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요한복음 21장 24-25절(어리둥절)190917b-이근호 목사
강남-요한복음 21장 24-25절(어리둥절)190917b-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1장부터 21장까지 정리합니다. 왜 정리해야 되는가? 다 하는데 너무 오래 걸렸어요. 한 4년? 엄청나게 오래 걸려가지고. 2장하면 1장 잊어버리고 3장하면 1,2장 잊어버리고 21장하면 1장부터 20장 다 잊어버리고. 그렇게 해놓고 뭐더라? 요한복음 1장부터 뭐더라? 이렇게 되는 거에요.
요한복음은 죽어서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미리 경험케하는 것이 요한복음입니다. 죽어서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지옥 간 사람이 용서를 경험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죽었다고 경험하는게 아니라 죽어서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살아 생전에 경험케 하는거에요. 요한복음이.
그게 복음이거든요. 복음은 죽으면 만난다는게 복음이 아니고 우리가 죽기 전에 미리 왔거든 미리. 이 요한복음도 복음이지만 우리 속에 들어온 것도 복음이거든요. 살아있는 우리 속에 지금 목 쉬고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 속에 요한복음이 통째로 들어와버리면 이거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내 믿음은 소용이 없어요.
내 믿음 말고 죽어서도 경험 못할 왜 지옥 갔는데 무슨 영생을 경험하겠어. 베드로가 어떻게 경험하겠어요 그 처소를. 베드로 목숨 바쳐도 안 받지요. 왜? 죽어도 경험 못하는게 처소에요. 처소를 성령이 와서 주잖아요. 처소가 있다고. 죽어서도 만나지 못할 그 처소, 그 모든 것을 미리 앞당겨서 제공하는 것이 요한복음이에요. 당겨서 제공하는 것이.
이걸 간단하게 이야기하게 되면 뭐냐 하면 미리 주와 함께에요. ‘미리 주와 함께’. 미리 주와 함께 미리. 미리 입니다. 죽어서 골라잡는게 아니고 미리 주께서 함께 하는 거에요. 방법은 아까 무슨 방법? 삭제. 뭐를 삭제한다. 주님의 가치 앞에 말씀의 가치 앞에 뭘 삭제한다? 나의 믿음 소망 다 없애버리는 겁니다.
이걸 하게 되면 죽어서도 경험한 것을 미리 경험케 한다 라고 할 때에 내 쪽에서 움직일까요? 아니 네 쪽에서 움직이지마. 주님 쪽에서 움직여요. 그게 말씀이 뭐가 되었어요? 육신이 된 겁니다. 말씀이 육신이 된 거에요. 너 힘들어? 너만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렇게 되지요.
네가 힘든 세상에서 나도 힘들다. 네가 뭔가 환경에서 네가 당한다고? 그거 나도 같이 당했잖아. 왜 또 징징거려. 나도 당했어. 너만 알아? 나도 알아. 네가 어떻게 당했는지 나도 안다고. 요한복음 1장 읽어봅시다. 시간관계상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했잖아요.
자녀는 없는 거에요. 누군가 오지 않으면 자녀라는게 없어요. 아들 없어요. 누군가 오지 아니하면. 죽어서도 경험하지 않는 것이 미리 오지 아니하면 자녀가 없어요. 내가 나를 자녀 되게 하는게 아니고 나라는 자녀가 없어요. 그분이 와야 자녀가 생겨요. 그걸 나라고 우기지 마세요. 주님이 오실 때 그 파생상품으로 자녀가 생기는 겁니다.
사도는 없어요. 제자가 뭐된다? 사도되는 거에요. 목격자 사도라는 목격자. 목격자는 없는데 제자가 목격자 되는 거에요. 우리는 아들 아니에요. 믿음이 있어야 아들이지. 믿음도 없고 아들도 아닌데 주께서 아들 되게 하신거에요. 그러면 나라는 것은 삭제되는 거에요. 이해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은 기존에 있는 나를 주께서 아들 되게 하면서 기존의 아들 아닌 나를 삭제시킨다니까요 삭제.
삭제하는게 뭐냐 하면 너는 배신자야 나 피해서 도망갈 인간이야. 베드로 봤지? 그게 너의 모습이야. 그게 네 모습이다. 내 뜻대로 안된다고 삭제해버리는 것. 그 상처. 그만큼 우리가 고집이 세잖아요. 우리가 한 고집 하거든요. 없애버립니다.
요한복음 4장 봅시다. 1장부터 차례대로 하는게 아니고 그냥 건너뜁니다. 4장에 보면 16절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이렇게 하니까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이렇게 되어 있지요? 남편이 없지요?
남편이 없으면서 자, 남편이 없는 여자가 자기 입으로 남편이 없다고 했으니까 그러면 이 여자에게서 그 다음 나올 말을 누구한테 하느냐 하면 예수님이 대신해버리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라” 했지요. 이게 뭐냐 하면 횡이에요.
인간은 수평적으로 변심과 이동 밖에 할 줄 몰라요. 남편 하나 있었는데 둘 있었는데 지금 세번째. 수평적 이동. 그게 인간이 기껏하는 변심이에요. 팔자 고치기 이런거거든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걸 안다고 이야기한거에요. 안다. 누구보고? 사마리아 여인보고 안다고 했지요. 이 안다를 사마리아 여인 속에다가 이걸 박아넣어버려요. 이 안다를.
그전까지는 뭐냐? 이건 나만 알 걸 이렇게 하지요. 이건 나만 아는 비밀일걸. 아니야. 알아. 왜냐하면 알고 싶지도 않은 어떤 부끄러운 것 그것까지도 주께서 먼저 "5명이지?" "어? 아무한테도 이야기 안했는데." 그걸 미리 그러니까 기초공사할 때 미리 철근을 박아 넣었잖아요.
박아 넣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앞으로 새남편에게 잘할께요 라는 말이 필요치 않은 거에요. 왜냐하면 새로운 6번째 남편한테 잘할게요 이건 필요 없어요. 그 남편하고는 안 헤어지고 잘 살게요 라는 것은 기껏 횡에서 횡으로 변심하는 것밖에 안되니까. 그러한 변심들은 더 이상 나한테는 의미 없는 거에요.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이 의미 없는 거에요. 우리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겼던 것으로 경험할 수 없는 철근이 안에 박혀버린 거에요. 이게 요한복음 4장입니다. 네가 예상치도 못하고 경험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을 그것도 그냥 아니고 미리 천국생활은 미리 해야 돼요. 미리 박아버린 거에요.
그럼 내 인생은 뭐냐 하면 내가 경험하지도 않는 일들이 일어나는거에요. 경험하지 않는 일이. 그러면 그 철심이 있어 버리면 그러면 이 사마리아 여자가 나는 남편 6번째다 그걸 자랑하겠습니까 아니면 나는 메시아 만났다를 자랑하겠어요? 어느 쪽입니까? 그게 오늘 요한복음 21장 본문 아닙니까. 예수를 증거한다.
오늘 본문하고 딱 맞잖아요. 마지막과 처음이 딱 맞아 떨어지잖아요. 삭제시키는 거에요. 남자가 5이든 6이든 12도 관계 없어요. 12은 좀 심했나. 관계 없어요. 그냥 삭제시키고 박힌 철근이 뭐였는가? 죽어서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미리 경험케 하는 것. 철근이 들어온다는 것. 철근 들어온다. 결과물이죠.
살고 싶다가 아니라 살고 싶다는 내 요청은 완전히 묵살되고 그냥 사는 거에요. 주께서 철근 심지를 심은 심지 채로 그냥 사는 거라니까요. 만약에 우리가 살고 싶다고 한다면 불안감이 생기죠. 정신병이죠.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서 온갖 착한 짓은 다 할 거에요. 변명도 다 할 것이고. 여러분 그 불안감을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감당 못합니다.
여러분 얼굴 어두워져요. 제가 그런 설교 했지요. 어두운 얼굴 가지고 교회 올 권한 없다고요. 지난 수요일에 했다. 어두운 얼굴을 하고 교회 올 권리가 없어요 우리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교회에 올 그러한 권한이 없어요. 뭐 수심 인삼 잡수셨어요? 수심 있게. 참 우리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몰라요. 우리는 슬퍼할 권한이 없다니까요. 뭐 잘났다고 슬퍼해요.
류현진이 공을 못 던져서.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래. 그걸 왜 슬퍼합니까? 독도 심어 놨어요? 마음 속에? 주님이 미리 심어놨는데 그걸로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그걸 자랑해야지 왜 5번째 남자가 괴롭혀요. 왜 그걸로 슬퍼하느냐 말이죠. 남자 5명 없지. 그런 경험 안 해봤구나.
자, 요한복음 2장 봅시다. 요한복음 2장에 결혼식. 연회장입니다. 연회장에 물 6동이를 해라 이 말이죠. 물을 아궁이 있는데 제가 또 가봤다는 이야기 굳이 해야 됩니까? 사진찍었다는 이야기를 우리 교회에 올렸다는 이야기를 굳이 해야 됩니까? 6동이를 했어요. 누가 봐도 이건 뭐냐? 물이에요. 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어머니가 요청한게 뭐냐 하면 물이 아니에요. 포도주죠. 그렇죠? 간단히 이야기해요. 자, 포도주를 누가 원했다? 마리아가 원했지요. 마리아가 원했지요? 그러면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서 포도주 언급한 마리아는 제거되겠어요? 제거 안 되겠어요? 아까 원칙에 의하면 삭제 대상이죠? 이거 명분 이거 없어져야 돼요.
마리아가 왜 포도주를 원합니까? 손님은 밀려오지요. 주최측에서 포도주 없다하면 얼마나 삐지겠습니까? 이거 잔치도 아닌게 포도주 떨어지고 이게 뭐야 이렇게 되겠지요. 그럼 명분이 뭡니까? 명분은 나의 정신병을 가리기 위한 상상이에요. 야 이집에 다른건 몰라도 포도주 하나는 맛있다라는 것을 누가 기대합니까? 내가 기대를 해요.
왜? 그래야 내가 가치가 높아지니까. 아까 했지요. 나의 가치는 무엇을 가린다? 말씀의 가치를 가리죠. 그러면 반대로 주님의 말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누굴 제거합니까? 너는 이것밖에 안돼. 제거해야 되겠지요? 예수님 뭐라고 섭섭한 이야기를 해요? 섭섭한 이야기해보세요. 무슨 섭섭한 이야기했습니까?
여자여 당신의 요구조건과 나와 무슨 상관있습니까? 애가 수학 문제 못 푸는 거하고 집에 부도난 것하고 무슨 관계있어요? 내 잘못한 것하고 주님의 십자가하고 무슨 관계있습니까? 관계없어요. 내 명분 때문에 죽으신 거에요. 내 명분.
교묘하게 나의 헛점을 가리는 내 의 때문에 돌아가신 거에요. 내 의 반대말이 죄잖아요. 내 죄 때문에 돌아가신게 아니고 내 의 때문에 돌아가신 거에요. 그 의를 죄라고 하는거에요.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 믿는 것 때문에 돌아가신 거에요. 안 믿어서 돌아가신게 아니고. 우리는 안중근이거든. 자기 잘난 체 한다고.
이런 나를 하늘나라에서 알아주기를 바라잖아요. 이게 명분이잖아요. 나라 잘되면 나 잘된다. 주님한테 잘 보이면 나 구원되겠지. 이게 바로 죄에요. 이거는 내가 믿는 결과물이 내 결과물이 돼요. 이건 나 증인되는 것이지 요한복음 마지막에 주님 증거되는 거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누가 참되요? 예수 믿게 되면 내가 참돼. 이건 미친 짓이에요. 이거는.
예수 믿는게 아니고 예수님을 욕보이는 거죠. 내가 인생 살면서 헛점을 내 믿음으로 치료하겠다는거에요. 내가 나를 치료하겠다는거에요. 쥐어박고 싶어. 지옥에나 가거라. 왜 우리 치료가 안되느냐 하면 경험한 것 가지고 나를 치료하기 때문에.
미처 살아있을 때 경험한 그것 가지고 나를 치료하려고 하기 때문에. 내 기억가지고 나를 회복시키려고 만회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한테 서운한 이야기 들어야 됩니다. 여자여 그것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포도주 없습니다. 주님이 안 들어줍니다. 이런 포도주 없어요. 끝났어요 이제.
그러면 마리아의 포도주가 의미하는 것은 뭐냐 하면 너는 포도주를 달라고 하지만 기껏 뭐 밖에 안된다? 이거는 물 밖에 안된다. 물밖에 안돼요. 인간이 기껏 요청해봐야 이거는 물 밖에 안돼요. 그러면 물에서 포도주 될 가능성은 없지요. 주님도 그런거 안 들어주고.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했고 물에서 포도주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믿음은 믿음 없음에서 믿음 있는 경우는 없어요. 없어요. 그럼 있는 것은 누구밖에 없습니까? 예? 누구밖에 없어요? 오직 있는 것은 예수님밖에 없지요. 예수님에게서 뭐가 나옵니까? 포도주가 나오는 거에요. 신자는 예수님만 보여야 돼요. 왜? 나는 삭제당했으니까.
주님 때문에 내가 이렇게 존재하는 거에요. 없어도 되는데 오늘도 없어도 되는데 주님 때문에 오늘 이런 일이 생긴 거에요. 주님 때문에. 이거 정말 미친 거 아니에요? 이런 신앙은 정말 이거는 성령 아니면 모릅니다. 이 이야기 몰라요. 뭐 30년 믿었습니다 50년 교회 다녔습니다 그 소리하지 마세요. 그건 소용없어요. 주님 때문에 있는 거에요. 주님 때문에 있어요.
그러면 나를 있다고 해야 됩니까 있음을 주님한테 붙여야 돼요? 주님 계심에 나는 없는데 주님 계심의 증인으로서만 있는 거에요. 왜? 나는 인간일 뿐이니까. 나는 없는 존재니까. 없는 존재인데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 사명을 위해서 나는 없는 존재가 주님 입장에서 볼 때 있는 존재가 된다 이 말입니다.
그게 바로 제자가 아니라 사도에요. 사도는 지난 시간에 했듯이 베드로가 네가 원치 않는 죽음을 죽게 될 것이다. 네 죽음을 통해서 나 있음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이게 사도의 가는 운명입니다. 내 상처가 있더라도 주님 상처가 덧입어 버리면 이제는 내 상처가 아니고 누구의 상처냐. 주님의 상처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운반체. 아 십자가 때문에 존재하고 십자가 때문에 나는 이미 천국 생활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주님만 계시는 거에요. 그게 주님 나라니까.
우리는 그분의 이미지로서 찬양하지요. 원래 천사한테는 존재라는 말을 하면 안돼요. 천사한테는 뭐냐 기묘자라고 해요 기묘자. 분명히 있는데 없고 없는데 있고. 만지면 없는 것. 참 희한하죠. 요한복음 20장에도 나오지요. 예수님 보고 만지려고 하니까 만지지 말라고 하지요. 있다는 자는 만질 수 없고 없다는 자만 만질 수 있는 것. 그겁니다. 녹취하면 희한하겠다. 목사님이 날리는데 쭉쭉쭉 수제비 날리듯이 모르겠어요 하여튼 저는 이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 포도주는 마리아가 요청해서 나온게 아니고 예수님의 자기 증거하기 위해서 나온거에요. 그래서 뭐냐 하면 이걸 가지고 기적이라고 하지 않고 이걸 표적이라고 하는 겁니다. 표적은 나중에 해답이 나오는걸 표적이라고 해요. 남들 보기에는 기적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들어간 내용은 주께서 나중에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 할 때 그것과 연계하면 비로소 의미가 나타나는 그것, 그게 바로 표적이거든요.
그런데 한국교회가 기적을 원해요. 기적은 마귀가 줘요. 왜? 그래야 내가 혜택 입으니까. 하나님한테 챙길거 챙겼으니까. 그런데 표적은 뭐냐? 표적은 삭제거든요. 너는 너 때문에 사는게 아니라 나 때문에 있다는걸 보여줄 때 아 내가 여기 있음에 내가 오늘 사는 하루에 내탓하면 돼요? 안돼요? 왜 자기 탓합니까? 자기 탓하면 안되지요.
지난주 이발하니까 여러 군데서 이발이 뭐 잘못됐다 이게 왜 내 탓입니까? 내가 깎았습니까? 우리는 하루 살면서 하루 어떤 일과도 자책하지 마세요. 그거는 시건방진 거에요. 그 미친 거에요. 왜 발걸음을 왜 자기가 지탄합니까. 어디 뭐 주님이 내 솜씨 받아요? 안 받아요.
1장에서는 누가 왔다는 것. 누가 오심으로 아들 됐다는데 그 아들은 내가 아니고 아들되게 난 있고 내가 나 되고 싶은 것은 삭제당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예수 믿어도 죽어요. 그 점에 대해서 요한복음 3장 봅시다. 3장 30절 제가 읽어볼테니까 맞는가 보세요. 그는 흥해야 되고 제가 읽어볼테니까 맞는가 보세요. 그는 흥해야 되고 나도 같이 흥해야 되고 맞아요 틀려요? 아니죠.
그는 흥해야 되고 나는 뭐해야 되고? 쇠하여야 되고. 그게 뭐냐 하면 앞에 카드가 없어져야 뒤에 카드가 나오니까. 이걸 가지고 선지자. 이게 선지자에요. 선지자의 그 모든 행동은 뒤에 오시는 분이에요. 자기가 주인공이 아니고 오시는 분이에요. 세례 요한은 오시는 분이고 지금 우리는 성령이니까 함께 계시는 분이고, 같은 말이에요. 함께 계시는 분이고 세례 요한은 뒤에 오시는 분.
그런데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나보다 앞섰다 하니까 이걸 누가 논리가 맞습니까?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나보다 앞서 있다. 나보다 뒤에 태어난 분이 나보다 앞서서 계신 분이라고 말을 하는 거에요. 뭐 시합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선문선답이죠. 내 뒤에 계시는 분이에요. 다시 말해서 너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한다. 그게 세례 요한도 경험했고.
요한복음 3장 27절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맹탕이다. 우리는 원래 맹탕이에요. 맹탕이 부끄러우니까 상상하는거에요. 예수 믿고 천당간다고. 그거 맹탕이에요. 그거는 무엇이 없어요? 무엇이 누락됐어요? 내가 죽어야 된다는게 누락되어 있지요. “나는 마땅히 지옥가야 돼”가 누락되어 있잖아요.
그거는 복음이 아닙니다. 그거는 예수 믿는 자기 자신을 증인이기 때문에 요한복음과 다른 노선이에요. 지옥 갈 노선이에요. 천국 갈 노선이 아니에요. 제가 또 이렇게 강의하고 녹취하고 다 올려놓으면 결국 또 나오는 질문이 목사님 그럼 우리는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내가 공사장 인부도 아니고 내가 철심을 내가 철심이 있어야 박지. 없는데. 성령 주시는 분이 박지 내가 박습니까? 나는 그냥 증인인데. 그럼 나는 못한다 밖에 할 수 없지요. 못하면 당신은 왜 하느냐. 나는 죽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못한다 하면서 지금 죽어가고 있어요 저는. 언제 죽을지 몰라요. 그래서 죽잖아 그래. 쓸모없다고 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