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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양20190919a야5장13절(말씀의 매트릭스) - 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야고보서

안양20190919a야5장13절(말씀의 매트릭스) - 이 근호 목사

야고보서5장13절이요,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이리 되어있지요. 여기 즐거워 한다의 반대말은 뭐라고 되어있지요? 고난이라 되어있어요. 그러면 야고보서 입장에서의 어떤 경우를 고난이라고 하느냐 하면 신체적이 불편함을 느낄 때 고난이라고 하는 거예요. 야고보서에서. 신체적으로. 상당히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지요. 추상적으로 정신이 어떠냐 그런 거 생각 안하고 현실적으로 몸이 아프면 고난이고, 편하면 즐거움이고.

상당히 실질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할 때, 그것은 무엇을 전제로 하느냐 하면 야고보서에서는 우리의 몸은 우리 것이 아니고, 그냥 알다시피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잖아요. 그거 말고.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이라 할 때에 그걸 달리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야고보서에서는 뭐냐 하면, 내 몸은 누구의 것이다? ‘내 것 아니고 주님의 것이다.’ 라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요, 소유가 아니라, ‘주님의 것이다가 아니고 주님이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는 겁니다. 차이점 아시겠어요? 차이점을. 내 것이 아닌 내 소유가 아닌 사용하는 것.

평소에 나는 내 것이다. 라는 말을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해서 ‘내 몸이 나를 위해서 꾸준히 사용해 왔다.’ 라는 것을 평소에 인간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이 말이지요. 그럼 사용하게 되면 내 몸이 내 것으로 사용한다면 여기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고난 나오고, 기쁨이 나오는 겁니다. 기뻐할 때는 뭐냐 하면 바로 찬송하겠지요. 기분 좋으니까 노래한다 말이에요. 슬퍼할 때는 뭐하느냐 하면 기도하겠지요.

그런데 여기 기도하고 기뻐한다는 것은 전부 다 결국은 누구 좋아라하는 거예요? 내가 사용한다는 조건하에 나는 슬프면 안 되고 병나면 안 되고 아프면 안 되고 나는 안 아파야 된다. 늘 기뻐해야 된다. 이러한 논리가 성립되겠지요. 상당히 욕심쟁이 같아. 야고보서에서 그렇게 이야기한 욕심.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는데 꾸준히 욕심을 이런 식으로 하면 욕심을 부리는 거거든요.

그러면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러면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았으니까 그러면 욕심을 안내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거죠. 내가 욕심을 내지 않으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데 욕심 안내는 나, 그것도 누굴 위함이에요? 나를 위함이지요. 그러니까 이 야고보를 아무리 봐도 인간은 야고보서1장 말씀처럼 하늘에서 은사를 주지 아니하면 자꾸 자기 위함에서 벗어나지를 않아요.

그러면 여기서 건너가면 되지 않겠느냐, 어디로? 나를 사용하는 게 주께서 사용하는 것으로 건너가면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하지요. 당연한 거잖아요. 그죠. 주께서 사용하시는 걸로 건너간다. 건너가는데 건너가는 방법이 없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 주님을 위하여, 주님을 위해서 나를 사용하자, 아무리, 아무리 해도 그게 또 하나의 나만을 위한 일이 되는 겁니다.

특히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하겠다, 하는데 막상 마음은 그렇게 가져도 육신에 병이 오고 아파지게 되면 싹 무슨 마음이 가시느냐 하면 주님 챙기기보다 우선 내 몸 챙기는 게 급하다, 라는 마음으로 다시 원상복귀가 탁 되어버려요. 금방 되어버려요. 교회를 40년 다니고 50년 다니고 아무리 해도 이상하게 내 쪽에서 주님으로 건너간 적이 없는 괜히 내가 열심히 설쳤는데 전혀 내 몸은 나에게서 떠날 생각이 없네. 열심히 설쳤는데.

자식이 애먹이니까 “야, 이제 넌 내 자식 아니다. 결혼하면 남남이다.” 백날해도 자식들은 그 부모가 하는 이야기가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 걸 자식들이 다 압니다. “두 번 다시 내 니 안 본다. 이렇게 손자 키우는 게 힘들 것 같으면 10년 키워줬으면 그만 키우게 해라.” 라고 한들 “또 봐줄게.” 쫓아가서 기회가 있으면 봐줄게. 내 자식은 내리 사랑인데 그래 내가 아니면 누가 해줘? 이런 식으로. 그렇게 되지요.

이상하게 자아라는 굴레에서 뭔가 지남철이 있는지. 안 그러면 쥐 잡는 찐드기가 발렸는지. 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떠날 수가 없어요. 야고보서에서 그런 것을 구박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말씀으로 우리에게 압박을 해왔잖아요. 율법을 다 지키지 않으면 하나를 어기면 그건 죄인이다. 이렇게 야고보서2장10절에서 그렇게 이야기했지요. 누구든지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면 다시 말해서 하나를 어기면 그건 온전히 지킨 게 못된다. 따라서 못 지키면 저주 받아 마땅하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고요. 그리고 그것도 안 먹힌다면 야고보서4장에서 사람이 뭘 하겠다는 자체가 이게 죄다. 차라리 주께서 허락하시면 이것저것도 한다. 이 말입니다.

제가 분명히 야고보서4장 안개 이야기할 때 주께서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제가 분명히 한 거 같아요. 그런데 오늘에서 이야기한 차이점이 뭐냐 하면 내 것이 아니고 주께서 사용한다니까요. 주의 것이다, 가 아니에요. 주께서 사용하시는 거예요. 주의 것이라고 되면 어떤 오류에 빠지느냐 하면 “내 몸은 내 몸이 아니고 주의 것이니까 내가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지.” 이리 되어버린다니까요.

취지는 받아놓고 취지에 대한 실제적으로 취지를 성취하는 것은 누구한테 달렸다? 역시 내 솜씨에 달렸다는 식으로 정리가 되어버린다는 말이죠. 기존 교회처럼 그리 되어버려요. 알아. 내 몸 주께서 창조했고 주의 것이라는 거 알아. 그러면 그냥 손 놓고 놀 수는 없잖아. 뭔가 꼼지락거리며 해야지. 영광을 위해서. 성경에 명령이 많으니까. 그래. 내 몸은 내 꺼 아니야. 주의 명령이 있으니까 주의 명대로 했어. 뭐가 나빠? 이리 된다고요. 뭐가 나쁜 거예요? 주께서 쓰셔야 될 것을 자기의 어떤 명령을 받았다고 본인이 여전히 본인을 쓰겠다는 그러한 의지를 포기하지 못한 거죠. 벗어나지를 못해요.

인간이 자기 몸을 자기가 사용해 버리면 어디에 저촉을 받느냐 하면 몸이 불편할 때 짜증내고 몸이 건강하면 아주 신이 나요. 컨디션 괜찮으면 주의 영광을 위해서 찬송가 열 번이고 메들리로 막 부르다가 몸 아프면 ‘아이고, 뭐 찬송가고 다 귀찮고 나훈아의 홍시나 부를까.’ 홍시가 열리면..., 막 이 노래가 아주 저도 편안히 나오잖아요. 편하게 막 노래가 나오는 거예요.

평생 동안 교회 봉사한 권사님도 몸이 아프니까 몸이 불편하니까 찬송가는 그만! 하지 마! 교회에서 위로한답시고 신방 와서 찬송하지 마. 나는 나 훈아 듣는다. 실제상황입니다. 제가 겪었거든요. 제가 겪었다니까요. 권사님이 찬송가 듣기 싫어해요.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까 그 돌보는 따님이 하는 말이 권사님 어머님이 유행가를 좋아한데요. 처음부터 유행가가 좋아요. 좋은데, 이렇게 가리기 위해서 찬송가로 한 50년은 가렸어요. 그런데 치매 걸리니까 “저리가!” 발로 차버리고 역시 유행가가 딱 맞아. 몸에 맞춤 가락이에요. 몸에 맞춤 가락. 뭐예요? 그동안 믿는 척 그럴싸한 게 다 날아가 버렸죠. 없지요.

그래서 제일 먼저 이야기한 것은 뭡니까? 주의 것이다가 아니고 주께서 사용하시는 거예요. 주께서 사용하시는 겁니다. 자, 그렇게 되면 기쁨과 고난을 내가 어떻게 해볼까를 두 가지를 어디로 가져오느냐 하면 주께서 사용한 걸로 가져오면 돼요. 그러면 여기서 몸이 아플 때에 고난이라 하지요. 몸이 아플 때 고난인 거예요. 이 고난은 뭐냐, 주께서 사용하시면서 몸이 아픈 거예요. 이제 야고보서5장 그 뒤에 말씀. 초장에 완벽하게 해석됐지요.

누구든지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해가지고 기도하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라. 그것도 그냥 이름이 아니고 주의 이름으로. 주의 이름으로 기름 바르고, 되어있지요. 자, 이런 이야기할 때 여러분들이 지금 믿음도 좋고 머리도 좋으니까 내가 한 취지를 이해하실 거예요. 어떤 취지냐 하면 내 것 아니고 주의 것. 이거 1번 내가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사용한다. 이걸 2번으로 한다면 1번 의식을 가지고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느냐 하면 교회에서 병들어서 누가 아픈 사람이 있다 하면 주일날 예배 마치고 장로님 죽 해가지고 나가가지고 야고보서 5장 13절, 14절 말씀처럼 기름은 없으니까 참기름 할까요? 아니면 무슨 기름할까요?

기름은 없으니까 기름은 생략하고, 주님이름으로 목사님 필두로 해가지고 여전도사 한복 입은 여전도사 해가지고 장로들 가가지고 병든 자를 기도하면서 나중에 다음 주 광고시간에 야고보서5장13절, 14절대로 했으니까 우리 교회는 참된 교회입니다. 말씀대로 하는 교회입니다. 라고 떠버리게 되겠지요.

그럴 때 교인들은 야고보서5장13절 보니까, 어? 맞네. 너희 중에 병자가 있을 때에 교회 장로들을, 야~ 이 장로님들이 기도하는 꼴이나 보니까 영 장로 같지도 않고 평소에 말하는 태도나 품새 보니까 영 장로인지 몰랐는데, 아 그래도 교회가 장로가 꼭 필요하네. 교회가 장로가 필요하다는 말은 그 장로 건드리면 누구한테 벌 받을 수 있다? 주님한테 벌 받을 수 있어. 장로 하는 꼬락서니 보니 밉지만 그 교회가 장로가 있어가지고 이렇게 하게 하니까 그럼 나는 이 교회 속에 있으니까 나는 죽으면 어디 간다? 천당 가는구나! 아, 교회 등록해서 천당 가는 구나! 왠지 안심이 되지요. 논리가 죽죽 걸어가는 거예요.

장로가 좋은 게 아니에요. 우리교회 장로는 오후 예배마치고 심방 가서 야고보서5장13절, 14절하니까 우리교회는 진짜 교회고, 나는 진짜 교회에 등록했으니까 진짜 구원받는 사람이고. 그러면 안 믿는 남편이나 구슬려가지고 안 믿는 친구 같으면 돈을 줘서라도 또 구슬려가지고 앉히면 간단하지요. 벽돌하나가지고 저쪽은 지옥이고, 벽돌 속에 들어오면 천당 가는 거고. 안 들어오려 하면 마구 잡아당겨가지고 경계선, 휴전선도 아니고 DMZ도 아니고 들어오면 앉았으니까 “주여, 감사합니다. 구원받았습니다.” 이리 되고.

그럼 목사가 그걸 낌새를 보고 “여기 처음 온 사람 손들어 보세요. 앞으로 나오세요.” 그러면 한 번 머뭇거리면서 나오면서 손들면 인제 등록하면 구원받는 거예요. 거기다가 확실하게 꽂아주는 것은 성만찬. 이 떡을 먹고 이 살을 먹은 자는 이미 하늘나라 생명책에 등록됐습니다. 마치 절에 가서 기왓장 하나 얹으면 그 사람 이미 극락에 이름이 있는 것처럼. 엄마가 대신해서 절에 가고 자식이 열 명 같으면 절에 대표로 가고 이름은 전부 다 자식 이름을 다 올려버리면 나중에 다 극락 가는 그러한 아주 손쉬운 정책적 방식이 경제적 방식이 있잖아요.

지금 제 이야기가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게 아니에요. 이건 지금 교회가 다해요. 이런 식으로. 목자가 앞장서서 장로 데리고 오후예배 마치고 지도 피곤한 줄 알지만 가가지고 한 번 갔다 와야 하얀 봉투 나올 수도 있고. 그래서 한 번 갔다 오는 거예요. 왜냐하면 성경대로 하는 교회가 지금 여러분들이 다니는 교회니까 안심 푹 놓고 다니시면 여러분 천국 보장됩니다. 천국 가는 유일한 여행사. 그것도 저가 여행사. 대한항공 이런 거 말고. 개척교회 저가한 거. 그게 왜 잘못됐는가, 1번 노선입니다. 1번 노선. 죄송합니다. 10분 일찍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늦게 오시면 또 해드리는 리필 하듯이. 많이 들었다고 아는 거 아니에요. 다 잊어버렸어요. 이 분들도.

다시 합니다. 야고보서5장13,14절에 보면 여기에 고난당한 자는 기도할 것이고, 즐거워하는 자는 찬송하라 했지요. 이 말 딱 듣고 그 다음에 14절에 보면 고난이야기 나오잖아요. 여기서 나온 고난이라는 것은 육체적 고난인데, 그게 여기서 대표적으로 뭡니까? 병든 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병들은 거. 병들은 거 이야기할 때에 병 들 때, 그냥 교회가 가만히 있으면 되지 않고 교회 장로들을 초청해가지고, 그럼 장로들인 멀쩡하게 구경하면 안 되지요. 그저 뭐 박카스 하나 사들고 베지밀만 들고 가면 되는 게 아니고 뭘 하랍니까?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준비했다가 기름을 준비해서 그 아픈데 바르고 기도하라 돼있거든요.

그럼 15절 봅시다. 믿음의 기도는 뭡니까? 병든 자를 구원하지요. 제가 지금 거기까지 설명한 거예요. 그러니까 하라, 하라, 되어있으니까 우리가 만약에 진짜 교회라면 말씀대로 할 필요가 있고 그 말씀은 야고보서5장13,14,15에 아주 구체적으로 나와 있으니까 아마 그런 교회 같으면 교회 누구 아프기를 기다릴 거예요. 목사님 교회는 누구 아픈 사람 없어요? 이 폼을 한 번 내야 되는데. 아프기를 기다려요. 아파서 장로는 없지만 장로인 사람 데려 가가지고 장로 대솔해가지고 집사님네 가가지고 다 아는 분들이니까 미리 연습 실습하는 걸로 계약직으로 해가지고 데려 가가지고 기름은 없지만. 기름 없잖아요. 기름 없고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게 되면 곧 기도하고 난 뒤에 이젠 기다려야 될 필요가 있지요.

기다리면 벌써 심방간지 한 나흘 되어가지고 목사님이 두근 두근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요. “집사님, 어떤 차도가 있습니까?” “차도 있어요. 장로님 모시고 주의 이름으로 기도한 덕분에 나은 거 같아요.” 라고 했을 때, 나머지 그 교회 교인들은 바로 야고보서5장 15절이 이게 현재화 되었다는 감격을 누리고 있습니다.

특히 아픈 사람이 나았을 때 그들의 기쁨은 배가가 아니고 3배 4배 돼요. 왜냐하면 돈 없이 나았으니까. 장로 초청보다 장로 초청해서 커피만 끓여주면 그만이지만 병원에 가면 아무래도 돈 들잖아요. 아프기만 하면 이제 장로 초청하는 거예요. 장로들은 교회 차 몰고 올 거니까 지 기름 안내도 되니까. 나중에 감사의 예의로 헌금 한 몇 만원 넣으면 되니까.

결국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돈 때문입니다. 돈. 돈 때문이지요. 인간은 돈이 기본이에요. 그걸 야고보서에서는 뭐냐 하면 세상과 짝하는 것은 하나님과 뭐가 돼요? 원수가 되지요. 그래서 이 야고보서5장을 보면서 먼저 전제가 뭐냐, “하나님의 원수라는 거 너희가 알지? 그지? 그리고 욕심이 잉태하여 죄가 되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 낳는 거 너희들이 다 알지?” 라는 전제가 야고보서5장 오기 전에 이미 1장, 2장, 3장, 4장 다 한 거예요.

“니 안개인 걸 알지? 그리고 2장에서 모든 율법을 50%지켰습니다. 이런 소리 하지 마라. 하나를 어기면 다 어긴 게 되고 어기게 되면 거기에 대한 저주와 형벌은 니 각오했지?” 그걸 전제로 하고 이 말씀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이 말씀을 하면서 그냥 교회에서 흉내 낼 수 있는 그 차원이 아니에요.

첫 번째는 뭐냐 하면 교회냐, 그 교회가 오늘날 교회가 교회냐, 하는 문제. 두 번째 주의 이름을 외칠 수 있는 자격이 되느냐 하는 그 문제. 그 다음에 세 번째 기름이 없다는 사실이에요. 참기름 바를 것도 아니고 기름이 없잖아요. 네 번째 만약에 병이 안 나았을 경우에의 문제에요. 만약에 우르르 가가지고 감기 같은 거야 주의 이름으로 하면 나을 수가 있어요. 그거 뭐 판콜A 하나 먹으면 자고 나면 다 낫는 거. 그거 말고 췌장암 4기 이런 거 있잖아요. 간암, 위암 말기 그 때 우르르 가가지고 그 때는 또 쪽수를 늘려야 돼.

장로가 한 둘이 가는 게 아니고 장로 총동원해가지고 그것도 기도도 10분씩 돌아가며 기도했다 칩시다. 심방 갔다 온지 이틀 만에 죽어버리면 어떻게 돼요? 부도나잖아요. 부도. 부도나면 결국 그건 뭐냐 하면 그 망하는 장로가 있던 그 교회는 교회가 아닐 수가 있다. 가 되겠지요. 그 수습을 어떻게 하려고요. 병 안 나으면 수습 어떻게 하려고요? 여기에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나니 그 다음에 16절에 보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했지요.

그러면 교인들마다 성만찬 참석한 사람은 자신들이 예수 믿고 의인이라고 다 자부한 사람이죠. 그 자부하는 사람 열 명이 가가지고 그것도 빡시게 주의 이름으로 기도했는데 췌장암4기가 안 낫드라. 낫기는 커녕 오히려 무엇에 정신이 산란했는지 갑자기 병세가 더 악화가 되어가지고 일주일 살 걸 심방 갔다 온지 2시간 만에 죽어버렸어요. 죽었을 경우에 앞으로 그 대책 어떻게 할 거예요? 그거 어떻게 해명할 거예요? 그 목사 어떻게 할 겁니까? “그건 간 장로가 알지 나는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이럴라고요? 그럼 오촌 조카가 알고 내 아내는 알지 나는 모른다. 그런 식으로 빼려고요? 그럼 본인이 참석했다면. 그 병든 말기에 참석했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여기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 없어요. 하기는 해요. 한 100번 하면 혹시나 한 번은 될까 싶어서. 그러면 백번마다 한 번 됐으니까 실패는 몇 번 했습니까? 99번 실패했잖아요. 99번 실패했다가 한 번 한 것은 된 거예요? 그거 소 뒷다리로 쥐 잡는 식으로 그게 됐다고 할 수 있습니까? 99번 실패했는데. 저울한 번 달아볼까요. 99번 실패하고 1번하고. 수학문제 100문제 가운데 1문제 맞춘 게 그게 수학 잘하는 겁니까? 아니잖아요. 100번을 맞춰야 되지 않습니까. 주의 말씀인데. 그럼 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 교회나 그 목사나 뭘 부각시킵니까? 한 번 된 것 가지고 완전히 치유 전문교회가 되어버려요. 병 고침 전문교회. 치유 전문교회가 된다고요. 그런 것을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보면서 왜 그동안 의문점도 없고 입을 왜 다물고 있었어요? 그 이유가 뭐냐, 아예 야고보서5장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요. 몰랐기 때문에 그래요. 그만큼 야고보서5장을 보더라도 “뭐, 딴 게 더 중요한데, 병 고치는 게 중요한데.”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구차한 변명하면서 그냥 넘어가서 그래요.

그러면 정확한 이 본문의 내용은 뭡니까? 아까 우리가 해야 될 게 교회냐 하는 문제, 주의 이름, 기름, 그 다음에 뭡니까?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한다는 그 뜻, 그 다음에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하는 그런 내용.

야고보가 누구의 제자입니까? 예수님의 제자지요. 예수님의 동생이니까. 예수님의 사도라 보면 돼요. 예수님의 제자가 열두 명이지요. 그러면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과 제자들이 일으킨 기적과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왜냐하면 그들의 능력이 아니니까. 심지어 가룟 유다도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다 말이죠. 마태목음10장에 보면 나와요. 열 두 제자를 보내서 하니까 그 당시에 예수님이 없을 때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자들이 와서 좋다고 하는 거예요. 귀신이 하늘에서 막 떨어지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귀신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말고 니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한 것을 좋아하라. 이렇게 한 거예요.

자, 그러면 귀신이 물러가고 병이 낫는 것을 왜 좋아했겠는가를 생각해 보세요. 그게 아까 1번은 뭐냐 하면, 이게 1번이었지요. 2번은 뭐였습니까? 죠. 주의 것이 되어버리면 주의 것이니까 앞으로 제가 잘할게요. 가 남아있는 반면에 주께서 쓰신다면 이건 내 생각을 여기다가 투입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투입 못하지요. 우리 인간의 생각이 투입할 때는 뭐냐 하면 이것은 옳다, 그르다를 이건 옳은 것이다, 이건 나쁜 것이다. 라는 판단을 누가 하느냐, 내 개인이 그걸 정리해 놓고 내 몸을 거기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데 투입을 시키겠지요. 옳다고 투입시키겠지요.

그러면 이것은 주님이 쓰시는 겁니까? 본인이 자기 몸을 관리하는 거예요? 본인이 자기 몸을 관리하는 것이죠. 문제는 이런 식으로 열 두 제자가 병을 고쳤느냐 하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병이 절대로 낫지 않습니다. 열 두 제자들은요, 예수님의 능력으로 해야 되지 본인의 능력으로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본인의 능력으로서는 안 나갑니다.

그런 예를 마태복음17장에 나오지요. 변화산에서 내려오고 난 뒤에, 그 대목을 잠시 볼게요. 변화산에서 내려오고 난 뒤에 어떤 사람이 예수께 자기 아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 자주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집니다. 마태복음17장15절, 16절 죽 나오거든요. 계속해서 나와요. 이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님께 가라사대 우리는 왜 못합니까?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능력을 줄 경우에만 능력을 너한테 줄 경우에만 제자들이 병을 고치지, 단독으로 아무리 예수님 제자라 하더라도 병을 고칩니까? 못 고칩니까? 못 고치지요.

그러니까 생각을 우리가 이렇게 먹으면 돼요. 인간은 병을 고친다, 못 고친다? 못 고친다는 거예요. 특히 야고보서5장 봅시다. 15절에 보면,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있어요? 구원하지요. 자, 우리가 아는 상식에 의하면 구원자는 인간입니까? 주님뿐입니까? 주님만 구원자가 되는 겁니다. 주님만 구원자인데, 주께서 자기 백성을 사용하게 되면 구원은 주께서 하시고 남들 눈에 보기에는 그 사람이 일했고. 그렇게 되지요. 그럴 때 그 과정 속에서 정말 그 사람이 믿는 자고 의인 같으면 필히 거기에 무엇이 나와야 되느냐 하면 자기 부인이 나와야 되지요. “제가 한 게 아닙니다.” 그렇게 나와야지요.

요 병든 것을 확대시켜 봅시다. 확대를 시켜보게 되면 여러분, 뾰루지 하는 거 알지요. 피부에 나는 거. 만약에 손등에 뾰루지 나면 그 사람 죽여 버려야 됩니까? 아니 발밑에 물집생기면 발을 잘라야 돼요? 발목 전체를? 그럴 필요 없지요. 그것만 짜면 되지요. 병들었다는 말은 무엇을 인간은 구원되어야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시그널 같은 겁니다. 시그널. 신호 같은 거예요. 병들었다는 말은 구원됐다는 말이에요.

한 쪽이 병들었다는 말은 그 병 든 채로 가면 그 육체와 신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안 받는다는 겁니다. 시그널, 신호라는 말을 알겠습니까. 손등에 뭔가 뾰루지 생기면 손등 자체가 뭔가 온전하지 않다는 하나의 신호, 징후라 하지요. 징후. 증상, 징후지요. 머리에 열이 난다. 모가지 잘라버릴까요? 아니지요. 그냥 뭔가 컨디션이 안 좋다는 징후잖아요. 징후.

교회 내에 어떤 사람이 병든 사람이 있다는 말은 그 사람 지옥 간다는 말이 아니고 항상 인간은 네가 안 아파도 내가 아플 수 있고, 네가 아프다는 것은 곧 나도 언젠가는 아플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뾰루지처럼 어떤 아픈 사람을 주께서 쓰시니까 아픈 경우를 발생시켜가지고 나머지 교회로 하여금 자기를 돌아보게 하는 거예요. 과연 나는 나를 부인하고 있는가.

주께서 쓰시는 사람으로 유지되고 있느냐, 아니면 내 몸은 주의 것이다. 로 머물러 있는지. 1번과 2번의 차이를 아신다면 여러분은 지금 제 말이 이해됩니다. 나는 주의 몸이니까 제가 알아서 바르게 쓰겠습니다. 가 옳은지, 아니면 그것 자체가 시건방진 일인지를 여러분들은 구분할 줄 알아야 돼요.

사람이 자기 몸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린다고 한다면 항상 되지도 않게 고상하게 살 생각을 해요. 고상하게. “저는 방귀도 뀌지 않아요. 호호호” 웃을 때도 호호호. 선보러 가가지고 젓가락가지고 깨짹 깨짹. 알탕도 알 하나 깨짹 먹고. 육개장도 고기 하나, “고기는 너무 아파~ 나는 나물만 먹을 거야.” 이리 해가지고는 나중에 집에 가가지고는 “아이고, 배고파라.” 양푼에다가 고추장 이만큼 해가지고 입을 벌개해가지고. 아이고 내숭 떤다고. 아이고! 두 번 다시 선 볼일이 아니야. 왜 선 볼 때 그렇게 조심스럽습니까. 평소에 나는 얼마나 자제할 수 있고 절제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을 티내기 위해서 하는 거죠.

교회는 보편적입니다. 보편적인데, 보편적이기 때문에 전체 다를 볼 수가 없어요. 다 볼 수가 있다, 없다? 다 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 볼 수가 없으니까, 만약에 산이 하나 있는데요. 산에 가가지고 어떤 도시를 볼 때, 내가 사는 도시가 어디까지인지가 넓을 때는 다 안보여요. 다 보이지를 않는다고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내가 있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교회 첨탑에 올라가서 교인들 다 봐도 다 보이지를 않아요.

그리고 교회는 보편적이니까 내 교회만 있는 게 아니고 다른 교회도 있잖아요. 그 전부를 해가지고 그 전부를 다 종합해서 교회는 이렇다고 낼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교회라는 단어가 있더라도 교회가 뭔지를 전체를 다 알 수가 없어요. 인간의 지적인 한계 때문에. 그 때 여기서 뭐냐 하면 시그널, 신호가 일어나는 겁니다. 신호를 뭐라고 했습니까? 이게 육체의 병든 자. 이게 병든 자가 오는 거예요.

병 든 자가 온다는 말은 그 사람만 계속 병들까요? 아니면 나도 마찬가지겠습니까? 나도 마찬가지지요. 이걸 뭐라고 할까요? 이걸 제목으로 정할까요. 매트릭스. 보일러 깔린 거예요. 어떤 밑에 보이지 않는 보일러가 깔린 거예요. 그 보일러가 뭐냐 하면 말씀의 매트릭스입니다. 말씀의 매트릭스니까 교회라는 단어도 어디에 포함돼요? 말씀에 포함되는 거예요. 교회라는 말씀에.

그러면 야고보서에서 말씀의 주인공은 누굽니까? 우리 주님이지요. 주님께서 교회를 교회답기 위해서 시그널을 보내는데 그 중에 하나가 어떤 사람이 병 들었다. 그러면 매트릭스를 간단히 그리면 이렇습니다. 씨실과 날줄, 가로와 세로 줄이 쫙~ 이게 매트릭스 세계 아닙니까. 혹시 이 중에 매트릭스 영화 본 적 있어요? 매트릭스 하는 것은 침대 뜯어보면 나와요. 촘촘히 세로, 가로 쭉 있지요.

그러면 어떤 사람이 A라는 지점에 어떤 사람이 병들었다는 말은 나는 B지점에 있다면 A라는 지점이 시그널이거든요. 그러면 B지점에 있는 사람이 병 든 그것을 생각한다면 남이 아니고 같은 사람이라면 이건 무엇과 연결이 돼요? 사다리 타기 아닙니까. 차타고 내비게이션 해가지고 여기 찾아오듯이. 전부 다 연결되어있는 거예요. 이 통째가 뭐냐, 교회라는 이름의 말씀의 매트릭스가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병 들었을 때, 14절 한 번 읽어보세요.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병든 자가 장로를 통해서 그 다음에 뭡니까?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매트닉스 이름으로 그 다음에 뭡니까? “기름을 바르며” 기름을 바르고 그 다음에 뭡니까?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기도하지요. 기도하는 거예요.

이것은 뭐냐 하면 마태복음10장이나 열두제자나 예수님 사이에서 결코 열 두 제자는 단독으로 병을 고칠 수도 없고 귀신을 쫓아낼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마태복음17장에서 어떤 아들이 빠졌으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고쳐줬거든요. 그럴 때 아버지가 하는 말이 “왜 당신의 제자는 못 고칩니까?” 했어요. 이건 또 하나의 시그널 신호에요. ‘아~ 마태복음10장에서 제자들이 병 고치니까 마치 예수님의 능력을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오해했는데, 막상 성경에 보니까 단독적으로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자’라는 것을 깨닫는 거예요.

그렇다면 제자들의 역할은 뭐냐, 나 능력 있다가 아니라 뭔가 중간 파이프의 연락책에 해당되지요. 본인들이 귀신 쫓은 거 맞아요.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니까 하늘에서 귀신 떨어지더라. 하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하늘에 귀신 쫓아내는 거 좋아하지 말고 니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 기록된 걸 좋아하라, 해서. 니는 지금 니 능력으로 귀신 쫓아낸 걸 오해하지 말고 나 예수와 너와 이미 창세전부터 명단이 매트릭스가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좋아해야 된다.

그러면 병이 낫고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은 또 솜씨를 부리라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과 제자들과 연결된 결속된 매트릭스 그 연결된 고리에 더 주목하라고 그러한 일들이 일어난 거예요. 아니 병이 나야 병을 고치지요. 혹시 여기서 뭐 병든 분 고쳐드릴까요. 여기. 고장 난 라디오나 TV 고칩니다. 돌아다닐까요? 그럴 필요 없다 말이죠. 병이 났다는 말은 주께서 일하라고 하시는 신호거든요.

그래서 이 두 개를 나눠보지요. 첫 번째는 내 몸은 주의 것이다. 맞아요? 틀려요? 틀리지요. 내 몸은 주의 것이다. 틀립니다. 두 번째가 맞지요. 내 몸은 주님께서 쓰신다. 이게 맞지요. 만약에 내 몸이 주의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여기에 자기의 윤리 도덕이 가미돼 버려요. ‘아휴, 주의 것이니까 나는 내 맘대로 쓰면 안 돼. 잘 써야 돼. 잘 써야 돼.’ 밥도 막 퍼먹지 말고 아침이슬만 먹어야 돼. 아침이슬 술을 먹나. 주의 것이라고 조심하게 돼요. 조심한다는 게 이게 불신앙이거든요.

제가 어제 수요일날 이야기했잖아요. 시험에 빠지지 말고 시험에 빠지는 시험은 빠지지 말라고. 그걸 시험에 시험이에요. 시험에 안 빠지려고 하는 그게 시험 드는 거예요. 안 빠지려고. 왜냐하면 본인이 관리하겠다는 거예요. 주께서 넘겨진 몸이 얼마나 귀한 몸인데. 앞으로 잘 쓰겠습니다. 영광을 위해서. 이건 땡이에요. 2번이지요. 니 몸이 아닌데 니가 왜 신경 써. 그래서 수요일날 중간에 그런 이야기했지요. 내가 문제 삼지 않는데 니가 왜 문제 삼아. 이 시건방진 인간아! 내가 니한테 문제 없다하는데 니가 왜 너 자신에 품행이나 자세나 미래에 대해서 그렇게 염려하느냐 말이죠. 어두운 얼굴을 하고.

교회에 어두운 얼굴을 하고 오는 권리는 없다고 했지요. 무슨 자격으로 어두운 얼굴 합니까? 무슨 자격으로. 그런데 야고보서에는 어두운 얼굴로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주님의 신호로서. 왜냐하면 변비 되어있거든요. 병 들었거든요. 본인이 원해서 병 든 게 아니에요. 주님의 신호에요. 매트릭스 밑에 보일러 깔렸다는 신호라는 말이죠.

자, 이렇게 되어버리면 그 다음에 어려운 문제가 등장하는데요. 여러분이 잘 아는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5장에 보면, 베데스다 못가에 38년된 병자가 나았습니다. 이 38년 된 병자가 걸을 때에 의도적으로 주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을 낫게 했거든요. 안식일 지키기 위해서 병 고치는 걸 잠시 중단했던 바리새인 앞으로 지나가게 만들었어요.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만든 안식일에 법에 적용해 보면 뭘 들고 가지 마라 했거든요. 들고 가는 방식으로 가게 만들었어요.

자, 만들었을 때에 제가 묻는 것은 이 38년 된 병자를 누가 고쳤습니까? 하는 거예요. 제가 묻는 것은. 여러분 답변 나오지요. 누가 고쳤습니까? 주님이 고쳤지요. 그 다음 문제. 어떻게 고쳤습니까? 어떻게? 그저 믿음으로. 아니에요. 뭘 믿어요?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을 믿은 적이 없는데 무슨 믿어요. 그게 뭐냐 하면 바로 말씀으로 고쳤습니다. 이게 말씀의 능력이라고 되어있어요. 말씀의 능력. 그러면 야고보서에서는 이걸 뭐라고 하느냐, 말씀의 능력이라고 하지 않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있도다. 이렇게 되어있거든요. 의인의 능력되어있어요. 의인의 능력.

그럼 의인의 능력은 아까 제가 말한 의인의 특징이 뭐냐 하면 ‘자기 부인’이 되는 사람. “너, 나 보이지? 나, 아무것도 아니야. 껍데기야.”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 “내 키가 얼마인지 보이지? 내가 누굴 위해서 기도한 거 다 보이지? 기도 지금 내가 하는 거 보이지? 내가 한 거 아니야!”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의인이에요.

이 38년 된 병자뿐만 아닙니다. 여기 누가복음13장 10절봅시다. 그것도 안식일 나오거든요.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이리 되어있지요. 이 이야기는 조금 더 복잡해요. 18년 이 여자가 18년 동안 병 들지 않은 다른 옆집에 있는 아줌마보다 죄를 더 지었습니까? 적게 지었습니까? 지금 죄 지어서 18년 된 게 아니거든요. 죄 지어서 18년 같으면 지금 정권 잡은 이런 사람들 38년 동안 꼬부라져야 되고 지금 우리가 만만치 않고요. 화성연쇄 살인범은 2000년 살아야 돼요.

이 본문의 18년 된 병자는요, 주께 감사해야 돼요. 왜냐하면 본인이 될 수 없는 본인이 된 겁니다. 이게 뭐냐 아무리 해도 주여, 저한테 18년 동안 병 들어서 꼬부라지게 해달라고 요청할 수 없는 자인데 주께서 쓰시기 때문에 18년 동안 병든 자가 됨으로서 의인이 되어버린 거예요. 자기부인이 가능한 존재가 되고만 겁니다. 안식일에.

온전히 주님을 온전히 드러내는 사람이 된 거예요. 18년 된 병든 자 복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알면서도 18년을 사양하겠지만. 이틀도 우리는 그냥 밀 거예요. 쳐들어오지 마세요! 아이구~ 겁납니다. 1년도 아니고 2년도 아니고 18년 동안. 생각해보세요. 20살 때 병들었으면 언제 낫다는 말입니까? 38년. 이건 기가 찰 거 아닙니까. 청춘을 돌려다오! 나올 만하잖아요. 이게 숫자에 불과한 게 아니에요. 이게 고통스러워요.

야고보서에 고난이오지요. 야고보서의 고난은 뭐냐 하면 병든 자가 바로 의인을 알아본다는 거예요. 의인을. 병든 자가. 우르르 와서 기도해 줄 때, “당신 기도 때문에 구원받은 게 아니요.” 라고 병든 자 쪽에서 이게 해석이 되고 설명이 되어줘야 되는 거예요.

강도만난 사람이 있는데 처음에 한 제사장이 그냥 지나갔어요. 두 번째 레위인도 그냥 지나갔어요. 세 번째 이방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고쳐주었습니다. 우리가 강도 맞았다 칩시다. 그럼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누가 선택하고, 누가 알아챕니까? 강도 만나야 그걸 아는 거예요. 우리가 18년 동안 병 들어야 알아요. 당신의 기도 덕분에 나은 게 아니고 주님 덕분에 낫다는 것을.

주님의 만남은 내가 부인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함으로서 주님을 만날 계기를 주님 쪽에서 만나게 하는 거예요. 그게 매트릭스의 신호, 시그널입니다. 매트릭스를 한 번 더 그려볼까요. 촘촘히 말씀의 보일러가 깔렸고, 그 깔린 곳에 어떤 사람은 지금 병들어있고, 어떤 사람은 지금 재벌 되어있고, 어떤 사람은 지금 파산되어있어요. 어떤 사람은 교도소에 가있고, 어떤 사람은 법무부장관 되어있다고요. 매트릭스 위에 쭉 되어있거든요. 우리는 여기에 있다고요.

매트릭스 깔렸으니까 각 사람이 각각의 몸이라고 여기고 바르게 사는 게 아니고 주께서 쓰신다니까요. 1번, 2번 차이점을 모르면 오늘 강의 헛방입니다. 주께서 내 몸, 니 몸이니까 잘해라가 아니라 우리는 율법을 못 지켜요. 야고보서2장에 못 지킵니다. 주께서 친히 쓰시는데 이 사람은 병 들게 쓰시고, 이 사람은 이걸 병 든 사람을 기도하게 하면서 쓰시고, 역할이에요. 역할이 다 달라요.

그런데 공통점이 뭐냐, 공통점은 다 주님의 능력으로서 산다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주의 이름이라고 하는 거예요. 주의 이름으로. 주의 이름이란 말은 “기도하는 내 이름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주여!” 라고 할 수 있는 기도.

이것은 주께서 쓰시고자 병 든 자를 우리가 관장할 수 없고 우리는 다만 기도할 따름입니다. 할 때 그 기도가 자기기도 능력 발휘하라는 말이 아니고, 자기기도 능력하면 2번이 아니고 뭐가 돼요? 1번이 되겠지요. 나는 주의 몸이다. 따라서 내 기도 주께서 알아줄 거야. 내 기도 얼마나 솜씨 있는지 발휘해 봐! 이건 자기 부인이 쏙 빠졌잖아요. 이건 주의 이름 아니에요. 이건 가짜입니다. 거짓입니다.

말씀 자리에 누가 차고 들어간 거예요? 지 잘남이 차고 들어간 거예요. 그걸 구분하기 위해서 주께서는 교회에 병든 자를 발생시킨 겁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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