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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일반] Re..사도행전4"13-22 설교입니다.우리교회사도행전

[일반] Re..사도행전4:13-22 설교입니다.

이름 : 이준(IP:)

에구 실수로 이준 님의 글에 답변 밑에 리플을 달려고 했는데 그만 덧붙이가 되었네요. 이준 님의 글이 지워졋습니다. 실수했군요. 제가 늘 이렇답니다. 미안 합니다 설마 삭제 했다고 앞으로 시위하시지는 않으시겠죠? ^^ 앞으로도 십자가의 복음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자주 들려주세요.

이준 님의 답변을 보고 다들 감탄을 했습니다 얼마나 세세히 표현을 하셨던지 오늘 교회에서 집사님들과 우아 우아 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습니다 그저 주님이 하시는 일에 입이 딱 다물어 질 뿐입니다. 비록 제 실수로 지워졌지만 이렇게 리플 달아주심을 감사합니다.

김 대식

찾질 못해서 헤매고 있었는데 너무 고맙습니다. 동영상 입니다

본문 : 사도행전 4장 12-22절
제목 : 자 유
일시 : 200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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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2004년 1월 28일
본문 말씀: 사도행전 4:13-22

4:13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4: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
4:15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4: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4: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4:18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4:21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
4:22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 여세나 되었더라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어떤 한계와 무능을 직감하고 자기 속에 있는 능력으로는 도저히 천국갈 수 없음을 알고 신의 능력을 사모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 자들의 헌신과 노고와 희생으로 말미암아 소위 교회라는 것이 아직도 번창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자들의 눈에 오늘 본문이 보인다면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요? 아마 이런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 나도 구원된 자로서 세상에 나가 보다 멋있게 신앙인의 담대함을 보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봐야지. 그래서 불신자들이 공격하고 핍박하면 그 때까서 이렇게 이야기해야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라는 멘트를 활용해 보리라"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구원도 아니요, 신앙도 아닙니다. 그저 인간에게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진짜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의 일은, '자유'의 상황 속에 놓이게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자유란, 우선 죽음으로부터 자유요, 악마로부터 자유요, 죄로부터 자유로, 율법으로부터 자유입니다.

그런데 이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은, 자유가 아닌 상태가 어떤 상태인가를 점검하면 될 것입니다. 자... 죽음으로부터 자유가 안 된 상태가 어떤 상태일까요? 그런 사람은, 자기의 죽음을 자기 인생의 일대 수치로 간주합니다.

남들은 다 건강하는 사는데 자신은 졸지에 죽게 되었으니 그것이 한없이 부끄럽고 실패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구원의 능력 안에 놓여 있는 자는 이런 생각을 품을 필요조차 없게 된 상황이 곧 자신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3:17에 보면, 성도에게 주어진 '자유'라는 상황이 어떻게 주어졌는가가 나옵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즉 주의 영 밖에 놓이면 절대로 그 상대는 '자유'의 상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자유의 상태가 어떻게 된 상태냐 하는 점은 고린도후서 3장에서 모세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모세는 감히 천지를 창조하신 그 당사자이신 하나님을 단독으로 뵙고도 죽지 않고 살아서 다시 시내산 밑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초라하고, 불결하고, 죄많은 그이기에 당연히 하나님을 만나면 즉사하는 것이 당연지사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놀랍게 영광스러운 자태를 유지한채 다시 산 밑의 백성들 속으로 되돌아 올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상태가 곧 '자유'라는 겁니다.

그리고 성령받은 모든 이는 바로 이 모세와 같이 하나님을 뵙고도 죽지 않고 영광스럽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주의 영' 곧 '성령' 안에 있는 상황이기에 주어진 신분이라는 겁니다.

자, 천하의 하나님 앞에서도 저주받지 않고, 죽지않고 버텨낸 신분이 성도의 자유된 신분이라면 이 세상에서 받는 그 어떤 모욕과 조롱과 수모가 대수겠습니까! 죄로부터 자유된 신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여전히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태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과 세상 사람들로부터 몹쓸 징벌이나 저주가 언제가는 주어지게 되어 있다고 몸둘 바를 모르는 채 부들부들 떠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불길한 상태를 호전해 보고자 나름대로 노력하는 것이 바로 '성화되기', '보다 단단한 신앙갖기', 예전부터 더욱 더 '선한 일에 전념하기', 교회에서 '하나님께 헌신하기'에 치중하게 됩니다.

즉 "지금보다 더 확실한 믿음을 가지면 나도 자유의 상태에 돌입되는 보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겠지"라고 마음 먹는 그 자체가 곧 여전히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지 못한 불신의 상태입니다. 진짜로 '죄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라면 이런 마음을 가질 필요조차 없이 된 상황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즉 자기 자신이 미리 예측하거나 예상한 상황보다 월등하게, 도저히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자유로운 상황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신분이 된 것입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 율법으로부터 자유가 뭔가를 아는 것은, 율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도 같이 알게 됩니다.

악마의 주특기는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부지런히 사람들에게 쑤셔대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말씀을 가지고 악마는 성도를 들볶습니다. "네가 그래놓고도 신자라고 할 수 있는가? 작년보다 올해는 뭔가 신자다운 면모를 보여야 하지 않느냐?"라고 하면서 사람을 못살게 굽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사람들로 자신을 방어한다고 기껏 내민 카드가 바로, "하나님, 저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아서 그런데 늘 마음먹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저에게 심한 벌을 내리지 마옵소서"라고 하면서 비굴하게 굽신굽신 거리면서 사는 생활로 일관합니다.

그런데 죄나 악마로부터 자유롭게 된 사람은, 결코 이런 필요조차 없는 그런 상황 속에 이미 자신이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니, 하나님 앞에서도 당당하게 살게 되는 신분이 그깟 수천, 수만 사람들의 비난과 불평과 모욕이 이 자유의 신분의 변경시키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놀라운 자유라는 세력권이 어떻게 주어지게 된 것입니까?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된 모습으로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명심해야 될 문제는, 예수님이 주시는 자유함은 인간의 요청이나 요구에 의해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게 된 자는, 자신의 예측이나 예상을 미리 한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저 일방적으로 예수님에게 당한 것입니다. 그것이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입니다. 즉 '자유함'은 곧 예수님의 자유함입니다. 예수님의 자유함이 성도에게 덮치고 만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18절에 보면,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여기에 대한 사도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즉 '예수의 이름'으로 일하심 자체가 하나님께서 기획하고 시작하는 일의 실제 내용이라는 겁니다.

달리 말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상황을 인간들이 걷어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 사도는 순교하려고 전혀 애쓰지 않습니다. 전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움직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의 영'에 놓여 있고, 그 '주의 영' 안에는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의 눈치를 보거나 타협하거나 흥정하거나 요령을 부릴 하등 필요가 없는 것은 사도가 자신이 자신을 자유케 하거나 사도가 자신이 자신을 구원할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37-38을 한 번 봅시다.

거기에 보면,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기 딴에 신앙 생활에 충실히 하고 있다고 장담하는 자들도 이 말씀을 대하면 겁을 내게 마련입니다. "만약에 나에게 이런 일이 실제 상황으로 닥쳐 온다면 나는 과연 톱으로 켜이는 것에 피해 배신하지 않을까?"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와 있듯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자들은, 톱이 아니라 그 어떤 잔인한 살해도구에는 별 무서운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는 이유는 어차피 자신의 구원은 사람들과의 관계나 태도에서 결정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자유라는 것은 자신의 결단력이나 결심이나 각오와 상관없이 이미 들어 와 버린 어떤 상황 자체를 두고 말하는 겁니다. 따라서 '죽으면 죽으리다'가 가능한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순교의 상황을 상상해서 용감하게 의도적으로 뛰어들어가보자고 하는 시도 자체도 자유함이 아니라 인위적인 것입니다.

구원과 자유에 대해서 성도는 더 이상 사람들하고 상대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유스러운 신분을 발휘하고 있는 겁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남을 대상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주신 자유라는 보물을 보물답게 즐기며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준: 감사합니다, 형제님. 존경하는 이근호 목사님과 우리 교회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인사 올립니다. 낮은 자 이준 올림 [12/05-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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