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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놀라지 않기 190919강의베드로전서

서울의존강의20190919a 베드로전서3장 6절(놀라지 않기)-이 근호 목사

베드로전서 3장 6절

6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7절,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아내가 남편의 스승이다’ 이런 뜻입니다. ‘남편은 아내한테 배워라’ 이 말이에요. 그럼 뭘 배우느냐? 연약함을 보여주는 그 아내의 모습을 보고, 네 자신의 토대를 이루는 하나님의 창조성이 연약함에 있다는 것을 배워야 된다.

연약한 데에서 우리 인간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여기에 악마와 결탁이 되게 되면 무엇에서 벗어나려고 하느냐 하면 연약함에서 벗어나려고 해요. 연약함에서 벗어나면 그것은 완전함이고 완벽함이죠. 완전함, 완벽함이 되게 좋아 보인다 이 말이죠. 그러면 그럴수록 하나님이 창조했던 그 바탕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길을 가며 마주 오는데 얼굴이 어둡고 공포에 질리고 두려워하고 안절부절 못한다. 그 사람은 장담컨대 100% 완전과 완벽을 추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완전과 완벽을. 사람이 대할 때, 눈을 볼 때, 표정을 볼 때 불안하거나 뭔가 공포에 서려 있는 것은 완전하지 못할까봐 벌벌 떨기 때문에 나오는 얼굴이에요.

하나님의 창조성을 가까이 보여 주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이거에요. 크게 쓰겠습니다. “겸손”. 겸손하면 마귀도 떠납니다. 겸손하면 마귀도 떠나요. 마귀 떠나면 무서울 게 아무것도 없죠. 두려울 게 없는 거예요. 겸손하겠다는데 뭐. 내가 겸손하겠다는데.

겸손한 사람에게 죄도 고마워요. 죄도 고맙다고. 죄를 아니까 점점 겸비해지고 겸손해지는 겁니다. 죄를 아니까. ‘그래, 내가 죄인이 바탕이지. 당연한 거지. 죄인이 뭐 잘난 체 해.’

죄인인데 겁나는 게 있어요? 죄인은 아무것도 두렵거나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왜? 못된 죄인이기 때문에. 베짱도 그런 베짱이 없어요. 대단한 베짱이죠. 못돼 처먹은 인간인 것을 내가 기꺼이, 당연히 내 진모습으로 받아 들이겠다는데 어떻게 해요, 받아 들이겠다는데. 마귀가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너 잘난 존재야’ 하면 오히려 마귀를 나무랍니다. ‘니 자꾸 나한테 구라칠래?’, ‘너 훌륭하게 될 수 있어’ ‘자꾸 거짓말 할래?’, ‘너 지금보다 더 향상될 수 있고 높아질 수 있고 거룩하게 될 수 있고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너나 많이 해’

완전을 추구하는 순간부터 공포에 질립니다. 얼굴이 파래져버려요. 날씨도 별로 춥지도 않은데 얼굴이 파래집니다. 바들바들 떤다. 그리고 특히 남 앞에 연설할 때나 사람들 있는데서 이야기 할 때,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고 내 뜻을 이야기 할 때 남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벌벌 떤다는 것은 얼마나 평소에 우리는 겸손을 모르고 살아왔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얼마나 평소에 마귀에 농락당하고 살아 왔는가가 아주 티가 나는 거예요. 내가 할 말을 미리 준비하겠다는 것은 완전하고 완벽해서 남한테 지지 않겠다는 그 악마적 심리가 내 안에서 지금 자극받아 발동하고 있는 중입니다.

망가지면 안된다는 거예요. 망하면 안된다는 거예요. 이런 건방짐이 어디 있습니까. 자기 주제파악도 안하고요. 성경에서 자기를 죄인이라고 한다면 죄인값으로, 죄인으로 살아야죠. 겸손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뭔가 가졌는데 겸손하면 어려워요. 나는 겸손 안해도 되는데 또 목사님이 겸손하라고 하니까 겸손할께요. 이것은 겸손한 것을 빌미로 해서 겸손마저 장착한 완전추구를 이야기 하는 겁니다. 이것은 아주 교만하기 짝이 없어요. 겸손을 앞장세운 교만의 극치. 극치의 교만입니다. 교만의 종결자. 이게 겸손이에요. 일반 사람들이 말하는 겸손은. 교만의 종결자가 겸손이에요.

겸손하면 얼굴이 편해야죠. 두려움이 없어야죠. 내일 일을 걱정 안해야죠. 겸손한테는 이미 겸손 자체가 망했기 때문에 새로이 망한다는 건덕지가 추가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지금 망해져 있기 때문에요. 지금 걸레거든요, 쓰레기고. 걸레인데 더 찢을 일 있어요?

성경을 보기 전에, 그리고 세상을 우리가 살면서... “목사님, 세상을 인간은 어떻게 삽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공포에 쫓기며 살아 갑니다. 무서움에 쫒기며, 무서움에 휘둘리면서 살아가요. 벌벌 떨면서 살아가요. 아무도 비난하지 않고 아무도 쫓아오는 사람도 없고 아무도 누가 뭐라 하는 사람 없어도 본인이 바이브레이션이야. 벌벌 떨어, 늘. 뭔가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살아 갑니다.

한 자 한 자 글 쓸 때마다, 누구한테 전화하고 수다 떨 때마다 그게 전부 다 두려움에 진동한 대화, 그리고 발언, 단어들이 튀어 나옵니다. 목사가 설교할 때도 마찬가지고, 교인들이 설교 들을 때도 마찬가지고. “목사님 오늘 너무 심하게 다그치면 안됩니다.” 막 벌써 벌벌 떨어요.

마귀가 그처럼 인간을 너무 높여 놔가지고...너무 높여 놨어요. 그리고 모든 세상의 남자들이 다 그래요. 남자들이 하는 것은 낮아지기 시합이 아니고 누가 더 높으냐의 경쟁에 남자들은 내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낮아짐의 전쟁터가 아니라 누가 높아질 수 있느냐의 전쟁터에요.

뭐 여자들이야 가정에서 살림만 사니까 남자들이 어떤 세계 속에서 정신적으로 힘드냐를 옛날에는 몰랐었었죠, 옛날에는. 그런데 지금은 여성들도 교육을 받아 가지고 배운 지식과 기술을 돈으로 바꾸기 위해서 세상에 뛰어들거든요. 할 수만 있거든 돈 벌어라, 할 수만 있거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 벌어라. 왜요? 돈이 있어야 높아지니까.

바보에요. 겸손 쪽으로 내려가야 되는데, 이게 우리의 창조의 원형인데, 겸손 쪽으로 내려가야 되는데 악마가 자꾸 부추겨서 내 마음이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 있는 쪽이 아니고 그것과는 대치가 되는, 반대쪽으로 자꾸 몰아세우는 거예요. 자꾸 몰아세워요.

꼭 천사가 롯의 가정한테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뒤돌아보지 마라.” 뒤돌아보지 말라고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멸하실 때 뒤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을 마귀가 그대로 써먹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저 최고의 자리를 향하여 앞면만 보이고 뒷면은 보이지 마라. 뒤돌아보지 마라. 계속해서 달려가고 달려가고 추구하고 추구하는 거예요.

다시 합시다. 사람이 성경을 얼마나 알고 기도를 얼마나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거울을 보라. 사람을 단독적으로 놓고 볼 때에 그 사람의 얼굴에서 편안함이 없다는 것은 뭐냐 하면 그만큼 겸손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어디에도 겸손 배울 데가 없어요. 왜? 모든 자가 원없도록 교만하지 못해서 환장을 한 세상이기 때문에. 높아지는 것을 참이고 선이고 진리로 아는 그 시대에서 어느 누구에게 겸손이 주는 편안함과 감사와 고마움과 행복을 아무도 가르치거나 얼굴로 내비춰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요. 전부 다 잘난 맛에 살아가거든요.

죄는 죄대로 지으면서 죄 아닌 척하면서, 나 죄 안 지었다. 이렇게 하고 있다는 말이죠. 아내가 한 것 나 모른다. 어디서 많이 듣던 명언 아니겠습니까? 난 모른다 이래요. 안다 했으면 그 사람 얼굴이 참 편할 건데요. 아내 한 것 저도 알아요. 나도 한 통속이고. 하면 얼굴이 굉장히 해같이 빛날 건데. 아내 한 것을 난 모른다고 하니까 햇빛이 핏빛이 되고 말았어요. 우리는 안그렇습니까? 뭐 누구 탓할 것도 없지요.

‘겸손하라’로 가야 되요. ‘높아지라’가 아닙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겸손의 반대말은 뭐라고 했어요? 겸손의 반대말은 완전함 또는 완벽함. 흠이 있으면 자기가 돌아 버리고 미쳐 버려요. 내가 그런 실수를 하다니. 내가 칫솔을 잃어버리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겸손하라고 잃어버린 거예요, 겸손하라고.

‘너는 덜렁대도 괜찮아’ 이거에요. ‘너는 덜렁대면 안된다’가 아니라. 우리는 항상 세상에서 반대로 배웁니다. 그러나 세상은 악마가 있으니까 악마가 우리의 진짜 하나님의 창조의 모습과는 다른 길로, 계속 ‘보지 마, 뒤돌아보지 마.’ 계속 그 쪽으로 몰아 넣어요. ‘너는 실수 안할 수 있어. 너는 지금보다 더 향상될 수 있어. 너 지금부터 우수할 수 있다고. 그럼 넌 성공할 수 있어.’

일단 들으면 기분은 좋은데 얼굴은 벌써 시커멓게 되어 가요. 본인도 불편하고 보는 사람도 불편하고. 얼굴에 편안이 없고 안절부절하고 불안불안하고. 말을 해도 막 더듬고. 혹시 내 말의 진위가 상대방에게 들통날까봐 바들바들 떨고. 내 말하는 본색이 노출될까봐. 그 뜻이 누출될까봐 어쩔 줄을 모르고.

그래서 겸손하지 않은 인간들은 자꾸 사과해요. 용서를 바라고 있습니다. 희한하죠. 왜 자꾸 타인에게 용서를 구하고 사과합니까? 완벽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사람이 행복하던가요? 살림살이 나아지던가요, 그래서?

이 세상에 어디에도 겸손을 가르쳐주는 데가 없어요. 혹시 신정네거리에 겸손학원 이런 거 있던가요? 그런 거 없죠. 모든 학원들은 앞에 교만이 다 붙어 있어요. 대입학원. 뭡니까? 대학에 들어가면 인간답고 떨어지면 인간답지 않다는 걸 벌써 앞에 뉘앙스를 걸치고 있잖아요. 또 피트니스, 아름다운 몸매를 원하십니까? 학원. 아름다운 몸매가 높아지는 거잖아요. 내 몸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사람은 자기 몸이 뚱뚱하면 자기가 용서가 안 돼.

그래서 인간의 삶은 늘 불안한데 왜 불안하느냐 하면 이겁니다. ‘이래서는 안된다’ 하고 자기를 자책해요. 채찍질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같잖치도 않아요. 같잖치도 않죠. 웃기죠. 맹탕이라도 너 괜찮아, 맹탕이 너한테 딱 맞아. 개코도 아무 것도 없는 게 너한테 딱 맞다고, 지금 네 모습에.

그런데 ‘아니야, 이러면 안돼’라고 누가 이야기 해주더냐. 그게 악마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악마가. 이 세상이 그렇게 가르친 거예요. 겸손 자리를 확 빼버리고 겸손 자리에 나의 완벽함과 잘남으로 인테리어를 새로 했어요. 인테리어를 새로 해버린 거예요. ‘나는 낮아져도 마땅하고 죽어도 마땅하고 없어져도 마땅하고 아무 것도 아니라도 그게 마땅하고 그 마땅함이 나는 너무 행복해’라는 그런 책도 없을뿐더러 그런 책이 있다면 그런 책 읽다가 갑자기 치워 버리고 ‘돈 버는 비법’ 이런 거 있잖아요. 그런 책과 바꿔서 독서하는 것과 똑같은 사고방식이에요.

나는 겸손하다는 게 이것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행운이 찾아온 거예요. 집 안에 돈이 몇 억 있든 몇천 있든 그건 관계없어요. 사람이 겸손이 좋다는 그런 인식은 정말 이건 성령 아니면 누가 가져다 주겠습니까? 하나님의, 예수님의 마음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집어넣지 아니하면 난 겸손보다 더 좋은 게 없어, 최고야 최고. 정말 이것은 천만, 억만금보다 더 귀한 걸 받아서 감사합니다. 감사가 절로 나오게 되어 있죠.

지금부터 좀 어렵게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있느냐, 성도는 왜 있느냐. 인간은 살아 있으면서, 말씀의 내용이 어떠냐를 살아 있으면서 보여 주는 기회를 갖고자 우리가 이 땅에 살아 있는 겁니다. 나의 우수함이 아니고 말씀이 어떠하냐를 나타내기 위해서 살아 있는 거예요.

내가 죽어서 없어지기 전까지는 살아 있으면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성도가 죽으면 그것은 뭘로 교체되느냐 하면 온전히 말씀과 교체되겠죠.

성도는 교체되기 전에 이미 말씀이 내장되어 있고 그 내장된 말씀이 성도를 통해서 표출되고 있고, 죽으면 인간은 풀이기 때문에 죽기 마련인데 죽으면 영원한 것은 뭡니까, 영원한 것이? ‘아 역시 말씀은, 하나님 뜻은 이거였구나’ 하는 것이 그 죽음을 통해서 바깥으로 드러나죠. 살아 있을 때도 드러나고요.

그래서 살아가는 이유는 죽어서 주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으면서 주와 함께 있는 그러한 증거들 또는 흔적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성도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에서 여기 성도가 몇 명 나옵니까? 3장 6절~7절에 성도 두 사람 나오죠? 누구하고 누구죠?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오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6절 뒷부분에 보면, ‘아무 두려움 없이’ 그다음 뭐죠? ‘놀라지도 아니함’이죠. 놀라지도 아니함이 아브라함이 보여주는 속성이란 말입니까, 사라가 보여주는 속성이란 말입니까? 사라가 보여주는 속성이죠. 놀라지도 아니함. 뭐 놀랄 게 있어야 놀라죠. 왜? 겸손하니까.

사람이 교만하게 되면 내 가진 것 다 거덜날까봐 벌벌 떨거든요. 그런데 겸손한 사람 같으면 이 세상에 귀신을 만나도 안 무서워요. “안녕 귀신, 잘 있었어?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너도 존재하는구나. 성경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다 그리스도를 위해서라고 하는데 네가 보이지 않는 거구나. 아우 참 신기하여라. 보이는 나도 주를 위해서 살지만 보이지 않는 악마 너도 주를 위해서 만들어졌구나, 아이 참 신기하여라.”

그렇게 되지 갑자기 십자가 찾아 목걸이 해가지고 ‘사탄아, 물러가거라.’ 말도 안되가지고 말도 막 더듬거리면서 마늘 가져오라고 해서, 요새 마늘 얼마나 비싼데, 마늘 사가지고 던지고 십자가하고 어디 신부 퇴마사 없나, 영화배우 안성기 막 모셔 와가지고... 세상에 라틴어에 맥 못추는 그런 마귀가 어디 있어요? 마귀가 싱긋이 웃으면서 “교만한 네가 내 부류야.” “하나님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그러면 “네나 내나 마찬가지야, 마귀의 종이면서.”

아니 귀신을 왜 쫓아야 됩니까? 가만히 놔두지. 아까 그랬죠? 겸손이라는 것은 뭐도 좋아한다? 뭐도 기뻐한다? 죄도 기뻐하죠. 죄가 있으매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죄가 있으매. 내가 전환하는 순간, 그렇게 안되던 겸손이 내 죄를 아는 순간 한꺼번에 고개가 팍 숙여지네요.

고개 숙어지고 깨지는 그 행복, 그 편안함. 무게중심이 높은 데에 있지 않고 낮은 데에 있으니까 마귀가 와도 무섭지 않아요. 여기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놀라지도 않아. 남편된 아브라함이 누구한테 배워야 되느냐면 사라한테 배워야 되요, 사라한테. 놀라지도 않아.

목사님, 성경을 몇 독해야 은혜 받습니까? 기도를 며칠 해야 되고 금식을 얼마나 해야 되고 헌금을 얼마나 해야 되고 목사님 섬겨야 되고 교회를 몇 년간 다녀야 은혜 받습니까? 하는데, 은혜란 그냥 내가 아무것도 아닌 죄인인 것을 아는 순간 그 은혜라는 목표 자체도 날아가 버려야 겸손이에요. 내가 가져야 되고 도달할 목표 자체도 없어져야 되요.

그래야 겸손이죠. 어떤 목표가 있으면 그게 겸손입니까? 도달할 어떤 실적을, 가져야 될 실적을 자꾸 얼쩡거린다면 그게 겸손이겠어요? 미흡함이고 미흡함은 바로 교만이죠. 자책하게 되니까.

아, 딸 하나 낳아야 되는데. 딸 낳았으니까 이번엔 아들 낳아야 되는데. 그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임신해보니 아들인데요. 처음에는 딸, 이번에는 아들. 내가 그랬죠.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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