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밭이랑 191010강의야고보서

안양20191010a야5장17절(밭이랑)-이 근호 목사

야고보서5장17절부터 하겠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자, 여기서요, 지금 이 본문에서 앞뒤가 안 맞는 게 있어요. 뭐냐 하면 우리하고 성정이 같다. 우리하고 일반적으로 똑같다, 이 말이죠. 사는 게. 똑같은데 그 분이 기도한즉 삼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가 나중에 기도하니까 비가 왔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들 가운데 어느 누가 취미로, 재미로 “아휴, 나 삼년 육 개월 비 안 왔으면 좋겠다.” 이렇게 기도할 그러한 보통 사람이 있습니까? 일반화된 사람 있어요? 없지요. 그러니 여기서 엘리야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은 엘리야가 평소에 하는 그 기도를 그걸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기도라는 것은 인간으로서 일반화된 것이다. 보통 일반인들은 다 기도하잖아요. 일반인들은 답답하면 기도한다고요. 일반인들은. 기도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엘리야의 기도가 과연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기도냐, 이 말입니다. 무슨 심술이 나가지고 삼년 육 개월 동안 비 오지 말라는 하는 그게 어디 있어요. 물론 엘리야가 요즘 같으면 북한에 태풍 불어라. 할 수 있지만 그건 사적인 원한과 보복, 복수, 분노, 이게 표출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엘리야는 그런 게 없어요. 엘리야의 기도가 성정이 같다는 말은 엘리야의 기도는 바로 성정이 같은 일반인의 기도하고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는 겁니다. 보통 기도라고 하는 것은 사적인 기도거든요. 이걸 사적인 기도라 하는 것은 이것을 가지고 뭐냐 하면 이걸 고상한 말로 이야기하면 ‘개별 사실’이에요. 개별적인 사실이에요. 인간은. 보통 인간은 개별적인 사실이에요. 세상에 자기 이웃이 뭐하고 백 미터 뒤에 뭐하는지 몰라요. 아니 아예 알고 싶지도 않고. 개별적인 것만 집중해 살아가는 것이 일반인들의 삶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렇지 않았잖아요. 엘리야가 삼년 동안 비 안 와가지고 자기한테 어디 혜택 얻는 거 있습니까, 개별적으로 이익 얻는 거 있어요? 없잖아요. 그러니 엘리야의 기도가 개별적인 사실이 아니고 이건 어렵게 이야기해서 뭐냐 하면 개별적인 사실이 아니고, 이건 나중에 뭐가 되느냐 하면 ‘보편 명제’가 되는 겁니다. 보편 명제.

보편 명제는 흔히 말해서 뭐냐 하면 보편적 진리를 이야기하는 거죠. 하나의 인간을 통해서 그 사람에게만 아니고 그리고 엘리야가 모르고 있는 많은 사람들, 모든 인간에게 공히 다 적용되는 보편적인 어떤 규칙, 원리, 사실, 그것을 엘리야에게 개별적으로 엘리야에게 기도하게 하신 거예요.

그래서 엘리야는 분명히 이건 개인적입니다. 개인입니다. 분명히 개인인데, 이 개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뭐냐 하면 그는 우리와 성정이, 우리와 모든 요소가 동일한, 특별한 인간이 아니고 성정이 같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마치 예수님은 밥 안 잡숴도 되는 사람이 아니고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밥을 먹어야 되고 잠을 자야 되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 우리하고 성정이 똑같지요.

하지만, 그 예수님에 일어나는 것은 그 누가 예수님에 일은 사적인 문제고, 개인적인 문제다. 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성령을 받지 않는 예수님을 주라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그런 견해잖아요. 예수님에 대해서. 이 세상에는 4대 성자가 있다. 예수, 소크라테스, 공자, 부처, 4대 성자라 하잖아요. 그럼 4대 성자라 하는 것은 굉장히 높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니나 내나 똑같은 인간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고린도전서12장에 보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시라고 하지 않고서는 성령 받은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이죠. 성령을 받게 되면 그 말을 바꿔서 말하면 성령을 받게 되면 예수님을 뭐라고 합니까? 예수님을 주시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고백이 어떤 어린애가 고백하던 아주머니가 고백하던 노인네가 고백하던 그 고백은 남들 보기에 개별적인 사실이지요. 그런데 그 입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주되심이라 하는 것은 개별적인 겁니까? 보편적인 겁니까? 보편명제지요. 예수님 주 맞잖아요. 천지를 창조하신 분 맞잖아요.

그래서 그 예수님을 주된다고 해서 그 안 믿는 사람들에게 안 믿는 식구들, 식구 구성원, 또는 일가 친척들, 안 믿는 친구들에게 기죽을 필요 있어요, 없어요? 기죽으면 안 되지요. 내 안에 보편이 들어있는데 왜 감이 개별이 까불고 있어요. 왜? 개별이. 나는 지금 보편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주되심이다. 이건 내가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서 하는 겁니까? 성령이 임해서 되는 거예요. 일자무식이라도.

성령이 임하게 되면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는 거예요. 이건 미친 거예요. 그러면서도 “니가 뭐 잘나서 예수님을 주라고 하느냐? 나는 안 믿는데, 나는 좋은 대학 나와서도 안 믿는데 니는 중학교 밖에 안 나온 게 예수님을 니가 어떻게 안다고 주라고 하느냐?” 라고 한다면 “나? 나, 니하고 성정이 똑같아.”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나, 니하고 다를 바 없어. 똑같아. 나도 니하고 그렇게 그런 인간이야.” 그런데 예수님이 주가 되신다 하는 것을 알았다는 말은 결국은 주께서 다루신다는 뜻이잖아요. 다루신다는 뜻이에요.

신약에는 성도를 통해서 성령의 일이 나옵니다. 그것이 구약에서는 성신에 의해서 일한다. 라고 할 수 있는데. 로마서5장에서는 성령에 의해서 일한다고 하는 것도 되고, 야고보서5장에서는 그걸 달리 이야기해서 우리가 성정이 같으나 엘리야의 기도가 응답됐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얼마나 오래했는가는 묻는 게 아니지요. 엘리야가 기도할 때 꿇어 앉아 했는가, 양반다리 했는가, 그걸 묻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개별적인 어떤 조건을 극복하고 그 조건과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편적인 것이 그냥 나와 버린 거예요. 어떤 개별적인 상황이 몸이 아프다든지 상당히 건강할 때는 이게 “컨디션이 좋아가지고 기도가 되는데 아플 때는 기도가 안 돼.” 그 사람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예요.

안 아프다는 조건하에 기도가 잘된다 하는 것은 그것은 주께서 유발한 현상이 아니다, 말이죠. 다시 말해서 보편적인 것이 아니고 개별에서 개별로 그냥 추락하는 거죠. “당신 취미가 뭡니까?” “기도 하는 거.” “몇 분 동안 합니까?” “몇 분이라니? 나는 한 번 하면 두 시간 반입니다.” 그 사람 취미지요. 새벽제단 쌓는 거 취미죠. 새벽에 살 빼려고 운동하는데 그게 취미지요. 살 빼는 거나, 새벽기도 가는 거나 차이점이 뭐가 있습니까? 내가 새벽기도 가야 새벽이 깨어집니까. 내 안 가면 새벽이 안 깨어져요? 어떤 목사의 책이 있지요. 새벽을 깨우리로다. 새벽에 깨워서 뭐할 건데? 데모할 건데 또. 전부다 개별적이에요. 개별적. 보편적인 것이 나오지 않으면 전부다 아무리해도 하나의 오락이고 자기 나름대로의 취미 활동이에요.

취미활동의 특징이 뭐냐, 그냥 즐겁고 시간 잘 보내는 그런 거죠. 그러나 이 보편적인 것은 어떤 현상이 이러나는가 적어볼게요. 물어뜯기에요. 어떤 사람이 보편적인 것을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나오면 주위에서 왁! 달려들어서 물어뜯깁니다. 이건 본인이 말릴 수도 없어요. 내가 내 의도에 의해서 어디 뭐 보편적이 나올 거 같으면 내가 그걸 금지하거나 내가 중지하면 되는데 내게서 나오는 이 법은 금지할 법이 없네. 주님에 대한 사랑을 금지할 법이 없다 했잖아요. 말릴 수가 없어요.

그 누가 사도바울보고 미쳤다 하니까 “그래, 나 미쳤다.” 미쳤다는 이야기는 사도행전에도 나오고 이게 고린도후서5장에도 나와요. “그래, 나 미쳤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했구나!” “그래, 나 미쳤다. 미쳤지만, 미쳤다 현상을 보지 말고 입에서 뭐가 나오는지를 보라.” 말이죠. 그게 예수님의 살아계심이에요. 예수님이 살아계시는 거예요.

인간이 살아있을 때는 2가지 의미가 있지요. 살아있다. 남들이 나를 한 인간으로 대우할 때 인간은 살아있다고 느끼는 겁니다. 살아있네! 하잖아요. 살아있네. 남들이 나를 알아줄 때, 살아있네! 그런데 남들은 모르는데 주님이 나를 알아줄 때, 사람들은 살아있다고 봐주는 게 아니고 이건 미쳤다고 보는 거예요. 남들이.

성도는 보편적을 이야기했는데, 사람들은 보편적이 아니라는 거예요. 왜, 모든 사람이 다 동의해야지 모두다 동의 안하는데 왜 니만 고집하고 있느냐, 이 말이지요. 우리 쪽수로 시합하자. 대결하자는 거예요. 느 교회 몇 명이냐? 이리 나오는 거예요. 진짜 하늘의 진리 같으면 숫자가 많이 모여야지 무슨 진리인데, 가정이 달랑 두 가정이라. 교회가. 무슨 쪽수가 그런 쪽수가 있어요.

진리를 전했으면 전에 교회보다 더 많아야 되지요. 달랑 두 가정. 세 사람밖에 안돼요. 이게 무슨 진리일까요. 그런데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이야기했지요. 크라운 프라자 호텔 밤중에 강의한 거. 거기에 나오잖아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기도하는 곳에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 주께서 돔처럼 덮어 씌워버린 겁니다. 왜냐하면 개별 쪽수를 계산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두 세 사람을. 뭐냐, 그들은 개인이 몇 명이 모이느냐 아니라 누구를 바라보느냐, 에요. 누구를.

주와 주님이 함께 있으면 그걸 천국이라고 이야기해요. 여러분 처음 들었지요. 내가 여기 있는 게 천국이 아니고 주님이 주도적으로 계시는 곳을 그런 상태를 가지고 천국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 영토는 지상의 영토에 흡수, 통합이 안돼요. 다른 영토에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뭐냐 하면 하늘나라의 밑바닥이라고 표현합니다. 작용은 하는데 이 세상 영토에 어느 곳에도 포함되지 않는 것. 그걸 대구강의에서는 이걸 뭐라고 했느냐 하면 현장이라고 했고, 그 현장이 뭐냐, 사건의 현장이라고 했지요. 거기가면 범인들 다 나가고 없어요. 하지만, 범인이 남기고 간 자국이 발자국이, 핏자국이 있잖아요. 그래서 경찰에서 현장보존하지요. 살인의 추억 그 영화에 송 강호 영화 있잖아요. 화성연쇄 살인범 영화. 거기에 보면 경찰이 흔적 찾기 위해서 애를 쓴다고요. 뭔가 남긴 게 있을 것이라고 찾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놀랍게도 주님이 살아있다는 흔적을 지상에 어떤 것도 남기지 않았어요.

그러니 인간 쪽에서 천국가려고 하는 모든 시도가 단절되어있는 겁니다. 그 단절되어있다는 것. 단절되었음이 흔적으로 내려오는 게 뭐냐 하면 바로 아까 한 하나님 나라의 뭐라고 했습니까? 바닥이죠. 바닥 이게 기도에요. 하나님 나라 바닥의 문양, 모습. 이 모습은 하나님 나라가 지금 무빙,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엘리야의 기도입니다.

이건 일반인들이 하는 기도가 아니고, 이건 이상하게 그런 기도가 나올 리가 없어요. 그런 기도가 나올 리가 없다 이 말이죠. 엘리야가. 삼년 육 개월 동안 비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게 엘리야가 평소에 노림수였던가요? 너그 한 번 죽어봐라. 그런 억하심정이 있어가지고 그걸 한꺼번에 모아서, “주여, 이거 조절합시다. 한 4년 때릴까요, 3년 반으로 할까요?”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둘이 상의한 적 있어요? 없지요. 다른 사람하고 엘리야하고 무슨 관계있다고 그 삼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안와요.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하고 사전에 상의한 적도 없어요. 더 쉽게 말씀드릴까요. 먹구름이 왔을 때, 먹구름이 오고, 지면 사이에 여기 폭우가 형성되지요. 폭우가 뭐냐 하면 기도다. 이 말입니다. 폭우가. 위에서 쏟아지는 거예요. 말릴 수가 없지요. 말릴 수가 없어요. 하나의 계시니까.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의 만남이다. 이것을 주일 낮에 ‘경계의 미학’이라고 한 겁니다. 경계선이 갖고 있던 아름다움이에요. 아름다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예수님께서 철수하고 난 뒤에는 인간 쪽에서 하늘나라 갈 수 있는 모든 통로는 다 좌절돼 있잖아요. 이건 창세기3장에서 아담이 선악과 따먹고 추방되고 난 뒤에 도로 생명나무 있는 곳으로 기어들어갈 그런 구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이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이에요? 없다는 말은 나는 너를 인간으로 안 봐주겠다는 겁니다. 그 만약에 다시 생명나무로 들어올 수 있다면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원래 그 인간다움, 그걸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원래 하나님의 형상 지닌 사람만 통과되고 나머지는 닫아버리지요.

그 통과하신 분이 최초로 하늘나라 통과하신 분이 누구죠? 바로 예수님이잖아요. 방금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최초 했지요. 최초. 초반부터 슬슬 어렵기 시작합니다. 어차피 들을 귀 있는 자만 듣겠지만. 쉽게 한다고 알아듣는 게 아니니까.

최초. 다른 말로 하면 시작이지요. 뭐가 어려우냐 하면 과거가 시작이 아니고 시작은 미래에 있다는 겁니다. 미래. 미래에 시작이 있어요. 미래에 시작이 있다면 현재 엘리야의 모든 것은 펼쳐지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펼침의 반대가 뭐냐 하면 응축입니다. 응축. 모아지는 거예요. 수렴되는 거예요. 엘리야의 기도가 점점 어디에 수렴되느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기도로 모아지는 거예요.

그러면 시작은 어디에 있느냐, 시작점은 과거의 시작점이 아니고 미래에 시작점이 있는 거예요. 최후의 것. 우리의 시간적 상식은 뭐냐 하면 시작은 과거에 있었고 천지창조가 있었고 천지창조가 악어가 아가리 벌리듯이 펼쳐지게 된다, 이리 보거든요. 이걸 과학에서는 진화론이라 하는 겁니다. 계속해서 이 우주는 창발적으로 돌발적으로 스스로 자기 전개를 한다 이 말이에요. 자기 전개.

그래서 자기 전개해가지고 계속 무한대로 자체 내에서 어떤 혼돈과 조직을 자체적으로 구성을 하면서 퍼져나간다는 거죠. 예를 들면 어떤 방에 가스를 연결하면 연기가 처음에는 일직선으로 올라가다가 나중에는 지 마음대로 카오스, 혼돈속에 빠지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식으로 우주는 펼쳐간다. 그 혼돈 속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면 거기서 질서가 생기는데 코스모스 질서가 생기는데 그 질서가 우주고 그게 빅뱅이 되고 그래서 지금부터 137억년전에 우주가 탄생을 했는데 그것은 여러 가지 질서체중에 하나가 이 우주고 다시 이 우주 바깥에 다른 병행되는 다른 우주가 또 자연의 우발성으로서 생겨날 수 있다는 거예요.

그 우주와 이 우주 사이에 있는 잼처럼 있는 게 뭐냐 그게 중력이라는 겁니다. 현대 물리학에서 그렇게 이야기하지요. 그게 중력이라고. 중력은 어디서 오는지는 모르지만 샌드위치처럼 옆 동네에서 아마 올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 그것이 현대 물리학에서 최첨단 이야기하는 끈이론(string theory), 무려11차원의 이야기. 수학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인간이라 하는 건 우연한 거고, 근본적인 원리는 뭐냐 하면 진화론이지요. 그냥 펼치는 거예요. 계속해서 뭔가 진화한다. 변화한다. 이 변화 되는 것을 보다 더 살기 좋은 쪽으로 펼쳐 나가자. 과학이란 것이 인간의 여러 가지 이성과 실험을 통해서 계속, 계속 확인해 주는 겁니다.

그것을 여러분 자녀가 학교에서 배우고 있고 여러분이 본의 아니게 이미 그러한 영향력을 충분히 부여받고 있어요. 영향력을 다 입고 있다고요. 그런 진화적 관점에 있어서 어떤 관점의 영향을 받느냐 하면 일단 기도를 했으면, 기도를 했다 합시다. 기도했으면 현재지만 약간만 시간 지나면 기도는 현재가 아니고 뭐가 되지요? 과거가 되지요. 시작점이 기도를 했으면 거기에 내가 원하는 내가 예견한 결과를 얻어내야 된다 하지요.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 자체가 무슨 론입니까? 이게 자체가 진화론이지요. 말은 진화론이지만 사실은 내막은 뭐냐 진보론이지요. 진보론. 날이 가면 날이 갈수록 더 나아져야 된다는 거예요. 나아진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인간에게 나아진다는 게. 인간은 죽어가고 있잖아요. 죽어가고 있는데 나아진다. 죽을 때 예쁘게 피부 고아지면서 죽는 걸 그게 나아지는 걸까요.

도대체 기도할 때 뭐를 염두에 기도하느냐, 말은 진화지만 사실은 진보를 염두에 두고 기도하잖아요. 진보. 지금보다 향상되도록. 그 향상된다는 내용을 깨어보자 말이죠. 어떤 걸 가지고 더 향상되었다고 할 수 있는 그 증거물은 뭐가 되느냐. 일단 숫자 늘어나기. 교회가. 그게 진보거든요.

그러면 한 가정에 애가 둘이 있는데 애 하나 더 본의 아니게 그저 하다보니까 맨날 하다보니까, 하다 보니까, 애가 더 생겼다. 뭐 하다보니까요, 수술 안 해서 그렇지. 수술 하면 하다보니까 그런 거 없는데. 하다 보니까 생겼다는 거예요. 그럼 애 넷이면 진보입니까? 이게. 골치 아픈 겁니까? 그런데 다른 사람은 애 지가 안 키우니까 “아이고~ 복도 많지유.” 충청도 말하면서 복도 많지유~~, 요새 전라도 같으면 가인이어라~ 뭐 이런 거. “아이고~ 복도 많지. 아이가 넷이나 되네.” 당신이 한 번 키워보세요. 얼마나 힘든지. 애 넷 키우면 여자가 자기 구현됩니까?

여자는 50대에 바다를 봐야 되는데 바다는커녕 학고방 들어가 키우기 바쁜데. 무슨 바다를 봐요. 자기 취미생활, 자아실현 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다 빼먹는데. 빨래를 꼽아 가지고.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 빼먹고. 나중에 노인네 돼가지고는 완전히 탁구공처럼 이집에 갔다, 저 집에 갔다, 저 집에서 튕기고, 손녀만 낳아라. 애 봐준다. 월급 받고 돌아다니는 배가 본드, 방랑자 생활하고. 뒤늦게 방랑자 신세 돼가지고. 자식 집에도 못 살고 손자 집에서 살고 이런 경우 많잖아요.

최초가 과거가 있는 게 아니고 최초가 미래에 있는 거예요. 최초가. 그러면 이건 뭐냐 하면 개별에서 뭐를 찾아가는 거다? 개별사실을 통해서 결국 어디로 간다는 말입니까? 보편명제로 가는 거예요. 보편명제. 개별사실로 가면서 보편명제로 가면서 개인은 죽고 집단이 등장하지요. 그 집단이 바로 이스라엘 집단. 하나님 나라 되는 거예요.

그럼 그 가정에 성도는 변신이 되는데 무슨 변신이 됩니까? 개별을 지우고, 개별이 개별의식을 가지고 지우고 집단에 예속되었다. 포함되었다. 라는 그런 소속감을 갖게 되는 겁니다. 소속감. 소속감의 특징은 그 자체가 뭐냐 하면 개인적이 아니고 보편적이에요.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군인들의 특징이 뭐냐, 머리 모양도 똑같고, 복장도 똑같고, 먹는 음식 똑같지요. 그걸 가지고 보편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군인들이.

그러면 성도는 뭐냐, 성도는 가난한 자나, 부자나,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전부 다 그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직 누구만 내세운다? 누구만 자랑한다? 예수 그리스도만 구주됨을 고백하는 분명히 개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입에서 뭐가 나옵니까? 보편적 명제가 튀어나오는 거예요. 세상에. 이런 기적이.

세상에서는 개별적이기 때문에 니는 한 달 수입이 얼마야? 니 그 집 애는 몇이야? 요번에 고3인데 어느 학교에 갈 거야? 전부 다 개별적인 것과 비교하고 대결하는 겁니다. 아, 그건 제가 설교시간에 여러 번 이야기했듯이 왜 경쟁하고 비교합니까? 그것은 인정받기 위해서.

타인이 나를 뭐라 하지 않으면 나는 내가 누군지를 몰라요. 타인이. 옛날 여자들 시집갈 때 새댁이 할 때 제일 먼저 의식되는 것이 뭐냐, 시집식구들, 특히 시어머니나, 시아버지, 시집식구들이 나를 어떤 여자로 봐주느냐에 따라서 그 집에서 내가 행복하냐, 불행하냐 결정되는 거예요.

그럼 그 집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은 그 집의 룰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걸 관습이라 하는데. 내가 아가씨로 살 때는 우리 친정집하고 다른 룰이 있다 말이죠. 그 룰을 따라주는 분량만큼 나는 인정을 받게 되고 그 룰에 어긋나게 되면 나는 밉상 받는 고달픈 매일 아침의 눈을 뜨게 되어있어요. 고달픈 인생을 뜨게 되어있어요. 한 번 밉보이면 아무리 예쁘게 하고 아무리 아침 일찍 밥을 해줘도 밥 꼬라지하고는 너그 집에서 이렇게 배웠나? 신발 벗는 꼬라지하고는 너희 집에서 이리 하지? 우리 집에서는 양반집이라서 우리 집에서는 절대 신발 그렇게 벗어서는 안 돼! 똑바로 배워! 양반집은요, 김 상표입니다. 김. 그냥 김 부스러기에요.

그 말이 다 뭐로 이루어지느냐 하면 언어로 이루어진다 했지요. 언어. 언어로 이루어지거든요. 언어로 이루어지니까 그 시가집의 모든 단어가 언어로 이루어지고 언어는 뭐로 하느냐, 안에 뭐가 담겨있다? 개념이 담겨있고, 그 개념은 의미가 담겨있고, 그 의미의 방향은 뭐냐, 시가집 충성이라는 것으로 전부 다 응축이 되어있거든요. 그러니 이것이 하나의 스크린처럼 막을 형성한다고요.

그럼 어느 아가씨가 결혼했다. 아가씨가 그냥 빈 몸으로 온 게 아닙니다. 자기가 지금껏 30살까지 살아온 시공간이 정신적 시공간이 있을 거예요. 그것이 또 나름대로 자기 언어가 있고, 개념이 있고, 의미가 있고, 그것은 누굴 위하여 그동안 평소에 날 위해 살아왔다 말이죠. 이게 둘이 시집이란 이름으로 같이 사는 거예요. 그저 될 수 있는 대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와 같이 살지 마세요. 방 한 칸 나가던지 해야지, 모신다는 그런 되지도 않는 구차한 핑계대고 자기 종자돈 모으려고 그런 쪽으로 하지 마세요.

왜 아가씨들이 애를 낳으면 시가집 안 맡기고 친정 왜 갑니까? 거기에 내가 살아온 언어 개념 틀이 거기서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둘이 산다면 여기 맞혀야 되는 거예요. 자, 보자. 공통점이 몇 프로 있는가, 이렇게 겹치는 부분이 있으면 겹치는 부분만큼은 숨이 쉴 만 한 거예요.

모든 인간의 만남은 다 그래요. 이 아가씨가 처음에 남자를 만날 때 남자는 자기 집 구석에서 나온 하나의 돌출된 부분이거든요. 나는 내가 있던 살던 여자로서 돌출된 부분이 있다고요. 둘만의 공통점이 많으면 “우리 같이 살까?” 이리 되고, 공통점이 없으면요, “사람은 좋은데 안 맞는 거 같아. 당신 같은 사람은 나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날 거라는 되지도 않는 말도 없는 소리를 해가면서 튕겨버리지요. 튕기기 전에 먼저 튕기잖아요. 자존심 때문에.

공통부분을 모으면 새로운 가정을 하겠다는 기대갖고 하는데 이 공통부분에 세상에 숨어있던 개념이 있을 줄이야 상상도 못했지요. 살아보니까. 숨어있는 부분. 그러니까 이건 남자가 속였는지, 아니면 내가 딴 것을 이야기했음에도 못 알아들었는지. 그걸 놓쳐버렸는지. 막상 살아보니까 다른 요소가 튀어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인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44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7,567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191010a 베드로전서3장 8절(적체와 총체)-이 근호 목사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19-10-13
17,566 자유게시판 강남-요한복음 총정리(2)-요한복음 8장부터 (인간공간 하나님공간)191001b-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9-10-11
17,565 자유게시판 강남-요한복음 총정리(2)-요한복음 8장부터 (인간공간 하나님공간)191001a-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9-10-11
17,564 강의 적체와 총체 191010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19-10-11
열람 ➜ 강의 밭이랑 191010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9-10-11
17,562 자유게시판 10강-호 3장 1-3절(값)191009-이 근호 목사 호세아 최고관리자 19-10-10
17,561 자유게시판 20191004b 울산강의-레위기 24장 : 떡 레위기 최고관리자 19-10-08
17,560 자유게시판 20191004a 울산강의-레위기 24장 : 떡 레위기 최고관리자 19-10-08
17,559 묻고답하기 구제와 선행 - 최고관리자 19-10-08
17,558 자유게시판 44강-엡 5장 1-2절(사랑을 입은자)191006-이 근호 목사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19-10-07
17,557 자유게시판 255강-여호수아 24장 25~28절(증거의 돌) 20191006-이 근호 목사 여호수아 최고관리자 19-10-06
17,556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안 보고 믿은 믿음 / 191006 - 최고관리자 19-10-06
17,555 묻고답하기 온갖 더러운 것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19-10-06
17,554 강의 떡 191004 레위기 최고관리자 19-10-04
17,553 묻고답하기 영화 [조커] 평 - 최고관리자 19-10-04
17,552 자유게시판 안양 모임 안내(10.10.목)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9-10-04
17,551 자유게시판 9강-호 2장 21-23절(하나님의 관심사)191002-이 근호 목사 호세아 최고관리자 19-10-03
17,550 자유게시판 289강-YouTube강의(흐름)20191001-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9-10-02
17,549 자유게시판 288강-YouTube강의(욕심내기)20191001-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9-10-02
17,548 강의 인간공간, 하나님 공간 191001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9-10-01
17,547 강의 유튜브강의(288강, 289강) 욕심내기, 흐름 191001 - 최고관리자 19-10-01
17,546 자유게시판 강남-요한복음 21장 24-25절(어리둥절)190917b-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9-09-30
17,545 자유게시판 강남-요한복음 21장 24-25절(어리둥절)190917a-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9-09-30
17,544 자유게시판 43강-엡 4장 30-32절(성령의인치심)190929-이 근호 목사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19-09-30
17,543 자유게시판 254강-여호수아 24장 23~24절(이방신) 20190929-이 근호 목사 여호수아 최고관리자 19-09-29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