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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죽음 사건 191014강의시편

20191014a 부산강의 : [시편]22(14편)-죽음 사건
(강의:이근호 목사)

시편 14편 5절에서 7절까지입니다. 일단 제가 읽겠습니다. “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아멘.

이 본문이 너무나 너무나 많은 것이 함축돼있고 함축됐다는 것은 깊이가 깊다는 것이죠. 그때는 위에서 표면에서 뚫고 내려가야 되는데 우선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즐거워하고 기뻐한다면 7절에 보면, 포로된 것을 돌이키신다고 했는데 아예 포로 안 되도록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우리 생각에.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 기뻐하지 마시고 아예 적들에게 안 잡히면 좋지 않을까, 우리 생각이거든요.

포로된 일이 없을 경우에 그냥 기뻐한다면 무엇이 누락되고 무엇을 건질 수가 없는가?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될 겁니다. 하나님께서 포로 됐다가 탈출시키는 과정이 만약에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점을 모르게 되고 빠트리게 되느냐고 질문을 던져야 되겠지요.

여기서 죽음도 사건이 포함된다, 라고 제가 말을 썼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 인간이 태어나서 죽잖아요. 죽음이 있단 말이죠. 이건 출생이고. 출생에서 죽는 것까지 인간이 생각한 전부에요. 만약에 부활이 있다. 다시 삶이 있다면 출생이 끝이 아니고 부활이 끝이기 때문에 죽음은 이 가운데 있는 하나의 사건이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죽음이 끝이기 때문에 여기서 모든 것을 결정하려고 해요. 이것을 사람들은 사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의미란 것은 시간에서 끊어지는 것이 있을 때 거기서 의미가 생기는데 그 의미는 죽음 이전에 여기서 다 모아놓은 것, 집합한 것, 구성된 의미죠. 여기에서 탈출해야 된다는 겁니다.

죽음에서 점점 부활의 세계로 간다면 우리는 부활에 이르기 위해서 반드시 죽음이란 것을 경유해야 된다는 거죠. 죽음이란 사건이 없으면 하나님이 생각한 영생의 나라가 우리 속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예요. 여기서 어려워요. 진짜 정말 어려워요. 제가 어렵다고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활의 세계가 두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부활을 상상하는 것과 하나는 실제 하는 것. 죽으면 부활한다.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꽝이에요. 이거는 백날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런데 부활이 실제 한다면 이건 동그라미에요. 그러면 죽고 난 뒤에 부활이 있겠지. 이거는 꽝이에요. 이건 말도 안 돼요. 이건 해봐야 헛수고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부활이 있다면, 이 부활은 미리 이 앞에서 의미가 덮치는 겁니다. 이걸 선취라고 하는데요. 미리 경험한다, 미리 맛본다, 미리 취한다, 미리 갖게 된다. 선취라 합니다. 이걸 가져다주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이 우리가 죽기 전에 맛보아야 될 부활을 이건 상상밖에 안 되니까 상상은 쉽게 말해서 착각인 거예요. 보통에 교회에서 이걸 많이 하지요. 죽어도 믿습니까? 이런 건 착각이에요.

이게 실제가 되게 되면, 지금 여기 부활의 삶에 미리 들어가게 됩니다. 그럼 두 개의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하나는 빨간 것으로 썼고 하나는 까만 것으로 했지요. 나라는 인간 안에 두 개의 의미가 작동하고 있어요. 이 의미는 뭐냐 하면, 탈출할 수 없는 이유와, 점점 말이 어려워지더라도 참으세요.

이 의미는 죽음이 끝나기 때문에 죽음에서 못 벗어나는 것들로 모여 있는 의미에요. 죽음에서 못 벗어나는 이유들로 모아진 의미죠. 사람이 왜 죽는가 하면 죄 때문에 죽고, 죄가 뭐냐? 자기 의로움이거든요. 자기 의 때문에 죽는단 말이죠. 선과 악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이게 바로 죽는 겁니다. 선악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그런데 이 의미 때문에 죽음에서 탈출이 못 돼요.

그런데 이쪽 의미는 이게 용서거든요. 용서, 정죄함이 없느니라. 이건 선악이 아니고 생명나무, 그리고 이건 사랑이고. 앞에 있는 죽음은 율법이란 말이죠. 율법 안에 있는 자들은 저주 아래 있기 때문에 죽음 심판 안에 있기 때문에 의미는 이 의미가 전부에요. 여기서는 두려움과 무서움, 공포, 걱정근심 나오지요. 아까 두려움 나온 것 같은데요.

제가 지금 5절 강의하고 있는데요. “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하나님은 위쪽에 있는데 아래쪽 있는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거예요. 죽는 게 무서워서 이것이 끝장났으니까 나는 죽음이 주는 공포의 의미가 앞의 의미로 가득 채우는 겁니다. 벌벌 떨면서.

그런데 이미 죽는 것이 마땅하다는 거예요. 죽는 것이 마땅함을 받아주는 의미가 두 번째 의미에요. 죽음을 겪지 않고서는 부활이란 게 없는 겁니다. 그러면 죽음의 의미는 뭐냐 하면, 인간의 한계를 말해줘요.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그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 부활은 누구 손을 타느냐 하면, 바로 주님이 친히 손을 대줘야 돼요. 주님의 공로가 되고 주님의 일방적인 자기 작업이 들어가야 돼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안 돼요. 빨리 공부하고 일하러 가셔야 되니까. 일해야 먹고 살지요. 잘리면 무섭잖아요. 두렵고 두렵잖아요. 잘리면 자식들 뭐 먹고 살고 나는 노후대책 하나도 안 돼 있는데 걱정근심이 가득하단 말이죠. 이거거든요. 이것을 필히 간직해야 돼요. 이게 노른자라면 흰자가 있어줘야 되거든요. 노른자가 뭐냐 하면, 인간은 죽는다는 사실. 그냥 죽으면 안 되지요. 죽는 이유가 있어야 되지요. 자기 의, 율법, 법대로 바르게 살자. 그러면서도 계속 쫓기 벌벌 떨며 살아가는 것.

거기에 대해서 성령께서 알려주는 바는 뭐냐 하면, 다 이루었다, 에요. 대신 다 이루었다. 처리했다. 끝냈다. 그런 것이 성도한테는 중복돼있습니다. 중복현실이라 하는데. 현실인데 불신자에겐 없는 게 있어요. 뭐냐 하면, 부활의 선취성, 부활의 능력이 죽음과 함께 있으면서, 그냥 함께 있는 것이 아니고 항상 시작은 죽음의 두려움부터 그리고 그것의 끝은 이겼다는 것. 내가 법이라는 것, 법의식, 양심이라든지 거기에 구애받지 말라. 그걸 어제 낮에 주눅 들지 말라. 그런 겁니다.

그럼 우선 성도라 치고, 성도니까 선취된 입장에서 좀 더 자세하게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말이 그렸던 것이 하나의 철학이론 같으면 우리는 참고하면 그만인데 예수님이 실제로 죽으시고 실제로 사흘 만에 부활했어요. 그러면 이야기 끝난 거예요. 정말 이거는 부활이 없다는 인간들이 거짓말쟁이에요. 그들이 가짜 인간이고.

예수님이 부활 안 했고 우리가 부처를 믿는다든지 어떤 철학자를 믿는다면 이건 참고사항으로 하겠는데 실제로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해버리면 우리가 아는 세계보다 포괄적이죠. 범위가 더 넓은 거예요. 사는 운동장이 더 넓다. 좀스럽게 사는 게 아니고 활짝 핀 거예요. 전체가. 그 운동장에서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살려둘 때 그 살려둔 의미가 과연 무엇인가? 그 점을 제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출발은 인간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인간은 항상 자기를 생각하지요. 이걸 주체성이라 해요. 나는 누군가, 나는 어떻게 사는가? 출발은 이건 신자건 불신자건 관계없어요. 살 때 주체성을 이야기하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타인으로부터 주목을 받게 되고 관심을 받게 되고 시선을 두게 됩니다. 이 타인을 개체성이라 합니다. 주체가 있으면 반대에 개체가 있거든요.

그래서 항상 주체성이 주목을 받으니까 나라는 인간은 내가 뭘 어떻게 살까, 하는 것은 항상 곁눈질하게 돼있지요. 이웃이나 주변사람. 주변사람이 대표적으로 누구겠어요? 가족, 심지어 강아지, 고양이까지 포함해요. 내가 행동 잘못하면 고양이가 얼마나 화를 내는지를 하면서 자기 행동을 수정해 나가기 시작해요. 그게 뭐냐? 개체라 합니다. 개체가 인간뿐만 아니고 환경까지 다 포함되지요.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인간이 고분고분할까요, 안 할까요? 안 합니다. 네가 그걸 요구해도 참다참다 나도 폭발한다. 나는 더 이상 네가 시키는 대로 끌려가는 인생 하기 싫다고 자기 나름대로 공격을 타인에게 시선을 주겠지요. 너는 나에게 달라지라 하지만 나는 말한다. 네가 달라져라. 이걸 시선투쟁이라 해요.

시선투쟁의 특징은 뭐냐 하면, 이게 바로 피곤함을 유발한다는 것. 공장이나 회사에서 주인 된 사람들, 감독된 사람들은 항상 이런 입장에 있어요. 공장에서 일할 때는 일사천리로 모든 직원들이 집중해줘야 돼요. 안 그러면 하자가 생기니까요. 하자 생기면 수출할 때 클레임 발생해서 안 되거든요.

집중할 때는 감독을 해요. 집에서 피자 포장지 접는 것하고, 영화에서 온 식구가 피자 포장지 접는 일을 하다가 20퍼센트 하자나서 피자집에서 화내는 것 있거든요. 또 인형 눈 붙이는 것. 그렇더라도 이거는 피곤해요. 왜냐하면 감독관이 있기 때문에. 감독관 시키는 대로 하려하니까 또 감독관 살아온 인생이 있잖아요.

그럼 나는 내 인생 없습니까? 이걸 돈이라는 이유 때문에 억지로 맞추려고 하니까 피곤해 미치는 거예요. 단지 돈인데. 더러워서 안 한다고 식당 같으면 앞치마 던지든지, 사표를 내든지 더러워서 못하겠다. 이것 아니면 내 못 먹고 사냐고 하지요. 왜냐하면 네 인생 있는데 네가 뭔데 내가 니 인생 따라갈 필요 있느냐? 이쪽에선 말하기를, “돈 주잖아, 돈. 너 딴 데 가면 이만한 돈 주는데 봤나?” 이래 된다 이 말이죠.

우리 목사님한테는 해당이 안 되지만 다른 노회 목사들은 다 해당이 돼요. 돈 때문에 목사하기 때문에. 심지어 목사들이 이런 생각이 들어요. 돈 안 주는데 꼭 목회할 필요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 돈 많이 벌면 목회 안 할래. 놀러 다닐래,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든다고 단언을 안 했습니다만 들 수도 있어요. 그 정도 피곤하다.

여기 시선투쟁에서 주목해야 될 게 뭐냐 하면, 시선투쟁에서 법이 생깁니다. 율법이 생기죠. 자, 율법이라 하는 것이 인간은 법이 있지만 타인을 인간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으로 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목한다. 이게 시내 산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뭘 받아와요. 뭘 받아옵니까? 십계명+율법+제사법 받아오지요. 이걸 율법이라 합니다. 더 크게 이야기해서 선지자의 발언도 율법에 들어가요. 더 크게 이야기해서는 사도 바울이 하는 명령도 율법에 들어가요.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뜻이 법이라는 형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법의 형식으로 주어진다는 말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라 또는 하지 말라. 딱 두 종류 명령법이에요. 그런데 인간들은 하라 하면 안 하고, 하지 말라 하면 하고. 이게 로마서 7장에 나오는 이야기거든요. 탐내지 말라는 순간 갑자기, 하나님께서 탐내지 말라는 말로 우리를 후비고 작업하게 되면 우리 속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탐내고 싶다는 욕망이 나온다는 거예요. 제 이야기 아닙니다. 로마서 7장에 나와요. 탐내지 말라는 순간 탐을 내는 거예요.

먹는 것 입는 걸로 족한 줄 알라고 디모데전서에 나오는 말씀이거든요. 그러면 먹는 것 입는 걸로 족한 줄 알면 우리는 그게 사는 걸로 알아요. 그게 물건이지 사는 거가. 짐승도 아니고. 먹는 것으로 산다고? 사는 재미가 있어야지. 대번에 이게 나오게 돼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봐야 우리 속에 잠자고 있는 죄가 나와요. 말씀을 안 보면 자기 의로움이 돼버려요.

어제 오후 설교에 그런 이야기했거든요.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하나님의 세계에 대해서 아무 의미 없습니다. 진짜 하나님의 관계는 내가 죄의식을 가질 때에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삼위일체고 이래서는 하나님은 이론 하나님이고 실제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해서 반항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 누가 놀래느냐 하면, 내가 놀라는 거예요. 내 속에 이런 반발심이 내 허락도 없이 들어앉아있었구나. 이건 진짜 내 진심이 아닌데 왜 이게 들어앉아있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로마서 7장에 보면, 내가 선을 원해도 내 속에 원하지 않는다는 게 있다는 그게 뭐냐 하면, 원하지 않는 악이 짓밟고 까불지 말라고 선을 억누르면서 튀어나오게 돼있는 이것이 바로 인간이며, 이 인간인 것을 아는 것은 어떤 경우냐 하면, 성령 받은 성도에 한해서만 그렇다는 거예요. 로마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이.

성도는 악이 안 나오는 사람이 아니고 진짜는 내가 악 덩어리인 것을 다윗처럼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다는 것을 어떻게 그것에 눈을 뜹니까? 이게 아까 이야기한 부활의 세계에서 오는 시선이 이미 들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거고 여기서는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시선에 동참해서 나를 다시 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란 말이죠.

그러니까 교회에 가서 착한 사람 된다는 그런 낭설을 믿지 마세요. 그건 있을 수 없는 거예요. 착한 사람이 지옥 가는 거예요. 이삭에 아들이 둘 있지요. 에서와 야곱. 둘 중에 누가 거짓말했습니까? 누가 의도적으로 속였어요? 야곱이 속였지요. 천국 갔습니다. 에서는? 착실하지요. 아버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했지요. 지옥 갔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아버지 유산 빼돌려서 기생들과 다 말아먹고 탕자 된 그 사람과 평생토록 아버지 옆에서 착실하기 그지없지요. 아버지 곁을 떠나본 적이 없는 아들, 누가 하늘나라 칭찬받습니까? 탕자가 칭찬받아요. 반전입니다. 역전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서 회계담당직원이 횡령을 했어요. 횡령한 사람과 횡령하지 않은 사람 중 누가 천국 갑니까? 횡령한 사람이 천국 가지요. 그걸 불의한 청지기라 하지요.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아, 네가 네 자신이 누군지 모르고 그걸 교묘하게 덮고 있다. 평생을 덮는 인생이에요. 그래서 어제 오후 설교에서 자기로부터 개종하라 했지요.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고 밖에 있는 것을 속으로 집어넣어야 돼요. 내 종교로부터 개종하는 거예요. 전에는 예수를 믿어도 기독교를 믿어도 이게 내 종교였어요.

나를 위해서 예수 믿고 나를 위해서 부처 믿고 하는 그 종교에서 이제는 나를 위해서 살아가지 않는 종교로 바꿔야 되겠지요. 차라리 나를 까발려주시옵소서. 노골적으로 다 드러내게 하옵소서. 위층에 있는 중복된 현실이 아래층에 있는 우린 눈에 보이는 현실, 보이지 않는 현실이 보이는 현실을 완전히 뒤집어 주시옵소서. 그리 되겠지요.

인간들은 하나님 빼놓고 인간들이 나에게 요구할 때 처음에는 협력합니다. 뭔가 있을까 싶어서. 협력하다 나중에는 거절해요. 협력하다 거절하는 이유는, 너무 타인에게 끌려가는 인생이 돼버리면 내 주체성이 제거된다는 위협이 있어요. 뭔 뜻인지 아시겠지요. 너무 남한테 끌려가면 내가 제거가 되지요. 제거 위협을 받고 여기서 반발이 일어납니다.

이 반발이 바로 악마의 심술이에요. 우리 안에 사실은 아담 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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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4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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