주의 새로운 목적과 기대가 생겼기 때문에 그냥 매일같이 주께서 살려주기 때문에 사는 하나의 표현력으로 그걸 다시 살아난 나사로의 처지에서 뭐 동원 예비군 가던지 말던지. 직장 다니던지 말던지. 결혼 하던지 말던지 그렇게 사는 거에요.

사람들의 자아라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로 욕심이 많으냐 하면 100개를 손에 쥐어도요 하나를 빼앗기면 참지 못하는게 인간입니다. 100개? 그럼 1000개를 줘도 하나를 잃어버리면 환장하는거에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동전 하나 잃어버린 그 여인처럼.

누가복음 15장의 여인처럼. 싹쓸이해가지고 기어이 동전 찾아내서 동전 잃은 비용보다 더 많은 비용을 들여서 친구하고 파티하잖아요. 파뤼파뤼 파티했잖아요. 누구한테 욕 얻어먹는다는 것은 내일이 있을 때는 욕 얻어먹는게 성립되지만 오늘로써 마감이 될 때는 욕 얻어 먹는다는 것도 성립이 안 됩니다. 나 기분 나빠도 성립이 안돼요.

기분 나쁜 것보다 더 근원적인 것이 오늘밤 죽인다는 거에요. 내가 오늘밤 네 영혼 데려간다. 우리가 죽는 입장에서 기분 좋게 죽을 권한이 없습니다. 왜? 기분 좋게 죽으나 기분 나쁘게 죽으나 조커인건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위선자이기는 마찬가지란 말이죠. 우리는 남들한테 너무 억지를 부려요. 나를 좀 기분 좋게 하라는 거에요. 당신은 나를 기분 나쁘게 하지 말고 기분 좋게 하라는 겁니다.

마르다 마리아의 나사로가 없는 데서 다시 나흘만에 살아난다는 것은 바로 이것이 믿음의 근거가 되듯이 정작 구원받는 사람은 그 믿음의 토대가요 본인을 악착같이 본인을 괜찮은 인간으로 정립하는데 있는게 아니고 나는 그런 실수를 안했다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 그런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그게 근거가 아니라 십자가, 예수님의 죽으심에 근거해서 이게 돌출하게 되어 있어요. 죽으심에 근거해서.

그래서 이게 두개의 자아가 서로 같이 공존한다니까. 하나는 100살 되면 죽어가는 오래도 산다. 참 오래도 살려고 해. 100살 되면 서서히 fade out 사라지는 것. 사라지는 것과 주께서 그것 말고 주께서 주님의 십자가를 증거 하라고 주신 내 자아. 내 자아가 서로 겹치게 되지요.

겹치게 되게 되면 주께서 육신의 나는 날마다 누굴 만나도 이것이 웃음거리 만들고 우사스럽게 하지요. 믿음을 믿음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내 잘났다를 용납하지 않는 거에요. 이제는 탕탕해도 이제는 고함지른다. 그렇게 벌써 일년 넘게 해도 이제 알아.

여러분들 이거 이해하시겠지요? 그렇죠? 이해하시겠지요 묻는 것은 그다음 질문에 대해서 과연 답변이 되는가를 지금 측정하는거에요. 방금 여러분 다 알잖아요. 그럼 이 문제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만약에 32살 새댁이다.

새댁이고 아빠는 없고 집은 한 칸도 없고 자기 직장도 없고 지금 직장도 못 구했고 있는 돈 바닥났는데 아이가 이런 이야기합니다. "엄마 나 배고파." 이런 이야기할 때 복음이 중요합니까? 돈이 중요합니까?

이 모여가지고 복음 이야기 백날 해도 엄마 나 배고파 할 때 얘야 가만 있어봐. 복음 이렇거든. 배고픈 아이한테 그게 설명한다고 사태가 호전됩니까? 해결 되요? 안되지요. 교회 오고싶어도 바쁜데 직장 일 있으면 못 오지요. 무엇이 진짜 현실로 확 다가옵니까?

"엄마 나 배고파." 엄마 지워봅시다. 나 배고파. 이게 실제적은 문제 아닙니까? 그래도 저녁이나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녁은 먹었으니까 성경공부 참석하고 있는거잖아요. 어느게 우선적이냐? 배고픔이 우선이에요.

다시 말해서 이 육신, 육체 이것은 아무리 복음을 듣고 지식을 해도 육신, 육체가 반응합니다. 복음 그게 나 배고픈걸 해결해주나? 라고 내 육신이 나에게 달려들어요. 그걸 잠재울 방법이 없네. 없어요.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내 몸에다가 그거나 채워줘. 밥이나 채워줘라고 할 때 이러한 뭐 나름대로의 깊이 있는 복음, 진짜 복음의 진수가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이게 무슨 소용 있어요.

자기정립해도 믿음이다. 그래서? 그래서 밥 나오나? 딱 그 한마디. 그게 내 배를 채우나? 거기에 대한 답변은 뭡니까? 없지요. 다시 말해서 우리 이론은 소용없다는 거에요. 정작 우리를 장악하는 것은 내 육신이지 나라고 여기는 가현적인 나라는 에고가 아니라 나라는 그 개념이 나를 장악하는게 아니고 내 육신이 나를 장악하는 겁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자아가 나는 죽는 척 해야지. 죽는 척 해서 십자가 가는게 아니고 실제로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못 자국과 창 자국에 실제로 죽었어요. 실제로 죽었다고. 죽을 때 뭐를 의식하느냐 하면 마귀는 이야기합니다. 사람은 떡으로 산다에 그게 너무나 당연한 거에요. 너무나.

이게 악마의 말인데 악마의 말은 하나도 버릴게 없어요. 다 맞는 말이에요. 악마의 말은 거짓말이 하나도 없어요. 다 맞는 말이에요. 왜? 이미 한통속이기 때문에. 이미 거기에 길들여져 있거든요. 교회에서 악마의 말을 악마의 주장을 대변해줘야 교회가 부흥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듣고 싶은 것은 악마의 말이에요. 잘 될거야. 잘 풀릴거야. 하나님이 함께 있음으로서 복 받으실 겁니다. 장차 천국 갈 겁니다. 누가? 내가. 너무나 익숙하잖아요 너무나. 요한복음 10장에서는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합니까?

내가 죽는데 요한복음 10장 다시 봅시다. 내가 죽는데 이는 누가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나를..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했어요 빼앗는 것이 아니라고 했어요. 내가 스스로,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했어요.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내 육신이 나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고 내 육신 말고 내 육신을 따로 관장하시는 분, 아버지의 뜻이 아버지의 뜻대로 내 육신은 거기에다가 이임하신거에요. 그냥 내맡긴거에요.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말씀처럼.

그리고 18절에 보면 “이 계명은 내 아버지께 받았노라”. 자, 계명을 받았는데 10장 18절에 계명은 뭡니까? 같이 죽자죠 뭐 같이 죽자. 무엇에 죽느냐? 말씀에 의해서 죽자는 겁니다. 밥을 먹지 말라가 아니에요. 너는 말씀대로 살기 때문에 밥을 끊고 성경공부 하다가 굶어 죽어라 이 말이 아니고 육신이 시키는 대로 해라.

육신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되면 그게 뭐가 된다? 그게 너를 죽이는 육신이 육신을 죽이는 말씀의 뜻인 것을 네가 믿어라 이 말이에요. 왜 그래야 되냐 하면 이사야 53장에 보면 메시아 와서는 채찍에 맞는데 양들의 태도가 뭡니까? 각기 어디로 가야 돼요? 제 갈 길로 가줘야 돼요.

양들이 순교해서 목자한테 오면 이거는 계획이 이거는 시나리오가 안 맞아. 이거는 다른 영화에요. 천당 가는 영화가 아니고 지옥 가는 영화입니다. 그 역할에 맞춰야 돼. 우리 역할은 뭐냐? 내 육신대로 사는게 내 역할이에요. 육신대로 살다가 안 불러주면 어떻게 합니까? 그게 믿음이 없는 거에요. 말씀대로 지키는 것은 누구 담당이냐 하면 담당자가 누구냐? 예수님이 담당자고 우리는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제 갈 길로 가는 담당자에요. 자기 역에 좀 맞춰주세요.

엑스트라 가서 내가 총알 맞아서 단방에 죽는 역할을 하게 되면 한 7시간 10시간 기다렸다가 한 7만원 주게 되면 7만원이고 5만원 받으면 엑스트라 연기를 해야 되는데 이거는 뭐 시대극에서 칼 베이면 윽 하고 죽어야 되는데 윽 해놓고 카메라 의식해서 이렇게 해가지고 자기 분량 다 채우고 자기 죽는 장면 한 5초면 끝나는 것 가지고 2분 채워 이렇게 죽으면 컷! 영화 다시.

죽어 너는. 뭐하다 죽어? 밥 먹고 죽어. 돈 벌다 죽어. 우리는 돈 벌다 죽어도 괜찮고 밥 먹다가 죽어도 괜찮아요. 믿음이 있다면. 그게 우리의 할 일이고 갈 길이니까. 엄마 배고파 하는데 얘야 나 지금 성경 동영상 보고 있는거 안 보여? 이러면 안돼요. 밥 해줘야 되지요. 유투브 보고 있는데 띵동 하면 택배 받아줘야 되지. 가만 있어봐 예배 시간이라 안돼. 예배시간은 무슨 예배 시간이야 빨리 받아야지.

우리는 항상 제멋대로 밖에 못해요. 그 제멋대로가 선악에 의해서 조절되는 제멋대로에요. 조심스럽게 살라고 하고 이거는 나쁜 짓이라고 고르고 이게 제 멋대로입니다. 이게 믿음이 있는 것 같지만 믿음이 없는 거에요. 믿음이 없는 거에요. 애초부터 우리는 믿음이 없는 거에요. 믿음은 외부에서 직구로 와야 돼요. 직구로.

해외에서 직구로 와야 되지 내가 믿음을 유지한다든지 간직한다든지 키운다든지 그런 것을 우리에게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인간은 다시 이야기합니다만은 똑바로 행동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정리하기 전에 믿음의 근거한 자아는 반드시 그 전에 뭐냐? 육신의 근거한 자아정립이라는 것을 먼저 그 과정을 밟고 그것과 견주면서 하나의 사건으로 이렇게 등장하는 겁니다.

육신으로부터 이렇게 믿음이 생길 때는 여기서 자유가 나오는데 자유는 다른 말로 뭐냐? 망신살이죠. 망신살. 이 말은 남한테 인정받는 것 없습니다. 환대받는 것 없습니다. 환영받는 것 없습니다. 대접받는 것 없습니다. 오직 개무시받는 것 이겁니다.

이럴 때 뭐가 나오느냐 하면 그때 감사가 나옵니다. 감사가 이때 나와요. 주님이 주신 감사를 누가 억눌렀습니까? 나는 이정도 했으니까 대우받아야 된다는 내가 주님 감사를 콱 틀어 막았어요. 꼭 천식같애. 켁켁. 제대로 숨도 못 쉬고 내 잘남이 내 조심스러움이 나를 콱 틀어막았어요.

다시는 이런 나쁜 짓 안 해야지가 나를 콱 틀어막았어요. 감사가 나오는게 아니고 괜찮은 어떤 업적같은 것 괜찮은 실적같은 것이 주의 감사를 틀어막았습니다. 항상 나는 나만 쳐다보고 사는 거에요. 자기한테 매료되는 거에요. 자기한테. 자기 관리에 자기 관리를 스탑한 적이 없어요.

자유가 없으니까 뭐가 없다? 감사가 없는 거에요. "지켜야지. 이거 무너지면 안돼. 이거 무너지면 안돼." 자기가 자기 쳐다보면서 늘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결국 자기 집에 뭐가 있느냐 하면은 은연중에 상상 중에 자기 집에 뭐가 있느냐 하면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는 모나리자, 물론 자화상이죠.

모나리자 이런 자화상을 걸어놓고 늘 거기에 경배하고 있어요. 오늘도 최선을 다하기. 오늘도 화이팅! 자기가 자기보고. 오늘도 영광 돌리기 화이팅! 오늘도 마귀를 이긴다. 알았지?! 그게 마귀죠 뭡니까. 그러면 성도는 뭐냐 하면 바로 자기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돌이키는 거에요. 뭐를? 그렇게 귀한 몸을 돌이키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1장 한번 봅시다. 1장 12절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보세요. 상상도 못한 영광이 “금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지금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지금 귀향살이에 있습니다. 자기의 역사적 그리고 실제적인 현실을 볼 때 참담하다 암담해요. 그리고 자기 몸은 지금 힘듭니다. 아무것도 못하고 노년의 몸을 이끌고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자기 팬들 하나도 없어요. 방탄소년단 아미들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 혼자밖에 없어요.

그런데 몸을 돌이켜 보니까 그 자체가 주님의 영광 가운데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지금 사도 요한은 옛날에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된 그 망가진 그 모습을 지금 반복하고 있고 재현하고 있는 거에요. 하늘의 영광을 입지만 실제로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왔잖아요. 초라하게 왔지요.

어떤 사람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거에요. 양들이고 뭐고 다 도망갔어요 결국은. 그리고 자신은 우사도 이런 우사 없어요. 그 메시야라고 자처하는 인간이 잡혀가지고 맥도 못 추리고 뺨 맞죠 옷도 뺏기지요 귀싸대기 맞지요. 어느 누구도 예수님보고 나 저렇게 살래 나서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가장 바닥의 바닥.

출발지가 인간이 상상하는 지하 15층까지 아무도 거기에 기웃거리거나 선뜻 나설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 따라올테면 따라와봐라. 아무도 못 따라오는 곳에 홀로 내려갔어요. 밧모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할 때 몸을 돌이켜보니까 그 자체가 주님의 영광의 표현 력입니다. 이미지에요.

이 외로운 밧모섬에 있는 그것이 영광된 주님을 역사적으로 표현할 때는 그렇게 표현하는 거에요. 아무도 나 찾지 않는 산장에 앉아서. 아무도 나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죽는 날만 기다리는 거에요. 죽는 날만 기다리는 거에요.

사람들은 왜 몸을 안 돌이키는가. 왜 나의 보이지 않는 분, 없으신 분, 이미 죽으신 분이 나를 이렇게 표현으로 개체가 아니고 표현으로 보는가? 왜 자꾸 그걸 생각하느냐? 우리가 뭐한다? 이길려고 한다. 남한테 지기 싫어해요. 누굴 만났을 때 안 질려고 하는 겁니다. 내가 옳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거에요. 상대방에게 "그러니까 잘 들어 보세요. 나는 옳지요. 당신 틀렸지요? 안녕히 가세요." 이길려고. 지기는 싫은 거에요.

주님께서 요한복음 9장의 소경 이야기, 그리고 10장에서 나는 죽는 목자라는 이야기, 11장에서 오빠가 있어야 되는데 오빠가 있지 않고 죽는 이야기. 그 모든 이야기를 여기에 비춰보면 뭐냐 하면 내가 너희를 이 세상에 못 이기게 만들어줄게. 못 이기게. 이긴다는 자체가 성립되지 않도록 내가 해줄게. 못 이겨서 개망신 당하게 해줄게 그런 겁니다.

마르다가 자기 오빠 아플 때에 예수님한테 전갈을 보냈어요? 안 보냈어요? 예수님한테 보냈거든요. 보낼 때 어떤 생각 가졌겠어요? 나 예수님하고 이런 사이야. 막연한 사이야. 우리가 주님한테 또 얼마나 잘해요. 잡채해주고 마리아가 앉아서 성경보고 그렇게 잘해주는 사이에요.

따라서 주께서 우리의 요구를 천대하거나 무시할 그런 분이 아니야라고 보냈는데 개무시도 이런 개무시가 없지요. 실컷 잘해줬는데 들은 척, 만 척 해요. 오빠가 지금 죽기 전이에요. 죽을 거 같애. 빨리 오시면 낫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믿음이 뭐 대단한 믿음이죠.

주께서는 병을 고치니까 그런 것을 저는 주님의 그 정도 실력을 저는 다른 사람은 안 믿어도 우리는 믿습니다. 어때요? 저의 개체의 믿음은. 대단한 믿음이죠? 개체의 믿음 같은 소리하고 있네. 너는 그게 믿음이라고 보느냐? 그거는 믿음이 아니야. 너 잘난 체 하는거야. 안 갑니다.

내부적으로 바깥에서 주님과 다른 바리새인과 싸우는게 아니고 예수님을 안다는 그 내부에서 벌써 갈라지는 거에요. 내부에서. 이런 소리하면 안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 그렇게 여당 내부에서 갈라지듯이 내부에서 갈라지는 거에요.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는 거에요. 내부에서. 그게 오늘날 그 현장이 우리 현장 아닙니까!

우리 주님 믿잖아요. 주님 사랑하잖아요. 주께서는 우리를 칭찬하고 잘 해준다가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분열을 일으켜요. 결국 그것이 결국은 제자들이 다 떠나고 말지요. 아무도 주님편이 될 수 없고 주님 편이 되고자 제자들에게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개무시합니까? 너는 나 도와달라는 얘기 안 해요. 우리는 괜히 나서가지고 "주여 제 헌금이 어떻습니까? 제 전도가 어떻습니까? 내 강의 어떻습니까?" "미쳤나 이거. 너 착각하지마." 우리는 주님의 표현력이지 주님을 도와줄 수 있는 주님과 같은 그런 개체와 개체의 결합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0장 26절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되어 있지요.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여기 믿음이 나와요. 믿지 아니한다. 그러면 여러분 다 아시는 이야기지만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여기는 믿음의 근거가 뭡니까?

목자는 어떤 분이다?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고 목자는 죽더라도 누가 죽이는게 아니고 자진해서 죽으시는 그 요건만 갖춘 분이 진짜배기 우리의 구원자다라는 것을 믿는 양이에요. 그러면 양이 된다면 무엇을 생각해야 돼요. 내 밑바닥에 뭘 깔아야 돼요? 내 잘함을 깔아야 되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죽어야 될 이유를 깔아야 되겠어요? 죽어야 될 이유를 깔지요.

그러면 그 이유는 누가 제거한 겁니까? 내가 제거한 겁니다. 왜? 나는 세상과 한패이기 때문에. 이 세상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거 욕할거 없어요. 세상 사람들도 이길려고 하고 나도 이길려고 하고 나는 안 질려고 한 고집하고 있고 마찬가지거든. 나는 정당하다고 외치고 싶고 나도 이왕 사는거 나 개망신 당하기 싫어요.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고 하고 싶어요.

그런데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점은 육신은 동일한데 신자는 뭐가 있습니까? 그래서 나는 죽어야 마땅하고 그런데 그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내가 아니고 내 죄 지은 내가 아니라 주께서 어디 있다? 이미 죽음을 죽음에 합류시키기 위한 표현력으로써 나로 하여금 육신의 생활을 살게했다는 겁니다. 육신의 생활을 안 살라고 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나올 수 있는 것은 육신의 행동 외에는 다른게 나올게 없습니다. 나 안 질려고 하는 것만 나오고 나 잘났다 나 정당하다는 것만 나오고 그 외에는 나올게 없어요. 우리는 늘 반성, 육신은 늘 반성하잖아요. 반성한다는 말은 반성하기 이전에 지금 반성한 후가 더 낫지 않습니까? 그게 옳지요? 라고 주님 앞에 이야기하고 싶은 거에요.

베드로는 세번 배신했지만 저는 세번까지는 아니고 한번밖에 안했잖아요 이러고 싶은 거에요 우리는 자꾸. 그게 차이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게. 왜 차이 없는 것을 억지로 차이를 만들어 냅니까?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을 믿는데 십자가를 믿는데 왜 거기에다가 다른걸 자꾸 보태냐 이 말이죠.

십자가 믿되 착하게 믿고 이런걸 건전하게 믿고 자꾸 이런걸 왜 집어넣느냐 이 말이죠. 왜 집어넣습니까? 그걸. 집어넣는 의도가 뭐에요? 집어넣어서 얻고자 하는게 뭡니까? 결국 우리는 뭐냐 하면 “엄마 나 배고파”에요. 아니면 엄마 빼면 “나 배고파” 이거에요. 제가 지난 낮 설교에 그런 예를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저한테는 큰 의미로 다가오는게 있어요.

‘동백꽃 필 무렵’. 동백꽃 필 무렵 그런 드라마 있어요. 여러분 거의 안보지만 그런 드라마가 있어요. KBS2에서 하는 드라마. 수요일 날 10시에 거기까지 상세하게 홍보할 필요는 없지만. 구룡포에서 촬영하거든요. 촬영 세트가. 제가 열 번도 넘게 가는 곳이에요.

나오는 모습이 다 아는 모습이고 구룡포 거리에서 촬영을 했는데 그때 다시 이야기합니다만은 엄마가 치매 걸린 엄마가 뒤늦게 반겨줄 수 없으니까 딸한테 가가지고 기어붙어가지고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싶은 거에요.

오늘 강의를 한번 적용시켜 보세요. 여기 딸 있지요. 엄마 있지요. 엄마가 왜 딸한테 왔습니까? 이 사이를 위해서 왔습니까? 아니면 자기를 위해서 왔습니까? 자기를 위해서 온 거에요. 그럼 이 딸은 엄마를 볼 때 내 인생에 무슨 보탬이 되느냐를 보겠지요. 서로가 볼 때는 서로의 개체를 양보를 안 한다니까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엄마 요양원에 가." 앞에 빼고 뭐냐? 나 엄마하고 있기 싫어 가란 말이죠. 흔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만약에 내가 누구한테 들러붙는데 그 사람이 딱 한마디 해요. "가. 두 번 다시 오지마." 이게 뭐에요? 개망신이죠. 박살난 거에요 박살난 거. 완전히 박살난 거에요.

그러면 신앙인은 봅시다. 신앙인은. 모든 인간은 육신이거든요. 육신은 없애준다 했지요? 주의 믿음이 바꿔치기하죠. 매일같이 바꿔치기하지요. 바꿔치는 방법은 뭡니까? 내가 만약에 환대받고 존경받고 대접받고 참 훌륭하십니다 복음 전하시고. 이렇게 되어 버리면 여기서 뭐가 됐어요? 나는 그 사람을 통해서 내가 이익 볼려고 하겠지요?

그런데 주님께서 그 사람을 보내가지고 나를 뭐로 만듭니까? 아주 박살을 내놓을 때 이게 바로 뭡니까? 내가 몰랐던 뭐가 돼요? 감사요 이게 바로 자유가 되는 거에요 세상에. 자유 감사는 이렇게 주는 겁니다.

어느 교회 갔더니만 보통 교회는 형제님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서로 사랑합니다. 목사가 서로 인사하세요. 뒤에 긴 의자 앉아가지고 허리 아픈데 할렐루야 할렐루야 남자 같으면 악수도 하고 이렇게 할렐루야 아멘. 자, 이렇게 서로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이거는 쉬워요. 왜?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반성의 기회를 갖고 인사하기 전보다 인사한 후에 우수한 내가 되니까.

그런데 우리 교회같은 경우에는 저것도 뭐 한 두번 나오겠나? 오다 말겠지. 오다 말겠지. 또 뭐 설교 시간에 중간에 뛰어나가지는 않겠나?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요. 인사고 뭐고 아는 척도 안해요. 완전 개무시당한 거에요. 와봐야 나갈건데 뭐. 개망신당한 거죠.

아이고 봉사했습니다 하면 몇일 가나 보자. 몇달 가지도 않아요. 나를 아니까 저쪽도 아니까. 그런데 왜 붙여줬어요? 왜 그 사람을 만나게 했습니까? 우리가 그 사이에서 놓친게 있어요. 우리는 남한테 대접받음으로써 갑자기 믿음의 조건 속에 잘난 내가 거기에 끼어들어 버려요. 주님이 용납을 안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나의 설쳐됨을 다 가려버려요. 나의 훌륭함과 나의 괜찮은 믿음과 겸손함과 나의 자기 부인과 내가 십자가를 안다는 이 지식에 완전히 다 갇혀버립니다. 감사가 나오는게 아니고 그때부터는 뭡니까? 나 이정도 되는 목사인데 나 이정도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이게 설쳐대는 거에요. 조져버려요. 나가 인간아. 이게 최고의 특효약입니다.

부산에 강의 마치고 쉬는 시간에 어떤 집사님이 알약 두개하고 MPRO3 하얀 그걸 줬는데 제가 강의나 설교하게 되면 긴장, 집중하기 때문에 변비가 돼요. 잠도 못잘 정도로 변비가 돼요. 그런데 그걸 먹으니까 지금 사흘째 변이 왜 그렇게 잘나오는지. 쏴악 나와요. 그렇게 잘 나와요.

자유함을 느끼는 거에요 자유함을. 내가 착각한 거에요. 내가 대우받을 필요 없고 내가 대접할 필요 없는데 마땅히 복음 전한다고 대우 받겠다는 이 자세가 악마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주께서 보내주셔서 작살나게 만들어요. 그게 그 일이 반복되게 하는 것이 주님인데. 왜냐하면 나 구원하라고 준 게 아니고 내 자존심을 네가 가리지 말라.

사도 요한으로 하여금 당회장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사도 요한 어디 간다고요? 비리비리하게 아무도 안 알아줘요. 인터넷도 없어요. 사도 요한 유투브 설교 들어본 적 있습니까? 유투브고 뭐고 없어요 그냥.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요. 아무것도 안하는데 그 배경에 돌아보니까 세상에 그런 영광이 없어요. 주의 영광.

왜 그것이 우리한테는 왜 안 보입니까? 내가 잘나서 그래요. 내가 멋있어서 그래요. 나는 당연히 사람들한테 인정을 받는 괜찮은 목사라고 인정을 받아야하는 그게 있어서 그런 거에요. 마르다 마리아 진짜 마르다 마리아 주께서 나사로 오빠 죽이기 전까지는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일가족 사기단입니다. 갑자기 정치적 발언 나왔다. 일가족 사기단.

전부다 사기였어요. 믿음도 아니였어요. 자기정립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좋아한대. 우리 대접을 받는대." 조만간에 자기 오빠 죽이는 것도 모르고. 대접할 때는 얼마나 우리 오빠 살려달라는 의도가 있었겠습니까? 주께서 그렇게 나올 줄이야 상상도 못했지요. 우리의 출발선 우리의 질문선을 낮추고 더 낮춰버립니다.

오늘 제목 가. 가버려 오지마. 가. 너는 가고 내가 만든 표현력만 와? 표현력만 와. 개체는 가고 가라고 안해도 우리는 죽어요. 한 50년 살다한 60년 살다 죽지. 100살까지 살려고? 60년 살다 죽어요. 가. 왜냐면 어차피 후패할거니까 우리 육신은.

11장 50절에 보면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한다”. 한번 배운거 적용시켜 봅시다. 왜 가야바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 했습니까? 그것을 요즘 말로 고치면 이렇습니다. 돈. 배고픔이 우선이기 때문에.

유대교가 아무리 하나님 신앙이라고 해도 기본은 뭐냐 하면 악마가 예수님을 시험한 그게 기본입니다. 사람은 떡 없이는 못산다. 그럼 우리는 물읍시다. 왜 살아야 됩니까? 그 질문을 직장생활하고 돈 버는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됩니다. 내가 나한테 그걸 물을 수 있어야 돼요. 돈 벌어야지. 보람상조 안 나오셨네.

돈 벌어야지. 왜요? 왜 제가 돈 벌어야 됩니까? 그 질문을 스스로 해본 적 있습니까? 이제는 하세요. 내가 돈 벌고 싶은 것이 주의 표현력이다. 너는 돈 벌어야 돼. 돈 벌면서 고생 꽤나 해야 돼. 객기 부리면서 사표 던지지말고 갈데 없어. 갈데 없어. 나는 너 알거든.

복음이고 뭐고 돈이 우선인 너 아니까 너 주제를 알고 너 그냥 가. 네 마음대로 살아. 네 마음대로 살다가 죽어. 죽는 것도 네 마음대로 아니지만 내가 알아서 죽일테니까 갈 때까지 줄곧 육신대로 살아. 괜찮아. 네 죄가 아니고 누구 죄? 아담의 죄니까.

복음 안다는게 한꺼번에 다 정리가 되잖아요. 조금만 있으면 그런 식으로 하지 마세요. 우리는 주님이 몰아넣는 그냥 공 모듯이 드리블하듯이 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남의 가는 인생하고 나하고 같은 것이 없어요. 다 달라요. 다 다르다고요.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중에 뒤돌아보며 ‘아 그러지 말걸’ 하는데 이렇게 반성하는 그것은 내가 이기고 싶어 한 오류에요. 자꾸 지기 싫어하는 그 오류가 자꾸 반성으로 나오는 겁니다. 그때 그 짓 안했으면 되는데 왜 그런 짓 했을까. 그럼 그런 짓 안했으면 괜찮은 존재 되는데 자꾸 이런 식으로 자기 자아정립을 자꾸 시도한다 이 말이죠.

여기에 온 민족이 망한다는 의미가 여기 50절에 망한다는 말은 뭐냐 하면 로마 밑에서 그나마 밥 먹을 수 있을 때 밥 먹자. 밥 먹다가 메시아 오면 구원해주겠지 이런 겁니다. 그러나 이미 메시아는 왔어요? 안 왔어요? 왔지요. 왔는데 왜 유대인한테 왔습니까? 그들에게 맞아죽기 위해서 온 거에요. 돈만 아는 우리에게 맞아 죽으려고 오신 분이 주님이에요.

우리는 그 주님을 믿게 되었어요. 왜? 주님께서 십자가의 그 못 자국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왔으니까 아 비로소 내 출발점, 내 위치가 그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 때 날마다 주님한테 망신당해도 그건 마찬가지인거에요.

11장 53절에 보면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그 다음에 뭡니까? “모의 하니라”. 여기에 반대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습니다. 12제자 나설 필요도 없고 예수님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12장 봅시다. 12장에서 31절. 전에 12장할 때도 중요시 했는데요 다시.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이걸 설명해 보겠습니다. 부산에서 강의한 건데 너무 중요해서 또다시 반복해 봅니다. 인간이 출생을 한다. 출생하면서 살아오지요. 어느 누구도 주님 출생 전에 제가 어디 있습니까? 묻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이게 왜 그러냐하면 개체중심이거든요. 개체중심 사고방식이기 때문에 내 육신이 없으면 내가 없는 줄 알아요. 이거는 무엇을 무시하느냐 하면 주님의 약속을 무시하는 거에요. 주님의 약속에 의하면 야곱이 있기 전에 야곱은 있었고 에서가 있기 전에 에서가 있다는 것이 약속 안에 있다는 것이 이게 로마서 9장에 나오거든요.

그러면 주님의 약속은 뭐냐? 출생 이전부터 시작해서 죽음 이후의 부활까지 전부다 포괄하는 거에요. 세상을 넓게 보는 겁니다. 그렇다면 출생부터 두 가지 견해가 출생부터 출발하는 견해가 있을 거에요. 견해. 출생부터 출발하는 견해.

이게 이제 여러분 알다시피 육신의 견해지요. 이게 뭐냐 하면 땅이라는 겁니다. 참고로 알아두시면 A.D. 서기 820년경에 당나라 중국의 당나라하고 현재 티벳 그 나라가 토번이라는 나라에요. 토번. 토번하고 당나라에요. 중국이 홍콩이 아시아에 인도에 있다면 이게 당나라고 이쪽에 티벳 있지요 티벳. 히말리아 산 뒤에 티벳 있잖아요. 티벳.

그 나라가 토번이라는 큰 제국을 이뤘는데 그들 가운데서 당번 당나라 ‘당’ 토번 ‘번’ 회명비라는 비석을 세웠어요. 그 비석내용이 뭐냐 하면은 A.D 820년 세웠는데 그 내용이 뭐냐 하면 둘이 힘이 세가지고 싸우니까 그 당시에 싸우니까 둘 다 소모가 되니까 평화롭게 하자 해가지고 평화 내용이 뭐냐?

당나라는 당나라 땅에 살고 토번은 토번의 땅에 살아서 영원토록 평화롭게 삽시다라는 것이 당번 회명비에 이게 적혀 있어요. 그런데 그 내용을 제가 왜 언급하느냐 하면 사람이 산다는 것은 뭐가 있어야 된다? 땅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요? 기본으로 해야 사는게 있지요.

그런데 그 땅이 만약에 물로 심판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못 살지요. 불로 심판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못 살지요. 그게 약속이잖아요. 그러니까 출생부터 죽을 때까지 이거는 사실은 이미 여기 시나리오가 있는 거에요. 예로부터 우리의 일기장을 쓴다고 그 일기장이 나의 역사가 되는게 아니에요. 내 역사는 태어나면서부터가 역사가 아니라 그 이전에 내가 쓴 역사가 아니고 주님이 주님을 위해서 표현력으로 나타낼 역사가 따로 있는 겁니다.

성경은 그걸 이야기하고 있는 거에요. 성경 전체가.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무식한 거에요. 아 제발 좀 똑똑한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 서울 법대 나와도 바보같애. 과학자 뭐 노벨 경제학상 뭐 문학상 아인슈타인 입만 떼면 나오는 것이 뭐냐? 출생부터 나와요.

여러분들이 주께서 성경에서 주는 지혜를 똑똑하다고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이거는 세상이 주는 지혜가 아닙니다. 신나지요? 이런 신나는 기분에 고린도후서 한번 봅시다. 이왕 마지막은 또 신나게 해야지. 개망신 이야기만 했는데.

고린도후서 10장 5절 크게 한번 읽어보세요.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라”. 모든 이론 가운데 물리, 생물, 과학, 인문학부터 해가지고 인문과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다 포함되고 경제학, 언어학 원어 따지고 신학 다 포함되지요.

신학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게 그리스도를 대체해서 높아지는건데. 출발점이 출생한 내가 어떻게 구원받는가 이게 구원파 아닙니까? 구원파가 말이 안 되는게 자기 시나리오를 자꾸 나를 근거로 해서 자기 구원이라는 시나리오를 본인이 지금 자꾸 자아정립을 하고 있는 거에요. 믿음이 없고.

없는 자를 구원하는데 있는 자 한번 구원해 볼까? 라고 교회 나오는게 구원파잖아요. 사기당하신거에요. 여러분들 보고 하는게 아닙니다. 그 이론의 끝은 뭐냐? 정치학이에요. 정치에요. 정치. 그래서 기독교 연합회 피켓 들고 나서는 거에요. 왜? 교회가 복음을 전할려고 하면 공산주의 되면 안 되니까 나서는 거에요.

왜 모든 사고방식이 있는 나를 지키려고 하느냐 그게 믿음이 아니고 자아정립인데. 이제는 그걸 분간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지혜가 있을 때 그런 시점 되었지요? 그만큼 강남 했으니까. 오늘 강의의 초점은 뭐냐? 개망신. 개망신 당해야 뭐냐? 내가 닫아놓은 감사와 자유가 나온다는 거에요.

아 그 다음에 뭐냐 하면 개체가 아니고 표현력이다. 보유하는게 아니고 소유하는게 아니고 그냥 표현하는 거에요. 시나리오 창세전에 있는 시나리오대로 야곱은 어떤 경우라도 사랑받게 되어 있고 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미움받게 되어 있어요. 야곱 자체가 사랑이에요. 사랑이라는 이모션 감정을 따로 느낄 생각을 하지 말고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그 모든 짓이 사랑의 표현력이에요.

그리고 국가 짐승입니다. 땅 불로 심판받아요. 왜 그런 것에 겁을 내느냐? 자꾸 출발을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출발하거든요. 하여튼 그 6월달만 되면 은연중에 제 설교 시간에 제 생일 달이라고 자꾸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요. 제 설교에. 말려도 안돼. 그게 뭐 의미있는 거라고.

처음에는 교인들이 귀 기울여듣다가 이제는 안 속아요. 감사합니다. 아주 교인들한테 개망신 당하는 거에요. 그게 자유거든요. 출발점이 예수님 생일 외에는 없어요. 십자가 외에는 십자가가 생일이지 다른 생일은 필요치 않습니다. 왜? 매일이 우리의 생일인데. 매일 죽으니까.

내일 되면 내일치 표현력 오늘 되면 오늘치 표현력. 우리는 돈 밖에 몰라요. 우리는 나 사는 것 밖에 몰라요. 복음 알아들어도 배고프면 피자 시켜 먹을까? 땅. 부동산 내 집이 있어야 살아요. 이걸 어떻게 이 진지함을 어떻게 외면합니까? 대출받아야 되고 1순위 0순위 따져야 되고 주택부금 몇 개 넣었는지 그거 따져야 되고 우리가 하는 재주는 그 재주 밖에 없어요.

그렇게 하면서 죽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게 주님의 예정된 그게 있어줘야 죽으심의 의미가 사는 거에요. 내가 살고자 하는 그것이 날마다 주께서 발라 버립니다. 아주 망신살을 줘버리죠. 주님 앞에 당하고 인간 같지도 않게 취급받는 것 사람한테 사람 만남을 통해서 내가 완전히 박살날 때 뒤돌아보시면 돼요. 주의 영광을. 십자가로 주는 영광을. 이 세상 것이 감히 막아설 수 없다는 것.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사이를 몰랐습니다. 주님 우리 앞에 소경된 자를 들이대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우리가 깜깜한 소경인 것을 이제는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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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4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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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